부산 활쏘기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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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전통 활쏘기와의 첫 만남은 1987년,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사내 동호회를 통해서였다. 이후 바쁜 생활 속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으나, 1997년 타지에서 근무하던 중 본격적으로 활쏘기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활쏘기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2006년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니, 네 곳의 활터가 자리하고 있어 활쏘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쇠미산 아래에 있는 활터 사직정에서 활쏘기를 하면서 간혹 이런 생각이 스쳤다.
"부산의 활터는 언제부터 있었으며, 그 원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부산지역 활쏘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7월, 국가유산청이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하면서, 활쏘기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활쏘기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우리만의 고유성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문화로서, 역사성과 예술성, 학술성 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부산에서 활쏘기 문화는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1년 여름, 「관덕정수호절목」 사료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관덕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설사정(활터, 射亭)이며, 이 문서는 동래부의 활쏘기 운영과 무과 지원 방안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였다. 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재)기영회를 통해 어렵게 원문을 확보하고, 윤백일 고문의 초역본을 통해 관덕정 외에도 읍승정, 우빈정 등 동래부의 또 다른 활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영회를 방문하여 「관덕정수호절목」 초역을 전달해 드리고,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설명해 드렸다. 이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기영회에서 자료를 보존해 주시고, 저희가 열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탈초가 미진한 부분이 있어 원문 촬영을 요청하였고, 원문을 조심스럽게 일반해상도와 고해상도로 두 번 촬영했다. 촬영 작업은 아내와 함께했다. 기영회 사무실을 나와서 수안역사에 있는 〈임진왜란체험관〉에 들러 동래해자와 동래전기읍성 모형도를 보고 왔다. 〈2023년 4월 6일, 답사기〉
그 순간부터 부산의 활터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사료를 탐독하고, 고지도를 분석하며, 동래읍성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기록 속에서 사라진 활터의 흔적을 현재의 지형과 비교하며 하나씩 퍼즐을 맞춰 나갔다.
동래읍성 남문 터를 지나 동헌 방향으로 걷다 보니 정면에 동래시장이 마주한다. 옛날 객사 자리이다. 터가 평지보다 높다. 기록에 따르면 객사인 봉래관의 동쪽 학소대 인근에 활터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저기쯤이 아닐까? 〈2023년 5월 1일, 답사기〉
문헌을 통해 짐작한 활터의 위치를 직접 걸으며 확인하니, 예상했던 장소와 지형이 맞아떨어졌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에 서 있는 듯했다. 조선시대 무인들이 활을 쏘던 그 자리에서, 나는 과거의 흔적을 되새기며 과녁에 담긴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답사를 통해 부산 곳곳의 활터 유적지를 확인하면서, 활쏘기가 단순한 무예 수련이 아니라 군사훈련과 시험,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답사는 과거의 위치 정보를 현재지도에 이식하는 작업이다. 고지도의 정보와 현재의 지도에 동일한 정보를 특정하고 확인하는 일의 과정은 오직 답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은 걷고 보고 또 걸어야 한다. 동래읍성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왔다. 〈2023년 6월 23일, 답사기〉
시대에 따라 활쏘기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변화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군사 훈련과 무과 시험의 필수 요소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전통을 지키려는 공동체 문화로 기능했다. 광복 이후에는 현대 스포츠로 정착하면서도 전통 계승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지난 4년간 연구한 부산 활쏘기의 역사 중 특히 18세기 이후의 사정(射亭, 활터)을 중심으로 조사한 자료와 현장 답사 내용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18세기 이전의 활쏘기 문화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긴다. 이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김기훈 교수님, 이석희 명궁님, 윤백일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5년 2월 심곡재에서 이건호
"부산의 활터는 언제부터 있었으며, 그 원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부산지역 활쏘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7월, 국가유산청이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하면서, 활쏘기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활쏘기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우리만의 고유성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문화로서, 역사성과 예술성, 학술성 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부산에서 활쏘기 문화는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1년 여름, 「관덕정수호절목」 사료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관덕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설사정(활터, 射亭)이며, 이 문서는 동래부의 활쏘기 운영과 무과 지원 방안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였다. 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재)기영회를 통해 어렵게 원문을 확보하고, 윤백일 고문의 초역본을 통해 관덕정 외에도 읍승정, 우빈정 등 동래부의 또 다른 활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영회를 방문하여 「관덕정수호절목」 초역을 전달해 드리고,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설명해 드렸다. 이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기영회에서 자료를 보존해 주시고, 저희가 열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탈초가 미진한 부분이 있어 원문 촬영을 요청하였고, 원문을 조심스럽게 일반해상도와 고해상도로 두 번 촬영했다. 촬영 작업은 아내와 함께했다. 기영회 사무실을 나와서 수안역사에 있는 〈임진왜란체험관〉에 들러 동래해자와 동래전기읍성 모형도를 보고 왔다. 〈2023년 4월 6일, 답사기〉
그 순간부터 부산의 활터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사료를 탐독하고, 고지도를 분석하며, 동래읍성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기록 속에서 사라진 활터의 흔적을 현재의 지형과 비교하며 하나씩 퍼즐을 맞춰 나갔다.
동래읍성 남문 터를 지나 동헌 방향으로 걷다 보니 정면에 동래시장이 마주한다. 옛날 객사 자리이다. 터가 평지보다 높다. 기록에 따르면 객사인 봉래관의 동쪽 학소대 인근에 활터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저기쯤이 아닐까? 〈2023년 5월 1일, 답사기〉
문헌을 통해 짐작한 활터의 위치를 직접 걸으며 확인하니, 예상했던 장소와 지형이 맞아떨어졌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에 서 있는 듯했다. 조선시대 무인들이 활을 쏘던 그 자리에서, 나는 과거의 흔적을 되새기며 과녁에 담긴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답사를 통해 부산 곳곳의 활터 유적지를 확인하면서, 활쏘기가 단순한 무예 수련이 아니라 군사훈련과 시험,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답사는 과거의 위치 정보를 현재지도에 이식하는 작업이다. 고지도의 정보와 현재의 지도에 동일한 정보를 특정하고 확인하는 일의 과정은 오직 답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은 걷고 보고 또 걸어야 한다. 동래읍성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왔다. 〈2023년 6월 23일, 답사기〉
시대에 따라 활쏘기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변화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군사 훈련과 무과 시험의 필수 요소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전통을 지키려는 공동체 문화로 기능했다. 광복 이후에는 현대 스포츠로 정착하면서도 전통 계승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지난 4년간 연구한 부산 활쏘기의 역사 중 특히 18세기 이후의 사정(射亭, 활터)을 중심으로 조사한 자료와 현장 답사 내용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18세기 이전의 활쏘기 문화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긴다. 이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김기훈 교수님, 이석희 명궁님, 윤백일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5년 2월 심곡재에서 이건호
목차
목차
■ 책을 펴내며 ㆍ 4
■ 추천의 글
군영에서 민간 활터까지, 부산 활쏘기의 재발견 ? 김기훈 ㆍ 7
활터와 역사 ? 정진명 ㆍ 11
■ 축하휘호 ? 윤백일 ㆍ 13
■ 풍속화 ㆍ 14
제1부 조선시대의 부산 활쏘기 _ 19
동래부순절도 22
동래읍성 읍승정 40
동래읍성 활터 48
동래읍성 우빈정 54
경상좌수영 어구정 60
부산진성 관덕정 69
경상좌수영 명후정 84
기장읍성 관덕정 92
다대진성 활터 107
금정산성 금정진 활터 117
경상좌수영 연무정 125
동래읍성 읍우정 134
관덕정수호절목 137
동래읍성 관덕정 145
동래읍성 녹양정 157
동래읍성 만년대 166
해은일록 속 활쏘기 175
경상좌수영 청곡정 181
가덕진성 활터 185
제2부 조선시대 부산의 무예시험-도시(都試) _ 187
일성록 191
경상감영계록 192
공문일록 198
동래부계록 200
제3부 일제강점기의 부산 활쏘기 _ 201
동래군/부산진활량 전조선궁술대회 204
동래 전조선궁술대회 205
부산진 매축지 전선궁술대회 207
동래온천장 전조선궁술대회 209
부산부 대신정 소화공원 전조선궁술대회 211
부산진궁술계 호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2
호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3
기장읍 차성정 남조선궁술대회 215
동래 해운대 춘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6
제4부 광복 이후의 부산 활쏘기 _ 219
구전기록 221
부산공설운동장 궁술대회 222
백호정 낙성기념 궁술대회 224
협회 창립과 활터의 생성, 폐정 226
제5부 오늘날의 부산 활쏘기 _ 232
구덕정(서구 대신동) 234
낙동정(사상구 삼락동) 236
수영정(수영구 광안동) 238
사직정(연제구 거제동) 242
■ 책을 마치며 ㆍ 244
■ 부록 ㆍ 249
■ 추천의 글
군영에서 민간 활터까지, 부산 활쏘기의 재발견 ? 김기훈 ㆍ 7
활터와 역사 ? 정진명 ㆍ 11
■ 축하휘호 ? 윤백일 ㆍ 13
■ 풍속화 ㆍ 14
제1부 조선시대의 부산 활쏘기 _ 19
동래부순절도 22
동래읍성 읍승정 40
동래읍성 활터 48
동래읍성 우빈정 54
경상좌수영 어구정 60
부산진성 관덕정 69
경상좌수영 명후정 84
기장읍성 관덕정 92
다대진성 활터 107
금정산성 금정진 활터 117
경상좌수영 연무정 125
동래읍성 읍우정 134
관덕정수호절목 137
동래읍성 관덕정 145
동래읍성 녹양정 157
동래읍성 만년대 166
해은일록 속 활쏘기 175
경상좌수영 청곡정 181
가덕진성 활터 185
제2부 조선시대 부산의 무예시험-도시(都試) _ 187
일성록 191
경상감영계록 192
공문일록 198
동래부계록 200
제3부 일제강점기의 부산 활쏘기 _ 201
동래군/부산진활량 전조선궁술대회 204
동래 전조선궁술대회 205
부산진 매축지 전선궁술대회 207
동래온천장 전조선궁술대회 209
부산부 대신정 소화공원 전조선궁술대회 211
부산진궁술계 호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2
호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3
기장읍 차성정 남조선궁술대회 215
동래 해운대 춘천정 전조선궁술대회 216
제4부 광복 이후의 부산 활쏘기 _ 219
구전기록 221
부산공설운동장 궁술대회 222
백호정 낙성기념 궁술대회 224
협회 창립과 활터의 생성, 폐정 226
제5부 오늘날의 부산 활쏘기 _ 232
구덕정(서구 대신동) 234
낙동정(사상구 삼락동) 236
수영정(수영구 광안동) 238
사직정(연제구 거제동) 242
■ 책을 마치며 ㆍ 244
■ 부록 ㆍ 249
저자
저자
이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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