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_LGBT(Q)(#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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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사회와 당신을 잇고 모으는 알마 해시태그 시리즈, 두 번째 키워드
장면 하나,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동성애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장면 둘, 동성애 청소년 간 키스 장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방송사에 경고 처분이 내려진다. 장면 셋,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의 회식 시간.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를 앞에 두고 혐오의 발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간다.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방송에 등장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소재로 농담을 이어가고, 주변에서 누군가 커밍아웃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밝힌 유명인이 SNS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곧잘 내기도 하는 시대다. 그러나 아직도 한편에서는, 심지어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폭력을 담은 언어가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소수(少數)’를 만드는 것은, 의식 속에서 소수를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내 옆에는 없는 무언가’로 규정짓는 다수일 테다. 그렇다면 이제 어둠의 시대를 지나 빛 속에서,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그림자 속에 숨어서 살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에 대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혐오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혐오_주의》로 시작을 알린 ‘알마 해시태그’ 시리즈. 두 번째로 선보이는 《#성소수자_LGBT(Q)》에서는 강병철, 백조연, 이주원, 오승재, 효록 스님 등 다섯 명의 저자가 각자의 전문 지식과 시각으로써 성소수자와 관련된 오늘날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 사회적 의미를 돌아본다.
장면 하나,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동성애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장면 둘, 동성애 청소년 간 키스 장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방송사에 경고 처분이 내려진다. 장면 셋,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의 회식 시간.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를 앞에 두고 혐오의 발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간다.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방송에 등장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소재로 농담을 이어가고, 주변에서 누군가 커밍아웃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밝힌 유명인이 SNS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곧잘 내기도 하는 시대다. 그러나 아직도 한편에서는, 심지어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폭력을 담은 언어가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소수(少數)’를 만드는 것은, 의식 속에서 소수를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내 옆에는 없는 무언가’로 규정짓는 다수일 테다. 그렇다면 이제 어둠의 시대를 지나 빛 속에서,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그림자 속에 숨어서 살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에 대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혐오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혐오_주의》로 시작을 알린 ‘알마 해시태그’ 시리즈. 두 번째로 선보이는 《#성소수자_LGBT(Q)》에서는 강병철, 백조연, 이주원, 오승재, 효록 스님 등 다섯 명의 저자가 각자의 전문 지식과 시각으로써 성소수자와 관련된 오늘날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 사회적 의미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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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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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알마 해시태그 시리즈는 사회를 잇고 모으는 연결 고리입니다. 소셜 키워드를 통해 사회 현상을 읽고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미래를 탐구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소수자'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
인간을 규정할 때 성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답하는 열쇠다.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질문이 실존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_강병철,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 중에서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목소리. 하나의 울림으로 모여 열린 시각을 만들어주다
먼저 강병철의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에서는 소아과 전문의면서 의학 서적을 집필하고 번역하기도 한 저자가 의학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풍부한 예를 들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가 성소수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수자나 약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약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희생을 강요받거나 핍박받는다면 성숙하지 못한 사회다. 소수자가 차별받는 사회에서 다수자는 곧 차별을 자행하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도덕적 타락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질문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학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밝혀내고 있으며,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백조연의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는 성소수자를 둘러싼 질문의 모순을 살펴보고 그것에 내재된 폭력을 고발한다. 저자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부분들에 대해 공유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성애 찬성, 반대'라는 간단한 질문이 사회적 의제처럼 공론화되어 통용되고 있다"면서 "동성애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가 자신에게 이 질문의 결정권을 주었는지, 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위치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애자들이 그동안 취해온 비겁한 행태를 스스로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 진솔한 고민으로 다가오는 이주연의 〈고독의_반대말〉을 통해서 독자는 성소수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고독의 속내를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대화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차라리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성공한 성소수자들을 보며 긍정적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의식과 제도가 충분히 결합되지 않는다면, 입과 눈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성소수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리고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직장 내 규정의 불합리를 꼬집으며 그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오승재의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는 '청소년보호법'이 과연 무엇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이것이 어떻게 청소년 성소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 글이다. 저자는 "'약속'만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가. 설령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온전하고 확실한 권리 실현이 보장된다고 확약할 수 있는가.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약속할 수 있는 '나중'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지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직접 탐구와 고민을 거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효록의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는 붓다 시대의 불교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탐구하고 종교, 특히 불교가 인권 문제에 있어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적 대상으로 여성과 남성 외에 양성과 빤다까를 그리고, 성적 교섭의 길로 성기 외에 항문이나 구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항문이나 구강을 성기에 비해 더 하열한 기관이라고 폄하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나란히 두고 있는 점이다"나 "만일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달성에 장애가 되는 그릇된 욕망의 대표적 상징인 성행위를 금기시한 것이지 특정한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동성애 행위만을 별도로 거론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불교 고서의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논지를 펴나간다.
이처럼 각각 다른 결과 깊이 그리고 울림을 가진 다섯 편의 글을 통해, 독자는 성소수자와 그들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시각을 보다 확장하는 것을 물론 이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을 새로이 마련하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 (백조연)
성소수자의 권리를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부분들―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의 개념들, 이를 중심으로 짜인 불평등한 구조, 이러한 구조에 놓인 성소수자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공유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성애 찬성, 반대'라는 간단한 질문이 사회적 의제처럼 공론화되어 통용되고 있다.
(…)
일반적인 사회적 의제들과 달리, '동성애 찬성, 반대'는 동성애를 포함/배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동성애'라는 세 글자의 의미, 나아가 동성애를 찬성/반대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어 있다. 동성애는 무엇을 의미하며, 왜 우리는 동성애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 (51~52쪽)
기존의 이성애 남성 중심적 인권 논의에 균열을 내고, 이를 해체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러한 목소리를 확장하는 것은 인권 논의 자체를 새롭게 틀 짓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구성되고 있는/구성하는 성소수자의 의미, 성소수자의 삶, 삶을 둘러싼 조건들, 조건들을 생산하는 권력의 문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고 있는 '동성애 찬성, 반대'는 성소수자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지워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체를 문제 삼는다. (54~55쪽)
동성애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가 자신에게 이 질문의 결정권을 주었는지, 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위치시킨다. (57~58쪽)
성소수자에 대한 정의(justice)의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과 존중의 문제로 대체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 및 변혁의 문제는 특정한 행동과 태도, 감정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60쪽)
그러나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더라도, 이성애적 존재가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얻어진 특별한 권리를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한, 질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거나 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며, 이는 차별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와 다를 바 없다. (64쪽)
그러나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찬성 또는 반대의 말로 돌아오는 것, 혹은 누군가의 당장의 생존이 "나중의" 문제로 미루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의사결정 규칙이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성소수자가 "동등한 수준에서 사회적 삶에 동료로 참여하는 것을 방해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고자 하는 변명일 뿐이다. (68~69쪽)
#고독의_반대말 (이주원)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TV나 영화에서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으로만 겪을 뿐 자기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하와 혐오, 편견과 차별의 언어를 쉽게 내뱉는다. 그렇게 무시와 부존재로 삭제당하는 성소수자로서의 내 삶은 일상적으로, 배제된다. (74쪽)
어느덧 15년 차 여성 노동자로서 몸이 노동을 기억하고 육신에 인이 박이는 동안, 체념과 차별 역시 몸의 일부처럼 하나가 되었다. "직장인"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로서 나는 여느 노동자들이 느끼는 밥벌이의 고통과 일터에서의 소외에 더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79쪽)
그러나 기혼의 이성 부부를 중심으로 한 보장이 커질수록 제자리이기만 한 성소수자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뒷걸음친다. 남들보다 못한 삶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외감을 벗어나기 어렵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체념하려 해도, 매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81쪽)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대화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차라리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성공한 성소수자들을 보며 긍정적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의식과 제도가 충분히 결합되지 않는다면, 입과 눈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성소수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86쪽)
아슬아슬한 삶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절망하기는 싫다. 나의 고독의 뿌리에는 결국 비성소수자들이 다수인 사회가 있지만, 내가 겪는 사회의 문제가 개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약한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묻기를 바란다. (92쪽)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줄곧 그랬듯이 여성이며 레즈비언으로, 그리고 평생을 평범한 노동자로 살 것이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노동이 이 사회에서 쉽게 보이지 않듯, 나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늘 존재한다. 나를 구성하는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그러하듯 성적 정체성이 슬픔의 이유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나를 증명하는 세상을 꿈꾼다. (93쪽)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 (오승재)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성소수자임을 숨기거나, 밝히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당장의 생존을 위한 호흡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고, 지속적으로 비성소수자임을 '연기'해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여기서의 '연기'란 단순히 표정과 몸짓을 활용한 '행위'가 아닌 삶의 양식 전체를 허구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 가깝다. (103쪽)
그들은 청소년의 대척점에 '동성애'를 세운 다음, '우리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순종적 존재를 등장시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우리 아이들'은 청소년을 미약한 존재로 대상화시키는 언어로, '때 묻지 않은' 절대선의 기준이다. 이와 반대로 '동성애'로 통칭되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섹슈얼리티는 '동성애'로 무성의하게 통칭되어 성서와 도덕, 윤리의 '심판' 과정을 거쳐, '항문성교' '에이즈 확산의 주범' 등과 같은 악의 모습으로 편집된 채 형상화된다. 이로써 '동성애'와 청소년은 철저하게 대립된 정체성으로 규정되며,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성격의 속성으로 굳어진다. (111~112쪽)
때문에 국가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차별적인 사회제도와 혐(嫌)동성애적 교육, 내부 구성원에 의한 집단 괴롭힘에 집중하기보다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위협적인 요소로 규정함으로써 당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제도가 인간의 본질적 권리를 훼손하고 있으므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존재가 제도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변화의 책임은 존재에게 있다"는 식의 본말이 전도된 강변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113~114쪽)
'약속'만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가. 설령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온전하고 확실한 권리 실현이 보장된다고 확약할 수 있는가.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약속할 수 있는 '나중'은 과연 무엇인가. (116쪽)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지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직접 탐구와 고민을 거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금지와 통제 중심의 청소년 보호주의적 제도 장치로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름의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다. 간곡히 바라건대, 국가가 하루빨리 청소년 성소수자를 둘러싸고 있는 실질적인 위협 요소를 파악하기 바란다. (119쪽)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 (효록)
만일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달성에 장애가 되는 그릇된 욕망의 대표적 상징인 성행위(동성애도 포함됨)를 금기시한 것이지 특정한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동성애 행위만을 별도로 거론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 (139쪽)
주석서를 보면 어떤 사람의 성은 임신의 순간에 결정되지만, 후에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 변환의 원인은 본질상 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담마빠다》의 주석서는 한 비구에게 성적으로 끌린 남성이 즉시 여성으로 변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난 후, 다시 남자로 돌아와 그 비구에게 용서를 구한 다음 계속 정진하여 아라한이 된다. (141쪽)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팔리어 율장에 의하면 승단 초기에는 동성애자, 성 변환자, 양성애자, 빤다까 등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출가하여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붓다의 결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들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없었다는 점이다. 초기 경전에 의하면 성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설법 장면이 보이지 않는데, 이 점도 이들에 대해 특별히 차별하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 결과적으로 불교의 태도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으로부터(동성애에 대한 박해는 옹호하지 않음) 용서, 그리고 일본에서처럼 적극적인 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153~154쪽)
불교의 인권을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 동물 존중과 온 존재에 대한 존중의 개념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는 한편,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 있어서는 '인권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것을 인권 내용으로 수용, 포용해가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는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인권의 발전적인 흐름 속에서 그들 및 가족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보다 큰 차원의 인권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155쪽)
알마 해시태그 시리즈는 사회를 잇고 모으는 연결 고리입니다. 소셜 키워드를 통해 사회 현상을 읽고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미래를 탐구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소수자'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
인간을 규정할 때 성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답하는 열쇠다.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질문이 실존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_강병철,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 중에서
다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목소리. 하나의 울림으로 모여 열린 시각을 만들어주다
먼저 강병철의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에서는 소아과 전문의면서 의학 서적을 집필하고 번역하기도 한 저자가 의학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풍부한 예를 들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가 성소수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수자나 약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약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희생을 강요받거나 핍박받는다면 성숙하지 못한 사회다. 소수자가 차별받는 사회에서 다수자는 곧 차별을 자행하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도덕적 타락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질문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학은 새로운 것을 계속 밝혀내고 있으며,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백조연의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는 성소수자를 둘러싼 질문의 모순을 살펴보고 그것에 내재된 폭력을 고발한다. 저자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부분들에 대해 공유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성애 찬성, 반대'라는 간단한 질문이 사회적 의제처럼 공론화되어 통용되고 있다"면서 "동성애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가 자신에게 이 질문의 결정권을 주었는지, 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위치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애자들이 그동안 취해온 비겁한 행태를 스스로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 진솔한 고민으로 다가오는 이주연의 〈고독의_반대말〉을 통해서 독자는 성소수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고독의 속내를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대화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차라리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성공한 성소수자들을 보며 긍정적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의식과 제도가 충분히 결합되지 않는다면, 입과 눈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성소수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리고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직장 내 규정의 불합리를 꼬집으며 그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오승재의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는 '청소년보호법'이 과연 무엇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이것이 어떻게 청소년 성소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 글이다. 저자는 "'약속'만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가. 설령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온전하고 확실한 권리 실현이 보장된다고 확약할 수 있는가.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약속할 수 있는 '나중'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지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직접 탐구와 고민을 거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효록의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는 붓다 시대의 불교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탐구하고 종교, 특히 불교가 인권 문제에 있어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적 대상으로 여성과 남성 외에 양성과 빤다까를 그리고, 성적 교섭의 길로 성기 외에 항문이나 구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항문이나 구강을 성기에 비해 더 하열한 기관이라고 폄하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나란히 두고 있는 점이다"나 "만일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달성에 장애가 되는 그릇된 욕망의 대표적 상징인 성행위를 금기시한 것이지 특정한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동성애 행위만을 별도로 거론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불교 고서의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논지를 펴나간다.
이처럼 각각 다른 결과 깊이 그리고 울림을 가진 다섯 편의 글을 통해, 독자는 성소수자와 그들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시각을 보다 확장하는 것을 물론 이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을 새로이 마련하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 (백조연)
성소수자의 권리를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부분들―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의 개념들, 이를 중심으로 짜인 불평등한 구조, 이러한 구조에 놓인 성소수자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공유된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성애 찬성, 반대'라는 간단한 질문이 사회적 의제처럼 공론화되어 통용되고 있다.
(…)
일반적인 사회적 의제들과 달리, '동성애 찬성, 반대'는 동성애를 포함/배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동성애'라는 세 글자의 의미, 나아가 동성애를 찬성/반대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어 있다. 동성애는 무엇을 의미하며, 왜 우리는 동성애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 (51~52쪽)
기존의 이성애 남성 중심적 인권 논의에 균열을 내고, 이를 해체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러한 목소리를 확장하는 것은 인권 논의 자체를 새롭게 틀 짓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구성되고 있는/구성하는 성소수자의 의미, 성소수자의 삶, 삶을 둘러싼 조건들, 조건들을 생산하는 권력의 문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고 있는 '동성애 찬성, 반대'는 성소수자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지워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체를 문제 삼는다. (54~55쪽)
동성애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가 자신에게 이 질문의 결정권을 주었는지, 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위치시킨다. (57~58쪽)
성소수자에 대한 정의(justice)의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과 존중의 문제로 대체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 및 변혁의 문제는 특정한 행동과 태도, 감정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60쪽)
그러나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더라도, 이성애적 존재가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얻어진 특별한 권리를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한, 질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거나 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며, 이는 차별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와 다를 바 없다. (64쪽)
그러나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찬성 또는 반대의 말로 돌아오는 것, 혹은 누군가의 당장의 생존이 "나중의" 문제로 미루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의사결정 규칙이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성소수자가 "동등한 수준에서 사회적 삶에 동료로 참여하는 것을 방해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고자 하는 변명일 뿐이다. (68~69쪽)
#고독의_반대말 (이주원)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TV나 영화에서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으로만 겪을 뿐 자기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하와 혐오, 편견과 차별의 언어를 쉽게 내뱉는다. 그렇게 무시와 부존재로 삭제당하는 성소수자로서의 내 삶은 일상적으로, 배제된다. (74쪽)
어느덧 15년 차 여성 노동자로서 몸이 노동을 기억하고 육신에 인이 박이는 동안, 체념과 차별 역시 몸의 일부처럼 하나가 되었다. "직장인"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로서 나는 여느 노동자들이 느끼는 밥벌이의 고통과 일터에서의 소외에 더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79쪽)
그러나 기혼의 이성 부부를 중심으로 한 보장이 커질수록 제자리이기만 한 성소수자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뒷걸음친다. 남들보다 못한 삶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외감을 벗어나기 어렵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체념하려 해도, 매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81쪽)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대화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차라리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성공한 성소수자들을 보며 긍정적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의식과 제도가 충분히 결합되지 않는다면, 입과 눈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성소수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86쪽)
아슬아슬한 삶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절망하기는 싫다. 나의 고독의 뿌리에는 결국 비성소수자들이 다수인 사회가 있지만, 내가 겪는 사회의 문제가 개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약한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묻기를 바란다. (92쪽)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줄곧 그랬듯이 여성이며 레즈비언으로, 그리고 평생을 평범한 노동자로 살 것이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노동이 이 사회에서 쉽게 보이지 않듯, 나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늘 존재한다. 나를 구성하는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그러하듯 성적 정체성이 슬픔의 이유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나를 증명하는 세상을 꿈꾼다. (93쪽)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 (오승재)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성소수자임을 숨기거나, 밝히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당장의 생존을 위한 호흡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고, 지속적으로 비성소수자임을 '연기'해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여기서의 '연기'란 단순히 표정과 몸짓을 활용한 '행위'가 아닌 삶의 양식 전체를 허구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 가깝다. (103쪽)
그들은 청소년의 대척점에 '동성애'를 세운 다음, '우리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순종적 존재를 등장시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우리 아이들'은 청소년을 미약한 존재로 대상화시키는 언어로, '때 묻지 않은' 절대선의 기준이다. 이와 반대로 '동성애'로 통칭되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섹슈얼리티는 '동성애'로 무성의하게 통칭되어 성서와 도덕, 윤리의 '심판' 과정을 거쳐, '항문성교' '에이즈 확산의 주범' 등과 같은 악의 모습으로 편집된 채 형상화된다. 이로써 '동성애'와 청소년은 철저하게 대립된 정체성으로 규정되며,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성격의 속성으로 굳어진다. (111~112쪽)
때문에 국가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차별적인 사회제도와 혐(嫌)동성애적 교육, 내부 구성원에 의한 집단 괴롭힘에 집중하기보다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위협적인 요소로 규정함으로써 당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제도가 인간의 본질적 권리를 훼손하고 있으므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존재가 제도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변화의 책임은 존재에게 있다"는 식의 본말이 전도된 강변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113~114쪽)
'약속'만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가. 설령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온전하고 확실한 권리 실현이 보장된다고 확약할 수 있는가.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약속할 수 있는 '나중'은 과연 무엇인가. (116쪽)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지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직접 탐구와 고민을 거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금지와 통제 중심의 청소년 보호주의적 제도 장치로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름의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다. 간곡히 바라건대, 국가가 하루빨리 청소년 성소수자를 둘러싸고 있는 실질적인 위협 요소를 파악하기 바란다. (119쪽)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 (효록)
만일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달성에 장애가 되는 그릇된 욕망의 대표적 상징인 성행위(동성애도 포함됨)를 금기시한 것이지 특정한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동성애 행위만을 별도로 거론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 (139쪽)
주석서를 보면 어떤 사람의 성은 임신의 순간에 결정되지만, 후에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 변환의 원인은 본질상 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담마빠다》의 주석서는 한 비구에게 성적으로 끌린 남성이 즉시 여성으로 변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난 후, 다시 남자로 돌아와 그 비구에게 용서를 구한 다음 계속 정진하여 아라한이 된다. (141쪽)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팔리어 율장에 의하면 승단 초기에는 동성애자, 성 변환자, 양성애자, 빤다까 등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출가하여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붓다의 결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들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없었다는 점이다. 초기 경전에 의하면 성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설법 장면이 보이지 않는데, 이 점도 이들에 대해 특별히 차별하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 결과적으로 불교의 태도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으로부터(동성애에 대한 박해는 옹호하지 않음) 용서, 그리고 일본에서처럼 적극적인 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153~154쪽)
불교의 인권을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 동물 존중과 온 존재에 대한 존중의 개념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는 한편,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 있어서는 '인권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것을 인권 내용으로 수용, 포용해가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는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인권의 발전적인 흐름 속에서 그들 및 가족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보다 큰 차원의 인권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155쪽)
목차
목차
#용어집 (강병철)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 (강병철)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 (백조연)
#고독의_반대말 (이주원)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 (오승재)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 (효록)
#성소수자에_대해_의학이_알고_있는_것들 (강병철)
#'동성애_찬성, 반대'에_관하여 (백조연)
#고독의_반대말 (이주원)
#국가는_청소년_성소수자를_보호하는가 (오승재)
#성소수자를_수용했던_붓다 (효록)
저자
저자
강병철
저자 강병철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이며, 문화 웹진 〈채널예스〉에 〈강병철의 육아의 정석〉을 연재 중이다. 공저로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은퇴이민 가이드》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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