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읽기
Regular price
$15.17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종말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읽어야 하는가?
해마다 10월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발표한다. 2024년에는 한강 작가가 호명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우리에겐 낯선 헝가리 작가의 이름이 불렸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이미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헝가리 작가로, 우리나라에서는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라는 영화로 접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는 7시간이 넘는 엄청난 러닝타임과 흑백으로 느리게 흐르는 영상, 암울한 정서까지, 작가가 각색한 대로 느리게 흐른다.
한림원에서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을 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사회주의와 헝가리 사회의 몰락을 겪으며, 그 아포칼립스의 정서를 인류와 지구의 멸망까지로 확대해가며 이야기한다.
그는 멸망을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기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마침표 없이 길게 흐르는 용암 같은 활자의 진창에서 결말은 끝없이 지연된다. 낯설고도 난해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한 줄기 희미한 희망을 느낀다. 종말은 계속 순환된다. 그 말인즉슨 종말 다음에 시작이 있다는 말이다. 멈춰 선 것만큼이나 느리게 흐르는 서사는 나름의 리듬과 호흡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간다. 그렇게 그들은 끝없이 종말을 겪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 독법이 필요한 이유
번역부터 상당한 난도를 지닌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은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마침표 없이 쉼표와 겹문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소설 속 장면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철저하고도 세세한 묘사, 유려한 문장과 불쑥 튀어나오는 블랙코미디까지, 호흡을 타면 끝까지 몰입하고 마는 매력이 있다.
쉼표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은 어디서 끊어 읽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벽돌책에 가까운 볼륨은 독자에게 진입장벽을 높인다. 서사는 “용암처럼 느리게 흐르”고, 사건은 앞으로 나아가나 싶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길을 찾았나 싶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파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길을 잃는다.
《사탄탱고》의 번역가이기도 한 조원규는 카프카와 니체의 허무주의 및 파멸의 서사와 헝가리의 붕괴라는 역사를 이어지는 좌표상에 놓는다. 그리고 세 가지 세계를 관통하는 감각으로 이명(耳鳴)을 꼽는다.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정성일은 영화와 소설을 겹쳐 읽는다. 소설은 너무 빠르고, 영화는 너무 늦게 나왔다고 언급한다. 탱고와 같이 여섯 스텝 앞서 무너지는 시간을 쓴 소설과 롱테이크의 미학으로 여섯 걸음 물러선 영화를 살펴본다. 소설은 끝없는 활자 속에서 순환하는 종말을 이야기할 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시간의 무게를 견딘다.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헝가리 사회주의와 서구 문명의 붕괴를 거쳐 우주적 파멸로 확장해가는 종말을 살펴본다. 종말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다. 희망은 위로라기보다는 기만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사탄탱고》의 이리미아시, 《저항의 멜랑콜리》의 거대한 고래를 거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은 끝까지 쥐고 갈 것인지 묻는다.
서평가 금정연은 교수와 천사라는 두 축으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세계를 나눈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교수(혹은 의사)와 희생당하는 에슈티케, 벌루시커라는 천사로 나뉘고 합쳐지는 소설의 서사를 살펴본다. 소설과 같이 흘러가는 인생은 없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한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경험임을 놀랍도록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한다.
한편 극작가이자 소설가 고영범은 《라스트 울프》를 연극적 관점에서 희곡을 읽듯이 살펴본다. 이야기가 겹치고 교차되면서 더 큰 이야기를 엮어내고, 결국 이야기는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이렇게 복잡하고도 유려한 글쓰기 방식이 액자 속 액자, 이야기 속 이야기를 더 명확히 그려낸다고 본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 다섯 편의 글은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독법을 소개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읽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따라가며,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사람과 분야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섯 편의 글은 너무도 다르지만, 결국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멈출 수 없이 종말을 향해 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읽어야 하는가?
해마다 10월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발표한다. 2024년에는 한강 작가가 호명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우리에겐 낯선 헝가리 작가의 이름이 불렸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이미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헝가리 작가로, 우리나라에서는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라는 영화로 접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는 7시간이 넘는 엄청난 러닝타임과 흑백으로 느리게 흐르는 영상, 암울한 정서까지, 작가가 각색한 대로 느리게 흐른다.
한림원에서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을 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사회주의와 헝가리 사회의 몰락을 겪으며, 그 아포칼립스의 정서를 인류와 지구의 멸망까지로 확대해가며 이야기한다.
그는 멸망을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기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마침표 없이 길게 흐르는 용암 같은 활자의 진창에서 결말은 끝없이 지연된다. 낯설고도 난해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한 줄기 희미한 희망을 느낀다. 종말은 계속 순환된다. 그 말인즉슨 종말 다음에 시작이 있다는 말이다. 멈춰 선 것만큼이나 느리게 흐르는 서사는 나름의 리듬과 호흡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간다. 그렇게 그들은 끝없이 종말을 겪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 독법이 필요한 이유
번역부터 상당한 난도를 지닌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은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마침표 없이 쉼표와 겹문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소설 속 장면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철저하고도 세세한 묘사, 유려한 문장과 불쑥 튀어나오는 블랙코미디까지, 호흡을 타면 끝까지 몰입하고 마는 매력이 있다.
쉼표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은 어디서 끊어 읽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벽돌책에 가까운 볼륨은 독자에게 진입장벽을 높인다. 서사는 “용암처럼 느리게 흐르”고, 사건은 앞으로 나아가나 싶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길을 찾았나 싶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파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길을 잃는다.
《사탄탱고》의 번역가이기도 한 조원규는 카프카와 니체의 허무주의 및 파멸의 서사와 헝가리의 붕괴라는 역사를 이어지는 좌표상에 놓는다. 그리고 세 가지 세계를 관통하는 감각으로 이명(耳鳴)을 꼽는다.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정성일은 영화와 소설을 겹쳐 읽는다. 소설은 너무 빠르고, 영화는 너무 늦게 나왔다고 언급한다. 탱고와 같이 여섯 스텝 앞서 무너지는 시간을 쓴 소설과 롱테이크의 미학으로 여섯 걸음 물러선 영화를 살펴본다. 소설은 끝없는 활자 속에서 순환하는 종말을 이야기할 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시간의 무게를 견딘다.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헝가리 사회주의와 서구 문명의 붕괴를 거쳐 우주적 파멸로 확장해가는 종말을 살펴본다. 종말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다. 희망은 위로라기보다는 기만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사탄탱고》의 이리미아시, 《저항의 멜랑콜리》의 거대한 고래를 거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은 끝까지 쥐고 갈 것인지 묻는다.
서평가 금정연은 교수와 천사라는 두 축으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세계를 나눈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교수(혹은 의사)와 희생당하는 에슈티케, 벌루시커라는 천사로 나뉘고 합쳐지는 소설의 서사를 살펴본다. 소설과 같이 흘러가는 인생은 없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한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경험임을 놀랍도록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한다.
한편 극작가이자 소설가 고영범은 《라스트 울프》를 연극적 관점에서 희곡을 읽듯이 살펴본다. 이야기가 겹치고 교차되면서 더 큰 이야기를 엮어내고, 결국 이야기는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이렇게 복잡하고도 유려한 글쓰기 방식이 액자 속 액자, 이야기 속 이야기를 더 명확히 그려낸다고 본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 다섯 편의 글은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독법을 소개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읽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따라가며,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사람과 분야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섯 편의 글은 너무도 다르지만, 결국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멈출 수 없이 종말을 향해 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 4
순환하는 종말 속에서_《사탄탱고》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덫 / 조원규 / 10
사탄과 함께 탱고를,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여섯 스텝 앞으로, 벨라 타르는 여섯 스텝 뒤로 / 정성일 / 34
이토록 망해버린 세계에서_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 세계 / 장은수 / 78
교수와 천사 / 금정연 / 112
고정된 회오리의 세계_마지막 늑대 / 고영범 / 134
순환하는 종말 속에서_《사탄탱고》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덫 / 조원규 / 10
사탄과 함께 탱고를,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여섯 스텝 앞으로, 벨라 타르는 여섯 스텝 뒤로 / 정성일 / 34
이토록 망해버린 세계에서_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 세계 / 장은수 / 78
교수와 천사 / 금정연 / 112
고정된 회오리의 세계_마지막 늑대 / 고영범 / 134
저자
저자
조원규
시인, 번역가.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아담, 아들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 여섯 권의 시집을 냈으며, 독립문예지 〈베개〉의 편집·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강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 안겔루스 질레 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페터 한트케의 《시 없는 삶》, 크러스너 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 등을 번역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