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 (표지 9종 중 랜덤 1종 발송)
정지돈 SF 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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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얼마나 단단한가
예측되는 미래와 갈라지는 세계들,
장르의 경계에서 태어난 정지돈의 SF ZINE
소설과 에세이, 비평을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온 작가 정지돈이 SF 세계관으로 쓴 작품들을 처음으로 한 권에 모았다.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2019년 전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위해 쓴 텍스트에서 출발해, 7년 만에 완성한 책이다. 알마출판사는 '단편 소설집'이라는 이름에 다 담기지 않는 이 책에 'SF Z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록작은 표제작을 비롯해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한낮의 악령〉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디터의 마지막 소설〉 〈가능한 최선의 세계〉까지 모두 여섯 편이다.
'개인계발지수'가 인간의 가치를 수치화하는 사회, 다른 차원의 존재가 일상의 전자기기를 점유한 세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흔들리는 일상, 출생 자체가 멈춘 지구, 한 인간의 뇌가 가상현실로 구현된 세계, 모든 미래가 예측되는 블루프린트와 예측할 수 없는 레드프린트.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서로 다른 설정과 형식을 취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공유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얼마나 단단한가?"
예측되는 미래와 갈라지는 세계들,
장르의 경계에서 태어난 정지돈의 SF ZINE
소설과 에세이, 비평을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온 작가 정지돈이 SF 세계관으로 쓴 작품들을 처음으로 한 권에 모았다.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2019년 전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위해 쓴 텍스트에서 출발해, 7년 만에 완성한 책이다. 알마출판사는 '단편 소설집'이라는 이름에 다 담기지 않는 이 책에 'SF Z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록작은 표제작을 비롯해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한낮의 악령〉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디터의 마지막 소설〉 〈가능한 최선의 세계〉까지 모두 여섯 편이다.
'개인계발지수'가 인간의 가치를 수치화하는 사회, 다른 차원의 존재가 일상의 전자기기를 점유한 세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흔들리는 일상, 출생 자체가 멈춘 지구, 한 인간의 뇌가 가상현실로 구현된 세계, 모든 미래가 예측되는 블루프린트와 예측할 수 없는 레드프린트.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서로 다른 설정과 형식을 취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공유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얼마나 단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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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학과 미술이 만난 전시에서 시작된 미래에 대한 소설
2019년에 열린 전시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정지돈과 시각예술 작가 10팀이 함께한 단체전이었다. 정지돈이 쓴 미래 또는 평행우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배치한 전시로, 시각예술과 문학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시도였다. 결과물은 전시와 글 묶음이라는 두 형태로 남아, 각각 완결성을 지니면서도 서로를 보완했다.
관람객은 색안경과 지시문을 받고 두 세계 중 하나를 골라 입장했다. 색안경을 통해 본 단서를 따라 전시장을 돌며 작가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재배치해 자기만의 '최선의 세계'를 완성했다.
정지돈은 이 전시를 위해 알고리즘이 미래를 예측하는 '블루프린트'와 규칙도 일관성도 없는 '레드프린트'로 나뉜 세계를 설정하고, 두 세계를 넘나드는 텍스트들을 써서 시각작품과 함께 읽도록 했다. 전시 직후 알마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이 기획됐지만, 작가는 서두르지 않았다.
"관심 가는 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며 (…) 천천히 썼다."
_〈작가의 말〉에서
그렇게 7년이 지난 2026년, 전시의 세계관과 그사이 발표한 단편들, 새로 쓴 표제작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가 한 권으로 엮였다.
왜 'SF 소설집'이 아니라 'SF ZINE'인가
이 책에는 단편소설, 시놉시스, 법령 조문 형식의 '기술 기준에 관한 규칙', 시나리오, 2608년에 쓴 것으로 설정된 서평, 독자가 직접 답할 수 있는 '프루스트 인터뷰' 설문지, 어둠 속 두 사람의 녹취 같은 대화록까지 제각각인 형식의 텍스트가 한데 모여 있다. 작가 스스로도 이 글들을 SF라고 부르기를 망설인다.
"장르는 정체성 같은 것이라서 다른 사람이 나를 '넌 땡땡땡이야'라고 규정하면 화가 나지만, 내가 '나는 땡땡땡이다!'라고 규정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 사실 SF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_〈작가의 말〉에서
'SF ZINE'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진zine은 정해진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벗어나 만드는 사람의 관심과 태도에 따라 자유롭게 엮는 출판물이다. 알마출판사는 이 책을 '소설집'이라는 형식에 가두는 대신 'ZINE'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텍스트의 변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는 이 이름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SF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글들이 함께하기에 적절한 이름인 것 같았다. SF지만 ZINE이니까 다소 번잡스러운 텍스트가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그어놓은 선 밖으로 조금씩 튀어나온 돌연변이들. 문학은 언제나 이런 돌연변이들이 출몰하는 구역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빗대는 것은 브루스 스털링이 이름 붙인 '슬립스트림'이다. 슬립스트림은 본래 물체 뒤편 유체의 힘이 물체를 흔들 만큼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 힘은 물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SF ZINE은 장르의 경계 뒤편에서 일어난 바로 그 힘에 붙인 이름이다.
정지돈은 2013년 등단 이후 사실과 허구, 인용과 창작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주목받아왔다. 스스로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라 부른 그의 글에서 실존 인물과 책, 영화, 건축은 자주 이야기의 재료가 됐다. 미래는 그 작업의 한 축이었다.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그가 그린 미래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책인 동시에 돌연변이다. 과학 기술을 다루지만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큼만" 다루고, 미래를 그리지만 치밀한 외삽법을 따르지 않는다. 작가는 유희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고 말한다. 소로킨과 스트루가츠키 형제처럼, 유희적인 형식 속에서 세계가 망각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문예지와 웹진, 전시장과 책을 오가며 쓴 글들은 정지돈 문학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테두리 밖으로 조금씩 튀어나온다.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라는 착각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서 온 말이다. 신이 창조할 수 있는 무수한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하나를 골라 실현한 것이 이 세상이며, 세상의 악과 불완전함도 더 큰 선을 위한 부분이라는 낙관론이다. 볼테르는 《캉디드》의 팡글로스를 통해 이 낙관론을 조롱했다. 정지돈의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한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팡글로스(…)로 밝혀졌다."그것은 신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승리다. 유전자 정보와 게임이론, 양자정보이론을 결합한 AI가 미래를 예측하고, 사람들은 이를 '블루프린트'라 부른다. 블루프린트의 세계에서도 불행과 빈곤, 억압과 정체성의 혼란이 이어지자 AI는 규칙과 인과가 매일 무너지는 반대편 세계 '레드프린트'를 설계한다. 스무 살이 되면 누구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지만, 한번 레드프린트로 떠나면 돌아올 수 없다. 여러 진술자와 형식으로 갈라진 두 세계의 이야기는 묻는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세계는 정말 최선인가? 여기에 네 편의 단편이 같은 질문을 각각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모든 것이 '개인계발지수'로 매겨진다. 하루아침에 상위 1%가 된 '너'는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 지수가 알고리즘의 오류이고, 정부가 이를 알고도 숨긴 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모른다. '너'를 관찰하는 임무를 맡은 통계사무관은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지 끝내 판단하지 못한다. 〈한낮의 악령〉에서는 지진 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사람들의 집에 나타나고, 일흔 살 낸시는 형광등을 갈아주며 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모든 태아가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세계를, 〈디터의 마지막 소설〉은 디터의 뇌와 아카이브를 토대로 만든 가상현실 '디터버스'에 들어가 유작을 찾는 소설가를 그린다.
모든 밈은 꿈이 된다, 혹은 현실이 되거나
표제작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작품이다. 제목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에서 빌려와 일부 고쳤다. 발터 벤야민과 로베르 데스노스의 문장 옆에 '인터넷 밈'의 한 줄이 나란히 제사로 놓인다. "모든 밈은 꿈이 된다. 혹은 현실이 되거나."
소설의 초반, AI가 만든 가짜 영상 하나가 등장한다. 가짜로 밝혀진 뒤에도 어떤 이들은 "현실을 잘 반영했기 때문에" 비판을 거두지 않는다. 주인공 자리는 1년 남짓 전 세상을 떠난 남편 반야를 다시 만나기 위해 자카르타로 간다. 연구 윤리 규정을 어겨 바젤의 연구소가 폐쇄된 뒤 불법 시술자가 된 무라카미 박사에게 '표적 꿈 배양' 시술을 받기 위해서다. 무라카미는 꿈을 통제하면 두 번째, 세 번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시술 뒤 자리는 꿈에서 반야를 만난다. 꿈속의 반야는 자리에게 왜 자신을 죽였냐고 묻는다. 현실이라 믿었던 장면에서는 낯선 기자가 찾아와 자리가 모르는 반야의 과거를 폭로한다. 반야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만날 때마다 달라지고, 독자는 어느 대목이 꿈이고 어느 대목이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이로 두 이야기가 끼어든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을 보게 만드는 착시 '카니자 삼각형'이다. 다른 하나는 브라질 군사정권 아래 실종된 남편을 꿈속에서 끝없이 되살려낸 게릴라 크리메이아 알리스의 이야기다. 뇌는 없는 것을 보고, 믿음은 세계를 고쳐 쓴다. 소설은 이렇게 묻는다. 가짜가 현실을 대신하고 감정이 사실을 이기는 시대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만으로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는 새로이 쓴 이 작품이 오히려 오래전에 쓴 소설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모든 소설은, 그것이 SF가 아니라도 미래를 예견한다. 그리고 미래는 우리의 과거다." - 〈작가의 말〉에서
아홉 개의 표지, 아홉 개의 갈라지는 세계를 만나다
이 책은 세 가지 색 종이와 세 가지 색 박(포일 스탬핑)을 조합해, 모두 아홉 가지의 표지를 만들었다. 책의 물성은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과 맞물려 있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의 레드프린트는 규칙이 무너질 때마다 우주가 갈라지는 다중우주다. 같은 텍스트가 아홉 개의 얼굴로 나뉘는 이 책도 하나의 작은 다중우주인 셈이다. 2019년 전시의 관람객이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골랐듯, 독자도 아홉 개의 가능한 세계 가운데 하나를 손에 들게 된다.
2019년에 열린 전시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정지돈과 시각예술 작가 10팀이 함께한 단체전이었다. 정지돈이 쓴 미래 또는 평행우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배치한 전시로, 시각예술과 문학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시도였다. 결과물은 전시와 글 묶음이라는 두 형태로 남아, 각각 완결성을 지니면서도 서로를 보완했다.
관람객은 색안경과 지시문을 받고 두 세계 중 하나를 골라 입장했다. 색안경을 통해 본 단서를 따라 전시장을 돌며 작가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재배치해 자기만의 '최선의 세계'를 완성했다.
정지돈은 이 전시를 위해 알고리즘이 미래를 예측하는 '블루프린트'와 규칙도 일관성도 없는 '레드프린트'로 나뉜 세계를 설정하고, 두 세계를 넘나드는 텍스트들을 써서 시각작품과 함께 읽도록 했다. 전시 직후 알마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이 기획됐지만, 작가는 서두르지 않았다.
"관심 가는 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며 (…) 천천히 썼다."
_〈작가의 말〉에서
그렇게 7년이 지난 2026년, 전시의 세계관과 그사이 발표한 단편들, 새로 쓴 표제작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가 한 권으로 엮였다.
왜 'SF 소설집'이 아니라 'SF ZINE'인가
이 책에는 단편소설, 시놉시스, 법령 조문 형식의 '기술 기준에 관한 규칙', 시나리오, 2608년에 쓴 것으로 설정된 서평, 독자가 직접 답할 수 있는 '프루스트 인터뷰' 설문지, 어둠 속 두 사람의 녹취 같은 대화록까지 제각각인 형식의 텍스트가 한데 모여 있다. 작가 스스로도 이 글들을 SF라고 부르기를 망설인다.
"장르는 정체성 같은 것이라서 다른 사람이 나를 '넌 땡땡땡이야'라고 규정하면 화가 나지만, 내가 '나는 땡땡땡이다!'라고 규정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 사실 SF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_〈작가의 말〉에서
'SF ZINE'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진zine은 정해진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벗어나 만드는 사람의 관심과 태도에 따라 자유롭게 엮는 출판물이다. 알마출판사는 이 책을 '소설집'이라는 형식에 가두는 대신 'ZINE'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텍스트의 변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는 이 이름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SF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글들이 함께하기에 적절한 이름인 것 같았다. SF지만 ZINE이니까 다소 번잡스러운 텍스트가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그어놓은 선 밖으로 조금씩 튀어나온 돌연변이들. 문학은 언제나 이런 돌연변이들이 출몰하는 구역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빗대는 것은 브루스 스털링이 이름 붙인 '슬립스트림'이다. 슬립스트림은 본래 물체 뒤편 유체의 힘이 물체를 흔들 만큼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 힘은 물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SF ZINE은 장르의 경계 뒤편에서 일어난 바로 그 힘에 붙인 이름이다.
정지돈은 2013년 등단 이후 사실과 허구, 인용과 창작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주목받아왔다. 스스로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라 부른 그의 글에서 실존 인물과 책, 영화, 건축은 자주 이야기의 재료가 됐다. 미래는 그 작업의 한 축이었다.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그가 그린 미래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책인 동시에 돌연변이다. 과학 기술을 다루지만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큼만" 다루고, 미래를 그리지만 치밀한 외삽법을 따르지 않는다. 작가는 유희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고 말한다. 소로킨과 스트루가츠키 형제처럼, 유희적인 형식 속에서 세계가 망각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문예지와 웹진, 전시장과 책을 오가며 쓴 글들은 정지돈 문학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테두리 밖으로 조금씩 튀어나온다.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라는 착각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서 온 말이다. 신이 창조할 수 있는 무수한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하나를 골라 실현한 것이 이 세상이며, 세상의 악과 불완전함도 더 큰 선을 위한 부분이라는 낙관론이다. 볼테르는 《캉디드》의 팡글로스를 통해 이 낙관론을 조롱했다. 정지돈의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한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팡글로스(…)로 밝혀졌다."그것은 신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승리다. 유전자 정보와 게임이론, 양자정보이론을 결합한 AI가 미래를 예측하고, 사람들은 이를 '블루프린트'라 부른다. 블루프린트의 세계에서도 불행과 빈곤, 억압과 정체성의 혼란이 이어지자 AI는 규칙과 인과가 매일 무너지는 반대편 세계 '레드프린트'를 설계한다. 스무 살이 되면 누구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지만, 한번 레드프린트로 떠나면 돌아올 수 없다. 여러 진술자와 형식으로 갈라진 두 세계의 이야기는 묻는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세계는 정말 최선인가? 여기에 네 편의 단편이 같은 질문을 각각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모든 것이 '개인계발지수'로 매겨진다. 하루아침에 상위 1%가 된 '너'는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 지수가 알고리즘의 오류이고, 정부가 이를 알고도 숨긴 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모른다. '너'를 관찰하는 임무를 맡은 통계사무관은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지 끝내 판단하지 못한다. 〈한낮의 악령〉에서는 지진 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사람들의 집에 나타나고, 일흔 살 낸시는 형광등을 갈아주며 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모든 태아가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세계를, 〈디터의 마지막 소설〉은 디터의 뇌와 아카이브를 토대로 만든 가상현실 '디터버스'에 들어가 유작을 찾는 소설가를 그린다.
모든 밈은 꿈이 된다, 혹은 현실이 되거나
표제작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작품이다. 제목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에서 빌려와 일부 고쳤다. 발터 벤야민과 로베르 데스노스의 문장 옆에 '인터넷 밈'의 한 줄이 나란히 제사로 놓인다. "모든 밈은 꿈이 된다. 혹은 현실이 되거나."
소설의 초반, AI가 만든 가짜 영상 하나가 등장한다. 가짜로 밝혀진 뒤에도 어떤 이들은 "현실을 잘 반영했기 때문에" 비판을 거두지 않는다. 주인공 자리는 1년 남짓 전 세상을 떠난 남편 반야를 다시 만나기 위해 자카르타로 간다. 연구 윤리 규정을 어겨 바젤의 연구소가 폐쇄된 뒤 불법 시술자가 된 무라카미 박사에게 '표적 꿈 배양' 시술을 받기 위해서다. 무라카미는 꿈을 통제하면 두 번째, 세 번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시술 뒤 자리는 꿈에서 반야를 만난다. 꿈속의 반야는 자리에게 왜 자신을 죽였냐고 묻는다. 현실이라 믿었던 장면에서는 낯선 기자가 찾아와 자리가 모르는 반야의 과거를 폭로한다. 반야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만날 때마다 달라지고, 독자는 어느 대목이 꿈이고 어느 대목이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이로 두 이야기가 끼어든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을 보게 만드는 착시 '카니자 삼각형'이다. 다른 하나는 브라질 군사정권 아래 실종된 남편을 꿈속에서 끝없이 되살려낸 게릴라 크리메이아 알리스의 이야기다. 뇌는 없는 것을 보고, 믿음은 세계를 고쳐 쓴다. 소설은 이렇게 묻는다. 가짜가 현실을 대신하고 감정이 사실을 이기는 시대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만으로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는 새로이 쓴 이 작품이 오히려 오래전에 쓴 소설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모든 소설은, 그것이 SF가 아니라도 미래를 예견한다. 그리고 미래는 우리의 과거다." - 〈작가의 말〉에서
아홉 개의 표지, 아홉 개의 갈라지는 세계를 만나다
이 책은 세 가지 색 종이와 세 가지 색 박(포일 스탬핑)을 조합해, 모두 아홉 가지의 표지를 만들었다. 책의 물성은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과 맞물려 있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의 레드프린트는 규칙이 무너질 때마다 우주가 갈라지는 다중우주다. 같은 텍스트가 아홉 개의 얼굴로 나뉘는 이 책도 하나의 작은 다중우주인 셈이다. 2019년 전시의 관람객이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골랐듯, 독자도 아홉 개의 가능한 세계 가운데 하나를 손에 들게 된다.
목차
목차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7
한낮의 악령 35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 69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97
디터의 마지막 소설 105
가능한 최선의 세계 117
작가의 말 221
한낮의 악령 35
눈을 뜨고 있다고 모두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 69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97
디터의 마지막 소설 105
가능한 최선의 세계 117
작가의 말 221
저자
저자
정지돈 소설, 에세이, 비평 등의 글을 쓴다.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스크롤!》 《스페이스 (논)픽션》 《인생 연구》 《임시 자율 구역》 등의 책을 냈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김용익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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