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골짜기
피어린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김성동의 아픈 집안 이야기 | 김성동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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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소설집 펴내…
일제강점기, 해방 공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피어린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작가의 아픈 집안 이야기들이 오롯이 담겨 있는 11편의 중단편 소설집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아픈 집안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집으로 펴냈다. 이 소설집에는 1979년에 발표된「엄마와 개구리」를 비롯하여 발표될 때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11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특히 연재하다 중단당한 「풍적(風笛)」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작가 마르케스류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지주가 9할을 그리고 소작농이 1할을 먹는 토지 문제를 비판하며 조선공산당 정강정책에 담긴 소작농 7 지주 3을 담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김성동의 가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극한적 이념 대립으로 풍비박산이 난 아픈 이야기를 모은 이 책은 일제강점기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봉한과 남편의 순수한 이상에 동조해 인민공화국 시절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을 했던 어머니에 관한 다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대전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작가의 아버지는 1950년 6월 골령골(대전)에서 학살당했고, 그 이후 그의 가족은 빨갱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참혹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만다라』로 기억되지만, 나는 『만다라』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문학관은 “내 소설은 사실상 문학성을 가미한 다큐다”라고 할 만큼 뚜렷하다. 특히 아버지의 행적을 그린 중편소설 「고추잠자리」, 인민공화국 시절 어머니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복원한 중편 「멧새 한 마리」에는 1951년에 국가보안법 등으로 기소되었던 어머니의 재판 기록 등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김성동 소설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읽기 어렵다는 이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풀솜할머니’, ‘꽃두레’라는 단어가 그 예이다. 풀솜처럼 따뜻한 사람이 ‘외할머니’이고, 꽃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처녀’이고 보면 고개가 자연 끄덕여진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작가들의 사명인데… 나라도 써야지… 나마저 안 쓰면 그 아름답던 우리말은 다 사라지고, 우리말이 사라지면 우리 역사도 사라지는 거야.”라는 작가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성동 작가는 서라벌고등학교 중퇴 후 입산하여 1975년 「주간종교」의 종교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당선됐으나, 이 작품이 불교계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있지도 않은 승적을 박탈당했다. 1979년 『만다라』가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토대로 한 인간의 본질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창작집 『피안의 새』(1981),『오막살이 집 한 채』(1982),『붉은 단추』(1987),『민들레꽃반지』(2019)를 펴냈으며, 장편소설 『풍적(風笛)』(미완, 1983),『집』(1989),『길』(1991),『꿈』(2001),『국수(國手)』(2018)를 썼다. 산문집으로는 『김성동 천자문』(2004),『한국 정치 아리랑』(2011),『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2014),『염불처럼 서러워서』(2014) 등이 있다. 1985년 신동엽문학상을 비롯하여 2016년에는 이태준문학상을, 2019년에는 요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일제강점기, 해방 공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피어린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작가의 아픈 집안 이야기들이 오롯이 담겨 있는 11편의 중단편 소설집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아픈 집안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집으로 펴냈다. 이 소설집에는 1979년에 발표된「엄마와 개구리」를 비롯하여 발표될 때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11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특히 연재하다 중단당한 「풍적(風笛)」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작가 마르케스류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지주가 9할을 그리고 소작농이 1할을 먹는 토지 문제를 비판하며 조선공산당 정강정책에 담긴 소작농 7 지주 3을 담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김성동의 가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극한적 이념 대립으로 풍비박산이 난 아픈 이야기를 모은 이 책은 일제강점기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봉한과 남편의 순수한 이상에 동조해 인민공화국 시절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을 했던 어머니에 관한 다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대전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작가의 아버지는 1950년 6월 골령골(대전)에서 학살당했고, 그 이후 그의 가족은 빨갱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참혹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만다라』로 기억되지만, 나는 『만다라』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문학관은 “내 소설은 사실상 문학성을 가미한 다큐다”라고 할 만큼 뚜렷하다. 특히 아버지의 행적을 그린 중편소설 「고추잠자리」, 인민공화국 시절 어머니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복원한 중편 「멧새 한 마리」에는 1951년에 국가보안법 등으로 기소되었던 어머니의 재판 기록 등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김성동 소설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읽기 어렵다는 이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풀솜할머니’, ‘꽃두레’라는 단어가 그 예이다. 풀솜처럼 따뜻한 사람이 ‘외할머니’이고, 꽃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처녀’이고 보면 고개가 자연 끄덕여진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작가들의 사명인데… 나라도 써야지… 나마저 안 쓰면 그 아름답던 우리말은 다 사라지고, 우리말이 사라지면 우리 역사도 사라지는 거야.”라는 작가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성동 작가는 서라벌고등학교 중퇴 후 입산하여 1975년 「주간종교」의 종교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당선됐으나, 이 작품이 불교계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있지도 않은 승적을 박탈당했다. 1979년 『만다라』가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토대로 한 인간의 본질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창작집 『피안의 새』(1981),『오막살이 집 한 채』(1982),『붉은 단추』(1987),『민들레꽃반지』(2019)를 펴냈으며, 장편소설 『풍적(風笛)』(미완, 1983),『집』(1989),『길』(1991),『꿈』(2001),『국수(國手)』(2018)를 썼다. 산문집으로는 『김성동 천자문』(2004),『한국 정치 아리랑』(2011),『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2014),『염불처럼 서러워서』(2014) 등이 있다. 1985년 신동엽문학상을 비롯하여 2016년에는 이태준문학상을, 2019년에는 요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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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김성동의 이번 소설집은 그의 가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극한적 이념 대립으로 풍비박산이 난 아픈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봉한과 남편의 순수한 이상에 동조해 남로당에 가입하고 인민공화국 시절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을 했던 어머니가 겪은 감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을 중심으로, 인민공화국 시절 애국자의 유가족으로 고향에서 토지분배위원장을 맡았던 조선 왕조 마지막 선비셨던 할아버지,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위원장을 했던 큰삼촌 그리고 고향에서 면장을 하다가 좌익에게 처형당한 외삼촌을 곁가지로, 전쟁의 광기로 친가와 외가가 함께 몰락해, 남은 가족이 평생을 찰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이야기들을 약간의 허구 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상적 사실주의'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연재하다 중단당한 「풍적(風笛)」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작가 마르케스 류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지주가 9할을 그리고 소작농이 1할을 먹는 토지 문제를 비판하며 조선공산당 정강정책에 담긴 소작농 7 지주 3을 담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총살당한 아버지의 영혼이 삼도천과 흑백강을 건너 가족과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러나 환상적 기법을 쓰고 있지만 작가의 아버지가 살았던 삶과 끝까지 지켰던 신념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김성동은 자신의 소설을 사실상 문학성을 가미한 다큐라고 부른다. 마치 마르케스가 "내 책에 쓰인 것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은 단 한 줄도 없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 김영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을 소설가로 만들어준 사람은 우습게도 대천경찰서 대공과 사찰계 형사였으니, 1958년 찔레꽃머리였습니다. 그때 열두 살 난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소생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옛살라비 떠나 한밭이라는 대처로 부자리를 옮겼던 것인데, 그만 집을 잃어버렸던 것이었지요. 이사한 날 도청 곁 법원청사 앞에 아그려쥐고 앉아 하염없이 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던 것이니,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다는 말인가?'
길을 잃고 한참을 가리산지리산 하다가 집으로 갔는데, 철 늦은 가죽잠바 걸치고 완강한 어깨에 눈매 사나운 그 사내는 할아버지 잡고 일장훈시를 하던 것이었습니다. "왜 여기로 이사를 왔느냐?"고 물이 못 나게 종주먹을 대다가 누가 찾아오는지 한 달에 한 차례씩 경찰서 대공과에 반드시 자진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지요. 아니면 불고지죄(不告知罪)로 잡아가겠다는 으름장이었습니다. 송진구멍 숭숭 뚫린 송판쪼가리로 두른 울 밖까지 배웅 나간 어린아이를 삵의 눈으로 돌아보며 씹어뱉던 그 한마디 말 이 평생 화두話頭가 되었으니, "붉은씨앗이로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면서 입천장에 적이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끌려가신 채 상기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두남재(斗南才)였다는 말씀이었지요. 일송삼백(日誦三百)이니, 하루에 3백 자를 외워 사흘 만에 책 한 권을 떼어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생봉(鳳生鳳)이요, 용생용(龍生龍)이라구 ?넌듸……. 호부(虎父)에 ?자(犬子) 날 리 ?다던 옛으른 말씀두 증녕 허언(虛言)이더란 말인가……."
봉황새는 봉황새를 낳고 용은 용을 낳게 마련이며, 범 같은 아비한테서 가히 같은 자식이 태어날 리 없다는 그 말씀이야 물론 원통하고 절통하게 땅보탬시킨 자식을 그리는 애잡짤한 마음이 녹아든 것이겠지만, 도둑처럼 8·15를 맞고 벼락처럼 6·25가 터지면서 생때같은 장차長次 두 자식을 생으로 잃은 그 늙은 유생(儒生)은 그렇게 허희탄식(??歎息)을 하며 빛바랜 창호지로 좀책을 매어주시던 것이었습니다. "문즉인(文則人)이라, 문즉인이요 문긔스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요 글씨는 곧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루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구 또 글씨를 쓸 수 있너니……." 할아버지 성음(聲音)은 가느다랗게 떨려 나오던 것이었습니다. "애통쿠나, 하날은 그 재조를 투긔허야 츤재넌 일? 데려가시구……. 무지렝이덜만 남어서 시상을 더구나 난세루 맨드넌고녀."
"삼절오장이여."
저저금 제 투쟁경력을 뽐내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이른바 문민정권이 들어서면서 '빵잽이'를 머리로 한 세상에서 말하는 바 '민주화인사'들이 모여 곡차일배(穀茶一杯) 하며 씩뚝깍뚝하던 '서울의 봄' 때 이 중생이 한 말이었으니 '삼절(三節)'은 나라의 안녕과 인민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침략자와 맞서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그렇게 쪼개져 버린 선원(仙源) 중시조(中始祖) 할아버지와, 경술국치 때 곡기 끊고 자진(自盡)으로 왜제에 앙버티신 증조할아버지와, 왜제 고빗사위와 해방 공간에서 항왜·항미투쟁을 벌이다 꽃잎처럼 떨어져 버리신 아버지를 말하고, 오장(五長)은 모두가 일매지게 평등하고 자유로와서 행복한 삶을 살자던 '백일천하 인민의 나라'에서 이지가지 위원장을 맡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삼촌과 그리고 진보문인 동아리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소설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이 중생을 말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새 세상을 그리워하며 '민들레꽃반지'를 닦던 제 어머니 열반
에 향을 사뤄주신 어른들께 엎드려 큰절 올리나이다.〉
어머니를 다비(茶毗) 저쑵던 불구덩이 속으로 반돈짜리 민들레꽃반지 던지며 불렀던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왕생극락하실 "어머니 아버지!"였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 삶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고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보다 더구나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움을 찾아가는 배고프고 외로운 오솔길이 문학인 듯합니다.
- 김영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을 소설가로 만들어준 사람은 우습게도 대천경찰서 대공과 사찰계 형사였으니, 1958년 찔레꽃머리였습니다. 그때 열두 살 난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소생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옛살라비 떠나 한밭이라는 대처로 부자리를 옮겼던 것인데, 그만 집을 잃어버렸던 것이었지요. 이사한 날 도청 곁 법원청사 앞에 아그려쥐고 앉아 하염없이 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던 것이니,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다는 말인가?'
길을 잃고 한참을 가리산지리산 하다가 집으로 갔는데, 철 늦은 가죽잠바 걸치고 완강한 어깨에 눈매 사나운 그 사내는 할아버지 잡고 일장훈시를 하던 것이었습니다. "왜 여기로 이사를 왔느냐?"고 물이 못 나게 종주먹을 대다가 누가 찾아오는지 한 달에 한 차례씩 경찰서 대공과에 반드시 자진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지요. 아니면 불고지죄(不告知罪)로 잡아가겠다는 으름장이었습니다. 송진구멍 숭숭 뚫린 송판쪼가리로 두른 울 밖까지 배웅 나간 어린아이를 삵의 눈으로 돌아보며 씹어뱉던 그 한마디 말 이 평생 화두話頭가 되었으니, "붉은씨앗이로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면서 입천장에 적이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끌려가신 채 상기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두남재(斗南才)였다는 말씀이었지요. 일송삼백(日誦三百)이니, 하루에 3백 자를 외워 사흘 만에 책 한 권을 떼어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생봉(鳳生鳳)이요, 용생용(龍生龍)이라구 ?넌듸……. 호부(虎父)에 ?자(犬子) 날 리 ?다던 옛으른 말씀두 증녕 허언(虛言)이더란 말인가……."
봉황새는 봉황새를 낳고 용은 용을 낳게 마련이며, 범 같은 아비한테서 가히 같은 자식이 태어날 리 없다는 그 말씀이야 물론 원통하고 절통하게 땅보탬시킨 자식을 그리는 애잡짤한 마음이 녹아든 것이겠지만, 도둑처럼 8·15를 맞고 벼락처럼 6·25가 터지면서 생때같은 장차長次 두 자식을 생으로 잃은 그 늙은 유생(儒生)은 그렇게 허희탄식(??歎息)을 하며 빛바랜 창호지로 좀책을 매어주시던 것이었습니다. "문즉인(文則人)이라, 문즉인이요 문긔스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요 글씨는 곧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루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구 또 글씨를 쓸 수 있너니……." 할아버지 성음(聲音)은 가느다랗게 떨려 나오던 것이었습니다. "애통쿠나, 하날은 그 재조를 투긔허야 츤재넌 일? 데려가시구……. 무지렝이덜만 남어서 시상을 더구나 난세루 맨드넌고녀."
"삼절오장이여."
저저금 제 투쟁경력을 뽐내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이른바 문민정권이 들어서면서 '빵잽이'를 머리로 한 세상에서 말하는 바 '민주화인사'들이 모여 곡차일배(穀茶一杯) 하며 씩뚝깍뚝하던 '서울의 봄' 때 이 중생이 한 말이었으니 '삼절(三節)'은 나라의 안녕과 인민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침략자와 맞서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그렇게 쪼개져 버린 선원(仙源) 중시조(中始祖) 할아버지와, 경술국치 때 곡기 끊고 자진(自盡)으로 왜제에 앙버티신 증조할아버지와, 왜제 고빗사위와 해방 공간에서 항왜·항미투쟁을 벌이다 꽃잎처럼 떨어져 버리신 아버지를 말하고, 오장(五長)은 모두가 일매지게 평등하고 자유로와서 행복한 삶을 살자던 '백일천하 인민의 나라'에서 이지가지 위원장을 맡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삼촌과 그리고 진보문인 동아리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소설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이 중생을 말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새 세상을 그리워하며 '민들레꽃반지'를 닦던 제 어머니 열반
에 향을 사뤄주신 어른들께 엎드려 큰절 올리나이다.〉
어머니를 다비(茶毗) 저쑵던 불구덩이 속으로 반돈짜리 민들레꽃반지 던지며 불렀던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왕생극락하실 "어머니 아버지!"였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 삶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고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보다 더구나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움을 찾아가는 배고프고 외로운 오솔길이 문학인 듯합니다.
목차
목차
작가의 말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습니다
엄마와 개구리
잔월(殘月)
오막살이 집 한 채
풍적(風笛)
눈 오는 밤
바람 부는 저녁
비 내리는 아침
그해 여름
민들레꽃반지
고추잠자리
멧새 한 마리
부록 인명 및 고유명사 풀이
작품 해설 핏빛 역사의 복원과 치유(김영호/문학평론가)
엄마와 개구리
잔월(殘月)
오막살이 집 한 채
풍적(風笛)
눈 오는 밤
바람 부는 저녁
비 내리는 아침
그해 여름
민들레꽃반지
고추잠자리
멧새 한 마리
부록 인명 및 고유명사 풀이
작품 해설 핏빛 역사의 복원과 치유(김영호/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김성동
1947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 한국전쟁 와중에 아버지와 단란한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글지 김성동은 성장기를 줄곧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상처 속에서 방황하다가 19세가 되던 1965년 입산(入山)을 결행하였다. 불문(佛門)의 사문(沙門)이 되어 12년간 정진하였으나 1976년 하산,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독서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작으로 구도(求道)에 목말라 방황하는 한 젊은 사문의 의식과 행적 을 그린 장편소설 『만다라』(1978) 출간 이후, 창작집 『피안의 새』(1981),『오막살이 집 한 채』(1982),『붉은 단추』(1987),『민들레꽃반지』(2019)를 펴냈으며, 장편소설 『풍적(風笛)』(미완, 1983),『집』(1989),『길』(1991),『꿈』(2001),『국수(國手)』(2018)를 썼다. 산문집으로 『김성동 천자문』(2004),『한국 정치 아리랑』(2011),『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2014),『염불처럼 서러워서』(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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