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양장본 Hardcover)
강성갑의 꿈과 실천, 새나라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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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갑 선생은 해방공간에 새로운 나라의 교육개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경남 진영에서 한얼중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 재정 등 설립요건이 미비했음에도 새로운 교육개혁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뜻’만을 가지고 학교설립 인가를 받은 강성갑 선생은 직접 흙벽돌을 만들어 교사(校舍)를 짓기 시작했다. 그의 실천을 목격한 학생들과 학부모, 진영교회 교인들, 진영 지역민들은 자발적으로 그의 동지(同志)가 되어 실천에 함께 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김동길, 이규호, 박형규, 정원식 등 당시의 많은 청년·학생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강성갑 선생의 실천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진영 지역을 넘어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새 나라’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나라여야 하며, 이러한 ‘새 나라’는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교육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의 ‘꿈’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성갑 선생의 꿈과 실천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8월 그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하는 것으로 스러져 버렸다. 강성갑 선생은 이념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던 해방공간에서 이념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었으나, 이념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희생당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1950년 10월 가해자인 경찰지서장을 처형한 고등군법회의와 1954년 5월 함태영 부통령 등이 참석한 추모 행사를 통해 그의 억울함은 분명히 입증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몰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강성갑 선생의 전기를 통해 강성갑 선생의 노력과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강성갑 선생의 꿈,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의 교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강성갑 선생의 꿈과 실천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8월 그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하는 것으로 스러져 버렸다. 강성갑 선생은 이념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던 해방공간에서 이념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었으나, 이념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희생당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1950년 10월 가해자인 경찰지서장을 처형한 고등군법회의와 1954년 5월 함태영 부통령 등이 참석한 추모 행사를 통해 그의 억울함은 분명히 입증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몰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강성갑 선생의 전기를 통해 강성갑 선생의 노력과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강성갑 선생의 꿈,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의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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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출간사
추천사
시작하는 글
1949년 늦가을, 서울대 사범대 교육실천강연회
박형규 목사, 청년 시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
김동길 교수, 오늘도 흠모하는 언제나 그리운 사람
원한경 박사, 연희(연세대)가 낳은 가장 훌륭한 졸업생
해방공간의 시대적 과제와 한국 교회의 사회운동
이 책의 구성 및 사용한 자료들
제1장 식민지 조선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01. 마산에서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다
마산창신학교에 입학하다
격렬한 동맹휴학을 목격하다
02. 마산상업학교에 진학하다
03. 독립마산예수교회 교인이 되다
평신도 중심의 민중교회가 설립되다
독립마산예수교회의 실천적·민중적 신앙
제2장 식민지 조선 농촌의 현실을 목격하다
01. 장유금융조합에 다니면서 농촌운동에 참여하다
02. 식민지 조선 농촌의 현실
03. 1930년대 기독교 농촌운동
기독교 농촌운동과 덴마크 그룬트비
농촌운동의 대안을 모색하다
제3장 민족운동의 실천을 준비하다
01. 평생의 동지 오중은과의 결혼
02. 금융조합을 사직하고 연희전문에 입학하다
연희전문의 기독교주의
민족정서를 살리기에 가장 알맞은 배움터
03. 억지입학으로 왜곡되어 알려진 연희전문 입학
04. 연희전문에서의 학창 생활
실력을 쌓고 실천을 준비하다
원한경·최현배의 가르침
윤동주·송몽규와 함께 협성교회를 다니다
기독학생청년회에 참여하다
05. '기독교인' 조선사람이 아닌' 조선'의 기독교인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연희전문
경제연구회 사건에 연루되다
창씨명(創氏名) 사용을 거부하다
제4장 참된 기독교인의 삶을 찾고자 떠난 일본 유학
01. 도시샤대학 신학과로 유학을 떠나다
도시샤대학 신학과의 분위기
도시샤대학에서의 학창 생활
02.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다
경남교구에서 목사안수를 받다
해방된 교회에서 일제의 잔재청산에 앞장서다
제5장 해방공간,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
01. 진영교회의 청빙(請聘)을 받다
진영에서 농촌운동을 해도 좋은가?
진영교회에서의 목회(牧會)
02. 농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교육활동을 시작하다
농촌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렬한 좌·우 대립
농촌운동에 전념하고자 부산대 교수를 그만 두다
공민학교를 설립하고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다
03. 교육개혁의 모델로 한얼중학교를 설립하다
정규 중학교 설립을 꿈꾸다
고등유민(高等遊民)을 만들고 있는 우리교육의 현실
애신(愛神)·애린(愛隣)·애토(愛土)의 교육관
새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학생 동지들
진영교회 교인들의 협력으로 학교 설립인가를 받다
진영 지역사회와 함께 직접 흙벽돌 교사(校舍)를 짓다
04.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다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
쟁이를 양성하는 노작교육(勞作敎育)
05. 실천의 삶으로 국민신앙의 가치를 증명하다
06. 경남 진영, 해방공간의 핫-플레이스(Hot Place)
흙벽돌 건축, 창조적인 자립의 사례
원한경과 최현배의 진영 방문
청년·학생들의 방문이 이어지다
07. 강성갑의 교육실천을 목격한 이들의 평가
허현, 그의 정신은 아마도 어디서 살고 있을 것
심진구, 위대한 교육실천가
조향록, 열렬한 실천가이면서 이상가(理想家)
제자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진정한 기독교인
제6장 스러지고 잊혀진 꿈, 새나라가 선다
01. 한국전쟁 중의 억울한 죽음과 특별한 장례식
02. 한국전쟁 중의 이례적인 고등군법회의
사건의 진상, 애국자 모략(謀略)살해
고등군법회의 개정(開廷)
고등군법회의 결심(結審)
고등군법회의 재판의 의미
억울한 사람을 살리는 계기가 된 강성갑의 죽음
03. 추모 동상 제막식
04. 그럼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자'라는 기억
강성갑의 꿈과 실천이 완전히 잊혀지다
민간인 학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아쉬운 사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손해배상 재판
나가는 글
주석
참고문헌
부록 1 설립취지서
부록 2 법인사업보고서
부록 3 국제신보 기사 원문
부록 4 추모동상 제막식 추모곡 악보
화보
추천사
시작하는 글
1949년 늦가을, 서울대 사범대 교육실천강연회
박형규 목사, 청년 시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
김동길 교수, 오늘도 흠모하는 언제나 그리운 사람
원한경 박사, 연희(연세대)가 낳은 가장 훌륭한 졸업생
해방공간의 시대적 과제와 한국 교회의 사회운동
이 책의 구성 및 사용한 자료들
제1장 식민지 조선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01. 마산에서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다
마산창신학교에 입학하다
격렬한 동맹휴학을 목격하다
02. 마산상업학교에 진학하다
03. 독립마산예수교회 교인이 되다
평신도 중심의 민중교회가 설립되다
독립마산예수교회의 실천적·민중적 신앙
제2장 식민지 조선 농촌의 현실을 목격하다
01. 장유금융조합에 다니면서 농촌운동에 참여하다
02. 식민지 조선 농촌의 현실
03. 1930년대 기독교 농촌운동
기독교 농촌운동과 덴마크 그룬트비
농촌운동의 대안을 모색하다
제3장 민족운동의 실천을 준비하다
01. 평생의 동지 오중은과의 결혼
02. 금융조합을 사직하고 연희전문에 입학하다
연희전문의 기독교주의
민족정서를 살리기에 가장 알맞은 배움터
03. 억지입학으로 왜곡되어 알려진 연희전문 입학
04. 연희전문에서의 학창 생활
실력을 쌓고 실천을 준비하다
원한경·최현배의 가르침
윤동주·송몽규와 함께 협성교회를 다니다
기독학생청년회에 참여하다
05. '기독교인' 조선사람이 아닌' 조선'의 기독교인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연희전문
경제연구회 사건에 연루되다
창씨명(創氏名) 사용을 거부하다
제4장 참된 기독교인의 삶을 찾고자 떠난 일본 유학
01. 도시샤대학 신학과로 유학을 떠나다
도시샤대학 신학과의 분위기
도시샤대학에서의 학창 생활
02.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다
경남교구에서 목사안수를 받다
해방된 교회에서 일제의 잔재청산에 앞장서다
제5장 해방공간,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
01. 진영교회의 청빙(請聘)을 받다
진영에서 농촌운동을 해도 좋은가?
진영교회에서의 목회(牧會)
02. 농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교육활동을 시작하다
농촌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렬한 좌·우 대립
농촌운동에 전념하고자 부산대 교수를 그만 두다
공민학교를 설립하고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다
03. 교육개혁의 모델로 한얼중학교를 설립하다
정규 중학교 설립을 꿈꾸다
고등유민(高等遊民)을 만들고 있는 우리교육의 현실
애신(愛神)·애린(愛隣)·애토(愛土)의 교육관
새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학생 동지들
진영교회 교인들의 협력으로 학교 설립인가를 받다
진영 지역사회와 함께 직접 흙벽돌 교사(校舍)를 짓다
04.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다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
쟁이를 양성하는 노작교육(勞作敎育)
05. 실천의 삶으로 국민신앙의 가치를 증명하다
06. 경남 진영, 해방공간의 핫-플레이스(Hot Place)
흙벽돌 건축, 창조적인 자립의 사례
원한경과 최현배의 진영 방문
청년·학생들의 방문이 이어지다
07. 강성갑의 교육실천을 목격한 이들의 평가
허현, 그의 정신은 아마도 어디서 살고 있을 것
심진구, 위대한 교육실천가
조향록, 열렬한 실천가이면서 이상가(理想家)
제자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진정한 기독교인
제6장 스러지고 잊혀진 꿈, 새나라가 선다
01. 한국전쟁 중의 억울한 죽음과 특별한 장례식
02. 한국전쟁 중의 이례적인 고등군법회의
사건의 진상, 애국자 모략(謀略)살해
고등군법회의 개정(開廷)
고등군법회의 결심(結審)
고등군법회의 재판의 의미
억울한 사람을 살리는 계기가 된 강성갑의 죽음
03. 추모 동상 제막식
04. 그럼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자'라는 기억
강성갑의 꿈과 실천이 완전히 잊혀지다
민간인 학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아쉬운 사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손해배상 재판
나가는 글
주석
참고문헌
부록 1 설립취지서
부록 2 법인사업보고서
부록 3 국제신보 기사 원문
부록 4 추모동상 제막식 추모곡 악보
화보
저자
저자
홍성표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강성갑 선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연세학풍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있다. 「기독교학교 학생들의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연희전문학교의 학생자치단체와 간행물」, 「송몽규의 민족의식 형성과 기독교」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윤동주에 대한 역사적 접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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