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문예바다 서정시선집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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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문예바다가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여섯 번째로 정복선 시인의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가 출간됐다.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한 정복선 시인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특유의 시적 감성으로 불교적 세계관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삶의 빛과 어둠,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마음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구도적 사유를 노래함으로써 시로 음악적 자서전을 쓰고 있다.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한 정복선 시인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특유의 시적 감성으로 불교적 세계관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삶의 빛과 어둠,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마음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구도적 사유를 노래함으로써 시로 음악적 자서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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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오늘 아침엔 문득 바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그만 이 지구를 떠나
어딘지 모르지만 본래 있었던 곳,
본래의 존재 혹은 물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저 어린 멧새의 깃털 하나이거나,
수만 광년 저쪽 '우리은하'의
궁수자리 나선팔에서 흩날리는 별빛이거나.
- 「시인의 말」
*
아픔도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아 아픔은 꽃이 되었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몇 십 년 걸려 돌아올 거리를
천만 리나 헤매어 다녔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숨 쉬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의 몸뚱어리와 날카로운 발톱
바람의 머리칼과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들키지 않게
둘러쓰는 바람의 망토까지도 샅샅이 뒤졌기에
바람, 하면 긴 숨을 토해 내는 것입니다
본 것은 안 본 것으로 되돌릴 수가 없지요
있던 것은 영원한 없음으로 보내 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토록 오래 아파야 했는지
왜 그토록 덧문 흔들어 댔는지
핏방울마다 피어난 꽃숭어리
그것이 그대가 쓴 혈서입니다
- 「바람이 쓴 글」
*
느닷없이 이 가을 아침에 마음속 악기 하나 있어
통주저음으로 울린다 해도
누가 있어 화답해 주겠는가
대종천 어디쯤에 수장되었다는 전설을 따라
대종을 찾고자 해도 쓰라릴 뿐인 화인火印의 깊이
너무 늦었다 그 종을 금생에 한 번만 더 울리고 싶은데,
흐르는 피에 방패가 떠내려갈 지경이었다는 김부식의 기록처럼
찢긴 상처마다 쏟아 낸 종소리의 파편을 주워서라도
복원하고 싶지만
종이 다시 돌아오겠는가
이 삶에 이사하여 당신들 참 고되게 견디었다
사라져도 무늬 없는 꽃잎과 꽃잎들 사이
무너진 층계참에 가랑잎이 말라붙어 간다
서리와 파도가 번갈아 위문 오는 부두의,
사랑 맺지 못한 어미의 가락으로
이 아침에 악기 하나 울린다 해도
세세토록 따라 울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
꿈속에는 온갖 집들이 있다 살아 본 적도 없고 상상 불가능한 집들이다
때론 철썩이는 파도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휑뎅그렁한 한옥, 겹겹층층 방 안에 정리되지 못한 짐들…… 가족이나 친지, 고인, 낯선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속, 매번 다른, 그렇게나 많은 나의 집들 속에 거주하고 있다니, 중첩된 삶의 두루마리에 찍힌 고대문자 같다
관사를 전전했던 유년의 집은 대체로 학교크기만 했고 지붕은 하늘만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갑자기 세계가 구체적인 마당이 되었다 어머닌 더 이상 아버지의 임지에 안 따라가셨고 적산가옥에서 시작된 허술한 무너진 층계의 나날들……과, 결혼 후, 서울, 내 집까지의 거리는 삐뚤거렸고 길었으나,
어딘가에는 장미원이 있었다…… 길 잃기와 길 찾기의 되풀이
다시 시골학교 같은 전원주택, 지붕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들이 새겨지고
나와 나무들과 별들은 닮아 가며,
언젠가는 전생과 후생의 모든 집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 「트라우마」
*
평생 1악장은 되지 못했다
말 앞세우기도 하고
등 뒤에 숨기도 하고
쪽동백 그늘 아래서 휘적휘적
젊은 낙서질이나 하는 동안
치맛자락을 끌고서 초원의 새벽안개로 가는
미망未忘, 그 달무리,
날아갈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박차고 날아갔다
아으 병풍 속 기러기들처럼
3악장이 시작되어도 남은 건 몸살바람뿐
- 「2악장」
*
젊은 절망의 책갈피에서 늙은 희망이 숨죽인다
떠남이 곧 지루한 순례인 사람과 머묾이 곧 이슬비인 사람이
찻잔에 발효시킨 새를 키우거나 붉디붉은 꽃잎의 돛을 띄우는 사이
들어오는 문은 하나, 나갈 문은 언제나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 「북카페, 북스피리언스」
*
이 바람과 이 햇살과, 이 대지의 어둠을
온몸으로 끌어안겠어,
이 목마름을 절룩거리며 건너가겠어,
더 이상 그대를 부르지도 찾지도 않고
더는 절벽을 깎아서 그대와 나의 틈새를 메우지도 않고,
평생을 기울여 짠 내 촘촘한 거미줄 한 채로
그대가 흘려보내는 마음의 강물에 그물을 쳐서
반짝이는 이슬에 그냥 젖겠어
그대 떠나간 마른 풀더미, 그 겨울까지 깊이깊이 저장하겠어,
단 일 년의 이 쓰디쓴 축복, 정주定住의 삶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어,
저기, 날아가는 기러기 떼 좀 봐
- 「마음여행, 일년초」
*
끝없이 이어진 지상의 능선을 따라서 천천히 날아오는 내내, 이 삶의 쓰고 시고 달고 따가운 맛을 달래어 가고 있다. 바람에 노란 은행잎처럼 뒹구는 신세의, 청춘의 겁 없던 화살들에서 문득 천둥벼락과 비바람과 꽃잎들을 추억해 내며, 저기, 과녁에서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고 떨고 있을, 단 한 개의 화살을 찾으려 지금 시간여행 중이다. 두렵지만, 지구를 다녀가는 한 존재/존재자로서의 신호를 깜빡이며,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스러져 가면서.
- 「서정을 향하다」 중에서
이제 그만 이 지구를 떠나
어딘지 모르지만 본래 있었던 곳,
본래의 존재 혹은 물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저 어린 멧새의 깃털 하나이거나,
수만 광년 저쪽 '우리은하'의
궁수자리 나선팔에서 흩날리는 별빛이거나.
- 「시인의 말」
*
아픔도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아 아픔은 꽃이 되었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몇 십 년 걸려 돌아올 거리를
천만 리나 헤매어 다녔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숨 쉬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의 몸뚱어리와 날카로운 발톱
바람의 머리칼과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들키지 않게
둘러쓰는 바람의 망토까지도 샅샅이 뒤졌기에
바람, 하면 긴 숨을 토해 내는 것입니다
본 것은 안 본 것으로 되돌릴 수가 없지요
있던 것은 영원한 없음으로 보내 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토록 오래 아파야 했는지
왜 그토록 덧문 흔들어 댔는지
핏방울마다 피어난 꽃숭어리
그것이 그대가 쓴 혈서입니다
- 「바람이 쓴 글」
*
느닷없이 이 가을 아침에 마음속 악기 하나 있어
통주저음으로 울린다 해도
누가 있어 화답해 주겠는가
대종천 어디쯤에 수장되었다는 전설을 따라
대종을 찾고자 해도 쓰라릴 뿐인 화인火印의 깊이
너무 늦었다 그 종을 금생에 한 번만 더 울리고 싶은데,
흐르는 피에 방패가 떠내려갈 지경이었다는 김부식의 기록처럼
찢긴 상처마다 쏟아 낸 종소리의 파편을 주워서라도
복원하고 싶지만
종이 다시 돌아오겠는가
이 삶에 이사하여 당신들 참 고되게 견디었다
사라져도 무늬 없는 꽃잎과 꽃잎들 사이
무너진 층계참에 가랑잎이 말라붙어 간다
서리와 파도가 번갈아 위문 오는 부두의,
사랑 맺지 못한 어미의 가락으로
이 아침에 악기 하나 울린다 해도
세세토록 따라 울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
꿈속에는 온갖 집들이 있다 살아 본 적도 없고 상상 불가능한 집들이다
때론 철썩이는 파도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휑뎅그렁한 한옥, 겹겹층층 방 안에 정리되지 못한 짐들…… 가족이나 친지, 고인, 낯선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속, 매번 다른, 그렇게나 많은 나의 집들 속에 거주하고 있다니, 중첩된 삶의 두루마리에 찍힌 고대문자 같다
관사를 전전했던 유년의 집은 대체로 학교크기만 했고 지붕은 하늘만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갑자기 세계가 구체적인 마당이 되었다 어머닌 더 이상 아버지의 임지에 안 따라가셨고 적산가옥에서 시작된 허술한 무너진 층계의 나날들……과, 결혼 후, 서울, 내 집까지의 거리는 삐뚤거렸고 길었으나,
어딘가에는 장미원이 있었다…… 길 잃기와 길 찾기의 되풀이
다시 시골학교 같은 전원주택, 지붕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들이 새겨지고
나와 나무들과 별들은 닮아 가며,
언젠가는 전생과 후생의 모든 집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 「트라우마」
*
평생 1악장은 되지 못했다
말 앞세우기도 하고
등 뒤에 숨기도 하고
쪽동백 그늘 아래서 휘적휘적
젊은 낙서질이나 하는 동안
치맛자락을 끌고서 초원의 새벽안개로 가는
미망未忘, 그 달무리,
날아갈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박차고 날아갔다
아으 병풍 속 기러기들처럼
3악장이 시작되어도 남은 건 몸살바람뿐
- 「2악장」
*
젊은 절망의 책갈피에서 늙은 희망이 숨죽인다
떠남이 곧 지루한 순례인 사람과 머묾이 곧 이슬비인 사람이
찻잔에 발효시킨 새를 키우거나 붉디붉은 꽃잎의 돛을 띄우는 사이
들어오는 문은 하나, 나갈 문은 언제나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 「북카페, 북스피리언스」
*
이 바람과 이 햇살과, 이 대지의 어둠을
온몸으로 끌어안겠어,
이 목마름을 절룩거리며 건너가겠어,
더 이상 그대를 부르지도 찾지도 않고
더는 절벽을 깎아서 그대와 나의 틈새를 메우지도 않고,
평생을 기울여 짠 내 촘촘한 거미줄 한 채로
그대가 흘려보내는 마음의 강물에 그물을 쳐서
반짝이는 이슬에 그냥 젖겠어
그대 떠나간 마른 풀더미, 그 겨울까지 깊이깊이 저장하겠어,
단 일 년의 이 쓰디쓴 축복, 정주定住의 삶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어,
저기, 날아가는 기러기 떼 좀 봐
- 「마음여행, 일년초」
*
끝없이 이어진 지상의 능선을 따라서 천천히 날아오는 내내, 이 삶의 쓰고 시고 달고 따가운 맛을 달래어 가고 있다. 바람에 노란 은행잎처럼 뒹구는 신세의, 청춘의 겁 없던 화살들에서 문득 천둥벼락과 비바람과 꽃잎들을 추억해 내며, 저기, 과녁에서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고 떨고 있을, 단 한 개의 화살을 찾으려 지금 시간여행 중이다. 두렵지만, 지구를 다녀가는 한 존재/존재자로서의 신호를 깜빡이며,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스러져 가면서.
- 「서정을 향하다」 중에서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렸다
구두화분 한 켤레
겨우살이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렸다
죽로차竹露茶
무공적無孔笛
코르시카 장인의 칼
백조자리 캠핑
향기를 품는 잔
마술사 K
여유당與猶堂 시편
1%, 원초적인
페사와르 시장의 찻집
제2부 바람이 쓴 글
운주사
바람이 쓴 글
타클라마칸
아무 곳이나 다 도원
우전차雨前茶, 어느 것 한 가진들
달팽이집을 지고
방초 따라 갔다가
일파만파一波萬波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달에게 묻다
노을강
북방긴수염고래가 시인에게
빛나는 선물
오래 묵힐수록
창호지窓戶紙 연가
나는 영화다
헤밍웨이
트라우마
존재, 주홍빛Vermilion
연기법緣起法
제3부 꽃잎 한 켜
2악장
북카페, 북스피리언스
붉은점모시나비·겨울잠
인디아, 내 마음의 릴리프 4
전주박물관에 가면
기린봉 1
덕진연못
히아신스 꽃컵
기일 아침
어버이날
어머니, 그곳
춘포역
꽃잎 한 켜, 하늬바람 한 줌
나도 고향이 되어 간다
도라지꽃
영천사 여영정餘影亭에 부침
한파주의보
범종 56점
가시연꽃도 가시를 거두고 싶다
질마재에는 신화가 산다
북
제4부 아다지오 칸타빌레
마음여행, 일년초
마음여행, 파도타기
마음여행, 황룡사 터
마음여행, 무너진 탑
마음여행, 만다라
감은사지 삼층석탑
연꽃나루지기
안단테 칸타빌레
뜨거운 피 다 식었다
가을비가悲歌 8
아다지오 칸타빌레
이데아
서정抒情을 향하다 ㆍ 젖은 날개를 햇살과 바람에 말리며 저 너머로
제1부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렸다
구두화분 한 켤레
겨우살이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렸다
죽로차竹露茶
무공적無孔笛
코르시카 장인의 칼
백조자리 캠핑
향기를 품는 잔
마술사 K
여유당與猶堂 시편
1%, 원초적인
페사와르 시장의 찻집
제2부 바람이 쓴 글
운주사
바람이 쓴 글
타클라마칸
아무 곳이나 다 도원
우전차雨前茶, 어느 것 한 가진들
달팽이집을 지고
방초 따라 갔다가
일파만파一波萬波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달에게 묻다
노을강
북방긴수염고래가 시인에게
빛나는 선물
오래 묵힐수록
창호지窓戶紙 연가
나는 영화다
헤밍웨이
트라우마
존재, 주홍빛Vermilion
연기법緣起法
제3부 꽃잎 한 켜
2악장
북카페, 북스피리언스
붉은점모시나비·겨울잠
인디아, 내 마음의 릴리프 4
전주박물관에 가면
기린봉 1
덕진연못
히아신스 꽃컵
기일 아침
어버이날
어머니, 그곳
춘포역
꽃잎 한 켜, 하늬바람 한 줌
나도 고향이 되어 간다
도라지꽃
영천사 여영정餘影亭에 부침
한파주의보
범종 56점
가시연꽃도 가시를 거두고 싶다
질마재에는 신화가 산다
북
제4부 아다지오 칸타빌레
마음여행, 일년초
마음여행, 파도타기
마음여행, 황룡사 터
마음여행, 무너진 탑
마음여행, 만다라
감은사지 삼층석탑
연꽃나루지기
안단테 칸타빌레
뜨거운 피 다 식었다
가을비가悲歌 8
아다지오 칸타빌레
이데아
서정抒情을 향하다 ㆍ 젖은 날개를 햇살과 바람에 말리며 저 너머로
저자
저자
정복선
- 1948년 전주 출생
- 전북대학교, 성신여대대학원 졸업
-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마음여행』 『여유당 시편』 등 7권
- 영한시선집 『Sand Relief』
- 평론집 『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
- 동인지 『현대향가』 제1-4집, 『유유』 제1집
- 한국시문학상, 한국꽃문학상 대상 등 수상
- 전북대학교, 성신여대대학원 졸업
-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마음여행』 『여유당 시편』 등 7권
- 영한시선집 『Sand Relief』
- 평론집 『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
- 동인지 『현대향가』 제1-4집, 『유유』 제1집
- 한국시문학상, 한국꽃문학상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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