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생겼다(문예바다 기획시선 4)
김상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지만 아프다 징징거리지 않고 세상사에 빗대어 영혼의 울림을 준다. 정원사 새가 평생 물어 나른 것은 유리 조각, 풍뎅이껍질 등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들일 뿐이지만 그것을 빈정거리지 않고 삶이라고 읽는다. 세상사를 초연히 관조하는, 그러나 날카로운 눈으로 직시하는 시인의 서정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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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봄날 돌담 너머
지나가는 휘파람소리
네가 모른다고 한들
그것이 그것 아니겠나
- 「시인의 말」
시가 어려운 것은 시인이 쓰는 것이 시이지만 시가 쓰일 때 동시에 세상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시인은 시를 쓰면서 세상의 "말과 뜻을 버린"(「사라진 책」)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는 세상을 지우면서 그 자리에 다시 여는 세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워진 세상에만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가 세상의 말과 뜻을 지우고 그 세상을 시로 다시 쓰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주 하찮은 일상도 눈부신 날로 뒤바뀔 수 있다. 가령 집 안에서 사용하는 열쇠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해 보자. 당혹스럽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시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시인에겐 "자물쇠 어둠 속"(「마하수리」)에 우리가 갇힌 순간이 된다. 더 이상 열 수 없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수리공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시인도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회청색 작업복"을 입은 수리공이 와서 "한쪽 다리를 끌고/굽은 소나무" 같은 자세를 취하고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열쇠가 수리되자 그 순간을 가리켜 시인은 "벌겋게 단 쇠와 새를 이어 붙이자 부러진 열쇠는 철새 되어 날아간다"고 썼다. 부러진 열쇠를 이어 붙였을 것이니 원래는 쇠와 쇠일 것이나 시인에겐 한쪽이 새가 되어 수리된 열쇠가 이제 철로 된 새, 다시 말하여 철새가 된다. 새라도 되어 날듯한 기분이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아마도 수리공을 부른 것이 새벽이었던 것 같다. 수리가 끝나고 새벽에 집을 나가 산책을 했던 그 아침을 시인은 이렇게 새겨 놓았다.
새벽 열쇠 구멍을 빠져나와
온몸에 솔꽃가루 뒤집어쓰고
목에 두른 흰 수건이 아침 햇살 날개처럼 돋아난다
- 김동원 평론가의 평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들」 중에서
시인은 책을 읽으면서도 끝없는 회의와 질문을 던진다. 숱한 말과 문자에 끄달리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문자 자체라 하더라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문자 이상의 절실한 세계는 없는가, 라고 묻는다. 무수한 문자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길은 문자를 초월한 지점. 오로지 문자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그는 어쩌면 선종의 불립문자나 교외별전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김상백 시인은 문자에 갇힌 자가 스스로 문자 밖으로 걸어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어떤 글자도 씌어지지 않은 문자 이전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 김희업 시인
"공은 선 밖으로 구르"(「마이볼」)듯이 의미의 선 밖으로 굴러 봐야 하고, "베이스를 거꾸로" 돌듯이 집으로 오기 위해 거꾸로 나가 봐야 한다는 쪽에서 상상력을 찾는 시인이 김상백이다. 이는 에어포켓 같은 그리움의 방을 알기 때문이다(「파란 방」). 따라서 시인은 머릿속에서 나온 말을 믿지 못해 혼자서 말놀이에 빠지거나(「양말 모자이크 바이러스」 「에어기타」 「디지털 사막」) 선禪의 언어에 몰두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을 속삭"(「쪽지 속에 가을」)인다. 하지만 선의 언어란 「환幻에서 환幻으로」 가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 생활 속 서정으로 돌아선다. 그런 점에서 김상백 시인의 순수서정은 이번 시집의 중심축이 아닌가 싶다. 「수채화」 「봄비」 「적설」 등 좋은 서정시가 많지만 그중 「장인어른은, 노경」 「예후」처럼 끈끈하게 다가오는 것도 놓칠 수 없다.
- 전기철 시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
네 평생 물어 나른 것
큐브 30
유리 조각
풍뎅이 껍질
녹슨 못
단추알
옷핀
조개껍데기
플라스틱 병뚜껑
철사줄
노랑풍선
빨간 열매의 사랑
파란색 빨대처럼
빨래집게 그리고
깨진 시간
그 그릇에
깃털 꽂은
- 「정원사 새」 전문
좀만 한 마음이
태산만 한 글자들을 갉아먹고
꾸벅거리며 존다
한 권의 정원을 거닐며
삼천대천세계는 드넓고도 크구나
나프탈렌 냄새 펄펄 나는
화장실 같은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집게손가락만 한 행과 불행이 닥쳐와
짓눌러 죽인다 해도
오늘도 좀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행간을 건넌다
좀이 버린 뗏목이 글의 홍수에 떠내려가자
말과 뜻을 버린 좀은 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활자만 무수한 세상
오래된 책도 없고 묵은 생각도 없이
쓰레기 같은 책들이 양장도 없이 날뛰는 세상
좀이 슬어 삭은 책
좀은 없고
책마저 사라져 버렸다
- 「사라진 책」 전문
수천 마리 떼까마귀가 전깃줄에 앉았다
세상이 정전되었다
촛불을 켜고 기도했지만
수술대 위로 오염된 눈이 내렸다
모빌에 부는 바람처럼 죽음이 다가서도
수인手印은 풀지 않았다
한 알의 시간조차 모두 빠져나간 모래시계
심장 한가운데 오로라를 품고
나머지 겨울은 흑주黑晝*로 보냈다
*겨울 석 달간 계속되는 밤의 아침
- 「예후豫後-김점용 시인을 기리며」
여인은 제 머리카락을 쥐뜯으며 울부짖고 있다 해가 뜨지도 않은 한낮 언덕에 모인 군중들 사이 외침은 죽창처럼 치고 나와 옆구리를 허벅지를 찌른다 붉은 피 검푸른 피 하얀 피 온통 뒤섞여 성난 얼굴과 팔뚝에 모자에 바지로 축제처럼 튀어 오른다 전부 다 제정신이 아니다 먼지와 함성 그리고 광기 열기 취기로 하늘을 뒤덮는다 권력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순했던 사람들이 돌변했다 정치보다는 정치적인 것이 종교보다는 종교적인 것들이 십자가를 세웠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저 용서하시라고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들은 나는 거기서도 하늘의 음성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날아드는 주먹만 한 돌 같은 조롱과 비웃음마저도 천국은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것들만 훔쳐 나르려는지 대문이 달려 있진 않았지만 그를 따라 버릇처럼 경계가 없는 곳을 경계가 있는 듯 살금살금 제 버릇을 허물처럼 벗어던지며 뒤따라 들었다
- 「제 버릇」 전문
알고 보니 대웅전 기둥
무슨 연유로 대문까지 왔는지
젊은 주지가 단청을 새로 한다며
오래된 문짝을 걷어 담벼락에 기대 놓았다
오지 암자에 무슨 돈이 있겠나, 끝에
문짝을 다탁茶卓으로 이름 바꾸려 했더니
그 문짝 대웅전 기둥일 때
수많은 큰스님 법문 들은 그 세월만 하여도
주지스님 법력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을 겁니다
이제 남은 세월 아무 할 일 없이 저렇게
담벼락에 기대어 놓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 「따뜻한 구원救援」 전문
가시가 꽃이 될 때
틀린 문장처럼
서 있는 선인장
투터치가 원터치만 되는
터치와 터치
간격이 사막이다
시간이 모래처럼 흐르고
돌처럼 굳어 가는
신경계의 신 경계
스킨이 어색한
스킨십
클릭과 클릭 사이
사막을 건너던 배는
얼음에 갇힌 낙엽처럼
늙음을 가둬 놓고
사라진 지문으로
두드리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아이콘
- 「디지털 사막」 전문
목차
목차
제 1 부 평생 물어 나른 것
정원사 새
교향곡 제5번 C단조
꿈밖으로
새 그리고 겨울
수채화
봄비
장인어른은, 노경老境
어쨌거나
소나기
아버지의 집터에서
싸구려 술을 먹고
변검
제 2 부 말과 뜻을 버린
사라진 책
젠 페인팅zen painting
지금 독서 중입니다
쪽지 속에 가을
마하수리
터
예후豫後
제 버릇
맹인들
누구나 한번쯤은
따뜻한 구원救援
피에타
요나의 하루
와불臥佛
그렇게
앞니에 털이 난
제 3 부 얼음의 심장을 품어 본 적 있니
적설
풍등
블라디보스톡 4
동해모텔
몽돌해변에서
난파선 위에 쌓이는
스케치
해변의 여인아
환幻에서 환幻으로
삶의 방식
제 4 부 에어 포켓
포스트잇
긴 질문 짧은 대답 그리고 침묵
파란 방
마이 볼
양말 모자이크 바이러스
디지털 사막
선곡
미래가 AI라고
에어 기타
글의 외투
불면不眠
지난 하늘을
비건vegan … 96
평설 ㆍ 김동원 |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들 … 98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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