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야 & 주야 세트(전2권)
다이앤 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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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세트
가장 내밀한 것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을 별견하는
지금 한국문학에 도착한 낯설고 우아한 시선
가장 내밀한 것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을 별견하는
지금 한국문학에 도착한 낯설고 우아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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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1권, 로야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로야』가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2005년 제정되어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스타일』(백영옥),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저스티스맨』(도선우) 등 화제작을 배출해온 세계문학상이 올해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응모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200여 편의 응모작 중 으뜸으로 뽑힌 대상의 주인공은 밴쿠버에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다이앤 리(한국 이름 이봉주)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20대 후반 캐나다로 이주하여 스무 해 가까이 살고 있는 그는 생애 처음 써낸 소설 『로야』로 세계문학상 최초의 해외 거주 한인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감춰온 자신의 근원적인 상처를 들여다보며 삶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문장과 심리적 현실을 재현하는 긴장감 있는 서사가 언어예술로서의 소설을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라 평하며 그의 수상이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를 기대"했다. 모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한 '경계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로야』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을 아주 낯설게 만들어버리고, 생소한 삶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심사위원 방현석)으로 발휘된다. 한국문학의 저변 확대는 이처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읽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터이다.
'로야'는 소설 속 화자의 딸 이름으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촉발한 과거의 기억,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의 대면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나'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사고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관계임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깨닫는다.
중년에 접어든 '나'와 남편은 각자의 고국을 떠나온 지 스무 해가 넘었으며 이들의 나고 자란 가족은 모두 고국에 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후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아 왔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닥에 떨어지자 위로받지 못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아직도 질기게 연결된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경험한다. 교통사고가 '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한 동시에 의식적으로 지워온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나'의 회복은 이 아이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온 힘을 써왔다. 아프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안 했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고 자신이 자라는 방식이었다. 폭력 가해자였던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나'의 원 가족 삶 속에 있고, 엄마는 죽은 아빠를 거듭 끄집어내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는 폭력 피해자인 엄마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에 있을 때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퍼붓는 엄마를 보며 지금껏 믿어왔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딸과 엄마, 말하지 못하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
1부와 2부로 나뉘어 1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화자의 회복 과정을 따라가며 그 내적, 외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린다. "엉덩이 밑에서 등 중간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것 같은" 선명하고 날카로운 최초의 통증 이후, 발작 기침과 앞가슴뼈 통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기까지 '나'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숱한 감정의 격랑을 경험한다. 이때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은 '나'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고 '나'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면, 원 가족인 엄마 아빠는 신체적 질환 속에서 더 생생히 떠오르는 상처의 근원지다, 특히 엄마는 현재 시점에서 화자가 정서적, 감정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다.
소설은 서사의 상당 부분을 화자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엄마와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은 엄마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소설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하는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는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나'로서는 원망도 미움도 떠나보내고 "잘 다듬어진 이해와 치밀하게 얽힌 감사"만을 느끼는 데 반해 엄마는 여전히 '나'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침입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고국에서 혼자된 엄마는 더욱 가련한 모양새로 죽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을 챙기려 든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엄마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말하지 못하는 자'이고 엄마는 늘 '듣지 못하는 자'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는 자주 실망과 염증을 낳고 지친 마음은 자발적 후퇴에서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막힌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보내는 듯싶다가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보낸 미련을 다시 주워 담는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곁에 끈질기게 존재한다.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위험 속에서도 가족은 진화한다
화자가 성인이 되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이상적이라 할 만큼 완벽하고 조화롭다. 부부는 애정과 신뢰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고 아이는 그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다. 그린벨트로 보호받는 숲과 강을 지척에 둔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 똘똘 뭉쳐 있으며, 다정하고 예의 바른 이웃은 누구도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자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의 가족이 전쟁터였다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낙원이라 불릴 법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낙원'을 지키고 어떠한 위험도 자신들의 울타리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현실은 가까이에서 위험이 닥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딸 로야와 같은 수영 클럽에 디니던 중학생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들이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총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겪은 교통사고 역시 가족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위험에 대한 화자의 불안과 강박은 아이 손을 놓치고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딸아이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사고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자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죽음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남편의 고국 이란에서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한결같이 진중하고 확고하던 남편이 흔들린다. 남편 역시 '나'처럼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권리는 없고 책임만 떠안으며 살아왔지만 '나'와는 달리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가 응어리로 남지는 않았다. 그런 남편마저 부친의 죽음으로 나약한 상태에 빠진다.
소설에는 여러 형태의 죽음이 등장한다. 현재의 죽음과 과거의 죽음이 있고, 어린 죽음과 나이 든 죽음이 있다. 가깝든 멀든 죽음은 무언가를 남긴다. 어떤 죽음은 좋은 것만을 유산으로 남기고 어떤 죽음은 훗날 '나'를 찾아와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죽음은 삶에 깃들고 삶은 이어진다.
쇼스타코비치, 말러, 차이콥스키: 음악이 주는 카타르시스
『로야』에는 고전음악과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화자의 가족은 음악 애호가로 주말마다 음악회를 찾는데, 음악은 가족을 결속하면서 '나'의 삶에 드리운 고통과 죽음과 불화를 감싸고 폭발시키고 해방시킨다. 사고 후 처음 찾은 음악회에서 들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는 '나'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안함과 무서움을 지나 우울과 슬픔에" 다다랐다가 "여러 껍질이 벗겨져서 한결 가벼워진 느낌으로 부유하게" 한다. 시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고인을 모셔 와 눈물과 미소로 지난 삶을 축하하는 의식이 된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을 들을 때는 "환희의 축포"인 듯 "절망의 폭격"인 듯 쏟아지는 대포알 소리가 '나'의 부모와 겹쳐지며 가슴을 내려치는데, 엄마와 '나'는 같은 곡에 다른 의미로 숨이 멎는다. 작가의 음악적 소양이 서사에 녹아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로야』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집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다.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탐구하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다. 화자의 강박은 오랫동안 숨기고 감추어온 것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아프다'고 말함으로써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작가의 쓰는 행위와 연결된다. 다이앤 리는 자신이 그대로 투영된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한다. "오래된 질문이자 모든 작가의 출발점이다."(심사위원 김별아) 그리고 이야기는 여전히 열려 있고 진행 중이다.
작가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가장 협소하고 내밀한 부분은 시공간을 초월해 유사하다. 가장 협소한 곳에 가족이 있고 가장 내밀한 곳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로야』는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 2권, 주야
내가 엄마를 지우면 엄마도 날 지운 거야.
지운다고 진짜 지워지겠냐마는,
그래도 안녕. 이쯤에서 안녕.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밴쿠버에 거주하는 한국계 이민 작가 다이앤 리가 새 장편소설 『주야』를 펴냈다. 『주야』는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로야』를 잇는 작품으로 시간상으로는 『로야』 이후의 이야기지만, 집필 의도로는 『로야』를 품은 이야기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응시하며 삶을 회복해가는 『로야』의 이야기는 『주야』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심화ㆍ확장되어 더욱 확연하고 능동적인 결말에 이른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엄마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시어머니가 가족 구성원으로 합류하는 새로운 현실에서 주인공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관습적인 가족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거쳐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에 대한 옹호로 나아간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또 다른 방향의 연결과 삶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 『로야』가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는 이 작품이 전체의 한 부분임을 밝힌바, 그로부터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주야』는 작가가 최초에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전모를 보여준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작가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헌정하듯 두 작품의 챕터가 모두 합해 서른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점도 인상 깊다.
엄마가 나를 끊었다. 나는 끊겼다.
『로야』에서 중년의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 화자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며 폭력 가정에서 자란 성장기와 부모와의 어긋난 관계를 거듭 떠올린다. 성인이 되어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왔지만 한국에 있는 원 가족은 여전히 화자의 삶 속에 밀착해 있다. 특히 엄마는 현재 화자를 가장 힘겹게 하는 존재다. 폭력의 가해자인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는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며 화자의 삶에 부당하게 침입한다. 끝없이 딸을 원망하며 자기 권리만을 내세우는 엄마에게 염증을 느낀 화자는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지만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감성적인 메시지에 끝내 미련을 놓지 못하고 그 속에 갇힌다. 이렇게 유지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주야』에서 또 다른 양상으로 변화한다.
『주야』의 이야기는 화자와 엄마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생일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는 '나'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 하고 자신이 뱀에 물린 사실을 알리며, 딸이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추석날, 엄마의 안부를 묻는 '나'에게 엄마는 또다시 감정을 쏟아낸다. "전화 한 통 하는 게 그래 힘드나!!!" "엄마 혼자 있는 게 안 불쌍하나! 엄마 혼자잖아!! 혼자!!!"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불쌍히 여기는 엄마를 더는 견딜 수 없어 '나'는 마음속에서 울리던 말을 내뱉고 만다. "혼자가 뭐 어때서. 혼자 있는 게 대수야?" "사람은 누구나 혼자야." 그러자 엄마는 "끊어! 끊어!! 끊어!!!"를 외치고 전화를 끊는다. 엄마와 연결된 가느다란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이후 '나'는 엄마에게 긴 글을 보낸다. 자신이 자란 가족이 얼마나 처참한 모습이었는지, 당시 엄마 아빠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혔는지 진실을 알리는 글이었다. '나'는 엄마가 과거의 참혹한 진실을 수용하고 문을 열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끝내 침묵하고 어떠한 연락도 해오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끊었고, '나'는 자발적 고아가 되었다.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주야』에서 또 하나의 중심 사건은 마마준(시어머니)의 방문이다. 화자가 '엄마의 상실'로 슬픔에 빠져 있는 와중에 이란의 시어머니가 캐나다에 와 화자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일찍 부모를 떠나 살아온 남편에게 어머니와 함께하는 생활은 "낯선 이와의 동거"였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허물을 보는 계기가 된다. 남편은 아버지의 폭력을 겪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어머니가 자신의 수고를 너무나 당연하게 취급하고 마치 빚을 돌려받는 사람처럼 뭐든 받으려고만 해서 뻔뻔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반항기 소년처럼 감정을 터뜨리던 남편은 어머니가 이란으로 돌아간 후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동거를 '사고'였다고 표현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인 줄 알았는데 꼭 일어나야만 했던 사고였고, 그 덕에 어머니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됐다고.
'나' 역시 엄마의 사랑을 확인했다고 믿는 순간에 엄마의 진짜 모습을 보고 만다. 시어머니와 생활하면서 종종 엄마를 생각하곤 하던 '나'는 자신을 부당하게 내팽개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한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낼 양으로 그동안 엄마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있는 대화창을 보다가 "늘 사랑하는 너에게" 보낸 엄마의 "감꽃 목걸이 선물"을 발견한다. 몇 달 전 화자가 엄마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려 마음먹었을 때 그 마음을 돌이키게 해준 바로 그 선물이다. '나'는 이미 사랑을 주고 있는 엄마를 못 믿고 못 보고 못되게 군 자신을 한탄하며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려 하는데, 바로 그때 반전이 일어난다. 감꽃 목걸이는 오직 한 명뿐인 딸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이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 받고 주목 받기 위해 엄마가 사용한 도구일 뿐이었다. 엄마의 진심은 여전히 엄마 자신의 삶만 중요했다는 사실을 직시한 '나'는 이윽고 자신을 끊은 엄마를 지우고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끊겼지만 연결된 경험
자신을 끊은 엄마를 지워버리기까지 '나'는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이곳과 저곳을 오가며 끊임없이 엄마와 아빠를 만난다. 그 한편에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 로야가 있고, 그들을 방문한 마마준과 세상을 떠난 바바준(시아버지)도 그 속에 함께한다. 『주야』에서는 이들 각 인물의 성격과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주고받는 영향 관계가 더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드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정하여 나눌 수 없게 한다. 남편이 어머니와의 동거를 사고로 받아들였듯이, '나' 역시 부모를 만난 것을 사고라고 본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사고의 성격을 띠며, 사건처럼 분명한 가해자가 있지 않고 연루된 모든 이들이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 '나'의 가족이 고속도로에서 겪은 교통사고처럼 예상할 수도 없고 고의성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로 입은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상처는 없기에. 그러니 일부러 숨기지 않고 필요시에 얘깃거리로 취급하는 것이 치유고, 다친 데가 새살로 다시(re) 덮이는(cover) 것이 회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엄마와의 단절이 화자에게 형벌이 아닌 위로가 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연결됐어야 할 지점에 드디어 연결됐기 때문에 느끼는 평화로움이다. "나 자신이 무지(nescience)했던 건 불가지(不可知)해서였고, 무지를 깨달은 덕분에 공동의(con-) 지각(science), 즉 양심(conscience)에 닿을 수 있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끊겼지만 연결된 현상을 경험했다."는 화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한결 가벼워진 상태다. 『로야』의 '갇힌' 결말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자유롭고 능동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빈틈없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장기는 『주야』에서도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소설에서는 기성 제도와 관습, 개인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와 집단의 규범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작가는 전통적인 혈연관계의 본질과 그것이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화자가 시청하는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화자를 비롯한 현대의 가족이 직면한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외부의 힘 때문이 아니라 내부에서 파멸해가는 소프라노 가족과 조직의 이야기를 화자는 "부수기 위해 지은 것, 끝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 평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어 일방적인 역할을 강요하는 가족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주야』는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상하고 일그러진 과거와 그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불안과 불균형을 뛰어넘어 자유롭고 능동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로야』가 매력적인 이유는 화자가 미치도록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데 있다. 여성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은 모든 여성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소설가 강영숙)라는 추천의 말은 『주야』를 향해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책속으로 이어서]
엄마는 피상적인 것만을 보고 서둘러 판단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 눈에는 방패 잃은 가엾은 미망인이나 배은망덕한 자식을 둔 불쌍한 엄마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방패를 흉기로 삼고 취약함을 무기로 사용하는 폭군이었다. 내가 기어코 말해야 했던 순간의 엄마는 누가 봐도 취약한 상태였는데, 이는 바로 엄마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가진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온 습관이 오랫동안 몸에 배서 엄마가 나에게 한 행동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꼿꼿이 펴거나 머리를 똑바로 드는 것이야말로 불쌍한 엄마에게 대항하는 폭력이었다. (15쪽)
컥컥 소리 내야 할 정도로 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내 앞에 커스틴이 있어서 울음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 몸 안의 고통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커스틴은 나와 함께 울어 주었다. 어린 나를 위해 누군가가 울어 준 적 없어서,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다 큰 내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이렇게 누구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울어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지금껏 나는 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울음을 자제하거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나올 때도 멈추라고 강요받거나, 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도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제대로 울지 못했다. 그게 새삼스레 서러워서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시며 울었다. 작고 어둡고 따뜻한 방은 울기에 완벽했다. (52쪽)
모든 걸 파악했지만, 내가 파악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진실을 외면한 것처럼 나 또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실은 거기 있었다. 엄마는 너를 끊었다, 너는 끊겼다. 진실의 목소리와 표정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해서 그것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을 편집할 줄 알아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엄마의 진실이 차라리 부러웠다. 나의 진실은 타협을 몰랐다. 진실을 덮지 않고 확 까발린 바람에 난 내팽개쳐졌고, 끊기게 됐다. 진실을 밝힌 대가였다. 하나 남은 부모를 잃게 됐다. 스스로 고아가 됐다. 자진해서 비극을 탄생시켰다. (122쪽)
"어머니랑 같이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싫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남편은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통속 드라마라면 나와 남편의 대사가 바뀌었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집을 떠난 지 거의 삼십 년이 돼 가. 각자 생활한 지 삼십 년째라고. 부모님이랑 함께 살 때도 난 집에 붙어 있지 않았어. 내가 왜 이란을 떠났는데? 여기서 정착하느라 온갖 고생을 할 때도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내가 여기에 온 건 거길 떠나기 위해서 였지 거기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게 아니었다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랑 그렇게 오래 있겠다는 거야? 삼 개월도 너무 긴데 육 개월이라니. 이해가 안 돼." (173~174쪽)
내팽개쳐지고 끊겼어도 무의식은 날 지키고 있었다. 이제 준비됐으니 똑똑히 보라고, 똑똑히 본 후에 행동하라고, 이곳은 나쁘고 싫은 것을 담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언제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담아 두는 저장고라고 나의 무의식은 알려 준다. 슬픔은 겸양이 아니라 비겁함이고, 분노는 비이성이 아니라 확실한 이성임을,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대에서 깨닫는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분노와, 관용이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슬픔은 얼마나 진실하지 못했던가. 슬픔 아래 눌러 놓았던 것이 분노라니. 헉, 숨이 막혔다. 또다시 고통이 보내는 신호였다. (213쪽)
엄마가 내 전화번호를 외워 둘 리 없고 내 주소를 기억할 리 없으니까, 내가 엄마를 지우면 엄마도 날 지운 거야. 지운다고 진짜 지워졌겠냐마는, 떠나보낸다고 진짜 떠났겠냐마는, 그래도 안녕. 이쯤에서 안녕.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부모 자식 사이도 일종의 관계라는 걸 나보다 먼저 알고 있던 엄마, 엄마가 간 길을 나도 갈게. 하지만, 엄마처럼 중단해도 나는 대체하지 않을 거야. 세상엔 대체할 수 없는 게 있고, 그게 바로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니까. 엄마, 여기선 헤어져도 다음 생에선 내 딸로 태어나 줘. 내 딸로 태어나서 내 사랑을 받아 줘. (283쪽)
나 또한 남편과 비슷했다. 사춘기 시절, 치기를 핑계 대며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철든 아이는 어른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것에 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한다. 자기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한심하다고 여기고, 어른스러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제 와서 보니 한심하고 딱한 건 남편이나 나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줄 알았는데, 우린 경험했어야 할 성장 단계를 자의와 타의로 건너뛰었을 뿐이다. 그때 못 큰 걸 인제 와서 따라잡으려니 호르몬 덕도 못 보고, 호르몬 탓도 못 해서 실로 힘들다. (291쪽)
남편의 어머니나 나의 엄마가 생각하는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역할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역할에 따른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당위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 자신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평가 또한 쓸데없다.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소명과도 같아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가족을 만들어야 하고,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역할을 맡으면 지위가 부여되고, 지위가 부여되면 권리가 주어진다. 특히 양육하던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기가 오면 부모의 권리는 더욱더 확고해진다. 어떤 방식으로 양육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양육의 의무는 부양의 의무를 위한 초석 작업이다. 어떤 면에선 부양을 위해서 양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출생은 집단을 위함이고, 자식의 안녕은 부모를 위함이요, 자손의 존립은 조상을 위함이다. (295~296쪽)
나는 『주야』와 『로야』를 작품 밖에서도 의도적으로 짝지었고,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구경꾼, 부모/자식, 엄마/아빠, 사건/사고, 가해자/피해자, 단절/연결, 길 잃기/길 찾기, 이편/저편, 오른쪽/왼쪽, 다수/소수, 집단/개인, 관습/본성, 과거/현재, 현실/꿈, 가짜/진짜, 불균형/균형, 표면/심층, 전쟁/평화, 죽음/삶, 어둠/빛, 의식/무의식 등을 고의로 짝지었다. 대칭적 구조의 문장들도 일부러 많이 썼다. 통상적 의미에서 반대 개념인 위의 단어들은 대조하여 읽을 수도 있고, 한데 버무려 읽을 수도 있으며, 교차로 읽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분법적 사고를 적용할 수도 있고, 와해할 수도 있으며, 이 사이에서 왕래할 수도 있다. 적용했다면 불편했을 것이고, 와해했다면 집중했을 것이며, 왕래했다면 긴장되거나 아팠을 것이다. 당신은, 불편해도 참았을 것이다. (328쪽, 작가의 말)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로야』가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2005년 제정되어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스타일』(백영옥),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저스티스맨』(도선우) 등 화제작을 배출해온 세계문학상이 올해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응모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200여 편의 응모작 중 으뜸으로 뽑힌 대상의 주인공은 밴쿠버에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다이앤 리(한국 이름 이봉주)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20대 후반 캐나다로 이주하여 스무 해 가까이 살고 있는 그는 생애 처음 써낸 소설 『로야』로 세계문학상 최초의 해외 거주 한인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감춰온 자신의 근원적인 상처를 들여다보며 삶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문장과 심리적 현실을 재현하는 긴장감 있는 서사가 언어예술로서의 소설을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라 평하며 그의 수상이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를 기대"했다. 모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한 '경계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로야』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을 아주 낯설게 만들어버리고, 생소한 삶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심사위원 방현석)으로 발휘된다. 한국문학의 저변 확대는 이처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읽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터이다.
'로야'는 소설 속 화자의 딸 이름으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촉발한 과거의 기억,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의 대면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나'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사고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관계임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깨닫는다.
중년에 접어든 '나'와 남편은 각자의 고국을 떠나온 지 스무 해가 넘었으며 이들의 나고 자란 가족은 모두 고국에 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후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아 왔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닥에 떨어지자 위로받지 못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아직도 질기게 연결된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경험한다. 교통사고가 '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한 동시에 의식적으로 지워온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나'의 회복은 이 아이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온 힘을 써왔다. 아프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안 했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고 자신이 자라는 방식이었다. 폭력 가해자였던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나'의 원 가족 삶 속에 있고, 엄마는 죽은 아빠를 거듭 끄집어내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는 폭력 피해자인 엄마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에 있을 때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퍼붓는 엄마를 보며 지금껏 믿어왔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딸과 엄마, 말하지 못하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
1부와 2부로 나뉘어 1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화자의 회복 과정을 따라가며 그 내적, 외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린다. "엉덩이 밑에서 등 중간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것 같은" 선명하고 날카로운 최초의 통증 이후, 발작 기침과 앞가슴뼈 통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기까지 '나'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숱한 감정의 격랑을 경험한다. 이때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은 '나'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고 '나'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면, 원 가족인 엄마 아빠는 신체적 질환 속에서 더 생생히 떠오르는 상처의 근원지다, 특히 엄마는 현재 시점에서 화자가 정서적, 감정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다.
소설은 서사의 상당 부분을 화자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엄마와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은 엄마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소설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하는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는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나'로서는 원망도 미움도 떠나보내고 "잘 다듬어진 이해와 치밀하게 얽힌 감사"만을 느끼는 데 반해 엄마는 여전히 '나'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침입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고국에서 혼자된 엄마는 더욱 가련한 모양새로 죽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을 챙기려 든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엄마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말하지 못하는 자'이고 엄마는 늘 '듣지 못하는 자'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는 자주 실망과 염증을 낳고 지친 마음은 자발적 후퇴에서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막힌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보내는 듯싶다가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보낸 미련을 다시 주워 담는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곁에 끈질기게 존재한다.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위험 속에서도 가족은 진화한다
화자가 성인이 되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이상적이라 할 만큼 완벽하고 조화롭다. 부부는 애정과 신뢰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고 아이는 그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다. 그린벨트로 보호받는 숲과 강을 지척에 둔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 똘똘 뭉쳐 있으며, 다정하고 예의 바른 이웃은 누구도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자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의 가족이 전쟁터였다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낙원이라 불릴 법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낙원'을 지키고 어떠한 위험도 자신들의 울타리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현실은 가까이에서 위험이 닥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딸 로야와 같은 수영 클럽에 디니던 중학생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들이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총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겪은 교통사고 역시 가족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위험에 대한 화자의 불안과 강박은 아이 손을 놓치고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딸아이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사고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자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죽음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남편의 고국 이란에서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한결같이 진중하고 확고하던 남편이 흔들린다. 남편 역시 '나'처럼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권리는 없고 책임만 떠안으며 살아왔지만 '나'와는 달리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가 응어리로 남지는 않았다. 그런 남편마저 부친의 죽음으로 나약한 상태에 빠진다.
소설에는 여러 형태의 죽음이 등장한다. 현재의 죽음과 과거의 죽음이 있고, 어린 죽음과 나이 든 죽음이 있다. 가깝든 멀든 죽음은 무언가를 남긴다. 어떤 죽음은 좋은 것만을 유산으로 남기고 어떤 죽음은 훗날 '나'를 찾아와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죽음은 삶에 깃들고 삶은 이어진다.
쇼스타코비치, 말러, 차이콥스키: 음악이 주는 카타르시스
『로야』에는 고전음악과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화자의 가족은 음악 애호가로 주말마다 음악회를 찾는데, 음악은 가족을 결속하면서 '나'의 삶에 드리운 고통과 죽음과 불화를 감싸고 폭발시키고 해방시킨다. 사고 후 처음 찾은 음악회에서 들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는 '나'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안함과 무서움을 지나 우울과 슬픔에" 다다랐다가 "여러 껍질이 벗겨져서 한결 가벼워진 느낌으로 부유하게" 한다. 시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고인을 모셔 와 눈물과 미소로 지난 삶을 축하하는 의식이 된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을 들을 때는 "환희의 축포"인 듯 "절망의 폭격"인 듯 쏟아지는 대포알 소리가 '나'의 부모와 겹쳐지며 가슴을 내려치는데, 엄마와 '나'는 같은 곡에 다른 의미로 숨이 멎는다. 작가의 음악적 소양이 서사에 녹아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로야』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집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다.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탐구하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다. 화자의 강박은 오랫동안 숨기고 감추어온 것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아프다'고 말함으로써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작가의 쓰는 행위와 연결된다. 다이앤 리는 자신이 그대로 투영된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한다. "오래된 질문이자 모든 작가의 출발점이다."(심사위원 김별아) 그리고 이야기는 여전히 열려 있고 진행 중이다.
작가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가장 협소하고 내밀한 부분은 시공간을 초월해 유사하다. 가장 협소한 곳에 가족이 있고 가장 내밀한 곳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로야』는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 2권, 주야
내가 엄마를 지우면 엄마도 날 지운 거야.
지운다고 진짜 지워지겠냐마는,
그래도 안녕. 이쯤에서 안녕.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밴쿠버에 거주하는 한국계 이민 작가 다이앤 리가 새 장편소설 『주야』를 펴냈다. 『주야』는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로야』를 잇는 작품으로 시간상으로는 『로야』 이후의 이야기지만, 집필 의도로는 『로야』를 품은 이야기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응시하며 삶을 회복해가는 『로야』의 이야기는 『주야』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심화ㆍ확장되어 더욱 확연하고 능동적인 결말에 이른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엄마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시어머니가 가족 구성원으로 합류하는 새로운 현실에서 주인공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관습적인 가족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거쳐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에 대한 옹호로 나아간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또 다른 방향의 연결과 삶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 『로야』가 세상에 나왔을 때 작가는 이 작품이 전체의 한 부분임을 밝힌바, 그로부터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주야』는 작가가 최초에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전모를 보여준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작가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헌정하듯 두 작품의 챕터가 모두 합해 서른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점도 인상 깊다.
엄마가 나를 끊었다. 나는 끊겼다.
『로야』에서 중년의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 화자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며 폭력 가정에서 자란 성장기와 부모와의 어긋난 관계를 거듭 떠올린다. 성인이 되어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왔지만 한국에 있는 원 가족은 여전히 화자의 삶 속에 밀착해 있다. 특히 엄마는 현재 화자를 가장 힘겹게 하는 존재다. 폭력의 가해자인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는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며 화자의 삶에 부당하게 침입한다. 끝없이 딸을 원망하며 자기 권리만을 내세우는 엄마에게 염증을 느낀 화자는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지만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감성적인 메시지에 끝내 미련을 놓지 못하고 그 속에 갇힌다. 이렇게 유지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주야』에서 또 다른 양상으로 변화한다.
『주야』의 이야기는 화자와 엄마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생일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는 '나'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 하고 자신이 뱀에 물린 사실을 알리며, 딸이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추석날, 엄마의 안부를 묻는 '나'에게 엄마는 또다시 감정을 쏟아낸다. "전화 한 통 하는 게 그래 힘드나!!!" "엄마 혼자 있는 게 안 불쌍하나! 엄마 혼자잖아!! 혼자!!!"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불쌍히 여기는 엄마를 더는 견딜 수 없어 '나'는 마음속에서 울리던 말을 내뱉고 만다. "혼자가 뭐 어때서. 혼자 있는 게 대수야?" "사람은 누구나 혼자야." 그러자 엄마는 "끊어! 끊어!! 끊어!!!"를 외치고 전화를 끊는다. 엄마와 연결된 가느다란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이후 '나'는 엄마에게 긴 글을 보낸다. 자신이 자란 가족이 얼마나 처참한 모습이었는지, 당시 엄마 아빠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혔는지 진실을 알리는 글이었다. '나'는 엄마가 과거의 참혹한 진실을 수용하고 문을 열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끝내 침묵하고 어떠한 연락도 해오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끊었고, '나'는 자발적 고아가 되었다.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주야』에서 또 하나의 중심 사건은 마마준(시어머니)의 방문이다. 화자가 '엄마의 상실'로 슬픔에 빠져 있는 와중에 이란의 시어머니가 캐나다에 와 화자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일찍 부모를 떠나 살아온 남편에게 어머니와 함께하는 생활은 "낯선 이와의 동거"였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허물을 보는 계기가 된다. 남편은 아버지의 폭력을 겪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어머니가 자신의 수고를 너무나 당연하게 취급하고 마치 빚을 돌려받는 사람처럼 뭐든 받으려고만 해서 뻔뻔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반항기 소년처럼 감정을 터뜨리던 남편은 어머니가 이란으로 돌아간 후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동거를 '사고'였다고 표현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인 줄 알았는데 꼭 일어나야만 했던 사고였고, 그 덕에 어머니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됐다고.
'나' 역시 엄마의 사랑을 확인했다고 믿는 순간에 엄마의 진짜 모습을 보고 만다. 시어머니와 생활하면서 종종 엄마를 생각하곤 하던 '나'는 자신을 부당하게 내팽개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한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낼 양으로 그동안 엄마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있는 대화창을 보다가 "늘 사랑하는 너에게" 보낸 엄마의 "감꽃 목걸이 선물"을 발견한다. 몇 달 전 화자가 엄마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려 마음먹었을 때 그 마음을 돌이키게 해준 바로 그 선물이다. '나'는 이미 사랑을 주고 있는 엄마를 못 믿고 못 보고 못되게 군 자신을 한탄하며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려 하는데, 바로 그때 반전이 일어난다. 감꽃 목걸이는 오직 한 명뿐인 딸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이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 받고 주목 받기 위해 엄마가 사용한 도구일 뿐이었다. 엄마의 진심은 여전히 엄마 자신의 삶만 중요했다는 사실을 직시한 '나'는 이윽고 자신을 끊은 엄마를 지우고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끊겼지만 연결된 경험
자신을 끊은 엄마를 지워버리기까지 '나'는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이곳과 저곳을 오가며 끊임없이 엄마와 아빠를 만난다. 그 한편에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 로야가 있고, 그들을 방문한 마마준과 세상을 떠난 바바준(시아버지)도 그 속에 함께한다. 『주야』에서는 이들 각 인물의 성격과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주고받는 영향 관계가 더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드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정하여 나눌 수 없게 한다. 남편이 어머니와의 동거를 사고로 받아들였듯이, '나' 역시 부모를 만난 것을 사고라고 본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사고의 성격을 띠며, 사건처럼 분명한 가해자가 있지 않고 연루된 모든 이들이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 '나'의 가족이 고속도로에서 겪은 교통사고처럼 예상할 수도 없고 고의성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로 입은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상처는 없기에. 그러니 일부러 숨기지 않고 필요시에 얘깃거리로 취급하는 것이 치유고, 다친 데가 새살로 다시(re) 덮이는(cover) 것이 회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엄마와의 단절이 화자에게 형벌이 아닌 위로가 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연결됐어야 할 지점에 드디어 연결됐기 때문에 느끼는 평화로움이다. "나 자신이 무지(nescience)했던 건 불가지(不可知)해서였고, 무지를 깨달은 덕분에 공동의(con-) 지각(science), 즉 양심(conscience)에 닿을 수 있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끊겼지만 연결된 현상을 경험했다."는 화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한결 가벼워진 상태다. 『로야』의 '갇힌' 결말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자유롭고 능동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빈틈없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장기는 『주야』에서도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소설에서는 기성 제도와 관습, 개인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와 집단의 규범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작가는 전통적인 혈연관계의 본질과 그것이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화자가 시청하는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화자를 비롯한 현대의 가족이 직면한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외부의 힘 때문이 아니라 내부에서 파멸해가는 소프라노 가족과 조직의 이야기를 화자는 "부수기 위해 지은 것, 끝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 평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어 일방적인 역할을 강요하는 가족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주야』는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상하고 일그러진 과거와 그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불안과 불균형을 뛰어넘어 자유롭고 능동적인 개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로야』가 매력적인 이유는 화자가 미치도록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데 있다. 여성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은 모든 여성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소설가 강영숙)라는 추천의 말은 『주야』를 향해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책속으로 이어서]
엄마는 피상적인 것만을 보고 서둘러 판단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 눈에는 방패 잃은 가엾은 미망인이나 배은망덕한 자식을 둔 불쌍한 엄마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방패를 흉기로 삼고 취약함을 무기로 사용하는 폭군이었다. 내가 기어코 말해야 했던 순간의 엄마는 누가 봐도 취약한 상태였는데, 이는 바로 엄마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가진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온 습관이 오랫동안 몸에 배서 엄마가 나에게 한 행동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꼿꼿이 펴거나 머리를 똑바로 드는 것이야말로 불쌍한 엄마에게 대항하는 폭력이었다. (15쪽)
컥컥 소리 내야 할 정도로 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내 앞에 커스틴이 있어서 울음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 몸 안의 고통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커스틴은 나와 함께 울어 주었다. 어린 나를 위해 누군가가 울어 준 적 없어서,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다 큰 내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이렇게 누구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울어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지금껏 나는 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울음을 자제하거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나올 때도 멈추라고 강요받거나, 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도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제대로 울지 못했다. 그게 새삼스레 서러워서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시며 울었다. 작고 어둡고 따뜻한 방은 울기에 완벽했다. (52쪽)
모든 걸 파악했지만, 내가 파악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진실을 외면한 것처럼 나 또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실은 거기 있었다. 엄마는 너를 끊었다, 너는 끊겼다. 진실의 목소리와 표정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해서 그것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을 편집할 줄 알아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엄마의 진실이 차라리 부러웠다. 나의 진실은 타협을 몰랐다. 진실을 덮지 않고 확 까발린 바람에 난 내팽개쳐졌고, 끊기게 됐다. 진실을 밝힌 대가였다. 하나 남은 부모를 잃게 됐다. 스스로 고아가 됐다. 자진해서 비극을 탄생시켰다. (122쪽)
"어머니랑 같이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싫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남편은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통속 드라마라면 나와 남편의 대사가 바뀌었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집을 떠난 지 거의 삼십 년이 돼 가. 각자 생활한 지 삼십 년째라고. 부모님이랑 함께 살 때도 난 집에 붙어 있지 않았어. 내가 왜 이란을 떠났는데? 여기서 정착하느라 온갖 고생을 할 때도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내가 여기에 온 건 거길 떠나기 위해서 였지 거기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게 아니었다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랑 그렇게 오래 있겠다는 거야? 삼 개월도 너무 긴데 육 개월이라니. 이해가 안 돼." (173~174쪽)
내팽개쳐지고 끊겼어도 무의식은 날 지키고 있었다. 이제 준비됐으니 똑똑히 보라고, 똑똑히 본 후에 행동하라고, 이곳은 나쁘고 싫은 것을 담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언제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담아 두는 저장고라고 나의 무의식은 알려 준다. 슬픔은 겸양이 아니라 비겁함이고, 분노는 비이성이 아니라 확실한 이성임을,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대에서 깨닫는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분노와, 관용이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슬픔은 얼마나 진실하지 못했던가. 슬픔 아래 눌러 놓았던 것이 분노라니. 헉, 숨이 막혔다. 또다시 고통이 보내는 신호였다. (213쪽)
엄마가 내 전화번호를 외워 둘 리 없고 내 주소를 기억할 리 없으니까, 내가 엄마를 지우면 엄마도 날 지운 거야. 지운다고 진짜 지워졌겠냐마는, 떠나보낸다고 진짜 떠났겠냐마는, 그래도 안녕. 이쯤에서 안녕.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부모 자식 사이도 일종의 관계라는 걸 나보다 먼저 알고 있던 엄마, 엄마가 간 길을 나도 갈게. 하지만, 엄마처럼 중단해도 나는 대체하지 않을 거야. 세상엔 대체할 수 없는 게 있고, 그게 바로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니까. 엄마, 여기선 헤어져도 다음 생에선 내 딸로 태어나 줘. 내 딸로 태어나서 내 사랑을 받아 줘. (283쪽)
나 또한 남편과 비슷했다. 사춘기 시절, 치기를 핑계 대며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철든 아이는 어른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것에 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한다. 자기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한심하다고 여기고, 어른스러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제 와서 보니 한심하고 딱한 건 남편이나 나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줄 알았는데, 우린 경험했어야 할 성장 단계를 자의와 타의로 건너뛰었을 뿐이다. 그때 못 큰 걸 인제 와서 따라잡으려니 호르몬 덕도 못 보고, 호르몬 탓도 못 해서 실로 힘들다. (291쪽)
남편의 어머니나 나의 엄마가 생각하는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역할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역할에 따른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당위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 자신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평가 또한 쓸데없다.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소명과도 같아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가족을 만들어야 하고,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역할을 맡으면 지위가 부여되고, 지위가 부여되면 권리가 주어진다. 특히 양육하던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기가 오면 부모의 권리는 더욱더 확고해진다. 어떤 방식으로 양육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양육의 의무는 부양의 의무를 위한 초석 작업이다. 어떤 면에선 부양을 위해서 양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출생은 집단을 위함이고, 자식의 안녕은 부모를 위함이요, 자손의 존립은 조상을 위함이다. (295~296쪽)
나는 『주야』와 『로야』를 작품 밖에서도 의도적으로 짝지었고,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구경꾼, 부모/자식, 엄마/아빠, 사건/사고, 가해자/피해자, 단절/연결, 길 잃기/길 찾기, 이편/저편, 오른쪽/왼쪽, 다수/소수, 집단/개인, 관습/본성, 과거/현재, 현실/꿈, 가짜/진짜, 불균형/균형, 표면/심층, 전쟁/평화, 죽음/삶, 어둠/빛, 의식/무의식 등을 고의로 짝지었다. 대칭적 구조의 문장들도 일부러 많이 썼다. 통상적 의미에서 반대 개념인 위의 단어들은 대조하여 읽을 수도 있고, 한데 버무려 읽을 수도 있으며, 교차로 읽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분법적 사고를 적용할 수도 있고, 와해할 수도 있으며, 이 사이에서 왕래할 수도 있다. 적용했다면 불편했을 것이고, 와해했다면 집중했을 것이며, 왕래했다면 긴장되거나 아팠을 것이다. 당신은, 불편해도 참았을 것이다. (328쪽, 작가의 말)
목차
목차
들어가며
1부
1. 발생 incidence
2. 후퇴 retreat
3. 정전 blackout
4. 방해 obstacle
5. 위로 up/comfort
6. 인과 causality
2부
7. 변형 metamorphosis
8. 무지 nescience
9. 연결 connection
10. 각성 awakening
11. 애착 attachment
12. 착각 delusion
13. 우연 coincidence
갇히며
작가의 말
추천의 말
1. Variatio 14
2. Variatio 15
3. Variatio 16
4. Variatio 17
5. Variatio 18
6. Variatio 19
7. Variatio 20
8. Variatio 21
9. Variatio 22
10. Variatio 23
11. Variatio 24
12. Variatio 25
13. Variatio 26
14. Variatio 27
15. Variatio 28
16. Variatio 29
17. Variatio 30
작가의 말
1부
1. 발생 incidence
2. 후퇴 retreat
3. 정전 blackout
4. 방해 obstacle
5. 위로 up/comfort
6. 인과 causality
2부
7. 변형 metamorphosis
8. 무지 nescience
9. 연결 connection
10. 각성 awakening
11. 애착 attachment
12. 착각 delusion
13. 우연 coincidence
갇히며
작가의 말
추천의 말
1. Variatio 14
2. Variatio 15
3. Variatio 16
4. Variatio 17
5. Variatio 18
6. Variatio 19
7. Variatio 20
8. Variatio 21
9. Variatio 22
10. Variatio 23
11. Variatio 24
12. Variatio 25
13. Variatio 26
14. Variatio 27
15. Variatio 28
16. Variatio 29
17. Variatio 30
작가의 말
저자
저자
다이앤 리
Diane Lee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 대학교, 서울대학교,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2001년 캐나다로 이주해 현재 남편과 딸과 밴쿠버에 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여 밴쿠버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밴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의 연간 회원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몇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 『로야』로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 대학교, 서울대학교,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2001년 캐나다로 이주해 현재 남편과 딸과 밴쿠버에 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여 밴쿠버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밴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의 연간 회원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몇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 『로야』로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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