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찰나였다(감성기획시선 75)
권옥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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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은 참 많다. ‘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눈물 위로 걸어온 시간’, ‘희뿌옇다’, ‘메타세쿼이아’, ‘꽃무릇의 이별법’, ‘첫눈 온다’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하여 시인의 내면세계를 끌어온 작품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권옥희 시인의 시편들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온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이 지구별에서 삶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그 존재가 좀 더 가치 있도록 사람과 사물에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자신과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볼 때 권옥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충분히 독자에게 그 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시인의 세심하면서도 철학적인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옥희 시인의 시편들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온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이 지구별에서 삶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그 존재가 좀 더 가치 있도록 사람과 사물에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자신과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볼 때 권옥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충분히 독자에게 그 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시인의 세심하면서도 철학적인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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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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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소망을 풀어낸 바닷빛의 자취들
문정영(시인)
바다와 나무와 꽃이 시인의 옆에 있다.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시인의 곁에서 자란 것들도 있다. 어떤 나무는 함께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늘이 되어주는 반려자 같은 시간을 나누기도 했다. 시란 시인의 절절한 간절함이 꽃을 피운 것이다. 간절함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한 생을 살면서 내게 오는 사랑과 고통과 이별은 얼마큼 큰 빛으로 쏟아졌던가. 시인이 남긴 그 소망들을 찾아보는 것이 이 글의 자취이다.
인용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 한 편 한 편이 절절하여서 시인의 가슴에서 품어져 나온 찰나였으므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아픔은 입을 틀어막아도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어쩌면 "햇살을 보지 못한 길에 흘린 단편의 시간들"의 통증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할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어쩌면 이 시집 한 권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절창일 것이다. "멀고 먼 강 건너기 전에/ 내 이름 아주 잊고 가기 전에/ 엄마가 지은 고치 집 한 채 내게 주고 가라"고 외친 슬픈 눈물집이다.
권옥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하나는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그래도 버텨내서 다행이다."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아픈 마음과 코로나19의 위기를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며, 힘이다. 다른 하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삶을 이겨나가는 자신에게 그리고 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냘픈 몸으로도 당당하고 꼿꼿해질 수 있는 힘/ 살아가는 동안 숱한 바람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도 그 힘을 얻고 싶다."라는 소망을 전하였다.
이 두 가지 시의 서정이 잘 녹아 있는 이번 권옥희 시인의 시집을 몇 가지의 방향으로 읽으면서 따라가 보기로 하자. 이번 시집의 큰 갈래 중 첫 번째는 시인의 소망이다. 내 자신뿐 만아니라 모두의 소망을 사유의 깊이로 끌어내었고, 두 번째는 엄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다. 엄마(어머니)는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늘 고여 있는 생수이다. 그리움의 정수이다. 그 그리움의 길을 읽어가 보자, 다음으로는 시의 배경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바다와 고향, 그리고 자연에서 시인의 뿌리를 찾아보자.
위에서 말하였듯이 인용하고 싶은 시가 많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시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주시기 바란다. 본격적인 해설로 들어가기 전에 각부의 첫 장에 나온 시인이 아끼는 문장들을 읽어보자. 이 언급된 말들을 촘촘히 읽어도 이 시집의 전반적인 감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붉은 동백 꽃길을 적시며/ 눈물 많은 엄마가 그렁그렁/ 봄비로 울고 있다."
2부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3부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는 바다에 해독제를 풀어놓듯/ 첫사랑도 눈물도 먼저 거 둬가는 곳/ 그리운 것은 거기 다 있다."
4부 "내 눈에 이별을 부르는 저 서울행 철길/ 나는 첫눈이 오지 않은 안동역 앞에/
오래도록 눈부처가 되어 서 있었다."
각 부 첫 장의 글을 합하여도 하나의 작품이 될 만큼 시인의 서정이 잘 녹아 있다. 시인은 이 한 권을 시집을 내놓고 독자에게 가서 꽃이 될 문장들을 찾아놓은 것이다.
1. 시인의 소망을 찾아서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소망한다. "바람과 햇볕에 널어주고 싶"(「시간의 주문에 묶인 하회마을」)은 간절한 소망은 무엇일까. 소소한 행복을 끌어안고 살고 싶은 마음이며 "지금 접시꽃 세상"인 하회마을의 "풍화된 시간" 속에서 머물고 싶은 것이다.
"그 이름 꽃잎처럼 적어보고 싶은/ 바람 귀가 서럽게 불러 보고 싶은"(「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것은 또 무엇일까.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둔 시린 그리움"일 것이며, 지금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객관화된 소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첫 작품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는 소금이 가진 내밀한 속성과 소금쟁이같이 소금을 만드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쩌면 시인의 개인적인 삶의 철학을 소금처럼 쌓아놓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살아온 체험과 사물을 바라보는 사유의 깊이에서 끌어낸 '위대한'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다가 거둔 바람길에
나무판자 얼기설기 엮은 소금창고가 있다
소금눈물에 삭은 그곳엔 썩지 않은 시간이 산다
소금밭에 붉은 밑줄을 그으며
짠맛에 찌든 고된 하루를 수없이 뒤집는 그는
눈가에 자글거리는 주름을 창고에 부린다
소금은 짠데 소금창고는 짠내가 없다
소금은 바다의 뼈를 녹인 애간장에서 온다
그 눈물의 짠맛 다 걸러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
그의 하루는 썩지 않고 산다
자르르 윤기 흐르는 내 젊은 날의 둔부 같은 소금무덤
잘 절여진 바람이 흐르는 방향에서
나도 내 가슴에 굵은 소금 팍팍 질러 넣어
썩지 않는 젓갈처럼 삭고 싶다.
- 「위대한 소금창고」 전문
이 작품은 구절구절 절창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자. "소금눈물에 삭은 그곳엔 썩지 않은 시간이 산다" "소금은 짠데 소금창고는 짠내가 없다" "소금은 바다의 뼈를 녹인 애간장에서 온다" "그 눈물의 짠맛 다 걸러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 그의 하루는 썩지 않고 산다"라는 통찰력 넘치는 문장들은 오롯이 시인의 삶 안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다. 한때 "내 젊은 날의 둔부 같은 소금무덤"에서 시인은 지긋한 삶을 건너가면서 "썩지 않은 젓갈처럼 삭고 싶다"고 소망한다. 이 작품은 서정이 잘 녹아 있으면서도 시인의 소망이 무겁지 않게 드러나 있어 반드시 몇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인이 살아가면서 바라는 소망은 소소한 것들이며. "어디에도 없는 문장을 만들고 싶"은 간절함이며, "맥문동 꽃밭에서는 사랑에 취해야 한다/ 이대로 꽃을 베고 보랏빛 세상에 눕고 싶"(「맥문동 꽃자리」)은 일상에서 가져올 수 있는 소망들이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따스한 바람막이 하나 걸쳐주고 싶"(「겨울나무」)거나 "다시 자작자작 한 나무의 생애가 타는 소리 듣고 싶"(「자작나무 숲에 들다」)은 바람은 얼마나 작은가, 하지만 얼마나 따뜻한가. 그런 간절함은 "나도 작은 풀꽃 한 송이로 피고 싶" (「희망씨앗을 품다」)고 "누군가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했던 눈도 있"(『눈 온 날』)는 날이다.
숙명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의 기세가 등등하다
막다른 벽
불안의 벽
몸을 내준 나무는 숨이 막힌다
저 독불장군의 서슬 퍼런 길에 들어선
빗소리
바람소리
달빛소리
점령군의 말발굽처럼 소리만 들어도 나무는 질색한다
전부를 내준다는 건 참 못할 일이지만
반항하면 끝이다
죽은 듯이 살아가지만
나무는 죽어서도
저 모진 칡넝쿨을 벗어나지 못하겠다
잡히면 휘감아야 하는 너의 숙명에 갇힌
나의 절규를 오늘도 듣는다
숨 좀 쉬고 싶다!
- 「절규」 전문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 시의 마지막 "숨 좀 쉬고 싶다!"라는 절규를 들으면서 "숙명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의 기세에" 눌린 모습이 어쩌면 코로나19에 쩔쩔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서 이 시가 마음 한켠을 아프면서도 쓸쓸하게 하였다. 숨을 쉬고 싶은 소망, 절규가 빨리 이루어지를 바라본다.
2. 엄마의 숨결을 찾아서
이 시집 속에는 엄마에 대한 사모곡이 너무 많다. 이 몸을 낳아준 엄마는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존재이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리움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다. 그 시편들만 바라보아도 엄마의 숨결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의 씨앗들이 잘 보이는 그래서 숨결을 흩뜨리듯 내 생명의 원천으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동백아가씨를 좋아하던/ 우리 엄마만 봄의 자리를 비웠다/ 붉은 동백 꽃길을 적시며/ 눈물 많은 엄마가 그렁그렁/봄비로 울고 있다."(「동백아가씨」)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마음속으로 '동백아가씨'를 불렀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안 계신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었을 것 같다. 추억은 내게 존재하는 한 엄마는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편들보다는 훨씬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다.
"지우고 싶은 슬픔을 메우던 색색의 실들"(「시간을 건너는 반짇고리」)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은 낙타만 했을까" '반짇고리'를 통해서 시인은 늘 안쓰럽고 그리운 엄마를 찾아가곤 한 것이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인은 아래 작품 두 편을 통하여 절정에 이른다. 엄마의 삶을 경유하여 시인은 소망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도 늘 엄마를 닮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저리고 애달다. 찬찬히 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읽어보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이가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바라만 봐도 애처롭던 엄마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비수로 가슴을 도려내 놓고도
참으며, 웃으며
바보 같은 엄마처럼 살고 있다
오래도록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오래도록 좋은 곳만 가고 싶었다
백 년은 넘깁시다!
백세인생을 노래하며
좀 더 곁에 함께하고 싶다고
연도 맺지 않은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다
내가 가장 닮은 이가 있다
품이 넓은 접시꽃이 되어
사랑밖에 모르는 나비 한 마리 안으려는
가슴 여린 여인이다.
- 「접시꽃 사랑ㆍ2」전문
'접시꽃 사랑'에 이어 「엄마가 가버렸다」에서는 "날마다 지은 하얀 고치 집"에서 엄마가 저 멀리 다른 행성으로 가기 전에 슬픔이 매듭지어지기 전에 "멀고 먼 강 건너기 전에/ 내 이름 아주 잊고 가기 전에/ 엄마가 지은 고치 집 한 채 내게 주고 가라 했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코로나가 막아버린 그 집에서
주소도 남기지 않은 채 엄마는 가버렸다.
-「엄마가 가버렸다」 일부
'어머니의 우물' 이 작품을 통하여 시인은 엄마의 힘든 삶을 들여다본 것일까. 결코 우물 밖으로 튀어나갈 수 없는 엄마의 삶은 온전하지는 않았다. 이번 작품을 조용히 음미하다보면 서러움 한 자락으로 "한 번도 꽃인 적 없는"엄마의 일생을 안타깝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를 비교하면서 음미를 해보기 바란다.
날마다 어머니가 퍼낸 우물이 깊다
평생 어머니의 우물은 눈물이었다
날마다 길어 올리는 두레박에 매달려
쓰디쓴 세상에 아프게 매달려 있었다
겨우 열세 살인 딸을 민며느리로 남의 집에 보내고
재가한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날마다 우물 밖으로 물방울처럼 튕겨 나가길 꿈꿨다
우물은 덫이었다
어머니의 가슴을 쥐어짜는 바람이었다
검은콩처럼 타들어 가는 가슴을 누르며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집 나간 아버지 그림자를 안으며 울었다
그때 어머니의 세상은 우물 안의 어둠처럼 막막했다
우물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간 어머니의 두레박이 아렸다
한 번도 꽃인 적 없는 어머니 품에 아무도 없었다
끝까지 우물이 한번 출렁이다 멈추었을 뿐이다.
- 「엄마의 우물」 전문
'위대한 저녁'을 먹기 위해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은 엄마의 손 국시 한 그릇에 여름이 풍덩 빠졌다. "매캐한 모깃불에 타오르던 그 저녁이 위대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 안 것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요양원 유리벽 너머/ 누워 지내던 엄마를 하늘로 보낸 슬픔을 눈물로 비벼 넣고// 하루가 잠시나마 걱정 없게 된 날// 마스크를 벗은 입이 미어져라 쌈 싸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웃음 없는 날을 접어가며 살아내서 다행이다." 이렇게 엄마를 보내는 심정과 걱정 없게 된 하루를 '다행이다' 라고 토로하는 시인의 심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접시꽃 사랑·1' 에서는 엄마의 아픈 삶이 나비를 사랑하는 접시꽃으로 표출되어, 잔잔한 서정임에도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준다.
붉은 접시꽃에 나비 한 마리 앉히려고
엄마는 집 나간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구나
하늘로, 하늘로 서러운 울음소리도 못 내고
바람이 손목을 뿌리친 아버지 미운 그림자만 바라보았구나
붉은 접시꽃에 나비 한 마리 날아오게 하려고
엄마는 그토록 푸른 대궁 높이 꽃을 피우려 했구나
엄마가 없으면 접시꽃도 없겠네
숨어들 나비도 없겠네.
-「접시꽃 사랑·1」 전문
그 외 「여름이 지나간다」와 「배불뚝이 단지」 등에서도 엄마와의 추억과 아픔이 이어진다. 이리 진한 모성을 기리는 것은 이제 시인도 그런 아픔을 온전히 체득하여 느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3. 시인의 서정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시인의 시적 정서는 시인의 살아온 배경과 사고 그리고 생활환경에서 오는 서정에 의해서 깊어진다. 권옥희 시인의 시 속에 바다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거나 바다에 자주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붉은 등대'에서는 등대가 주는 안식이나 등대가 가진 이미지를 통하여 시인의 삶과 사랑과 이별의 모습을 잘 드러내었다. 조용히 음미를 해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시이다.
나는 밤새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불빛으로 지켜보았다
하늘과 바다를 잇는 수많은 이별법
밤낮없이 바다를 드나들던 가벼운 것들의 이별법
어긋난 운명으로 서로를 잡지 못해 한쪽을 놓아버리고
뜬눈으로 바다를 헤집는 집어등이 파랗게 질려갔다
너에게 닿지 못한 내 눈길이 절망으로 가득할 때
다 놓았다 생각한 네가 바다마저 놓으면
나는 어디에서 또 젖은 꿈을 꿀 것인가
오늘 나는 적당히 오르는 파도를 받아들이면서
너를 안은 긴장이 높아졌다 스러졌다
네가 다시 사랑할 내일의 꿈을 안고 돌아간 뒤
나는 밤새 움켜쥔 주먹을 풀며
해가 바다를 삼키는 걸 지켜보았다
붉어진 눈을 감고 나도 쉬어야겠다.
- 「붉은 등대」 전문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성을 다양할 것이나 또한 공통적으로 껴안고 사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찰나였음을 느끼는 것도 지난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라고 느끼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이 교차하였을까. 그걸 더 깊이 느끼고 아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시인인 것이다. "세계의 문이 닫힌다/ 쫓기듯 달려와서 지는 해를 끌어안은 바다가 닫힌다"라는 깊은 사유를 끌어안기까지 시인은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깊이 관찰하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결국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조금씩 저물어가는 것이다.
아래 작품은 시인의 녹녹하지 않은 삶 중에서 가장 아픈 날이며 그걸 잊고 싶어 바다까지 간 날이다. "사랑이 오면 죽는 연습입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릅니다"라는 사유는 시인의 체험과 통찰이 없으면 끌어낼 수 없는 문장이다. 이 시를 조용한 밤에 읽어보시라.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물결이 흐를 것이다.
버릴 게 많아 바다까지 갔습니다
내 그림자도 버리고자 했습니다
사는 데도 무진장의 연습이 필요한가 봅니다
사랑이 죽으면 사는 연습이 필요하고
사랑이 오면 죽는 연습입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릅니다
사랑이 죽었다고 온종일 숨어서 숨 쉬었던 날입니다
담판을 지어야 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버려진 것은 불려오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랬습니다
편히 앉아보지도 못하고 보낸 하루
잊을 만한 건 잊어도 좋다고
억지로 잊는 척하지 말자고.
- 「잊을 만하면」 전문
아래 두 작품도 참으로 아껴서 읽고 싶은 시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다스시고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하였다. 그것은 서로의 공감대와 유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면서 읽을 수 있는 시가 진정성이 있는 시이다. 가장 어두운 날에 이 두 편의 시를 마음에 얹어놓고 읽어보시라.
시작은 끝을 드러내지 않는다
흰머리가 머리에 앉기 시작하더니
하얀 털 하나가 반짝하며 눈썹에 앉았다
흰머리의 시작을 부지런히 끊어냈다
파뿌리로 가는 길을 염색으로 완벽하게 차단했다
아니, 흰머리의 비극은 이제 시작이다
내 몸의 가시를 뽑아내듯
백세의 불협화음이 나를 노려보는
나이 밖으로 튕겨져 나와
도리 없이 젊음을 바른다
결코 시작은 끝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작에 대한 단상斷想」 전문
끝내는 바닥으로 간다
바닥이 싫어도 바닥으로 간다
꽃도 지면 바닥으로 간다
목백일홍 꽃이 바닥을 붉게 물들인다
귓가에 속삭인 유혹은 얼마나 달콤했으랴
그 깊이가 얼마인지 한번 닿으면
다시 못 올 걸 알면서도 바닥으로 간다
나는 너의 바닥을 보았을까
너는 내 바닥을 얼마나 알까
바닥까지 와서 바닥을 짚고서야 여기가 바닥이구나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갈 곳 없는 곳이 바닥이구나
추락의 끄트머리에서야 보이는 바닥
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사랑의 재고는 없다
바닥은 다시 길이 된다
탈탈 털려 한계에 부딪힌 정신을 깨우며
바닥에 누운 시간이 일어선다
무너진 바닥에서도 꽃은 핀다
더 이상 바닥에 닿지 말라고
곳곳에 씽크홀이 생겨난다.
-「바닥論」 전문
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은 참 많다. '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눈물 위로 걸어온 시간', '희뿌옇다', '메타세쿼이아', '꽃무릇의 이별법', '첫눈 온다'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하여 시인의 내면세계를 끌어온 작품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권옥희 시인의 시편들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온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뿐인 이 지구별에서 삶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그 존재가 좀 더 가치 있도록 사람과 사물에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자신과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볼 때 권옥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충분히 독자에게 그 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시인의 세심하면서도 철학적인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문정영(시인)
바다와 나무와 꽃이 시인의 옆에 있다.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시인의 곁에서 자란 것들도 있다. 어떤 나무는 함께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늘이 되어주는 반려자 같은 시간을 나누기도 했다. 시란 시인의 절절한 간절함이 꽃을 피운 것이다. 간절함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한 생을 살면서 내게 오는 사랑과 고통과 이별은 얼마큼 큰 빛으로 쏟아졌던가. 시인이 남긴 그 소망들을 찾아보는 것이 이 글의 자취이다.
인용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 한 편 한 편이 절절하여서 시인의 가슴에서 품어져 나온 찰나였으므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아픔은 입을 틀어막아도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어쩌면 "햇살을 보지 못한 길에 흘린 단편의 시간들"의 통증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할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어쩌면 이 시집 한 권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절창일 것이다. "멀고 먼 강 건너기 전에/ 내 이름 아주 잊고 가기 전에/ 엄마가 지은 고치 집 한 채 내게 주고 가라"고 외친 슬픈 눈물집이다.
권옥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하나는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그래도 버텨내서 다행이다."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아픈 마음과 코로나19의 위기를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며, 힘이다. 다른 하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삶을 이겨나가는 자신에게 그리고 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냘픈 몸으로도 당당하고 꼿꼿해질 수 있는 힘/ 살아가는 동안 숱한 바람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도 그 힘을 얻고 싶다."라는 소망을 전하였다.
이 두 가지 시의 서정이 잘 녹아 있는 이번 권옥희 시인의 시집을 몇 가지의 방향으로 읽으면서 따라가 보기로 하자. 이번 시집의 큰 갈래 중 첫 번째는 시인의 소망이다. 내 자신뿐 만아니라 모두의 소망을 사유의 깊이로 끌어내었고, 두 번째는 엄마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다. 엄마(어머니)는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늘 고여 있는 생수이다. 그리움의 정수이다. 그 그리움의 길을 읽어가 보자, 다음으로는 시의 배경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바다와 고향, 그리고 자연에서 시인의 뿌리를 찾아보자.
위에서 말하였듯이 인용하고 싶은 시가 많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시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주시기 바란다. 본격적인 해설로 들어가기 전에 각부의 첫 장에 나온 시인이 아끼는 문장들을 읽어보자. 이 언급된 말들을 촘촘히 읽어도 이 시집의 전반적인 감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붉은 동백 꽃길을 적시며/ 눈물 많은 엄마가 그렁그렁/ 봄비로 울고 있다."
2부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3부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는 바다에 해독제를 풀어놓듯/ 첫사랑도 눈물도 먼저 거 둬가는 곳/ 그리운 것은 거기 다 있다."
4부 "내 눈에 이별을 부르는 저 서울행 철길/ 나는 첫눈이 오지 않은 안동역 앞에/
오래도록 눈부처가 되어 서 있었다."
각 부 첫 장의 글을 합하여도 하나의 작품이 될 만큼 시인의 서정이 잘 녹아 있다. 시인은 이 한 권을 시집을 내놓고 독자에게 가서 꽃이 될 문장들을 찾아놓은 것이다.
1. 시인의 소망을 찾아서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소망한다. "바람과 햇볕에 널어주고 싶"(「시간의 주문에 묶인 하회마을」)은 간절한 소망은 무엇일까. 소소한 행복을 끌어안고 살고 싶은 마음이며 "지금 접시꽃 세상"인 하회마을의 "풍화된 시간" 속에서 머물고 싶은 것이다.
"그 이름 꽃잎처럼 적어보고 싶은/ 바람 귀가 서럽게 불러 보고 싶은"(「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것은 또 무엇일까.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둔 시린 그리움"일 것이며, 지금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객관화된 소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첫 작품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는 소금이 가진 내밀한 속성과 소금쟁이같이 소금을 만드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쩌면 시인의 개인적인 삶의 철학을 소금처럼 쌓아놓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살아온 체험과 사물을 바라보는 사유의 깊이에서 끌어낸 '위대한'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다가 거둔 바람길에
나무판자 얼기설기 엮은 소금창고가 있다
소금눈물에 삭은 그곳엔 썩지 않은 시간이 산다
소금밭에 붉은 밑줄을 그으며
짠맛에 찌든 고된 하루를 수없이 뒤집는 그는
눈가에 자글거리는 주름을 창고에 부린다
소금은 짠데 소금창고는 짠내가 없다
소금은 바다의 뼈를 녹인 애간장에서 온다
그 눈물의 짠맛 다 걸러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
그의 하루는 썩지 않고 산다
자르르 윤기 흐르는 내 젊은 날의 둔부 같은 소금무덤
잘 절여진 바람이 흐르는 방향에서
나도 내 가슴에 굵은 소금 팍팍 질러 넣어
썩지 않는 젓갈처럼 삭고 싶다.
- 「위대한 소금창고」 전문
이 작품은 구절구절 절창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자. "소금눈물에 삭은 그곳엔 썩지 않은 시간이 산다" "소금은 짠데 소금창고는 짠내가 없다" "소금은 바다의 뼈를 녹인 애간장에서 온다" "그 눈물의 짠맛 다 걸러낸 위대한 소금창고에서/ 그의 하루는 썩지 않고 산다"라는 통찰력 넘치는 문장들은 오롯이 시인의 삶 안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다. 한때 "내 젊은 날의 둔부 같은 소금무덤"에서 시인은 지긋한 삶을 건너가면서 "썩지 않은 젓갈처럼 삭고 싶다"고 소망한다. 이 작품은 서정이 잘 녹아 있으면서도 시인의 소망이 무겁지 않게 드러나 있어 반드시 몇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인이 살아가면서 바라는 소망은 소소한 것들이며. "어디에도 없는 문장을 만들고 싶"은 간절함이며, "맥문동 꽃밭에서는 사랑에 취해야 한다/ 이대로 꽃을 베고 보랏빛 세상에 눕고 싶"(「맥문동 꽃자리」)은 일상에서 가져올 수 있는 소망들이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따스한 바람막이 하나 걸쳐주고 싶"(「겨울나무」)거나 "다시 자작자작 한 나무의 생애가 타는 소리 듣고 싶"(「자작나무 숲에 들다」)은 바람은 얼마나 작은가, 하지만 얼마나 따뜻한가. 그런 간절함은 "나도 작은 풀꽃 한 송이로 피고 싶" (「희망씨앗을 품다」)고 "누군가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했던 눈도 있"(『눈 온 날』)는 날이다.
숙명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의 기세가 등등하다
막다른 벽
불안의 벽
몸을 내준 나무는 숨이 막힌다
저 독불장군의 서슬 퍼런 길에 들어선
빗소리
바람소리
달빛소리
점령군의 말발굽처럼 소리만 들어도 나무는 질색한다
전부를 내준다는 건 참 못할 일이지만
반항하면 끝이다
죽은 듯이 살아가지만
나무는 죽어서도
저 모진 칡넝쿨을 벗어나지 못하겠다
잡히면 휘감아야 하는 너의 숙명에 갇힌
나의 절규를 오늘도 듣는다
숨 좀 쉬고 싶다!
- 「절규」 전문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 시의 마지막 "숨 좀 쉬고 싶다!"라는 절규를 들으면서 "숙명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의 기세에" 눌린 모습이 어쩌면 코로나19에 쩔쩔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서 이 시가 마음 한켠을 아프면서도 쓸쓸하게 하였다. 숨을 쉬고 싶은 소망, 절규가 빨리 이루어지를 바라본다.
2. 엄마의 숨결을 찾아서
이 시집 속에는 엄마에 대한 사모곡이 너무 많다. 이 몸을 낳아준 엄마는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존재이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리움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다. 그 시편들만 바라보아도 엄마의 숨결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의 씨앗들이 잘 보이는 그래서 숨결을 흩뜨리듯 내 생명의 원천으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동백아가씨를 좋아하던/ 우리 엄마만 봄의 자리를 비웠다/ 붉은 동백 꽃길을 적시며/ 눈물 많은 엄마가 그렁그렁/봄비로 울고 있다."(「동백아가씨」)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마음속으로 '동백아가씨'를 불렀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안 계신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었을 것 같다. 추억은 내게 존재하는 한 엄마는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편들보다는 훨씬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다.
"지우고 싶은 슬픔을 메우던 색색의 실들"(「시간을 건너는 반짇고리」)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은 낙타만 했을까" '반짇고리'를 통해서 시인은 늘 안쓰럽고 그리운 엄마를 찾아가곤 한 것이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인은 아래 작품 두 편을 통하여 절정에 이른다. 엄마의 삶을 경유하여 시인은 소망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도 늘 엄마를 닮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저리고 애달다. 찬찬히 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읽어보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이가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바라만 봐도 애처롭던 엄마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비수로 가슴을 도려내 놓고도
참으며, 웃으며
바보 같은 엄마처럼 살고 있다
오래도록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오래도록 좋은 곳만 가고 싶었다
백 년은 넘깁시다!
백세인생을 노래하며
좀 더 곁에 함께하고 싶다고
연도 맺지 않은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다
내가 가장 닮은 이가 있다
품이 넓은 접시꽃이 되어
사랑밖에 모르는 나비 한 마리 안으려는
가슴 여린 여인이다.
- 「접시꽃 사랑ㆍ2」전문
'접시꽃 사랑'에 이어 「엄마가 가버렸다」에서는 "날마다 지은 하얀 고치 집"에서 엄마가 저 멀리 다른 행성으로 가기 전에 슬픔이 매듭지어지기 전에 "멀고 먼 강 건너기 전에/ 내 이름 아주 잊고 가기 전에/ 엄마가 지은 고치 집 한 채 내게 주고 가라 했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코로나가 막아버린 그 집에서
주소도 남기지 않은 채 엄마는 가버렸다.
-「엄마가 가버렸다」 일부
'어머니의 우물' 이 작품을 통하여 시인은 엄마의 힘든 삶을 들여다본 것일까. 결코 우물 밖으로 튀어나갈 수 없는 엄마의 삶은 온전하지는 않았다. 이번 작품을 조용히 음미하다보면 서러움 한 자락으로 "한 번도 꽃인 적 없는"엄마의 일생을 안타깝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를 비교하면서 음미를 해보기 바란다.
날마다 어머니가 퍼낸 우물이 깊다
평생 어머니의 우물은 눈물이었다
날마다 길어 올리는 두레박에 매달려
쓰디쓴 세상에 아프게 매달려 있었다
겨우 열세 살인 딸을 민며느리로 남의 집에 보내고
재가한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날마다 우물 밖으로 물방울처럼 튕겨 나가길 꿈꿨다
우물은 덫이었다
어머니의 가슴을 쥐어짜는 바람이었다
검은콩처럼 타들어 가는 가슴을 누르며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집 나간 아버지 그림자를 안으며 울었다
그때 어머니의 세상은 우물 안의 어둠처럼 막막했다
우물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간 어머니의 두레박이 아렸다
한 번도 꽃인 적 없는 어머니 품에 아무도 없었다
끝까지 우물이 한번 출렁이다 멈추었을 뿐이다.
- 「엄마의 우물」 전문
'위대한 저녁'을 먹기 위해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은 엄마의 손 국시 한 그릇에 여름이 풍덩 빠졌다. "매캐한 모깃불에 타오르던 그 저녁이 위대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 안 것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요양원 유리벽 너머/ 누워 지내던 엄마를 하늘로 보낸 슬픔을 눈물로 비벼 넣고// 하루가 잠시나마 걱정 없게 된 날// 마스크를 벗은 입이 미어져라 쌈 싸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웃음 없는 날을 접어가며 살아내서 다행이다." 이렇게 엄마를 보내는 심정과 걱정 없게 된 하루를 '다행이다' 라고 토로하는 시인의 심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접시꽃 사랑·1' 에서는 엄마의 아픈 삶이 나비를 사랑하는 접시꽃으로 표출되어, 잔잔한 서정임에도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준다.
붉은 접시꽃에 나비 한 마리 앉히려고
엄마는 집 나간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구나
하늘로, 하늘로 서러운 울음소리도 못 내고
바람이 손목을 뿌리친 아버지 미운 그림자만 바라보았구나
붉은 접시꽃에 나비 한 마리 날아오게 하려고
엄마는 그토록 푸른 대궁 높이 꽃을 피우려 했구나
엄마가 없으면 접시꽃도 없겠네
숨어들 나비도 없겠네.
-「접시꽃 사랑·1」 전문
그 외 「여름이 지나간다」와 「배불뚝이 단지」 등에서도 엄마와의 추억과 아픔이 이어진다. 이리 진한 모성을 기리는 것은 이제 시인도 그런 아픔을 온전히 체득하여 느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3. 시인의 서정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시인의 시적 정서는 시인의 살아온 배경과 사고 그리고 생활환경에서 오는 서정에 의해서 깊어진다. 권옥희 시인의 시 속에 바다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거나 바다에 자주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붉은 등대'에서는 등대가 주는 안식이나 등대가 가진 이미지를 통하여 시인의 삶과 사랑과 이별의 모습을 잘 드러내었다. 조용히 음미를 해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시이다.
나는 밤새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불빛으로 지켜보았다
하늘과 바다를 잇는 수많은 이별법
밤낮없이 바다를 드나들던 가벼운 것들의 이별법
어긋난 운명으로 서로를 잡지 못해 한쪽을 놓아버리고
뜬눈으로 바다를 헤집는 집어등이 파랗게 질려갔다
너에게 닿지 못한 내 눈길이 절망으로 가득할 때
다 놓았다 생각한 네가 바다마저 놓으면
나는 어디에서 또 젖은 꿈을 꿀 것인가
오늘 나는 적당히 오르는 파도를 받아들이면서
너를 안은 긴장이 높아졌다 스러졌다
네가 다시 사랑할 내일의 꿈을 안고 돌아간 뒤
나는 밤새 움켜쥔 주먹을 풀며
해가 바다를 삼키는 걸 지켜보았다
붉어진 눈을 감고 나도 쉬어야겠다.
- 「붉은 등대」 전문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성을 다양할 것이나 또한 공통적으로 껴안고 사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찰나였음을 느끼는 것도 지난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라고 느끼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이 교차하였을까. 그걸 더 깊이 느끼고 아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시인인 것이다. "세계의 문이 닫힌다/ 쫓기듯 달려와서 지는 해를 끌어안은 바다가 닫힌다"라는 깊은 사유를 끌어안기까지 시인은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깊이 관찰하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결국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조금씩 저물어가는 것이다.
아래 작품은 시인의 녹녹하지 않은 삶 중에서 가장 아픈 날이며 그걸 잊고 싶어 바다까지 간 날이다. "사랑이 오면 죽는 연습입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릅니다"라는 사유는 시인의 체험과 통찰이 없으면 끌어낼 수 없는 문장이다. 이 시를 조용한 밤에 읽어보시라.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깊은 물결이 흐를 것이다.
버릴 게 많아 바다까지 갔습니다
내 그림자도 버리고자 했습니다
사는 데도 무진장의 연습이 필요한가 봅니다
사랑이 죽으면 사는 연습이 필요하고
사랑이 오면 죽는 연습입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릅니다
사랑이 죽었다고 온종일 숨어서 숨 쉬었던 날입니다
담판을 지어야 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버려진 것은 불려오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랬습니다
편히 앉아보지도 못하고 보낸 하루
잊을 만한 건 잊어도 좋다고
억지로 잊는 척하지 말자고.
- 「잊을 만하면」 전문
아래 두 작품도 참으로 아껴서 읽고 싶은 시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다스시고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하였다. 그것은 서로의 공감대와 유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면서 읽을 수 있는 시가 진정성이 있는 시이다. 가장 어두운 날에 이 두 편의 시를 마음에 얹어놓고 읽어보시라.
시작은 끝을 드러내지 않는다
흰머리가 머리에 앉기 시작하더니
하얀 털 하나가 반짝하며 눈썹에 앉았다
흰머리의 시작을 부지런히 끊어냈다
파뿌리로 가는 길을 염색으로 완벽하게 차단했다
아니, 흰머리의 비극은 이제 시작이다
내 몸의 가시를 뽑아내듯
백세의 불협화음이 나를 노려보는
나이 밖으로 튕겨져 나와
도리 없이 젊음을 바른다
결코 시작은 끝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작에 대한 단상斷想」 전문
끝내는 바닥으로 간다
바닥이 싫어도 바닥으로 간다
꽃도 지면 바닥으로 간다
목백일홍 꽃이 바닥을 붉게 물들인다
귓가에 속삭인 유혹은 얼마나 달콤했으랴
그 깊이가 얼마인지 한번 닿으면
다시 못 올 걸 알면서도 바닥으로 간다
나는 너의 바닥을 보았을까
너는 내 바닥을 얼마나 알까
바닥까지 와서 바닥을 짚고서야 여기가 바닥이구나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갈 곳 없는 곳이 바닥이구나
추락의 끄트머리에서야 보이는 바닥
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사랑의 재고는 없다
바닥은 다시 길이 된다
탈탈 털려 한계에 부딪힌 정신을 깨우며
바닥에 누운 시간이 일어선다
무너진 바닥에서도 꽃은 핀다
더 이상 바닥에 닿지 말라고
곳곳에 씽크홀이 생겨난다.
-「바닥論」 전문
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은 참 많다. '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눈물 위로 걸어온 시간', '희뿌옇다', '메타세쿼이아', '꽃무릇의 이별법', '첫눈 온다'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하여 시인의 내면세계를 끌어온 작품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권옥희 시인의 시편들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온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뿐인 이 지구별에서 삶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그 존재가 좀 더 가치 있도록 사람과 사물에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자신과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볼 때 권옥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충분히 독자에게 그 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시인의 세심하면서도 철학적인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목차
목차
〈1부〉
1. 위대한 소금창고
2. 동백아가씨
3. 구름의 땅
4. 단추의 원願
5. 맥문동 꽃자리
6. 시작에 대한 단상
7. 주름은 늙지 않는다
8. 시간을 건너는 반짇고리
9. 택배아저씨
10. 바닥을 생각함
11. 순간이다
12. 절규
13. 붉은 등대
14. 겨울나무
15. 실미도, 그 서늘함
〈2부〉
1. 꽃무릇의 이별법
2. 자작나무 숲에 들다
3. 접시꽃 사랑ㆍ2
4. 안반데기 그곳엔
5. 내가 너에게 가서
6. 가을에 말을 걸다
7. 쑥떡
8. 사랑은 찰나였다
9. 메타세쿼이아 길
10. 내 손을 잡아줘
11. 땅을 보며 걷다
12. 엄마가 가버렸다
13. 첫눈 온다
14. 참 좋은 하늘
15. 자리 비우기
〈3부〉
1. 달 속에 찍힌 주소
2. 당신 괜찮은가요?
3. 어머니의 우물
4. 여름이 지나간다
5. 위대한 저녁
6. 배불뚝이 단지
7. 사랑의 플래카드
8. 흔들리는 골목
9. 겨울 초입
10. 저문다
11. 잊을 만하면
12. 나는 포구로 갔다
13. 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14. 이름을 지켜낸 맹개마을
15. 희망씨앗을 품다
〈4부〉
1. 다행이다ㆍ1
2. 접시꽃 사랑ㆍ1
3. 청송 가는 길
4.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까닭
5. 거리두기
6. 다행이다ㆍ2
7. 눈물 위로 걸어온 시간
8. 그 가을의 기록
9. 비가 오는 날에
10. 안동 간 고등어
11. 희뿌옇다
12. 눈 온다
13. 12월
14. 시간의 주문에 묶인 하회마을
15. 이별의 안동역
1. 위대한 소금창고
2. 동백아가씨
3. 구름의 땅
4. 단추의 원願
5. 맥문동 꽃자리
6. 시작에 대한 단상
7. 주름은 늙지 않는다
8. 시간을 건너는 반짇고리
9. 택배아저씨
10. 바닥을 생각함
11. 순간이다
12. 절규
13. 붉은 등대
14. 겨울나무
15. 실미도, 그 서늘함
〈2부〉
1. 꽃무릇의 이별법
2. 자작나무 숲에 들다
3. 접시꽃 사랑ㆍ2
4. 안반데기 그곳엔
5. 내가 너에게 가서
6. 가을에 말을 걸다
7. 쑥떡
8. 사랑은 찰나였다
9. 메타세쿼이아 길
10. 내 손을 잡아줘
11. 땅을 보며 걷다
12. 엄마가 가버렸다
13. 첫눈 온다
14. 참 좋은 하늘
15. 자리 비우기
〈3부〉
1. 달 속에 찍힌 주소
2. 당신 괜찮은가요?
3. 어머니의 우물
4. 여름이 지나간다
5. 위대한 저녁
6. 배불뚝이 단지
7. 사랑의 플래카드
8. 흔들리는 골목
9. 겨울 초입
10. 저문다
11. 잊을 만하면
12. 나는 포구로 갔다
13. 그리운 건 거기 다 있다
14. 이름을 지켜낸 맹개마을
15. 희망씨앗을 품다
〈4부〉
1. 다행이다ㆍ1
2. 접시꽃 사랑ㆍ1
3. 청송 가는 길
4.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까닭
5. 거리두기
6. 다행이다ㆍ2
7. 눈물 위로 걸어온 시간
8. 그 가을의 기록
9. 비가 오는 날에
10. 안동 간 고등어
11. 희뿌옇다
12. 눈 온다
13. 12월
14. 시간의 주문에 묶인 하회마을
15. 이별의 안동역
저자
저자
권옥희
〈약력〉
ㆍ 경북 안동 임동출생
ㆍ 1992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으로 등단
ㆍ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문학의 집 ㆍ 서울 회원
ㆍ 2004년 강서문학 본상 수상
ㆍ 2017년 강서문학 대상 수상
ㆍ 시집『마흔에 멎은 강』,『그리움의 저 편에서』
공저『별난 것에 대한 애착』,『장미차를 생각함』등 다수
ㆍ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ㆍ 독서논술 지도자
ㆍ 202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디딤돌창작지원금 수혜
ㆍ 경북 안동 임동출생
ㆍ 1992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으로 등단
ㆍ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문학의 집 ㆍ 서울 회원
ㆍ 2004년 강서문학 본상 수상
ㆍ 2017년 강서문학 대상 수상
ㆍ 시집『마흔에 멎은 강』,『그리움의 저 편에서』
공저『별난 것에 대한 애착』,『장미차를 생각함』등 다수
ㆍ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ㆍ 독서논술 지도자
ㆍ 202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디딤돌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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