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월과의 만남(양장본 Hardcover)
박목월 대표시 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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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원 교수가 들려주는 박목월 대표시 평설
자기 세계를 갱신해 가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 시인
박목월은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교과서에 실려 전 국민에게 읽혔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많은 작품이 낭송되었다. 그런데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작품은 주로 초기시들이다. 저자의 판단으로는 그의 후기 시들은 초기작보다 훨씬 훌륭한데 그는 늘 ?나그네?나 ?청노루?의 시인으로 인식되었다. 박목월은 6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세계를 바꾸어 가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박목월만큼 지속적으로 자기 세계를 갱신해 가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 시인은 그의 세대에 드물다. 그의 시작 태도를 알려주는 일화가 후배시인들의 입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제자 벌 시인이 선생님의 작품 중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오늘 가서 쓸 작품이 내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답변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는 어제보다 더 좋은 시를 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은 작품으로 실현되었다. 박목월의 시는 초기 시도 좋지만 중기 이후의 시가 더 좋다.
그가 60대 초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적 긴장이 유지된 상태에서 문학적 생애를 완결했다는 점은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와 대조적인 자리에 있는 서정주와 대비된다. 서정주는 중기 이전의 시가 후기의 시보다 더 뛰어나고 박목월은 초기의 시보다 중기 이후의 시가 더 읽을 만하다.
자기 세계를 갱신해 가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 시인
박목월은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교과서에 실려 전 국민에게 읽혔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많은 작품이 낭송되었다. 그런데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작품은 주로 초기시들이다. 저자의 판단으로는 그의 후기 시들은 초기작보다 훨씬 훌륭한데 그는 늘 ?나그네?나 ?청노루?의 시인으로 인식되었다. 박목월은 6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세계를 바꾸어 가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박목월만큼 지속적으로 자기 세계를 갱신해 가고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 시인은 그의 세대에 드물다. 그의 시작 태도를 알려주는 일화가 후배시인들의 입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제자 벌 시인이 선생님의 작품 중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오늘 가서 쓸 작품이 내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답변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는 어제보다 더 좋은 시를 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은 작품으로 실현되었다. 박목월의 시는 초기 시도 좋지만 중기 이후의 시가 더 좋다.
그가 60대 초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적 긴장이 유지된 상태에서 문학적 생애를 완결했다는 점은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와 대조적인 자리에 있는 서정주와 대비된다. 서정주는 중기 이전의 시가 후기의 시보다 더 뛰어나고 박목월은 초기의 시보다 중기 이후의 시가 더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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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는 어제보다 더 좋은 시를
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은 작품으로 실현되었다."
서정의 파문을 일으킨 75편의 작품들
이 책에 제시된 75편의 작품을 박목월의 공식적인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정의 파문을 일으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남긴 작품은 그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시가 열어주는 감성의 문을 통해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려 한 나의 태도는 전과 다름없이 유지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 작품을 제시할 때 『박목월 시 전집』에 수록된 형태를 기준 판본으로 삼아 옮겨오되, 명백한 오기는 수정하여 표기하고, 현재의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는 음성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행 한글 맞춤법에 따라 교정하여 표기했다. 박목월이 시어의 음감에 대단한 애착을 보인 시인임을 감안하여 음성적 특질이 뚜렷한 시어나 시인의 조어에 해당하는 말은 원본대로 적었다. 박목월이 하나의 단어로 의식하고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 시어들도 원본대로 표기했다. 박목월은 한자도 의미 전달을 고려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시인의 창작 의도를 고려하면 한자도 모두 노작품 배열의 순서는 시집 수록 순서대로 배열한 『박목월 시 전집』의 형태를 따랐다.
박목월 시인의 출생 연도에 대해 기존의 도서에는 모두 1916년 생으로 되어 있었으나 2015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유족과 제자들이 호적 원문과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 1915년생으로 확정했다. 이 책에서도 시인의 나이를 언급할 때 1915년 출생을 기준으로 삼아 언론 매체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산정했다. 그것은 출생 일자는 생각하지 않고 해당 연도와 출생 연도만 고려하는 계산법이다. 책 뒤에 붙인 시인 연보에도 그런 방식으로 나이를 제시했다. 연보는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하여 사실로 확인될 만한 사항만 제시했다. 특히 서지 사항은 원전을 참조하여 최대한 정확히 작성하려고 했다.
박목월 시 정본 확정의 원칙
박목월의 시는 다른 시인보다 많은 개작 과정을 거쳤다. 개작의 양상은 음절 하나의 교체에서부터 행갈이의 변화, 시 형태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박목월은 그의 자작시 해설에서 스스로 "'말'에 대한 애착이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의아할 정도로 강했었다."라고 고박할 정도였다. 그는 주로 말의 어감과 그것이 환기하는 음악적 효과를 고려하여 시어를 수정하고 교체했다.
박목월이 생전에 간행한 시집은, 동시집과 시선집을 제외하면, 공동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1946), 『산도화』(영웅출판사, 1955), 『난·기타』(신구문화사, 1959), 『청담』(일조각, 1964), 『어머니』(삼중당, 1967),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1968), 『무순』(삼중당, 1976) 등 7권이 있고 자신의 시 대부분을 수록한 『박목월 자선집』(삼중당, 1973)의 시선(詩選) 두 권이 있다. 이 시집의 작품들은 대부분 시인이 처음 지면에 발표한 상태에서 일정한 개작 과정을 거쳐 시집에 정착되었다.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도 처음 시집의 형태에서 크건 작건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 수록되었다. 말하자면 이 선집은 시인에 의해 수정된 최종 본에 해당한다.
박목월은 시선집 서문에서 수정을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여섯 권 시집의 작품을 수록했다고만 밝히고 "추려 버리고 싶은 것이 몇 편 있었으나, 그것마저 뽑아 버릴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말의 행간에서 처음에 발표한 작품의 미흡한 부분을 수정했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여섯 권 시집'이라고 한 것은 『어머니』는 제외하고 『경상도의 가랑잎』 이후 발표작을 『사력질』로 칭하여 여섯 권으로 산정한 것이다. 박목월이 생각할 때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연작이므로 후세에 남길 작품으로서의 선집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사력질?은 『현대시학』에 1970년 5월부터 1971년 4월까지 연재한 연작 15편의 제목인데 박목월은 이 표제 아래 60편의 시를 시선집에 수록했다. 『경상도의 가랑잎』 이후 낼 시집의 제목을 잠정적으로 『사력질』로 정한 것 같다.
박목월의 시가 최초 발표 본에서 시집에 정착되고 그것이 다시 시선집에 수록되는 각각의 개별적 사항에 대해서는 서지 사항에 바탕을 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인의 개작 과정을 살펴보고 정본 확정에 필요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겠다. 그러한 원칙에 의해 저자가 이 책에서 평설하게 될 정본의 형태를 예시하려 한다.
1939년 9월 『문장』 지에 처음 추천된 작품에 ?그것은 연륜이다?가 있다. 박목월은 이 작품을 ?연륜?이라는 작품으로 전면 개작하여 『문장』에 다시 투고하여 정지용에 의해 두 번째 추천을 받았다. 박목월이 자작시 해설에서 이 두 작품을 예시하며 "개작한 것이 첫 작품보다 산만한 것 같다"고 했지만 첫 작품인 ?그것은 연륜이다?는 이후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지 못하고 『문장』 발표 본만으로 생애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연륜?은 『문장』 발표 본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청록집』에 수록되고 그것이 다시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산도화』에 수록되고 최종적으로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는 과정을 밟았다. 그 네 차례의 발표 본을 비교해 보면 『청록집』에서 『산도화』로 이동할 때 수정이 많았고 『박목월 자선집』 본은 오히려 『청록집』 본을 되살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산도화』는 『청록집』의 15편 중 9편을 재수록했는데, 기존의 작품을 다시 수록한다는 점 때문에 무리하게 수정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도화』에 수록된 ?산도화山桃花 1?의 최초 발표 지면은 『예술부락』 2집(1946. 3)이고 발표 지면의 제목은 ?산山은 구강산九江山?으로 되어 있다. 『예술부락』 발표 본을 원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山은
九江山
桃源가는 길가에
길은
초로길
九曲八折 絶壁에
물은
玉流洞
봄눈녹어 흐르는대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고 있었다
?山은 九江山? 전문
이 시를 『산도화』의 ?산도화 1?과 비교해 읽으면 환골탈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정돈되어 시집에 수록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산도화』에는 ?구강산?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두 편이 있지만 그 작품들은 위의 작품과 아무 관련이 없다. 위의 시는 분명 ?산도화 1?의 처음 형태에 해당한다. 『산도화』에 수록된 ?산도화 1?은 다음과 같다.
山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이
내려와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전문
초고에 있었던 "桃源가는 길가에"나 "九曲八折 絶壁에" 같은 상투적인 구절은 사라졌고 정지용의 체취가 풍기는 "옥류동"이라는 시어도 정리되었다. '산은 구강산', '눈은 봄눈 녹아 흐르는', '사슴은 발을 씻는다'의 의미 구조가 남아 전이되면서 '산도화 송이 버는데'가 새로 개입해서 한 편의 시로 완성된 것이다. 이 중간 단계의 양상을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두 편의 시에 놓인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시인이 벌인 의미와 음감에 대한 치열한 탐구의 공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는 평범한 작품을 최고의 완성품으로 만들기 위해 전심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완성품을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하면서 다시 처음 발표 본의 '사슴은 암사슴'의 의미와 심상을 다시 가져와 "사슴은/암사슴/발을 씻는다."로 정착시켰다. 그의 초고 원작이 남아 있었는지 『예술부락』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시인은 30년 세월 가까운 저편에 썼던 구절을 다시 가져와 완성본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누구든 시인의 선택이 옳았다고 공감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박목월 자선집』 수록 작품이 시인이 정성을 들여 교열한 최종 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남호 교수가 편찬한 『박목월 시 전집』(민음사, 2003)이 『박목월 자선집』을 기존 판본으로 삼아 작품을 수록하고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것이어도 그 후에 나온 『무순』에 수록된 작품은 『무순』의 표기를 따른다고 원칙을 정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 이상호 교수는 이 전집에 연작시집 『어머니』와 연작시 ?사력질?이 제외되었다고 지적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이상호 교수도 언급했다시피 『어머니』는 박목월 시인 자신이 자선시집에 넣지 않았다. 그래서 『박목월 시 전집』에도 수록하지 않았을 터인데, 책의 표제로 전집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독자들을 위해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을 텐데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다.
그러나 ?사력질? 연작은 『박목월 시 전집』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시집 『무순』은 박목월이 직접 기획하여 간행한 시집인데, 『박목월 자선집』 '사력질' 부에 있었던 작품들을 전부 해체 재구성하여 시집에 수록했다. 이 구성과 배치는 시인 자신이 한 것이고 그렇게 한 시인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목월은 자선집 '사력질' 부에 있던 13편의 작품을 『무순』에 수록하지 않았다. 시인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박목월 시 전집』은 이 13편까지 『무순』 파트에 수록했다. 여기에 대해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이 13편은 시집 『무순』의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연작시 ?사력질?이 제외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굳이 원칙을 따지자면 『박목월 자선집』의 13편을 왜 『무순』에 배치했느냐고 지적할 수는 있다. 여하튼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것은 그것을 정본으로 보고 전집에 수록하고 거기 없는 작품은 시집 수록 본을 정본으로 삼는다는 기본 원칙은 매우 정당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제기되는 문제는 『박목월 시 전집』의 일러두기에서 제시한 정본 선별의 기준에 대한 것이다. 앞에 제시한 원칙을 기준으로 삼되 시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일러두기에서 언급했다. '시적 완성도'라는 말이 다소 모호하게 전달될 수 있지만, 이것은 편찬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은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어서 표준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각주에서 밝혀 논의의 장으로 이끈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따라서 『박목월 시 전집』에서 『박목월 자선집』의 수록본이 아닌 형태로 제시되고 각주에 설명이 나와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정본 확정과 관련하여 별도의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상호 교수도 지적한 ?노상路上?과 ?산에서?의 경우 정본 확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노상?은 『박목월 자선집』에 "저편으로 그는 가고/이편으로 나는 가고"로 되어 있던 것이 『무순』에는 뒤의 '가고'가 빠지고 "저편으로 그는 가고/이편으로 나는"으로 되어 마치 조판 과정에서 '가고'가 빠진 것처럼 표기되었다. 그래서 『박목월 시 전집』은 각주에서 사정을 밝히고 『박목월 자선집』의 형태로 수록했다. 그런데 다음 시행과의 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편으로 나는"으로 되어도 다음에 나오는 "동서로 하늘 끝이 아득한데"와 의미가 연결되기 때문에 시상 파악에 지장이 없음을 알게 된다. 또 ?산에서?의 경우 "번쩍, 섬광이 눈을 쏜다."가 『무순』에서 쉼표가 빠지고 "번쩍 섬광이 눈을 쏜다."로 표기되었는데, 『박목월 시 전집』은 이것도 앞의 형태가 더 낫다고 판단하여 쉼표가 있는 상태로 표기했다. 이 시에서 쉼표가 중간에 나오는 부분이 여기뿐임을 고려하면 쉼표를 뺀 『무순』의 형태가 자연스러운데 왜 앞의 형태가 낫다고 판단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작품의 경우도 다른 사례처럼 『무순』의 형태로 수록하고 각주에서 『박목월 자선집』과의 차이를 밝히면서 편찬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회귀심回歸心?의 정본 확정도 예외적인 경우다. 이 작품은 『청담』에 수록되고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었는데, 이 시의 앞부분이 『청담』의 형태가 더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앞의 형태로 제시했으니 원칙을 어긴 경우다. 『청담』과 『박목월 자선집』의 형태를 원본 그대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어딜 가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어디서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 (『청담』)
어딜 가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
어디서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박목월 자선집』)
『박목월 시 전집』의 편찬자는, 화자가 원효로 행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러기 위해서 원효로 행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이 있음을 이야기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기다린다'라는 말이 나와야 그 다음에 나오는 "하루 종일 거리를 서성거렸고"와 뒷부분에 반복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전집 편찬자가 할 일이 아니라 시인이 하는 일이다. 박목월은 자신의 자선집을 내면서 『청담』의 그 구절을 위와 같이 고쳤고 그렇게 고쳐도 뒤에 나오는 시행들과 의미가 연결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버스를 기다린 후에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 시간 순서에 맞기 때문에 시인은 위와 같이 고쳤을 것이다. 이것을 편찬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원래의 것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 관한 한 『박목월 자선집』에 수정 표기된 부분을 무시하고 『청담』 표기대로 수록하여 "나는 늘 마음이 가라앉았다"를 "나는 늘 마음이 갈앉았다"로, "끝없는 부드러운 그 손을"도 "끝없이 부드러운/그 손을"로 표기한 것도 잘못이다. 이 작품을 『청담』 판본 형태로 굳이 수록한 데에는 편찬자가 지닌 개인적인 감상 체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칙은 원칙대로 지키면서 자신의 의견은 각주에서 밝히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룰 75편의 작품은 『박목월 시 전집』에 수록된 형태를 기준 판본으로 삼아 인용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의 명백한 오기는 수정하여 인용하고, 앞에서 언급했던, 원칙에 벗어난 표기나 착오가 분명한 표기는 각주를 달고 수정하여 표기할 것이다. 『청담』에 수록된 ?전신轉身?의 경우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면서 문장 부호가 바뀌어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시의 구조가 독특해서 표기의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박목월 시 전집』은 이 작품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이 『박목월 자선집』 표기대로 수록했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문맥을 고려하여 일관성 있게 표기하고 각주에서 사정을 설명했다.
박목월이 시어의 음감에 대단한 애착을 보인 시인인 것은 알지만, 현재의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는 음성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어 표기에 맞게 수정하여 인용한다. 박목월은 한자 사용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배치했기 때문에 시인의 창작 의도를 고려하면 한자도 모두 노출해야 옳을 터이지만 현재의 독자를 위해 시의 문맥 이해에 필요한 한자만 병기하여 제시한다. 띄어쓰기의 경우 박목월이 의도적으로 하나의 단어로 의식하고 붙여 쓴 시어들이 있다. 그런 시어들은 원문대로 표기하려 한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모두 작품에 붙인 각주나 해설 본문에서 설명할 것이다.
박목월 연보
1915년 1월 6일 경상남도 고성에서 부 박필준과 모 박인재의 장남으로 출생. 경상북도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1923년(8세) 경주군 건천보통학교 입학.
1929년(14세) 건천보통학교 졸업.
1930년(15세) 4월 대구 계성학교 입학.
1934년(19세) 6월 동요 ?통·딱딱 통·짝짝?과 ?이슬비?가 윤석중이 주관하는 『어린이』 지에 '창동彰童'이라는 필명으로 실림. 창동은 '영동影童'의 오식. 같은 달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실림.
1935년(20세) 1월 『학등』에 ?달은 마술사? 발표. 3월 5일 계성학교 졸업. 5월에 경주군 동부금융조합 입사. 김동리와 교유하며 문학 창작 활동을 함.
1938년(23세) 5월 20일 유익순 여사와 결혼.
1939년(24세) 장남 동규 출생. 『문장』 신인 응모에 투고하여 정지용에 의해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문장』 9월호에 1회 추천되고 12월호에 ?산그늘?로 2회 추천됨.
1940년(25세)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이 3회 추천되어 정식으로 등단함. 12월 『문장』에 ?보리누름 때? 발표. 그러나 이듬해 4월에 『문장』이 폐간됨으로써 작품 발표의 기회를 잃음.
1942년(27세) 3월 조지훈이 경주를 방문하여 ?완화삼?을 짓고 목월은 ?나그네?로 화답함.
1945년(30세) 해방 직후 금융조합의 부이사로 승진했으나 사임하고 대구로 이사하여 모교인 계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장녀 동명 출생.
1946년(31세)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조선문필가협회 상임위원직을 맡음. 6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합동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발간. 동시집 『박영종동시집』(조선아동문화협회) 간행.
1947년(32세) 차남 남규 출생.
1948년(33세) 8월 서울로 이사함.
1949년(34세) 이화여고 교사로 취임.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을 열고 11월에 학생잡지 『여학생』을 창간함. 12월 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하여 사무국장을 맡음.
1950년(35세) 1월에 『시문학』 1호를 창간함. 5월 산아방에서 윤석중의 동시집 『아침까치』를 간행함. 6월에 『시문학』 2호를 발간함.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 한국문학가협회의 별동대가 조직되자 사무국장을 맡음
1951년(36세) 1·4후퇴로 다시 대구로 피난하여 공군종군문인단 편수관 역임. 삼남 문규 출생.
1953년(38세) 사남 신규 출생. 환도 후 서라벌예대와 홍익대 강사로 출강.
1955년(40세) 12월 첫 개인 시집 『산도화』(영웅출판사) 출간.
1956년(41세) 『산도화』로 제3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3월 2일에 시상식 개최. 9월부터 홍익대학 전임강사로 강의함.
1958년(43세) 9월 자작시 해설서 『보라빛 소묘』(신흥출판사) 출간. 12월 아우 박영호 사망.
1959년(44세) 4월 한양대학교 조교수로 취임. 9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취임. 12월 시집 『난·기타』(신구문화사) 간행.
1961년(46세) 12월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문원사) 출간.
1964년(49세) 12월 시집 『청담』(일조각) 발간.
1967년(52세) 10월 연작시집 『어머니』(삼중당) 발간
1968년(53세) 5월 『청담』으로 문교부 문예상 본상 수상. 9월 한국시인협회 회장 취임. 11월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출간.
1969년(54세) 4월 서울시 문화상 수상. 5월부터 어느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오늘의 한국시인집'을 간행하기 시작하여 1971년까지 3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함.
1972년(57세) 11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3년(58세) 1월 『박목월 자선집』(삼중당) 10권 간행. 10월 월간 시지 『심상』 창간.
1976년(61세) 1월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취임. 11월 시집 『무순』(삼중당) 발간.
1978년(63세) 3월 24일 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영면. 용인 모란공원 묘원에 안장.
1979년 1월 미망인 유익순 여사에 의해 신앙시 모음집 『크고 부드러운 손』 간행.
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은 작품으로 실현되었다."
서정의 파문을 일으킨 75편의 작품들
이 책에 제시된 75편의 작품을 박목월의 공식적인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정의 파문을 일으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남긴 작품은 그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시가 열어주는 감성의 문을 통해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려 한 나의 태도는 전과 다름없이 유지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 작품을 제시할 때 『박목월 시 전집』에 수록된 형태를 기준 판본으로 삼아 옮겨오되, 명백한 오기는 수정하여 표기하고, 현재의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는 음성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행 한글 맞춤법에 따라 교정하여 표기했다. 박목월이 시어의 음감에 대단한 애착을 보인 시인임을 감안하여 음성적 특질이 뚜렷한 시어나 시인의 조어에 해당하는 말은 원본대로 적었다. 박목월이 하나의 단어로 의식하고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 시어들도 원본대로 표기했다. 박목월은 한자도 의미 전달을 고려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시인의 창작 의도를 고려하면 한자도 모두 노작품 배열의 순서는 시집 수록 순서대로 배열한 『박목월 시 전집』의 형태를 따랐다.
박목월 시인의 출생 연도에 대해 기존의 도서에는 모두 1916년 생으로 되어 있었으나 2015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유족과 제자들이 호적 원문과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 1915년생으로 확정했다. 이 책에서도 시인의 나이를 언급할 때 1915년 출생을 기준으로 삼아 언론 매체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산정했다. 그것은 출생 일자는 생각하지 않고 해당 연도와 출생 연도만 고려하는 계산법이다. 책 뒤에 붙인 시인 연보에도 그런 방식으로 나이를 제시했다. 연보는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하여 사실로 확인될 만한 사항만 제시했다. 특히 서지 사항은 원전을 참조하여 최대한 정확히 작성하려고 했다.
박목월 시 정본 확정의 원칙
박목월의 시는 다른 시인보다 많은 개작 과정을 거쳤다. 개작의 양상은 음절 하나의 교체에서부터 행갈이의 변화, 시 형태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박목월은 그의 자작시 해설에서 스스로 "'말'에 대한 애착이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의아할 정도로 강했었다."라고 고박할 정도였다. 그는 주로 말의 어감과 그것이 환기하는 음악적 효과를 고려하여 시어를 수정하고 교체했다.
박목월이 생전에 간행한 시집은, 동시집과 시선집을 제외하면, 공동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1946), 『산도화』(영웅출판사, 1955), 『난·기타』(신구문화사, 1959), 『청담』(일조각, 1964), 『어머니』(삼중당, 1967),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1968), 『무순』(삼중당, 1976) 등 7권이 있고 자신의 시 대부분을 수록한 『박목월 자선집』(삼중당, 1973)의 시선(詩選) 두 권이 있다. 이 시집의 작품들은 대부분 시인이 처음 지면에 발표한 상태에서 일정한 개작 과정을 거쳐 시집에 정착되었다.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도 처음 시집의 형태에서 크건 작건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 수록되었다. 말하자면 이 선집은 시인에 의해 수정된 최종 본에 해당한다.
박목월은 시선집 서문에서 수정을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여섯 권 시집의 작품을 수록했다고만 밝히고 "추려 버리고 싶은 것이 몇 편 있었으나, 그것마저 뽑아 버릴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말의 행간에서 처음에 발표한 작품의 미흡한 부분을 수정했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여섯 권 시집'이라고 한 것은 『어머니』는 제외하고 『경상도의 가랑잎』 이후 발표작을 『사력질』로 칭하여 여섯 권으로 산정한 것이다. 박목월이 생각할 때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연작이므로 후세에 남길 작품으로서의 선집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사력질?은 『현대시학』에 1970년 5월부터 1971년 4월까지 연재한 연작 15편의 제목인데 박목월은 이 표제 아래 60편의 시를 시선집에 수록했다. 『경상도의 가랑잎』 이후 낼 시집의 제목을 잠정적으로 『사력질』로 정한 것 같다.
박목월의 시가 최초 발표 본에서 시집에 정착되고 그것이 다시 시선집에 수록되는 각각의 개별적 사항에 대해서는 서지 사항에 바탕을 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인의 개작 과정을 살펴보고 정본 확정에 필요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겠다. 그러한 원칙에 의해 저자가 이 책에서 평설하게 될 정본의 형태를 예시하려 한다.
1939년 9월 『문장』 지에 처음 추천된 작품에 ?그것은 연륜이다?가 있다. 박목월은 이 작품을 ?연륜?이라는 작품으로 전면 개작하여 『문장』에 다시 투고하여 정지용에 의해 두 번째 추천을 받았다. 박목월이 자작시 해설에서 이 두 작품을 예시하며 "개작한 것이 첫 작품보다 산만한 것 같다"고 했지만 첫 작품인 ?그것은 연륜이다?는 이후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지 못하고 『문장』 발표 본만으로 생애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연륜?은 『문장』 발표 본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청록집』에 수록되고 그것이 다시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산도화』에 수록되고 최종적으로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는 과정을 밟았다. 그 네 차례의 발표 본을 비교해 보면 『청록집』에서 『산도화』로 이동할 때 수정이 많았고 『박목월 자선집』 본은 오히려 『청록집』 본을 되살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산도화』는 『청록집』의 15편 중 9편을 재수록했는데, 기존의 작품을 다시 수록한다는 점 때문에 무리하게 수정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도화』에 수록된 ?산도화山桃花 1?의 최초 발표 지면은 『예술부락』 2집(1946. 3)이고 발표 지면의 제목은 ?산山은 구강산九江山?으로 되어 있다. 『예술부락』 발표 본을 원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山은
九江山
桃源가는 길가에
길은
초로길
九曲八折 絶壁에
물은
玉流洞
봄눈녹어 흐르는대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고 있었다
?山은 九江山? 전문
이 시를 『산도화』의 ?산도화 1?과 비교해 읽으면 환골탈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정돈되어 시집에 수록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산도화』에는 ?구강산?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두 편이 있지만 그 작품들은 위의 작품과 아무 관련이 없다. 위의 시는 분명 ?산도화 1?의 처음 형태에 해당한다. 『산도화』에 수록된 ?산도화 1?은 다음과 같다.
山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이
내려와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전문
초고에 있었던 "桃源가는 길가에"나 "九曲八折 絶壁에" 같은 상투적인 구절은 사라졌고 정지용의 체취가 풍기는 "옥류동"이라는 시어도 정리되었다. '산은 구강산', '눈은 봄눈 녹아 흐르는', '사슴은 발을 씻는다'의 의미 구조가 남아 전이되면서 '산도화 송이 버는데'가 새로 개입해서 한 편의 시로 완성된 것이다. 이 중간 단계의 양상을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두 편의 시에 놓인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시인이 벌인 의미와 음감에 대한 치열한 탐구의 공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는 평범한 작품을 최고의 완성품으로 만들기 위해 전심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완성품을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하면서 다시 처음 발표 본의 '사슴은 암사슴'의 의미와 심상을 다시 가져와 "사슴은/암사슴/발을 씻는다."로 정착시켰다. 그의 초고 원작이 남아 있었는지 『예술부락』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시인은 30년 세월 가까운 저편에 썼던 구절을 다시 가져와 완성본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누구든 시인의 선택이 옳았다고 공감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박목월 자선집』 수록 작품이 시인이 정성을 들여 교열한 최종 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남호 교수가 편찬한 『박목월 시 전집』(민음사, 2003)이 『박목월 자선집』을 기존 판본으로 삼아 작품을 수록하고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것이어도 그 후에 나온 『무순』에 수록된 작품은 『무순』의 표기를 따른다고 원칙을 정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 이상호 교수는 이 전집에 연작시집 『어머니』와 연작시 ?사력질?이 제외되었다고 지적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이상호 교수도 언급했다시피 『어머니』는 박목월 시인 자신이 자선시집에 넣지 않았다. 그래서 『박목월 시 전집』에도 수록하지 않았을 터인데, 책의 표제로 전집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독자들을 위해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을 텐데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다.
그러나 ?사력질? 연작은 『박목월 시 전집』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시집 『무순』은 박목월이 직접 기획하여 간행한 시집인데, 『박목월 자선집』 '사력질' 부에 있었던 작품들을 전부 해체 재구성하여 시집에 수록했다. 이 구성과 배치는 시인 자신이 한 것이고 그렇게 한 시인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목월은 자선집 '사력질' 부에 있던 13편의 작품을 『무순』에 수록하지 않았다. 시인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박목월 시 전집』은 이 13편까지 『무순』 파트에 수록했다. 여기에 대해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이 13편은 시집 『무순』의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연작시 ?사력질?이 제외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굳이 원칙을 따지자면 『박목월 자선집』의 13편을 왜 『무순』에 배치했느냐고 지적할 수는 있다. 여하튼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된 것은 그것을 정본으로 보고 전집에 수록하고 거기 없는 작품은 시집 수록 본을 정본으로 삼는다는 기본 원칙은 매우 정당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제기되는 문제는 『박목월 시 전집』의 일러두기에서 제시한 정본 선별의 기준에 대한 것이다. 앞에 제시한 원칙을 기준으로 삼되 시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일러두기에서 언급했다. '시적 완성도'라는 말이 다소 모호하게 전달될 수 있지만, 이것은 편찬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은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어서 표준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각주에서 밝혀 논의의 장으로 이끈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따라서 『박목월 시 전집』에서 『박목월 자선집』의 수록본이 아닌 형태로 제시되고 각주에 설명이 나와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정본 확정과 관련하여 별도의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상호 교수도 지적한 ?노상路上?과 ?산에서?의 경우 정본 확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노상?은 『박목월 자선집』에 "저편으로 그는 가고/이편으로 나는 가고"로 되어 있던 것이 『무순』에는 뒤의 '가고'가 빠지고 "저편으로 그는 가고/이편으로 나는"으로 되어 마치 조판 과정에서 '가고'가 빠진 것처럼 표기되었다. 그래서 『박목월 시 전집』은 각주에서 사정을 밝히고 『박목월 자선집』의 형태로 수록했다. 그런데 다음 시행과의 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편으로 나는"으로 되어도 다음에 나오는 "동서로 하늘 끝이 아득한데"와 의미가 연결되기 때문에 시상 파악에 지장이 없음을 알게 된다. 또 ?산에서?의 경우 "번쩍, 섬광이 눈을 쏜다."가 『무순』에서 쉼표가 빠지고 "번쩍 섬광이 눈을 쏜다."로 표기되었는데, 『박목월 시 전집』은 이것도 앞의 형태가 더 낫다고 판단하여 쉼표가 있는 상태로 표기했다. 이 시에서 쉼표가 중간에 나오는 부분이 여기뿐임을 고려하면 쉼표를 뺀 『무순』의 형태가 자연스러운데 왜 앞의 형태가 낫다고 판단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작품의 경우도 다른 사례처럼 『무순』의 형태로 수록하고 각주에서 『박목월 자선집』과의 차이를 밝히면서 편찬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회귀심回歸心?의 정본 확정도 예외적인 경우다. 이 작품은 『청담』에 수록되고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었는데, 이 시의 앞부분이 『청담』의 형태가 더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앞의 형태로 제시했으니 원칙을 어긴 경우다. 『청담』과 『박목월 자선집』의 형태를 원본 그대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어딜 가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어디서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 (『청담』)
어딜 가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
어디서나 나는
元曉路行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박목월 자선집』)
『박목월 시 전집』의 편찬자는, 화자가 원효로 행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러기 위해서 원효로 행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이 있음을 이야기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기다린다'라는 말이 나와야 그 다음에 나오는 "하루 종일 거리를 서성거렸고"와 뒷부분에 반복되는 "元曉路行 버스를 기다린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전집 편찬자가 할 일이 아니라 시인이 하는 일이다. 박목월은 자신의 자선집을 내면서 『청담』의 그 구절을 위와 같이 고쳤고 그렇게 고쳐도 뒤에 나오는 시행들과 의미가 연결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버스를 기다린 후에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 시간 순서에 맞기 때문에 시인은 위와 같이 고쳤을 것이다. 이것을 편찬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원래의 것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 관한 한 『박목월 자선집』에 수정 표기된 부분을 무시하고 『청담』 표기대로 수록하여 "나는 늘 마음이 가라앉았다"를 "나는 늘 마음이 갈앉았다"로, "끝없는 부드러운 그 손을"도 "끝없이 부드러운/그 손을"로 표기한 것도 잘못이다. 이 작품을 『청담』 판본 형태로 굳이 수록한 데에는 편찬자가 지닌 개인적인 감상 체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칙은 원칙대로 지키면서 자신의 의견은 각주에서 밝히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룰 75편의 작품은 『박목월 시 전집』에 수록된 형태를 기준 판본으로 삼아 인용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의 명백한 오기는 수정하여 인용하고, 앞에서 언급했던, 원칙에 벗어난 표기나 착오가 분명한 표기는 각주를 달고 수정하여 표기할 것이다. 『청담』에 수록된 ?전신轉身?의 경우 『박목월 자선집』에 수록되면서 문장 부호가 바뀌어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시의 구조가 독특해서 표기의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박목월 시 전집』은 이 작품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이 『박목월 자선집』 표기대로 수록했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문맥을 고려하여 일관성 있게 표기하고 각주에서 사정을 설명했다.
박목월이 시어의 음감에 대단한 애착을 보인 시인인 것은 알지만, 현재의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는 음성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어 표기에 맞게 수정하여 인용한다. 박목월은 한자 사용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배치했기 때문에 시인의 창작 의도를 고려하면 한자도 모두 노출해야 옳을 터이지만 현재의 독자를 위해 시의 문맥 이해에 필요한 한자만 병기하여 제시한다. 띄어쓰기의 경우 박목월이 의도적으로 하나의 단어로 의식하고 붙여 쓴 시어들이 있다. 그런 시어들은 원문대로 표기하려 한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모두 작품에 붙인 각주나 해설 본문에서 설명할 것이다.
박목월 연보
1915년 1월 6일 경상남도 고성에서 부 박필준과 모 박인재의 장남으로 출생. 경상북도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1923년(8세) 경주군 건천보통학교 입학.
1929년(14세) 건천보통학교 졸업.
1930년(15세) 4월 대구 계성학교 입학.
1934년(19세) 6월 동요 ?통·딱딱 통·짝짝?과 ?이슬비?가 윤석중이 주관하는 『어린이』 지에 '창동彰童'이라는 필명으로 실림. 창동은 '영동影童'의 오식. 같은 달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실림.
1935년(20세) 1월 『학등』에 ?달은 마술사? 발표. 3월 5일 계성학교 졸업. 5월에 경주군 동부금융조합 입사. 김동리와 교유하며 문학 창작 활동을 함.
1938년(23세) 5월 20일 유익순 여사와 결혼.
1939년(24세) 장남 동규 출생. 『문장』 신인 응모에 투고하여 정지용에 의해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문장』 9월호에 1회 추천되고 12월호에 ?산그늘?로 2회 추천됨.
1940년(25세)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이 3회 추천되어 정식으로 등단함. 12월 『문장』에 ?보리누름 때? 발표. 그러나 이듬해 4월에 『문장』이 폐간됨으로써 작품 발표의 기회를 잃음.
1942년(27세) 3월 조지훈이 경주를 방문하여 ?완화삼?을 짓고 목월은 ?나그네?로 화답함.
1945년(30세) 해방 직후 금융조합의 부이사로 승진했으나 사임하고 대구로 이사하여 모교인 계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장녀 동명 출생.
1946년(31세)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조선문필가협회 상임위원직을 맡음. 6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합동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 발간. 동시집 『박영종동시집』(조선아동문화협회) 간행.
1947년(32세) 차남 남규 출생.
1948년(33세) 8월 서울로 이사함.
1949년(34세) 이화여고 교사로 취임.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을 열고 11월에 학생잡지 『여학생』을 창간함. 12월 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하여 사무국장을 맡음.
1950년(35세) 1월에 『시문학』 1호를 창간함. 5월 산아방에서 윤석중의 동시집 『아침까치』를 간행함. 6월에 『시문학』 2호를 발간함.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 한국문학가협회의 별동대가 조직되자 사무국장을 맡음
1951년(36세) 1·4후퇴로 다시 대구로 피난하여 공군종군문인단 편수관 역임. 삼남 문규 출생.
1953년(38세) 사남 신규 출생. 환도 후 서라벌예대와 홍익대 강사로 출강.
1955년(40세) 12월 첫 개인 시집 『산도화』(영웅출판사) 출간.
1956년(41세) 『산도화』로 제3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3월 2일에 시상식 개최. 9월부터 홍익대학 전임강사로 강의함.
1958년(43세) 9월 자작시 해설서 『보라빛 소묘』(신흥출판사) 출간. 12월 아우 박영호 사망.
1959년(44세) 4월 한양대학교 조교수로 취임. 9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취임. 12월 시집 『난·기타』(신구문화사) 간행.
1961년(46세) 12월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문원사) 출간.
1964년(49세) 12월 시집 『청담』(일조각) 발간.
1967년(52세) 10월 연작시집 『어머니』(삼중당) 발간
1968년(53세) 5월 『청담』으로 문교부 문예상 본상 수상. 9월 한국시인협회 회장 취임. 11월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출간.
1969년(54세) 4월 서울시 문화상 수상. 5월부터 어느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오늘의 한국시인집'을 간행하기 시작하여 1971년까지 3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함.
1972년(57세) 11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3년(58세) 1월 『박목월 자선집』(삼중당) 10권 간행. 10월 월간 시지 『심상』 창간.
1976년(61세) 1월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취임. 11월 시집 『무순』(삼중당) 발간.
1978년(63세) 3월 24일 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영면. 용인 모란공원 묘원에 안장.
1979년 1월 미망인 유익순 여사에 의해 신앙시 모음집 『크고 부드러운 손』 간행.
목차
목차
윤사월
청노루
삼월
나그네
가을 어스름
산도화山桃花 1
산도화 3
불국사
모란 여정餘情
봄비
야반음夜半吟
심상
사향가思鄕歌
하관下棺
당인리 근처
한정閑庭
적막한 식욕
모일某日
서가
넥타이를 매면서
춘소春宵
시
정원
뻐꾹새
효자동
배경
난
사투리
폐원廢園
갈매기집
먼 사람에게
동정冬庭
층층계
산 ㆍ 소묘 2
가정
나무
4월 상순
돌
상하上下
심야의 커피
우회로
전신轉身
회귀심
낙서
의상
만년晩年의 꿈
백국白菊
모일某日
하선夏蟬
화예花?
동행 ?하단下端에서
무제
일상사
나의 배후
노안
비유의 물
내년의 뿌리
이별가
만술 아비의 축문祝文
한계
빈 컵
나의 자시子時
하나
맨발
무제無題
왼손
밸런스
겨울 선자扇子
자수정 환상 - 돌의 시 4
무한낙하無限落下
이순
크고 부드러운 손
간밤의 페가사스
병실에서
행간行間
청노루
삼월
나그네
가을 어스름
산도화山桃花 1
산도화 3
불국사
모란 여정餘情
봄비
야반음夜半吟
심상
사향가思鄕歌
하관下棺
당인리 근처
한정閑庭
적막한 식욕
모일某日
서가
넥타이를 매면서
춘소春宵
시
정원
뻐꾹새
효자동
배경
난
사투리
폐원廢園
갈매기집
먼 사람에게
동정冬庭
층층계
산 ㆍ 소묘 2
가정
나무
4월 상순
돌
상하上下
심야의 커피
우회로
전신轉身
회귀심
낙서
의상
만년晩年의 꿈
백국白菊
모일某日
하선夏蟬
화예花?
동행 ?하단下端에서
무제
일상사
나의 배후
노안
비유의 물
내년의 뿌리
이별가
만술 아비의 축문祝文
한계
빈 컵
나의 자시子時
하나
맨발
무제無題
왼손
밸런스
겨울 선자扇子
자수정 환상 - 돌의 시 4
무한낙하無限落下
이순
크고 부드러운 손
간밤의 페가사스
병실에서
행간行間
저자
저자
이숭원
저자 이숭원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 한림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여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유심작품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노천명』,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김기림』, 『백석을 만나다』, 『영랑을 만나다』, 『갈매나무의 시인, 백석』, 『미 당과의 만남』,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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