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김학철 문학 전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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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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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 김학철의 산문을 만나다
〈김학철 문학 전집〉 여섯 번째 권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는 1987년에서 2001년 사이에 〈연변일보〉 〈장백산〉등에 발표한 산문 59편을 실은 산문집으로, 남한에서 처음 출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 연변에서 2002년에 처음 출판되었는데, 김학철은 이 책을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 그의 마지막 산문집이기도 하다.
김학철은 평생 400편이 넘게 산문을 썼다. '육칠년 동안 발표한 글이 200편을 넘었다(산문 수업)'고 할 만큼 치열하게 산문을 썼다. 김학철은 '산문 수업'에서 자신은 "루쉰의 문풍을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사물을 관찰할 때는 그 본래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루쉰의 통찰력을 중시하였다. 또한 사회 병폐를 날카롭게 해부하고자 한 루쉰의 '수술칼 정신'은 김학철의 글쓰기 정신이기도 하다.
김학철은 동서양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파헤치는 글을 썼다. 자신이 몸바친 항일 운동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살아가면서 겪은 사소한 일도 무심히 넘기지 않았다. 김학철은 동서고금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비추어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나타난 문제, 공산당 집권 뒤의 중국 사회의 문제, 인간의 양심 등 현실의 문제를 짚어냈다.
김학철은 한반도와 중국에서 격변하는 20세기를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중국에 정착해서도 모택동의 개인숭배에 맞서며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굽히지 않았다. 그런 김학철의 글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잊혀진 역사를 올바로 복원해야 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칼 쓰고 춤추기'-권력에 맞서는 풍자
'칼 쓰고 춤추기'란 말은 루쉰이 국민당 정부의 언론 통제하에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1957년 '우파분자'로 몰려 강제 노동을 하고, 《20세기의 신화》를 썼다는 이유로 '반혁명 현행범'이 되어 1967년부터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김학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24년 만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김학철은 공산당 집권 뒤 권력의 폭력성과 검열 제도 등 부조리하고 부패한 현실을 비유와 반어, 풍자적인 수법으로 비판한다. 당시 현실 문제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어려움을 '층층시하' '우리 손녀' '사은 기도' 같은 글에 썼는데, 보신주의가 만연하여 언론마저 사회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볼 수 있다. '벼슬 중독자' '한 총리와 두 대통령'에서는 자리에 연연해하는 봉건적 작태들을 풍자하고, '염치와 담 쌓으신 분들' '작가와 조방구니' 같은 글에서는 중국 조선족 문인들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한다. '창발력 만세' '얼음장이 갈라질 때' '흙내와 분내' 등의 글에서는 작가들의 사명을 강조했다. 즉 작가들은 '희생을 할 각오가 돼 있어야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예산'을 유일하게 반대한 독일의 카를 리프크네히트, 1968년 일본 국회에서 '핵 확산 방지 조약'에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시가 요시오('1표 반대')같이 인류 역사에서 자기 신념을 지킨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권력에 맹종하지 말고 신념을 지켜야 함을 역설했다.
'이른바 삼천 궁녀'에서는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과장"을 바로잡고 조선의용대 창립에 참여한 대원들 12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잘못된 역사를 복원하고 사실에 바탕한 역사 기록을 중요시하는 김학철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중국 변방에서 우리말을 힘써 지키다
김학철은 우리말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잘한 작가다. 그런 작가가 중국에서 우리말법을 지키면서도 말을 갈고 닦는 노력이 산문 전반에 나타난다.
'보스락장난' '왕청되다' '핀둥이를 쏘이다' '갈갬질' '암질러'같이 남한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고, '워리워리나 꼬독꼬독이나 매한가지 개값', '부처 밑을 기울이면 삼거웃이 드러난다', '던져 마름쇠' 같은 속담들을 적절하게 써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글 사이사이에 우리말이나 한자어, 영어식 외래어, 역사에 관련된 낱말들에 대해 작가는 세심하게 낱말 뜻을 풀어 주었다. 이는 김학철의 글을 읽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농민 등 당시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이나 영어식 말들을 풀이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고국을 떠나 오랜 세월을 다른 언어권에서 살면서 우리말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쓰려고 애써온 김학철을 느낄 수 있다.
〈김학철 문학 전집〉 여섯 번째 권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는 1987년에서 2001년 사이에 〈연변일보〉 〈장백산〉등에 발표한 산문 59편을 실은 산문집으로, 남한에서 처음 출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 연변에서 2002년에 처음 출판되었는데, 김학철은 이 책을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 그의 마지막 산문집이기도 하다.
김학철은 평생 400편이 넘게 산문을 썼다. '육칠년 동안 발표한 글이 200편을 넘었다(산문 수업)'고 할 만큼 치열하게 산문을 썼다. 김학철은 '산문 수업'에서 자신은 "루쉰의 문풍을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사물을 관찰할 때는 그 본래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루쉰의 통찰력을 중시하였다. 또한 사회 병폐를 날카롭게 해부하고자 한 루쉰의 '수술칼 정신'은 김학철의 글쓰기 정신이기도 하다.
김학철은 동서양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파헤치는 글을 썼다. 자신이 몸바친 항일 운동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살아가면서 겪은 사소한 일도 무심히 넘기지 않았다. 김학철은 동서고금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비추어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나타난 문제, 공산당 집권 뒤의 중국 사회의 문제, 인간의 양심 등 현실의 문제를 짚어냈다.
김학철은 한반도와 중국에서 격변하는 20세기를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중국에 정착해서도 모택동의 개인숭배에 맞서며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굽히지 않았다. 그런 김학철의 글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잊혀진 역사를 올바로 복원해야 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칼 쓰고 춤추기'-권력에 맞서는 풍자
'칼 쓰고 춤추기'란 말은 루쉰이 국민당 정부의 언론 통제하에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1957년 '우파분자'로 몰려 강제 노동을 하고, 《20세기의 신화》를 썼다는 이유로 '반혁명 현행범'이 되어 1967년부터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김학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24년 만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김학철은 공산당 집권 뒤 권력의 폭력성과 검열 제도 등 부조리하고 부패한 현실을 비유와 반어, 풍자적인 수법으로 비판한다. 당시 현실 문제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어려움을 '층층시하' '우리 손녀' '사은 기도' 같은 글에 썼는데, 보신주의가 만연하여 언론마저 사회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볼 수 있다. '벼슬 중독자' '한 총리와 두 대통령'에서는 자리에 연연해하는 봉건적 작태들을 풍자하고, '염치와 담 쌓으신 분들' '작가와 조방구니' 같은 글에서는 중국 조선족 문인들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한다. '창발력 만세' '얼음장이 갈라질 때' '흙내와 분내' 등의 글에서는 작가들의 사명을 강조했다. 즉 작가들은 '희생을 할 각오가 돼 있어야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예산'을 유일하게 반대한 독일의 카를 리프크네히트, 1968년 일본 국회에서 '핵 확산 방지 조약'에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시가 요시오('1표 반대')같이 인류 역사에서 자기 신념을 지킨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권력에 맹종하지 말고 신념을 지켜야 함을 역설했다.
'이른바 삼천 궁녀'에서는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과장"을 바로잡고 조선의용대 창립에 참여한 대원들 12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잘못된 역사를 복원하고 사실에 바탕한 역사 기록을 중요시하는 김학철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중국 변방에서 우리말을 힘써 지키다
김학철은 우리말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잘한 작가다. 그런 작가가 중국에서 우리말법을 지키면서도 말을 갈고 닦는 노력이 산문 전반에 나타난다.
'보스락장난' '왕청되다' '핀둥이를 쏘이다' '갈갬질' '암질러'같이 남한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고, '워리워리나 꼬독꼬독이나 매한가지 개값', '부처 밑을 기울이면 삼거웃이 드러난다', '던져 마름쇠' 같은 속담들을 적절하게 써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글 사이사이에 우리말이나 한자어, 영어식 외래어, 역사에 관련된 낱말들에 대해 작가는 세심하게 낱말 뜻을 풀어 주었다. 이는 김학철의 글을 읽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농민 등 당시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이나 영어식 말들을 풀이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고국을 떠나 오랜 세월을 다른 언어권에서 살면서 우리말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쓰려고 애써온 김학철을 느낄 수 있다.
목차
목차
추천사
한국판에 부쳐
저자의 말
사색하는 동물
이상 현상
나의 참회
이 생각 저 생각
공식 세계
구태의연
미학의 빈곤
판도라의 궤
고문 바람
담근 날짜
비유와 직설
산문 수업
통한
한 총리와 두 대통령
전사든 자살이든
거짓말쟁이의 아버지
작가와 조방구니
가면무도회
로신 위대
홍명희 문학, 그 놀라운 글재주
이와의 전쟁
우리 손녀
활동 자금
학도병 아저씨
가서(家書) 15행
드레퓌스 사건
악마 부스
층층시하
'쌘다피'
려포(呂布) 현상
1표 반대
사은 기도
주어진 공간
들을 이 짐작
작품도 상품
창발력 만세!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
《해동 연대(解凍年代)》
돌베개와 벽돌베개
벼슬 중독자
나의 고뇌
과장법 가지가지
얼음장이 갈라질 때
유행병 시대
염치와는 담 쌓으신 분들
역사 비빔밥
할애비 감투
천당과 지옥 사이
흙내와 분내
활동사진관식 수필
밀령주의라는 유령
이른바 삼천 궁녀
맹견 주의
미움을 받으며 크는 사람들
'우표' 좀 더
길이란 본래 없었다
장기쪽 인생
골라잡으시라
벽
부록
김학철 연보
한국판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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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잡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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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김학철 연보
저자
저자
김학철
본명은 홍성걸(洪性杰). 1916년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중국 상해로 탈출, 김원봉 휘하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항일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나가사키형무소에서 4년 동안 복역했다.
옥중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고 1945년 일본이 투항하여 출옥했다. 서울에서 조선독립동맹에 참여, 단편 〈지네〉(1945년)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그 뒤 평양에서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1950년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2001년 9월 25일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격정시대》(1986년), 《20세기의 신화》(1996년), 소설집 《무명소졸》(1989년), 《태항산록》(1989년),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년), 《나의 길》(1996년),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년),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년),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등 이 밖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옥중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고 1945년 일본이 투항하여 출옥했다. 서울에서 조선독립동맹에 참여, 단편 〈지네〉(1945년)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그 뒤 평양에서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1950년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2001년 9월 25일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격정시대》(1986년), 《20세기의 신화》(1996년), 소설집 《무명소졸》(1989년), 《태항산록》(1989년),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년), 《나의 길》(1996년),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년),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년),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등 이 밖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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