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원전과 함께 읽는 고사성어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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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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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서문 ]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봄이 오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전자의 답변은 소위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그간 우리가 배워온 지식을 한껏 표출한 당연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봄이 온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겐 왠지 모르게 정감적이고 삶의 여백과 흥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네 삶은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박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볼 여유는 고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우리네 선인들에게도 똑같은 고민거리였을 겁니다. 몇몇 미래학자와 인류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마치 수학의 사인(sign)곡선과 같아서, 개인적으로나 인류에게나 부침(浮沈)의 반복"이라고요.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더 있더군요. 옛 선인들은 삶의 노정 속에서 경험했던 지혜를 글로 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글은 다시 후손들에게 경계의 나침반이 되거나,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인도해 주는 가르침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고전(古典)'이라 불리는 '클래식(Classics)'입니다.
특히, 한문으로 작성된 '동양의 고전'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이라기보다, 그 내면에 담긴 비유와 해학, 그리고 강렬한 메시지를 시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적인 부분을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고전일수록 시공(時空)을 초월한 영속성을 지닙니다. 다만, 이러한 '동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요즘 우리들에게 좀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지난(至難)한 일이지요. 그러나 동양고전을 읽다 보면 어떨 때는 내 인생의 좌우명(座右銘)이 될 만한 글귀를 만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엔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명언을 찾으려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지금의 고민을 직접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찾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양고전의 힘 가운데 '고사성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옛날의 사실이나, 혹은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말로 굳어진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며, 상징적이고 교훈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러한 고사성어는 일상에서 어떤 일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짧고 굵직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사성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은 성어만을 무작정 암기하려고만 합니다. 이 때문에 상황에 맞지 않는 고사성어를 잘못 활용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자와 한문은 늘 어렵다는 푸념을 내놓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한문에 조금만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혹은 한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고사의 유래가 담긴 문헌을 독해하면서 고사가 성어로 만들어지기까지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사에는 반드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육하원칙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장 인상적인 글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기억에 쏙쏙 남는 말이 떠오르는 경우엔 어김없이 육하원칙하에 작성된 글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의 요소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고사성어에는 이러한 육하원칙의 유래가 담겨 있습니다. 무작정 외워서 활용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독자는 고사가 성어로 대두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이에 해당하는 육하원칙들을 본인 스스로 되새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은 '고사'가 '성어'로 굳어지기까지의 문헌들을 한문 고전, 좀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문·사·철의 다양한 한문 산문에서 발췌해 본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보다 중국 고사의 분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두문불출(杜門不出)'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요즘 학생들은 "두더지가 땅속에서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라고 답하더군요. 고사성어의 유래는 차치하고, 말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두문불출'은 '함흥차사'와 같이 우리나라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 72명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며, 경기도 광덕산에 들어가 '문[門]을 막고[杜] 나오지[出] 않았다[不]'라는 데서 유래한 우리나라 고사성어입니다. ('두문'이 지역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 춘추시대 때 좌구명(左丘明)이 쓴 「국어(國語)」라는 역사서와 『사기』「맹상군열전」, 그리고 당나라 태종 때의 역사서라 할 「진서」에도 이 '두문(杜門)'의 기록은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고려]의 이규보가 '두문'을 편지글에 사용하였고, 조선 건국 초 고려의 충신들이 보여준 충절 속에서 '두문'에 '불출'이 더해지면서 '두문불출'이라는 우리식의 성어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예컨대 '식언(食言)'과 같은 두 글자 성어[二字成語]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언'은 「서경」과 「춘추」 속에 전거(典據)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삼국사기』「온달전」에는 '왕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왕불식언(王不食言)'의 네 글자 성어[四字成語]로 유행했습니다. 또한, 「성종실록」에는 연산군과 연관된 고사로 '흥청망청(興淸亡請)'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붉은 옷을 입고 싸웠다던 의병장 곽재우를 왜나라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그를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속에도 '성어'로 굳혀진 것들이 많습니다.
하여, 이 책에서는 중국 고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헌에서 유래한 것들도 몇 개를 수록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 고사를 한글파일로 옮겨 놓은 후, 해당 고사가 보이는 출처의 원전 이미지를 첨부하였습니다. (원전 이미지는 臺灣 商務印書館(1983)에서 발행한 (文淵閣) 四庫全書와 '한국고전번역원 DB',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에서 발췌한 것임) 한문 문장에는 본래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없기 때문에, 독자들이 직접 원전을 접해보면서 일독하기를 권유하는 차원입니다.
한편, 고사성어의 유래를 역추적하다 보면, 고사 속에 숨겨진 이중성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고사성어를 인용할 때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팔방미인(八方美人)'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다재다능함'을 칭찬하는 말로 알고 있지만, 때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완벽하게 소화해 내지 못하는 어설픈 재주'를 뜻하기도 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역시 「열자」라는 문헌 속에서는 원숭이의 입장을 비꼬면서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내용이지만, 「장자」의 글을 보면 '저공(狙公)의 얄팍한 꾀로 다른 이를 농락하고 희롱할 줄 아는 지략'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사성어는 문헌에 따라 '유래'가 다르고, '유래'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처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고사성어 속에 담긴 중층적·상징적 의미를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첨언(添言)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은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어느 문헌에도 출현하지 않는 성어인데요. 고사성어의 유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치판의 언변가들은 어찌도 그렇게 '양두구육'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양두구육'에 걸맞은 전거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안자춘추」에 나오는 '우두마육(牛頭馬肉)' 또는 '우수마육(牛首馬肉)'이 가장 근접한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두구육'이라 알고 있고, 또 '양두구육'은 '겉으로는 훌륭한 것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변변치 못함'을 비유하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안자춘추」에 나오는 '우두마육(牛頭馬肉)'은 그 본지(本旨)가 완전히 다릅니다. "군주가 시행하는 모든 법령은 신분의 고하나 친소(親疏)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해야 한다"라는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양두구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옛이야기를 읽다 보면, 혹자는 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감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합니다. 글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메시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듣다 보면 감흥에 젖어 소름이 돋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잠을 청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음악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걸까요? 저는 '동양의 고전' 역시 음악의 클래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갓 지식인의 향유처럼 자기 과시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에게는 삶의 나침반이자 지혜의 샘이라고 인식하는 분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네 삶을 '일생'이라고 말합니다. '이생(二生)'이 아닌 '일생(一生)'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의미가 아닐까요? '한 번의 생애'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노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통로는 바로 고전 속에 비친 옛 선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이 있고, 때로는 교훈으로 삼을 정도로 가치가 듬뿍 담긴 글귀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후회와 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때 그러지 말 것을 …" 이라는 말은 "지금 이러지 말자!"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삶의 좌표만 x축과 y축이 달라졌을 뿐, 인간은 누구나 그 시공의 좌표 속에서 반성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동양고전 속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때로는 기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비유들이 우리의 심장을 움직이게 합니다. 일명 '느낌'과 '울림'을 동시에 느끼기에 우리는 이것을 '감동(感動)'이라는 말로 대변합니다. '느낌'과 '울림'이 가져다주는 전달력과 통찰력은 고전을 탐독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멋스러움입니다.
고전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바랍니다. 부디, 옛것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온고(溫故)로부터로부터 지신(知新)할 줄 알고, 법고(法古)로부터 창신(創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옛 선인들의 궤적에서 나 자신 또한 '그럴 법(法)'한 인생의 족적(足跡)을 남기는 것 역시 근사한 삶이지 않을까요? '법(法)'은 '물[?]이 지나간[去] 흔적'이고, '근사'는 그러한 사실[事]에 가까움[近]을 나타내는 그럴싸한 말이니까요.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봄이 오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전자의 답변은 소위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그간 우리가 배워온 지식을 한껏 표출한 당연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봄이 온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겐 왠지 모르게 정감적이고 삶의 여백과 흥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네 삶은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박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볼 여유는 고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던 우리네 선인들에게도 똑같은 고민거리였을 겁니다. 몇몇 미래학자와 인류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마치 수학의 사인(sign)곡선과 같아서, 개인적으로나 인류에게나 부침(浮沈)의 반복"이라고요.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더 있더군요. 옛 선인들은 삶의 노정 속에서 경험했던 지혜를 글로 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글은 다시 후손들에게 경계의 나침반이 되거나,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인도해 주는 가르침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고전(古典)'이라 불리는 '클래식(Classics)'입니다.
특히, 한문으로 작성된 '동양의 고전'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이라기보다, 그 내면에 담긴 비유와 해학, 그리고 강렬한 메시지를 시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적인 부분을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고전일수록 시공(時空)을 초월한 영속성을 지닙니다. 다만, 이러한 '동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요즘 우리들에게 좀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지난(至難)한 일이지요. 그러나 동양고전을 읽다 보면 어떨 때는 내 인생의 좌우명(座右銘)이 될 만한 글귀를 만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엔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명언을 찾으려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지금의 고민을 직접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찾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양고전의 힘 가운데 '고사성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옛날의 사실이나, 혹은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말로 굳어진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며, 상징적이고 교훈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러한 고사성어는 일상에서 어떤 일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짧고 굵직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사성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은 성어만을 무작정 암기하려고만 합니다. 이 때문에 상황에 맞지 않는 고사성어를 잘못 활용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자와 한문은 늘 어렵다는 푸념을 내놓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한문에 조금만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혹은 한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고사의 유래가 담긴 문헌을 독해하면서 고사가 성어로 만들어지기까지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사에는 반드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육하원칙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장 인상적인 글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기억에 쏙쏙 남는 말이 떠오르는 경우엔 어김없이 육하원칙하에 작성된 글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의 요소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고사성어에는 이러한 육하원칙의 유래가 담겨 있습니다. 무작정 외워서 활용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독자는 고사가 성어로 대두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이에 해당하는 육하원칙들을 본인 스스로 되새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은 '고사'가 '성어'로 굳어지기까지의 문헌들을 한문 고전, 좀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문·사·철의 다양한 한문 산문에서 발췌해 본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보다 중국 고사의 분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두문불출(杜門不出)'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요즘 학생들은 "두더지가 땅속에서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라고 답하더군요. 고사성어의 유래는 차치하고, 말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두문불출'은 '함흥차사'와 같이 우리나라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 72명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며, 경기도 광덕산에 들어가 '문[門]을 막고[杜] 나오지[出] 않았다[不]'라는 데서 유래한 우리나라 고사성어입니다. ('두문'이 지역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 춘추시대 때 좌구명(左丘明)이 쓴 「국어(國語)」라는 역사서와 『사기』「맹상군열전」, 그리고 당나라 태종 때의 역사서라 할 「진서」에도 이 '두문(杜門)'의 기록은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고려]의 이규보가 '두문'을 편지글에 사용하였고, 조선 건국 초 고려의 충신들이 보여준 충절 속에서 '두문'에 '불출'이 더해지면서 '두문불출'이라는 우리식의 성어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예컨대 '식언(食言)'과 같은 두 글자 성어[二字成語]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언'은 「서경」과 「춘추」 속에 전거(典據)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삼국사기』「온달전」에는 '왕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왕불식언(王不食言)'의 네 글자 성어[四字成語]로 유행했습니다. 또한, 「성종실록」에는 연산군과 연관된 고사로 '흥청망청(興淸亡請)'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붉은 옷을 입고 싸웠다던 의병장 곽재우를 왜나라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그를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속에도 '성어'로 굳혀진 것들이 많습니다.
하여, 이 책에서는 중국 고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헌에서 유래한 것들도 몇 개를 수록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 고사를 한글파일로 옮겨 놓은 후, 해당 고사가 보이는 출처의 원전 이미지를 첨부하였습니다. (원전 이미지는 臺灣 商務印書館(1983)에서 발행한 (文淵閣) 四庫全書와 '한국고전번역원 DB',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에서 발췌한 것임) 한문 문장에는 본래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없기 때문에, 독자들이 직접 원전을 접해보면서 일독하기를 권유하는 차원입니다.
한편, 고사성어의 유래를 역추적하다 보면, 고사 속에 숨겨진 이중성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고사성어를 인용할 때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팔방미인(八方美人)'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다재다능함'을 칭찬하는 말로 알고 있지만, 때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완벽하게 소화해 내지 못하는 어설픈 재주'를 뜻하기도 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역시 「열자」라는 문헌 속에서는 원숭이의 입장을 비꼬면서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내용이지만, 「장자」의 글을 보면 '저공(狙公)의 얄팍한 꾀로 다른 이를 농락하고 희롱할 줄 아는 지략'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사성어는 문헌에 따라 '유래'가 다르고, '유래'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처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고사성어 속에 담긴 중층적·상징적 의미를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첨언(添言)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은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어느 문헌에도 출현하지 않는 성어인데요. 고사성어의 유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치판의 언변가들은 어찌도 그렇게 '양두구육'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양두구육'에 걸맞은 전거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안자춘추」에 나오는 '우두마육(牛頭馬肉)' 또는 '우수마육(牛首馬肉)'이 가장 근접한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두구육'이라 알고 있고, 또 '양두구육'은 '겉으로는 훌륭한 것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변변치 못함'을 비유하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안자춘추」에 나오는 '우두마육(牛頭馬肉)'은 그 본지(本旨)가 완전히 다릅니다. "군주가 시행하는 모든 법령은 신분의 고하나 친소(親疏)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해야 한다"라는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양두구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옛이야기를 읽다 보면, 혹자는 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감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합니다. 글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메시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듣다 보면 감흥에 젖어 소름이 돋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잠을 청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음악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걸까요? 저는 '동양의 고전' 역시 음악의 클래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갓 지식인의 향유처럼 자기 과시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에게는 삶의 나침반이자 지혜의 샘이라고 인식하는 분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네 삶을 '일생'이라고 말합니다. '이생(二生)'이 아닌 '일생(一生)'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의미가 아닐까요? '한 번의 생애'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노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통로는 바로 고전 속에 비친 옛 선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이 있고, 때로는 교훈으로 삼을 정도로 가치가 듬뿍 담긴 글귀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후회와 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때 그러지 말 것을 …" 이라는 말은 "지금 이러지 말자!"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삶의 좌표만 x축과 y축이 달라졌을 뿐, 인간은 누구나 그 시공의 좌표 속에서 반성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동양고전 속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때로는 기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비유들이 우리의 심장을 움직이게 합니다. 일명 '느낌'과 '울림'을 동시에 느끼기에 우리는 이것을 '감동(感動)'이라는 말로 대변합니다. '느낌'과 '울림'이 가져다주는 전달력과 통찰력은 고전을 탐독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멋스러움입니다.
고전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바랍니다. 부디, 옛것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온고(溫故)로부터로부터 지신(知新)할 줄 알고, 법고(法古)로부터 창신(創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옛 선인들의 궤적에서 나 자신 또한 '그럴 법(法)'한 인생의 족적(足跡)을 남기는 것 역시 근사한 삶이지 않을까요? '법(法)'은 '물[?]이 지나간[去] 흔적'이고, '근사'는 그러한 사실[事]에 가까움[近]을 나타내는 그럴싸한 말이니까요.
목차
목차
머리말 5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14
각주구검(刻舟求劍) 16
각자무치(角者無齒) 18
견금여석(見金如石) 20
결초보은(結草報恩) 22
겸애설(兼愛說) 24
계륵(鷄肋) 26
계명구도(鷄鳴狗盜) 29
계찰괘검(季札掛劒) 32
계포일락(季布一諾) 34
과유불급(過猶不及) 37
관포지교(管鮑之交) 39
곡학아세(曲學阿世) 42
교학상장(敎學相長) 44
국사무쌍(國士無雙) 46
군자삼락(君子三樂) 50
근묵자흑(近墨者黑) 52
금의야행(錦衣夜行) 54
기우(杞憂) 56
난형난제(難兄難弟) 60
남귤북지(南橘北枳) 62
노마지지(老馬之智) 65
다기망양(多岐亡羊) 67
단기지계(斷機之戒) 70
단장(斷腸) 72
당랑거철(螳螂拒轍) 74
도원결의(桃園結義) 78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80
등용문(登龍門) 82
30
마중지봉(麻中之蓬) 84
31
맹모삼천(孟母三遷) 86
32
모수자천(毛遂自薦) 88
33
모순(矛盾) 94
34
무신불립(無信不立) 97
35
무용지용(無用之用) 99
36
문경지교(刎頸之交) 102
37
문일지십(聞一知十) 106
38
방약무인(傍若無人) 108
39
배수지진(背水之陣) 110
40
백미(白眉) 115
41
백발백중(百發百中) 117
42
불언장단(不言長短) 120
43
불탐위보(不貪爲寶) 122
44
빈이무굴(貧而無屈) 124
45
사면초가(四面楚歌) 126
46
사생취의(捨生取義) 129
47
사이비(似而非) 131
48
사족(蛇足) 134
49
삼인성호(三人成虎) 138
50
상가지구(喪家之狗) 140
51
상선약수(上善若水) 142
52
상전벽해(桑田碧海) 144
53
새옹지마(塞翁之馬) 146
54
송양지인(宋襄之仁) 149
55
수불석권(手不釋卷) 152
56
수주대토(守株待兎) 156
57
승수두수(升授斗受) 159
58
시시비비(是是非非) 162
59
십만양병(十萬養兵) 164
60
식언(食言) 168
61
양두사(兩頭蛇) 176
62
양상군자(梁上君子) 178
63
어부지리(漁父之利) 180
64
역린(逆鱗) 182
65
역자교지(易子敎之) 185
66
연목구어(緣木求魚) 187
67
오리무중(五里霧中) 192
68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197
69
와각지쟁(蝸角之爭) 202
70
와신상담(臥薪嘗膽) 205
71
완벽(完璧) 208
72
우공이산(愚公移山) 211
73
우수마육(牛首馬肉) 215
74
유비무환(有備無患) 218
75
위편삼절(韋編三絶) 223
76
읍참마속(泣斬馬謖) 225
77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228
78
조삼모사(朝三暮四) 230
79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 232
80
조장(助長) 234
81
절차탁마(切磋琢磨) 237
82
죽마고우(竹馬故友) 239
83
지록위마(指鹿爲馬) 242
84
백아절현(伯牙絶絃) 244
85
지피지기(知彼知己) 247
86
지행합일(知行合一) 249
87
청출어람(靑出於藍) 252
88
촌철살인(寸鐵殺人) 255
89
타산지석(他山之石) 257
90
토사구팽(?死狗烹) 259
91
필부지용(匹夫之勇) 261
92
필사즉생(必死則生) 264
93
항산항심(恒産恒心) 266
94
형설지공(螢雪之功) 269
95
호가호위(狐假虎威) 271
96
호접지몽(胡蝶之夢) 273
97
화룡점정(畵龍點睛) 275
98
화씨지벽(和氏之璧) 277
99
후생가외(後生可畏) 280
100
횡설수설(橫說竪說) 282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14
각주구검(刻舟求劍) 16
각자무치(角者無齒) 18
견금여석(見金如石) 20
결초보은(結草報恩) 22
겸애설(兼愛說) 24
계륵(鷄肋) 26
계명구도(鷄鳴狗盜) 29
계찰괘검(季札掛劒) 32
계포일락(季布一諾) 34
과유불급(過猶不及) 37
관포지교(管鮑之交) 39
곡학아세(曲學阿世) 42
교학상장(敎學相長) 44
국사무쌍(國士無雙) 46
군자삼락(君子三樂) 50
근묵자흑(近墨者黑) 52
금의야행(錦衣夜行) 54
기우(杞憂) 56
난형난제(難兄難弟) 60
남귤북지(南橘北枳) 62
노마지지(老馬之智) 65
다기망양(多岐亡羊) 67
단기지계(斷機之戒) 70
단장(斷腸) 72
당랑거철(螳螂拒轍) 74
도원결의(桃園結義) 78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80
등용문(登龍門) 82
30
마중지봉(麻中之蓬) 84
31
맹모삼천(孟母三遷) 86
32
모수자천(毛遂自薦) 88
33
모순(矛盾) 94
34
무신불립(無信不立) 97
35
무용지용(無用之用) 99
36
문경지교(刎頸之交) 102
37
문일지십(聞一知十) 106
38
방약무인(傍若無人) 108
39
배수지진(背水之陣) 110
40
백미(白眉) 115
41
백발백중(百發百中) 117
42
불언장단(不言長短) 120
43
불탐위보(不貪爲寶) 122
44
빈이무굴(貧而無屈) 124
45
사면초가(四面楚歌) 126
46
사생취의(捨生取義) 129
47
사이비(似而非) 131
48
사족(蛇足) 134
49
삼인성호(三人成虎) 138
50
상가지구(喪家之狗) 140
51
상선약수(上善若水) 142
52
상전벽해(桑田碧海) 144
53
새옹지마(塞翁之馬) 146
54
송양지인(宋襄之仁) 149
55
수불석권(手不釋卷) 152
56
수주대토(守株待兎) 156
57
승수두수(升授斗受) 159
58
시시비비(是是非非) 162
59
십만양병(十萬養兵) 164
60
식언(食言) 168
61
양두사(兩頭蛇) 176
62
양상군자(梁上君子) 178
63
어부지리(漁父之利) 180
64
역린(逆鱗) 182
65
역자교지(易子敎之) 185
66
연목구어(緣木求魚) 187
67
오리무중(五里霧中) 192
68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197
69
와각지쟁(蝸角之爭) 202
70
와신상담(臥薪嘗膽) 205
71
완벽(完璧) 208
72
우공이산(愚公移山) 211
73
우수마육(牛首馬肉) 215
74
유비무환(有備無患) 218
75
위편삼절(韋編三絶) 223
76
읍참마속(泣斬馬謖) 225
77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228
78
조삼모사(朝三暮四) 230
79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 232
80
조장(助長) 234
81
절차탁마(切磋琢磨) 237
82
죽마고우(竹馬故友) 239
83
지록위마(指鹿爲馬) 242
84
백아절현(伯牙絶絃) 244
85
지피지기(知彼知己) 247
86
지행합일(知行合一) 249
87
청출어람(靑出於藍) 252
88
촌철살인(寸鐵殺人) 255
89
타산지석(他山之石) 257
90
토사구팽(?死狗烹) 259
91
필부지용(匹夫之勇) 261
92
필사즉생(必死則生) 264
93
항산항심(恒産恒心) 266
94
형설지공(螢雪之功) 269
95
호가호위(狐假虎威) 271
96
호접지몽(胡蝶之夢) 273
97
화룡점정(畵龍點睛) 275
98
화씨지벽(和氏之璧) 277
99
후생가외(後生可畏) 280
100
횡설수설(橫說竪說) 282
저자
저자
김용재
· 전, BK21 유교문화권 교육연구단 post-doc.
· 현, 성신여자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현, 성신여자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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