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페페페
짐리원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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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이유다
"멸망을 멈출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돌보아야 할까요?"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도 기어코 살아가는 생명들을 향한 눈부신 연대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 변형되는 몸을 낯설고 다정하게 그려 온 작가 짐리원의 첫 소설집. 서울의 익숙한 풍경 위로 재건축 아파트를 휘감은 투명한 이무기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돌연변이 오리, 인간의 효율을 위해 잘려 나가는 손과 억압받는 날개, 잃어버린 가을의 바람을 느끼기 위해 찾아온 미래의 시간 여행자가 등장합니다. 작가는 낯설게 변해 가는 도시 생태계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이 맺는 기묘하고 애틋한 관계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무너지는 세계를 완벽하게 구원하거나 생태계를 인간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영웅들이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곁을 지키고, 냉동실에 잘린 손을 숨기며, 하늘로 날아가려는 오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 속에서도 빛과 바람, 구름을 사랑할 뿐입니다. 세상을 완전히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존재가 맞이할 다음 장면만큼은 바꾸어 내는 작고 다정한 돌봄의 서사입니다.
그렇게, 쓸쓸하면서도 경이로운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향한 열 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짐리원의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혹은 그래서 더 이토록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이유다
"멸망을 멈출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돌보아야 할까요?"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도 기어코 살아가는 생명들을 향한 눈부신 연대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 변형되는 몸을 낯설고 다정하게 그려 온 작가 짐리원의 첫 소설집. 서울의 익숙한 풍경 위로 재건축 아파트를 휘감은 투명한 이무기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돌연변이 오리, 인간의 효율을 위해 잘려 나가는 손과 억압받는 날개, 잃어버린 가을의 바람을 느끼기 위해 찾아온 미래의 시간 여행자가 등장합니다. 작가는 낯설게 변해 가는 도시 생태계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이 맺는 기묘하고 애틋한 관계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무너지는 세계를 완벽하게 구원하거나 생태계를 인간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영웅들이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곁을 지키고, 냉동실에 잘린 손을 숨기며, 하늘로 날아가려는 오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 속에서도 빛과 바람, 구름을 사랑할 뿐입니다. 세상을 완전히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존재가 맞이할 다음 장면만큼은 바꾸어 내는 작고 다정한 돌봄의 서사입니다.
그렇게, 쓸쓸하면서도 경이로운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향한 열 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짐리원의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혹은 그래서 더 이토록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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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겨울은 기억 속으로 물러납니다. 도시는 여전히 환하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고, 공원을 걷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풍경의 안쪽에서 세계는 천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투명한 이무기가 살고, 플라스틱을 먹는 오리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 서울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펫페페페》는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 변형되는 인간의 몸을 낯설고도 다정하게 그려 온 짐리원의 첫 소설집입니다. 이 책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기묘한 기술이나 생물 자체보다 그 앞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보내야 하는지, 누군가의 고통을 끝내는 일이 진정한 돌봄인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떼어 내도 되는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멸망을 막거나 생태계를 인간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거창한 영웅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교통카드 한 장을 건네고, 냉동실에 잘린 손 하나를 숨기며, 날아가려는 오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줍니다.
인간 중심의 통제를 넘어, 찰나의 공존을 향해
우리는 흔히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려면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생명체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표제작 〈펫페페페〉는 이러한 믿음에 균열을 냅니다. 영생바이오는 오리의 침샘 물질이 지닌 군사적 가능성에 주목해 제휴 고등학교에서 비밀 실험을 진행합니다. 일부 오리는 PET, PE, PP, PS 등 주요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나와 보현은 오리들을 빼돌려 환경 단체나 연구 기관에 맡기려 하지만, 믿었던 어른과 기관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추적을 피해 옥상에 몰린 예나는 오리들을 하늘로 날려 보냅니다. 오리들이 쓰레기를 먹다 서울 어딘가에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없던 생명에게 인간이 정한 결말만을 강요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무기여 안녕〉은 생명을 돌보고 그 끝을 결정하는 과정의 딜레마를 다룹니다. 1980년대 아파트에 서식하는 '투명동네이무기'는 재건축을 앞두고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놓입니다. 동물 구호 단체 소속의 노아는 철거 과정에서 이무기가 겪을 엄청난 고통을 막기 위해 안락사를 준비합니다. 소설은 누군가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는 행위가 완전한 구원일 수 있는지 묻습니다. 어느 선택에도 손쉬운 면죄부를 주지 않은 채, 돌봄과 폭력의 가능성을 같은 자리에 남겨 둡니다.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는 이 질문을 우주적 규모로 확장합니다. 8만 년 전 지구에서 매머드와 털코뿔소 등 거대 동물들을 빌려 간 외계 사절단이 약속대로 수십만 마리를 돌려주기 위해 돌아옵니다. 민지는 현생 인류의 문명이 뒤덮은 지구에는 이 거대 동물들이 살아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지구를 홍적세 후기의 환경으로 되돌리는 '리-테라포밍'을 승인할지, 인류의 대표에게 결정권을 넘길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 동물들이 달 기지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할지를 두고 고민합니다. 소설은 어느 종의 생존을 중심에 놓을 것인가라는 불가능한 질문을 통해 한 종이 세계를 독점해 온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기후 위기, 감각의 붕괴, 잃어버린 계절을 애도하는 법
이 소설집에서 기후 위기는 단순한 재난의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억 체계를 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현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찬 공기가 피부에 닿던 감각, 특정한 계절에만 가능했던 산책과 옷차림도 함께 사라지는 일입니다.
〈기억과 사회〉의 세계에서는 끔찍한 열풍과 '폭염웨이브'로 기후우울증 치사율이 치솟습니다. 사람들은 온난화된 지구에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과거의 서늘한 날씨와 겨울의 촉감·후각을 담은 '노이즈-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딥클렌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날씨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세계가 무엇을 잃었는지 증언할 감각도 함께 사라집니다. 소설은 생존을 위한 적응이 또 다른 상실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짚어 냅니다.
문윤성 SF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은 잃어버린 계절을 향한 그리움을 아름답고도 서늘하게 포착합니다. 미래의 시간 여행자들은 기후대격변 이후의 세계에서 15~20도의 가을 날씨와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기 위해 2020년대의 올림픽공원을 찾아옵니다. 여행 규칙을 어기고 공원을 탈출하면 미래로 돌아갈 수 없고 즉시 사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행자 에이(A)는 현재의 서울에 남으려 합니다. 그를 돕기 위해 교통카드와 아이패드, 현금을 건네는 산책 아르바이트생 지수의 선택은 평범한 날씨와 도시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수면예찬〉은 인류의 활동을 줄여 지구 생태계의 파괴를 멈추겠다는 명분으로, 10년 수면과 각성기를 반복한 뒤 인류를 '무기한수면'에 들게 하려는 집단수면 계획을 다룹니다. 팬 문화와 게임, 학술 기록과 미래의 문답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잠은 휴식과 도피, 자발성과 강제가 뒤섞인 구원론으로 변합니다. 작품은 기후대격변 시대의 극심한 피로와 문명의 팽창을 멈추고 싶다는 욕망을 낯설게 비춥니다.
효율의 명령 앞에 놓인 손과 날개
〈손〉과 〈날개주의보〉는 몸을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로 바꾸려는 세계를 그립니다. 두 작품은 생산성과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기준이 개인의 몸과 감각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소설집의 몸 이야기는 손의 움직임과 날개의 무게, 절단과 통증 같은 구체적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손〉에서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선오는 손목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동의 없이 왼손을 절단당하고 고성능 의수를 이식받습니다. '손 코퍼레이션'은 자연손보다 생산성이 높은 인공손을 보급하고, 절단한 손에도 칩을 심어 일하게 하는 '자동 수작업'의 시대를 꿈꿉니다. 주이는 선오의 잘린 손을 숨기고 그와 함께 자전거로 도망칩니다. 이는 단순히 효율적인 도구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몸으로 쌓아 온 기술과 삶을 지키려는 선택입니다.
〈날개주의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날개병'으로 사람들의 등에 날개가 돋습니다. 사회는 평범하게 일하고 살아가려면 날개를 떼어 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영이와 이삭은 집 안에서 서로의 날개를 잘라 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날개는 패션과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같은 날개가 누군가에게는 질병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이 되는 모순을 통해, 몸을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를 바라봅니다.
무너지는 세계에 남겨진 빛, 잊히지 않는 인연
그럼에도 《펫페페페》는 멸망의 절망으로만 닫히지 않습니다. 이 기이한 세계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빛과 바람, 구름과 물이 가득합니다. 오염 때문에 오히려 눈물 나게 아름다워진 저녁의 빛, 폐허가 된 도시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여름 구름을 바라보며 인물들은 세계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풍경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파하고,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한 번 더 걷습니다.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는 반지하 대형마트 화재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 유령 견우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환생의 순환을 미룬 채 자신이 살던 낡은 아파트 단지를 맴도는 견우는, 같은 화재로 죽었을 친구 재현의 흔적을 기다립니다. 이 우주는 한 번 있었던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한 번 만났던 것들은 서로를 좀처럼 잊지 못하는 곳입니다. 유령이 되어서도 인연의 끝을 매듭지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은 뭉클한 여운을 남깁니다.
〈연우의 레시피〉는 가을밤 대기 중에 반투명하게 떠다니는 '영혼'을 소재로 삼습니다. 어른들은 영혼을 미세먼지나 병균처럼 여기며 문을 닫아걸지만, 십 대인 연우와 해진은 영혼을 주워 씻고 얼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에 얹어 먹습니다. 시원하고 쌉싸름한 영혼의 맛은 사라질 것들을 붙잡아 두기보다 잠시 온몸으로 감각하는 두 아이만의 방식입니다. 어른들은 두 사람이 동반 자살을 꾀했다고 오해하지만, 이들은 그저 눈앞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
《펫페페페》의 인물들은 무너지는 세계를 완전히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생명, 한 존재가 맞이할 다음 장면만큼은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생태계를 제 뜻대로 통제하거나 파괴된 환경을 단숨에 되돌리기보다, 눈앞의 생명을 살피고 때로는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오래 기억하는 길을 택합니다.
오리를 날려 보내고, 미래인을 서울로 보내며, 유령이 된 친구를 기다리는 이들의 다정한 연대와 돌봄은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과 깊은 위로를 함께 건넵니다.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쓸쓸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은 우리가 이 세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오래된 이유입니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겨울은 기억 속으로 물러납니다. 도시는 여전히 환하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고, 공원을 걷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풍경의 안쪽에서 세계는 천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투명한 이무기가 살고, 플라스틱을 먹는 오리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 서울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펫페페페》는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 변형되는 인간의 몸을 낯설고도 다정하게 그려 온 짐리원의 첫 소설집입니다. 이 책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기묘한 기술이나 생물 자체보다 그 앞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보내야 하는지, 누군가의 고통을 끝내는 일이 진정한 돌봄인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떼어 내도 되는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멸망을 막거나 생태계를 인간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거창한 영웅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교통카드 한 장을 건네고, 냉동실에 잘린 손 하나를 숨기며, 날아가려는 오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줍니다.
인간 중심의 통제를 넘어, 찰나의 공존을 향해
우리는 흔히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려면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생명체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표제작 〈펫페페페〉는 이러한 믿음에 균열을 냅니다. 영생바이오는 오리의 침샘 물질이 지닌 군사적 가능성에 주목해 제휴 고등학교에서 비밀 실험을 진행합니다. 일부 오리는 PET, PE, PP, PS 등 주요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나와 보현은 오리들을 빼돌려 환경 단체나 연구 기관에 맡기려 하지만, 믿었던 어른과 기관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추적을 피해 옥상에 몰린 예나는 오리들을 하늘로 날려 보냅니다. 오리들이 쓰레기를 먹다 서울 어딘가에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없던 생명에게 인간이 정한 결말만을 강요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무기여 안녕〉은 생명을 돌보고 그 끝을 결정하는 과정의 딜레마를 다룹니다. 1980년대 아파트에 서식하는 '투명동네이무기'는 재건축을 앞두고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놓입니다. 동물 구호 단체 소속의 노아는 철거 과정에서 이무기가 겪을 엄청난 고통을 막기 위해 안락사를 준비합니다. 소설은 누군가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는 행위가 완전한 구원일 수 있는지 묻습니다. 어느 선택에도 손쉬운 면죄부를 주지 않은 채, 돌봄과 폭력의 가능성을 같은 자리에 남겨 둡니다.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는 이 질문을 우주적 규모로 확장합니다. 8만 년 전 지구에서 매머드와 털코뿔소 등 거대 동물들을 빌려 간 외계 사절단이 약속대로 수십만 마리를 돌려주기 위해 돌아옵니다. 민지는 현생 인류의 문명이 뒤덮은 지구에는 이 거대 동물들이 살아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지구를 홍적세 후기의 환경으로 되돌리는 '리-테라포밍'을 승인할지, 인류의 대표에게 결정권을 넘길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 동물들이 달 기지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할지를 두고 고민합니다. 소설은 어느 종의 생존을 중심에 놓을 것인가라는 불가능한 질문을 통해 한 종이 세계를 독점해 온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기후 위기, 감각의 붕괴, 잃어버린 계절을 애도하는 법
이 소설집에서 기후 위기는 단순한 재난의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억 체계를 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현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눈을 기다리던 마음, 찬 공기가 피부에 닿던 감각, 특정한 계절에만 가능했던 산책과 옷차림도 함께 사라지는 일입니다.
〈기억과 사회〉의 세계에서는 끔찍한 열풍과 '폭염웨이브'로 기후우울증 치사율이 치솟습니다. 사람들은 온난화된 지구에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과거의 서늘한 날씨와 겨울의 촉감·후각을 담은 '노이즈-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딥클렌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날씨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세계가 무엇을 잃었는지 증언할 감각도 함께 사라집니다. 소설은 생존을 위한 적응이 또 다른 상실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짚어 냅니다.
문윤성 SF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은 잃어버린 계절을 향한 그리움을 아름답고도 서늘하게 포착합니다. 미래의 시간 여행자들은 기후대격변 이후의 세계에서 15~20도의 가을 날씨와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기 위해 2020년대의 올림픽공원을 찾아옵니다. 여행 규칙을 어기고 공원을 탈출하면 미래로 돌아갈 수 없고 즉시 사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행자 에이(A)는 현재의 서울에 남으려 합니다. 그를 돕기 위해 교통카드와 아이패드, 현금을 건네는 산책 아르바이트생 지수의 선택은 평범한 날씨와 도시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수면예찬〉은 인류의 활동을 줄여 지구 생태계의 파괴를 멈추겠다는 명분으로, 10년 수면과 각성기를 반복한 뒤 인류를 '무기한수면'에 들게 하려는 집단수면 계획을 다룹니다. 팬 문화와 게임, 학술 기록과 미래의 문답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잠은 휴식과 도피, 자발성과 강제가 뒤섞인 구원론으로 변합니다. 작품은 기후대격변 시대의 극심한 피로와 문명의 팽창을 멈추고 싶다는 욕망을 낯설게 비춥니다.
효율의 명령 앞에 놓인 손과 날개
〈손〉과 〈날개주의보〉는 몸을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로 바꾸려는 세계를 그립니다. 두 작품은 생산성과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기준이 개인의 몸과 감각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소설집의 몸 이야기는 손의 움직임과 날개의 무게, 절단과 통증 같은 구체적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손〉에서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선오는 손목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동의 없이 왼손을 절단당하고 고성능 의수를 이식받습니다. '손 코퍼레이션'은 자연손보다 생산성이 높은 인공손을 보급하고, 절단한 손에도 칩을 심어 일하게 하는 '자동 수작업'의 시대를 꿈꿉니다. 주이는 선오의 잘린 손을 숨기고 그와 함께 자전거로 도망칩니다. 이는 단순히 효율적인 도구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몸으로 쌓아 온 기술과 삶을 지키려는 선택입니다.
〈날개주의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날개병'으로 사람들의 등에 날개가 돋습니다. 사회는 평범하게 일하고 살아가려면 날개를 떼어 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영이와 이삭은 집 안에서 서로의 날개를 잘라 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날개는 패션과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같은 날개가 누군가에게는 질병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이 되는 모순을 통해, 몸을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를 바라봅니다.
무너지는 세계에 남겨진 빛, 잊히지 않는 인연
그럼에도 《펫페페페》는 멸망의 절망으로만 닫히지 않습니다. 이 기이한 세계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빛과 바람, 구름과 물이 가득합니다. 오염 때문에 오히려 눈물 나게 아름다워진 저녁의 빛, 폐허가 된 도시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여름 구름을 바라보며 인물들은 세계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풍경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파하고,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한 번 더 걷습니다.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는 반지하 대형마트 화재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 유령 견우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환생의 순환을 미룬 채 자신이 살던 낡은 아파트 단지를 맴도는 견우는, 같은 화재로 죽었을 친구 재현의 흔적을 기다립니다. 이 우주는 한 번 있었던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한 번 만났던 것들은 서로를 좀처럼 잊지 못하는 곳입니다. 유령이 되어서도 인연의 끝을 매듭지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은 뭉클한 여운을 남깁니다.
〈연우의 레시피〉는 가을밤 대기 중에 반투명하게 떠다니는 '영혼'을 소재로 삼습니다. 어른들은 영혼을 미세먼지나 병균처럼 여기며 문을 닫아걸지만, 십 대인 연우와 해진은 영혼을 주워 씻고 얼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에 얹어 먹습니다. 시원하고 쌉싸름한 영혼의 맛은 사라질 것들을 붙잡아 두기보다 잠시 온몸으로 감각하는 두 아이만의 방식입니다. 어른들은 두 사람이 동반 자살을 꾀했다고 오해하지만, 이들은 그저 눈앞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
《펫페페페》의 인물들은 무너지는 세계를 완전히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생명, 한 존재가 맞이할 다음 장면만큼은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생태계를 제 뜻대로 통제하거나 파괴된 환경을 단숨에 되돌리기보다, 눈앞의 생명을 살피고 때로는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오래 기억하는 길을 택합니다.
오리를 날려 보내고, 미래인을 서울로 보내며, 유령이 된 친구를 기다리는 이들의 다정한 연대와 돌봄은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과 깊은 위로를 함께 건넵니다.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쓸쓸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은 우리가 이 세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오래된 이유입니다.
목차
목차
무기여 안녕 ∞ 7
펫페페페 ∞ 43
올림픽공원 산책지침 ∞ 69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 ∞ 107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 ∞ 141
기억과 사회 ∞ 173
연우의 레시피 ∞ 201
수면예찬 ∞ 223
손 ∞ 245
날개주의보 ∞ 275
작가의 말 ∞ 303
펫페페페 ∞ 43
올림픽공원 산책지침 ∞ 69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 ∞ 107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 ∞ 141
기억과 사회 ∞ 173
연우의 레시피 ∞ 201
수면예찬 ∞ 223
손 ∞ 245
날개주의보 ∞ 275
작가의 말 ∞ 303
저자
저자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과학동아〉에서 〈엔딩의 발견〉 〈여름농장의 비밀〉 등의 단편을 발표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을 주제로 다룬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밝아지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을 주제로 다룬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밝아지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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