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시(2판)(한국문화사 작가의 방)(양장본 Hardcover)
그 일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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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는 모더니즘의 주류 시인들과 분명 차별성이 있다. 그의 시는 이해하기 쉽고 엘리엇이나 파운드 등의 시는 난해해 보인다. 그의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프로스트 자신의 잘못이고, 엘리엇이나 파운드의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의 잘못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 듯하다. 프로스트는 모든 부류의 독자를 위한 시인이 되고자 했기에, 모두에게 낯익은 자연시를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해보일지라도 내면적으로는 복잡하다.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것이 프로스트 자연시의 또 다른 특성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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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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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0세기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1874∼1963)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등 서정성 깊은 시를 통해 한국에서도 낯익은 시인이다. 1912년, 문학적 생애에 모든 것을 걸고 뉴햄프셔를 떠나 영국으로 간 프로스트는 1913년 마침내 런던에서 첫 시집 「소년의 의지」(A Boy's Will)의 출판으로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런던에 있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에 의해 매우 미국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은 프로스트는 그 이듬해 「보스턴 북쪽」(North of Boston)으로 일약 유명한 시인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1962년, 「개간지에서」(In the Clearing)에 이르기 까지 9권의 잇따른 시집의 출판으로 그의 명성은 점점 커졌다. 44개 대학에서의 명예박사학위, 4회의 퓰리처상(Pulitzer Prize), 1961년 케네디(Kennedy) 대통령 취임식 축시 낭독 등이 상징하듯 명실상부한 미국의 국민시인이 되었다.
프로스트는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WASP, 즉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속할 뿐만 아니라, 양키의 본고장이며 미국문학의 근원인 뉴잉글랜드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다. 가깝게는 19세기 뉴잉글랜드 르네상스, 즉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소로(Henry David Thoreau)로 상징되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전통을 상속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프로스트는 뉴잉글랜드 농촌의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전통적인 서정시와 설화시를 즐겨 썼다. 그는 또한 자연시인으로서, 미국의 에머슨과 소로, 영국의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등 낭만적 작가들과 유사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35년, 프로스트는 자신이 쓴 「로빈슨의 「재스퍼 왕」 서문」("Introduction to Robinson's King Jasper")에서 "새로워지는 옛 방법(the old-fashioned way to be new)" (5:346)을 제창함으로써, 모더니즘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혁명적 시의 원리들을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그가 말하는 "옛 방법"이란 주로 낭만주의 작가들처럼 자연과 인간의 대화에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자연은 유추와 상징의 보고, 즉 시적 언어의 원천이다. 그의 자연시(自然詩)와 19세기 낭만시(浪漫詩) 간의 표면적 유사점은 20세기의 도시적 감각에 익숙한 비평가나 독자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자연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옛 방법"의 답습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그가 강조하는 옛것이 새로워지는 면을 새롭게 보지 않는 문화적 타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20세기 도시문명은 분명 인간과 자연의 대화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대화를 요구한다. 만약 프로스트의 자연시가 인간과 사회와의 대화를 외면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에 천착(穿鑿)한다면, 마땅히 시대착오적 낡은 시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세기적 감각을 반영한다. 에머슨, 소로, 워즈워스의 자연과 달리, 프로스트의 자연은 도덕적 확신이 아닌 불확실의 상징적 언어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표면적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천착한다.
예컨대, 프로스트의 숲은 어둡고 깊으며 비합리적이다. 그의 농촌풍경은 황량하고 혼돈스럽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무정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인간은 버림받아 혼자이고, 도와주는 이 없어서 당혹스럽다. 20세기의 나(I)는 사회적 집단에 속하면서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실존의 존재이다. 프로스트의 시 「사별」("Bereft")에서 "나"는 "집에서 혼자" (13행)였고, "인생에서 혼자"(15행)였으며, "남은 것은 신뿐," (16행)이었다.
프로스트는 사회적 실존에 적합한 언어를 자연에서 찾는다. 「가지 않은 길」의 화자가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은 실상 "노란 숲속에 두 길" (1행)이 아니다. 숲속의 두 길은 오늘 한 길을 가보고 다음 기회에 돌아와 다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은 길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14행)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은 혼자, 1회밖에 갈 수 없는 인생길에 다름이 아니다. 프로스트에게 숲속의 두 길은 삶의 여로에서 수시로 만나는 인생의 갈림길의 상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 시를 단순한 서정으로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표면적으로는 숲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미적 감각을 칭송하는 시이다. 그러나 결론은 숲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회적 약속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 가야할 길이 멀다/ 자기 전 가야할 길이 멀다," (13∼16행).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자연과 사회를 오가는 특징을 보인다. 때로 자연으로 나가서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반드시 집, 즉 사회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숲의 유혹에 깊이 빠져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그에게 아름다운 숲은 집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미적 가치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시적 언어로 존재하는 것이다.
「티티새」("The Ovenbird")의 티티새는 노래할 계절이 지난 한여름, 깊은 숲속에서 "노래하면서 노래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12행). 이처럼 서정의 시대가 지난 하이테크의 시대에, 실존의 한복판에서, 시인 프로스트는 자연시를 쓰면서 낭만시를 쓰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프로스트는 낭만시의 옛 방법을 상속하고 있으나, 낭만시가 아닌 새로워지는 자연시를 쓴다. 낭만시의 자연은 거의 항상 인간에게 우호적이다. 그러나 프로스트 자연시의 자연은 때로는 우호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이다. 프로스트 시에서 자연은 삶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거나 위협적인 사회의 은유(隱喩) 또는 제유(提喩)로 기능한다. 그의 자연시는 대부분 자연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벌이는 개인적인 실존의 드라마이다. 개인은 흔히 적대적인 사회와의 사실주의적 대화의 필요성과 호의적인 자연과의 낭만주의적 친교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기에 개인은 마멋의 전략적 지혜를 요구받는다. 그의 시 「빙퇴구의 마멋」("A Drumlin Woodchuck")에서 마멋은 빙퇴구에 의해 조성된 타원형 언덕의 굴속에 산다. 그는 "내 자신의 전략적 은신처는/ 두 개의 바위가 거의 맞닿은 곳이니,/ 더욱 안전하고 아늑한,/ 문이 두 개인 작은 굴을 팠다," (5∼8행). 이처럼 그와 세계는 친구 사이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빙퇴구에 굴을 파고 산다. 필요하면 굴 밖으로 나오지만, 항상 경계태세를 취한다. 두 개의 바위로 좌우 옆구리를 보호할 곳을 확보하고, 앞 뒤 양끝에 두개의 비상문을 만들어 위험이 감지되면 즉시 자신의 요새로 후퇴한다. 그런 연후에 그는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20행). 이처럼 시인 프로스트는 문명사회로부터 뉴잉글랜드 자연으로 전략적 후퇴를 하여, 안전하고 아늑한 곳에서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에머슨과 소로를 비롯한 뉴잉글랜드의 문학적 조상들과 전통은 시인 프로스트가 일단 후퇴하여 안전한 굴을 파는 빙퇴구의 몫을 감당한다.
프로스트는 본질적으로 시의 뿌리는 자연과 전통에 있다고 믿는다. 산업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옛 방법을 고수하여 자연시를 쓰는 이유이다. 엘리엇(T.S. Eliot)이나 파운드로 상징되는 모더니즘이 자연시의 전통을 위협하고 있을 때, 프로스트는 옛 방법의 혁명적 파기가 아닌 고쳐 쓰기를 통해서 이들과 차별성 있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꾀한다.
프로스트가 숲속의 두 길에서 모더니즘의 길이 아닌 자연시의 길을 택한 것은 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호 본능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자연시는 일종의 일탈이다. 소로는 「월든」(Walden)의 「맺는 말」에서 "나는 혹시라도 내 표현이 충분히 일탈적이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다시 말해서 일상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서 내가 확신하는 진리에 적합할 만큼 충분히 일탈하지 못할까봐, 충분히 멀리 헤매지 못할까봐 두렵다. 일탈!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49:288∼289)고 말하였다. 일탈은 일상적 삶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소로는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하여 콩코드의 일상에서 일탈하여 월든의 자연으로 후퇴하였다. 이러한 일탈과 탐험의 기록이 바로 그의 「월든」이다. 프로스트 또한 이와 같다. 그가 뉴햄프셔의 데리(Derry) 농장에서 농부시인의 신화에 도전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산업사회의 여러 울타리, 즉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서, 그가 확신하던 시적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로스트의 시는 공간적 일탈뿐만 아니라, 시간적 일탈, 상상적 일탈, 언어적 일탈 등 일탈의 여러 양상을 포괄한다. 그의 시는 소로의 「월든」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시적 구원의 가능성 탐색에 도전한다. 1952년 3월 26일, 프로스트는 NBC 방송국의 「로버트 프로스트와의 대담」("A Conversation with Robert Frost")에서 "나는 자연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속에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시는 단 두 편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단 두 편," (43:3)이라면서, 자신이 자연시인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자연은 낭만적 자연이 아니라, 피를 갈망하는 실존의 무대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스트의 시는 낭만시의 전통에서 일탈한 현대적 유형의 자연시라 할 터이다.
그가 그리는 실존은 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의 시는 실존의 혼란에 대항하여 그리는 사랑의 도형이다. 그는 에세이 「시의 도형」("The Figure a Poem Makes")에서 "시의 도형은 사랑의 경우와 같다. … 기쁨에서 시작하여 … 인생의 해명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시를 쓰는 행위는 남성적인 사랑하기의 한 형태이고, 시인의 비전은 남성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한 사건을 연속적으로 달려서,?인생의 해명으로 끝난다,"는 그의 시는 성적 절정의 경험이 주는 기쁨, 즉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합일을 통한 구원의 환희를 수반한다. 그에게 시적 비전과의 만남과 사랑은 적어도 "혼란에 대항하는 일시적 지주"는 될 수 있다 (5:394).
시는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아담과 이브가 지식의 나무(Tree of Knowledge)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성애(性愛)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땅, 즉 자연을 갈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의 경작(cultivation of nature)이 곧 문화(culture)이다. 문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대결을 초래한다. 문화의 일부인 시(詩) 역시 인간과 자연과의 대결에서 발견되는 어떤 비전의 언어적 표현이다.
시인은 자연의 거친 소리를 다듬어진 문화의 소리로 전환한다. 프로스트에게 시는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적 대립의 소산이다. 자연이 여자라면 문화는 남자이고, 이의 대립에서 발견되는 시적 비전을 이브(Eve)라 칭한다면, 이를 시적 언어로 전환하는 시인은 아담(Adam)이라 칭할 수 있을 터이다. 시인 프로스트에게 자연은 최고의 시(詩)이다.
프로스트의 뉴잉글랜드 자연은 인간이 실존하는 삶의 무대를 상징한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며, 무엇을 발견하고 배우는가에 초점을 모은다. 그의 뉴잉글랜드는 아메리카의 오지(奧地)랄 수 있는 뉴햄프셔(New Hampshire)와 버몬트(Vermont) 주(州)의 농촌이다. 프로스트하면 바로 뉴잉글랜드의 농촌을 떠올리지만, 사실 프로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해서 11세까지 그곳에서 자랐고, 초중등학교는 매사추세츠의 로렌스(Lawrence)에서 다녔다. 프로스트가 뉴햄프셔의 데리(Derry) 농장에서 농부 시인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은 고교 동창생인 엘리너(Elinor)와의 결혼 5년 후, 그의 나이 26세 때인 1900년이었다. 그가 실제로 농촌에 산 것은 불과 12년 정도이지만, 뉴잉글랜드의 농촌은 그에게 시적 이미지, 메타포, 그리고 주제(subject matter)의 자원(資源)이었다.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자원」("Resources")에서, "시골에 정착하는 사람의 첫 관심은 자연에 대한 얼마쯤의 지식, 또는 새, 식물, 바위, 천문학에 대해, 가능하면, 상당량의 지식으로, 요컨대, 산책의 기술에 의해서 대지의 얼굴을 자신에게 여는 것이어야 한다. … 그는 집, 거리 그리고 클럽을 떠나서, 나무가 우거진 산지, 개간지와 냇가로 가야한다. 그가 '나는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는 곳을 알고 있다,'고 옛 음유시인과 함께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15:151∼52))라고 말했다. 프로스트는 에머슨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노래를 찾아 뉴잉글랜드 농촌에 정착했다. 그러나 초월주의자 에머슨의 신비적 자연은 사실주의자 프로스트의 타자(他者)적 자연으로 수정된다. 프로스트의 자연은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위협하는 자연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맞서야하는 비정한 자연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이러한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실존적 인생철학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뉴잉글랜드의 거친 자연과 척박한 땅에서 잡초와 싸워야하는 농사일은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는 하느님의 말씀 (「창세기」 3: 17)에서 비롯된 보편적 존재의 시련의 제유로 충분하다. 뉴잉글랜드의 뚜렷한 계절의 변화는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조건과 유사하다.
프로스트의 시에는 계절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쇠퇴와 죽음이라는 끔찍하고 두려운 실존의 조건 속에서도 자아의 확립과 생존 가능성의 탐색을 멈추지 않는 양키들의 모습은 실존의 보편적 주제에 접근하는 지역적 제유로 충분하다. 예컨대, 그의 시 「사별」은 포효하는 바람의 위협을 받으며, 쓰러져가는 집에 홀로 남은 사람이 느끼는 강력한 고립과 고독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내게 남은 것은 신뿐이라는 말이,"라는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절망을 견뎌낼 힘을 달라는 화자의 기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결코 신의 도움에 대한 수동적 의존이 아니고 자립과 자존의 실존의지를 확인한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신은 결코 감상적 신이 아니다. 신은 실존의 조건들을 마련하였을 뿐, 그러한 조건들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적 곤경에 사적(私的)으로 역사하는 신이 아니다. 다만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는 말씀에 충실한 하느님이다. 프로스트는 에머슨의 에세이들, 소로의 「월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실용주의 철학,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그리고 「성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책들에서 자신의 지식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풍부한 재료들을 그의 뉴잉글랜드 시에 병합시켰다. 베르그송에게서 유한한 창조적 신의 개념을, 제임스에게서 실용적인 신의 설계 개념을 도입한다. 프로스트의 종교적 관심은 1945년 「이성의 가면극」(A Masque of Reason), 1947년 「자비의 가면극」(A Masque of Mercy)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구약의 「욥기」와 「요나」를 현대적 관점에서 패러디함으로써 정통적인 그리스도 신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를 음미한다.
20세기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1874∼1963)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등 서정성 깊은 시를 통해 한국에서도 낯익은 시인이다. 1912년, 문학적 생애에 모든 것을 걸고 뉴햄프셔를 떠나 영국으로 간 프로스트는 1913년 마침내 런던에서 첫 시집 「소년의 의지」(A Boy's Will)의 출판으로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런던에 있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에 의해 매우 미국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은 프로스트는 그 이듬해 「보스턴 북쪽」(North of Boston)으로 일약 유명한 시인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1962년, 「개간지에서」(In the Clearing)에 이르기 까지 9권의 잇따른 시집의 출판으로 그의 명성은 점점 커졌다. 44개 대학에서의 명예박사학위, 4회의 퓰리처상(Pulitzer Prize), 1961년 케네디(Kennedy) 대통령 취임식 축시 낭독 등이 상징하듯 명실상부한 미국의 국민시인이 되었다.
프로스트는 미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WASP, 즉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속할 뿐만 아니라, 양키의 본고장이며 미국문학의 근원인 뉴잉글랜드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다. 가깝게는 19세기 뉴잉글랜드 르네상스, 즉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소로(Henry David Thoreau)로 상징되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전통을 상속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프로스트는 뉴잉글랜드 농촌의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전통적인 서정시와 설화시를 즐겨 썼다. 그는 또한 자연시인으로서, 미국의 에머슨과 소로, 영국의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등 낭만적 작가들과 유사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35년, 프로스트는 자신이 쓴 「로빈슨의 「재스퍼 왕」 서문」("Introduction to Robinson's King Jasper")에서 "새로워지는 옛 방법(the old-fashioned way to be new)" (5:346)을 제창함으로써, 모더니즘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혁명적 시의 원리들을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그가 말하는 "옛 방법"이란 주로 낭만주의 작가들처럼 자연과 인간의 대화에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자연은 유추와 상징의 보고, 즉 시적 언어의 원천이다. 그의 자연시(自然詩)와 19세기 낭만시(浪漫詩) 간의 표면적 유사점은 20세기의 도시적 감각에 익숙한 비평가나 독자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자연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옛 방법"의 답습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그가 강조하는 옛것이 새로워지는 면을 새롭게 보지 않는 문화적 타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20세기 도시문명은 분명 인간과 자연의 대화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대화를 요구한다. 만약 프로스트의 자연시가 인간과 사회와의 대화를 외면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에 천착(穿鑿)한다면, 마땅히 시대착오적 낡은 시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세기적 감각을 반영한다. 에머슨, 소로, 워즈워스의 자연과 달리, 프로스트의 자연은 도덕적 확신이 아닌 불확실의 상징적 언어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표면적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천착한다.
예컨대, 프로스트의 숲은 어둡고 깊으며 비합리적이다. 그의 농촌풍경은 황량하고 혼돈스럽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무정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인간은 버림받아 혼자이고, 도와주는 이 없어서 당혹스럽다. 20세기의 나(I)는 사회적 집단에 속하면서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실존의 존재이다. 프로스트의 시 「사별」("Bereft")에서 "나"는 "집에서 혼자" (13행)였고, "인생에서 혼자"(15행)였으며, "남은 것은 신뿐," (16행)이었다.
프로스트는 사회적 실존에 적합한 언어를 자연에서 찾는다. 「가지 않은 길」의 화자가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은 실상 "노란 숲속에 두 길" (1행)이 아니다. 숲속의 두 길은 오늘 한 길을 가보고 다음 기회에 돌아와 다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은 길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14행)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은 혼자, 1회밖에 갈 수 없는 인생길에 다름이 아니다. 프로스트에게 숲속의 두 길은 삶의 여로에서 수시로 만나는 인생의 갈림길의 상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 시를 단순한 서정으로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표면적으로는 숲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미적 감각을 칭송하는 시이다. 그러나 결론은 숲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회적 약속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 가야할 길이 멀다/ 자기 전 가야할 길이 멀다," (13∼16행).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자연과 사회를 오가는 특징을 보인다. 때로 자연으로 나가서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반드시 집, 즉 사회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숲의 유혹에 깊이 빠져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그에게 아름다운 숲은 집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미적 가치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시적 언어로 존재하는 것이다.
「티티새」("The Ovenbird")의 티티새는 노래할 계절이 지난 한여름, 깊은 숲속에서 "노래하면서 노래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12행). 이처럼 서정의 시대가 지난 하이테크의 시대에, 실존의 한복판에서, 시인 프로스트는 자연시를 쓰면서 낭만시를 쓰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프로스트는 낭만시의 옛 방법을 상속하고 있으나, 낭만시가 아닌 새로워지는 자연시를 쓴다. 낭만시의 자연은 거의 항상 인간에게 우호적이다. 그러나 프로스트 자연시의 자연은 때로는 우호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이다. 프로스트 시에서 자연은 삶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거나 위협적인 사회의 은유(隱喩) 또는 제유(提喩)로 기능한다. 그의 자연시는 대부분 자연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벌이는 개인적인 실존의 드라마이다. 개인은 흔히 적대적인 사회와의 사실주의적 대화의 필요성과 호의적인 자연과의 낭만주의적 친교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기에 개인은 마멋의 전략적 지혜를 요구받는다. 그의 시 「빙퇴구의 마멋」("A Drumlin Woodchuck")에서 마멋은 빙퇴구에 의해 조성된 타원형 언덕의 굴속에 산다. 그는 "내 자신의 전략적 은신처는/ 두 개의 바위가 거의 맞닿은 곳이니,/ 더욱 안전하고 아늑한,/ 문이 두 개인 작은 굴을 팠다," (5∼8행). 이처럼 그와 세계는 친구 사이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빙퇴구에 굴을 파고 산다. 필요하면 굴 밖으로 나오지만, 항상 경계태세를 취한다. 두 개의 바위로 좌우 옆구리를 보호할 곳을 확보하고, 앞 뒤 양끝에 두개의 비상문을 만들어 위험이 감지되면 즉시 자신의 요새로 후퇴한다. 그런 연후에 그는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20행). 이처럼 시인 프로스트는 문명사회로부터 뉴잉글랜드 자연으로 전략적 후퇴를 하여, 안전하고 아늑한 곳에서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에머슨과 소로를 비롯한 뉴잉글랜드의 문학적 조상들과 전통은 시인 프로스트가 일단 후퇴하여 안전한 굴을 파는 빙퇴구의 몫을 감당한다.
프로스트는 본질적으로 시의 뿌리는 자연과 전통에 있다고 믿는다. 산업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옛 방법을 고수하여 자연시를 쓰는 이유이다. 엘리엇(T.S. Eliot)이나 파운드로 상징되는 모더니즘이 자연시의 전통을 위협하고 있을 때, 프로스트는 옛 방법의 혁명적 파기가 아닌 고쳐 쓰기를 통해서 이들과 차별성 있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꾀한다.
프로스트가 숲속의 두 길에서 모더니즘의 길이 아닌 자연시의 길을 택한 것은 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호 본능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자연시는 일종의 일탈이다. 소로는 「월든」(Walden)의 「맺는 말」에서 "나는 혹시라도 내 표현이 충분히 일탈적이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다시 말해서 일상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서 내가 확신하는 진리에 적합할 만큼 충분히 일탈하지 못할까봐, 충분히 멀리 헤매지 못할까봐 두렵다. 일탈!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49:288∼289)고 말하였다. 일탈은 일상적 삶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소로는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하여 콩코드의 일상에서 일탈하여 월든의 자연으로 후퇴하였다. 이러한 일탈과 탐험의 기록이 바로 그의 「월든」이다. 프로스트 또한 이와 같다. 그가 뉴햄프셔의 데리(Derry) 농장에서 농부시인의 신화에 도전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산업사회의 여러 울타리, 즉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서, 그가 확신하던 시적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로스트의 시는 공간적 일탈뿐만 아니라, 시간적 일탈, 상상적 일탈, 언어적 일탈 등 일탈의 여러 양상을 포괄한다. 그의 시는 소로의 「월든」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시적 구원의 가능성 탐색에 도전한다. 1952년 3월 26일, 프로스트는 NBC 방송국의 「로버트 프로스트와의 대담」("A Conversation with Robert Frost")에서 "나는 자연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속에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시는 단 두 편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단 두 편," (43:3)이라면서, 자신이 자연시인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자연은 낭만적 자연이 아니라, 피를 갈망하는 실존의 무대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스트의 시는 낭만시의 전통에서 일탈한 현대적 유형의 자연시라 할 터이다.
그가 그리는 실존은 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의 시는 실존의 혼란에 대항하여 그리는 사랑의 도형이다. 그는 에세이 「시의 도형」("The Figure a Poem Makes")에서 "시의 도형은 사랑의 경우와 같다. … 기쁨에서 시작하여 … 인생의 해명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시를 쓰는 행위는 남성적인 사랑하기의 한 형태이고, 시인의 비전은 남성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한 사건을 연속적으로 달려서,?인생의 해명으로 끝난다,"는 그의 시는 성적 절정의 경험이 주는 기쁨, 즉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합일을 통한 구원의 환희를 수반한다. 그에게 시적 비전과의 만남과 사랑은 적어도 "혼란에 대항하는 일시적 지주"는 될 수 있다 (5:394).
시는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아담과 이브가 지식의 나무(Tree of Knowledge)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성애(性愛)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땅, 즉 자연을 갈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의 경작(cultivation of nature)이 곧 문화(culture)이다. 문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대결을 초래한다. 문화의 일부인 시(詩) 역시 인간과 자연과의 대결에서 발견되는 어떤 비전의 언어적 표현이다.
시인은 자연의 거친 소리를 다듬어진 문화의 소리로 전환한다. 프로스트에게 시는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적 대립의 소산이다. 자연이 여자라면 문화는 남자이고, 이의 대립에서 발견되는 시적 비전을 이브(Eve)라 칭한다면, 이를 시적 언어로 전환하는 시인은 아담(Adam)이라 칭할 수 있을 터이다. 시인 프로스트에게 자연은 최고의 시(詩)이다.
프로스트의 뉴잉글랜드 자연은 인간이 실존하는 삶의 무대를 상징한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며, 무엇을 발견하고 배우는가에 초점을 모은다. 그의 뉴잉글랜드는 아메리카의 오지(奧地)랄 수 있는 뉴햄프셔(New Hampshire)와 버몬트(Vermont) 주(州)의 농촌이다. 프로스트하면 바로 뉴잉글랜드의 농촌을 떠올리지만, 사실 프로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해서 11세까지 그곳에서 자랐고, 초중등학교는 매사추세츠의 로렌스(Lawrence)에서 다녔다. 프로스트가 뉴햄프셔의 데리(Derry) 농장에서 농부 시인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은 고교 동창생인 엘리너(Elinor)와의 결혼 5년 후, 그의 나이 26세 때인 1900년이었다. 그가 실제로 농촌에 산 것은 불과 12년 정도이지만, 뉴잉글랜드의 농촌은 그에게 시적 이미지, 메타포, 그리고 주제(subject matter)의 자원(資源)이었다.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자원」("Resources")에서, "시골에 정착하는 사람의 첫 관심은 자연에 대한 얼마쯤의 지식, 또는 새, 식물, 바위, 천문학에 대해, 가능하면, 상당량의 지식으로, 요컨대, 산책의 기술에 의해서 대지의 얼굴을 자신에게 여는 것이어야 한다. … 그는 집, 거리 그리고 클럽을 떠나서, 나무가 우거진 산지, 개간지와 냇가로 가야한다. 그가 '나는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는 곳을 알고 있다,'고 옛 음유시인과 함께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15:151∼52))라고 말했다. 프로스트는 에머슨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노래를 찾아 뉴잉글랜드 농촌에 정착했다. 그러나 초월주의자 에머슨의 신비적 자연은 사실주의자 프로스트의 타자(他者)적 자연으로 수정된다. 프로스트의 자연은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위협하는 자연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맞서야하는 비정한 자연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이러한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실존적 인생철학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뉴잉글랜드의 거친 자연과 척박한 땅에서 잡초와 싸워야하는 농사일은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는 하느님의 말씀 (「창세기」 3: 17)에서 비롯된 보편적 존재의 시련의 제유로 충분하다. 뉴잉글랜드의 뚜렷한 계절의 변화는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조건과 유사하다.
프로스트의 시에는 계절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쇠퇴와 죽음이라는 끔찍하고 두려운 실존의 조건 속에서도 자아의 확립과 생존 가능성의 탐색을 멈추지 않는 양키들의 모습은 실존의 보편적 주제에 접근하는 지역적 제유로 충분하다. 예컨대, 그의 시 「사별」은 포효하는 바람의 위협을 받으며, 쓰러져가는 집에 홀로 남은 사람이 느끼는 강력한 고립과 고독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내게 남은 것은 신뿐이라는 말이,"라는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절망을 견뎌낼 힘을 달라는 화자의 기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결코 신의 도움에 대한 수동적 의존이 아니고 자립과 자존의 실존의지를 확인한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신은 결코 감상적 신이 아니다. 신은 실존의 조건들을 마련하였을 뿐, 그러한 조건들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적 곤경에 사적(私的)으로 역사하는 신이 아니다. 다만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는 말씀에 충실한 하느님이다. 프로스트는 에머슨의 에세이들, 소로의 「월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실용주의 철학,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그리고 「성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책들에서 자신의 지식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풍부한 재료들을 그의 뉴잉글랜드 시에 병합시켰다. 베르그송에게서 유한한 창조적 신의 개념을, 제임스에게서 실용적인 신의 설계 개념을 도입한다. 프로스트의 종교적 관심은 1945년 「이성의 가면극」(A Masque of Reason), 1947년 「자비의 가면극」(A Masque of Mercy)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구약의 「욥기」와 「요나」를 현대적 관점에서 패러디함으로써 정통적인 그리스도 신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를 음미한다.
목차
목차
■ 머리말
제Ⅰ부 가지 않은 길
1장 프로스트의 자연시
1. 언어의 텍스트로서의 자연
2. 자연의 소리와 시적 변형
3. 보는 언어로서의 상상의 언어
4. 자연시와 전략적 후퇴
5. 사실과 시적 은유
6. 일상과 일탈의 변증법
2장 일탈의 미학
1. 일탈과 상상의 자유
2. 가정과 선호의 일탈
3. 조소의 일탈
4. 「월든」과 프로스트의 자연시
5. 시적 구원과 메타포
6. 일탈의 미학
3장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
1. 야누스의 삶
2. 시와 사랑의 도형
3. 시는 여인이다
4. 새의 노래
5. 이브의 언어
6. 시 짓기의 의미와 양상
7.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
제Ⅱ부 프로스트 시의 계절적 모형
4장 계절과 실존의 언어
1. 시는 장난감이다
2. 중립적 자연
3. 자연과 실존의 조건
4. 계절과 실존의 언어
5장 여름과 가을의 언어
1. 무상과 유전(流轉)의 법칙
2. 저항과 탐색의 실존의지
3. 무상의 완화와 수확의 기쁨
6장 겨울의 언어
1. 고독, 소외, 그리고 허무
2. 실존의 드라마
3. 허무의 극복
7장 봄의 언어
1. 희망과 회생
2. 사랑과 창조
3. 빛과 어둠
제Ⅲ부 실존과 신의 언어
8장 신의 개념
1. 창조는 진행된다
2. 다윈주의 비판
3. 열린 우주관
4. 직관과 믿음
5. 선택과 의식
6. 신은 유한하다
9장 신의 설계
1. 선과 악의 이상한 혼합체
2. 다원적(多元的) 우주관
3. 실존적 영웅주의
4. 미래를 몰고 오는 신의 설계
5. 인간은 신의 최고 대리인
【부록】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론
인용문헌
로버트 프로스트 연보
찾아보기
제Ⅰ부 가지 않은 길
1장 프로스트의 자연시
1. 언어의 텍스트로서의 자연
2. 자연의 소리와 시적 변형
3. 보는 언어로서의 상상의 언어
4. 자연시와 전략적 후퇴
5. 사실과 시적 은유
6. 일상과 일탈의 변증법
2장 일탈의 미학
1. 일탈과 상상의 자유
2. 가정과 선호의 일탈
3. 조소의 일탈
4. 「월든」과 프로스트의 자연시
5. 시적 구원과 메타포
6. 일탈의 미학
3장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
1. 야누스의 삶
2. 시와 사랑의 도형
3. 시는 여인이다
4. 새의 노래
5. 이브의 언어
6. 시 짓기의 의미와 양상
7. 자연과 문화의 변증법
제Ⅱ부 프로스트 시의 계절적 모형
4장 계절과 실존의 언어
1. 시는 장난감이다
2. 중립적 자연
3. 자연과 실존의 조건
4. 계절과 실존의 언어
5장 여름과 가을의 언어
1. 무상과 유전(流轉)의 법칙
2. 저항과 탐색의 실존의지
3. 무상의 완화와 수확의 기쁨
6장 겨울의 언어
1. 고독, 소외, 그리고 허무
2. 실존의 드라마
3. 허무의 극복
7장 봄의 언어
1. 희망과 회생
2. 사랑과 창조
3. 빛과 어둠
제Ⅲ부 실존과 신의 언어
8장 신의 개념
1. 창조는 진행된다
2. 다윈주의 비판
3. 열린 우주관
4. 직관과 믿음
5. 선택과 의식
6. 신은 유한하다
9장 신의 설계
1. 선과 악의 이상한 혼합체
2. 다원적(多元的) 우주관
3. 실존적 영웅주의
4. 미래를 몰고 오는 신의 설계
5. 인간은 신의 최고 대리인
【부록】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론
인용문헌
로버트 프로스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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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신재실
1941년 부여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과대학장과 한국현대영미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인하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프로스트의 자연시: 그 일탈의 미학』(태학사, 2004), 공저로 『영국소설의 흐름』(동인, 2004) 등이 있으며, 역·편저로 『로버트 프로스트 명시 읽기』(한국문화사, 2022)가 간행되었다. 이 책은 2004년 한국영어영문학회 '영미어문학 시리즈' 1호로 간행된 『프로스트의 자연시: 그 일탈의 미학』을 오랫동안 수정·증보한 제2판이다.
옮긴 책으로는 줄리언 반스의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메트로랜드』, 『태양을 바라보며』, 『내 말 좀 들어봐』,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고슴도치』, 『레몬 테이블』, 『사랑, 그리고』, 니코스 카잔스키의
지은 책으로 『프로스트의 자연시: 그 일탈의 미학』(태학사, 2004), 공저로 『영국소설의 흐름』(동인, 2004) 등이 있으며, 역·편저로 『로버트 프로스트 명시 읽기』(한국문화사, 2022)가 간행되었다. 이 책은 2004년 한국영어영문학회 '영미어문학 시리즈' 1호로 간행된 『프로스트의 자연시: 그 일탈의 미학』을 오랫동안 수정·증보한 제2판이다.
옮긴 책으로는 줄리언 반스의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메트로랜드』, 『태양을 바라보며』, 『내 말 좀 들어봐』,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고슴도치』, 『레몬 테이블』, 『사랑, 그리고』, 니코스 카잔스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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