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로 보는 한국사
기후가 바꾼 5천 년, 새롭게 읽는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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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흔들리면 한국사가 움직였다
고조선의 삭풍에서 조선의 대기근까지,
기후로 다시 보는 5천 년 한국사
우리는 한국사를 왕과 영웅, 전쟁과 제도의 이야기로 배워 왔다. 나라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것도, 세상이 바뀌는 것도 모두 사람의 의지와 선택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하늘 아래에서 살았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정든 땅을 떠나야 했고, 추위와 가뭄이 길어지면 다툼과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다. 사람의 힘만으로 역사를 설명하면 절반을 놓치게 되는 이유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익숙한 장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추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행렬 끝에 고조선이 서 있고, 장수왕이 만주를 버리고 평양으로 내려온 결단 뒤에는 매서워진 하늘이 있다. 따뜻해진 지구는 고려를 동북아시아의 문화 강국으로 밀어 올렸고, 소빙기의 혹독한 추위와 가뭄은 조선의 대기근과 민란에 불을 붙였다.
《기후의 힘》과 《한국인의 기원》을 쓴 박정재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옛 문헌에 고기후학과 지구과학의 증거를 겹쳐, 흩어져 있던 사건들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꿰어 낸다. 기후가 역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했고, 그 선택이 어떻게 전쟁과 이주, 번영과 몰락으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기후의 눈으로 볼 때 한국사는 비로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써 온 온전한 역사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조선의 삭풍에서 조선의 대기근까지,
기후로 다시 보는 5천 년 한국사
우리는 한국사를 왕과 영웅, 전쟁과 제도의 이야기로 배워 왔다. 나라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것도, 세상이 바뀌는 것도 모두 사람의 의지와 선택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하늘 아래에서 살았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정든 땅을 떠나야 했고, 추위와 가뭄이 길어지면 다툼과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다. 사람의 힘만으로 역사를 설명하면 절반을 놓치게 되는 이유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익숙한 장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추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행렬 끝에 고조선이 서 있고, 장수왕이 만주를 버리고 평양으로 내려온 결단 뒤에는 매서워진 하늘이 있다. 따뜻해진 지구는 고려를 동북아시아의 문화 강국으로 밀어 올렸고, 소빙기의 혹독한 추위와 가뭄은 조선의 대기근과 민란에 불을 붙였다.
《기후의 힘》과 《한국인의 기원》을 쓴 박정재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옛 문헌에 고기후학과 지구과학의 증거를 겹쳐, 흩어져 있던 사건들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꿰어 낸다. 기후가 역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했고, 그 선택이 어떻게 전쟁과 이주, 번영과 몰락으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기후의 눈으로 볼 때 한국사는 비로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써 온 온전한 역사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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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기후로 읽으면, 한국사가 새롭게 보인다
왕과 영웅의 역사에서 하늘과 사람의 역사로
이 책은 고조선의 건국에서 조선 후기의 민란까지, 우리 역사의 굵직한 장면들을 골라 기후를 겹쳐 읽는다. 요하의 추위가 밀어낸 사람들이 첫 나라를 세우는 장면에서 시작해, 고구려의 잦은 전쟁과 수도 이전, 고려의 번영과 몽골의 침략, 조선의 대기근과 정조의 분투를 지나, 폭염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도착한다. 익숙한 사건들이지만 하늘을 겹쳐 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중국 대륙의 기온이 떨어질수록 전쟁의 횟수가 늘었다는 통계 위에 고구려의 잦은 전쟁을 올려놓으면, 정복 군주들의 야심 이면에 굶주림이 보인다. 순조 시대를 뒤흔든 홍경래의 난 뒤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화산의 폭발이 있었고,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터지자 조선에는 홍수가, 유럽에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낳은 '여름 없는 해'가 찾아왔다. 조선의 민란과 영국의 괴기 소설이 같은 화산의 자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재해석이 가능한 것은 자연이 남긴 기록 덕분이다. 동굴의 석순은 비의 양을, 습지의 꽃가루는 기온을, 나무의 나이테는 해마다의 날씨를 제 몸에 새긴다. 사관의 붓은 사정에 따라 쓰고 지웠지만 자연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기록을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 옆에 나란히 펼쳐 놓는다. 이제 그 위에서 되살아나는 장면들을 하나씩 만나 보자.
삭풍이 세운 고조선, 훈풍이 키운 위만조선
한랭과 온난이 번갈아 빚은 한반도 첫 왕조
이 책의 단군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신화와 결이 다르다. 요하 강가에는 곰을 섬기며 농사와 목축을 반씩 하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쪽에서 환웅의 무리가 올라온다. 우물을 파고 달력을 읽는 농사꾼들이었다. 곰 부족은 이들을 경계하면서도 씨앗 저장법에 귀를 기울였고, 두 무리는 천천히 섞여 갔다. 그때 동쪽에서 호랑이를 섬기는 사냥꾼들이 들어와 밭을 짓밟고 가축을 빼앗았다. 결국 곰 부족과 환웅의 무리가 힘을 합쳐 이들을 몰아냈고, 얼마 뒤 곰 부족 여인과 환웅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단군이다. 저자는 이 설화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요하 유역에서 실제로 만나고 섞이고 다퉜던 세 갈래 사람들의 오랜 기억으로 다시 읽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꾸 요하로 모여들었고, 왜 끝내 한반도까지 내려왔을까. 답은 추위다. 요하 유역에는 지난 8천 년간 약 500년을 주기로 어김없이 혹독한 추위가 돌아왔고, 그때마다 번성하던 문화가 무너지고 새 주인으로 교체됐다. 흥미롭게도 이 500년의 박자는 저자가 한반도 남해안에서 직접 캐낸 퇴적물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만주와 한반도는 수천 년 동안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리듬으로 흔들려 온 것이다.
추위가 닥칠 때마다 요하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 행렬이 한반도에 벼농사를 심었고, 금강 유역에 우리 청동기 시대의 대표 문화인 송국리 문화를 꽃피웠으며, 그중 일부는 바다를 건너 일본에 벼농사 문명을 전해 주기까지 했다. 고조선의 성립 자체가 삭풍이 떠민 이주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500년마다 닥친 그 추위는 한반도 사람들을 어지간한 추위에는 끄떡없는 집단으로 단련시켰다.
반대로 위만조선은 훈풍의 수혜자였다.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와 한나라가 나란히 제국으로 성장한 따뜻한 시대, 이른바 '로마 온난기'가 열렸다. 한반도 북부의 위만조선은 한나라의 철기와 비단, 일본의 진주, 한반도 남부의 철과 곡물이 오가는 길목을 장악하고 중계 무역으로 부를 쌓으며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얼마나 강했던지, 천하의 한나라가 이 작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두 번의 패배를 겪고 꼬박 1년이 걸렸다. 따뜻한 하늘이 낳은 풍년과 교역이 곧 국력이었다. 추위가 나라를 세우고, 온기가 나라를 키웠다.
장수왕은 왜 만주를 버리고 남쪽으로 갔을까?
북반구를 덮친 5세기 한랭화와 장수왕 천도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역사상 가장 대담한 결단에 대해 《삼국사기》가 남긴 기록은 이 한 줄이 전부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사건을 '남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배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만주 벌판을 호령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정복 국가가, 왜 하필 그 넓은 땅을 등지고 240킬로미터나 떨어진 반도 안쪽 평양으로 내려왔을까.
역사학계의 답은 여럿이다. 국내성이 비좁아서, 콧대 높은 귀족들을 누르려고, 강대국 북위의 침공에 대비해서. 모두 일리가 있지만, 어느 것도 "왜 하필 남쪽인가"라는 질문에는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정복 국가의 귀족들이라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들며 만주를 놓치게 될 평양행을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그 반대를 무릅쓸 만큼 절실한 이유가 장수왕에게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그 답의 실마리를 돌과 꽃가루에서 찾는다. 중국의 동굴 석순과 저자가 직접 분석한 제주도 습지의 꽃가루 기록을 보면, 동아시아의 기후는 천도가 단행된 바로 그 무렵인 420~430년경 수백 년 만의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냥과 목축과 농사를 함께 꾸리며 살던 고구려는 전성기의 인구 증가로 가뜩이나 먹을 것이 빠듯해진 참이었다. 추위는 물러갈 기미가 없었다. 나라의 안정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장수왕에게, 농사가 잘되는 따뜻한 남쪽으로 나라의 중심을 옮기는 일은 모험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같은 시기 유라시아 반대편의 풍경이다. 훈족, 서고트족, 반달족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살 만한 땅을 찾아 움직이며 서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장수왕의 천도와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같은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셈이다. 북반구 전체를 덮친 추위가 동쪽 끝에서는 고구려의 수도를 옮기고, 서쪽 끝에서는 제국을 무너뜨렸다. 교과서가 멈춰 선 한 줄의 기록 너머에서, 과학은 고구려의 역사를 지구 전체의 이야기로 다시 세워 놓는다.
고려는 온기 속에 피고, 그 온기의 끝에서 흔들렸다
중세 온난기의 번영과 여몽전쟁의 고난
1123년 초여름, 송나라 사신 서긍이 도착한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 포구에는 여진의 말 무역선과 일본 상선, 멀리 아라비아에서 온 상선까지 돛대가 산맥처럼 이어져 있었다. 향신료 냄새가 물결을 타고 퍼지고, 노점에는 송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푸른빛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고려사》에는 실제로 아라비아 상인 100명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쳤고, 수은과 몰약을 싣고 온 상인들을 나라가 후하게 대접해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대 최고 문화를 자부하던 송나라 사신조차 고려 청자의 비색과 나전칠기의 솜씨 앞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못했다.
이 국제 무역항의 활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800년 무렵부터 400년 가까이, 지구가 유난히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가 이어졌다. 바이킹이 그린란드에 마을을 짓고 스코틀랜드에서 와인을 담그던 시대다. 만주 일대의 마을 수가 이 시기에 3,400개를 넘겼다가 추워진 뒤 150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는 통계, 사람이 살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만큼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다는 기록은 그 온기가 얼마나 예외적인 선물이었는지 보여준다.
고려는 그 선물을 가장 알뜰하게 쓴 나라였다. 풍년이 이어지고 무역으로 곳간이 차자, 그 힘은 곧 군대가 되었다. 거란의 40만 대군이 쳐들어와 개경이 함락되는 위기 속에서도 고려는 무너지지 않았고, 서희는 말로 담판을 지어 오히려 땅을 넓혔으며, 강감찬은 귀주에서 10만 대군을 섬멸했다(1019년). 잘 먹는 나라가 잘 싸운다. 동북아 최강국 요나라가 두려워한 것은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따뜻한 시대의 국제 교역망 위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강소국 고려였다.
그러나 온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3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화산이 잇따라 터지고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뒤바뀌면서 한반도는 바짝 말라 갔다.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고려사》의 기록(1230년) 바로 이듬해, 몽골의 침공이 시작됐다. 얄궂게도 같은 시기 몽골 초원에는 지난 1,000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려 군마들을 살찌우고 있었다. 하늘은 칭기즈칸의 편이었던 셈이다. 아홉 차례의 전쟁, 사람보다 말이 많아졌다는 제주도의 몽골 목장, 그리고 몽골·고려 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두 번이나 수장시키며 일본인들이 '신의 바람(가미카제)'이라 부르게 된 태풍까지. 고려 후기의 고난은 기후가 나라들의 운명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주는 극적인 무대다.
조선의 왕들, 천운이 엇갈렸던 까닭은?
하늘이 도운 영조·고종, 하늘이 등진 인조·철종
1670년과 1671년, 경신대기근이 조선을 덮쳤다. 두 해 연속 농사가 무너지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으며, 차마 옮기기 어려운 식인의 기록까지 남았다. 그로부터 140년 뒤에는 홍경래의 난(1811년)이 평안도를 뒤흔들었다. 학교에서 배울 때 이 사건들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조선의 가뭄을 증언하는 뜻밖의 증인은 지구 반대편, 쿠바의 한 동굴에 있었다. 동굴 석순은 그 지역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를 나이테처럼 몸에 새기는데, 저자가 이 석순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300여 년 치 가뭄 기록을 나란히 놓자 숨어 있던 규칙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도 부근에서 일 년 내내 비를 뿌리는 거대한 비구름 띠, 이른바 '열대 수렴대'가 약 70년을 주기로 남쪽으로 밀려날 때마다 조선에는 가뭄과 기근, 그리고 민란이 어김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경신대기근도, 홍경래의 난도 모두 이 주기 위에 놓여 있다.
이 발견은 조선 왕들에 대한 평가마저 다시 보게 만든다. 재위 후반으로 갈수록 비가 넉넉해진 영조와 고종은 '하늘이 도운 왕'이었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뒤 조정이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도 영조의 나라가 안정을 지킨 데에는, 노련한 통치술 못지않게 순한 하늘의 몫이 있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인조와 효종, 현종, 그리고 철종은 하늘의 역풍을 맞았다. 병자호란에서 무릎 꿇은 인조의 시대에 비는 갈수록 말랐고, 효종과 현종 대의 가뭄은 1600년 이후 최악이었다. 경신대기근이 바로 현종의 시대였다. 강화도에서 농사짓다 하루아침에 왕이 된 철종의 시대에는 썩은 관리들의 수탈에 가뭄까지 겹치며 민란이 줄을 이었다.
물론 저자는 기후가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늘의 덕과 피해를 함께 겪은 숙종과 순조 같은 사례를 나란히 놓으며 균형을 잡는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백성 대다수가 농민이던 시대에 날씨는 곧 밥이었고, 밥은 곧 민심이었다. 흉년이 들면 백성은 "왕이 부덕하여 하늘이 왕을 저버렸다"고 원망했고, 곳간이 비면 관리들의 수탈은 더 악랄해졌으며, 가뭄이 들면 봉기가 들불처럼 번졌다. 조선왕조 500년은 지구가 유난히 추웠던 소빙기와 정확히 겹친다. 70년마다 오르내린 비구름 띠, 줄어드는 태양 흑점, 잇따른 화산 폭발까지, 왕의 덕이 아니라 하늘의 주기가 민심의 향방을 갈랐던 것이다.
정조, 최악의 하늘 아래서 최고의 시대를 열다
역풍 속에서 완성된 조선의 마지막 전성기
1783년,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이 폭발했다. 뿜어져 나온 화산 가스가 북반구의 하늘을 뿌옇게 덮자 세계가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폭발이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는 기르던 양과 말이 열에 여덟 마리씩 죽고 인구의 5분의 1이 사라졌다. 이후 3년간 북반구 전체가 냉골이 됐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아 밀값이 폭등했고, 일본은 7년에 걸친 대기근에 빠졌다.
가장 극적인 도미노는 프랑스에서 넘어졌다. 1787년부터 2년 사이 곡물값이 50퍼센트나 치솟자 굶주린 민심이 폭발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친 그 혁명의 도화선에, 지구 반대편 화산이 불을 붙인 셈이다. 세계사 교과서가 정치와 사상으로 설명해 온 사건의 밑바닥에도 하늘이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하늘 아래 조선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조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세계가 흉년에 휘청이던 바로 그 시기, 정조는 백성의 살림을 붙들며 강력한 왕권으로 전성기를 열었고, 1794년에는 수원 화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실록의 기록이 보여주듯 정조의 시대는 갈수록 비가 마르는 역풍의 시대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왕정이 무너지는 동안, 한반도에서는 위기를 이겨낸 군주가 개혁의 상징을 세운 것이다.
이 대비를 통해 저자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전한다. 기후는 역사에 강하게 개입하지만,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리더의 판단만 올바르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구성원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공동체는 어떤 충격 앞에서도 다시 일어선다. 하늘 탓만 하지도, 사람 탓만 하지도 않는 것. 그 균형이 이 책을 흔한 환경 이야기와 다르게 만든다.
잠 못 드는 열대야에 경신대기근의 조선을 생각하다
폭염과 폭우의 시대, 5천 년의 기록을 펼쳐야 할 때
저자가 이 책을 쓰던 2025년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폭염은 28일을 넘겼고 열대야는 두 달 가까이 이어졌으며, 가뭄이 덮친 동해안에서는 아파트가 단수되고 급수차와 헬기까지 떴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 여름에는 정반대였다. 중부 내륙에 붙박인 장마전선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전국에서 4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학자들은 이를 '기후 채찍질'이라 부른다. 채찍이 허공에서 방향을 홱 꺾듯, 가뭄과 폭우가 예측 불가능하게 번갈아 후려치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것은 처음 겪는 하늘이 아니다. 경신대기근의 조선이, 여몽전쟁기의 고려가, 삭풍 속의 고조선 사람들이 이미 겪었던 하늘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하늘 아래서 수리 시설을 고치고, 심는 작물을 바꾸고, 서로 부조하며 버텼고, 도저히 안 될 때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단까지 내리며 살아남았다. 5천 년의 한국사는 그 자체로 기후 위기 생존의 기록이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수천 년간 조상들을 단련시킨 위협이 추위였다면, 다가올 위협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더위라는 점이다. 게다가 과거의 기후가 500년, 200년, 70년의 자연스러운 박자를 따랐다면, 지금은 인간이 스스로 그 박자를 흐트러뜨리고 있다. 과거가 그대로 미래의 답안지가 될 수는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더 깊은 과거를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멀리 되돌아볼수록 멀리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더 멀리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과거의 기후를 읽는 일은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을 정성스레 닦는 작업"이다. 책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저자가 서문에 심어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다가올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후가 흔들리면 역사는 움직였다.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서 역사가 어디로 움직일지는, 이번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왕과 영웅의 역사에서 하늘과 사람의 역사로
이 책은 고조선의 건국에서 조선 후기의 민란까지, 우리 역사의 굵직한 장면들을 골라 기후를 겹쳐 읽는다. 요하의 추위가 밀어낸 사람들이 첫 나라를 세우는 장면에서 시작해, 고구려의 잦은 전쟁과 수도 이전, 고려의 번영과 몽골의 침략, 조선의 대기근과 정조의 분투를 지나, 폭염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도착한다. 익숙한 사건들이지만 하늘을 겹쳐 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중국 대륙의 기온이 떨어질수록 전쟁의 횟수가 늘었다는 통계 위에 고구려의 잦은 전쟁을 올려놓으면, 정복 군주들의 야심 이면에 굶주림이 보인다. 순조 시대를 뒤흔든 홍경래의 난 뒤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화산의 폭발이 있었고,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터지자 조선에는 홍수가, 유럽에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낳은 '여름 없는 해'가 찾아왔다. 조선의 민란과 영국의 괴기 소설이 같은 화산의 자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재해석이 가능한 것은 자연이 남긴 기록 덕분이다. 동굴의 석순은 비의 양을, 습지의 꽃가루는 기온을, 나무의 나이테는 해마다의 날씨를 제 몸에 새긴다. 사관의 붓은 사정에 따라 쓰고 지웠지만 자연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기록을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 옆에 나란히 펼쳐 놓는다. 이제 그 위에서 되살아나는 장면들을 하나씩 만나 보자.
삭풍이 세운 고조선, 훈풍이 키운 위만조선
한랭과 온난이 번갈아 빚은 한반도 첫 왕조
이 책의 단군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신화와 결이 다르다. 요하 강가에는 곰을 섬기며 농사와 목축을 반씩 하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쪽에서 환웅의 무리가 올라온다. 우물을 파고 달력을 읽는 농사꾼들이었다. 곰 부족은 이들을 경계하면서도 씨앗 저장법에 귀를 기울였고, 두 무리는 천천히 섞여 갔다. 그때 동쪽에서 호랑이를 섬기는 사냥꾼들이 들어와 밭을 짓밟고 가축을 빼앗았다. 결국 곰 부족과 환웅의 무리가 힘을 합쳐 이들을 몰아냈고, 얼마 뒤 곰 부족 여인과 환웅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단군이다. 저자는 이 설화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요하 유역에서 실제로 만나고 섞이고 다퉜던 세 갈래 사람들의 오랜 기억으로 다시 읽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꾸 요하로 모여들었고, 왜 끝내 한반도까지 내려왔을까. 답은 추위다. 요하 유역에는 지난 8천 년간 약 500년을 주기로 어김없이 혹독한 추위가 돌아왔고, 그때마다 번성하던 문화가 무너지고 새 주인으로 교체됐다. 흥미롭게도 이 500년의 박자는 저자가 한반도 남해안에서 직접 캐낸 퇴적물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만주와 한반도는 수천 년 동안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리듬으로 흔들려 온 것이다.
추위가 닥칠 때마다 요하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 행렬이 한반도에 벼농사를 심었고, 금강 유역에 우리 청동기 시대의 대표 문화인 송국리 문화를 꽃피웠으며, 그중 일부는 바다를 건너 일본에 벼농사 문명을 전해 주기까지 했다. 고조선의 성립 자체가 삭풍이 떠민 이주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500년마다 닥친 그 추위는 한반도 사람들을 어지간한 추위에는 끄떡없는 집단으로 단련시켰다.
반대로 위만조선은 훈풍의 수혜자였다.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와 한나라가 나란히 제국으로 성장한 따뜻한 시대, 이른바 '로마 온난기'가 열렸다. 한반도 북부의 위만조선은 한나라의 철기와 비단, 일본의 진주, 한반도 남부의 철과 곡물이 오가는 길목을 장악하고 중계 무역으로 부를 쌓으며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얼마나 강했던지, 천하의 한나라가 이 작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두 번의 패배를 겪고 꼬박 1년이 걸렸다. 따뜻한 하늘이 낳은 풍년과 교역이 곧 국력이었다. 추위가 나라를 세우고, 온기가 나라를 키웠다.
장수왕은 왜 만주를 버리고 남쪽으로 갔을까?
북반구를 덮친 5세기 한랭화와 장수왕 천도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역사상 가장 대담한 결단에 대해 《삼국사기》가 남긴 기록은 이 한 줄이 전부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사건을 '남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배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만주 벌판을 호령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정복 국가가, 왜 하필 그 넓은 땅을 등지고 240킬로미터나 떨어진 반도 안쪽 평양으로 내려왔을까.
역사학계의 답은 여럿이다. 국내성이 비좁아서, 콧대 높은 귀족들을 누르려고, 강대국 북위의 침공에 대비해서. 모두 일리가 있지만, 어느 것도 "왜 하필 남쪽인가"라는 질문에는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정복 국가의 귀족들이라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들며 만주를 놓치게 될 평양행을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그 반대를 무릅쓸 만큼 절실한 이유가 장수왕에게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그 답의 실마리를 돌과 꽃가루에서 찾는다. 중국의 동굴 석순과 저자가 직접 분석한 제주도 습지의 꽃가루 기록을 보면, 동아시아의 기후는 천도가 단행된 바로 그 무렵인 420~430년경 수백 년 만의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냥과 목축과 농사를 함께 꾸리며 살던 고구려는 전성기의 인구 증가로 가뜩이나 먹을 것이 빠듯해진 참이었다. 추위는 물러갈 기미가 없었다. 나라의 안정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장수왕에게, 농사가 잘되는 따뜻한 남쪽으로 나라의 중심을 옮기는 일은 모험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같은 시기 유라시아 반대편의 풍경이다. 훈족, 서고트족, 반달족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살 만한 땅을 찾아 움직이며 서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장수왕의 천도와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같은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셈이다. 북반구 전체를 덮친 추위가 동쪽 끝에서는 고구려의 수도를 옮기고, 서쪽 끝에서는 제국을 무너뜨렸다. 교과서가 멈춰 선 한 줄의 기록 너머에서, 과학은 고구려의 역사를 지구 전체의 이야기로 다시 세워 놓는다.
고려는 온기 속에 피고, 그 온기의 끝에서 흔들렸다
중세 온난기의 번영과 여몽전쟁의 고난
1123년 초여름, 송나라 사신 서긍이 도착한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 포구에는 여진의 말 무역선과 일본 상선, 멀리 아라비아에서 온 상선까지 돛대가 산맥처럼 이어져 있었다. 향신료 냄새가 물결을 타고 퍼지고, 노점에는 송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푸른빛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고려사》에는 실제로 아라비아 상인 100명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쳤고, 수은과 몰약을 싣고 온 상인들을 나라가 후하게 대접해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대 최고 문화를 자부하던 송나라 사신조차 고려 청자의 비색과 나전칠기의 솜씨 앞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못했다.
이 국제 무역항의 활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800년 무렵부터 400년 가까이, 지구가 유난히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가 이어졌다. 바이킹이 그린란드에 마을을 짓고 스코틀랜드에서 와인을 담그던 시대다. 만주 일대의 마을 수가 이 시기에 3,400개를 넘겼다가 추워진 뒤 150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는 통계, 사람이 살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만큼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다는 기록은 그 온기가 얼마나 예외적인 선물이었는지 보여준다.
고려는 그 선물을 가장 알뜰하게 쓴 나라였다. 풍년이 이어지고 무역으로 곳간이 차자, 그 힘은 곧 군대가 되었다. 거란의 40만 대군이 쳐들어와 개경이 함락되는 위기 속에서도 고려는 무너지지 않았고, 서희는 말로 담판을 지어 오히려 땅을 넓혔으며, 강감찬은 귀주에서 10만 대군을 섬멸했다(1019년). 잘 먹는 나라가 잘 싸운다. 동북아 최강국 요나라가 두려워한 것은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따뜻한 시대의 국제 교역망 위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강소국 고려였다.
그러나 온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3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화산이 잇따라 터지고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뒤바뀌면서 한반도는 바짝 말라 갔다.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고려사》의 기록(1230년) 바로 이듬해, 몽골의 침공이 시작됐다. 얄궂게도 같은 시기 몽골 초원에는 지난 1,000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려 군마들을 살찌우고 있었다. 하늘은 칭기즈칸의 편이었던 셈이다. 아홉 차례의 전쟁, 사람보다 말이 많아졌다는 제주도의 몽골 목장, 그리고 몽골·고려 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두 번이나 수장시키며 일본인들이 '신의 바람(가미카제)'이라 부르게 된 태풍까지. 고려 후기의 고난은 기후가 나라들의 운명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주는 극적인 무대다.
조선의 왕들, 천운이 엇갈렸던 까닭은?
하늘이 도운 영조·고종, 하늘이 등진 인조·철종
1670년과 1671년, 경신대기근이 조선을 덮쳤다. 두 해 연속 농사가 무너지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으며, 차마 옮기기 어려운 식인의 기록까지 남았다. 그로부터 140년 뒤에는 홍경래의 난(1811년)이 평안도를 뒤흔들었다. 학교에서 배울 때 이 사건들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조선의 가뭄을 증언하는 뜻밖의 증인은 지구 반대편, 쿠바의 한 동굴에 있었다. 동굴 석순은 그 지역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를 나이테처럼 몸에 새기는데, 저자가 이 석순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300여 년 치 가뭄 기록을 나란히 놓자 숨어 있던 규칙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도 부근에서 일 년 내내 비를 뿌리는 거대한 비구름 띠, 이른바 '열대 수렴대'가 약 70년을 주기로 남쪽으로 밀려날 때마다 조선에는 가뭄과 기근, 그리고 민란이 어김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경신대기근도, 홍경래의 난도 모두 이 주기 위에 놓여 있다.
이 발견은 조선 왕들에 대한 평가마저 다시 보게 만든다. 재위 후반으로 갈수록 비가 넉넉해진 영조와 고종은 '하늘이 도운 왕'이었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뒤 조정이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도 영조의 나라가 안정을 지킨 데에는, 노련한 통치술 못지않게 순한 하늘의 몫이 있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인조와 효종, 현종, 그리고 철종은 하늘의 역풍을 맞았다. 병자호란에서 무릎 꿇은 인조의 시대에 비는 갈수록 말랐고, 효종과 현종 대의 가뭄은 1600년 이후 최악이었다. 경신대기근이 바로 현종의 시대였다. 강화도에서 농사짓다 하루아침에 왕이 된 철종의 시대에는 썩은 관리들의 수탈에 가뭄까지 겹치며 민란이 줄을 이었다.
물론 저자는 기후가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늘의 덕과 피해를 함께 겪은 숙종과 순조 같은 사례를 나란히 놓으며 균형을 잡는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백성 대다수가 농민이던 시대에 날씨는 곧 밥이었고, 밥은 곧 민심이었다. 흉년이 들면 백성은 "왕이 부덕하여 하늘이 왕을 저버렸다"고 원망했고, 곳간이 비면 관리들의 수탈은 더 악랄해졌으며, 가뭄이 들면 봉기가 들불처럼 번졌다. 조선왕조 500년은 지구가 유난히 추웠던 소빙기와 정확히 겹친다. 70년마다 오르내린 비구름 띠, 줄어드는 태양 흑점, 잇따른 화산 폭발까지, 왕의 덕이 아니라 하늘의 주기가 민심의 향방을 갈랐던 것이다.
정조, 최악의 하늘 아래서 최고의 시대를 열다
역풍 속에서 완성된 조선의 마지막 전성기
1783년,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이 폭발했다. 뿜어져 나온 화산 가스가 북반구의 하늘을 뿌옇게 덮자 세계가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폭발이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는 기르던 양과 말이 열에 여덟 마리씩 죽고 인구의 5분의 1이 사라졌다. 이후 3년간 북반구 전체가 냉골이 됐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아 밀값이 폭등했고, 일본은 7년에 걸친 대기근에 빠졌다.
가장 극적인 도미노는 프랑스에서 넘어졌다. 1787년부터 2년 사이 곡물값이 50퍼센트나 치솟자 굶주린 민심이 폭발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친 그 혁명의 도화선에, 지구 반대편 화산이 불을 붙인 셈이다. 세계사 교과서가 정치와 사상으로 설명해 온 사건의 밑바닥에도 하늘이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하늘 아래 조선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조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세계가 흉년에 휘청이던 바로 그 시기, 정조는 백성의 살림을 붙들며 강력한 왕권으로 전성기를 열었고, 1794년에는 수원 화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실록의 기록이 보여주듯 정조의 시대는 갈수록 비가 마르는 역풍의 시대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왕정이 무너지는 동안, 한반도에서는 위기를 이겨낸 군주가 개혁의 상징을 세운 것이다.
이 대비를 통해 저자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전한다. 기후는 역사에 강하게 개입하지만,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리더의 판단만 올바르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구성원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공동체는 어떤 충격 앞에서도 다시 일어선다. 하늘 탓만 하지도, 사람 탓만 하지도 않는 것. 그 균형이 이 책을 흔한 환경 이야기와 다르게 만든다.
잠 못 드는 열대야에 경신대기근의 조선을 생각하다
폭염과 폭우의 시대, 5천 년의 기록을 펼쳐야 할 때
저자가 이 책을 쓰던 2025년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폭염은 28일을 넘겼고 열대야는 두 달 가까이 이어졌으며, 가뭄이 덮친 동해안에서는 아파트가 단수되고 급수차와 헬기까지 떴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 여름에는 정반대였다. 중부 내륙에 붙박인 장마전선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전국에서 4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학자들은 이를 '기후 채찍질'이라 부른다. 채찍이 허공에서 방향을 홱 꺾듯, 가뭄과 폭우가 예측 불가능하게 번갈아 후려치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것은 처음 겪는 하늘이 아니다. 경신대기근의 조선이, 여몽전쟁기의 고려가, 삭풍 속의 고조선 사람들이 이미 겪었던 하늘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하늘 아래서 수리 시설을 고치고, 심는 작물을 바꾸고, 서로 부조하며 버텼고, 도저히 안 될 때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단까지 내리며 살아남았다. 5천 년의 한국사는 그 자체로 기후 위기 생존의 기록이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수천 년간 조상들을 단련시킨 위협이 추위였다면, 다가올 위협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더위라는 점이다. 게다가 과거의 기후가 500년, 200년, 70년의 자연스러운 박자를 따랐다면, 지금은 인간이 스스로 그 박자를 흐트러뜨리고 있다. 과거가 그대로 미래의 답안지가 될 수는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더 깊은 과거를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멀리 되돌아볼수록 멀리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더 멀리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과거의 기후를 읽는 일은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을 정성스레 닦는 작업"이다. 책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저자가 서문에 심어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다가올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후가 흔들리면 역사는 움직였다.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서 역사가 어디로 움직일지는, 이번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1장 고조선, 삭풍 속에서 건국하다
요하 문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하가점 하층 문화의 쇠퇴가 송국리형 문화로 이어져│하가점 상층 문화와 한국인│한국인과 일본인의 문화 차이│한국인 전통적 지오멘탈리티의 현대성
2장 훈풍을 딛고 한나라에 맞선 위만조선
로마 온난기에 꽃핀 위만조선│1000년 주기의 온난화와 문명의 성쇠│기후와 인류 발전의 궤적│굶주림은 전쟁을 낳는다│온난화, 문명의 연료에서 갈등의 씨앗으로
3장 장수왕은 왜 남쪽으로 향했을까?
장수왕 천도 미스터리│매서웠던 추위와 고구려의 천도│6세기 초까지 이어진 동아시아의 황사│고대 후기 소빙기와 고구려의 쇠락│쥐스-더프리스 주기와 화산 활동이 남긴 흔적│온난화의 역습과 인도네시아의 천도
4장 차가워진 대륙, 엇갈린 삼국의 운명
후환융선의 흔들림과 인구 이동│중국 대륙이 추워질수록 전쟁 발생 빈도가 높아지다│고구려의 반복된 전쟁에는 이유가 있다│수단 분쟁과 부여의 몰락
5장 중세온난기에 꽃핀 고려의 문화
따뜻해진 지구, 뜨거워진 경쟁│해상 무역의 거점 고려, 패권국 요나라를 이기다│송나라, 요나라, 고려의 국제 관계│12세기 금나라의 질주│중세 온난기 이후 1000년 만에 찾아온 현 온난기
6장 제주에 새겨진 고려의 고난
양수의 난│고려의 가혹한 수탈이 남긴 제주도의 흔적│여몽전쟁과 탐라목장│장주기 엘니뇨와 고려 농민의 고난│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가미카제
7장 정조, 기후 위기 조선의 백성을 구하다
조선의 대기근│줄어드는 흑점, 늘어나는 화산 폭발│17세기의 혼란과 18세기의 부흥│17세기의 화산 폭발이 한반도에 미친 여파│정조는 뛰어났다│자유 의지와 위기 극복
8장 순조의 조선, 잿빛 하늘 아래 민심이 들끓다
돌턴 극소기에 찾아온 민란의 시대│홍경래의 난과 무명의 화산 폭발│탐보라산의 폭발은 조선의 홍수로 이어져│하얀 하늘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의 가능성│탐보라 화산과 프랑켄슈타인
9장 조선의 왕들, 70년마다 천운이 엇갈린 까닭은?
열대 수렴대, 한반도의 기후를 좌우하다│하늘이 도운 왕│대체로 운이 좋지 않았던 조선의 왕들│환국정치의 숙종, 세도정치의 순조│70년 주기로 반복된 조선 후기의 가뭄과 민란│70년 주기의 바다 온도 변화│인류세의 도래로 증가한 불확실성
10장 과거의 기후에서 미래의 길을 묻다
역사는 정말로 진보하는가?│문명의 운명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인류세의 의미│그래도 거대 서사가 필요한 이유
나오며
1장 고조선, 삭풍 속에서 건국하다
요하 문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하가점 하층 문화의 쇠퇴가 송국리형 문화로 이어져│하가점 상층 문화와 한국인│한국인과 일본인의 문화 차이│한국인 전통적 지오멘탈리티의 현대성
2장 훈풍을 딛고 한나라에 맞선 위만조선
로마 온난기에 꽃핀 위만조선│1000년 주기의 온난화와 문명의 성쇠│기후와 인류 발전의 궤적│굶주림은 전쟁을 낳는다│온난화, 문명의 연료에서 갈등의 씨앗으로
3장 장수왕은 왜 남쪽으로 향했을까?
장수왕 천도 미스터리│매서웠던 추위와 고구려의 천도│6세기 초까지 이어진 동아시아의 황사│고대 후기 소빙기와 고구려의 쇠락│쥐스-더프리스 주기와 화산 활동이 남긴 흔적│온난화의 역습과 인도네시아의 천도
4장 차가워진 대륙, 엇갈린 삼국의 운명
후환융선의 흔들림과 인구 이동│중국 대륙이 추워질수록 전쟁 발생 빈도가 높아지다│고구려의 반복된 전쟁에는 이유가 있다│수단 분쟁과 부여의 몰락
5장 중세온난기에 꽃핀 고려의 문화
따뜻해진 지구, 뜨거워진 경쟁│해상 무역의 거점 고려, 패권국 요나라를 이기다│송나라, 요나라, 고려의 국제 관계│12세기 금나라의 질주│중세 온난기 이후 1000년 만에 찾아온 현 온난기
6장 제주에 새겨진 고려의 고난
양수의 난│고려의 가혹한 수탈이 남긴 제주도의 흔적│여몽전쟁과 탐라목장│장주기 엘니뇨와 고려 농민의 고난│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가미카제
7장 정조, 기후 위기 조선의 백성을 구하다
조선의 대기근│줄어드는 흑점, 늘어나는 화산 폭발│17세기의 혼란과 18세기의 부흥│17세기의 화산 폭발이 한반도에 미친 여파│정조는 뛰어났다│자유 의지와 위기 극복
8장 순조의 조선, 잿빛 하늘 아래 민심이 들끓다
돌턴 극소기에 찾아온 민란의 시대│홍경래의 난과 무명의 화산 폭발│탐보라산의 폭발은 조선의 홍수로 이어져│하얀 하늘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의 가능성│탐보라 화산과 프랑켄슈타인
9장 조선의 왕들, 70년마다 천운이 엇갈린 까닭은?
열대 수렴대, 한반도의 기후를 좌우하다│하늘이 도운 왕│대체로 운이 좋지 않았던 조선의 왕들│환국정치의 숙종, 세도정치의 순조│70년 주기로 반복된 조선 후기의 가뭄과 민란│70년 주기의 바다 온도 변화│인류세의 도래로 증가한 불확실성
10장 과거의 기후에서 미래의 길을 묻다
역사는 정말로 진보하는가?│문명의 운명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인류세의 의미│그래도 거대 서사가 필요한 이유
나오며
저자
저자
박정재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생물지리학, 고생태학, 고기후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지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전남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를 거쳤다.
과거 한반도의 기후와 식생 변화를 복원하고, 기후 변화가 인류의 이동과 농경의 확산, 문명의 성쇠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 왔다. 특히 한반도의 고기후를 현장에서 조사·분석해 확보한 자연과학적 자료를 지리학·고고학·역사학·인류학의 연구 성과와 접목함으로써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작 《기후의 힘》에서는 기후와 환경 변화가 인류와 한반도 문명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고, 《한국인의 기원》에서는 고기후학과 고유전학, 고고학과 언어학의 성과를 종합해 한국인의 형성 과정을 탐구했다. 이번 《기후로 보는 한국사》에서는 고조선의 성립부터 조선 후기의 대기근과 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결정적 전환점마다 인간의 선택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기후의 역할을 조명한다.
과거 한반도의 기후와 식생 변화를 복원하고, 기후 변화가 인류의 이동과 농경의 확산, 문명의 성쇠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 왔다. 특히 한반도의 고기후를 현장에서 조사·분석해 확보한 자연과학적 자료를 지리학·고고학·역사학·인류학의 연구 성과와 접목함으로써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작 《기후의 힘》에서는 기후와 환경 변화가 인류와 한반도 문명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고, 《한국인의 기원》에서는 고기후학과 고유전학, 고고학과 언어학의 성과를 종합해 한국인의 형성 과정을 탐구했다. 이번 《기후로 보는 한국사》에서는 고조선의 성립부터 조선 후기의 대기근과 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결정적 전환점마다 인간의 선택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기후의 역할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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