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우생학 사회
당신의 낳을 권리는 어떻게 선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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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이 없는 미래를 선택하게 되는가?"
출산과 양육이 행복이 아닌 불안과 위험이 되어버린 시대,
초저출생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이다
"가난한 아이는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권이 된다
고령화 문제로 시작된 저출생 담론은 이제 국가의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언제쯤 한국이 소멸할까?'를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여 년간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쏟아부은 예산만 700조 원이 넘는데, 합계출산율은 1.0을 넘지 못했다. 육아휴직과 아이 돌봄서비스 확대('여성의 일-육아 양립'), 신혼부부 위주의 주거 지원으로 일관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꾸준히 실패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그리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고 지적한다. 최근 4년 동안 고졸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7% 급감했는데, 같은 시기 대졸 여성 감소율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여성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조금 감소했으며, 출산을 포기하는 사유의 34.4%는 '경제적 문제'다. 이는 경제적 자원이 많고 안정된 주거를 갖추고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사회적 자원을 가진 이성애 부부만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위주의 현금 지원 정책은 사실상 이러한 '정상' 부모만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며, '부모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현금 지원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지원받는다 해도 출산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가 저출생 정책을 통해 '정상' 부모를 선별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선택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이주희 교수는 '구조적 우생학'이라고 정의한다. 구조적 우생학은 인종 선별, 강제 불임처럼 노골적인 폭력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규정한 '정상' 부모 외에는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즉, 구조적 우생학 사회에서 출산은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된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새로운 렌즈와 '구조적 우생학'에 의해 '낳을 권리'를 선별당한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합계출산율 0.72라는 숫자 뒤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추적한 책이다.
그런데 '부모 자격'이 높아지는 건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희 교수는 유사한 가정환경, 가치관, 사회계층에서만 아이가 태어나는 사회는 "다른 가능성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거되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질 뿐 해소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종이 하나의 치명적 질병으로도 멸종해버리듯, 다양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역시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할 능력을 잃어버린 취약한 사회다. 즉 한국 사회가 '소멸'한다면, 그 이유는 낮은 합계출산율이 아니라 구조적 우생학에 있을 것이다.
출산과 양육이 행복이 아닌 불안과 위험이 되어버린 시대,
초저출생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이다
"가난한 아이는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권이 된다
고령화 문제로 시작된 저출생 담론은 이제 국가의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언제쯤 한국이 소멸할까?'를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여 년간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쏟아부은 예산만 700조 원이 넘는데, 합계출산율은 1.0을 넘지 못했다. 육아휴직과 아이 돌봄서비스 확대('여성의 일-육아 양립'), 신혼부부 위주의 주거 지원으로 일관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꾸준히 실패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그리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고 지적한다. 최근 4년 동안 고졸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7% 급감했는데, 같은 시기 대졸 여성 감소율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여성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조금 감소했으며, 출산을 포기하는 사유의 34.4%는 '경제적 문제'다. 이는 경제적 자원이 많고 안정된 주거를 갖추고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사회적 자원을 가진 이성애 부부만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위주의 현금 지원 정책은 사실상 이러한 '정상' 부모만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며, '부모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현금 지원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지원받는다 해도 출산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가 저출생 정책을 통해 '정상' 부모를 선별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선택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이주희 교수는 '구조적 우생학'이라고 정의한다. 구조적 우생학은 인종 선별, 강제 불임처럼 노골적인 폭력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규정한 '정상' 부모 외에는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즉, 구조적 우생학 사회에서 출산은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된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새로운 렌즈와 '구조적 우생학'에 의해 '낳을 권리'를 선별당한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합계출산율 0.72라는 숫자 뒤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추적한 책이다.
그런데 '부모 자격'이 높아지는 건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희 교수는 유사한 가정환경, 가치관, 사회계층에서만 아이가 태어나는 사회는 "다른 가능성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거되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질 뿐 해소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종이 하나의 치명적 질병으로도 멸종해버리듯, 다양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역시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할 능력을 잃어버린 취약한 사회다. 즉 한국 사회가 '소멸'한다면, 그 이유는 낮은 합계출산율이 아니라 구조적 우생학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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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아이가 태어나도 행복할까?"
내일의 행복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아이 있는 삶'을 포기한다
저출생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행과 밀접한 문제다. 내가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면, 출산은 나를 위협하는 선택이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라서"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무한 경쟁이어서, 내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게 하는 게 맞나, 이런 세상에서 이 아이가 살아갈 때 행복할까, 이런 생각은 들죠….
_김소윤(35세, 결혼 의사가 없는 여성 청년)
양극화가 집단 이기주의를 만들고, 사람들을 염세적으로 만드는 패배주의, '어차피 안 돼.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애들이 서연고 많이 간다는 통계도 있는데, 내가 낳아서 뭘 하겠나' 같은 의식이 많이 팽배해지고….
_박지아(33세, 아이를 원치 않는 기혼 여성)
합계출산율이 높은 연령대인 20~30대 여성은 대학 입시부터 취업과 승진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은 세대이자, 남성보다 높은 성취를 이뤘음에도 성차별로 인해 그만큼의 보상을 얻지 못한 세대다. 특히 기혼-출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목격한 그들에게 출산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이자, 아이의 행복을 책임지면서 그 삶의 불확실성까지 감당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아이 돌봄을 도와줄 가족이 있거나 돌봄 노동자를 고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출산은 더더욱 비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한국의 지연된 '성평등 혁명' 역시 출산을 가로막는 주원인이다. 제도와 교육·취업 과정에서의 성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성평등은 여전히 처참한 상태다.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지수 모두 OECD 국가 중 최악이며,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이러한 성평등 혁명의 지연을 경험한 유럽 국가들도 초저출생 시기를 지나왔으나, 남성의 돌봄 참여와 성차별을 완화하는 각종 제도적 개입 등을 통해 출생률 반등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평등 혁명의 지연과 함께 경쟁 사회에서 좌절한 청년 남성이 자신의 분노를 청년 여성에게 돌리는 '투사적 혐오'가 나타나는 한국에서 출생률 반등은 찾아볼 수 없다.
젊은 남성들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여성이나 중국인 같은 약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사고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잖아요. 청년 여성은 청년 남성보다도 약자일 뿐인데. 결국 그 문제가 나아지지는 않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만 계속 이용할 뿐.
_윤하영(22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레즈비언 여성)
성차별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그러면서도 "그걸 이용하는"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혐오의 본질을 '젠더갈등'이라는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 '낳을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성은 없으며,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원으로 출산이 가져올 사회적·개인적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국가는 초경쟁 사회와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방치함으로써 일부 계층만 부모로 선별하는 구조적 우생학을 지탱한다.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정상가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이상향에 집착하다
-아이의 행복보다 편견과 차별을 우선하는 사회
유럽 국가에서 출생률이 반등했던 것은 성평등 혁명이 완성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이성애 부부와 유사한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25개국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였으며, 한국에서 논의되는 '생활동반자'와 유사한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가족기본법에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형성된 단위로 한정하며, 가족 구성원과 국가에게 가족 해체 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법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으려면 먼저 정상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유지할 책임도 져라."
이처럼 이성애 부부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고 '낳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제도는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혼외출산 비율은 40%를 넘었으며, 이는 한국의 8배 가까운 수치다. 프랑스에서는 시민결합 건수가 법적 혼인 건수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졌으며, OECD 평균 동성 결혼의 비중도 2%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는 이성애 가족과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 '정상적인 가족'으로서 대우받는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태어날 수 없으니, 출생률이 반등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고 돌보고 싶은 수많은 시민이 태어날 아이의 행복과는 무관한 이성애라는 욕망을 갖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저희가 동성 커플이라는 사실이, '쟤는 아빠가 둘이래'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를 받아들이는 건 차치하더라도 아이라도 받아들여줄지 의문이에요. 아이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일 모습이 뻔히 보여서….
_도현우(48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게이 남성)
국가가 이성애 가족을 유일한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양이나 해외에서의 생식보조시술로 자녀를 키우게 되면, 태어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혼모/이혼모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고 양육자가 직장에서의 차별 대우를 겪는 것은 물론, 한부모가족으로서 양육을 지원받으려면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가난에서 벗어나면 한부모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별' 때문에 국가가 그토록 원하는 '정상가족'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고 싶어도, 이 사람이랑 결혼하는 순간 한부모 지원이 끊어지잖아요. 이것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도 보긴 했거든요. 한부모 지원은 받아야 되니까. 이게 끊어지면 너무 큰 돈이 끊어지니까.
_한다은(35세, 이혼 후 혼자 아이 돌보는 여성)
건강가족본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상가족'은 이미 세계적으로 붕괴한 지 오래다. 국가는 '정상가족'만이 유일하게 자녀를 낳고 돌볼 수 있는, 또 보호해야 하는 가족이라는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을 지탱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행복과 태어날 수 있던 아이들을 희생하고 있다. 이 기괴한 가족주의가 선별하는 '정상' 부모는 이번에도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녀 돌봄을 돕거나 외주화할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있는 이성애 부부로 한정된다. 국가는 결코 출산을 금지하거나 제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산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묵묵히 '정상' 부모를 선별하여 누군가의 '낳을 권리'를 침해해 어떤 가족에게서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지를 사실상 결정하려 한다. 이것이 우생학이 아니라면, 무엇을 우생학이라 할 수 있을까.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태어나는 사회
-우생학적 '선별'을 넘어 보편적 '낳을 권리'로
이주희 교수는 한국의 저출생을 구조적 우생학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넘어설 실질적 대안을 제시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교육정책, 정규직을 넘어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동정책, '정상' 부모에 대한 선별적 복지의 허점을 메우는 기본소득, '혐오의 정치'하에 지연되고 있는 성평등 혁명의 완성, '정상가족'이라는 기준을 해체하는 가족제도. 학계를 넘어 10여 년 동안 국가 정책과 제도에도 깊게 관여해온 경력을 오롯이 녹여내,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의 모습을 치밀하게 구축한다. 2부에 담긴 촘촘하고 치열한 정책 설계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회는, 사실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회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분명하다. 더 잘 선별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다양한 삶이 출현할 수 있는 사회, 낳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재생산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_〈나가며〉에서
이주희 교수는 '낳을 권리'란 '낳지 않을 권리' 위에 성립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조건에서 아이와 함께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낳을 권리'가 성립하는 사회란, 새로운 생명을 초대하고 싶은 사회다. 당신이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고 싶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동일한 셈이다.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것,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서로의 '낳을 권리'를 위해 함께하는 것.
내일의 행복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아이 있는 삶'을 포기한다
저출생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행과 밀접한 문제다. 내가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면, 출산은 나를 위협하는 선택이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라서"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무한 경쟁이어서, 내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게 하는 게 맞나, 이런 세상에서 이 아이가 살아갈 때 행복할까, 이런 생각은 들죠….
_김소윤(35세, 결혼 의사가 없는 여성 청년)
양극화가 집단 이기주의를 만들고, 사람들을 염세적으로 만드는 패배주의, '어차피 안 돼.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애들이 서연고 많이 간다는 통계도 있는데, 내가 낳아서 뭘 하겠나' 같은 의식이 많이 팽배해지고….
_박지아(33세, 아이를 원치 않는 기혼 여성)
합계출산율이 높은 연령대인 20~30대 여성은 대학 입시부터 취업과 승진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은 세대이자, 남성보다 높은 성취를 이뤘음에도 성차별로 인해 그만큼의 보상을 얻지 못한 세대다. 특히 기혼-출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목격한 그들에게 출산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이자, 아이의 행복을 책임지면서 그 삶의 불확실성까지 감당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아이 돌봄을 도와줄 가족이 있거나 돌봄 노동자를 고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출산은 더더욱 비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한국의 지연된 '성평등 혁명' 역시 출산을 가로막는 주원인이다. 제도와 교육·취업 과정에서의 성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성평등은 여전히 처참한 상태다.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지수 모두 OECD 국가 중 최악이며,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이러한 성평등 혁명의 지연을 경험한 유럽 국가들도 초저출생 시기를 지나왔으나, 남성의 돌봄 참여와 성차별을 완화하는 각종 제도적 개입 등을 통해 출생률 반등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평등 혁명의 지연과 함께 경쟁 사회에서 좌절한 청년 남성이 자신의 분노를 청년 여성에게 돌리는 '투사적 혐오'가 나타나는 한국에서 출생률 반등은 찾아볼 수 없다.
젊은 남성들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여성이나 중국인 같은 약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사고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잖아요. 청년 여성은 청년 남성보다도 약자일 뿐인데. 결국 그 문제가 나아지지는 않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만 계속 이용할 뿐.
_윤하영(22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레즈비언 여성)
성차별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그러면서도 "그걸 이용하는"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혐오의 본질을 '젠더갈등'이라는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 '낳을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성은 없으며,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원으로 출산이 가져올 사회적·개인적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국가는 초경쟁 사회와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방치함으로써 일부 계층만 부모로 선별하는 구조적 우생학을 지탱한다.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정상가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이상향에 집착하다
-아이의 행복보다 편견과 차별을 우선하는 사회
유럽 국가에서 출생률이 반등했던 것은 성평등 혁명이 완성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이성애 부부와 유사한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25개국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였으며, 한국에서 논의되는 '생활동반자'와 유사한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가족기본법에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형성된 단위로 한정하며, 가족 구성원과 국가에게 가족 해체 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법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으려면 먼저 정상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유지할 책임도 져라."
이처럼 이성애 부부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고 '낳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제도는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혼외출산 비율은 40%를 넘었으며, 이는 한국의 8배 가까운 수치다. 프랑스에서는 시민결합 건수가 법적 혼인 건수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졌으며, OECD 평균 동성 결혼의 비중도 2%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는 이성애 가족과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 '정상적인 가족'으로서 대우받는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태어날 수 없으니, 출생률이 반등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고 돌보고 싶은 수많은 시민이 태어날 아이의 행복과는 무관한 이성애라는 욕망을 갖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저희가 동성 커플이라는 사실이, '쟤는 아빠가 둘이래'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를 받아들이는 건 차치하더라도 아이라도 받아들여줄지 의문이에요. 아이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일 모습이 뻔히 보여서….
_도현우(48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게이 남성)
국가가 이성애 가족을 유일한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양이나 해외에서의 생식보조시술로 자녀를 키우게 되면, 태어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혼모/이혼모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고 양육자가 직장에서의 차별 대우를 겪는 것은 물론, 한부모가족으로서 양육을 지원받으려면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가난에서 벗어나면 한부모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별' 때문에 국가가 그토록 원하는 '정상가족'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고 싶어도, 이 사람이랑 결혼하는 순간 한부모 지원이 끊어지잖아요. 이것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도 보긴 했거든요. 한부모 지원은 받아야 되니까. 이게 끊어지면 너무 큰 돈이 끊어지니까.
_한다은(35세, 이혼 후 혼자 아이 돌보는 여성)
건강가족본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상가족'은 이미 세계적으로 붕괴한 지 오래다. 국가는 '정상가족'만이 유일하게 자녀를 낳고 돌볼 수 있는, 또 보호해야 하는 가족이라는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을 지탱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행복과 태어날 수 있던 아이들을 희생하고 있다. 이 기괴한 가족주의가 선별하는 '정상' 부모는 이번에도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녀 돌봄을 돕거나 외주화할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있는 이성애 부부로 한정된다. 국가는 결코 출산을 금지하거나 제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산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묵묵히 '정상' 부모를 선별하여 누군가의 '낳을 권리'를 침해해 어떤 가족에게서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지를 사실상 결정하려 한다. 이것이 우생학이 아니라면, 무엇을 우생학이라 할 수 있을까.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태어나는 사회
-우생학적 '선별'을 넘어 보편적 '낳을 권리'로
이주희 교수는 한국의 저출생을 구조적 우생학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넘어설 실질적 대안을 제시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교육정책, 정규직을 넘어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동정책, '정상' 부모에 대한 선별적 복지의 허점을 메우는 기본소득, '혐오의 정치'하에 지연되고 있는 성평등 혁명의 완성, '정상가족'이라는 기준을 해체하는 가족제도. 학계를 넘어 10여 년 동안 국가 정책과 제도에도 깊게 관여해온 경력을 오롯이 녹여내,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의 모습을 치밀하게 구축한다. 2부에 담긴 촘촘하고 치열한 정책 설계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회는, 사실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회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분명하다. 더 잘 선별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다양한 삶이 출현할 수 있는 사회, 낳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재생산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_〈나가며〉에서
이주희 교수는 '낳을 권리'란 '낳지 않을 권리' 위에 성립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조건에서 아이와 함께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낳을 권리'가 성립하는 사회란, 새로운 생명을 초대하고 싶은 사회다. 당신이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고 싶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동일한 셈이다.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것,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서로의 '낳을 권리'를 위해 함께하는 것.
목차
목차
들어가며
1부 저출생은 어떻게 구조적 우생학이 되었나
1장 자본으로 선별되는 '부모'의 자격-소득 격차와 저출생
2장 성차별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3장 돌봄의 책임 편향-개인화·성별화된 돌봄의 덫
4장 가족을 해체하는 가족주의
중간 글 구조적 우생학과 다음 사회
2부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
5장 초경쟁 사회를 벗어나기
6장 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
7장 성평등 혁명의 완성
8장 결혼 중심의 가족제도를 넘어서
나가며
부표
참고문헌
주
1부 저출생은 어떻게 구조적 우생학이 되었나
1장 자본으로 선별되는 '부모'의 자격-소득 격차와 저출생
2장 성차별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3장 돌봄의 책임 편향-개인화·성별화된 돌봄의 덫
4장 가족을 해체하는 가족주의
중간 글 구조적 우생학과 다음 사회
2부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
5장 초경쟁 사회를 벗어나기
6장 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
7장 성평등 혁명의 완성
8장 결혼 중심의 가족제도를 넘어서
나가며
부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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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이주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했고, 그 이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사회계층과 불평등, 젠더 및 돌봄 관련 사회정책과 복지국가의 변화 등의 연구를 폭넓게 수행해왔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불평등한 선별의 구조를 추적하며,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이론화해 한국의 초저출생 현상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현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비판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정책학회 부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국가인권위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 W20(G20 Outreach Group) 한국 대표,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전문위원, 서울시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과 일자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의 균열》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고진로 사회권》 《유리천장 깨뜨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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