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외(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교양총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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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는 바로 폴 발레리의 시구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의 일부임을 알 수가 있다. 제목과 이 시구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더욱이 ‘il faut tenter de vivre’의 원래 의미는 ‘we must try to live’로 영역될 수 있는 것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은 ‘살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반해 ‘~めやも’는 일단 부정의 뜻으로 보통은 ‘살 수가 없다’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호리 다쓰오의 이러한 일본어 번역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를 반어적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강한 의지의 뜻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로 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장 중 ‘서곡’은 ‘나’가 세쓰코인 ‘너’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나’의 1인칭 화자가 요양원의 풍경과 세쓰코의 병세를 ‘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 그려가고 있다. 마지막 장 ‘죽음의 그림자 계곡’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난 1년 뒤에 이곳을 다시 찾은 주인공은 그 죽음의 그림자 계곡이 익숙해지면 행복의 골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슬픈 체험을 바탕으로 순수한 사랑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호리 다쓰오는 ‘사랑’ 또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장 중 ‘서곡’은 ‘나’가 세쓰코인 ‘너’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나’의 1인칭 화자가 요양원의 풍경과 세쓰코의 병세를 ‘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 그려가고 있다. 마지막 장 ‘죽음의 그림자 계곡’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난 1년 뒤에 이곳을 다시 찾은 주인공은 그 죽음의 그림자 계곡이 익숙해지면 행복의 골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슬픈 체험을 바탕으로 순수한 사랑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호리 다쓰오는 ‘사랑’ 또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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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호리 다쓰오(堀辰雄)는 많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한국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2013년 그의 대표작과 같은 제목의 영화 『바람이 분다』(風立ちぬ)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에 의해 스튜디오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공개되어 그 소설 원작자로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겼을 것이다. 특히 그 영향으로 영화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堀越二?)와 그를 동일시하거나 겹쳐서 보려고 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영화 속 작중 인물인 호리코시 지로와 실제 인물인 소설의 원작자 호리 다쓰오는 분명히 다르다. 뿐만 아니라 영화화 된 작품과 소설 원작 역시 몇몇 요소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작가 호리 다쓰오는 1904년 12월 28일 도쿄에서 출생했다. 히로시마번(?島藩)의 사족(士族) 출신으로 도쿄지방재판소의 감독서기로 근무하던 아버지 호리 하마노스케(堀浜之助)와 도쿄의 서민 출신 어머니 니시무라 시게(西村志?) 사이에 태어난 그는 갑진년(甲辰年) 용띠 해에 태어나 다쓰오(辰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 하마노스케는 히로시마에 본처 고(こう)가 있었으나 자녀가 없어서 다쓰오를 적자로 삼았다. 어머니 시게는 1906년 본처 고가 도쿄로 오게 되자 다쓰오를 데리고 집을 나가 여동생 부부 집에 살다가 1908년 금속세공사 가미조 마쓰키치(上條松吉)와 결혼하여 다쓰오와 셋이서 살았다.
시게와 마쓰키치 부부는 아이의 일로 다투는 일이 없었으며 양부 마쓰키치는 다쓰오를 친자식처럼 사랑했다고 한다. 다쓰오 역시 다 자랄 때까지 마쓰키치를 친아버지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정도이다. 1910년 친부 하마노스케가 죽고 1914년에 본처 고가 죽자, 다쓰오는 성년이 될 때까지 하마노스케의 연금을 지급받게 되었고 생모 시게는 이를 다쓰오의 학비로 알뜰하게 챙겼다.
1917년 3월 우시지마소학교(牛島小?校)를 졸업하고 도쿄부립 제3중학교(東京府立第三中?校)에 진학, 4년을 수료하고 1921년 4월 제1고등학교(第一高等?校, 현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 때 진사이 기요시(神西?, 1903~1957, 러시아문학자, 소설가, 평론가)를 만나 일생의 벗이 된다. 중학교 시절에는 수학을 좋아하여 수학자를 꿈꾸지만 진사이에 의해 문학에 눈뜬다. 진사이의 추천으로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1886~1942)의 시집을 읽고 시 장르에 매료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983) 등 많은 문인들이 고교의 동기생이었다. 또 평생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시인이며 소설가인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1889~1962)를 알게 된 것도 고교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고교 재학 중이던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으로 스미다가와(隅田川)로 피난했다가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나 어머니가 익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나이는 50세였다. 시신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스미다가와의 물 속을 헤엄치기도 했던 그는 심신의 피로와 정신적 충격으로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게 되고 이후 줄곧 병마와 싸우면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또 같은 해 10월 무로오 사이세이의 소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를 만나게 되고 이후 그로부터 사사를 받는다. 아쿠다가와는 호리 다쓰오에게 있어서 무로오를 대신한 후견인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1923년의 두 가지 사건, 즉 대지진으로 인한 모친의 죽음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의 운명적 만남은 그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1924년 4월에는 불타버린 집을 다시 짓고 양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7월 대지진 이후 고향 가나자와(金?)에 가 있던 무로오 사이세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가루이자와(?井?)에 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별장에 들렀을 때 그의 연인이었던 수필가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子)와 그 딸 사토코(?子)를 알게 된다. 그는 사토코에게 알게 모르게 사랑을 품게 된다. 이들과의 교류는 이후 「루벤스의 위작」(ルウベンスの??)과 「성가족」(聖家族)의 모티브가 된다.
1925년에는 도쿄제국대학(東京帝?大?) 문학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다쓰오는 여러 지인들과 동인지 활동을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갔고 스탕달(Stendhal, 1783~1842)과 앙드레 지드(Andr? Paul Guillaume Gide, 1869~1951) 등 서양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읽어갔다. 1926년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1902~1979)와 구보카와 쓰루지로(窪川鶴次?, 1903~1974) 등 5~6인과 함께 『당나귀』(驢馬)를 창간했다. 시에 중점을 둔 이 동인지는 '시의 존중과 인간의 존중을 일치시킨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다쓰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이후 모두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 투신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나프)에 참가하게 된다.
1927년 2월에는 요절한 프랑스의 천재 작가 레몽 라디게(Raymond Radiguet, 1903~1923)의 영향을 받아 가타야마 사토코를 모델로 한 처녀작 「루벤스의 위작」 초고를 동인지 『누에나방』(山繭)에 발표했다. 7월 아쿠타가와의 자살로 커다란 충격을 받아 절망적인 정신 상태에 빠졌으나 9월부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의 편집 작업에 몰두했다. 1928년 1월 늑막염이 재발하여 일시 휴학을 하고 요양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8월부터 10월 사이에는 가루이자와에 머무른다.
1929년 1월 「루벤스의 위작」 수정고를 『창작월간』(創作月刊)에 발표, 2월에는 장 콕토(Jean Maurice Eug?ne Cl?ment Cocteau, 1889~1963)가 쓴 『천양지차』(Le Grand ?cart)의 영향을 받아 「서투른 천사」(不器用な天使)를 『문예춘추』(文藝春秋)에 발표했다. 같은 해에 졸업논문으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芥川龍之介論)을 제출했다. 졸업 후에는 콕토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고 10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1898~1947) 등과 함께 동인지 『문학』(文學)을 창간하기도 했다.
요양과 집필을 병행하면서 1930년 5월 「루벤스의 위작」 완성고를 『작품』(作品) 창간호에 실었고, 7월에는 첫 작품집 『서투른 천사』를 간행한다. 11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죽음을 소재로 신변 체험을 그린 「성가족」을 발표하여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성가족」의 원고 탈고 후 각혈을 하고 쓰러져 다시금 기나긴 요양 생활에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ne 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1927)를 읽기 시작한다.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와 같은 서양의 첨단적 문학 경향과의 접촉 역시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1931년 4월부터 석달간 나가노현(長野?)에 있는 후지미(富士見) 고원 요양소에서 전지 요양을 하고 8월에서 10월까지 가루이자와에 체재했다. 이 무렵 「회복기」(恢復期)를 써서 12월 『개조』(改造)에 발표한다. 귀경 후 절대 안정에 들어간다. 1932년 1월에 「불타는 빰」(燃ゆる?)을 『문예춘추』에 발표한 후, 여름을 가루이자와에서 보내고 9월 「밀집모자」(?藁帽子)를 『일본국민』(日本?民)에 발표했다.
1933년 가타야마 사토코와의 이별 이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루이자와의 쓰루야료칸(つるや旅館)에서 여름을 보내며 집필에 몰두하는데, 이곳에서 유화를 그리는 소녀 야노 아야코(矢野綾子)를 알게 된다. 중편소설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의 「여름」 장을 『문예춘추』에 발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듬해인 1934년 아야코와 약혼을 하는데, 그녀 역시 폐결핵을 앓게 된다. 1935년 두 사람이 같이 야쓰가타케(八ヶ岳)의 요양원에 입원을 하지만 그 해 12월 아야코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의 체험을 형상화하여 1936년부터 1937년에 걸쳐 집필한 것이 그의 대표작 중편소설 「바람이 분다」(風立ちぬ)이다. 1936년부터 1938년에 걸쳐 당시의 문예잡지 『개조』 『문예춘추』(文藝春秋) 『신여원』(新女苑) 『신조』(新潮) 등에 장별로 실렸다가 1938년 노다쇼보(野田書房)에서 단행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로 간행되었다.
1937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예술관에 깊은 감명을 받는 한편 무로오 사이세이로부터 소개 받은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의 영향으로 소년 시절에 애독하던 헤이안 시대의 문학 등 일본 고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교토를 여행하기도 한다. 이후에 그는 전통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가게로닛키」(かげろふの日記) 등을 발표했다. 1938년 무로오 부부의 중매로 가토 다에(加藤多?, 1913~2010)와 결혼하여 가루이자와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도쿄에 살던 양부 마쓰키치가 쓰러져 부부가 함께 극진히 간호를 하지만 그 해 말에 세상을 떠났다.
1941년 그는 처음으로 장편소설 『나오코』(菜?子, 1941)를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한다. 1940년대에도 줄곧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하던 다쓰오는 1947년 이후 병세가 깊어져 악화일로를 걷다가 1953년 향년 4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사후에도 전집 등 작품집이 꾸준히 발행되어 왔다. 이 책에 소개한 다섯 편의 소설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 세계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루벤스의 위작」에서는 청년의 연애 심리를 청년 자신의 눈으로 관찰·응시하여 3인칭으로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 청년 '그'는 같은 사람이어야 할 눈앞에 있는 소녀와 머릿속에서 몰래 '루벤스의 위작'이라고 부르는 마음속의 소녀가 항상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 가는데 그 과정의 추이가 지극히 사소한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전개된다. 프랑스 심리주의 기법의 영향을 일본어 문체로 구현한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후속 작품으로 이야기되는 「성가족」은 고노 헨리(河野扁理)라는 주인공 청년이 존경하는 스승 구키(九鬼)의 죽음을 계기로 스승의 연인이었던 사이키(細木) 부인과 그 따님인 기누코(絹子)를 만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이 역시 심리주의 기법이 발휘된 작품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주인공의 마음속 사건들이며 작중 화자는 이를 분석하듯이 파고들면서 서술해간다. 헨리는 생각 속에서 스승과 부인의 관계에 자신과 따님의 관계를 대입한다. 그러다가 결국 기누코와의 마음의 어긋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 방식을 확립해간다는 이야기이다. 스승을 둘러싼 세 사람의 미묘한 심리를 대단히 섬세하게 천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불타는 빰」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시작된다. 병약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동급생 사이구사(三枝)를 알게 된 주인공 '나'는 그와 친구 이상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여 여름 방학에 함께 여행을 간다. 여행지의 해변에서 목소리가 특이한 고기잡이 소녀를 만나 왠지 마음이 끌리게 되는데, 그 소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사이구사를 연인이 아닌 연적(戀敵)으로 느끼게 된다. 그 해 겨울에 사이구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덤덤했지만 수년 후 요양소에서 그와 닮은 어린 청년을 보고 당시를 후회하게 된다. 동성애적 감정과 마음의 세밀한 변화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밀집모자」는 주인공 '나'가 청자인 '너'를 생각 속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었으나 오히려 그 반대로 말과 행동을 해온 지금까지의 일들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녀인 '너'는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 '나'는 평소에 한 번도 다정하게 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야 스스로 확인한다. 마음과 행동의 복잡한 이율배반적 모습이 초래하는 안타까운 양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분다」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고원의 요양소에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약혼녀 세쓰코(節子)를 바라보는 주인공 '나'가 기어이 오고야 말 죽음을 각오하고 두 사람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같이 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서곡' '봄' '바람이 분다' '겨울' '죽음의 그림자 계곡' 이렇게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첫 장인 '서곡'이 시작되기 직전, 작품의 제목 바로 다음의 모두 부분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제시되어 있다.
Le vent se l?ve, il faut tenter de vivre.
PAUL VAL?RY
이것은 명기된 바와 같이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ry, 1871~1945)의 시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변의 묘지」 (Le Cimeti?re marin, 1920)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그 뜻은 '서곡'의 비교적 앞부분에 다음과 같이 시적인 일본어 문어체로 해석(또는 번역)되어 있다.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 (風立ちぬ、いざ生きめやも。)
따라서 작품의 제목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는 바로 폴 발레리의 시구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의 일부임을 알 수가 있다. 제목과 이 시구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더욱이 'il faut tenter de vivre'의 원래 의미는 'we must try to live'로 영역될 수 있는 것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은 '살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반해 '~めやも'는 일단 부정의 뜻으로 보통은 '살 수가 없다'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호리 다쓰오의 이러한 일본어 번역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를 반어적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강한 의지의 뜻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로 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장 중 '서곡'은 '나'가 세쓰코인 '너'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나'의 1인칭 화자가 요양원의 풍경과 세쓰코의 병세를 '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 그려가고 있다. 마지막 장 '죽음의 그림자 계곡'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난 1년 뒤에 이곳을 다시 찾은 주인공은 그 죽음의 그림자 계곡이 익숙해지면 행복의 골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슬픈 체험을 바탕으로 순수한 사랑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호리 다쓰오는 '사랑' 또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하는 동안 그는 일본의 문단 내 여러 선배, 동료, 후배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서양의 문학과 사상을 두루 섭렵하면서 특히 프랑스의 심리주의 및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 기법 등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아 자신의 소설에 직접 적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근대 일본 신심리주의의 대표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같은 섬세한 감정이 그 나름의 절제미를 잃지 않고 표현되어 있다. 또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어쩌면 기구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난 성장 배경과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그는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 보드라운 감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쟁의 광풍이 몰아치던 대단히 험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문학 활동을 시작하던 1920년대 후반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두로 문단의 큰 흐름이 정치성에 의해 좌우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는 그야말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에 있어서 '15년 전쟁'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한 인간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호리 다쓰오는 시의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일본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지점은 바로 그러한 의외의 강인함도 한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호리 다쓰오는 1904년 12월 28일 도쿄에서 출생했다. 히로시마번(?島藩)의 사족(士族) 출신으로 도쿄지방재판소의 감독서기로 근무하던 아버지 호리 하마노스케(堀浜之助)와 도쿄의 서민 출신 어머니 니시무라 시게(西村志?) 사이에 태어난 그는 갑진년(甲辰年) 용띠 해에 태어나 다쓰오(辰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 하마노스케는 히로시마에 본처 고(こう)가 있었으나 자녀가 없어서 다쓰오를 적자로 삼았다. 어머니 시게는 1906년 본처 고가 도쿄로 오게 되자 다쓰오를 데리고 집을 나가 여동생 부부 집에 살다가 1908년 금속세공사 가미조 마쓰키치(上條松吉)와 결혼하여 다쓰오와 셋이서 살았다.
시게와 마쓰키치 부부는 아이의 일로 다투는 일이 없었으며 양부 마쓰키치는 다쓰오를 친자식처럼 사랑했다고 한다. 다쓰오 역시 다 자랄 때까지 마쓰키치를 친아버지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정도이다. 1910년 친부 하마노스케가 죽고 1914년에 본처 고가 죽자, 다쓰오는 성년이 될 때까지 하마노스케의 연금을 지급받게 되었고 생모 시게는 이를 다쓰오의 학비로 알뜰하게 챙겼다.
1917년 3월 우시지마소학교(牛島小?校)를 졸업하고 도쿄부립 제3중학교(東京府立第三中?校)에 진학, 4년을 수료하고 1921년 4월 제1고등학교(第一高等?校, 현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 때 진사이 기요시(神西?, 1903~1957, 러시아문학자, 소설가, 평론가)를 만나 일생의 벗이 된다. 중학교 시절에는 수학을 좋아하여 수학자를 꿈꾸지만 진사이에 의해 문학에 눈뜬다. 진사이의 추천으로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1886~1942)의 시집을 읽고 시 장르에 매료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983) 등 많은 문인들이 고교의 동기생이었다. 또 평생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시인이며 소설가인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1889~1962)를 알게 된 것도 고교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고교 재학 중이던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으로 스미다가와(隅田川)로 피난했다가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나 어머니가 익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나이는 50세였다. 시신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스미다가와의 물 속을 헤엄치기도 했던 그는 심신의 피로와 정신적 충격으로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게 되고 이후 줄곧 병마와 싸우면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또 같은 해 10월 무로오 사이세이의 소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를 만나게 되고 이후 그로부터 사사를 받는다. 아쿠다가와는 호리 다쓰오에게 있어서 무로오를 대신한 후견인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1923년의 두 가지 사건, 즉 대지진으로 인한 모친의 죽음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의 운명적 만남은 그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1924년 4월에는 불타버린 집을 다시 짓고 양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7월 대지진 이후 고향 가나자와(金?)에 가 있던 무로오 사이세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가루이자와(?井?)에 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별장에 들렀을 때 그의 연인이었던 수필가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子)와 그 딸 사토코(?子)를 알게 된다. 그는 사토코에게 알게 모르게 사랑을 품게 된다. 이들과의 교류는 이후 「루벤스의 위작」(ルウベンスの??)과 「성가족」(聖家族)의 모티브가 된다.
1925년에는 도쿄제국대학(東京帝?大?) 문학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다쓰오는 여러 지인들과 동인지 활동을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갔고 스탕달(Stendhal, 1783~1842)과 앙드레 지드(Andr? Paul Guillaume Gide, 1869~1951) 등 서양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읽어갔다. 1926년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1902~1979)와 구보카와 쓰루지로(窪川鶴次?, 1903~1974) 등 5~6인과 함께 『당나귀』(驢馬)를 창간했다. 시에 중점을 둔 이 동인지는 '시의 존중과 인간의 존중을 일치시킨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다쓰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이후 모두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 투신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나프)에 참가하게 된다.
1927년 2월에는 요절한 프랑스의 천재 작가 레몽 라디게(Raymond Radiguet, 1903~1923)의 영향을 받아 가타야마 사토코를 모델로 한 처녀작 「루벤스의 위작」 초고를 동인지 『누에나방』(山繭)에 발표했다. 7월 아쿠타가와의 자살로 커다란 충격을 받아 절망적인 정신 상태에 빠졌으나 9월부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芥川龍之介全集)의 편집 작업에 몰두했다. 1928년 1월 늑막염이 재발하여 일시 휴학을 하고 요양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8월부터 10월 사이에는 가루이자와에 머무른다.
1929년 1월 「루벤스의 위작」 수정고를 『창작월간』(創作月刊)에 발표, 2월에는 장 콕토(Jean Maurice Eug?ne Cl?ment Cocteau, 1889~1963)가 쓴 『천양지차』(Le Grand ?cart)의 영향을 받아 「서투른 천사」(不器用な天使)를 『문예춘추』(文藝春秋)에 발표했다. 같은 해에 졸업논문으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芥川龍之介論)을 제출했다. 졸업 후에는 콕토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고 10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 1898~1947) 등과 함께 동인지 『문학』(文學)을 창간하기도 했다.
요양과 집필을 병행하면서 1930년 5월 「루벤스의 위작」 완성고를 『작품』(作品) 창간호에 실었고, 7월에는 첫 작품집 『서투른 천사』를 간행한다. 11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죽음을 소재로 신변 체험을 그린 「성가족」을 발표하여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성가족」의 원고 탈고 후 각혈을 하고 쓰러져 다시금 기나긴 요양 생활에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ne 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1927)를 읽기 시작한다.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와 같은 서양의 첨단적 문학 경향과의 접촉 역시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1931년 4월부터 석달간 나가노현(長野?)에 있는 후지미(富士見) 고원 요양소에서 전지 요양을 하고 8월에서 10월까지 가루이자와에 체재했다. 이 무렵 「회복기」(恢復期)를 써서 12월 『개조』(改造)에 발표한다. 귀경 후 절대 안정에 들어간다. 1932년 1월에 「불타는 빰」(燃ゆる?)을 『문예춘추』에 발표한 후, 여름을 가루이자와에서 보내고 9월 「밀집모자」(?藁帽子)를 『일본국민』(日本?民)에 발표했다.
1933년 가타야마 사토코와의 이별 이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루이자와의 쓰루야료칸(つるや旅館)에서 여름을 보내며 집필에 몰두하는데, 이곳에서 유화를 그리는 소녀 야노 아야코(矢野綾子)를 알게 된다. 중편소설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의 「여름」 장을 『문예춘추』에 발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듬해인 1934년 아야코와 약혼을 하는데, 그녀 역시 폐결핵을 앓게 된다. 1935년 두 사람이 같이 야쓰가타케(八ヶ岳)의 요양원에 입원을 하지만 그 해 12월 아야코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의 체험을 형상화하여 1936년부터 1937년에 걸쳐 집필한 것이 그의 대표작 중편소설 「바람이 분다」(風立ちぬ)이다. 1936년부터 1938년에 걸쳐 당시의 문예잡지 『개조』 『문예춘추』(文藝春秋) 『신여원』(新女苑) 『신조』(新潮) 등에 장별로 실렸다가 1938년 노다쇼보(野田書房)에서 단행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로 간행되었다.
1937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예술관에 깊은 감명을 받는 한편 무로오 사이세이로부터 소개 받은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의 영향으로 소년 시절에 애독하던 헤이안 시대의 문학 등 일본 고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교토를 여행하기도 한다. 이후에 그는 전통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가게로닛키」(かげろふの日記) 등을 발표했다. 1938년 무로오 부부의 중매로 가토 다에(加藤多?, 1913~2010)와 결혼하여 가루이자와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도쿄에 살던 양부 마쓰키치가 쓰러져 부부가 함께 극진히 간호를 하지만 그 해 말에 세상을 떠났다.
1941년 그는 처음으로 장편소설 『나오코』(菜?子, 1941)를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한다. 1940년대에도 줄곧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하던 다쓰오는 1947년 이후 병세가 깊어져 악화일로를 걷다가 1953년 향년 4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사후에도 전집 등 작품집이 꾸준히 발행되어 왔다. 이 책에 소개한 다섯 편의 소설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 세계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루벤스의 위작」에서는 청년의 연애 심리를 청년 자신의 눈으로 관찰·응시하여 3인칭으로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 청년 '그'는 같은 사람이어야 할 눈앞에 있는 소녀와 머릿속에서 몰래 '루벤스의 위작'이라고 부르는 마음속의 소녀가 항상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 가는데 그 과정의 추이가 지극히 사소한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전개된다. 프랑스 심리주의 기법의 영향을 일본어 문체로 구현한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후속 작품으로 이야기되는 「성가족」은 고노 헨리(河野扁理)라는 주인공 청년이 존경하는 스승 구키(九鬼)의 죽음을 계기로 스승의 연인이었던 사이키(細木) 부인과 그 따님인 기누코(絹子)를 만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이 역시 심리주의 기법이 발휘된 작품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주인공의 마음속 사건들이며 작중 화자는 이를 분석하듯이 파고들면서 서술해간다. 헨리는 생각 속에서 스승과 부인의 관계에 자신과 따님의 관계를 대입한다. 그러다가 결국 기누코와의 마음의 어긋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 방식을 확립해간다는 이야기이다. 스승을 둘러싼 세 사람의 미묘한 심리를 대단히 섬세하게 천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불타는 빰」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시작된다. 병약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동급생 사이구사(三枝)를 알게 된 주인공 '나'는 그와 친구 이상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여 여름 방학에 함께 여행을 간다. 여행지의 해변에서 목소리가 특이한 고기잡이 소녀를 만나 왠지 마음이 끌리게 되는데, 그 소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사이구사를 연인이 아닌 연적(戀敵)으로 느끼게 된다. 그 해 겨울에 사이구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덤덤했지만 수년 후 요양소에서 그와 닮은 어린 청년을 보고 당시를 후회하게 된다. 동성애적 감정과 마음의 세밀한 변화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밀집모자」는 주인공 '나'가 청자인 '너'를 생각 속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었으나 오히려 그 반대로 말과 행동을 해온 지금까지의 일들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녀인 '너'는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 '나'는 평소에 한 번도 다정하게 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야 스스로 확인한다. 마음과 행동의 복잡한 이율배반적 모습이 초래하는 안타까운 양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분다」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고원의 요양소에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약혼녀 세쓰코(節子)를 바라보는 주인공 '나'가 기어이 오고야 말 죽음을 각오하고 두 사람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같이 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서곡' '봄' '바람이 분다' '겨울' '죽음의 그림자 계곡' 이렇게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첫 장인 '서곡'이 시작되기 직전, 작품의 제목 바로 다음의 모두 부분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제시되어 있다.
Le vent se l?ve, il faut tenter de vivre.
PAUL VAL?RY
이것은 명기된 바와 같이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ry, 1871~1945)의 시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변의 묘지」 (Le Cimeti?re marin, 1920)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그 뜻은 '서곡'의 비교적 앞부분에 다음과 같이 시적인 일본어 문어체로 해석(또는 번역)되어 있다.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 (風立ちぬ、いざ生きめやも。)
따라서 작품의 제목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는 바로 폴 발레리의 시구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의 일부임을 알 수가 있다. 제목과 이 시구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더욱이 'il faut tenter de vivre'의 원래 의미는 'we must try to live'로 영역될 수 있는 것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은 '살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반해 '~めやも'는 일단 부정의 뜻으로 보통은 '살 수가 없다'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호리 다쓰오의 이러한 일본어 번역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를 반어적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강한 의지의 뜻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바람이 분다, 자 살아야겠다'로 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장 중 '서곡'은 '나'가 세쓰코인 '너'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나'의 1인칭 화자가 요양원의 풍경과 세쓰코의 병세를 '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 그려가고 있다. 마지막 장 '죽음의 그림자 계곡'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난 1년 뒤에 이곳을 다시 찾은 주인공은 그 죽음의 그림자 계곡이 익숙해지면 행복의 골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슬픈 체험을 바탕으로 순수한 사랑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호리 다쓰오는 '사랑' 또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하는 동안 그는 일본의 문단 내 여러 선배, 동료, 후배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서양의 문학과 사상을 두루 섭렵하면서 특히 프랑스의 심리주의 및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 기법 등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아 자신의 소설에 직접 적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근대 일본 신심리주의의 대표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같은 섬세한 감정이 그 나름의 절제미를 잃지 않고 표현되어 있다. 또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어쩌면 기구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난 성장 배경과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그는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 보드라운 감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쟁의 광풍이 몰아치던 대단히 험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문학 활동을 시작하던 1920년대 후반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두로 문단의 큰 흐름이 정치성에 의해 좌우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는 그야말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에 있어서 '15년 전쟁'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한 인간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호리 다쓰오는 시의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일본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지점은 바로 그러한 의외의 강인함도 한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목차
목차
차례
루벤스의 위작 9
성 가족 29
불타는 뺨 58
밀짚모자 72
에필로그 95
바람이 분다 98
서곡 98
봄 103
바람이 분다 116
겨울 150
죽음의 그림자 계곡 171
옮긴이의 말 189
루벤스의 위작 9
성 가족 29
불타는 뺨 58
밀짚모자 72
에필로그 95
바람이 분다 98
서곡 98
봄 103
바람이 분다 116
겨울 150
죽음의 그림자 계곡 171
옮긴이의 말 189
저자
저자
호리 다쓰오
堀辰雄, 1904~1953
도쿄 출생. 중학교 시절에 수학자를 꿈꾸지만 친구에 의해 문학에 눈 뜸. 제1고등학교(第一高等?校, 현 도쿄대학 교양학부) 재학 시 관동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음. 무로 사이세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문인들의 사사를 받으며 문학 수업. 도쿄제국대학(東京帝?大?) 국문과 입학 후 나카노 시게하루 등과 문학 동인지 『당나귀』 창간. 「루벤스의 위작」으로 데뷔, 「성가족」으로 이름이 알려짐. 근대 일본 신심리주의의 대표적인 소설가. 당시 수많은 일본 작가의 작품 및 서양의 문학과 사상을 섭렵하면서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자신의 소설에 적용한 그는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평생을 폐결핵으로 인해 요양과 집필을 반복하다가 48세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도쿄 출생. 중학교 시절에 수학자를 꿈꾸지만 친구에 의해 문학에 눈 뜸. 제1고등학교(第一高等?校, 현 도쿄대학 교양학부) 재학 시 관동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음. 무로 사이세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문인들의 사사를 받으며 문학 수업. 도쿄제국대학(東京帝?大?) 국문과 입학 후 나카노 시게하루 등과 문학 동인지 『당나귀』 창간. 「루벤스의 위작」으로 데뷔, 「성가족」으로 이름이 알려짐. 근대 일본 신심리주의의 대표적인 소설가. 당시 수많은 일본 작가의 작품 및 서양의 문학과 사상을 섭렵하면서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자신의 소설에 적용한 그는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섬세한 필치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평생을 폐결핵으로 인해 요양과 집필을 반복하다가 48세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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