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날개(황금알 시인선 327)(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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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존재의 결을 어루만지는 신성神聖의 시학
- 생애 서사와 존재의 결을 어루만지는 시적 항해
김 영 탁(시인·『문학청춘』 주필)
바다의 날개로 비상하는 시적 여정
차수경의 시집 『바다의 날개』는 제목 그대로 "바다"와 "날개"라는 두 개의 상징으로 시작된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며 기억의 깊은 저장소이고, 날개는 그 기억을 초월하여 다른 차원으로 비상하려는 인간의 열망이다. 시인은 "시의 바다로 항해는/ 늘 설렘과 긴장이다"(「시인의 말」)라고 말하며, 언어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자리, 즉 시인으로서의 숙명을 스스로 고백한다. 그녀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시간과 삶의 층위를 비추는 거울이며, 날개는 그 거울 속에서 다시금 자신을 구원하려는 희망의 상징이다.
이 시집은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지만, 그것은 일상의 단계, 삶의 감각, 기억의 재현, 그리고 신성으로의 회귀라는 하나의 원환적 구조로 이어진다. 각 부의 시들은 독립적인 서정을 지니면서도 전체적으로 '삶의 항해'를 은유한다. 언어의 시작에서 일상의 땀방울, 자연과 기억의 무늬,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다와 신의 풍경으로 이르는 흐름은, 한 인간이 시간과 존재의 한계를 넘어 자유로 나아가려는 영혼의 여정을 보여준다.
언어의 집에서 시작된 세계
1부의 시들은 언어, 세월, 가족, 기억이라는 기본적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가 사는 집」에서 시인은 '자음과 모음'이 공존하는 공간을 "무질서 속의 평온함"이라 부른다.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이성의 경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며, 시인은 그 언어의 집을 돌보는 정원사처럼 분주하다. 차수경의 언어는 인위적 수사보다는 감각의 숨결에 가깝다. '헐거워진 초침을 조이고/ 입안 가득 유연해지는 언어들'이라는 구절은 언어가 단지 도구가 아니라, 삶의 호흡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한다.
「샤벨 우드 슬랩」에서는 나무 한 그루의 생애를 통해 존재의 궤적을 그린다. 먼 대륙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나무는 "옹이마저 삼켜온 너의 생애"로 요약된다. 인간의 삶 또한 그와 같다는 사실을, 시인은 고요하게 비유한다. 나무결 속에 새겨진 시간의 층위는 '추억을 켜켜이 도려낸' 인간의 기억과 맞닿는다. 그의 언어는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넘어선다. 나무의 '결'은 생의 흔적이자, 언어의 흐름이다.
오랫동안 안팎으로
이력을 새기며
선창까지 다다른 물결
진주를 찾던 날들이
거울 앞에서 포말처럼 부서진다
바다를 흔들던
바람의 날개도
시간의 속삭임마저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
꽃이 지고 겨울이 오고
한 옥타브 높게
파도는 또 일렁인다
물결 사이로 드러나는 숨결
구름의 그림자는 머물고
햇살의 기억이 창문을 두드린다
은밀하게 점령한 주름의 출처를
이제야 읽어내는
새침한 세월의 꽃
- 「주름에 대하여」 전문
시 「주름에 대하여」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역사가 새겨진 흔적인 '주름'을 깊이 있는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주름을 단순한 노화의 징표가 아닌, 생명력과 아름다움, 깨달음을 담은 세월의 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바다와 물결의 은유와 시간과 삶을 비유하는 시의 전반부는 바다, 물결, 선창, 포말 등의 해양 이미지를 통해 주름의 생성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선창까지 다다른 물결' 주름을 오랜 시간 쉼 없이 흘러온 인생의 물결에 비유한다. '선창'은 삶의 종착지나 일시적 멈춤의 공간으로, 그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방랑의 세월을 거듭한 종착점은 "진주를 찾던 날들이/ 거울 앞에서 포말처럼 부서"지듯 허망하게 거품으로 종결된다. 그야말로 보물찾기하듯, 화려하고 빛나는 가치를 찾아서 세월의 지층을 쌓으며 도달한 공간은 선착장이고 거기서 거품으로 산화한다. 진술상으로 보면, 지금까지 무던히 애썼던 노력은 허망하기 그지없지만, 화자는 이러한 세속적인 일들이 허무하고 부질없음으로 자각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헛된 노력이라고 각성하는 순간, 인생무상에 도달하면서,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담담하게 수용한다.
그러니까 젊음의 열정과 '진주를 찾던 날들'(이상理想)이 '거울 앞'(현재)에서 부서지는 포말(물거품)처럼 덧없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음을 뿐만 아니라, 각성의 거울 앞에 마주 선 것이다. 여기서 '포말'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소멸의 서정을 동시에 담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지속되는 삶의 생명력을 대비시키고 있다. "바다를 흔들던/ 바람의 날개도/ 시간의 속삭임마저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이란, 삶을 관통했던 강력한 바람의 힘과 은밀한 영향을 끼친 속삭임조차도 화려한 시절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온다. 쇠퇴와 침체에도, 삶의 의지와 생명력은 '한 옥타브 높게' 더욱 고조되어 지속됨을 보여준다. 이는 주름이 단지 쇠퇴가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파동과 에너지가 기록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결국 주름에 '무심하게' 새겨져 버린,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힘이 돋을새김으로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주름을 통해 내면으로 향하며, 그 의미를 심화한다. "물결 사이로 드러나는 숨결"은 주름(물결)은 가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본질적인 생명력 '숨결'을 드러내는 통로로 부상한다. "구름의 그림자는 머물고/ 햇살의 기억이 창문을 두드"리면서 삶의 어둡거나 우울했던 순간들과 따스하고 좋았던 순간들이, 주름 속에 '머물고' '기억'으로 남아 현재의 공간으로 감각하며 호출하고 있다.
"은밀하게 점령한 주름의 출처를/ 이제야 읽어내는" 시간은 주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점령'당한 것이고, 화자는 비로소 나이가 들어서야 그 주름이 어디서 왔는지, 즉 삶의 궤적을 '읽어내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 "새침한 세월의 꽃"은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역설적 표현이자 핵심으로 작동한다. 2연의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과 연대하는 '새침한' 세월은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가오는 이에게 무심한 듯 굴었다. 그러나 결국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하여, 각자覺者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꽃'은 쇠퇴와 대립하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주름은 단순히 '흔적'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피워낸 삶의 정수, 지혜, 그리고 아름다운 결실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시는 주름을 통하여 인생의 유한성과 영속성, 상실과 깨달음이라는 대립적인 가치들을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즉, 주름이라는, 자기 삶의 이력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성숙한 시선을 독자에게 선물하는 수작이다.
익어가는 사랑과 세월의 성찰
시 「참깨를 볶으며」는 일상적 행위인 참깨를 볶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세월 그리고 '어머니의 일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서정시이다. 좁은 팬 속에서 튀어 오르는 작은 참깨 알갱이들은 화자의 내면세계와 과거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며, 소멸과 성숙이 교차하는 감동을 전달한다.
팬 속에 쏟아놓은 사랑 한 되
달궈지는 낱말들을 뒤적이는데
당신의 주름 같은 지난 이야기
알알이 무르익어 튀어 오르고
되뇌어 듣던 어머니의 일생을
나는 가슴으로 읽는다
세포 깊숙이 젖어있던
그리움이 익어 튀어 오른다
- 「참깨를 볶으며」 전문
시의 중심 소재인 '참깨'와 '볶는 행위'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 사랑의 연금술이며, 시적 은유로 기능한다. "팬 속에 쏟아놓은 사랑 한 되" 안의 '참깨'는 곧 화자가 간직해 온 '사랑'이며, 그 양을 "한 되"라는 구체적인 단위로 표현하여 삶의 충만한 결실임을 강조한다. 참깨를 볶는 것은 이 사랑을 익히고 완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달궈지는 낱말들을 뒤적이"면, 참깨가 뜨거운 열을 받아 익어가듯, 화자 내면의 응어리지고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열기 속에서 '낱말'로 되살아나고 있다. 볶는 행위는 단순한 뒤섞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능동적으로 되짚어보는 '성찰'의 행위가 된다.
또한, 시의 핵심적인 비유는 참깨를 '당신의 주름'과 오로지 어머니의 시간에 몰입된 '어머니의 일생'으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당신의 주름 같은 지난 이야기"는 참깨 표면의 미세한 주름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주름'으로 환원한다. 여기서 당신은 문맥상 화자가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상, 즉 어머니를 가리킨다. 볶아지는 참깨가 '무르익어 튀어 오르는' 모습은 어머니의 고단했지만, 충실했던 지난 이야기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벅차게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되뇌어 듣던 어머니의 일생을/ 나는 가슴으로 읽"을 때, 화자는 어머니의 생애를 단순히 귀로 '듣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전 존재인 '가슴으로 읽는' 체험적 깨달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참깨가 튀어 오르는 소리는 어머니의 삶이 응축된 소리이며, 그 소리를 통해 비로소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연은 참깨 볶는 과정의 궁극적인 정서적 의미를 응축하여, 그리움의 승화와 존재의 정수를 보여준다. "세포 깊숙이 젖어있던/ 그리움이 익어 튀어 오"르는 장면에서 '그리움'은 단순히 보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채 해결되지 못했거나 묻어두었던 모든 사랑과 회한, 그리고 응어리진 감정들을 포괄한다. 참깨가 완전히 '익어 튀어 오르는' 것처럼, 화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의 정수가 폭발적으로 해소되고, 승화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튀어 오름은 성숙의 완성인 동시에, 억눌렸던 감정이 해방을 맞이하여 고양되고 있다.
「참깨를 볶으며」는 극적 사건 없이 '참깨 볶기'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행위를 관찰하고 사유하고 확장하면서 비상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 사랑의 본질, 그리고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 이르는 시이다. 참깨가 열을 받아 톡톡 터지며 향을 내듯, 삶의 고통과 숙성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깨달음의 향기가 우러나온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간결하고도 강력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시는 이처럼 작은 참깨 한 알에서 한 존재의 숭고한 역사를 발견하는 서정적 깊이를 성취할 뿐만 아니라, 평범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한 차수경의 시안詩眼이 드높다.
「참깨를 볶으며」와 「떡 권사 울 엄마」는 연대하고 있는데, '떡'은 희생과 대속적인 상징물로 기능하면서, 사랑의 대속적 실천으로 작동한다. 이 시는 '떡 권사'라는 별명을 가진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떡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과 정서를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과 세대의 전이를 배경으로, 떡을 매개로 한 어머니의 사랑과 자식의 그리움,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랑의 실천을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떡 권사 별명을 가진 울 엄마, 떡을 잘 만들어서 떡 권사이고 떡을 좋아해서 떡 권사이지, 구순 가까운 날까지 떡 만들어 나누고 자식 먹이는 게 행복이었지, 어린 날 부엌 광 시렁에는 늘 떡 광주리가 있었지, 우리 형제들은 생쥐처럼 들락거리며 떡 한 덩이씩 잘도 물어 날랐지, 햇살 좋은 겨울날 추녀 밑에서 제기차기하며 살얼음 낀 떡을 먹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 아궁이 앞에서 형제들 둘러앉아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를 바라보며 기다림도 꿈만큼이나 커졌지, 세월은 입맛을 묘하게 바꾸어놓았지만, 때때로 그 맛이 그리운 것은 엄마의 사랑이 고픈 거겠지 울 엄마가 살림에서 손을 놓은 후 떡시루에는 다시 김이 피어오르지 않았지 "나는 떡을 먹어야 사는데, 요양원에 가면 노인들한테 떡을 안 준다더라"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떡 권사 울 엄마, 세대를 거슬러 이제 내가 병상에 누운 엄마에게 손수 떡을 만들어 드리지, 찹쌀을 물에 불려 찜 솥에 찐 다음 절구에 넣고 메질한 덩어리를 꺼내 콩가루를 묻혀 썰어내는 떡 권사의 부록쯤 되는 인절미라는 거지, 고운 듯 덜 고운 듯 씹히는 맛이 가슴을 녹이지, 울 엄마가 내 입에 넣어주던 대로 나도 그 사랑까지 얹어서 엄마에게 드리지, 내 사랑도 곱게 씹어주기를 바라며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창가에 겨우내 봉우리를 품어 피워낸 주홍빛 군자란꽃이 시들어가네
- 「떡 권사 울 엄마」 전문
작품의 핵심 인물인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상징하는 '떡 권사'라는 별명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권사勸士'라는 종교적 직분과 '떡'이 결합한 이 별명은, 어머니가 떡을 만들고 나누는 행위가 마치 봉사나 전도와 같은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이었음을 함축한다. '울 엄마'라는 표현은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친근함과 애틋한 정서를 드러내는 사랑의 기호이다.
이 시에서 '떡'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사랑과 헌신으로 떡을 만들고 나누는 행위는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다. 과장된 진술이겠지만, 동시에 기독교의 "내몸이 떡이요"라는, 예수님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이것은 내몸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성경 구절(마가복음 14:22, 고린도전서 11:23-26)을 가리키는 복음과 연동하고 있다.
한 번 더 크게 과장하자면, 「떡 권사 울 엄마」는 앞에서 진술한 "하늘의 양식 광야의 만나다"(「대추나무 아래서」)와 면면히 연대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환기한다. 빵 다섯 개(오병五餠)와 물고기 두 마리(이어二魚)로 5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예수의 기적이,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 위로 떠오른다.
화자의 기억 안에 '떡 광주리' '살얼음 낀 떡'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 등은 어린 시절의 따뜻하고 풍요로웠던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그리움이 다시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세월이 지나 입맛이 변했음에도 그 맛이 그리운 것은 곧 '엄마의 사랑이 고픈' 것이라는 고백처럼, 떡은 곧 어머니의 사랑 그 자체이리라.
"나는 떡을 먹어야 사는데"라고 걱정하는 노년의 어머니에게 시인은 손수 찹쌀을 불리고 쪄서, 절구에 메질한 인절미를 만들어 드린다. 이는 세대를 거슬러 어머니의 사랑을 재현하고 보답하는 행위일 것이다. 즉 사랑을 받는 자에서 사랑을 주는 자로의 세대의 전이이며, 영적인 사랑의 계승이다. 시인이 "그 사랑까지 얹어서 엄마에게 드리지"라는 진술은, 떡이라는 물질적 양식 위에 무형의 은혜와 정성을 더하는 신앙적 실천을 보여준다.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는지"라며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어머니께 사랑을 되돌려주는 순간 느끼는 벅찬 감정, 즉 사랑과 그리움, 안쓰러움 등의 복합적인 정서가 한데 융합하면서, 주홍빛 군자란꽃이 시들어가는 걸 응시하는 화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을 장면이 눈에 선하다. 주홍빛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어머니의 노쇠함과 병상에 누운 현실을 암시하며, 붉어지는 눈시울의 감정과 대비되거나 혹은 그 감정에 동조하는 감정이입적 자연물로 기능함으로써 시의 여운을 깊게 울린다.
일상과 생의 온도
「감자를 캐며」는 일상적인 노동의 풍경을 시인의 깊은 성찰과 독창적인 은유를 통해 우주적이고 신비로운 서정시로 승화시킨 빼어난 작품이다. 이 시의 근본 주제는 인간의 노동(감자 캐기)을 통해 획득하는 생명의 충만한 결실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우주적인 경이로움이다. 화자는 감자를 캐는 행위를 단순한 수확이 아닌, 흙이라는 근원적인 공간에서 '어둠의 잠'을 깨우는 신비한 '발굴'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며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 시의 가장 뛰어난 미덕은 공간과 사물을 극적으로 전이시키는 은유의 힘에 있을 터이다.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지
텃밭에서 부지런히 감자를 캔다
칸칸이 미로의 방이 허물어지고
낮은 잠에서 깨어나는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
밭고랑 가득 반짝이는 눈동자들
어둠에 빛을 내는 행성이다
흙바닥이 우주 공간이고 하늘이다
구름도 내려앉은 유월 하순
- 「감자를 캐며」 전문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는 건 앞으로 닥칠 자연재해(장마)에 대한 예보와 긴장감은 노동의 긴박함을 조성한다. 이 짧은 문장은 화자에게 시간이 곧 결실의 가치임을 일깨우며, "부지런히 감자를 캔다"라는 행위의 정당성과 절실함을 부여하고 있다. "유월 하순"은 감자 수확의 계절이며,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의 계절적 배경은 땅이 생명력을 가장 충만하게 응축하고 있는 시기이다. "구름도 내려앉은" 무거운 대기는 이러한 풍요로움과 장마 전의 고요함을 동시에 암시하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칸칸이 미로의 방이 허물어"지는 장면에서, 땅속 감자가 자란 공간을 '미로의 방'으로 표현한 것은 감자가 겪어낸 어둠 속의 응축된 시간과 고통, 그리고 복잡한 생명의 성장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방'이 허물어지는 것은 곧 수확이자, 땅속 세계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이다.
"낮은 잠에서 깨어나는" 감자가 땅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캐지는 순간은 '탄생' 또는 '각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노동을 통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잠들어 있던 생명이 인간의 노동과 만나 비로소 빛을 보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밭고랑 가득 반짝이는" 감자의 '눈'은 생명의 싹을 틔우는 부분이자,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화자의 시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감자들이 단순히 수확물이 아니라, 세상을 응시하며 살아있는 생명체로 재인식되는 순간이며, 화자와 교감하면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 흙에서 나온 감자를 '달님'으로 비유하며 현실적인 사물을 천상의 존재로 격상시키고 있다. 둥글고 밝은 감자의 형태를 달에 투영함으로써 노동의 결실에 신성하고 영롱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땅속에서 우주로 확장한다. "어둠에 빛을 내는 행성이"라고 감자를 '행성'으로 호명한 것은 이 시의 핵심 은유이다. 감자는 오랫동안 흙(어둠)이라는 우주 속에 갇혀 있었지만, 캐내는 순간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독립적인 세계(생명)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흙 속의 잠재된 에너지가 현실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흙바닥이 우주 공간이고 하늘이"라는 가장 대담한 비유로, 발밑의 텃밭 흙바닥을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과 '하늘'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감자 캐기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낮은 차원의 행위가, 곧 우주의 원리를 체험하고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숭고한 행위임을 선언하는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시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시의 중간에 배치된 연과 연 사이의 행갈이는 시적 호흡을 조절하고, 감자를 캐는 행위의 단속적 리듬을 형성한다. 특히 땅속에서 감자를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멈칫하고 놀라워하는 화자의 정서적 템포를 반영하고 있다.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과 같은 반복과 열거는 발견의 기쁨과 경이로움을 점층적으로 고조시키며, 소박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땅과 노동이라는 현실의 영역을 우주의 경이와 맞닿게 함으로써,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이 가진 무한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인의 깊은 시선과 따뜻한 감각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바다와 신성의 시학
표제작(「바다의 날개」)이 시집 전체를 웅변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시집의 상징으로 무의식중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집의 시편들이 구조적으로 잘 무리지어 모양새를 이루고 있더라도, 차수경의 시편들은 편편히 독립채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수경은 일상의 언어를 넘어 '자연과 신성의 합일'을 시도하는데, 「바다의 날개」는 그 중심에 선다. 인천 마시안해변의 노을 속에서 시인은 '멀리서 하얀 편지를 물고 오는 파도'를 본다. 바다는 그리움의 은유이자,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세계의 상징이다.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구절은, 차수경 시세계의 핵심 명제다. 인간은 그리움으로 존재하고, 그 그리움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힘이다.
노을 지는 마시안해변
멀리서 하얀 편지를 물고 오는 파도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
풍경 너머로 보이는 날갯짓
그 사이로 수정처럼 빛나는 추억
바다가 불러주는 세레나데를 들으며
잠시 파도의 꿈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긴 여정의 시간을 달려와
헛한 욕망을 지우고 발등을 적시고
다시 낮게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
그리움이란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 「바다의 날개」 전문
이 시는 바다와 파도를 '날개'라는 은유로 포착하여, 바다와 파도가 상징하는 '그리움'의 속성을 깊이 탐색하고 있다. 화자는 노을 지는 해변에서 파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리움이란 결국 끊임없이 다가와 위로하고 다시 물러서며 여백을 만드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바다는 곧 긴 여정 끝에 만나는 내면의 안식처이자 성찰의 공간으로 현현한다.
이 시의 시적 생명력은 독창적인 은유에서 태어난다. 바다의 끝없이 넓은 수평선, 혹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펼쳐지며 돌아가는 움직임을 '날개'로 형상화했다. 확장과 포옹의 이미지로서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구절은, 그리움이 깊을수록 대상을 품고자 하는 열망이 커진다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바다의 날개는 곧 화자를 감싸안아 위로하는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을 상징한다.
"노을 지는 마시안해변"에서 시간적 배경인 '노을 지는' 순간은 하루의 끝이자 성찰과 회상의 시간일 터이다. 붉게 물든 노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화자의 내면 깊숙한 그리움의 정서를 더욱 고조시킨다. '풍경 너머' 물리적인 시야를 넘어선 곳, 즉 내면의 기억이나 이상향을 담아내고 있다. 날갯짓 너머로 보이는 추억은 현재의 풍경을 통해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되살아나고 있을 것이다.
파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3연은 그리움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인데, "긴 여정의 시간을 달려와/ 욕망을 지우고 발등을 적시"는 장면은, 파도가 해변에 도달함으로써 인생의 여정 끝에 찾아오는 성찰을 은유한다. 파도는 세상의 '헛한 욕망'과 번뇌를 잠시나마 씻어내고, 현실의 고통을 발등에 적시며 위로하고 있다. "다시 낮게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 여기서 '너'는 파도 자체이자, 화자가 느끼는 그리움의 대상 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의인화한 아바타이다. 그리움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잠시 위로를 준 후, 다시 떠나면서 여백을 남긴다. 이 떠남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슬픈 여운을 남기며 화자에게 최종적인 깨달음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걸 이제야 알 것 같"은 최종적인 정서적 깨달음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움은 단순히 대상을 열망하는 감정이 아니라, 고독한 여정 속에서 찾아와 위로하고, 덧없이 사라지며 오히려 존재의 가치를 역설하는 순환적인 감정임을 인식한다.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의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했던 정서의 본질을 명확히 발견하고야 만다.
차수경의 「바다의 날개」는 자연물(바다, 파도, 노을)에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그리움, 성찰, 위로)를 투영하여 깊은 서정성이라는 영토를 확보했다. 파도의 '다가옴(위로)'과 '물러섬(여백)'의 순환을 통해 삶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리움의 숭고한 의미를 발견하는 빼어난 서정시를 가없는 바다의 몸짓에서 건져냈다.
풍랑이 일던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신
그 갈릴리에서 당신을 보네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처럼
수평선 너머 물든 하늘은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하네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눈동자
무서워 말라 하시며
황금 구름 사이로 메시아가 오시네
떨리는 건 바다도 마찬가지
호텔 테라스에 서서
사명의 십자가를 물길 위에 드리우네
어둠을 가르며 메시아가 오시네
새벽 나팔꽃인 양
이슬 젖은 입술로 외치리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 「갈릴리바다 일출」 전문
「갈릴리바다 일출」을 보면, 신성의 이미지가 더욱 뚜렷하다. 갈릴리의 바다에서 '메시아가 오시네'라고 외치는 시인은 신앙과 시학의 경계에서 경건히 선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이 언어와 존재의 근원을 향해 올리는 기도이자 찬가이다. 이 시에서 빛과 물, 바람과 믿음은 모두 동일시되면서, 서로가 합일한 존재의 에너지로 통합된다.
이 시는 성경 속의 배경인 갈릴리바다의 일출 장면을 통해 신앙적 깨달음과 사명 의식을 고백하는 신앙시이며, 서정시이다. 시인은 갈릴리바다에 나타난 일출을 메시아의 강림 체험과 사명 의식의 고백을 통하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차수경은 갈릴리바다에서 일어났던 기적, 즉 예수 그리스도가 "풍랑이 일던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언급하며 시의 신앙적 배경을 설정한다. 이 역사적이고 영적인 장소에서 시적 화자는 '당신'(메시아, 주님)을 직접 대면하는 듯한 몰아의 체험은, 단순한 지명이 아닌, 기적과 믿음의 공간으로써 갈릴리바다이기 때문이다. 수평선 너머 물든 하늘의 장엄한 모습은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찬란하게 묘사된다. 이 아름다운 일출 직전의 풍경을 시인은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처럼"이라고 동일시하며, 자신 또한 메시아의 강림을 맞이할 예비자의 자세를 취함을 드러낸다.
솟아오르는 태양은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눈동자"로 표현되어 강렬한 생명력과 위엄을 가진 메시아의 현현으로 상징된다. "무서워 말라 하시며"라는 성경 구절 인용을 통해 두려움과 경외감 속에서 메시아가 "황금 구름 사이로" 임재하는 장면을 시각화한다. 메시아의 강림을 맞이하는 것은 "떨리는 건 바다도 마찬가지"일 만큼 압도적인 사건이다. 시적 화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인 "호텔 테라스"에 서 있지만,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사명의 십자가를 물길 위에 드리우네"라고 고백한다. 이는 자신의 삶과 존재를 메시아에 귀의하며, 사명의 길에 헌신하겠다는 결단과 다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한번 "어둠을 가르며 메시아가 오시네"라고 선포하며 확신을 다진다. 새벽에 피는 "나팔꽃"은 새로운 시작과 소식을 알리는 존재로서, 이슬에 젖은 듯 정결한 "입술로 외"칠 것을 다짐한다. 이는 메시아의 도래를 세상에 전파하겠다는 소명 의지를 드러낸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빌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외치며 사랑의 맹세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는 시인이 느끼는 메시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을 확증하며, 앞서 다짐한 사명 의지의 근원이, 곧 이 사랑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시는 갈릴리바다의 일출을 메시아의 강림으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시인 자신의 신앙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종교적 서정시이다. 시인은 성경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장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그 외 「흥정계곡 불 한증막」의 '불과 물' 「양수리에 가면」에서 '전율' 「정서진에서」 빛나는 소멸과 불멸, 「톤레사프호수」의 생과 죽음 시작과 끝 등은 물을 연원으로 하여, 구체적인 장소를 시적 성소로 변모시킨 작품들이다. 특히 「용비지 반영」은 "물속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빛으로 풀어놓은 방정식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수학적 정결함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조화와 순결의 언어다.
차수경은 물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기독교적인 세례를 다시, 관통하여 메시아에 대한 서원을 온몸으로 천명한다. 한편, 이미지의 내면적인 육화는 서정의 풍경과 대상으로 전이되면서 곳곳에 메시아적인 사랑이 현현하고 있다는 것이 각별하다.
4부에 등장하는 「흔적」과 「오늘의 햇살로」 「톤레사프호수」는 '삶의 연민과 생의 윤회' 전개하면서 완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시인은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며, 존재의 본질을 '흔적의 지속성'으로 정의한다. 모든 생명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흔적이 모여 하나의 시가 된다.
일상과 신성 그리고 그리움의 언어
차수경의 시는 삶의 미시적 감각과 신성의 원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녀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사물과 풍경에 대한 관찰이 정교하며, 그 안에서 감정의 진폭이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그의 미학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일상의 신성화이다. '감자를 캐며'나 '참깨를 볶으며' 같은 시에서, 평범한 행위는 하나의 기도이자 제의로 승화된다. 둘째, 언어의 생명성이다. 그녀의 언어는 사물의 질감과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다. "헐거워진 초침을 조이고/ 입안 가득 유연해지는 언어들"(「언어가 사는 집」)은 언어가 단순한 표상이 아닌 생명체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셋째, 그리움의 윤리이다. 이 시집의 정서는 늘 그리움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의 감정을 여과하여, 존재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써 신앙적인 메시아와 대상에 대한 사랑에 관한 그리움에 더욱더 친화적일 것이리라.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시인의 언어는 곧 삶의 태도다.
또한 차수경의 시는 여성적 서정의 힘을 잃지 않는다. 그의 시적 화자는 어머니, 아내, 딸,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며, 그 시선은 늘 '돌봄과 공감'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세계와의 윤리적 연대다. 그의 시세계에는 언제나 '노동의 손끝, 자연의 숨결, 가족의 따스함, 신에 대한 기도'가 숨 쉬고 있다. 그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시적 인간학을 이룬다. 차수경은 사물과 인간, 신과 자연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언어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아름다운 여정은 축복이며, 시인의 길일 것이다.
- 생애 서사와 존재의 결을 어루만지는 시적 항해
김 영 탁(시인·『문학청춘』 주필)
바다의 날개로 비상하는 시적 여정
차수경의 시집 『바다의 날개』는 제목 그대로 "바다"와 "날개"라는 두 개의 상징으로 시작된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며 기억의 깊은 저장소이고, 날개는 그 기억을 초월하여 다른 차원으로 비상하려는 인간의 열망이다. 시인은 "시의 바다로 항해는/ 늘 설렘과 긴장이다"(「시인의 말」)라고 말하며, 언어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자리, 즉 시인으로서의 숙명을 스스로 고백한다. 그녀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시간과 삶의 층위를 비추는 거울이며, 날개는 그 거울 속에서 다시금 자신을 구원하려는 희망의 상징이다.
이 시집은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지만, 그것은 일상의 단계, 삶의 감각, 기억의 재현, 그리고 신성으로의 회귀라는 하나의 원환적 구조로 이어진다. 각 부의 시들은 독립적인 서정을 지니면서도 전체적으로 '삶의 항해'를 은유한다. 언어의 시작에서 일상의 땀방울, 자연과 기억의 무늬,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다와 신의 풍경으로 이르는 흐름은, 한 인간이 시간과 존재의 한계를 넘어 자유로 나아가려는 영혼의 여정을 보여준다.
언어의 집에서 시작된 세계
1부의 시들은 언어, 세월, 가족, 기억이라는 기본적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가 사는 집」에서 시인은 '자음과 모음'이 공존하는 공간을 "무질서 속의 평온함"이라 부른다.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이성의 경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며, 시인은 그 언어의 집을 돌보는 정원사처럼 분주하다. 차수경의 언어는 인위적 수사보다는 감각의 숨결에 가깝다. '헐거워진 초침을 조이고/ 입안 가득 유연해지는 언어들'이라는 구절은 언어가 단지 도구가 아니라, 삶의 호흡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한다.
「샤벨 우드 슬랩」에서는 나무 한 그루의 생애를 통해 존재의 궤적을 그린다. 먼 대륙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나무는 "옹이마저 삼켜온 너의 생애"로 요약된다. 인간의 삶 또한 그와 같다는 사실을, 시인은 고요하게 비유한다. 나무결 속에 새겨진 시간의 층위는 '추억을 켜켜이 도려낸' 인간의 기억과 맞닿는다. 그의 언어는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넘어선다. 나무의 '결'은 생의 흔적이자, 언어의 흐름이다.
오랫동안 안팎으로
이력을 새기며
선창까지 다다른 물결
진주를 찾던 날들이
거울 앞에서 포말처럼 부서진다
바다를 흔들던
바람의 날개도
시간의 속삭임마저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
꽃이 지고 겨울이 오고
한 옥타브 높게
파도는 또 일렁인다
물결 사이로 드러나는 숨결
구름의 그림자는 머물고
햇살의 기억이 창문을 두드린다
은밀하게 점령한 주름의 출처를
이제야 읽어내는
새침한 세월의 꽃
- 「주름에 대하여」 전문
시 「주름에 대하여」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역사가 새겨진 흔적인 '주름'을 깊이 있는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주름을 단순한 노화의 징표가 아닌, 생명력과 아름다움, 깨달음을 담은 세월의 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바다와 물결의 은유와 시간과 삶을 비유하는 시의 전반부는 바다, 물결, 선창, 포말 등의 해양 이미지를 통해 주름의 생성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선창까지 다다른 물결' 주름을 오랜 시간 쉼 없이 흘러온 인생의 물결에 비유한다. '선창'은 삶의 종착지나 일시적 멈춤의 공간으로, 그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방랑의 세월을 거듭한 종착점은 "진주를 찾던 날들이/ 거울 앞에서 포말처럼 부서"지듯 허망하게 거품으로 종결된다. 그야말로 보물찾기하듯, 화려하고 빛나는 가치를 찾아서 세월의 지층을 쌓으며 도달한 공간은 선착장이고 거기서 거품으로 산화한다. 진술상으로 보면, 지금까지 무던히 애썼던 노력은 허망하기 그지없지만, 화자는 이러한 세속적인 일들이 허무하고 부질없음으로 자각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헛된 노력이라고 각성하는 순간, 인생무상에 도달하면서,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담담하게 수용한다.
그러니까 젊음의 열정과 '진주를 찾던 날들'(이상理想)이 '거울 앞'(현재)에서 부서지는 포말(물거품)처럼 덧없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음을 뿐만 아니라, 각성의 거울 앞에 마주 선 것이다. 여기서 '포말'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소멸의 서정을 동시에 담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지속되는 삶의 생명력을 대비시키고 있다. "바다를 흔들던/ 바람의 날개도/ 시간의 속삭임마저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이란, 삶을 관통했던 강력한 바람의 힘과 은밀한 영향을 끼친 속삭임조차도 화려한 시절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온다. 쇠퇴와 침체에도, 삶의 의지와 생명력은 '한 옥타브 높게' 더욱 고조되어 지속됨을 보여준다. 이는 주름이 단지 쇠퇴가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파동과 에너지가 기록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결국 주름에 '무심하게' 새겨져 버린,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힘이 돋을새김으로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주름을 통해 내면으로 향하며, 그 의미를 심화한다. "물결 사이로 드러나는 숨결"은 주름(물결)은 가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본질적인 생명력 '숨결'을 드러내는 통로로 부상한다. "구름의 그림자는 머물고/ 햇살의 기억이 창문을 두드"리면서 삶의 어둡거나 우울했던 순간들과 따스하고 좋았던 순간들이, 주름 속에 '머물고' '기억'으로 남아 현재의 공간으로 감각하며 호출하고 있다.
"은밀하게 점령한 주름의 출처를/ 이제야 읽어내는" 시간은 주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점령'당한 것이고, 화자는 비로소 나이가 들어서야 그 주름이 어디서 왔는지, 즉 삶의 궤적을 '읽어내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 "새침한 세월의 꽃"은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역설적 표현이자 핵심으로 작동한다. 2연의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날들"과 연대하는 '새침한' 세월은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가오는 이에게 무심한 듯 굴었다. 그러나 결국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하여, 각자覺者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꽃'은 쇠퇴와 대립하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주름은 단순히 '흔적'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피워낸 삶의 정수, 지혜, 그리고 아름다운 결실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시는 주름을 통하여 인생의 유한성과 영속성, 상실과 깨달음이라는 대립적인 가치들을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즉, 주름이라는, 자기 삶의 이력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성숙한 시선을 독자에게 선물하는 수작이다.
익어가는 사랑과 세월의 성찰
시 「참깨를 볶으며」는 일상적 행위인 참깨를 볶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세월 그리고 '어머니의 일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서정시이다. 좁은 팬 속에서 튀어 오르는 작은 참깨 알갱이들은 화자의 내면세계와 과거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며, 소멸과 성숙이 교차하는 감동을 전달한다.
팬 속에 쏟아놓은 사랑 한 되
달궈지는 낱말들을 뒤적이는데
당신의 주름 같은 지난 이야기
알알이 무르익어 튀어 오르고
되뇌어 듣던 어머니의 일생을
나는 가슴으로 읽는다
세포 깊숙이 젖어있던
그리움이 익어 튀어 오른다
- 「참깨를 볶으며」 전문
시의 중심 소재인 '참깨'와 '볶는 행위'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 사랑의 연금술이며, 시적 은유로 기능한다. "팬 속에 쏟아놓은 사랑 한 되" 안의 '참깨'는 곧 화자가 간직해 온 '사랑'이며, 그 양을 "한 되"라는 구체적인 단위로 표현하여 삶의 충만한 결실임을 강조한다. 참깨를 볶는 것은 이 사랑을 익히고 완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달궈지는 낱말들을 뒤적이"면, 참깨가 뜨거운 열을 받아 익어가듯, 화자 내면의 응어리지고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열기 속에서 '낱말'로 되살아나고 있다. 볶는 행위는 단순한 뒤섞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능동적으로 되짚어보는 '성찰'의 행위가 된다.
또한, 시의 핵심적인 비유는 참깨를 '당신의 주름'과 오로지 어머니의 시간에 몰입된 '어머니의 일생'으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당신의 주름 같은 지난 이야기"는 참깨 표면의 미세한 주름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주름'으로 환원한다. 여기서 당신은 문맥상 화자가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상, 즉 어머니를 가리킨다. 볶아지는 참깨가 '무르익어 튀어 오르는' 모습은 어머니의 고단했지만, 충실했던 지난 이야기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벅차게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되뇌어 듣던 어머니의 일생을/ 나는 가슴으로 읽"을 때, 화자는 어머니의 생애를 단순히 귀로 '듣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전 존재인 '가슴으로 읽는' 체험적 깨달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참깨가 튀어 오르는 소리는 어머니의 삶이 응축된 소리이며, 그 소리를 통해 비로소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연은 참깨 볶는 과정의 궁극적인 정서적 의미를 응축하여, 그리움의 승화와 존재의 정수를 보여준다. "세포 깊숙이 젖어있던/ 그리움이 익어 튀어 오"르는 장면에서 '그리움'은 단순히 보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채 해결되지 못했거나 묻어두었던 모든 사랑과 회한, 그리고 응어리진 감정들을 포괄한다. 참깨가 완전히 '익어 튀어 오르는' 것처럼, 화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의 정수가 폭발적으로 해소되고, 승화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튀어 오름은 성숙의 완성인 동시에, 억눌렸던 감정이 해방을 맞이하여 고양되고 있다.
「참깨를 볶으며」는 극적 사건 없이 '참깨 볶기'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행위를 관찰하고 사유하고 확장하면서 비상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 사랑의 본질, 그리고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 이르는 시이다. 참깨가 열을 받아 톡톡 터지며 향을 내듯, 삶의 고통과 숙성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깨달음의 향기가 우러나온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간결하고도 강력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시는 이처럼 작은 참깨 한 알에서 한 존재의 숭고한 역사를 발견하는 서정적 깊이를 성취할 뿐만 아니라, 평범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한 차수경의 시안詩眼이 드높다.
「참깨를 볶으며」와 「떡 권사 울 엄마」는 연대하고 있는데, '떡'은 희생과 대속적인 상징물로 기능하면서, 사랑의 대속적 실천으로 작동한다. 이 시는 '떡 권사'라는 별명을 가진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떡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과 정서를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과 세대의 전이를 배경으로, 떡을 매개로 한 어머니의 사랑과 자식의 그리움,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랑의 실천을 감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떡 권사 별명을 가진 울 엄마, 떡을 잘 만들어서 떡 권사이고 떡을 좋아해서 떡 권사이지, 구순 가까운 날까지 떡 만들어 나누고 자식 먹이는 게 행복이었지, 어린 날 부엌 광 시렁에는 늘 떡 광주리가 있었지, 우리 형제들은 생쥐처럼 들락거리며 떡 한 덩이씩 잘도 물어 날랐지, 햇살 좋은 겨울날 추녀 밑에서 제기차기하며 살얼음 낀 떡을 먹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 아궁이 앞에서 형제들 둘러앉아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를 바라보며 기다림도 꿈만큼이나 커졌지, 세월은 입맛을 묘하게 바꾸어놓았지만, 때때로 그 맛이 그리운 것은 엄마의 사랑이 고픈 거겠지 울 엄마가 살림에서 손을 놓은 후 떡시루에는 다시 김이 피어오르지 않았지 "나는 떡을 먹어야 사는데, 요양원에 가면 노인들한테 떡을 안 준다더라"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떡 권사 울 엄마, 세대를 거슬러 이제 내가 병상에 누운 엄마에게 손수 떡을 만들어 드리지, 찹쌀을 물에 불려 찜 솥에 찐 다음 절구에 넣고 메질한 덩어리를 꺼내 콩가루를 묻혀 썰어내는 떡 권사의 부록쯤 되는 인절미라는 거지, 고운 듯 덜 고운 듯 씹히는 맛이 가슴을 녹이지, 울 엄마가 내 입에 넣어주던 대로 나도 그 사랑까지 얹어서 엄마에게 드리지, 내 사랑도 곱게 씹어주기를 바라며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창가에 겨우내 봉우리를 품어 피워낸 주홍빛 군자란꽃이 시들어가네
- 「떡 권사 울 엄마」 전문
작품의 핵심 인물인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상징하는 '떡 권사'라는 별명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권사勸士'라는 종교적 직분과 '떡'이 결합한 이 별명은, 어머니가 떡을 만들고 나누는 행위가 마치 봉사나 전도와 같은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이었음을 함축한다. '울 엄마'라는 표현은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친근함과 애틋한 정서를 드러내는 사랑의 기호이다.
이 시에서 '떡'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사랑과 헌신으로 떡을 만들고 나누는 행위는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다. 과장된 진술이겠지만, 동시에 기독교의 "내몸이 떡이요"라는, 예수님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이것은 내몸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성경 구절(마가복음 14:22, 고린도전서 11:23-26)을 가리키는 복음과 연동하고 있다.
한 번 더 크게 과장하자면, 「떡 권사 울 엄마」는 앞에서 진술한 "하늘의 양식 광야의 만나다"(「대추나무 아래서」)와 면면히 연대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환기한다. 빵 다섯 개(오병五餠)와 물고기 두 마리(이어二魚)로 5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예수의 기적이,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 위로 떠오른다.
화자의 기억 안에 '떡 광주리' '살얼음 낀 떡' '김이 피어오르는 떡시루' 등은 어린 시절의 따뜻하고 풍요로웠던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그리움이 다시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세월이 지나 입맛이 변했음에도 그 맛이 그리운 것은 곧 '엄마의 사랑이 고픈' 것이라는 고백처럼, 떡은 곧 어머니의 사랑 그 자체이리라.
"나는 떡을 먹어야 사는데"라고 걱정하는 노년의 어머니에게 시인은 손수 찹쌀을 불리고 쪄서, 절구에 메질한 인절미를 만들어 드린다. 이는 세대를 거슬러 어머니의 사랑을 재현하고 보답하는 행위일 것이다. 즉 사랑을 받는 자에서 사랑을 주는 자로의 세대의 전이이며, 영적인 사랑의 계승이다. 시인이 "그 사랑까지 얹어서 엄마에게 드리지"라는 진술은, 떡이라는 물질적 양식 위에 무형의 은혜와 정성을 더하는 신앙적 실천을 보여준다.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는지"라며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어머니께 사랑을 되돌려주는 순간 느끼는 벅찬 감정, 즉 사랑과 그리움, 안쓰러움 등의 복합적인 정서가 한데 융합하면서, 주홍빛 군자란꽃이 시들어가는 걸 응시하는 화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을 장면이 눈에 선하다. 주홍빛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어머니의 노쇠함과 병상에 누운 현실을 암시하며, 붉어지는 눈시울의 감정과 대비되거나 혹은 그 감정에 동조하는 감정이입적 자연물로 기능함으로써 시의 여운을 깊게 울린다.
일상과 생의 온도
「감자를 캐며」는 일상적인 노동의 풍경을 시인의 깊은 성찰과 독창적인 은유를 통해 우주적이고 신비로운 서정시로 승화시킨 빼어난 작품이다. 이 시의 근본 주제는 인간의 노동(감자 캐기)을 통해 획득하는 생명의 충만한 결실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우주적인 경이로움이다. 화자는 감자를 캐는 행위를 단순한 수확이 아닌, 흙이라는 근원적인 공간에서 '어둠의 잠'을 깨우는 신비한 '발굴'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며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 시의 가장 뛰어난 미덕은 공간과 사물을 극적으로 전이시키는 은유의 힘에 있을 터이다.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지
텃밭에서 부지런히 감자를 캔다
칸칸이 미로의 방이 허물어지고
낮은 잠에서 깨어나는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
밭고랑 가득 반짝이는 눈동자들
어둠에 빛을 내는 행성이다
흙바닥이 우주 공간이고 하늘이다
구름도 내려앉은 유월 하순
- 「감자를 캐며」 전문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는 건 앞으로 닥칠 자연재해(장마)에 대한 예보와 긴장감은 노동의 긴박함을 조성한다. 이 짧은 문장은 화자에게 시간이 곧 결실의 가치임을 일깨우며, "부지런히 감자를 캔다"라는 행위의 정당성과 절실함을 부여하고 있다. "유월 하순"은 감자 수확의 계절이며,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의 계절적 배경은 땅이 생명력을 가장 충만하게 응축하고 있는 시기이다. "구름도 내려앉은" 무거운 대기는 이러한 풍요로움과 장마 전의 고요함을 동시에 암시하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칸칸이 미로의 방이 허물어"지는 장면에서, 땅속 감자가 자란 공간을 '미로의 방'으로 표현한 것은 감자가 겪어낸 어둠 속의 응축된 시간과 고통, 그리고 복잡한 생명의 성장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방'이 허물어지는 것은 곧 수확이자, 땅속 세계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이다.
"낮은 잠에서 깨어나는" 감자가 땅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캐지는 순간은 '탄생' 또는 '각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노동을 통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잠들어 있던 생명이 인간의 노동과 만나 비로소 빛을 보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밭고랑 가득 반짝이는" 감자의 '눈'은 생명의 싹을 틔우는 부분이자,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화자의 시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감자들이 단순히 수확물이 아니라, 세상을 응시하며 살아있는 생명체로 재인식되는 순간이며, 화자와 교감하면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 흙에서 나온 감자를 '달님'으로 비유하며 현실적인 사물을 천상의 존재로 격상시키고 있다. 둥글고 밝은 감자의 형태를 달에 투영함으로써 노동의 결실에 신성하고 영롱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땅속에서 우주로 확장한다. "어둠에 빛을 내는 행성이"라고 감자를 '행성'으로 호명한 것은 이 시의 핵심 은유이다. 감자는 오랫동안 흙(어둠)이라는 우주 속에 갇혀 있었지만, 캐내는 순간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독립적인 세계(생명)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흙 속의 잠재된 에너지가 현실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흙바닥이 우주 공간이고 하늘이"라는 가장 대담한 비유로, 발밑의 텃밭 흙바닥을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과 '하늘'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감자 캐기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낮은 차원의 행위가, 곧 우주의 원리를 체험하고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숭고한 행위임을 선언하는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시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시의 중간에 배치된 연과 연 사이의 행갈이는 시적 호흡을 조절하고, 감자를 캐는 행위의 단속적 리듬을 형성한다. 특히 땅속에서 감자를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멈칫하고 놀라워하는 화자의 정서적 템포를 반영하고 있다. "달님 하나, 달님 둘, 셋, 넷"과 같은 반복과 열거는 발견의 기쁨과 경이로움을 점층적으로 고조시키며, 소박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땅과 노동이라는 현실의 영역을 우주의 경이와 맞닿게 함으로써,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이 가진 무한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인의 깊은 시선과 따뜻한 감각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바다와 신성의 시학
표제작(「바다의 날개」)이 시집 전체를 웅변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시집의 상징으로 무의식중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집의 시편들이 구조적으로 잘 무리지어 모양새를 이루고 있더라도, 차수경의 시편들은 편편히 독립채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수경은 일상의 언어를 넘어 '자연과 신성의 합일'을 시도하는데, 「바다의 날개」는 그 중심에 선다. 인천 마시안해변의 노을 속에서 시인은 '멀리서 하얀 편지를 물고 오는 파도'를 본다. 바다는 그리움의 은유이자,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세계의 상징이다.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구절은, 차수경 시세계의 핵심 명제다. 인간은 그리움으로 존재하고, 그 그리움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힘이다.
노을 지는 마시안해변
멀리서 하얀 편지를 물고 오는 파도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
풍경 너머로 보이는 날갯짓
그 사이로 수정처럼 빛나는 추억
바다가 불러주는 세레나데를 들으며
잠시 파도의 꿈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긴 여정의 시간을 달려와
헛한 욕망을 지우고 발등을 적시고
다시 낮게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
그리움이란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 「바다의 날개」 전문
이 시는 바다와 파도를 '날개'라는 은유로 포착하여, 바다와 파도가 상징하는 '그리움'의 속성을 깊이 탐색하고 있다. 화자는 노을 지는 해변에서 파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리움이란 결국 끊임없이 다가와 위로하고 다시 물러서며 여백을 만드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바다는 곧 긴 여정 끝에 만나는 내면의 안식처이자 성찰의 공간으로 현현한다.
이 시의 시적 생명력은 독창적인 은유에서 태어난다. 바다의 끝없이 넓은 수평선, 혹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펼쳐지며 돌아가는 움직임을 '날개'로 형상화했다. 확장과 포옹의 이미지로서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구절은, 그리움이 깊을수록 대상을 품고자 하는 열망이 커진다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바다의 날개는 곧 화자를 감싸안아 위로하는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을 상징한다.
"노을 지는 마시안해변"에서 시간적 배경인 '노을 지는' 순간은 하루의 끝이자 성찰과 회상의 시간일 터이다. 붉게 물든 노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화자의 내면 깊숙한 그리움의 정서를 더욱 고조시킨다. '풍경 너머' 물리적인 시야를 넘어선 곳, 즉 내면의 기억이나 이상향을 담아내고 있다. 날갯짓 너머로 보이는 추억은 현재의 풍경을 통해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되살아나고 있을 것이다.
파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3연은 그리움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인데, "긴 여정의 시간을 달려와/ 욕망을 지우고 발등을 적시"는 장면은, 파도가 해변에 도달함으로써 인생의 여정 끝에 찾아오는 성찰을 은유한다. 파도는 세상의 '헛한 욕망'과 번뇌를 잠시나마 씻어내고, 현실의 고통을 발등에 적시며 위로하고 있다. "다시 낮게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 여기서 '너'는 파도 자체이자, 화자가 느끼는 그리움의 대상 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의인화한 아바타이다. 그리움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잠시 위로를 준 후, 다시 떠나면서 여백을 남긴다. 이 떠남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슬픈 여운을 남기며 화자에게 최종적인 깨달음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걸 이제야 알 것 같"은 최종적인 정서적 깨달음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움은 단순히 대상을 열망하는 감정이 아니라, 고독한 여정 속에서 찾아와 위로하고, 덧없이 사라지며 오히려 존재의 가치를 역설하는 순환적인 감정임을 인식한다.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의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했던 정서의 본질을 명확히 발견하고야 만다.
차수경의 「바다의 날개」는 자연물(바다, 파도, 노을)에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그리움, 성찰, 위로)를 투영하여 깊은 서정성이라는 영토를 확보했다. 파도의 '다가옴(위로)'과 '물러섬(여백)'의 순환을 통해 삶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리움의 숭고한 의미를 발견하는 빼어난 서정시를 가없는 바다의 몸짓에서 건져냈다.
풍랑이 일던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신
그 갈릴리에서 당신을 보네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처럼
수평선 너머 물든 하늘은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하네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눈동자
무서워 말라 하시며
황금 구름 사이로 메시아가 오시네
떨리는 건 바다도 마찬가지
호텔 테라스에 서서
사명의 십자가를 물길 위에 드리우네
어둠을 가르며 메시아가 오시네
새벽 나팔꽃인 양
이슬 젖은 입술로 외치리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 「갈릴리바다 일출」 전문
「갈릴리바다 일출」을 보면, 신성의 이미지가 더욱 뚜렷하다. 갈릴리의 바다에서 '메시아가 오시네'라고 외치는 시인은 신앙과 시학의 경계에서 경건히 선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이 언어와 존재의 근원을 향해 올리는 기도이자 찬가이다. 이 시에서 빛과 물, 바람과 믿음은 모두 동일시되면서, 서로가 합일한 존재의 에너지로 통합된다.
이 시는 성경 속의 배경인 갈릴리바다의 일출 장면을 통해 신앙적 깨달음과 사명 의식을 고백하는 신앙시이며, 서정시이다. 시인은 갈릴리바다에 나타난 일출을 메시아의 강림 체험과 사명 의식의 고백을 통하여 자신의 헌신을 다짐한다.
차수경은 갈릴리바다에서 일어났던 기적, 즉 예수 그리스도가 "풍랑이 일던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언급하며 시의 신앙적 배경을 설정한다. 이 역사적이고 영적인 장소에서 시적 화자는 '당신'(메시아, 주님)을 직접 대면하는 듯한 몰아의 체험은, 단순한 지명이 아닌, 기적과 믿음의 공간으로써 갈릴리바다이기 때문이다. 수평선 너머 물든 하늘의 장엄한 모습은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찬란하게 묘사된다. 이 아름다운 일출 직전의 풍경을 시인은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처럼"이라고 동일시하며, 자신 또한 메시아의 강림을 맞이할 예비자의 자세를 취함을 드러낸다.
솟아오르는 태양은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눈동자"로 표현되어 강렬한 생명력과 위엄을 가진 메시아의 현현으로 상징된다. "무서워 말라 하시며"라는 성경 구절 인용을 통해 두려움과 경외감 속에서 메시아가 "황금 구름 사이로" 임재하는 장면을 시각화한다. 메시아의 강림을 맞이하는 것은 "떨리는 건 바다도 마찬가지"일 만큼 압도적인 사건이다. 시적 화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인 "호텔 테라스"에 서 있지만,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사명의 십자가를 물길 위에 드리우네"라고 고백한다. 이는 자신의 삶과 존재를 메시아에 귀의하며, 사명의 길에 헌신하겠다는 결단과 다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한번 "어둠을 가르며 메시아가 오시네"라고 선포하며 확신을 다진다. 새벽에 피는 "나팔꽃"은 새로운 시작과 소식을 알리는 존재로서, 이슬에 젖은 듯 정결한 "입술로 외"칠 것을 다짐한다. 이는 메시아의 도래를 세상에 전파하겠다는 소명 의지를 드러낸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빌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외치며 사랑의 맹세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는 시인이 느끼는 메시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을 확증하며, 앞서 다짐한 사명 의지의 근원이, 곧 이 사랑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시는 갈릴리바다의 일출을 메시아의 강림으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시인 자신의 신앙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종교적 서정시이다. 시인은 성경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장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그 외 「흥정계곡 불 한증막」의 '불과 물' 「양수리에 가면」에서 '전율' 「정서진에서」 빛나는 소멸과 불멸, 「톤레사프호수」의 생과 죽음 시작과 끝 등은 물을 연원으로 하여, 구체적인 장소를 시적 성소로 변모시킨 작품들이다. 특히 「용비지 반영」은 "물속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빛으로 풀어놓은 방정식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수학적 정결함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조화와 순결의 언어다.
차수경은 물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기독교적인 세례를 다시, 관통하여 메시아에 대한 서원을 온몸으로 천명한다. 한편, 이미지의 내면적인 육화는 서정의 풍경과 대상으로 전이되면서 곳곳에 메시아적인 사랑이 현현하고 있다는 것이 각별하다.
4부에 등장하는 「흔적」과 「오늘의 햇살로」 「톤레사프호수」는 '삶의 연민과 생의 윤회' 전개하면서 완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시인은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며, 존재의 본질을 '흔적의 지속성'으로 정의한다. 모든 생명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흔적이 모여 하나의 시가 된다.
일상과 신성 그리고 그리움의 언어
차수경의 시는 삶의 미시적 감각과 신성의 원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녀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사물과 풍경에 대한 관찰이 정교하며, 그 안에서 감정의 진폭이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그의 미학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일상의 신성화이다. '감자를 캐며'나 '참깨를 볶으며' 같은 시에서, 평범한 행위는 하나의 기도이자 제의로 승화된다. 둘째, 언어의 생명성이다. 그녀의 언어는 사물의 질감과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다. "헐거워진 초침을 조이고/ 입안 가득 유연해지는 언어들"(「언어가 사는 집」)은 언어가 단순한 표상이 아닌 생명체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셋째, 그리움의 윤리이다. 이 시집의 정서는 늘 그리움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의 감정을 여과하여, 존재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써 신앙적인 메시아와 대상에 대한 사랑에 관한 그리움에 더욱더 친화적일 것이리라. '바다는 그리울수록 날개를 더 넓게 편다'라는 시인의 언어는 곧 삶의 태도다.
또한 차수경의 시는 여성적 서정의 힘을 잃지 않는다. 그의 시적 화자는 어머니, 아내, 딸,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며, 그 시선은 늘 '돌봄과 공감'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세계와의 윤리적 연대다. 그의 시세계에는 언제나 '노동의 손끝, 자연의 숨결, 가족의 따스함, 신에 대한 기도'가 숨 쉬고 있다. 그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시적 인간학을 이룬다. 차수경은 사물과 인간, 신과 자연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언어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아름다운 여정은 축복이며, 시인의 길일 것이다.
목차
목차
1부
언어가 사는 집·12
샤벨 우드 슬랩·13
주름에 대하여·14
대추나무 아래서·16
반짝이는 슬픔·18
사진을 보며·19
오징어 게임·20
물의 꽃·22
초원의 밤·24
불청객·26
다이어트의 배후·28
떡 권사 울 엄마·30
윷놀이·32
아침의 농도·34
감자를 캐며·36
2부
다림질·38
불법 입주·39
미니사막·40
목구멍·41
갈등·42
겨울 아침·44
조급함에 대하여·45
아침 찬가·46
신발 단상·48
수석을 보며·49
햇살은 아직 머물고·50
거울·51
그래도·52
하이 빅스비·53
뿌리의 일탈·54
3부
물방울 가족·58
곶감을 말리며·59
금낭화·60
적선과 냉정 사이에서·61
왕벚나무집 할머니·62
가마솥·63
참깨를 볶으며·64
새벽비·65
이방인·66
텃밭·67
설유화·68
목련이 운다·69
유월이 가네·70
꽃무릇·71
수마水魔·72
4부
바다의 날개·74
동백꽃·75
갈릴리바다 일출·76
흥정계곡 불 한증막·78
양수리兩水里에 가면·80
용비지 반영反影·81
정서진에서·82
을왕리 해변·83
재인폭포·84
톤레사프호수·85
흔적·86
시월·87
라떼는 말이야·88
오늘의 햇살로·89
귀가 순하다·90
누가 대장이라고·92
해설 | 김영탁_존재의 결을 어루만지는 신성神聖의 시학·94
언어가 사는 집·12
샤벨 우드 슬랩·13
주름에 대하여·14
대추나무 아래서·16
반짝이는 슬픔·18
사진을 보며·19
오징어 게임·20
물의 꽃·22
초원의 밤·24
불청객·26
다이어트의 배후·28
떡 권사 울 엄마·30
윷놀이·32
아침의 농도·34
감자를 캐며·36
2부
다림질·38
불법 입주·39
미니사막·40
목구멍·41
갈등·42
겨울 아침·44
조급함에 대하여·45
아침 찬가·46
신발 단상·48
수석을 보며·49
햇살은 아직 머물고·50
거울·51
그래도·52
하이 빅스비·53
뿌리의 일탈·54
3부
물방울 가족·58
곶감을 말리며·59
금낭화·60
적선과 냉정 사이에서·61
왕벚나무집 할머니·62
가마솥·63
참깨를 볶으며·64
새벽비·65
이방인·66
텃밭·67
설유화·68
목련이 운다·69
유월이 가네·70
꽃무릇·71
수마水魔·72
4부
바다의 날개·74
동백꽃·75
갈릴리바다 일출·76
흥정계곡 불 한증막·78
양수리兩水里에 가면·80
용비지 반영反影·81
정서진에서·82
을왕리 해변·83
재인폭포·84
톤레사프호수·85
흔적·86
시월·87
라떼는 말이야·88
오늘의 햇살로·89
귀가 순하다·90
누가 대장이라고·92
해설 | 김영탁_존재의 결을 어루만지는 신성神聖의 시학·94
저자
저자
차수경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朴龍來 詩의 構造的 特性 硏究』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4년 계간 『창조문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시집 『갈대꽃 연가』 『물의 뿌리』 『바다의 날개』가 있고, 여행 산문집 『샤론의 외국 문화기행』 외 다수의 동인 시집이 있습니다. 571돌 한글날 인천시장 표창과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표창, 인천예총 예술상(문학)을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인천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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