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체위(양장본 Hardcover)
김도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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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미지 확산擴散.proliferation의 진술眞術에 대하여
- 김도영 시집 『달의 체위』의 시 세계
구재기(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은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 B. 존슨(Ben Johnson)
1.
시는 어느 순간 대상에 대한 만남에서 비롯된 느낌이나 깨달음, 혹은 의미를 그 순간적으로 기술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 시제時制가 현재 진행형이거나 현재일 수밖에 없다. 일반 산문에서 말하는, 이른바 "~했다'와는 전혀 다른 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固有한 시제의 특징이다. 이것은 시에서만 특별히 있는 것임은 물론 본래부터 지닌, 현재 시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어떤 진실에 관한 진술陳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진술에 있어서 시는 이성적理性的인 진실이 아니다. 시는 다만 한 시인에 의하여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의 총체적인 진실이 진술되고 있다. 비록 본질적으로 시에 과거의 사실이 진술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시에서 과거에 대한 과거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순간의 현재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된다.
시를 쓰고자 할 때 시인은 곧잘 심상心象이 가지고 있는 지각상知覺上의 여러 성질이 가지는 종래從來 기존旣存의 것을 늘 지나치게 중요시하곤 한다. 일상에서는 심상의 새롭고 생생한 느낌보다는 이미 감각에 특수하게 연결된 심의상心意上 내재되어 있음으로써 익숙해져버린 사실로서의 심상에 안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한 편의 시작품으로서 완성하고자 할 때에는 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심상으로부터 유일무이한 시적 효과를 얻고자 노력한다. 시는 한 시인의 생활에서 익숙해져 있는 관습이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심상의 생생한 느낌보다는 감각에 특수하게 연결된 심의상心意上의 사실로서 나타나는 심상의 성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 있어서 심상의 효과는 심상의 감각적 유물이며 감각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
2.
우선 이 시집의 표제가 되어 있는 「달의 체위」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고단한 행려의 길을 걷는 여자의 굽은 등이 보였지
꼬리를 세운 전갈처럼 때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은 여자의 속엣말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 낮과 밤을 짓는 것은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지
자주 헛발을 내딛어도
떠돌지 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착을 꿈꾸는 익숙한 노숙
여자는 둥글어진 빛을 품어 몸집을 부풀렸을 것
한 번도 껴안은 적 없어
가만, 가만히 눈 감으면 회전하는 세상에서 하루라는 숫자를 지워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
전갈 꼬리에 찔려 절뚝거려도
기울어 흔들려 넘어지지 않고 잘 견뎠다고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고아高兒가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
고통 없는 간증처럼 여자는 돌아누웠지
홀쭉한 몸 안의 말들로 오므린 여자의 체위는
수십만 년 고도에서도 축축해진 음력으로 부풀고 있지
어둠이 낳은 체위는 내재율이었지
아주 오랫동안
- 「달의 체위」 전문
우선 '달'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화자는 '달'을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달이 일정한 기관을 조직하고,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사회적인 생활 기능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달'은 '고단한 행려의 길을 걷는 여자'의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굽은 등이 보'이기도 한다. '달'이 '삭朔'에서 태어나 초승달-상현달-보름달[望]-하현달-그믐달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한 생명체로서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른다. '달'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자'의 삶이 동일화同一化. identification된다. 따라서 '꼬리를 세운 전갈처럼 때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은 여자의 속엣말'은 한 '여자'로서, 또는 한 생명체로 태어난 '달'로서 화자가 인식한 삶의 역경을 그대로 형상화한 표현이다. 지상과 천상으로 확산擴散된 채 '꼬리를 세'워 '때를 기다려야'하는 지상의 '전갈'과도 같이,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이 천상으로 확산되어 '여자의 속엣말'처럼 극대화하면서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여자'만의 인내하는 '속엣말'이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이는 곧 한 '여자'로서, 생명체인 '달'로서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살아가지만, 화자는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 낮과 밤을 짓는 것은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음을 확인한다. 즉 '몸을 구부리는 형식'이란 곧 한 여자로서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는 인내하는 몸부림이요 이 또한 '달'로서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음으로 인식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인고의 벽을 넘고자 하는 처절한 현실적 삶의 극복 모습이며, 어엿한 생명체로서의 '달'로서 완성된 삶에서 최선화最善化를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함에 화자는 비록 '자주 헛발을 내딛어도' '떠돌지 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화자에게 제일 괴롭고 제일 먼저 견딜 수 없는 '정착을 꿈꾸는 익숙한 노숙'이라 하더라도 무엇이든 당장에 문턱을 넘어 침입할 우려가 없는 것이라면 그 처참한 신음소리와 목메인 절규와 짓밟힌 삶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용납하며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여자는 둥글어진 빛을 품어 몸집을 부풀렸을 것'을 간구하게 마련이라고 화자는 스스로 인지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것은 곧 '한 번도 껴안은 적 없'는 화자의 삶의 가치 기준이기도 하다.
화자는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재창조하고 추구하는 화자 특유의 삶의 방식으로 비약한다. '가만, 가만히 눈 감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회전하는 세상에서 하루라는 숫자를 지워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 인간적인 약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삶을 인식하게 된다. 삶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제 요소들, 이를테면 삶에서의 두려움, 피로, 야심 등에 따른 일부에 한정되지 않는 '하루라는 숫자를 지'움으로써 전체에 두루 걸치는 것이 되도록 일반화한다. 그리고 일정한 틀에 맞추다가 결국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으로 하여금 규격화하려는 내면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 깨닫는다. 삶에서 재창조하고 탐색하고 또한 화자만의 삶의 질서를 통하여 최고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됨을 인지함으로써 '전갈 꼬리에 찔려 절뚝거려도/기울어 흔들려 넘어지지 않고 잘 견뎠다'는 것을 전체적 의미로 반영한다.
한 편의 시속에서 창조된 삶은 일정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여 한 편의 시작품으로 생산되는 것이며, 그 시간 밖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시가 일정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화자가 선택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화자만의 어떠한 특별한 현장을 유일하게 이룩한 삶을 독자에게 강제적으로 인식함으로써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속에서 창조된 삶은 일정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여 한 편의 시작품으로 생산되는 것이며, 그 시간 밖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시가 일정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화자가 선택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화자만의 어떠한 특별한 현장을 유일하게 이룩한 삶을 독자에게 강제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확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고아高兒가/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에 전체적 의미가 반영된다. 즉 '달'이 삭朔의 짙은 어둠으로부터 망望에 이르고, 다시 삭으로 돌아가는 일생적 삶이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산고 끝에 '고아高兒'로 태어나서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를 맞음으로써 화자에게는 최상의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즉 '고통 없는 간증처럼 여자는 돌아누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상상적인 의미와 존재 의의를 풀어내고 있다. 즉 '고통 없는 간증처럼' '돌아누웠'는 것과 뒤란 우물 속에 비친 '달'을 '고아孤兒'가 아닌 '고아高兒'로 '높은 아이, 지상이 아닌 위, 즉 천상의 아이'로 하나의 생명체를 상징하였다는 것은 「달의 체위」가 최고의 상상적 통찰력을 보여준 결과임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이에 따라 화자는 「달의 체위」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상상적 장면의 모든 의미와 존재 의의를 완전하게 풀어냄으로써 본질적인 삶의 의미 가치를 「달의 체위」에 귀결하게 한다. 따라서 「달의 체위」에 내재한 모든 삶의 요소들이 공존과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하나의 심상, 즉 '달'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의미, '여자'라는 생산성의 의미 등 제 요소들이 한꺼번에 '홀쭉한 몸 안의 말들로 오므린 여자의 체위는/ 수십만 년 고도에서도 축축해진 음력으로 부풀고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삶의 관계를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곧 화자가 탐색하고, 재창조하고 삶의 질서를 이룩한 가치에 의한 '내재율'로 형성해 놓은 것이다. 독자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삶과 관습에 의해 재창조될 삶을 통하여 '아주 오랫동안' 동시에 작용할 낯선 삶의 가치 있는 의미이기도 하다.
T.S.엘리엇(1888~1965)은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 데 있지 아니하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하여 시가 되게 하며, 〈전연 실지로 겪지 않은〉 감정인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맞춤으로 쓸모가 있게 되리라"하고 「전통傳統과 개인의 재능才能」에서 말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다음의 시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텅 빈 안쪽은 흙빛이었다
알맹이는 뿌리의 껍질이고 껍질은 흙의 알맹이여서
살살, 녹여 먹고 싶던 달과
돌돌, 돌리고 싶던 별의 노래를 껴안아
반짝이다 노련하게 벗겨지는 껍질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 보인다
오늘도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핏줄을 몸에 감고 마모된 기억으로도
살아가는 껍질을
닮았다
껍질의 체온에 알맹이가 있어
흙빛을 입고 흙내를 맡으며 살았다는
안쪽의 알맹이엔 껍질의 몸 주름이 새겨져 있다
태초에 타고난 체격처럼
골격으로 환하게 남겨진 껍질
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릴 때마다 내일을 걱정한다
엄마처럼
껍질은 알고 있다
알맹이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오래오래 익어갈 것이므로
껍질은 바깥의 소란을 잊고
안으로 단단하게 차오를 보고픈 말들을 쟁이고 있다
알맹이를 껴안고 있다
- 「껍질의 혼잣말」 전문
우선 시제인 「껍질의 혼잣말」이 가지는 의미부터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껍질'이란 무엇인가. '껍질'이란 비교적 딱딱한 달걀이나 조개, 식물의 씨 등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말하거나, 혹은 딱딱하지 않은 과일은 물론 각종 식물 씨앗의 겉을 싸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또는 알맹이를 빼고 남은 물건, 곧 껍데기를 말한다. 그러나 이 시작품에서 화자는 이러한 지시적이요 관습적인 의미를 가진 '껍질'을 말하고 있지 아니하다. '껍질'이 가지는 구체적인 의미를 '혼잣말'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로 부여되고 있다. '혼잣말'은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 즉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고 혼자서 하는 혼잣소리요 독어獨語요 독언獨言을 말한다. 혼잣말talking to oneself의 의미로 잔소리, 꾸중, 꾸지람을 말하지만 '독백a soliloqu'이란 의미도 있다. 그러나 '독백獨白'이란 마음속의 생각을 관객에게 알리려고 상대 배우 없이 혼자 대사를 말하는 것이요, 이에 따라 혼자서 중얼거리는 상대적인 말이다. 이른바 모놀로그Monologue를 말한다. 그렇다면 「껍질의 혼잣말」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혼잣말' 즉 언어는 하나의 상징象徵, symbol이다. 상징이란 그것이 지칭하는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를 말한다. 이 기호가 지칭한 사물과 기호와의 사이에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다. 이때 음성과 문자, 그리고 몸짓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은 음성언어요, 문자언어요,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신체의 동작으로 의사나 감정을 표현ㆍ전달하는 행위인 신체언어body language가 상징으로 쓰인다. 이러한 상징으로 화자는 '껍질'을 이미 상징화된 언어로 새롭게 '혼잣말'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다. 상징화함으로써 그 의미를 확산화擴散化해 놓고 있다. 일찍이 잉글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W.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줍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화자는 이 「껍질의 혼잣말」을 장소와 명칭으로서 무엇인가를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삶이란 결국 '껍질'임을 깨닫는다. 아니 삶은 '텅 빈' 것임을 안다. 모든 '알맹이'는 '뿌리'가, 그래서 '껍질'조차도 '흙'의 '알맹이여서' 텅 비어버린 것, 이러한 삶은 곧 천상天上으로 확산된다. '달'을 그리며 소망하였던 삶이나 '별'을 희망 삼아 노래하며 바라던 삶은 결국 '반짝이다'가 '벗겨지는(=사라져 버린)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한다. 화자는 끝내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보인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삶의 모습인가. 화자는 다시 이러한 '껍질'과 '알맹이'의 관계가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핏줄을 몸에 감고 마모된 기억으로도/ 살아가는 껍질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깨달은 화자는 '마모된 기억'을 더듬으며 '껍질의 체온에 알맹이가 있어/ 흙빛을 입고 흙내를 맡으며 살았다는/ 안쪽의 알맹이엔 껍질의 몸 주름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시의 앞부분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 보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자는 그 '껍질'이 '태초에 타고난 체격처럼/ 골격으로 환하게 남겨진' 것이라 한다. 이에 따라서 '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릴 때마다 내일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다'는 의미는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우는 그러한 심리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리'는 현재의 삶으로부터 새로운 '내일'을 보다 더 새롭게 밝은 삶을 꿈꾸고 있는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내일의 삶을 걱정하면서 이끌어주는 가운데에는 '엄마'가 있다. 화자는 굳이 '어머니'보다 '엄마'를 택한다. 어머니는 보다 성인적成人的인 표현이다. '엄마'라는 호칭은 화자가 아직 삶에 미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직도 '껍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화자가 성장 과정에서 바라보는 '뿌리'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다. 그것을 '엄마'라는 '껍질은 알고 있'으며, 미숙한 '알맹이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엄마'의 미숙아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알맹이'는 '오래오래 익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엄마'인 '껍질은 바깥의 소란을 잊고/ 안으로 단단하게 차오를 보고픈 말들을 쟁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껍질의 혼잣말」이요, '엄마'의 참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중략〉---
4.
시인은 어떤 대상을 통하여 삶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한 편의 시로서 전달하고 싶을 때 우선 체험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체험한 바를 한 편의 시로써 안착시키려 할 때면 이미 겪은 체험과는 전혀 동떨어진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 체험이라는 것은 숱한 감정이 서로 섞이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로 융합融合되고, 확산擴散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근원으로부터 모호하고 애매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김도영의 시작품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심상心象이 가지고 있는 지각상知覺上의 여러 성질이 가지는 종래從來 기존旣存의 것을 늘 지나치게 중요시하곤 하는 데에 반하여, 김도영은 기존의 이미지들로부터 시어가 가지는 모호성을 과감하게 극복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확산시켜 놓고 있다. '웃음과 울음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뭉쳤다 흩어졌다/ 진눈깨비는 흰 꽃으로 핀 기다림이 전부였다// 바람은 음악처럼 발을 들었다 놓고 있다'(「눈 내리는 저녁 바람은 비틀즈」의 끝부분)라든가, '발자국들 모두 돌아간 지하도는 바람만 무성했다/ 그래도 그래서 그러므로/ 사내는 발자국 소리를 모아 허기를 채웠고// 밟아도, 치열하게 올라오는 야생의 뿌리를 감추기 위해/ 돌아누워 뒤척이곤 했다// 반환점을 돌아오듯 용산역 지하도는/ 호적 없는 이력서가 바람에 펄럭거리곤 했다// 그는 초식 동물이었다'(「그의 몸에선 시詩의 똥냄새가 나고」의 끝부분)에서 시작품 전반적인 흐름으로 시인의 심성心性 구조와 시의 구성과의 사이에서, 또 인상印象과 표현과의 사이에서 확고히 분리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상을 조리하는 솜씨는 과히 놀랄만할 정도이다. 오늘날 다수의 시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불분명한 이미지 확산擴散으로 당초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데, 김도영의 시가 가지는, 새롭고도 낯선 이미지 확산擴散, proliferation에 따른 진술陳述이 돋보이고 있어 앞으로 큰 기대를 하게 한다.
- 김도영 시집 『달의 체위』의 시 세계
구재기(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은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 B. 존슨(Ben Johnson)
1.
시는 어느 순간 대상에 대한 만남에서 비롯된 느낌이나 깨달음, 혹은 의미를 그 순간적으로 기술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 시제時制가 현재 진행형이거나 현재일 수밖에 없다. 일반 산문에서 말하는, 이른바 "~했다'와는 전혀 다른 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固有한 시제의 특징이다. 이것은 시에서만 특별히 있는 것임은 물론 본래부터 지닌, 현재 시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어떤 진실에 관한 진술陳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진술에 있어서 시는 이성적理性的인 진실이 아니다. 시는 다만 한 시인에 의하여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의 총체적인 진실이 진술되고 있다. 비록 본질적으로 시에 과거의 사실이 진술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시에서 과거에 대한 과거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순간의 현재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된다.
시를 쓰고자 할 때 시인은 곧잘 심상心象이 가지고 있는 지각상知覺上의 여러 성질이 가지는 종래從來 기존旣存의 것을 늘 지나치게 중요시하곤 한다. 일상에서는 심상의 새롭고 생생한 느낌보다는 이미 감각에 특수하게 연결된 심의상心意上 내재되어 있음으로써 익숙해져버린 사실로서의 심상에 안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한 편의 시작품으로서 완성하고자 할 때에는 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심상으로부터 유일무이한 시적 효과를 얻고자 노력한다. 시는 한 시인의 생활에서 익숙해져 있는 관습이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심상의 생생한 느낌보다는 감각에 특수하게 연결된 심의상心意上의 사실로서 나타나는 심상의 성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 있어서 심상의 효과는 심상의 감각적 유물이며 감각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
2.
우선 이 시집의 표제가 되어 있는 「달의 체위」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고단한 행려의 길을 걷는 여자의 굽은 등이 보였지
꼬리를 세운 전갈처럼 때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은 여자의 속엣말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 낮과 밤을 짓는 것은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지
자주 헛발을 내딛어도
떠돌지 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착을 꿈꾸는 익숙한 노숙
여자는 둥글어진 빛을 품어 몸집을 부풀렸을 것
한 번도 껴안은 적 없어
가만, 가만히 눈 감으면 회전하는 세상에서 하루라는 숫자를 지워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
전갈 꼬리에 찔려 절뚝거려도
기울어 흔들려 넘어지지 않고 잘 견뎠다고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고아高兒가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
고통 없는 간증처럼 여자는 돌아누웠지
홀쭉한 몸 안의 말들로 오므린 여자의 체위는
수십만 년 고도에서도 축축해진 음력으로 부풀고 있지
어둠이 낳은 체위는 내재율이었지
아주 오랫동안
- 「달의 체위」 전문
우선 '달'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화자는 '달'을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달이 일정한 기관을 조직하고,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사회적인 생활 기능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달'은 '고단한 행려의 길을 걷는 여자'의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굽은 등이 보'이기도 한다. '달'이 '삭朔'에서 태어나 초승달-상현달-보름달[望]-하현달-그믐달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한 생명체로서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른다. '달'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자'의 삶이 동일화同一化. identification된다. 따라서 '꼬리를 세운 전갈처럼 때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은 여자의 속엣말'은 한 '여자'로서, 또는 한 생명체로 태어난 '달'로서 화자가 인식한 삶의 역경을 그대로 형상화한 표현이다. 지상과 천상으로 확산擴散된 채 '꼬리를 세'워 '때를 기다려야'하는 지상의 '전갈'과도 같이, '지상을 헤매다 지나는 철새의 울음'이 천상으로 확산되어 '여자의 속엣말'처럼 극대화하면서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여자'만의 인내하는 '속엣말'이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이는 곧 한 '여자'로서, 생명체인 '달'로서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몸을 구부리는 형식으로' 살아가지만, 화자는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 낮과 밤을 짓는 것은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음을 확인한다. 즉 '몸을 구부리는 형식'이란 곧 한 여자로서 '내일로 찾아가는 순간을 밝'히려는 인내하는 몸부림이요 이 또한 '달'로서 '둥글어지기 위해 어둠과 내통하던 날들이었'음으로 인식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인고의 벽을 넘고자 하는 처절한 현실적 삶의 극복 모습이며, 어엿한 생명체로서의 '달'로서 완성된 삶에서 최선화最善化를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함에 화자는 비록 '자주 헛발을 내딛어도' '떠돌지 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화자에게 제일 괴롭고 제일 먼저 견딜 수 없는 '정착을 꿈꾸는 익숙한 노숙'이라 하더라도 무엇이든 당장에 문턱을 넘어 침입할 우려가 없는 것이라면 그 처참한 신음소리와 목메인 절규와 짓밟힌 삶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용납하며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여자는 둥글어진 빛을 품어 몸집을 부풀렸을 것'을 간구하게 마련이라고 화자는 스스로 인지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것은 곧 '한 번도 껴안은 적 없'는 화자의 삶의 가치 기준이기도 하다.
화자는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재창조하고 추구하는 화자 특유의 삶의 방식으로 비약한다. '가만, 가만히 눈 감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회전하는 세상에서 하루라는 숫자를 지워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 인간적인 약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삶을 인식하게 된다. 삶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제 요소들, 이를테면 삶에서의 두려움, 피로, 야심 등에 따른 일부에 한정되지 않는 '하루라는 숫자를 지'움으로써 전체에 두루 걸치는 것이 되도록 일반화한다. 그리고 일정한 틀에 맞추다가 결국 '뭇별들의 허기를 채우던 밤'으로 하여금 규격화하려는 내면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 깨닫는다. 삶에서 재창조하고 탐색하고 또한 화자만의 삶의 질서를 통하여 최고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됨을 인지함으로써 '전갈 꼬리에 찔려 절뚝거려도/기울어 흔들려 넘어지지 않고 잘 견뎠다'는 것을 전체적 의미로 반영한다.
한 편의 시속에서 창조된 삶은 일정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여 한 편의 시작품으로 생산되는 것이며, 그 시간 밖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시가 일정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화자가 선택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화자만의 어떠한 특별한 현장을 유일하게 이룩한 삶을 독자에게 강제적으로 인식함으로써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속에서 창조된 삶은 일정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여 한 편의 시작품으로 생산되는 것이며, 그 시간 밖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시가 일정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화자가 선택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화자만의 어떠한 특별한 현장을 유일하게 이룩한 삶을 독자에게 강제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확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고아高兒가/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에 전체적 의미가 반영된다. 즉 '달'이 삭朔의 짙은 어둠으로부터 망望에 이르고, 다시 삭으로 돌아가는 일생적 삶이 '눈썹이 하얘지도록 출생한' 산고 끝에 '고아高兒'로 태어나서 '뒤란 우물 속에 흔들릴 때'를 맞음으로써 화자에게는 최상의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즉 '고통 없는 간증처럼 여자는 돌아누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상상적인 의미와 존재 의의를 풀어내고 있다. 즉 '고통 없는 간증처럼' '돌아누웠'는 것과 뒤란 우물 속에 비친 '달'을 '고아孤兒'가 아닌 '고아高兒'로 '높은 아이, 지상이 아닌 위, 즉 천상의 아이'로 하나의 생명체를 상징하였다는 것은 「달의 체위」가 최고의 상상적 통찰력을 보여준 결과임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이에 따라 화자는 「달의 체위」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상상적 장면의 모든 의미와 존재 의의를 완전하게 풀어냄으로써 본질적인 삶의 의미 가치를 「달의 체위」에 귀결하게 한다. 따라서 「달의 체위」에 내재한 모든 삶의 요소들이 공존과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하나의 심상, 즉 '달'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의미, '여자'라는 생산성의 의미 등 제 요소들이 한꺼번에 '홀쭉한 몸 안의 말들로 오므린 여자의 체위는/ 수십만 년 고도에서도 축축해진 음력으로 부풀고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삶의 관계를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곧 화자가 탐색하고, 재창조하고 삶의 질서를 이룩한 가치에 의한 '내재율'로 형성해 놓은 것이다. 독자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삶과 관습에 의해 재창조될 삶을 통하여 '아주 오랫동안' 동시에 작용할 낯선 삶의 가치 있는 의미이기도 하다.
T.S.엘리엇(1888~1965)은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 데 있지 아니하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하여 시가 되게 하며, 〈전연 실지로 겪지 않은〉 감정인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맞춤으로 쓸모가 있게 되리라"하고 「전통傳統과 개인의 재능才能」에서 말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다음의 시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텅 빈 안쪽은 흙빛이었다
알맹이는 뿌리의 껍질이고 껍질은 흙의 알맹이여서
살살, 녹여 먹고 싶던 달과
돌돌, 돌리고 싶던 별의 노래를 껴안아
반짝이다 노련하게 벗겨지는 껍질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 보인다
오늘도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핏줄을 몸에 감고 마모된 기억으로도
살아가는 껍질을
닮았다
껍질의 체온에 알맹이가 있어
흙빛을 입고 흙내를 맡으며 살았다는
안쪽의 알맹이엔 껍질의 몸 주름이 새겨져 있다
태초에 타고난 체격처럼
골격으로 환하게 남겨진 껍질
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릴 때마다 내일을 걱정한다
엄마처럼
껍질은 알고 있다
알맹이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오래오래 익어갈 것이므로
껍질은 바깥의 소란을 잊고
안으로 단단하게 차오를 보고픈 말들을 쟁이고 있다
알맹이를 껴안고 있다
- 「껍질의 혼잣말」 전문
우선 시제인 「껍질의 혼잣말」이 가지는 의미부터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껍질'이란 무엇인가. '껍질'이란 비교적 딱딱한 달걀이나 조개, 식물의 씨 등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말하거나, 혹은 딱딱하지 않은 과일은 물론 각종 식물 씨앗의 겉을 싸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또는 알맹이를 빼고 남은 물건, 곧 껍데기를 말한다. 그러나 이 시작품에서 화자는 이러한 지시적이요 관습적인 의미를 가진 '껍질'을 말하고 있지 아니하다. '껍질'이 가지는 구체적인 의미를 '혼잣말'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로 부여되고 있다. '혼잣말'은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 즉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고 혼자서 하는 혼잣소리요 독어獨語요 독언獨言을 말한다. 혼잣말talking to oneself의 의미로 잔소리, 꾸중, 꾸지람을 말하지만 '독백a soliloqu'이란 의미도 있다. 그러나 '독백獨白'이란 마음속의 생각을 관객에게 알리려고 상대 배우 없이 혼자 대사를 말하는 것이요, 이에 따라 혼자서 중얼거리는 상대적인 말이다. 이른바 모놀로그Monologue를 말한다. 그렇다면 「껍질의 혼잣말」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혼잣말' 즉 언어는 하나의 상징象徵, symbol이다. 상징이란 그것이 지칭하는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를 말한다. 이 기호가 지칭한 사물과 기호와의 사이에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다. 이때 음성과 문자, 그리고 몸짓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은 음성언어요, 문자언어요,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신체의 동작으로 의사나 감정을 표현ㆍ전달하는 행위인 신체언어body language가 상징으로 쓰인다. 이러한 상징으로 화자는 '껍질'을 이미 상징화된 언어로 새롭게 '혼잣말'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다. 상징화함으로써 그 의미를 확산화擴散化해 놓고 있다. 일찍이 잉글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W.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줍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화자는 이 「껍질의 혼잣말」을 장소와 명칭으로서 무엇인가를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삶이란 결국 '껍질'임을 깨닫는다. 아니 삶은 '텅 빈' 것임을 안다. 모든 '알맹이'는 '뿌리'가, 그래서 '껍질'조차도 '흙'의 '알맹이여서' 텅 비어버린 것, 이러한 삶은 곧 천상天上으로 확산된다. '달'을 그리며 소망하였던 삶이나 '별'을 희망 삼아 노래하며 바라던 삶은 결국 '반짝이다'가 '벗겨지는(=사라져 버린)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한다. 화자는 끝내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보인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삶의 모습인가. 화자는 다시 이러한 '껍질'과 '알맹이'의 관계가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핏줄을 몸에 감고 마모된 기억으로도/ 살아가는 껍질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껍질은 알맹이와 가족이었음'을 깨달은 화자는 '마모된 기억'을 더듬으며 '껍질의 체온에 알맹이가 있어/ 흙빛을 입고 흙내를 맡으며 살았다는/ 안쪽의 알맹이엔 껍질의 몸 주름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시의 앞부분 '사는 일이 모두 껍질이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 속을 잃고 속을 내 보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자는 그 '껍질'이 '태초에 타고난 체격처럼/ 골격으로 환하게 남겨진' 것이라 한다. 이에 따라서 '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릴 때마다 내일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다'는 의미는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우는 그러한 심리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껍질과 알맹이는 벗겨지고 채워지는 감정'으로 '바깥이 흔들리'는 현재의 삶으로부터 새로운 '내일'을 보다 더 새롭게 밝은 삶을 꿈꾸고 있는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내일의 삶을 걱정하면서 이끌어주는 가운데에는 '엄마'가 있다. 화자는 굳이 '어머니'보다 '엄마'를 택한다. 어머니는 보다 성인적成人的인 표현이다. '엄마'라는 호칭은 화자가 아직 삶에 미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직도 '껍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화자가 성장 과정에서 바라보는 '뿌리'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다. 그것을 '엄마'라는 '껍질은 알고 있'으며, 미숙한 '알맹이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엄마'의 미숙아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알맹이'는 '오래오래 익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엄마'인 '껍질은 바깥의 소란을 잊고/ 안으로 단단하게 차오를 보고픈 말들을 쟁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껍질의 혼잣말」이요, '엄마'의 참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중략〉---
4.
시인은 어떤 대상을 통하여 삶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한 편의 시로서 전달하고 싶을 때 우선 체험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체험한 바를 한 편의 시로써 안착시키려 할 때면 이미 겪은 체험과는 전혀 동떨어진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 체험이라는 것은 숱한 감정이 서로 섞이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로 융합融合되고, 확산擴散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근원으로부터 모호하고 애매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김도영의 시작품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심상心象이 가지고 있는 지각상知覺上의 여러 성질이 가지는 종래從來 기존旣存의 것을 늘 지나치게 중요시하곤 하는 데에 반하여, 김도영은 기존의 이미지들로부터 시어가 가지는 모호성을 과감하게 극복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확산시켜 놓고 있다. '웃음과 울음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뭉쳤다 흩어졌다/ 진눈깨비는 흰 꽃으로 핀 기다림이 전부였다// 바람은 음악처럼 발을 들었다 놓고 있다'(「눈 내리는 저녁 바람은 비틀즈」의 끝부분)라든가, '발자국들 모두 돌아간 지하도는 바람만 무성했다/ 그래도 그래서 그러므로/ 사내는 발자국 소리를 모아 허기를 채웠고// 밟아도, 치열하게 올라오는 야생의 뿌리를 감추기 위해/ 돌아누워 뒤척이곤 했다// 반환점을 돌아오듯 용산역 지하도는/ 호적 없는 이력서가 바람에 펄럭거리곤 했다// 그는 초식 동물이었다'(「그의 몸에선 시詩의 똥냄새가 나고」의 끝부분)에서 시작품 전반적인 흐름으로 시인의 심성心性 구조와 시의 구성과의 사이에서, 또 인상印象과 표현과의 사이에서 확고히 분리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상을 조리하는 솜씨는 과히 놀랄만할 정도이다. 오늘날 다수의 시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불분명한 이미지 확산擴散으로 당초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데, 김도영의 시가 가지는, 새롭고도 낯선 이미지 확산擴散, proliferation에 따른 진술陳述이 돋보이고 있어 앞으로 큰 기대를 하게 한다.
목차
목차
1부 그을음의 속성
꼭짓점을 이해하는 방식·12
채식주의자·14
동그라미 그리기·16
그을음의 속성·18
굽은 나무 아래 살아가는 공식·20
강물의 문장·22
앵두의 모정·24
보존의 이력·26
허밍·28
눈사람 만들기·30
달의 체위·32
강의 노숙은 강가·34
발톱의 기원·36
2부 구름 커텐을 열어본 적 있나요?
청동거울에 걸린 오후의 쓸쓸함에 대하여 - 우화羽化·38
자폐 - 선인장 서곡·40
흉터를 열고 싶은 남자·42
선잠을 깨워 놀고 싶었지·44
되돌아오는 순간의 멈춤·46
발자국 타르초·48
드라이아이스의 기분·50
구름커튼을 열어본 적 있나요?·52
공동체·54
열쇠로부터 목소리를 듣다·56
껍질의 혼잣말·58
눈 내리는 저녁 바람은 비틀즈 - 서천역·60
비상구 -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단상·62
3부 헛간의 다음 말
노루발·66
헛간의 다음 말·68
손으로 쓰는 어머니·70
그의 몸에선 시詩의 똥냄새가 나고 - 지하도·72
허공을 걷는 법·74
소금꽃을 들여다보면·76
마곡사의 봄은 의연하다·78
구름집을 이고 사는 집게·80
낙타 발자국엔 푸른 말들이 팔랑거려·82
속도를 버리다·84
수평을 찾아가는 일몰·86
목련의 통증·88
수산경매시장 - 홍원항·90
4부 대나무 건축법
외줄 살이·94
길냥이 애인·96
매듭을 만지다·98
고로쇠를 진 사내·100
누에의 입·102
대나무 건축법·104
못으로 만든 거울·106
나의 전생은 새였다·108
자화상, 그리고 방생 - Vincent van Gogh가 Paul Gauguin에게·110
층층나무의 자기중심적 시점·112
껍질의 힘·114
목련 후기·116
문門의 문서·118
5부 부모시경父母詩境
어머니의 바다·122
아버지의 자전거·124
해설 | 구재기_이미지 확산擴散.proliferation의 진술眞術에 대하여·126
꼭짓점을 이해하는 방식·12
채식주의자·14
동그라미 그리기·16
그을음의 속성·18
굽은 나무 아래 살아가는 공식·20
강물의 문장·22
앵두의 모정·24
보존의 이력·26
허밍·28
눈사람 만들기·30
달의 체위·32
강의 노숙은 강가·34
발톱의 기원·36
2부 구름 커텐을 열어본 적 있나요?
청동거울에 걸린 오후의 쓸쓸함에 대하여 - 우화羽化·38
자폐 - 선인장 서곡·40
흉터를 열고 싶은 남자·42
선잠을 깨워 놀고 싶었지·44
되돌아오는 순간의 멈춤·46
발자국 타르초·48
드라이아이스의 기분·50
구름커튼을 열어본 적 있나요?·52
공동체·54
열쇠로부터 목소리를 듣다·56
껍질의 혼잣말·58
눈 내리는 저녁 바람은 비틀즈 - 서천역·60
비상구 -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단상·62
3부 헛간의 다음 말
노루발·66
헛간의 다음 말·68
손으로 쓰는 어머니·70
그의 몸에선 시詩의 똥냄새가 나고 - 지하도·72
허공을 걷는 법·74
소금꽃을 들여다보면·76
마곡사의 봄은 의연하다·78
구름집을 이고 사는 집게·80
낙타 발자국엔 푸른 말들이 팔랑거려·82
속도를 버리다·84
수평을 찾아가는 일몰·86
목련의 통증·88
수산경매시장 - 홍원항·90
4부 대나무 건축법
외줄 살이·94
길냥이 애인·96
매듭을 만지다·98
고로쇠를 진 사내·100
누에의 입·102
대나무 건축법·104
못으로 만든 거울·106
나의 전생은 새였다·108
자화상, 그리고 방생 - Vincent van Gogh가 Paul Gauguin에게·110
층층나무의 자기중심적 시점·112
껍질의 힘·114
목련 후기·116
문門의 문서·118
5부 부모시경父母詩境
어머니의 바다·122
아버지의 자전거·124
해설 | 구재기_이미지 확산擴散.proliferation의 진술眞術에 대하여·126
저자
저자
김도영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2025년 『시인시대』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자작시 대회 대상을 수상하였고, 전국 헌시 공모전 대상을 수상 했으며 동인지 『꽃살문 사이로』 시집 『달의 체위』가 있다. 전북매일신문 시 연재를 진행했고, 현재 충남시인협회 회원, 서해신문 칼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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