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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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몸, 그러니까 펄펄 끓는 뜨거운 내장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우리 마녀들-광녀들의 이야기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고
우리의 아픔에 대해서, 슬픔에 대해서, 기쁨에 대해서,
우리의 낭만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의 섹스에 대해서
우리의 성적 판타지에 대해서
우리의 몸에 대해서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세상에는 낙인의 이름이 존재한다. 마녀와 광녀(미친년) 역시 그중 하나다. 남성중심의 지배질서에 따라 구축된 근대 합리성은 이들을 낙인찍어 추방해왔다.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시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등 각종 텍스트를 빌려 마녀와 광녀로 불리우는 여성들의 탄생 과정을 낯설게 더듬어본다. 마녀는 어떻게 마녀가 되었는가? 미친년은 어떻게 미친년이 되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각종 문학·문화 텍스트들은 마녀와 광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는가? 그 서사들은 광기와 비정상성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또다시 억압하는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여성 비평가들의 에세이와 비평을 모은 이 앤솔러지는 그와 같은 화두들에 대한 응답이다. 이성의 질서에서조차 밀려난 '열등한 존재'로서 다루는 대신 "구체적인 이미지와 살아 있는 캐릭터로 작동하는 서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마녀"를 소환해낸다. 가부장제를 거역하며 목소리를 내는 여자가 마녀라면, 우리는 알고 있다. "용감한 마녀들의 도발적인 이야기가 세상을 바꾸었고 또 바꾸어갈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여성에게 세계는 언제나 밤이었다. 촉각이 곤두세워지는 밤의 세계에서 여성은 미친 자, 마녀가 되고, 어둠 속에서 발현되는 예민함은 곧 타자와 약자에 대해 생각하는 자리를 연다. 그리하여 이 글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차별받는 여성-소수자의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 어두운 밤으로부터 도착한 전복적 언어를 해독하는 일과 닿아 있음을 설득해낸다. 몸, 그러니까 "뜨겁게 살아 있는" 내장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우리 마녀들-광녀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세상에 발신한다.
마녀는 도처에 있다: 이야기 속의 마녀, 그리고 현실의 밑자리
1부는 다양한 텍스트를 거쳐 직조되어온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마녀 서사"를 좇는 박혜진의 글로 문을 연다. 얼룩 혹은 낙인의 역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 즉 "설명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여지"를 풍부한 마녀적 역량으로 채굴해내는 "살아 움직이는 오픈 사전" 같은 글이다. 이로써 그는 "새로운 세상의 마녀"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소환해내며, 독자들을 "마녀 만들기"에 동참시킨다.
파괴적인 마녀, 광기의 여성들에게 주목하면서도, 그 광기를 탄생시키는 현실의 밑자리를 깊숙이 파고드는 글들도 있다. 민가경의 글은 마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세계를 지켜낼 수 있는지, 한평생 미친년으로 살다 간 '이모'의 이야기를 전하는 조카 '나'의 시점에서 증언한다. "매섭게 쏘아붙여 아이를 울리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그녀는 자기 인생, 아니, 여자들의 인생에 화가 나 있었다. 싸울 줄 모르는 불행한 여자들, 불행이 불행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여자들을 향한 희숙의 분노와 슬픔은, 그 무게만큼이나 희숙을 괴팍해 보이게 만드는 비밀이 되었다." '이모'가 괴팍하고 억척스럽게 간직해왔던 그 비밀 위에서, 단지 그 둘만의 비밀이 아닌 그 비밀 위에서 조카는 계속해서 쓴다. 백지은의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 아나키〉를 통해 '로맨스'의 외피를 쓴 광기의 서사가 인도하는 삶의 진실을 들려준다. 자신을 뒤흔드는 "다른 삶의 가능성", 아직 잃지 못한 자기의 "씨앗"을 발견케 해주는 그 가능성 앞에서 "온몸이 휘청이고 영혼까지 흔들릴 때", 우리는 광기의 기울기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경수는 최영미의 시(〈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중심으로 여성시문학사의 의미를 탐구하고, 거기에 여성 연구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녀 혹은 광녀 탄생 실패담"으로 덧댄다. 자신을 너무 솔직해서 마녀나 광녀 같은 낙인을 얻게 되는 여성들과 달리 용기가 없어 "그런 낙인에서 겨우 벗어나게 된"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여성시문학사에서 마녀 혹은 광녀를 "제대로 호명"하고 "해석"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 정은경의 글은 오정희와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마녀 혹은 광녀의 다양한 형상을 탐색한다. 치정, 복수, 범죄 등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공식과 닮은 두 작가의 소설을 통해 "감정 과잉과 신파, 그리고 비현실성, 판타지가 여성 약자의 것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현실(근대 합리성의 남성적 질서)을 지적한다.
미친년은 왜 미친년이 되는가?: 일종의 탄생기
2부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여성의 광기'에 좀 더 천착하며 그 광기의 서사를 증식시키는 (암묵적인) 폭력의 자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2부의 문을 여는 전청림의 글은 임출육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운명을 그야말로 펄펄 끓는 '내장의 언어'로 써내려가며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섹슈얼리티의 현주소"를 강력한 언어로 체화한다. "젖은 팬티 안에 감춰져 있던" 내장(자궁)의 이야기를 "서투른 언어로나마" 꺼보내는 것은 "필터와 보호막 없이,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 없이 그대로 부딪쳐버리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전승민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얽힌 폭력의 자리에서 읽어낸다. 그의 독해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반규범성과 비독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역설의 자리, 즉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출발해 보편 인간이 지닌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이 뒤얽히는 폭력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윤리성을 띤다. "미치지 않은 이들은 '저들'이야말로 정말로 미쳤음을 그리고 그들 자신은 미치지 않았음을 폭로하기 위해 기꺼이 미친년의 자리에 앉는다. 이것이 바로 열정이 겪는 수난이다."
소영현의 글은 최근 한국소설에서 재현되는 '미친년'을 통해 여성들을 낙인찍는 사회문화적 권력을 파헤친다. 여성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을 문학은 어떠한 강도로 다루는가? 과연 문학은 그녀들의 고통과 결핍에 온전히 밀착할 수 있는가? 오히려 때로는 "한없이 '선량한' 채로 차별주의를 내내 반복하거나 부지불식간에 차별과 억압과 협오를 강화"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 일련의 질문들을 통해 그는 미친년을 타자로 낙인찍는 그 도구를 움켜쥠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좀 더 예리한 글쓰기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다. 한편, 황유지의 글은 학문의 장이 젠더 위계와 착종되고 얼크러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한 양상으로서 나타난 '자기서사 현상'을 대문자 체제에 맞선 소문자 '나'의 분출로 해석하고 있는 김은하는 거식증에 관한 자기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박채영)와 《삼키기 연습》(박지니)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거식증을 외모 강박의 문제가 아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발이자 반항"으로 읽자고 제안한다. "거식증의 광기는 스스로가 와해되는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아버지를 거세시키고자 하는 전환 히스테리로, 여성 당사자들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향해 표출하는 온몸의 항의다."
"예민한 너! 이 집안의 마녀일지어다"
3부에서는 딸, 엄마, 며느리 등 집안의 자리에서 혹은 그림자 노동의 자리에서 고투하며 가부장 질서를 교란하고, 초과와 잉여의 욕망을 드러내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미친 여자는 다락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돌봄에 지친 집안에도 그득한 것이다. 특히 '고부갈등'이라는 가부장제의 언어를 '시가폭력'으로 재명명하는 박다솜의 글은 결혼한 여성이 어째서 손쉽게 "예민한 마녀"의 누명을 쓰게 되는지, 어째서 그 예민함을 볼모로 인내와 침묵을 강요받는지 폭로한다. 여기서 '시가폭력'이라는 명명은 가정 내의 그 폭력을 한낱 사적 갈등으로 축소하거나 피해자의 예민함 탓으로 호도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장은영은 홍콩 내 돌봄 이주노동자 '페이용'을 조명함으로써 "돌봄 사슬의 폭력" 속에서 "세계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여성 노동의 현실을 살펴본다. "시장과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돌봄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혁명적 실천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하인이거나 마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지금의 이 모순을 제대로 직면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서영인의 글은 '아버지를 죽이는 딸들'이 닿게 되는 죽음과 광기의 자리를 드러낸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을 아버지를 죽이는 '중전 조씨'의 서사로 재해석함으로써 "아버지들에 의해 모욕당한 딸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설득해낸다. 비록 "아버지를 죽이고서는 안녕할 수 없"다 해도, 그 욕망이 온전히 성취되지 못했다고 해도 "아버지를 실제로 죽이는 딸이 등장한 효과는 크다". "폭력과 권력의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통제당하는 딸들의 고통이 피해자의 것이었다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갖고자 하는 딸의 원한은 피해와 가해로 양분되지 않는 한 인간의 살아 있는 욕망 그 자체이다."
장은애는 제주 출신의 문제적 여성 작가 한림화의 〈매고일지〉에 등장하는 '빌네'라는 여성을 통해 '비정한 모성'이라는 수사에 깃든 역사성과 4·3 담론의 문제성을 성찰한다. 갓 난 자식과 자살한 빌네의 행위를 '비정한 모성'이라는 표식에 맞서, 4·3의 당위 자체(4·3을 관통하고 있는 이념의 지형이나 정치 역학)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창조적 결단"으로 다시 읽어낸다. 허윤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전해오던 환상의 섬 '이어도'에 대한 서사적 재현들을 일별하고 그 차이를 톺아보며 여성동성사회에 대한 상상력("마녀들의 섬")을 발굴한다. 다른 한편, 양윤의는 여성이 공동체(코무니타스)의 타자로 구성되고 배제/추방되는 메커니즘을 파고든다. 이는 외부 침입자인 병원체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근대의 방어적 면역체계(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정상성과 병리라는 이분법)에 바탕을 둔다. 나아가 이서수, 안보윤, 구병모의 소설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여성을 살펴보고 그 면역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융합과 포함과 혼입의 논리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헤테로무니타스'를 제안한다.
반란의 정치를 꾀하는 전복의 언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부에서는 남성의 언어를 배반하며 혐오를 전복하는 다채로운 여성 서사들이 소개된다. 김경연은 "교활한 남성성의 문학을 배반하며 광기의 서사를 창안했던" 정열의 작가 백신애와 우리 시대의 마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의 여성 노동자(다큐멘터리 〈마녀들의 카니발〉)를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이야기"를 발설하는 용감한 시도들을 조망한다. 최다영은 성노동과 성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 내부에서 어떻게 남성중심의 문법을 해체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지 다양한 경로로 모색한다. 이는 '창녀다움'의 전형적 이미지를 해체하며 "(여성혐오에 흔히 동원되는) 여성성의 규범을 흩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성노동자의 불처벌과 권리 보호를 말하는 일은 결코 다른 여성들에게 성노동을 권장하는 일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다른 한편, 심진경은 양귀자 소설의 리부트 현상을 통해 가부장을 미러링하는 여성 악당의 의미를 고찰한다. 특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초반에 등장하는 화법은 "아내에 대한 폭력과 여성혐오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남성들의 논리와 언어를 남성(들)에게 그대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메갈리안의 미러링과 닮아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여성 전사 캐릭터가 한국 여성 문학에 등장한 이유로 "여성에 대한 모든 억압과 폭력에 반대하는 반성폭력운동"이 폭발하던 1990년대의 시기적 맥락을 거론하면서도, 그 이후 더는 그러한 캐릭터가 출현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성현아의 글은 고통의 감각에 기반해 서로를 알아보는 여성연대의 가능성을 따라간다. 구체적으로 김이듬의 시를 통해 여성에 의한 여성험오가 아니라 '피 흘리는' 고통의 지점에서 연대하는 마녀-자매의 형상을 발견해낸다. 다수의 여성이 "마녀사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여성을 고발"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고 따라서 "여성연대의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존재한다. 여성들이 "누군가를 태우는 데 기여하고 나서도 여전히 언젠가 태워질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타는 고통과 피 흐르는 끈적한 감촉을 누구보다 선명히" 느끼는 이들은 "쏟아냈고 쏟아낼 피를 통해 자매로 나란히" 선다.
말할 수 없는 우리 마녀들-광녀들의 이야기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고
우리의 아픔에 대해서, 슬픔에 대해서, 기쁨에 대해서,
우리의 낭만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의 섹스에 대해서
우리의 성적 판타지에 대해서
우리의 몸에 대해서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세상에는 낙인의 이름이 존재한다. 마녀와 광녀(미친년) 역시 그중 하나다. 남성중심의 지배질서에 따라 구축된 근대 합리성은 이들을 낙인찍어 추방해왔다.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시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등 각종 텍스트를 빌려 마녀와 광녀로 불리우는 여성들의 탄생 과정을 낯설게 더듬어본다. 마녀는 어떻게 마녀가 되었는가? 미친년은 어떻게 미친년이 되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각종 문학·문화 텍스트들은 마녀와 광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는가? 그 서사들은 광기와 비정상성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또다시 억압하는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여성 비평가들의 에세이와 비평을 모은 이 앤솔러지는 그와 같은 화두들에 대한 응답이다. 이성의 질서에서조차 밀려난 '열등한 존재'로서 다루는 대신 "구체적인 이미지와 살아 있는 캐릭터로 작동하는 서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마녀"를 소환해낸다. 가부장제를 거역하며 목소리를 내는 여자가 마녀라면, 우리는 알고 있다. "용감한 마녀들의 도발적인 이야기가 세상을 바꾸었고 또 바꾸어갈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여성에게 세계는 언제나 밤이었다. 촉각이 곤두세워지는 밤의 세계에서 여성은 미친 자, 마녀가 되고, 어둠 속에서 발현되는 예민함은 곧 타자와 약자에 대해 생각하는 자리를 연다. 그리하여 이 글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차별받는 여성-소수자의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 어두운 밤으로부터 도착한 전복적 언어를 해독하는 일과 닿아 있음을 설득해낸다. 몸, 그러니까 "뜨겁게 살아 있는" 내장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우리 마녀들-광녀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세상에 발신한다.
마녀는 도처에 있다: 이야기 속의 마녀, 그리고 현실의 밑자리
1부는 다양한 텍스트를 거쳐 직조되어온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마녀 서사"를 좇는 박혜진의 글로 문을 연다. 얼룩 혹은 낙인의 역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 즉 "설명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여지"를 풍부한 마녀적 역량으로 채굴해내는 "살아 움직이는 오픈 사전" 같은 글이다. 이로써 그는 "새로운 세상의 마녀"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소환해내며, 독자들을 "마녀 만들기"에 동참시킨다.
파괴적인 마녀, 광기의 여성들에게 주목하면서도, 그 광기를 탄생시키는 현실의 밑자리를 깊숙이 파고드는 글들도 있다. 민가경의 글은 마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세계를 지켜낼 수 있는지, 한평생 미친년으로 살다 간 '이모'의 이야기를 전하는 조카 '나'의 시점에서 증언한다. "매섭게 쏘아붙여 아이를 울리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그녀는 자기 인생, 아니, 여자들의 인생에 화가 나 있었다. 싸울 줄 모르는 불행한 여자들, 불행이 불행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여자들을 향한 희숙의 분노와 슬픔은, 그 무게만큼이나 희숙을 괴팍해 보이게 만드는 비밀이 되었다." '이모'가 괴팍하고 억척스럽게 간직해왔던 그 비밀 위에서, 단지 그 둘만의 비밀이 아닌 그 비밀 위에서 조카는 계속해서 쓴다. 백지은의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 아나키〉를 통해 '로맨스'의 외피를 쓴 광기의 서사가 인도하는 삶의 진실을 들려준다. 자신을 뒤흔드는 "다른 삶의 가능성", 아직 잃지 못한 자기의 "씨앗"을 발견케 해주는 그 가능성 앞에서 "온몸이 휘청이고 영혼까지 흔들릴 때", 우리는 광기의 기울기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경수는 최영미의 시(〈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중심으로 여성시문학사의 의미를 탐구하고, 거기에 여성 연구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녀 혹은 광녀 탄생 실패담"으로 덧댄다. 자신을 너무 솔직해서 마녀나 광녀 같은 낙인을 얻게 되는 여성들과 달리 용기가 없어 "그런 낙인에서 겨우 벗어나게 된"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여성시문학사에서 마녀 혹은 광녀를 "제대로 호명"하고 "해석"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 정은경의 글은 오정희와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마녀 혹은 광녀의 다양한 형상을 탐색한다. 치정, 복수, 범죄 등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공식과 닮은 두 작가의 소설을 통해 "감정 과잉과 신파, 그리고 비현실성, 판타지가 여성 약자의 것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현실(근대 합리성의 남성적 질서)을 지적한다.
미친년은 왜 미친년이 되는가?: 일종의 탄생기
2부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여성의 광기'에 좀 더 천착하며 그 광기의 서사를 증식시키는 (암묵적인) 폭력의 자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2부의 문을 여는 전청림의 글은 임출육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운명을 그야말로 펄펄 끓는 '내장의 언어'로 써내려가며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섹슈얼리티의 현주소"를 강력한 언어로 체화한다. "젖은 팬티 안에 감춰져 있던" 내장(자궁)의 이야기를 "서투른 언어로나마" 꺼보내는 것은 "필터와 보호막 없이,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 없이 그대로 부딪쳐버리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전승민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얽힌 폭력의 자리에서 읽어낸다. 그의 독해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반규범성과 비독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역설의 자리, 즉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출발해 보편 인간이 지닌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이 뒤얽히는 폭력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윤리성을 띤다. "미치지 않은 이들은 '저들'이야말로 정말로 미쳤음을 그리고 그들 자신은 미치지 않았음을 폭로하기 위해 기꺼이 미친년의 자리에 앉는다. 이것이 바로 열정이 겪는 수난이다."
소영현의 글은 최근 한국소설에서 재현되는 '미친년'을 통해 여성들을 낙인찍는 사회문화적 권력을 파헤친다. 여성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을 문학은 어떠한 강도로 다루는가? 과연 문학은 그녀들의 고통과 결핍에 온전히 밀착할 수 있는가? 오히려 때로는 "한없이 '선량한' 채로 차별주의를 내내 반복하거나 부지불식간에 차별과 억압과 협오를 강화"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 일련의 질문들을 통해 그는 미친년을 타자로 낙인찍는 그 도구를 움켜쥠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좀 더 예리한 글쓰기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다. 한편, 황유지의 글은 학문의 장이 젠더 위계와 착종되고 얼크러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한 양상으로서 나타난 '자기서사 현상'을 대문자 체제에 맞선 소문자 '나'의 분출로 해석하고 있는 김은하는 거식증에 관한 자기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박채영)와 《삼키기 연습》(박지니)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거식증을 외모 강박의 문제가 아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발이자 반항"으로 읽자고 제안한다. "거식증의 광기는 스스로가 와해되는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아버지를 거세시키고자 하는 전환 히스테리로, 여성 당사자들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향해 표출하는 온몸의 항의다."
"예민한 너! 이 집안의 마녀일지어다"
3부에서는 딸, 엄마, 며느리 등 집안의 자리에서 혹은 그림자 노동의 자리에서 고투하며 가부장 질서를 교란하고, 초과와 잉여의 욕망을 드러내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미친 여자는 다락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돌봄에 지친 집안에도 그득한 것이다. 특히 '고부갈등'이라는 가부장제의 언어를 '시가폭력'으로 재명명하는 박다솜의 글은 결혼한 여성이 어째서 손쉽게 "예민한 마녀"의 누명을 쓰게 되는지, 어째서 그 예민함을 볼모로 인내와 침묵을 강요받는지 폭로한다. 여기서 '시가폭력'이라는 명명은 가정 내의 그 폭력을 한낱 사적 갈등으로 축소하거나 피해자의 예민함 탓으로 호도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장은영은 홍콩 내 돌봄 이주노동자 '페이용'을 조명함으로써 "돌봄 사슬의 폭력" 속에서 "세계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여성 노동의 현실을 살펴본다. "시장과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돌봄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혁명적 실천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하인이거나 마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지금의 이 모순을 제대로 직면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서영인의 글은 '아버지를 죽이는 딸들'이 닿게 되는 죽음과 광기의 자리를 드러낸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을 아버지를 죽이는 '중전 조씨'의 서사로 재해석함으로써 "아버지들에 의해 모욕당한 딸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설득해낸다. 비록 "아버지를 죽이고서는 안녕할 수 없"다 해도, 그 욕망이 온전히 성취되지 못했다고 해도 "아버지를 실제로 죽이는 딸이 등장한 효과는 크다". "폭력과 권력의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통제당하는 딸들의 고통이 피해자의 것이었다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갖고자 하는 딸의 원한은 피해와 가해로 양분되지 않는 한 인간의 살아 있는 욕망 그 자체이다."
장은애는 제주 출신의 문제적 여성 작가 한림화의 〈매고일지〉에 등장하는 '빌네'라는 여성을 통해 '비정한 모성'이라는 수사에 깃든 역사성과 4·3 담론의 문제성을 성찰한다. 갓 난 자식과 자살한 빌네의 행위를 '비정한 모성'이라는 표식에 맞서, 4·3의 당위 자체(4·3을 관통하고 있는 이념의 지형이나 정치 역학)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창조적 결단"으로 다시 읽어낸다. 허윤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전해오던 환상의 섬 '이어도'에 대한 서사적 재현들을 일별하고 그 차이를 톺아보며 여성동성사회에 대한 상상력("마녀들의 섬")을 발굴한다. 다른 한편, 양윤의는 여성이 공동체(코무니타스)의 타자로 구성되고 배제/추방되는 메커니즘을 파고든다. 이는 외부 침입자인 병원체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근대의 방어적 면역체계(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정상성과 병리라는 이분법)에 바탕을 둔다. 나아가 이서수, 안보윤, 구병모의 소설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여성을 살펴보고 그 면역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융합과 포함과 혼입의 논리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헤테로무니타스'를 제안한다.
반란의 정치를 꾀하는 전복의 언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부에서는 남성의 언어를 배반하며 혐오를 전복하는 다채로운 여성 서사들이 소개된다. 김경연은 "교활한 남성성의 문학을 배반하며 광기의 서사를 창안했던" 정열의 작가 백신애와 우리 시대의 마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의 여성 노동자(다큐멘터리 〈마녀들의 카니발〉)를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이야기"를 발설하는 용감한 시도들을 조망한다. 최다영은 성노동과 성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 내부에서 어떻게 남성중심의 문법을 해체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지 다양한 경로로 모색한다. 이는 '창녀다움'의 전형적 이미지를 해체하며 "(여성혐오에 흔히 동원되는) 여성성의 규범을 흩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성노동자의 불처벌과 권리 보호를 말하는 일은 결코 다른 여성들에게 성노동을 권장하는 일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다른 한편, 심진경은 양귀자 소설의 리부트 현상을 통해 가부장을 미러링하는 여성 악당의 의미를 고찰한다. 특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초반에 등장하는 화법은 "아내에 대한 폭력과 여성혐오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남성들의 논리와 언어를 남성(들)에게 그대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메갈리안의 미러링과 닮아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여성 전사 캐릭터가 한국 여성 문학에 등장한 이유로 "여성에 대한 모든 억압과 폭력에 반대하는 반성폭력운동"이 폭발하던 1990년대의 시기적 맥락을 거론하면서도, 그 이후 더는 그러한 캐릭터가 출현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성현아의 글은 고통의 감각에 기반해 서로를 알아보는 여성연대의 가능성을 따라간다. 구체적으로 김이듬의 시를 통해 여성에 의한 여성험오가 아니라 '피 흘리는' 고통의 지점에서 연대하는 마녀-자매의 형상을 발견해낸다. 다수의 여성이 "마녀사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여성을 고발"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고 따라서 "여성연대의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존재한다. 여성들이 "누군가를 태우는 데 기여하고 나서도 여전히 언젠가 태워질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타는 고통과 피 흐르는 끈적한 감촉을 누구보다 선명히" 느끼는 이들은 "쏟아냈고 쏟아낼 피를 통해 자매로 나란히" 선다.
목차
목차
들어가는 말 밤들을 세며 - 7
1부 마녀를 위한 변론
마녀 사전 | 박혜진 - 19
여성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 | 이경수 - 27
회숙 | 민가경 - 37
광기의 기울기 | 백지은 - 49
젠더의 우울과 초과하는 여성들 | 정은경 - 58
2부 미친년들의 이야기
젖은 팬티 | 전청림 - 81
침묵학습 | 황유지 - 92
이종 교배와 광기의 전염사 | 전승민 - 105
미친년에 관한 문학적 클리셰, 또는 미쳤다는 것의 젠더에 대하여 | 소영현 - 117
일인칭 글쓰기의 부상과 저자가 된 젊고 아픈/미친 여자들 | 김은하 - 136
3부 집안의 마녀들
아버지를 죽이는 딸들 | 서영인 - 155
예민한 너, 이 집의 마녀일지어다! | 박다솜 - 166
하인이거나 마녀이거나 | 장은영 - 173
상투성을 파괴하는 '비정한 모성'의 불길 | 장은애 - 184
마녀들의 섬 | 허윤 - 198
마녀, 광녀, 그리고 병원체로서의 여성 | 양윤의 - 214
4부 반란의 정치
불온한 여자들의 광기와 접속하고 페미니즘에 스며들다 | 김경연 - 231
스포티한 차림의 성노동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최다영 - 240
피 흘리며 자매가 된 마녀들 | 성현아 - 252
이성애주의의 덫에 걸린 미러링과 반섹시즘? | 심진경 - 264
저자 소개 - 283
1부 마녀를 위한 변론
마녀 사전 | 박혜진 - 19
여성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 | 이경수 - 27
회숙 | 민가경 - 37
광기의 기울기 | 백지은 - 49
젠더의 우울과 초과하는 여성들 | 정은경 - 58
2부 미친년들의 이야기
젖은 팬티 | 전청림 - 81
침묵학습 | 황유지 - 92
이종 교배와 광기의 전염사 | 전승민 - 105
미친년에 관한 문학적 클리셰, 또는 미쳤다는 것의 젠더에 대하여 | 소영현 - 117
일인칭 글쓰기의 부상과 저자가 된 젊고 아픈/미친 여자들 | 김은하 - 136
3부 집안의 마녀들
아버지를 죽이는 딸들 | 서영인 - 155
예민한 너, 이 집의 마녀일지어다! | 박다솜 - 166
하인이거나 마녀이거나 | 장은영 - 173
상투성을 파괴하는 '비정한 모성'의 불길 | 장은애 - 184
마녀들의 섬 | 허윤 - 198
마녀, 광녀, 그리고 병원체로서의 여성 | 양윤의 - 214
4부 반란의 정치
불온한 여자들의 광기와 접속하고 페미니즘에 스며들다 | 김경연 - 231
스포티한 차림의 성노동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최다영 - 240
피 흘리며 자매가 된 마녀들 | 성현아 - 252
이성애주의의 덫에 걸린 미러링과 반섹시즘? | 심진경 - 264
저자 소개 - 283
저자
저자
김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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