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선생 일화집(1956 초판본)(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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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6년 대한민주여론협회에서 발행한 金乙漢 저 [월남선생일화집(月南先生逸話集)] 단책으로 월남 이상재선생의 일화와 다수의 사진 자료등을 수록한 책입니다.
영원한 청년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은 세계열강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려고 각출을 벌이던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과 YMCA 운동을 통해서 민족을 계몽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의 진로를 개척하는 데 앞장선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자 스승이십니다. 선생께서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탄핵하다 음모로 인해 옥고를 치르셨으며 이때 처음 성경을 접하시면서,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셨고, 최초의 한국인 YMCA 총무로서 나라를 잃고 방화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길을 밝게 열어주는 등불이 되어 독립의 초석이 되셨습니다.
선생께서 일제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전개하셨던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시대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신 강직한 성품과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따듯한 동포애는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길잡이가 됨은 물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한국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 특히 남북분단의 세월을 딛고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하는 우리들은 선생의 민족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하겠지만 앞선 것을 배우고 믿음대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선생의 삶을 기리는 것이야 말로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본관 한산(韓山). 호 월남(月南). 본명 계호(季皓). 충청남도 서천(舒川)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서울에서 박정양 (朴定陽)과 사귀어 l0여 년 간 그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다가, 1881년 그가 신사유람단 (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갈 때 그의 수행원이 되어 도일(渡日), 동행하였던 홍영식 (洪英植)· 김옥균 (金玉均) 등과 깊이 사귀었다. 1884년 우정국 총판(郵政局總辦) 홍영식의 권유로 우정국 주사(主事)가 되어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갑신정변 (甲申政變) 후 낙향하였다.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駐美公使)에 임명되자 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였으나, 청나라 의 압력으로 이듬해 사신 일행과 함께 귀국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박정양이 내무독판(內務督辦)이 되자 우부승지 (右副承旨) 겸 경연참찬(經筵參贊)이 되었고, 이어 학무아문참의(學務衙門參議)로 학무국장(學務局長)을 겸임하면서 신교육령(新敎育令)을 반포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895년 학부참사관(學部參事官)·법부참사관(法部參事官)을 지내고, 1896년 국어학교 교장·내각총서(內閣總書) 및 중추원 1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을 거쳐 의정부 (議政府) 총무국장이 되었다. 서재필 (徐載弼) 등과 독립협회 를 조직,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를 개최하고, 1898년 독립협회사건 으로 구금되었다가 10일 후 석방되어 의정부 총무국장을 사임하였다. 1902년 개혁당(改革黨)사건으로 3년간 복역하는 동안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에서 일본이 이기자 특사로 출옥, 1905년 의정부참찬(參贊)에 임명되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 준비차 내밀히 한규설 (韓圭卨)· 이상설 (李相卨)의 집을 왕래하던 중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2개월 후 석방되었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황성기독교청년회 (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하던 중 3·1운동에 민족대표 로 참여교섭을 받았으나 참가를 거부하였다.
1921년 조선교육협회 ( 朝鮮敎育協會) 회장이 되어 베이징 [北京]에서 열린 만국기독교청년연합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 후 1923년 소년연합척후대(少年聯合斥候隊: 보이스카우트 ) 초대 총재가 되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朝鮮日報社) 사장에 취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新幹會)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 (社會葬)으로 집행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영원한 청년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은 세계열강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려고 각출을 벌이던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과 YMCA 운동을 통해서 민족을 계몽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의 진로를 개척하는 데 앞장선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자 스승이십니다. 선생께서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탄핵하다 음모로 인해 옥고를 치르셨으며 이때 처음 성경을 접하시면서,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셨고, 최초의 한국인 YMCA 총무로서 나라를 잃고 방화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길을 밝게 열어주는 등불이 되어 독립의 초석이 되셨습니다.
선생께서 일제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전개하셨던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시대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신 강직한 성품과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따듯한 동포애는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길잡이가 됨은 물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한국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 특히 남북분단의 세월을 딛고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하는 우리들은 선생의 민족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하겠지만 앞선 것을 배우고 믿음대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선생의 삶을 기리는 것이야 말로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본관 한산(韓山). 호 월남(月南). 본명 계호(季皓). 충청남도 서천(舒川)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서울에서 박정양 (朴定陽)과 사귀어 l0여 년 간 그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다가, 1881년 그가 신사유람단 (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갈 때 그의 수행원이 되어 도일(渡日), 동행하였던 홍영식 (洪英植)· 김옥균 (金玉均) 등과 깊이 사귀었다. 1884년 우정국 총판(郵政局總辦) 홍영식의 권유로 우정국 주사(主事)가 되어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갑신정변 (甲申政變) 후 낙향하였다.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駐美公使)에 임명되자 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였으나, 청나라 의 압력으로 이듬해 사신 일행과 함께 귀국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박정양이 내무독판(內務督辦)이 되자 우부승지 (右副承旨) 겸 경연참찬(經筵參贊)이 되었고, 이어 학무아문참의(學務衙門參議)로 학무국장(學務局長)을 겸임하면서 신교육령(新敎育令)을 반포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895년 학부참사관(學部參事官)·법부참사관(法部參事官)을 지내고, 1896년 국어학교 교장·내각총서(內閣總書) 및 중추원 1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을 거쳐 의정부 (議政府) 총무국장이 되었다. 서재필 (徐載弼) 등과 독립협회 를 조직,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를 개최하고, 1898년 독립협회사건 으로 구금되었다가 10일 후 석방되어 의정부 총무국장을 사임하였다. 1902년 개혁당(改革黨)사건으로 3년간 복역하는 동안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에서 일본이 이기자 특사로 출옥, 1905년 의정부참찬(參贊)에 임명되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 준비차 내밀히 한규설 (韓圭卨)· 이상설 (李相卨)의 집을 왕래하던 중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2개월 후 석방되었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황성기독교청년회 (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하던 중 3·1운동에 민족대표 로 참여교섭을 받았으나 참가를 거부하였다.
1921년 조선교육협회 ( 朝鮮敎育協會) 회장이 되어 베이징 [北京]에서 열린 만국기독교청년연합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 후 1923년 소년연합척후대(少年聯合斥候隊: 보이스카우트 ) 초대 총재가 되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朝鮮日報社) 사장에 취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新幹會)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 (社會葬)으로 집행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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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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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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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이상재
월남(月南) 이상재(1850.10.26.-1927.3.29)
개항기 때, 중추원1등의관, 내각총무국장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YMCA 전국연합회회장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끈 관료 · 개신교인 · 독립운동가.
유저로는 논문집 『청년이여』를 비롯하여 『청년위국가지기초(靑年爲國家之基礎)』·『진평화(眞平和)』·『경고동아일보집필지우자(警告東亞日報執筆智愚者)』·『청년회문답』과 『상정부서(上政府書)』 제1·2, 『독립문건설소(獨立門建設疏)』 등 다수가 있다.
풍자와 기지가 넘쳐 차원 높은 해학으로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순화시켰고, 악독한 일제의 침략과 불의를 날카로운 풍자와 경구로써 제어하였다.
사망한 해인 1927년 4월 7일 사상초유의 성대한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한산 선영에 안치되었다. 195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로 이장되었다. 신도비(神道碑) 비문은 정인보(鄭寅普)가 지었으며, 묘비(墓碑)의 비문은 변영로(卞榮魯)가 지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개항기 때, 중추원1등의관, 내각총무국장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YMCA 전국연합회회장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끈 관료 · 개신교인 · 독립운동가.
유저로는 논문집 『청년이여』를 비롯하여 『청년위국가지기초(靑年爲國家之基礎)』·『진평화(眞平和)』·『경고동아일보집필지우자(警告東亞日報執筆智愚者)』·『청년회문답』과 『상정부서(上政府書)』 제1·2, 『독립문건설소(獨立門建設疏)』 등 다수가 있다.
풍자와 기지가 넘쳐 차원 높은 해학으로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순화시켰고, 악독한 일제의 침략과 불의를 날카로운 풍자와 경구로써 제어하였다.
사망한 해인 1927년 4월 7일 사상초유의 성대한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한산 선영에 안치되었다. 195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로 이장되었다. 신도비(神道碑) 비문은 정인보(鄭寅普)가 지었으며, 묘비(墓碑)의 비문은 변영로(卞榮魯)가 지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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