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대중음악사
가요쿄쿠 시대에서 케이팝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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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3회 일본 '음악책대상音?本大賞' 대상★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음악-정치-사회를 하나의 선으로 엮은
한일 대중음악의 초국가적 교류사
케이팝과 제이팝, 아이돌과 아이도루, 트로트와 엔카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음악세계는
어떻게 상호 참조하고 충돌하며 변화했을까?
개방과 금지, 열광과 반목, 동경과 경쟁
경계 위에 세워진 한일 대중음악사
이 책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도쿄돔에서 1980년대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던 장면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 노래가 일본을 강타했을 때, 한국의 청년들은 국가 검열 아래 일본 가요를 몰래 들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 대중음악을 재현한 무대는 수십 년간 축적된 한일관계의 기억을 새롭게 환기했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성이라는 지정학적 조건 위에 사물, 사건, 사람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뒤섞여왔다. 한일 음악산업 또한 경계를 넘거나, 강화하거나, 침식해왔으며 오랜 역사와 선입견은 서로를 향한 금지와 배제로 표면화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성민은 『일본을 禁하다』 『케이팝의 작은 역사』에 이어, 이런 한일의 특수한 관계성을 파악하기 위한 매개로서 '음악'을 꺼내든다. 과거 금지와 배제의 대상이었던 일본음악을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이 다시 부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개방과 금지, 열광과 반목, 동경과 경쟁"으로 갈라지던 음악산업은 어떻게 상호 참조하며 한데 뒤섞이게 되었을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존재는 언제 새로이 부상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지난 70년의 대중음악사를 톺아본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던 1965년과 일본이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으로 부상했던 1970년대, 일본 음악시장이 '가요쿄쿠' 중심 체계에서 '제이팝'으로 옮겨간 1980년대를 거쳐 한일 간 음악적 차이가 뚜렷해진 1990년대, 그리고 마침내 '한류 붐'을 계기로 케이팝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0년대부터 2020년 전후까지 대중음악의 변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음악과 음악인을 소개한다. 또한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존재감을 갖춘 대중이 시기마다 음악산업에 끼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정치-사회-문화를 관통해 떠오르는 대중의 욕망을 관찰한다.
저자는 이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인식=카테고리'를 제시한다. 음악에 대해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카테고리'는 이 책에서 인식의 틀로 뜻을 넓힌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카테고리는 같은 종류에 속하는 부류 또는 구분을 뜻하며, 소비자는 음악 차트 또는 음반 매장에서 카테고리를 지도 삼아 선호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음악과 음악 사이의 위계, 차이, 경계를 암묵적으로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즉 어떤 음악을 장르로서 구획하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다른 '타자'를 인식하고, 사회적 경계를 정비하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가령 트로트와 엔카, 케이팝과 제이팝, 아이돌과 아이도루처럼 한국과 일본의 음악시장에서도 '자기다움'과 '타자성'을 조정하는 협상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세계를 구성해왔다. 경계가 재편될 때마다 대중이 음악을 감각하는 구조 또한 함께 변화했으며, 음악과 대중 사이의 밀접한 연결 고리는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따라서 음악의 역사란 정치, 사회, 문화가 얽히며 작동하는 대중사와 다르지 않을뿐더러, 음악사를 읽는 것은 지금 이곳의 대중의 욕망을 읽는 것과 같다.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음악-정치-사회를 하나의 선으로 엮은
한일 대중음악의 초국가적 교류사
케이팝과 제이팝, 아이돌과 아이도루, 트로트와 엔카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음악세계는
어떻게 상호 참조하고 충돌하며 변화했을까?
개방과 금지, 열광과 반목, 동경과 경쟁
경계 위에 세워진 한일 대중음악사
이 책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도쿄돔에서 1980년대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던 장면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 노래가 일본을 강타했을 때, 한국의 청년들은 국가 검열 아래 일본 가요를 몰래 들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 대중음악을 재현한 무대는 수십 년간 축적된 한일관계의 기억을 새롭게 환기했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성이라는 지정학적 조건 위에 사물, 사건, 사람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뒤섞여왔다. 한일 음악산업 또한 경계를 넘거나, 강화하거나, 침식해왔으며 오랜 역사와 선입견은 서로를 향한 금지와 배제로 표면화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성민은 『일본을 禁하다』 『케이팝의 작은 역사』에 이어, 이런 한일의 특수한 관계성을 파악하기 위한 매개로서 '음악'을 꺼내든다. 과거 금지와 배제의 대상이었던 일본음악을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이 다시 부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개방과 금지, 열광과 반목, 동경과 경쟁"으로 갈라지던 음악산업은 어떻게 상호 참조하며 한데 뒤섞이게 되었을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존재는 언제 새로이 부상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지난 70년의 대중음악사를 톺아본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던 1965년과 일본이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으로 부상했던 1970년대, 일본 음악시장이 '가요쿄쿠' 중심 체계에서 '제이팝'으로 옮겨간 1980년대를 거쳐 한일 간 음악적 차이가 뚜렷해진 1990년대, 그리고 마침내 '한류 붐'을 계기로 케이팝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0년대부터 2020년 전후까지 대중음악의 변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음악과 음악인을 소개한다. 또한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존재감을 갖춘 대중이 시기마다 음악산업에 끼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정치-사회-문화를 관통해 떠오르는 대중의 욕망을 관찰한다.
저자는 이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인식=카테고리'를 제시한다. 음악에 대해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카테고리'는 이 책에서 인식의 틀로 뜻을 넓힌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카테고리는 같은 종류에 속하는 부류 또는 구분을 뜻하며, 소비자는 음악 차트 또는 음반 매장에서 카테고리를 지도 삼아 선호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음악과 음악 사이의 위계, 차이, 경계를 암묵적으로 (재)인식하는 과정이다. 즉 어떤 음악을 장르로서 구획하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다른 '타자'를 인식하고, 사회적 경계를 정비하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가령 트로트와 엔카, 케이팝과 제이팝, 아이돌과 아이도루처럼 한국과 일본의 음악시장에서도 '자기다움'과 '타자성'을 조정하는 협상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세계를 구성해왔다. 경계가 재편될 때마다 대중이 음악을 감각하는 구조 또한 함께 변화했으며, 음악과 대중 사이의 밀접한 연결 고리는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따라서 음악의 역사란 정치, 사회, 문화가 얽히며 작동하는 대중사와 다르지 않을뿐더러, 음악사를 읽는 것은 지금 이곳의 대중의 욕망을 읽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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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검열과 월경, 도쿄와 서구, 한류와 일류
한일 대중음악을 움직이는 욕망들
대중이 다양한 음악을 스스로 선택하여 취하고 문화를 선도하는 지금, 대중을 제외하고는 음악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다만 대중을 들여다보고 그 욕망을 읽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규범적 틀 안에서 파악하지 않고, 모순과 갈등으로 짜인 역사를 재조명하여 한일이라는 이항 대립에 저항하는 다층적인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한일의 역사에서도 국가와 대중의 욕망이 가장 복잡하고 여실하게 투영된 현장을 꼽는다면 '왜색 금지'를 위시한 검열의 현장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일본과 한국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면, 한국에서는 탈식민주의의 도래와 함께 자기만의 문화를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이때 일본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탈피해야 마땅한 것이자 한국 고유의 문화가 태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의 엔카와 음악적 유사성을 띤 트로트는 박정희 정권이 손쉽게 '왜색 가요'라 낙인찍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노래마저 '왜색'을 이유로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주도하여 향유하던 록과 포크에서도 정치적 차원인 금지의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미국음악에서 비롯한 록, 저항 현장에서 부르곤 하던 포크는 당시 대중의 욕망을 가감 없이 반영했고, 어김없이 국가에 검열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욕망이 대중의 욕망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대중은 일본의 가요쿄쿠에서도 현대성을 강조한 장르인 제이팝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버블 경제 전후에 등장한 제이팝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성장했다. 일본은 도쿄를 기반으로 한 아시안 팝과 제이팝을 연결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갔다. 그리고 제이팝이 미리 닦은 기술, 문화적 토대 위에서 케이팝 또한 모방과 참조를 거듭하며 그만의 특색을 갖추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케이팝은 아시아 대중이 이제 도쿄를 넘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를 향한 욕망을 흡수하며 점차 일본음악 하위에 속하던 범주에서 벗어난다. 1990년대 이후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일본의 청년들은 이제 한국음악을 '한국 엔카'로 취급하던 인식=카테고리에서 벗어나 그 외의 한국음악을 접하고, 이런 관심은 독특한 한국어 랩을 선보이는 힙합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향한 주목으로 이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음악에서 친숙한 것을 찾으려는 일본의 욕망과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제이팝 아이돌과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케이팝 아이돌의 원형이 된다.
냉전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의 문화적 질서도 크게 변했다. 일본이 정체성의 해체를 겪고 있는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앞서 태동하던 한국 아이돌은 H.O.T.를 필두로 한국의 음악산업을 주도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열렬히 호응하며 비로소 '한류 붐'이 일어난다. 한류 붐은 세계정치가 변모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대중과 한국 팝의 욕망이 정확히 겹쳐 탄생한 현상이었다. 이는 한일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음악산업의 자본 규모에서 큰 격차를 보였지만 한류 붐을 계기로 과거와 달리 대등한 협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협업으로 탄생한 보아는 일본 팬은 물론 한국 팬의 욕망까지 충족시키며 새로운 한일음악 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케이팝은 과거 한국음악이 일본의 종속으로 취급되었던 것과는 달리 제이팝과는 완전히 분리되며 '자기'와 '타자'의 인식을 새롭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카라, 소녀시대, 트와이스로 이어지는 케이팝은 글로벌한 대중의 욕망을 흡수하며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음악만큼 중요했던 것이 미디어와 플랫폼의 변화였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가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가능하게 했고 케이팝은 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케이팝은 자본과 대중의 욕망이 결합하는 플랫폼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며 이를 중심으로 팬덤을 결집시켰다. 오늘날 케이팝은 국가를 넘어 글로벌 진출과 문화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왜색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대중의 인식을 제약하던 시대를 지나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 대중가요를 열창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사를 움직인 '지금-여기의 욕망'은 1970년대 일본에서부터 시작해 2020년대 한국 케이팝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선을 그렸다.
이 책이 출간되는 오늘날까지도 케이팝 음악을 향한 인식=카테고리는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다. 미국 그래미 어워드가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 것에 대해 BTS는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번 그래미에 앨범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래미의 이런 행보는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케이팝을 포함해 아시아 음악의 영향력을 경계한 서구 중심적인 태도라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거듭 말하고자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한일 음악산업은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한 맥락에서 인식되고 경계 지어진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 생산과 소비 등 다양한 주체의 욕망을 다단하게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를 통해 음악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대중음악이란 지도를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일 대중음악을 움직이는 욕망들
대중이 다양한 음악을 스스로 선택하여 취하고 문화를 선도하는 지금, 대중을 제외하고는 음악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다만 대중을 들여다보고 그 욕망을 읽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규범적 틀 안에서 파악하지 않고, 모순과 갈등으로 짜인 역사를 재조명하여 한일이라는 이항 대립에 저항하는 다층적인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한일의 역사에서도 국가와 대중의 욕망이 가장 복잡하고 여실하게 투영된 현장을 꼽는다면 '왜색 금지'를 위시한 검열의 현장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일본과 한국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면, 한국에서는 탈식민주의의 도래와 함께 자기만의 문화를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이때 일본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탈피해야 마땅한 것이자 한국 고유의 문화가 태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의 엔카와 음악적 유사성을 띤 트로트는 박정희 정권이 손쉽게 '왜색 가요'라 낙인찍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노래마저 '왜색'을 이유로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주도하여 향유하던 록과 포크에서도 정치적 차원인 금지의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미국음악에서 비롯한 록, 저항 현장에서 부르곤 하던 포크는 당시 대중의 욕망을 가감 없이 반영했고, 어김없이 국가에 검열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욕망이 대중의 욕망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대중은 일본의 가요쿄쿠에서도 현대성을 강조한 장르인 제이팝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버블 경제 전후에 등장한 제이팝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성장했다. 일본은 도쿄를 기반으로 한 아시안 팝과 제이팝을 연결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갔다. 그리고 제이팝이 미리 닦은 기술, 문화적 토대 위에서 케이팝 또한 모방과 참조를 거듭하며 그만의 특색을 갖추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케이팝은 아시아 대중이 이제 도쿄를 넘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를 향한 욕망을 흡수하며 점차 일본음악 하위에 속하던 범주에서 벗어난다. 1990년대 이후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일본의 청년들은 이제 한국음악을 '한국 엔카'로 취급하던 인식=카테고리에서 벗어나 그 외의 한국음악을 접하고, 이런 관심은 독특한 한국어 랩을 선보이는 힙합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향한 주목으로 이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음악에서 친숙한 것을 찾으려는 일본의 욕망과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제이팝 아이돌과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케이팝 아이돌의 원형이 된다.
냉전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의 문화적 질서도 크게 변했다. 일본이 정체성의 해체를 겪고 있는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앞서 태동하던 한국 아이돌은 H.O.T.를 필두로 한국의 음악산업을 주도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열렬히 호응하며 비로소 '한류 붐'이 일어난다. 한류 붐은 세계정치가 변모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대중과 한국 팝의 욕망이 정확히 겹쳐 탄생한 현상이었다. 이는 한일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음악산업의 자본 규모에서 큰 격차를 보였지만 한류 붐을 계기로 과거와 달리 대등한 협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협업으로 탄생한 보아는 일본 팬은 물론 한국 팬의 욕망까지 충족시키며 새로운 한일음악 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케이팝은 과거 한국음악이 일본의 종속으로 취급되었던 것과는 달리 제이팝과는 완전히 분리되며 '자기'와 '타자'의 인식을 새롭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카라, 소녀시대, 트와이스로 이어지는 케이팝은 글로벌한 대중의 욕망을 흡수하며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음악만큼 중요했던 것이 미디어와 플랫폼의 변화였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가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가능하게 했고 케이팝은 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케이팝은 자본과 대중의 욕망이 결합하는 플랫폼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며 이를 중심으로 팬덤을 결집시켰다. 오늘날 케이팝은 국가를 넘어 글로벌 진출과 문화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왜색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대중의 인식을 제약하던 시대를 지나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 대중가요를 열창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사를 움직인 '지금-여기의 욕망'은 1970년대 일본에서부터 시작해 2020년대 한국 케이팝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선을 그렸다.
이 책이 출간되는 오늘날까지도 케이팝 음악을 향한 인식=카테고리는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다. 미국 그래미 어워드가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 것에 대해 BTS는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번 그래미에 앨범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래미의 이런 행보는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케이팝을 포함해 아시아 음악의 영향력을 경계한 서구 중심적인 태도라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거듭 말하고자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한일 음악산업은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한 맥락에서 인식되고 경계 지어진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 생산과 소비 등 다양한 주체의 욕망을 다단하게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를 통해 음악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대중음악이란 지도를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여는 말
1부 가요쿄쿠의 시대
1장 엔카와 트로트의 탄생, 음악 없는 '한일 국교 정상화'-이미자 〈동백아가씨〉와 왜색 금지
한일 국교 정상화와 〈동백아가씨〉 | 엔카의 탄생-'미국적인 것'과 '전후'를 둘러싼 투쟁 | 트로트와 왜색 가요-'종속'과 '해방' 사이 | '왜색'이란 무엇인가 | 음악 검열로서의 왜색 가요론
2장 음악 대국 일본에 대한 욕망-한일 록뮤직과 야마하 「세계가요제」
음악 대국이 된 일본 | 일본어 록과 한국어 록의 탄생과 어긋남 | 한일의 청년들은 왜 만나지 못했는가 | '한국 가요'의 확립과 일본의 음악적 영향 | 일본의 「세계가요제」와 한국 가요의 국제화
3장 한국 엔카의 탄생과 민주화 전야-이성애, 요시야 준, 조용필의 일본 진출
이성애의 〈가슴 아프게〉와 한국 가요 붐 | '길옥윤'과 '요시야 준'의 사이 | 조용필의 '한국 엔카' | 조선적인 것의 파괴 | 왜색이라는 인식=카테고리-히라오카 마사아키가 본 한국
2부 제이팝의 시대
4장 제이팝 일극화와 아시안 팝-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한국 팝
제이팝의 탄생과 한국 엔카의 쇠퇴 | 아시안 팝을 둘러싼 욕망 | 한국어 랩이 던진 이질성 | '아이돌' 개념의 어긋남 | 일본이라는 필터와 한국음악의 진정성
5장 금지와 개방의 중간 지점-티 스퀘어에서 엑스 재팬까지
'해방과 개방'의 시대로서 1990년대 | 티 스퀘어와 카시오페아의 사운드 | '표절 논쟁'과 '금지'로부터의 해방 | '대중'을 가시화한 '엑스 재팬 붐' | 테크노 뽕짝으로 본 해방과 개방
6장 동아시아의 문화 권력을 바꾼 케이팝-한국형 아이돌의 탄생
일본과 아시아 사이의 장벽 | 동아시아의 한류와 케이팝 아이돌 1세대-H.O.T.의 충격 | 케이팝 아이돌의 세계관-일본 아이돌과의 비교 | 욕망의 공유-SM과 에이벡스의 협업 | 보아에서 시작된 일본 케이팝 역사
3부 케이팝의 시대
7장 '제이팝 개방'과 2000년대 한일 간의 마찰-차게 앤 아스카, 아무로 나미에, 아라시, 그리고 시부야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차게 앤 아스카의 방한 공연 | 제이팝 해금-아무로 나미에와 아라시의 상륙 | 시부야계와 홍대-'작은 한일'의 움직임 | 왜 '일류'는 일어나지 않았는가-현지화 전략의 부재 | 왜 '일류'는 일어나지 않았는가-금지의 유지와 트렌드의 변화
8장 제이팝과 케이팝의 갈림길-카라, 소녀시대, 트와이스가 바꾼 질서
케이팝이 일으킨 정체성의 움직임 | 2010~2011년의 케이팝 붐 | '코리안 인베이전'의 중층 | 걸그룹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어긋남 | 트와이스가 가져온 '이동'의 전환
9장 팝의 꿈-BTS 현상과 시티팝 붐
BTS가 도달한 '아메리카' | 글로벌 팬덤이 보여준 한일의 초월 | 시티팝 붐이 체현하는 '아메리카'와 '도쿄' | '플랫폼'으로서의 케이팝 | 팝과 한일의 궤적
맺음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여는 말
1부 가요쿄쿠의 시대
1장 엔카와 트로트의 탄생, 음악 없는 '한일 국교 정상화'-이미자 〈동백아가씨〉와 왜색 금지
한일 국교 정상화와 〈동백아가씨〉 | 엔카의 탄생-'미국적인 것'과 '전후'를 둘러싼 투쟁 | 트로트와 왜색 가요-'종속'과 '해방' 사이 | '왜색'이란 무엇인가 | 음악 검열로서의 왜색 가요론
2장 음악 대국 일본에 대한 욕망-한일 록뮤직과 야마하 「세계가요제」
음악 대국이 된 일본 | 일본어 록과 한국어 록의 탄생과 어긋남 | 한일의 청년들은 왜 만나지 못했는가 | '한국 가요'의 확립과 일본의 음악적 영향 | 일본의 「세계가요제」와 한국 가요의 국제화
3장 한국 엔카의 탄생과 민주화 전야-이성애, 요시야 준, 조용필의 일본 진출
이성애의 〈가슴 아프게〉와 한국 가요 붐 | '길옥윤'과 '요시야 준'의 사이 | 조용필의 '한국 엔카' | 조선적인 것의 파괴 | 왜색이라는 인식=카테고리-히라오카 마사아키가 본 한국
2부 제이팝의 시대
4장 제이팝 일극화와 아시안 팝-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한국 팝
제이팝의 탄생과 한국 엔카의 쇠퇴 | 아시안 팝을 둘러싼 욕망 | 한국어 랩이 던진 이질성 | '아이돌' 개념의 어긋남 | 일본이라는 필터와 한국음악의 진정성
5장 금지와 개방의 중간 지점-티 스퀘어에서 엑스 재팬까지
'해방과 개방'의 시대로서 1990년대 | 티 스퀘어와 카시오페아의 사운드 | '표절 논쟁'과 '금지'로부터의 해방 | '대중'을 가시화한 '엑스 재팬 붐' | 테크노 뽕짝으로 본 해방과 개방
6장 동아시아의 문화 권력을 바꾼 케이팝-한국형 아이돌의 탄생
일본과 아시아 사이의 장벽 | 동아시아의 한류와 케이팝 아이돌 1세대-H.O.T.의 충격 | 케이팝 아이돌의 세계관-일본 아이돌과의 비교 | 욕망의 공유-SM과 에이벡스의 협업 | 보아에서 시작된 일본 케이팝 역사
3부 케이팝의 시대
7장 '제이팝 개방'과 2000년대 한일 간의 마찰-차게 앤 아스카, 아무로 나미에, 아라시, 그리고 시부야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차게 앤 아스카의 방한 공연 | 제이팝 해금-아무로 나미에와 아라시의 상륙 | 시부야계와 홍대-'작은 한일'의 움직임 | 왜 '일류'는 일어나지 않았는가-현지화 전략의 부재 | 왜 '일류'는 일어나지 않았는가-금지의 유지와 트렌드의 변화
8장 제이팝과 케이팝의 갈림길-카라, 소녀시대, 트와이스가 바꾼 질서
케이팝이 일으킨 정체성의 움직임 | 2010~2011년의 케이팝 붐 | '코리안 인베이전'의 중층 | 걸그룹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어긋남 | 트와이스가 가져온 '이동'의 전환
9장 팝의 꿈-BTS 현상과 시티팝 붐
BTS가 도달한 '아메리카' | 글로벌 팬덤이 보여준 한일의 초월 | 시티팝 붐이 체현하는 '아메리카'와 '도쿄' | '플랫폼'으로서의 케이팝 | 팝과 한일의 궤적
맺음말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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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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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도쿄대학 학제정보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원 교수로 지내며 미디어문화, 음악사회학,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여러 책과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에서는 『케이팝의 작은 역사』 『일본을 禁하다』 『노래하는 아시아』(공저) 등을 펴냈다. 옮긴 책으로는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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