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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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텍스트의 경계를 허물며 '비교'하는 행위는
인간의 감각을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가
작품의 접힌 면들을 펼침으로써 관점을 바꾸고
삶을 전도시킬 만한 순간을 발견하는 읽기와 보기
영화는 밤이다. 어두운 곳에서 시각과 청각으로 펼쳐지는 그 세계는 낮의 텍스트가 다른 형식을 빌려 제 몸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밤과 책』은 영화와 그 모태가 된 원작(소설, 희곡) 스물세 편을 다룬다. 여기 실린 글들은 스크린과 텍스트의 경계를 지우면서 비교하는 행위가 독자-관객의 감각을 어떻게 극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원작과 영화를 여러 번 다시 읽고 보면서 접힌 면들을 펼쳐 작품을 보는 시선을 광활하게 만들고, 삶을 전도시킬 만한 함의들을 끄집어낸다. '반복해서 보는 행위'와 '비교'는 밀도 있는 사유로 밀어붙이고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세 겹으로 돼 있다. 원작-영화-저자의 글. 원작과 영화가 저자에게서 화학작용을 일으켜 심원한 글쓰기로 이어질 때, 이는 독자에게 흘러들어 새로운 해석과 감상의 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
인간의 감각을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가
작품의 접힌 면들을 펼침으로써 관점을 바꾸고
삶을 전도시킬 만한 순간을 발견하는 읽기와 보기
영화는 밤이다. 어두운 곳에서 시각과 청각으로 펼쳐지는 그 세계는 낮의 텍스트가 다른 형식을 빌려 제 몸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밤과 책』은 영화와 그 모태가 된 원작(소설, 희곡) 스물세 편을 다룬다. 여기 실린 글들은 스크린과 텍스트의 경계를 지우면서 비교하는 행위가 독자-관객의 감각을 어떻게 극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원작과 영화를 여러 번 다시 읽고 보면서 접힌 면들을 펼쳐 작품을 보는 시선을 광활하게 만들고, 삶을 전도시킬 만한 함의들을 끄집어낸다. '반복해서 보는 행위'와 '비교'는 밀도 있는 사유로 밀어붙이고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세 겹으로 돼 있다. 원작-영화-저자의 글. 원작과 영화가 저자에게서 화학작용을 일으켜 심원한 글쓰기로 이어질 때, 이는 독자에게 흘러들어 새로운 해석과 감상의 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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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간을 한 뼘씩 잡아먹으며 감정을 일렁이게 만드는 영화
느린 속도로 나아가다가 끝에 이르러 폭발시키는 문학
영화와 문학은 오랜 세월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호흡을 섞어왔다. 저자는 문학과 영화 분야 글을 쓰면서 장르를 넘나들며 '비교문학'의 개념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오래 품어왔다. 거기서 출발해 이 책은 문학과 영화를 나란히 놓고, 둘을 교차시킴으로써 예술이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가를 시도해본다.
출발점은 원작인 문학이다. 문학을 읽은 감독은 이를 영화화하면서 새로운 감각과 정서를 열어젖히며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따라서 책이나 영화는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며, 이 책 역시 보기의 한 방법을 제시한다. 소설은 영화로 각색될 때 더 감각적이고 부드러워진다. 두 장르가 똑같은 줄거리를 취하더라도 영화감독은 선율을 집어넣거나 이미지를 압축함으로써 음조와 운율을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을 읽는 데는 며칠씩 걸리는 반면,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감정, 감각, 꿈 등 모든 것을 응축한다. 응축과 부드러움에서 어떤 윤리를 도출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압축하고, 소설은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단적인 예를 이 책은 「사일런스」와 그 원작 『침묵』을 비교하며 보여준다. 「사일런스」는 주인공 로드리게스가 느끼는 각성의 과정을 상대적으로 압축해서 제시하는 반면, 『침묵』은 독자가 이를 천천히 뒤따르게 만든다. 두 작품은 '함께 울어주는 그리스도'라는 같은 결론에 이르긴 하나 영화는 처음부터 이를 제시하고, 소설은 끝에 이르러서야 이를 폭발시킨다. 즉 둘의 시간은 균질한 성질을 띠지 않는다.
저자는 원작과 영화 둘 중 하나만 본 이들을 위해, 둘을 비교함으로써 서로 갈라서는 지점과 폭발적 시너지를 내는 지점을 포착해 보여준다. 영화가 감각과 속도의 세계를 펼친다면, 소설은 발목을 붙잡고 문장 속에 멈추게 만드는데, 저자는 두 가지 호흡을 동시에 쫓으면서 가장 깊은 사유와 느낌에 이르도록 이끈다.
탁월한 영화는 소설의 텍스트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준다. 원전의 방향성을 비틀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확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 책은 「아이즈 와이드 셧」을 든다. 『꿈의 노벨레』를 원작 삼아 만든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감독 큐브릭은 작가 슈니츨러가 포착했던 어두운 욕망을 계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암호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이를 비교하는 저자의 글은 그 암호들을 해독하며(오비디우스의 책,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등) 욕망의 밀실로 입장했다가 귀환하는 출구를 제공한다.
문학과 영화의 차이 가운데 핵심적으로 살펴볼 만한 것은 '시간'의 사용이다. 가령 저자는 「향수」를 통해 영화와 소설의 시간을 분별해낸다. 거기서 둘의 균열이 일어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 그르누이는 영화에서 후각이 주는 쾌락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자두 파는 소녀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즉, 살인은 냄새에 압도당한 직후의 돌발적인 실수였다. 반면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목을 졸라 소녀를 살해한다. 소설은 살의를 충분히 입증하는데, 따라서 원작에 의하면 그르누이는 태생적 악인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둘을 비교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내놓는다. "영화에서 윤리는 악인 그르누이의 갈망 속에서 천천히 붕괴되지만, 소설은 이미 무너진 윤리 속에서 그르누이의 악마적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을 향해 다가가게 만드는 통로
해석의 위험을 안고 가장 멀리 뻗어가기
소설이나 희곡이 먼저 쓰이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해도 많은 사람은 영화를 먼저 본 뒤 원작을 찾곤 한다. 즉 영화는 종종 원작을 향해 가는 통로가 되어준다. 작가와 영화감독은 결코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감독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어 원작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때 그 모순은 작품의 핵심을 붙잡는 키가 된다. 감독은 원작과 저울질하기보다 등장인물의 움직임, 목소리, 공간의 질감 속에서 작품을 생동감 있게 체현하기에 영화와 문학은 서로 다른 의미와 무게를 지니게 된다.
원작에서 닫힌 결말을 제시하거나 혹은 비극으로 마무리한 것을 영화감독들은 종종 열린 결말로 그리면서 미래에 빛을 던진다. 영화 「클로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댄과 이별한 뒤 뉴욕으로 향한다. 즉 이 장면은 그녀가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의 '운동'을 재개하리란 기대감을 품게 한다. 하지만 애초에 원작은 앨리스가 차에 치여 죽는 것으로 끝냈다. 또한 영화 「피아니스트」 결말에서 에리카는 자신의 몸을 찌르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이때 카메라는 에리카의 발걸음을 쫓지 않으며, 그 행선지를 제시하지 않기에 무대를 떠난 에리카는 어디로든 갈 가능성을 지닌다. 반면 원작에서 에리카는 고통과 억압의 원천이었던 집으로 되돌아간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할 때, 하나의 결말만이 가능하다는 필연성을 무너뜨리면서 영화는 자유를 획득한다. 소설이 문장으로 가장 미세한 떨림을 담으려 한다면, 영화는 그것을 음악이나 시각장치로 표현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영화는 분량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원작의 많은 것을 생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청난 축약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장미의 이름」과 같은 영화는 감독이 자신만의 언어를 곳곳에 배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로드」에서 눈먼 노인이 "나도 예전에 아들이 있었지"라며 회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영화에서 "회복하는 대신 회고할 뿐"인 이 노인을 "가장 무능한 신", 즉 떠돌이 신으로 해석한다. 즉 『로드』가 「더 로드」로 만들어질 때, '의식 없는 회고(회상)'는 결코 윤리적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감독은 심어놓았을 수 있고, 저자는 이를 차이로 분별해낸다.
다른 한편, 원작을 봐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아버지 프라두는 설명 없이 등이 굽은 모습으로 나오지만, 원작을 읽으면 이것은 독재자 밑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하수인의 운명을 시각화하는 문학적 장치임을 알 수 있한다. 「아마데우스」에서 신을 향한 분노 역시 영화보다 희곡에서 더 선명하게 전면화된다. 그건 두 작품에서 살리에리의 고백을 듣고 있는 청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영화만 본 관객들은 살리에리의 마지막 말을 신과의 대결로 보기보다 정신질환자의 자기 항변 서사로만 축소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자는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뤄진 변주와 생략을 세밀히 분석하지만, 그것의 목적은 오로지 영화가 이뤄낸 예술을 더 경외감 있게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 원작은 영화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언어의 지층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진실이 더 오래, 깊이 남아 있게 만든다.
문학이 영화가 될 때
거대한 세계에 맞서 삶의 조각을 완성해가는 행위
영화는 소설의 서사 흐름을 따르지 않고, 시작이 같지도 않다. 예컨대 「리스본행 야간열차」 첫 장면에는 체스판의 잘못된 한 수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영화의 서사 전체를 움켜쥐는 상징이라고 본다. 상징은 실체와 등가를 지니며, 그 자체로 세계를 구성한다. 원작처럼 영화도 장면마다 해석되어야 할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중 「색, 계」의 세로로 곧게 뻗은 직선의 빛은 이 책에서 저자가 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사유를 요구하는 장면들을 포착하기도 한다. 가령 「더 로드」와 그 원작 『로드』에서 다르게 그려지는 도둑의 오른손이 그렇다. 영화에서 도둑은 열 손가락을 모두 펼치며 자신의 빈손을 보여준다. 반면 소설 속 도둑의 오른손은 훼손되어 있다. 이는 공동체에서 쫓겨난 그에게 남은 추방의 흔적으로 짐작된다. 소설이 영화 언어로 충실하게 번역되고 같은 질문을 향해 나아갈 때도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여정은 두 작품에 담긴 더 넓은 의미를 노출시킨다. 영화 「콘클라베」는 원작을 굴절하고 증폭시키는데, 이때 영화와 소설의 의도는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가 각자의 핵에 닿는다.
텍스트와 영화를 세심하게 보는 일은 거대한 세계 혹은 거대한 메시지에 맞서 자기 삶의 조각들을 좀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행위다. 작품을 한 번 보면 기억에 남긴 하나 세부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게다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자신의 회상과 감정을 작품에 섞어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원작과 그에 바탕을 둔 영화를 여러 번 교차시켜 보면서 멈추어 감상하고 해석하는 행위가 새로운 삶의 출발을 약속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영화와 소설을 겹쳐서 보고, 둘이 분기하는 지점을 살피는 일은 독자-관객 안에서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 작품이 감상자에게 부여할 수 있는 인지적, 감정적 공감과 사유를 최대한으로 확장한다. 이것이 모든 소설이나 희곡에 해당되진 않기에, 영화화된 작품들은 장르를 넘어 새로운 예술을 추동하는 힘이 강력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23편의 작품 중 몇 편에 대해 저자는 종교적 알레고리를 주요한 틀로 삼아 해석을 시도한다. 예컨대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듀프레인의 이야기에서 '원죄 없이 세상에 내려와 수난을 겪는 초월자 예수의 실루엣'을 발견하는 것이나 「어톤먼트」에서 "이 소설의 독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지닌 관점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이는 신학적 사유에서 촉발되었다기보다 서구 문학이 지닌 상징성이 인간의 죄와 구원의 문제로 회귀하곤 하기 때문이다. 종교영화가 아닐 때조차 종교적 코드를 분별해내는 이 책의 영화 해석은 맥락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저자는 예술과 삶을 최대한 세밀하게 들여다보려는 열망에서 이 책을 써내려갔다. 가장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두 장르가 만날 때 순간의 삶들은 끊임없이 축적되며, 꿰뚫을 수 없는 어두운 심연이나 태고를 향한 독해는 그 의미들을 집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일깨운다.
느린 속도로 나아가다가 끝에 이르러 폭발시키는 문학
영화와 문학은 오랜 세월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호흡을 섞어왔다. 저자는 문학과 영화 분야 글을 쓰면서 장르를 넘나들며 '비교문학'의 개념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오래 품어왔다. 거기서 출발해 이 책은 문학과 영화를 나란히 놓고, 둘을 교차시킴으로써 예술이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가를 시도해본다.
출발점은 원작인 문학이다. 문학을 읽은 감독은 이를 영화화하면서 새로운 감각과 정서를 열어젖히며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따라서 책이나 영화는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며, 이 책 역시 보기의 한 방법을 제시한다. 소설은 영화로 각색될 때 더 감각적이고 부드러워진다. 두 장르가 똑같은 줄거리를 취하더라도 영화감독은 선율을 집어넣거나 이미지를 압축함으로써 음조와 운율을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을 읽는 데는 며칠씩 걸리는 반면,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감정, 감각, 꿈 등 모든 것을 응축한다. 응축과 부드러움에서 어떤 윤리를 도출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압축하고, 소설은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단적인 예를 이 책은 「사일런스」와 그 원작 『침묵』을 비교하며 보여준다. 「사일런스」는 주인공 로드리게스가 느끼는 각성의 과정을 상대적으로 압축해서 제시하는 반면, 『침묵』은 독자가 이를 천천히 뒤따르게 만든다. 두 작품은 '함께 울어주는 그리스도'라는 같은 결론에 이르긴 하나 영화는 처음부터 이를 제시하고, 소설은 끝에 이르러서야 이를 폭발시킨다. 즉 둘의 시간은 균질한 성질을 띠지 않는다.
저자는 원작과 영화 둘 중 하나만 본 이들을 위해, 둘을 비교함으로써 서로 갈라서는 지점과 폭발적 시너지를 내는 지점을 포착해 보여준다. 영화가 감각과 속도의 세계를 펼친다면, 소설은 발목을 붙잡고 문장 속에 멈추게 만드는데, 저자는 두 가지 호흡을 동시에 쫓으면서 가장 깊은 사유와 느낌에 이르도록 이끈다.
탁월한 영화는 소설의 텍스트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준다. 원전의 방향성을 비틀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확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 책은 「아이즈 와이드 셧」을 든다. 『꿈의 노벨레』를 원작 삼아 만든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감독 큐브릭은 작가 슈니츨러가 포착했던 어두운 욕망을 계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암호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이를 비교하는 저자의 글은 그 암호들을 해독하며(오비디우스의 책,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등) 욕망의 밀실로 입장했다가 귀환하는 출구를 제공한다.
문학과 영화의 차이 가운데 핵심적으로 살펴볼 만한 것은 '시간'의 사용이다. 가령 저자는 「향수」를 통해 영화와 소설의 시간을 분별해낸다. 거기서 둘의 균열이 일어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 그르누이는 영화에서 후각이 주는 쾌락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자두 파는 소녀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즉, 살인은 냄새에 압도당한 직후의 돌발적인 실수였다. 반면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목을 졸라 소녀를 살해한다. 소설은 살의를 충분히 입증하는데, 따라서 원작에 의하면 그르누이는 태생적 악인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둘을 비교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내놓는다. "영화에서 윤리는 악인 그르누이의 갈망 속에서 천천히 붕괴되지만, 소설은 이미 무너진 윤리 속에서 그르누이의 악마적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을 향해 다가가게 만드는 통로
해석의 위험을 안고 가장 멀리 뻗어가기
소설이나 희곡이 먼저 쓰이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해도 많은 사람은 영화를 먼저 본 뒤 원작을 찾곤 한다. 즉 영화는 종종 원작을 향해 가는 통로가 되어준다. 작가와 영화감독은 결코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감독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어 원작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때 그 모순은 작품의 핵심을 붙잡는 키가 된다. 감독은 원작과 저울질하기보다 등장인물의 움직임, 목소리, 공간의 질감 속에서 작품을 생동감 있게 체현하기에 영화와 문학은 서로 다른 의미와 무게를 지니게 된다.
원작에서 닫힌 결말을 제시하거나 혹은 비극으로 마무리한 것을 영화감독들은 종종 열린 결말로 그리면서 미래에 빛을 던진다. 영화 「클로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댄과 이별한 뒤 뉴욕으로 향한다. 즉 이 장면은 그녀가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의 '운동'을 재개하리란 기대감을 품게 한다. 하지만 애초에 원작은 앨리스가 차에 치여 죽는 것으로 끝냈다. 또한 영화 「피아니스트」 결말에서 에리카는 자신의 몸을 찌르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이때 카메라는 에리카의 발걸음을 쫓지 않으며, 그 행선지를 제시하지 않기에 무대를 떠난 에리카는 어디로든 갈 가능성을 지닌다. 반면 원작에서 에리카는 고통과 억압의 원천이었던 집으로 되돌아간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할 때, 하나의 결말만이 가능하다는 필연성을 무너뜨리면서 영화는 자유를 획득한다. 소설이 문장으로 가장 미세한 떨림을 담으려 한다면, 영화는 그것을 음악이나 시각장치로 표현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영화는 분량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원작의 많은 것을 생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청난 축약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장미의 이름」과 같은 영화는 감독이 자신만의 언어를 곳곳에 배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로드」에서 눈먼 노인이 "나도 예전에 아들이 있었지"라며 회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영화에서 "회복하는 대신 회고할 뿐"인 이 노인을 "가장 무능한 신", 즉 떠돌이 신으로 해석한다. 즉 『로드』가 「더 로드」로 만들어질 때, '의식 없는 회고(회상)'는 결코 윤리적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감독은 심어놓았을 수 있고, 저자는 이를 차이로 분별해낸다.
다른 한편, 원작을 봐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아버지 프라두는 설명 없이 등이 굽은 모습으로 나오지만, 원작을 읽으면 이것은 독재자 밑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하수인의 운명을 시각화하는 문학적 장치임을 알 수 있한다. 「아마데우스」에서 신을 향한 분노 역시 영화보다 희곡에서 더 선명하게 전면화된다. 그건 두 작품에서 살리에리의 고백을 듣고 있는 청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영화만 본 관객들은 살리에리의 마지막 말을 신과의 대결로 보기보다 정신질환자의 자기 항변 서사로만 축소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자는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뤄진 변주와 생략을 세밀히 분석하지만, 그것의 목적은 오로지 영화가 이뤄낸 예술을 더 경외감 있게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 원작은 영화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언어의 지층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진실이 더 오래, 깊이 남아 있게 만든다.
문학이 영화가 될 때
거대한 세계에 맞서 삶의 조각을 완성해가는 행위
영화는 소설의 서사 흐름을 따르지 않고, 시작이 같지도 않다. 예컨대 「리스본행 야간열차」 첫 장면에는 체스판의 잘못된 한 수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영화의 서사 전체를 움켜쥐는 상징이라고 본다. 상징은 실체와 등가를 지니며, 그 자체로 세계를 구성한다. 원작처럼 영화도 장면마다 해석되어야 할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중 「색, 계」의 세로로 곧게 뻗은 직선의 빛은 이 책에서 저자가 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사유를 요구하는 장면들을 포착하기도 한다. 가령 「더 로드」와 그 원작 『로드』에서 다르게 그려지는 도둑의 오른손이 그렇다. 영화에서 도둑은 열 손가락을 모두 펼치며 자신의 빈손을 보여준다. 반면 소설 속 도둑의 오른손은 훼손되어 있다. 이는 공동체에서 쫓겨난 그에게 남은 추방의 흔적으로 짐작된다. 소설이 영화 언어로 충실하게 번역되고 같은 질문을 향해 나아갈 때도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여정은 두 작품에 담긴 더 넓은 의미를 노출시킨다. 영화 「콘클라베」는 원작을 굴절하고 증폭시키는데, 이때 영화와 소설의 의도는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가 각자의 핵에 닿는다.
텍스트와 영화를 세심하게 보는 일은 거대한 세계 혹은 거대한 메시지에 맞서 자기 삶의 조각들을 좀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행위다. 작품을 한 번 보면 기억에 남긴 하나 세부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게다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자신의 회상과 감정을 작품에 섞어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원작과 그에 바탕을 둔 영화를 여러 번 교차시켜 보면서 멈추어 감상하고 해석하는 행위가 새로운 삶의 출발을 약속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영화와 소설을 겹쳐서 보고, 둘이 분기하는 지점을 살피는 일은 독자-관객 안에서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 작품이 감상자에게 부여할 수 있는 인지적, 감정적 공감과 사유를 최대한으로 확장한다. 이것이 모든 소설이나 희곡에 해당되진 않기에, 영화화된 작품들은 장르를 넘어 새로운 예술을 추동하는 힘이 강력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23편의 작품 중 몇 편에 대해 저자는 종교적 알레고리를 주요한 틀로 삼아 해석을 시도한다. 예컨대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듀프레인의 이야기에서 '원죄 없이 세상에 내려와 수난을 겪는 초월자 예수의 실루엣'을 발견하는 것이나 「어톤먼트」에서 "이 소설의 독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지닌 관점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이는 신학적 사유에서 촉발되었다기보다 서구 문학이 지닌 상징성이 인간의 죄와 구원의 문제로 회귀하곤 하기 때문이다. 종교영화가 아닐 때조차 종교적 코드를 분별해내는 이 책의 영화 해석은 맥락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저자는 예술과 삶을 최대한 세밀하게 들여다보려는 열망에서 이 책을 써내려갔다. 가장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두 장르가 만날 때 순간의 삶들은 끊임없이 축적되며, 꿰뚫을 수 없는 어두운 심연이나 태고를 향한 독해는 그 의미들을 집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일깨운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_두 채의 집
소진되는 무대, 침식되는 생애
릴리안 리 『사랑이여 안녕』 ∥ 천카이거 「패왕별희」
은밀한 침대를 단호히 가르는 직선의 빛
장아이링 「색, 계」 ∥ 리안 「색, 계」
죽음 앞에서만 우리는 가장 진실된 사랑을 한다
패트릭 마버 『클로저』 ∥ 마이크 니콜스 「클로저」
이 소설의 독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
이언 매큐언 『속죄』 ∥ 조 라이트 「어톤먼트」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츠지 히토나리·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 사이』 ∥ 나카에 이사무 「냉정과 열정 사이」
모독의 지점을 통과할 때 더 깊이 각성된다
엔도 슈사쿠『침묵』 ∥ 마틴 스코세이지 「사일런스」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길을 잃기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 미카엘 하네케 「피아니스트」
웃음은 가장 인간적인 반론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 장 자크 아노 「장미의 이름」
그들의 우주선은 하나의 검은 렌즈였다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 드니 빌뇌브 「컨택트」
말해지지 못한 욕망은 말해진 욕망보다 위험하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꿈의 노벨레』 ∥ 스탠리 큐브릭 「아이즈 와이드 셧」
동일인이라는 형벌
와즈디 무아와드 『화염』 ∥ 드니 빌뇌브 「그을린 사랑」
세계는 '과잉'의 인간도, '결핍'의 인간도 버티지 못한다
토머스 해리스 『양들의 침묵』 ∥ 조너선 드미 「양들의 침묵」
생을 균열시키며 뒷면으로 가는 여행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 빌 어거스트 「리스본행 야간열차」
죄의 냄새, 혹은 향에 취한 자들의 세상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 톰 티크베어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타인에게 손 내밀지 않는 세대의 출현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떠돌이 주님과 이미 오신 예수
코맥 매카시 『로드』 ∥ 존 힐코트 「더 로드」
다 같이 패배하는 데서 얻는 위로
피터 셰퍼 『아마데우스』 ∥ 밀로스 포먼 「아마데우스」
희망은 구원을 초월한다
스티븐 킹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프랭크 다라본트 「쇼생크 탈출」
개의 아가리에서 구하소서
토머스 새비지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
신은 사건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 에드워드 버거 「콘클라베」
파도에 올라타지 말 것
토머스 핀천 『바인랜드』 ∥ 폴 토머스 앤더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검은 명단에 새겨진 하얀 구원의 빛
토머스 케닐리 『쉰들러의 방주』 ∥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죽은 자의 이름으로 영원을 살다
매기 오패럴 『햄닛』 ∥ 클로이 자오 「햄넷」
소진되는 무대, 침식되는 생애
릴리안 리 『사랑이여 안녕』 ∥ 천카이거 「패왕별희」
은밀한 침대를 단호히 가르는 직선의 빛
장아이링 「색, 계」 ∥ 리안 「색, 계」
죽음 앞에서만 우리는 가장 진실된 사랑을 한다
패트릭 마버 『클로저』 ∥ 마이크 니콜스 「클로저」
이 소설의 독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
이언 매큐언 『속죄』 ∥ 조 라이트 「어톤먼트」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츠지 히토나리·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 사이』 ∥ 나카에 이사무 「냉정과 열정 사이」
모독의 지점을 통과할 때 더 깊이 각성된다
엔도 슈사쿠『침묵』 ∥ 마틴 스코세이지 「사일런스」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길을 잃기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 미카엘 하네케 「피아니스트」
웃음은 가장 인간적인 반론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 장 자크 아노 「장미의 이름」
그들의 우주선은 하나의 검은 렌즈였다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 드니 빌뇌브 「컨택트」
말해지지 못한 욕망은 말해진 욕망보다 위험하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꿈의 노벨레』 ∥ 스탠리 큐브릭 「아이즈 와이드 셧」
동일인이라는 형벌
와즈디 무아와드 『화염』 ∥ 드니 빌뇌브 「그을린 사랑」
세계는 '과잉'의 인간도, '결핍'의 인간도 버티지 못한다
토머스 해리스 『양들의 침묵』 ∥ 조너선 드미 「양들의 침묵」
생을 균열시키며 뒷면으로 가는 여행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 빌 어거스트 「리스본행 야간열차」
죄의 냄새, 혹은 향에 취한 자들의 세상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 톰 티크베어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타인에게 손 내밀지 않는 세대의 출현
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떠돌이 주님과 이미 오신 예수
코맥 매카시 『로드』 ∥ 존 힐코트 「더 로드」
다 같이 패배하는 데서 얻는 위로
피터 셰퍼 『아마데우스』 ∥ 밀로스 포먼 「아마데우스」
희망은 구원을 초월한다
스티븐 킹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프랭크 다라본트 「쇼생크 탈출」
개의 아가리에서 구하소서
토머스 새비지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
신은 사건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 에드워드 버거 「콘클라베」
파도에 올라타지 말 것
토머스 핀천 『바인랜드』 ∥ 폴 토머스 앤더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검은 명단에 새겨진 하얀 구원의 빛
토머스 케닐리 『쉰들러의 방주』 ∥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죽은 자의 이름으로 영원을 살다
매기 오패럴 『햄닛』 ∥ 클로이 자오 「햄넷」
저자
저자
김유태 기자 및 시인.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문화부에서 근무하며 문학, 출판, 영화를 담당했다.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 등 글로벌 3대 영화제의 레드카펫 현장을 취재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인터뷰로 한국기자협회 주최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에도 참석했다.
문예지 『현대시』에 「무국적 체류자」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와 독서 에세이 『나쁜 책: 금서기행』을 출간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책에 대한 책' '시가 있는 월요일' '라르고' 등을 연재 중이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인터뷰로 한국기자협회 주최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에도 참석했다.
문예지 『현대시』에 「무국적 체류자」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와 독서 에세이 『나쁜 책: 금서기행』을 출간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책에 대한 책' '시가 있는 월요일' '라르고' 등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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