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양장본 Hardcover)
김신록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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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사심 없이 전력을 다한 순간의 기록
도주로를 끊어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선택을 마주할 때
그 안도, 그 위안, 그 기쁨, 그 에너지!
『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은 연기와 연기 바깥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배우이고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예술은 삶의 하중 위에서만 단단히 버티고 설 수 있다. 무대나 스크린 속에서 배우는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집중시켜 한순간에 터뜨린다. 반면 카메라 바깥의 삶에는 수많은 우연과 잉여가 널려 있다.
이 책의 1부는 카메라와 무대 안팎을 주로 다루는 에세이를 실었고, 2부는 공연과 전시 리뷰를 실었다. 1부와 2부의 가장 큰 차이는 문체다. 1부가 2부보다 8년쯤 뒤에 쓰였으니 시간 격차가 글쓰기 스타일을 바꾼 것일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에세이와 리뷰라는 형식 차이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찍고 연극 무대에 서면서 쓴 글이지만 1부는 생활밀착형이다. '내'가 배역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는 일상, 그걸 무대로 삼는다. 이어지는 2부는 늘 다른 사람의 무대를 찾아가는 관객으로서 쓴 리뷰와 비평들이다. 여느 비평들과의 차이점은 배우의 시선에서 현장 중심적 비평을 하며 감상적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주로를 끊어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선택을 마주할 때
그 안도, 그 위안, 그 기쁨, 그 에너지!
『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은 연기와 연기 바깥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배우이고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예술은 삶의 하중 위에서만 단단히 버티고 설 수 있다. 무대나 스크린 속에서 배우는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집중시켜 한순간에 터뜨린다. 반면 카메라 바깥의 삶에는 수많은 우연과 잉여가 널려 있다.
이 책의 1부는 카메라와 무대 안팎을 주로 다루는 에세이를 실었고, 2부는 공연과 전시 리뷰를 실었다. 1부와 2부의 가장 큰 차이는 문체다. 1부가 2부보다 8년쯤 뒤에 쓰였으니 시간 격차가 글쓰기 스타일을 바꾼 것일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에세이와 리뷰라는 형식 차이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찍고 연극 무대에 서면서 쓴 글이지만 1부는 생활밀착형이다. '내'가 배역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는 일상, 그걸 무대로 삼는다. 이어지는 2부는 늘 다른 사람의 무대를 찾아가는 관객으로서 쓴 리뷰와 비평들이다. 여느 비평들과의 차이점은 배우의 시선에서 현장 중심적 비평을 하며 감상적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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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삶다운 것, 세부의 힘이 만들어내는 리듬
카메라 안팎의 정화의 순간들
1부의 산문들은 감각적이고 디테일에 능하다. 김신록의 글은 유쾌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여기서 장면 전환이란 구체적인 현실의 뒤바뀜을 뜻하기보다, 현실과 그 현실을 인식·감각하는 정신활동 사이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저자의 생활 속 세부들은 언제든 내면의 장면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무대 바깥의 삶에서도 무대를 보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저자의 글이 지향하는 바이다.
일상의 파편이 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열두 편의 산문은 그런 리듬에 따라 쓰였다. 그 안에서 이야기는 몸집을 키우고 활동반경을 넓히다가 불현듯 장면 전환을 이뤄낸다. 한 줄 띄고 무대나 전시 공간으로의 순간 이동! 어느 날 연출가의 연기 지시를 듣고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저자는 문밖으로 나와 이훤 작가의 사진전을 보러 간다. 혹은 딸 넷을 키운 뒤 이제 손주를 돌보고 있는 엄마와 오랜만에 통화한 뒤 연극 「아이들」을 보러 간다. 이때 생활 에세이를 이질감 없이 무대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건 저자에게서 발견되는 고유의 능력이다. 생각의 전환은 공간 이동을 이뤄내고, 거기서 문체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저자의 산문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일종의 의식의 흐름 기법인데, 여기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도 사라진다. 「마감 압박」은 칼럼 마감으로 마음이 짓눌리자 스르르 잠들고는 꿈속에서 런던으로 순간이동 하는 내용이다. 꿈에서도 그는 현실과 똑같이 시인 김혜순의 책을 읽다가, 젠더나 계급 의식은 내팽개친 채 귀여운 아시아 여성 코스프레에 빠졌다가 현실에서와 똑같이 길치여서 런던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커피를 내린다. 그러나 현실에 돌아와서도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괴로움에 차 이전의 메모들을 들추면서 거기서 원고지를 채울 글들을 찾아내려 한다. 중간중간 커피 한 모금을 '홀짝' 하며 압박감을 누그러뜨리려는데, 한 모금의 '홀짝'이 옛 메모들을 지금 여기의 원고지로 옮겨놓는다. '홀짝'이라는 의성어가 나올 때마다 과거의 기억은 극적으로 소환된다, 마치 무대에서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는 것처럼. 이 아름다운 산문은 청각적·촉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원고지를 순간 무대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김신록의 산문은 무정형적이지 않고 한 편의 극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 극 안에서 구체적인 일상은 디테일을 제공하고, 저자는 배역을 맡은 배우처럼 극을 이끌어가는데 그건 바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재능 덕분이다. 저자는 상념에 곧잘 빠지며 그 상념조차 리드미컬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가장 성스럽고 형이상학적이어야 할 교회에서 상념이 냉장고 속 재료들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목사님이 설교에서 '마음'을 '냉장고'에 비유한다. 이때 저자는 목사님 말씀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는 식재료를 떠올린다. 그 재료들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게 '마음의 짐'이기 때문이다. 짐 진 자의 무거운 마음은 오로지 냉장고 속 빨간 파프리카, 굽지 못한 갈치, 오래된 곰탕, 좀 있으면 상할 우유 속에 머문다. 잠깐 거룩해질 뻔한 순간에조차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존재임을 이 에세이는 여러 차례의 장면 전환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에세이들은 삶의 모든 것이 예술의 자양분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연기는 수렴이기도 하고 발산이기도 하다. 나의 모든 것을 응축한다는 점에서는 수렴이지만, 이걸 다 꺼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는 발산이다. 배우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하는 사람이고, 그 밑바탕에는 생활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배우는 "가장 순수한 최초의 비평가"
저자의 정체성은 영화·드라마 연기자, 연극배우, 전시·공연 리뷰어, 인터뷰어로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이처럼 여러 역할 사이를 오가는 그는 일인극 연기가 몸에 꼭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그는 1인 16역을 했고, 「프리마 파시」에서는 혼자 10여 명의 목소리와 행동을 연기했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내지만, 사실 저자는 극장 객석에 관객으로서 앉아 있을 때가 더 많다.
배우는 배역을 창조해내는 사람이기에 비평가나 리뷰어가 되는 일이 드물다. 창작과 비평은 길항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미나를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저자는 오랫동안 리뷰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2부에는 공연과 전시를 보고 나서 쓴 글들을 모았다. 무대에서 떨어져 나와 객관적 거리가 확보되는 순간 글의 결은 달라진다. 연극 「오레스테이아」와 「연옥」을 본 뒤 쓴 글 「구원의 (불)가능성」은 마치 내레이터처럼 쓴 리뷰다. '딜레마!' '파토스!' '원죄!' 등 짧고 강하게 끊어서 내뱉는 연기처럼 리뷰에서도 스타카토식 발화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독자의 주의를 단숨에 집중시킨다. 이런 화법은 이미지를 극대화하거나 감정을 절제하면서 잔상을 강렬하게 남겨 리뷰와 희곡의 경계를 허문다.
저자가 앉아 있는 극장은 이를테면 객석 규모 20석의 신촌극장 같은 곳이다. 이 무대에는 '연극적 카리스마'가 없고 '연기적 클리셰로서의 에너지'도 없다. 대신 있는 것은 표현을 아끼는 배우들, 인물에 스스로를 다 내어주기보다 꾹꾹 희곡을 겪어내며 차오르는 기억과 마음을 헤쳐나가는 몸짓들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연극들은 대개 배우 혹은 역할로서의 아우라를 제거하고, 관객과 무대 사이의 제4의 벽을 깨뜨리며, 허구와 실재가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다. 혹은 단기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시적극장'과 같은 곳이다.
작곡가 이상욱이 선보인 공연은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외에 두 편이나 다뤄졌다. "엉망이었죠. 그냥 손 놔버렸어요. 뭐, 엉망이에요"라고 자평한 이상욱의 말대로 이 공연은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던 사이에 있기도 하고, 돌파를 꿈꾸는 모든 것의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못해 이를 보고 난 뒤 저자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글의 핵심은 물론 그게 아니다. 여기 글로 다뤄진 공연과 전시들은 애써 찾아가야 간판이 보이는 곳, 잠깐 머물다 해체되는 무대, 자리가 몇 석 없는 소극장이다. 거기서 저자는 "서슴없는 감상과 비평"을 보탬으로써 그들의 항해에 응원과 애정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런 삶의 결, 즉 모자람과 소박함 사이,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의 다정한 마음에 동참하게 된다.
***
김신록의 글에는 리듬이 있어서 어떤 사소한 정보마저 끼워넣는 순간 훼손된다. 예를 들어 공연 날짜나 장소를 넣는 것만으로도 산문의 리듬이 깨져 자세한 정보는 책 말미에 넣었다. 또한 앞서 장면 전환의 기법을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어법이 있다. '문득' '불현듯'이란 단어가 그의 글의 흐름에서 자연스레 끼어드는 것이다. 그는 일상과 과거 기억을 늘이다가 불현듯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 연기의 해법을 얻는다. 따라서 그의 글은 자유분방하게 펼쳐지는 듯하지만, 문장과 단락마다 단련된 문학적·연기적 기법이 배어든다. 즉 사생활과 연기는 앙상블을 이루면서 이 책에서 '인물'과 '배우'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합치되는 빛나는 순간들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안팎의 정화의 순간들
1부의 산문들은 감각적이고 디테일에 능하다. 김신록의 글은 유쾌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여기서 장면 전환이란 구체적인 현실의 뒤바뀜을 뜻하기보다, 현실과 그 현실을 인식·감각하는 정신활동 사이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저자의 생활 속 세부들은 언제든 내면의 장면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무대 바깥의 삶에서도 무대를 보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저자의 글이 지향하는 바이다.
일상의 파편이 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열두 편의 산문은 그런 리듬에 따라 쓰였다. 그 안에서 이야기는 몸집을 키우고 활동반경을 넓히다가 불현듯 장면 전환을 이뤄낸다. 한 줄 띄고 무대나 전시 공간으로의 순간 이동! 어느 날 연출가의 연기 지시를 듣고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저자는 문밖으로 나와 이훤 작가의 사진전을 보러 간다. 혹은 딸 넷을 키운 뒤 이제 손주를 돌보고 있는 엄마와 오랜만에 통화한 뒤 연극 「아이들」을 보러 간다. 이때 생활 에세이를 이질감 없이 무대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건 저자에게서 발견되는 고유의 능력이다. 생각의 전환은 공간 이동을 이뤄내고, 거기서 문체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저자의 산문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일종의 의식의 흐름 기법인데, 여기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도 사라진다. 「마감 압박」은 칼럼 마감으로 마음이 짓눌리자 스르르 잠들고는 꿈속에서 런던으로 순간이동 하는 내용이다. 꿈에서도 그는 현실과 똑같이 시인 김혜순의 책을 읽다가, 젠더나 계급 의식은 내팽개친 채 귀여운 아시아 여성 코스프레에 빠졌다가 현실에서와 똑같이 길치여서 런던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커피를 내린다. 그러나 현실에 돌아와서도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괴로움에 차 이전의 메모들을 들추면서 거기서 원고지를 채울 글들을 찾아내려 한다. 중간중간 커피 한 모금을 '홀짝' 하며 압박감을 누그러뜨리려는데, 한 모금의 '홀짝'이 옛 메모들을 지금 여기의 원고지로 옮겨놓는다. '홀짝'이라는 의성어가 나올 때마다 과거의 기억은 극적으로 소환된다, 마치 무대에서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는 것처럼. 이 아름다운 산문은 청각적·촉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원고지를 순간 무대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김신록의 산문은 무정형적이지 않고 한 편의 극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 극 안에서 구체적인 일상은 디테일을 제공하고, 저자는 배역을 맡은 배우처럼 극을 이끌어가는데 그건 바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재능 덕분이다. 저자는 상념에 곧잘 빠지며 그 상념조차 리드미컬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가장 성스럽고 형이상학적이어야 할 교회에서 상념이 냉장고 속 재료들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목사님이 설교에서 '마음'을 '냉장고'에 비유한다. 이때 저자는 목사님 말씀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는 식재료를 떠올린다. 그 재료들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게 '마음의 짐'이기 때문이다. 짐 진 자의 무거운 마음은 오로지 냉장고 속 빨간 파프리카, 굽지 못한 갈치, 오래된 곰탕, 좀 있으면 상할 우유 속에 머문다. 잠깐 거룩해질 뻔한 순간에조차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존재임을 이 에세이는 여러 차례의 장면 전환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에세이들은 삶의 모든 것이 예술의 자양분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연기는 수렴이기도 하고 발산이기도 하다. 나의 모든 것을 응축한다는 점에서는 수렴이지만, 이걸 다 꺼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는 발산이다. 배우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하는 사람이고, 그 밑바탕에는 생활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배우는 "가장 순수한 최초의 비평가"
저자의 정체성은 영화·드라마 연기자, 연극배우, 전시·공연 리뷰어, 인터뷰어로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이처럼 여러 역할 사이를 오가는 그는 일인극 연기가 몸에 꼭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그는 1인 16역을 했고, 「프리마 파시」에서는 혼자 10여 명의 목소리와 행동을 연기했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내지만, 사실 저자는 극장 객석에 관객으로서 앉아 있을 때가 더 많다.
배우는 배역을 창조해내는 사람이기에 비평가나 리뷰어가 되는 일이 드물다. 창작과 비평은 길항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미나를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저자는 오랫동안 리뷰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2부에는 공연과 전시를 보고 나서 쓴 글들을 모았다. 무대에서 떨어져 나와 객관적 거리가 확보되는 순간 글의 결은 달라진다. 연극 「오레스테이아」와 「연옥」을 본 뒤 쓴 글 「구원의 (불)가능성」은 마치 내레이터처럼 쓴 리뷰다. '딜레마!' '파토스!' '원죄!' 등 짧고 강하게 끊어서 내뱉는 연기처럼 리뷰에서도 스타카토식 발화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독자의 주의를 단숨에 집중시킨다. 이런 화법은 이미지를 극대화하거나 감정을 절제하면서 잔상을 강렬하게 남겨 리뷰와 희곡의 경계를 허문다.
저자가 앉아 있는 극장은 이를테면 객석 규모 20석의 신촌극장 같은 곳이다. 이 무대에는 '연극적 카리스마'가 없고 '연기적 클리셰로서의 에너지'도 없다. 대신 있는 것은 표현을 아끼는 배우들, 인물에 스스로를 다 내어주기보다 꾹꾹 희곡을 겪어내며 차오르는 기억과 마음을 헤쳐나가는 몸짓들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연극들은 대개 배우 혹은 역할로서의 아우라를 제거하고, 관객과 무대 사이의 제4의 벽을 깨뜨리며, 허구와 실재가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다. 혹은 단기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시적극장'과 같은 곳이다.
작곡가 이상욱이 선보인 공연은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외에 두 편이나 다뤄졌다. "엉망이었죠. 그냥 손 놔버렸어요. 뭐, 엉망이에요"라고 자평한 이상욱의 말대로 이 공연은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던 사이에 있기도 하고, 돌파를 꿈꾸는 모든 것의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못해 이를 보고 난 뒤 저자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글의 핵심은 물론 그게 아니다. 여기 글로 다뤄진 공연과 전시들은 애써 찾아가야 간판이 보이는 곳, 잠깐 머물다 해체되는 무대, 자리가 몇 석 없는 소극장이다. 거기서 저자는 "서슴없는 감상과 비평"을 보탬으로써 그들의 항해에 응원과 애정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런 삶의 결, 즉 모자람과 소박함 사이,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의 다정한 마음에 동참하게 된다.
***
김신록의 글에는 리듬이 있어서 어떤 사소한 정보마저 끼워넣는 순간 훼손된다. 예를 들어 공연 날짜나 장소를 넣는 것만으로도 산문의 리듬이 깨져 자세한 정보는 책 말미에 넣었다. 또한 앞서 장면 전환의 기법을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어법이 있다. '문득' '불현듯'이란 단어가 그의 글의 흐름에서 자연스레 끼어드는 것이다. 그는 일상과 과거 기억을 늘이다가 불현듯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 연기의 해법을 얻는다. 따라서 그의 글은 자유분방하게 펼쳐지는 듯하지만, 문장과 단락마다 단련된 문학적·연기적 기법이 배어든다. 즉 사생활과 연기는 앙상블을 이루면서 이 책에서 '인물'과 '배우'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합치되는 빛나는 순간들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목차
추천의 글: 내가 아는 신록이_강말금(배우)
들어가며: 예술이 삶으로, 삶이 예술로
1부 카메라 바깥으로
절룩거리며 찾아나설 정화의 순간들
Endless
Mortality, 죽음을 피할 수 없음
냉장고를 부탁해
레디, 액션, 컷, 오케이!
마감 압박
맨살과 맨살을 맞대고
흐물거리고 흘러넘치는 거대한 요괴의 몸뚱이
풍경-얼굴
이중Double
오색 약수터 예술론, 그리고 배선희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
인터미션: 구슬들이 스르륵 꿰어지며
2부 무대 안쪽에서
구원의 (불)가능성
연극과 퍼포먼스의 언저리를 더듬으며
해방된 배우
배우가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식
배우와 인물 사이
비어 있는 몸으로 그리기
모든 유예된 것들의 지난한 아름다움
찬란한 시간의 미로
Inspire: 숨을 불어넣다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들
나오며: 완벽이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며: 예술이 삶으로, 삶이 예술로
1부 카메라 바깥으로
절룩거리며 찾아나설 정화의 순간들
Endless
Mortality, 죽음을 피할 수 없음
냉장고를 부탁해
레디, 액션, 컷, 오케이!
마감 압박
맨살과 맨살을 맞대고
흐물거리고 흘러넘치는 거대한 요괴의 몸뚱이
풍경-얼굴
이중Double
오색 약수터 예술론, 그리고 배선희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
인터미션: 구슬들이 스르륵 꿰어지며
2부 무대 안쪽에서
구원의 (불)가능성
연극과 퍼포먼스의 언저리를 더듬으며
해방된 배우
배우가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식
배우와 인물 사이
비어 있는 몸으로 그리기
모든 유예된 것들의 지난한 아름다움
찬란한 시간의 미로
Inspire: 숨을 불어넣다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들
나오며: 완벽이나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저자
저자
김신록 배우. 연기를 통해 삶을, 삶을 통해 연기를 생각한다. 연기라는 일, 배우라는 정체성을 보다 넓은 의미로 탐색하고 있다. 연극배우 25명을 인터뷰한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썼고, 김홍석과 공동 저작자로 작업한 렉처 퍼포먼스 및 영상 「인간질서-질문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프리마파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우스피스」 「비평가」 등의 연극과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 「언더커버 하이스쿨」 등의 드라마, 「군체」 「전,란」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없는 시간」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 「위치와 운동」 「5 Takes」 등의 공연을 연출하고 출연했다.
「프리마파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우스피스」 「비평가」 등의 연극과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 「언더커버 하이스쿨」 등의 드라마, 「군체」 「전,란」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없는 시간」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 「위치와 운동」 「5 Takes」 등의 공연을 연출하고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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