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도의 서
세종의 수학 공부, 17만 명의 빅데이터
“나는 평생 게임을 즐겼다.
호기심, 궁금증과의 게임이다.”
『세종 이도의 서(書)』는 세종을 화자로 세워 그의 삶을 직접 듣게 하는 책이다. 공부를 ‘게임’처럼 즐겼던 소년 시절, 17만 명의 여론을 묻고 세법을 바꾸려 했던 집요함, 장영실과 함께 하늘의 시간을 재고, 마침내 훈민정음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의 목소리로 따라간다.
이 책은 세종의 중요한 정책과 업적을 다루면서도 설명에 매몰되지 않는다. 수학을 공부해 양전제도를 정비하고, 전국 17만 명의 여론을 조사해 공법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수많은 고민과 토론의 기록으로 제시된다. 장영실과의 만남처럼 그를 알아보고 곁에 두게 된 과정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는 한 인재를 발탁한 사건이라기보다, “하늘이 이런 인재를 내려주었다”는 감탄에 가까운 고백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의 벅찬 기쁨이 느껴진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장면에서는 일기적 형식의 힘이 더욱 빛난다. 오랫동안 비밀리에 연구하고, 완성의 기쁨을 혼자 안고 있다가 조정에 알리는 순간의 설렘이 전해진다. 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와 그에 대한 응답이 이어질 때에도,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했던 한 사람의 결단은 마치 그날의 토론을 곁에서 듣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또한 이 책은 세종의 성취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치수 사업에 충분히 힘쓰지 못한 점, 해양 진출에 소홀했던 점을 스스로 돌아보는 대목에서는 고백의 형식이 더욱 깊어진다. 완전한 영웅의 기록이 아니라, 후회와 성찰이 담긴 인간의 기록이기에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책 속의 세종 이도는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배우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람이며, 때로는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 솔직함이 인물을 단단하게 만든다. 독자는 한 시대를 이끈 군주를 바라보는 동시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의 자리를 다듬어 간 한 인간의 시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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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세종 이도의 서(書)』는 이미 수없이 불려 온 이름, 세종을 다시 천천히 읽게 하는 책이다. 위대한 성군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기보다, 한 인간 이도의 목소리를 빌려 그의 시간을 따라가게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과 서술 방식에 있다. 연대기적 평전도, 건조한 역사 해설서도 아니다. 마치 세종이 스스로 붓을 들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듯한 형식으로 서사가 펼쳐지고, 독자는 어느새 한 임금의 회고를 듣는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문장은 고백에 가깝고, 때로는 일기처럼 솔직하다. "나의 성정은 싱겁지도 짜지도 않았다. 짭조름했다고나 할까?"라는 첫 고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세종대왕의 온도와 결이 드러난다. 독자는 위인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사적인 기록을 엿보는 듯한 친밀함을 느낀다.
이러한 형식은 세종 이도(李?)를 친근하게 데려온다. 그는 천재로 태어났다는 통념을 스스로 부인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 익혔다고 담담히 말한다. 억지로 떠밀린 공부가 아니라, 자연 현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고 싶어 몰두했던 시간이었다고 돌아본다. 공부를 '게임'처럼 즐겼다는 표현은 특히 인상적이다.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탐구하고, 답을 찾으면 기쁨을 맛보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한 임금의 치열한 배움의 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세종이라는 이름이 조금 더 친숙해진다. 찬탄의 대상이기보다, 배움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존재로 남는다. 그의 말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삶을 비추는 조용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목차
목차
머리말
1. 나의 성정은 싱겁지도 짜지도 않았다. 짭조름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때로는 매운맛이 있었다.
2. 나는 배달민족, 단군 동이 조선의 후예이다.
?
3. 나는?1397년 4월에 조선 국왕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 고려 말, 조정과 사회지도층이 부패해서 백성의 삶이 극도로 곤궁하지 않았다면
5. 나는 천재 독서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6. 어깨너머 공부, 그 신묘한 체험을 돌이켜 본다.
7. "공부해라. 공부해라." 청소년기에는 이만큼 듣기 싫은 말도 없었을 게다.
8. 나는 소년 시절 음과 양의 변화 원리에 곧잘 정신을 빼앗겼었다.
9. 양녕 형님은 놀기 좋아하는 호기탕탕한 성정을 타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10. 임금이 된 다음 바로 산학(算學), 즉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11. 말을 타면서 공을 치는 것을 격구, 사발만 한 구멍에 장대로 나무 또는 마노로 만든 공을 처넣는 놀이를 격방
12. 나의 즉위 초, 조선의 인구는 약 600만 명 내외였다. 그중 10% 정도만이 글을 아는 사람이고
13. "세자 저하, 저는 벼슬보다도 피리를 더 좋아합니다." 박연(朴堧)은
14.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전쟁사를 편찬하다. 나 이도는 조선이 약소국이란 것,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대국인 명나라에
15. 장영실(蔣英實)과의 만남을 하늘에 감사한다. 재위 6년 되던 해 가을, 행색이 초라한 한 젊은이
16. 조선에서 화약을 처음 만든 최무선(崔茂宣)은 고려 말 사람이다. 그의 아들 최해산은 조선의 보배
17. '미치다'라는 말은 보통 '정신이 이상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어떤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거나 비정상적으로 열중하다'라는 뜻도 있다.
18. 특히 화포의 개량과 시험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회루 앞에서도 화포 실험을 하고
19. 대마도란 섬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다. 험하고 궁벽하며 협소한 곳이므로 왜놈들이 모여 사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20. 화포 전문 부대인 총통위(銃筒衛)를 만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포병사령부이다.
21. 북방을 개척하여 경계를 압록강, 두만강까지 넓혔다. 회고컨대 야인(野人)을 내치기만 했지 끌어안지는 못했다.
22. 1425년 재위 7년이 되던 해 나는 임금과 하위직 관료와의 대화, 윤대(輪對)를 정기적으로
23. 내가 임금을 할 때는 유독 반대하는 신하가 많았다. 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적으로 알기보다는 뜻을 달리하는 친구로 존중하는 편이었다.
24. 나는 권력으로 강제하지 않았다. 대화와 설득으로 나의 의지를 펼칠 수 있는 임금이 되고 싶었다.
25. 우리 민족이 한때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였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26. 재위 10년 되던 해 공법(세법) 개정에 착수했다. 나라 곳간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마무리하는 데 16년이나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찬반이 엇갈려 찬반 투표로 백성의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
27. 찬반투표에 부쳤던 새로운 공법(세법)의 내용은
28. 나는 틈나는 대로 의기(儀器, 천체 관측 기구), 천문과 역법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29. 나는 치수 사업을 대대적으로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백성의 농토에 물길을 내주지 못하고
30. 해양 진출에 소홀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31. 즉위 25년 12월 30일 1443년 훈민정음 28자를 완성하고, 예의(例義, 예와 뜻을 적은 것)를 조정에 알렸다.
32.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고심했던 것은
33.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서문,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34. 한글 창제에 대한 임금과 신하들 간의 토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 제작의 부당함을 상소하다. 정음 만든 지 2달 후인 재위 26년 1444년 2월 20일이다.
35. 최만리의 상소에 답하다
저자
저자
ㆍ 경운대학교 객원교수
ㆍ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관리관)
ㆍ 행정자치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장(이사관) 역임
[저서]
『행사와 의전 - 관행과 사례, 그 뒷이야기』, 사철나무, 2002
『자원봉사, 여기에 미래가 있다 - 엑스포 그리고 세계의 자원봉사 이야기』, 사철나무,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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