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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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윤동주의 원고 노트에 담긴 시와 낙서, 메모와 퇴고의 흔적들,
그 속에 기록된 시와 시인의 여정
민족 시인, 저항 시인, 국민 시인이라는 초상 너머
'경계에 선 시인' 윤동주를 만나다
생전에 '무명 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오래된 노트들을 세상에 남겼다. 만주 중학 시절이던 1934년 12월 24일, 「초 한 대」라는 시를 처음 적어 넣으며 시작한 첫 번째 원고 노트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두 번째 원고 노트 『창』, 끝내 출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자필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낱장 원고들에는 그가 일본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시를 쓰고, 고치고, 덧붙이며 한 편 한 편 지어나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트에 남은 치열한 퇴고의 흔적과 성실하게 기록된 창작 일자들은 그가 시를 쓴 정확한 시점, 시인이 머무른 공간의 변화,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세밀하게 시어를 선택하고 교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트 위에 펼쳐지는 전체 창작 과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순수한 우리말'뿐 아니라 옛말과 방언, 한자와 한자어, 외국어와 외래어로 된 '낯선' 시어들도 발견하게 된다. 노트 곳곳의 여백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쓰인 낙서, 일본어로 된 메모와 인용도 남아 있다.
이처럼 원고 노트에 기록된 복잡다단한 퇴고의 과정과 여러 언어·문자의 흔적은 약 110년 전 만주에서 태어나 80여 년 전 일본에서 짧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었던 시인의 삶의 궤적과 겹쳐진다. 이 책은 윤동주가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교차점에서 한 편 한 편 시를 적어 넣은 원고 노트를 통해 그의 삶과 시가 생동하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자필로 시를 써나간 원고 노트는 그의 시에 흔적을 남긴 '이동'과 '월경越境'의 역사, 그리고 시를 짓는 매 순간 그가 겪었을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시간을 헤아리며 우리는 한국문학의 확고한 '정전'으로 자리 잡은 윤동주 시와 그의 서사, 그를 끌어당기는 민족과 국가의 완고한 테두리를 넘어 경계 위에서 "몸으로서 일일히 헤아려" "겨우 몇 줄의 글"(「화원에 꽃이 핀다」)을 써나갔다는 시인의 몸짓과, 노트 위에 적히고 지워지고 고쳐지고 다시 쓰인 시의 역사를 마주한다.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틈새'에서 피어난 윤동주의 삶과 시
이역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또 다른 이역에서 생을 마친 때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 한국 사회에서 윤동주는 "일제 치하 민족의 수난기, 순정한 모국어를 수호한 민족·저항 시인"으로 기억·기념되고 있다. 그런데 언어가 '순정'하다거나, '순수'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언어가 순정하고 순수하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한자어와 외래어 등 외래적 요소를 배제하고 규범적으로 정확한 표준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한 단어, 한 문장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과정을 살피면, 우리가 믿어온 '순수'라는 개념의 범위에 포함되기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와 방언 어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한자를 병기하거나 한자만으로 표기를 하기도 했고, "뽈", "쩨네레?[제너레이션]", "포시?[포지션]"처럼 영어 단어를 한글로 음차한 단어나 "간즈매통", "도락구" 등의 일본어 단어, 일본식 한자와 중국식 간체자, 육진과 함경도·평안도·중부 지역의 방언 어휘들을 시에 담아냈다(「별 헤는 밤」의 너무나 익숙한 구절,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의 '헤다'도 '세다'를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참회록」 시고 여백의 여러 언어로 된 "낙서落書き"들("도항渡航", "증명?明", 힘, 생존生存, 문학文學",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등)도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과 '도항 증명'이 필요했던 시인의 번민과 복잡한 상황을 드러낸다. 이처럼 원고 노트 속 윤동주 시의 민낯을 응시할 때 마주하는 '낯선 언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윤동주의 삶은 여러 국가, 여러 장소에 걸쳐 있었다. 1917년 옛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난 윤동주의 생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중학 시절부터 평양 유학을 떠났다가 간도로 돌아왔고, 이후 다시 고향을 떠나 식민지 조선의 경성으로 향했다. 연희전문 졸업 후에는 식민 본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와 교토로 다시금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교토에서 체포된 시인은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시인은 오늘날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일본 열도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각각의 시간과 장소에서 윤동주는 만주에 온 조선인, 평양에 온 간도 사람, 경성에 온 간도 사람으로 존재했으며, 만주국에서는 '선계鮮係'이자 '일본 신민'으로 강제되었고, 일본 '내지'에서는 '외지인'으로 분류되었다. 시인은 매번 발화 위치가 달라지고 장소와 정체성이 어긋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저자는 이처럼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으며, 어느 한편의 경계 내부에 속하지 못하고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위치해왔던 윤동주를 '경계에 선 시인'이라 표현한다. 시인의 발화 위치와 고향과의 머나먼 거리를 드러내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게십니다."(「별 헤는 밤」), 시인이 "남의 나라" 일본에 머무르고 있음을 가리키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씨워진 시」)와 같은 시구들, 그의 시에 거듭 등장하는 '기차', '거리', '정거장'과 같은 '이동'의 표상들은 짧은 생애 동안 고향과 타향, 고국과 이국 사이를 오가며 길을 물은 시인의 경험을 체감하게 한다.
봄이 오든 아츰,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시 「사랑스런 추억」 중에서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박궈야 한다. 하나 내 차에도 신경행, 북경행, 남경행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행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진정한 내 고향이 있다면 고향행을 달겟다. 다음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산문 「종시」 중에서
윤동주의 이동은 비단 물리적 공간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동은 지역과 민족,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저자가 원고 노트의 퇴고 기록을 통해 시인의 언어 환경과 시어에 담긴 역사와 토양, 그리고 시어가 변화하는 과정을 깊이 탐색하는 이유이다. 윤동주는 조선인 이민자들이 북간도에 세운 명동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함경북도 끝자락 육진 방언의 한 갈래인 명동의 말을 모어로 익혔다. 또한 이 시기 만주는 현지어인 중국어와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가 공존하는 다중언어 공간이기도 했다. 이윽고 윤동주는 고국 조선의 평양과 경성에서 유학하지만, 식민지기 고국은 제국의 국어인 일본어와 식민지의 언어인 조선어가 명확한 위계를 이룬 양층어 체제가 고착되어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국제 질서의 격변과 더불어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와 그 사용자의 유입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듯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가운데, 조선어라는 '소수언어'를 모어로 사용한 윤동주는 나라와 지역을 이동하며 매번 다른 언어 환경을 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시어 역시 다양한 언어·문자와 접촉하고 길항하며 변화를 겪었다. '움직이는 시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언어'의 한순간을 붙잡아 원고 노트에 새겨 넣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시들은 모어와 다른 언어들, 방언과 표준어, 한글과 한자, 입말과 글말 사이를 오가며 거듭된 조율의 결과였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북이 어디냐 아라!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저야 할 곳에 떨어저야 한다.
-산문 「별똥 떨어진 데」 중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위기를 직면한 당대의 문학인들 모두에게 '언어'는 절박한 문제였다. 조선어와 조선문학이 소멸해가는 '황혼'의 시간, '어떤 조선어로, 어떤 조선어 문장으로 시를 쓸 것인가.' 선배 시인이었던 정지용은 당대의 복잡한 언어 현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시어를 발굴하고 다듬으며 예술성을 추구했고, 백석은 토속어와 방언을 적극 활용하며 고향과 공동체의 문화를 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예비 시인 윤동주도 선배 시인들의 시를 따라 읽고 적으며 자신의 언어를 정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윤동주가 찾은 "새로운 길"이 바로 일상의 어휘와 입말(구어), 방언과 한자(어)의 활용, 자연스러운 운율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쉬운 조선어-모어로 시 쓰기'였다. 조선어와 조선어 문학의 공간이 극히 위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윤동주는 가능한 한 많은 조선어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언어, 간도와 조선, 용정과 평양과 경성의 조선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쉬운 시어'라는 외피 아래에는 모어와 국어, 한글과 한자, 표준어와 방언이라는 이질적 언어·문자 사이를 넘나들며 섬세하게 조율해낸 시인의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일제 말기 그가 마주한 삶과 문학, 신앙과 시대, 생명의 문제를 시 속에 새겨 넣었다. 일제 말기 윤동주의 언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 독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읽히며 마치 '오늘'의 언어처럼 생생하게 와닿을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는 독자들의 모험
오늘, 동아시아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지금-여기'의 윤동주
두 개의 지면, 땅 위地面와 원고 노트 위紙面에서 펼쳐지는 윤동주의 삶과 시의 궤적을 따라 마지막 5장에 이르면, 80여 년 전 멈춰 선 시인의 시간은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그의 시를 읽는 '우리'의 시간과 연결된다. 우리에게 윤동주는 무엇인가. 8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무명의 시인은 지금 우리 곁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윤동주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기 위해, 저자는 먼저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한다. 윤동주의 독자들은 시인의 생이 그러했듯, 여러 국가와 장소에 걸쳐 있다. 즉,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의 범위는 한국인을 넘어 일본인, 재일조선인, 중국 조선족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그의 독자들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확대되는 양상은 생애 내내 경계를 넘어 이동했던 시인의 삶에서 연원하며, 한민족 이산의 역사와도 맞닿는다. 그리하여 생전의 시인은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으나, 사후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서 있는 경계선 안쪽에서 시인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오랫동안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이제는 '국민 시인'으로 호명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 한국문학의 '정전'으로 기리고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이민과 개척의 역사를 대변하는 '고향의 시인', '중국 조선족 시인', '애국 시인'으로 기억한다. 일본에서는 윤동주를 '평화의 시인', '화해의 시인'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놓지 않은 채 '평화'와 '화해'를 논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윤동주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되비추는 역사적 표상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윤동주 시의 독자이자 연구자로서 저자는 20여 년간 시인의 자취가 남은 동아시아의 여러 장소들, 서울과 연길, 용정, 도쿄, 교토, 나라, 후쿠오카 등지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인과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기록해왔다. 그 가운데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생전의 시인과 마찬가지로 지역·국가·민족·언어의 경계를 넘는 모험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며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일본 도시샤대학에 일본 최초의 윤동주 시비를 세운 '코리아 동창회'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생계를 위해 식민 종주국 일본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대개 재일조선인 2세인 그들은 시비 건립을 비롯하여 윤동주를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일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고, 또한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었다. 그들이 택한 '코리아'라는 이름에는 특정 국가의 이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경험, 남과 북, 총련과 민단으로 찢긴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한국인 유학생 손장희 감독은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비추는 다큐멘터리 영화 〈타카하라高原〉를 제작했다. 이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윤동주 시의 '소리 공간'을 주조해내고, 자료 화면과 인터뷰, 현재 교토의 풍경을 겹쳐놓으며 시인이 머무른 과거의 시공간을 현재와 연결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인천관동갤러리 관장인 도다 이쿠코는 젊은 시절 열혈 역사학도였음에도 '일제 시대'라는 말을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경계를 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윤동주를 만났다. 간도 조선인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 묻혀 있는 역사의 흔적을 발굴·소개하며 도다 이쿠코는 자신의 조국 일본의 역사가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했다. 일본 성공회 교단의 전쟁 책임 선언과 사죄를 이끌어낸 사제 이다 이즈미는 '피해자성'을 반복하거나 섣부른 '평화'와 '화해'로 귀결되지 않는 '책임'을 힘주어 말한다. 윤동주의 시를 한글 원문으로 직접 읽고 일본어로 번역하며 '윤동주 알리기'를 계속하는 그의 작업은 점차 우경화하며 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움직임이 발호하는 일본의 상황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이자, 그 내부의 '연루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행위이다.
80여 년 전 시인이 남긴 오래된 노트는 오늘의 독자들을 통해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기념비와 영화, 사진 등의 매체로 다시금 해석·창조되고 있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매개로 펼쳐지는 이 시대 독자들의 여정은 윤동주 시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복수의 '우리', '지금-여기'에 가닿으며 반향을 일으키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서로 연결된 여러 겹의 의미를 품게 된다. 즉, 시인이 몸을 움직여 손으로 써 내려간 원고 노트이자, 20여 년에 걸쳐 시인에 관해 읽고 듣고 써온 저자의 기록이며, 또한 시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의 시를 이어나간 노트인 것이다.
그 속에 기록된 시와 시인의 여정
민족 시인, 저항 시인, 국민 시인이라는 초상 너머
'경계에 선 시인' 윤동주를 만나다
생전에 '무명 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오래된 노트들을 세상에 남겼다. 만주 중학 시절이던 1934년 12월 24일, 「초 한 대」라는 시를 처음 적어 넣으며 시작한 첫 번째 원고 노트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두 번째 원고 노트 『창』, 끝내 출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자필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낱장 원고들에는 그가 일본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시를 쓰고, 고치고, 덧붙이며 한 편 한 편 지어나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트에 남은 치열한 퇴고의 흔적과 성실하게 기록된 창작 일자들은 그가 시를 쓴 정확한 시점, 시인이 머무른 공간의 변화,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세밀하게 시어를 선택하고 교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트 위에 펼쳐지는 전체 창작 과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순수한 우리말'뿐 아니라 옛말과 방언, 한자와 한자어, 외국어와 외래어로 된 '낯선' 시어들도 발견하게 된다. 노트 곳곳의 여백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쓰인 낙서, 일본어로 된 메모와 인용도 남아 있다.
이처럼 원고 노트에 기록된 복잡다단한 퇴고의 과정과 여러 언어·문자의 흔적은 약 110년 전 만주에서 태어나 80여 년 전 일본에서 짧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었던 시인의 삶의 궤적과 겹쳐진다. 이 책은 윤동주가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교차점에서 한 편 한 편 시를 적어 넣은 원고 노트를 통해 그의 삶과 시가 생동하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자필로 시를 써나간 원고 노트는 그의 시에 흔적을 남긴 '이동'과 '월경越境'의 역사, 그리고 시를 짓는 매 순간 그가 겪었을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시간을 헤아리며 우리는 한국문학의 확고한 '정전'으로 자리 잡은 윤동주 시와 그의 서사, 그를 끌어당기는 민족과 국가의 완고한 테두리를 넘어 경계 위에서 "몸으로서 일일히 헤아려" "겨우 몇 줄의 글"(「화원에 꽃이 핀다」)을 써나갔다는 시인의 몸짓과, 노트 위에 적히고 지워지고 고쳐지고 다시 쓰인 시의 역사를 마주한다.
고향 만주와 고국 조선, 제국 일본의
'틈새'에서 피어난 윤동주의 삶과 시
이역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또 다른 이역에서 생을 마친 때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 한국 사회에서 윤동주는 "일제 치하 민족의 수난기, 순정한 모국어를 수호한 민족·저항 시인"으로 기억·기념되고 있다. 그런데 언어가 '순정'하다거나, '순수'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언어가 순정하고 순수하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한자어와 외래어 등 외래적 요소를 배제하고 규범적으로 정확한 표준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윤동주의 원고 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한 단어, 한 문장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과정을 살피면, 우리가 믿어온 '순수'라는 개념의 범위에 포함되기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와 방언 어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한자를 병기하거나 한자만으로 표기를 하기도 했고, "뽈", "쩨네레?[제너레이션]", "포시?[포지션]"처럼 영어 단어를 한글로 음차한 단어나 "간즈매통", "도락구" 등의 일본어 단어, 일본식 한자와 중국식 간체자, 육진과 함경도·평안도·중부 지역의 방언 어휘들을 시에 담아냈다(「별 헤는 밤」의 너무나 익숙한 구절,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의 '헤다'도 '세다'를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참회록」 시고 여백의 여러 언어로 된 "낙서落書き"들("도항渡航", "증명?明", 힘, 생존生存, 문학文學",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등)도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과 '도항 증명'이 필요했던 시인의 번민과 복잡한 상황을 드러낸다. 이처럼 원고 노트 속 윤동주 시의 민낯을 응시할 때 마주하는 '낯선 언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윤동주의 삶은 여러 국가, 여러 장소에 걸쳐 있었다. 1917년 옛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난 윤동주의 생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중학 시절부터 평양 유학을 떠났다가 간도로 돌아왔고, 이후 다시 고향을 떠나 식민지 조선의 경성으로 향했다. 연희전문 졸업 후에는 식민 본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와 교토로 다시금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교토에서 체포된 시인은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시인은 오늘날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일본 열도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각각의 시간과 장소에서 윤동주는 만주에 온 조선인, 평양에 온 간도 사람, 경성에 온 간도 사람으로 존재했으며, 만주국에서는 '선계鮮係'이자 '일본 신민'으로 강제되었고, 일본 '내지'에서는 '외지인'으로 분류되었다. 시인은 매번 발화 위치가 달라지고 장소와 정체성이 어긋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저자는 이처럼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으며, 어느 한편의 경계 내부에 속하지 못하고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위치해왔던 윤동주를 '경계에 선 시인'이라 표현한다. 시인의 발화 위치와 고향과의 머나먼 거리를 드러내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게십니다."(「별 헤는 밤」), 시인이 "남의 나라" 일본에 머무르고 있음을 가리키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씨워진 시」)와 같은 시구들, 그의 시에 거듭 등장하는 '기차', '거리', '정거장'과 같은 '이동'의 표상들은 짧은 생애 동안 고향과 타향, 고국과 이국 사이를 오가며 길을 물은 시인의 경험을 체감하게 한다.
봄이 오든 아츰,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시 「사랑스런 추억」 중에서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박궈야 한다. 하나 내 차에도 신경행, 북경행, 남경행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행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진정한 내 고향이 있다면 고향행을 달겟다. 다음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산문 「종시」 중에서
윤동주의 이동은 비단 물리적 공간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동은 지역과 민족,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저자가 원고 노트의 퇴고 기록을 통해 시인의 언어 환경과 시어에 담긴 역사와 토양, 그리고 시어가 변화하는 과정을 깊이 탐색하는 이유이다. 윤동주는 조선인 이민자들이 북간도에 세운 명동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함경북도 끝자락 육진 방언의 한 갈래인 명동의 말을 모어로 익혔다. 또한 이 시기 만주는 현지어인 중국어와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가 공존하는 다중언어 공간이기도 했다. 이윽고 윤동주는 고국 조선의 평양과 경성에서 유학하지만, 식민지기 고국은 제국의 국어인 일본어와 식민지의 언어인 조선어가 명확한 위계를 이룬 양층어 체제가 고착되어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국제 질서의 격변과 더불어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와 그 사용자의 유입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듯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가운데, 조선어라는 '소수언어'를 모어로 사용한 윤동주는 나라와 지역을 이동하며 매번 다른 언어 환경을 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시어 역시 다양한 언어·문자와 접촉하고 길항하며 변화를 겪었다. '움직이는 시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언어'의 한순간을 붙잡아 원고 노트에 새겨 넣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시들은 모어와 다른 언어들, 방언과 표준어, 한글과 한자, 입말과 글말 사이를 오가며 거듭된 조율의 결과였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북이 어디냐 아라!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저야 할 곳에 떨어저야 한다.
-산문 「별똥 떨어진 데」 중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위기를 직면한 당대의 문학인들 모두에게 '언어'는 절박한 문제였다. 조선어와 조선문학이 소멸해가는 '황혼'의 시간, '어떤 조선어로, 어떤 조선어 문장으로 시를 쓸 것인가.' 선배 시인이었던 정지용은 당대의 복잡한 언어 현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시어를 발굴하고 다듬으며 예술성을 추구했고, 백석은 토속어와 방언을 적극 활용하며 고향과 공동체의 문화를 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예비 시인 윤동주도 선배 시인들의 시를 따라 읽고 적으며 자신의 언어를 정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윤동주가 찾은 "새로운 길"이 바로 일상의 어휘와 입말(구어), 방언과 한자(어)의 활용, 자연스러운 운율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쉬운 조선어-모어로 시 쓰기'였다. 조선어와 조선어 문학의 공간이 극히 위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윤동주는 가능한 한 많은 조선어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언어, 간도와 조선, 용정과 평양과 경성의 조선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쉬운 시어'라는 외피 아래에는 모어와 국어, 한글과 한자, 표준어와 방언이라는 이질적 언어·문자 사이를 넘나들며 섬세하게 조율해낸 시인의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일제 말기 그가 마주한 삶과 문학, 신앙과 시대, 생명의 문제를 시 속에 새겨 넣었다. 일제 말기 윤동주의 언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 독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읽히며 마치 '오늘'의 언어처럼 생생하게 와닿을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는 독자들의 모험
오늘, 동아시아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지금-여기'의 윤동주
두 개의 지면, 땅 위地面와 원고 노트 위紙面에서 펼쳐지는 윤동주의 삶과 시의 궤적을 따라 마지막 5장에 이르면, 80여 년 전 멈춰 선 시인의 시간은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그의 시를 읽는 '우리'의 시간과 연결된다. 우리에게 윤동주는 무엇인가. 8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무명의 시인은 지금 우리 곁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윤동주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기 위해, 저자는 먼저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한다. 윤동주의 독자들은 시인의 생이 그러했듯, 여러 국가와 장소에 걸쳐 있다. 즉, 윤동주를 기억하는 '우리'의 범위는 한국인을 넘어 일본인, 재일조선인, 중국 조선족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그의 독자들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확대되는 양상은 생애 내내 경계를 넘어 이동했던 시인의 삶에서 연원하며, 한민족 이산의 역사와도 맞닿는다. 그리하여 생전의 시인은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으나, 사후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서 있는 경계선 안쪽에서 시인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오랫동안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이제는 '국민 시인'으로 호명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 한국문학의 '정전'으로 기리고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이민과 개척의 역사를 대변하는 '고향의 시인', '중국 조선족 시인', '애국 시인'으로 기억한다. 일본에서는 윤동주를 '평화의 시인', '화해의 시인'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놓지 않은 채 '평화'와 '화해'를 논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윤동주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되비추는 역사적 표상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윤동주 시의 독자이자 연구자로서 저자는 20여 년간 시인의 자취가 남은 동아시아의 여러 장소들, 서울과 연길, 용정, 도쿄, 교토, 나라, 후쿠오카 등지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인과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기록해왔다. 그 가운데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생전의 시인과 마찬가지로 지역·국가·민족·언어의 경계를 넘는 모험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윤동주를 기억하며 윤동주와 함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일본 도시샤대학에 일본 최초의 윤동주 시비를 세운 '코리아 동창회'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생계를 위해 식민 종주국 일본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대개 재일조선인 2세인 그들은 시비 건립을 비롯하여 윤동주를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일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고, 또한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의 경계를 넘었다. 그들이 택한 '코리아'라는 이름에는 특정 국가의 이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경험, 남과 북, 총련과 민단으로 찢긴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한국인 유학생 손장희 감독은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비추는 다큐멘터리 영화 〈타카하라高原〉를 제작했다. 이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윤동주 시의 '소리 공간'을 주조해내고, 자료 화면과 인터뷰, 현재 교토의 풍경을 겹쳐놓으며 시인이 머무른 과거의 시공간을 현재와 연결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인천관동갤러리 관장인 도다 이쿠코는 젊은 시절 열혈 역사학도였음에도 '일제 시대'라는 말을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경계를 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윤동주를 만났다. 간도 조선인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 묻혀 있는 역사의 흔적을 발굴·소개하며 도다 이쿠코는 자신의 조국 일본의 역사가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했다. 일본 성공회 교단의 전쟁 책임 선언과 사죄를 이끌어낸 사제 이다 이즈미는 '피해자성'을 반복하거나 섣부른 '평화'와 '화해'로 귀결되지 않는 '책임'을 힘주어 말한다. 윤동주의 시를 한글 원문으로 직접 읽고 일본어로 번역하며 '윤동주 알리기'를 계속하는 그의 작업은 점차 우경화하며 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움직임이 발호하는 일본의 상황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이자, 그 내부의 '연루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행위이다.
80여 년 전 시인이 남긴 오래된 노트는 오늘의 독자들을 통해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기념비와 영화, 사진 등의 매체로 다시금 해석·창조되고 있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매개로 펼쳐지는 이 시대 독자들의 여정은 윤동주 시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복수의 '우리', '지금-여기'에 가닿으며 반향을 일으키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서로 연결된 여러 겹의 의미를 품게 된다. 즉, 시인이 몸을 움직여 손으로 써 내려간 원고 노트이자, 20여 년에 걸쳐 시인에 관해 읽고 듣고 써온 저자의 기록이며, 또한 시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의 시를 이어나간 노트인 것이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1장 중학 시절과 비밀 노트
첫 시집을 읽다
비밀 노트를 쓰는 사람들
비밀 노트를 쓰다 ? 글쓰기의 스승 ? 옮겨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기 ? 습작 노트-독자에게 가는 길목
날짜와 서명, 그리고 장소
시를 쓰는 '오늘'의 기록 ? 평양이라는 장소 ? 경계 너머의 그리움-평양에서 바라본 고국과 고향 ? 낯선 고향 ? 윤동주가 바라본 '고향' 만주
국경을 넘는 여행
윤동주의 연고를 찾아가는 여행 ? '시인윤동주지묘'의 발견 ? 다시, 묘비 앞에서 ? 간도를 떠난 간도 사람
2장 모어의 힘, '작은 언어'의 가능성
이방에서 만난 윤동주의 시
낯선 모어의 감각 ? 모어를 잃어버린 아이들 ? 윤동주의 모어
오래된 노트를 읽다
시인의 퇴고 과정을 따라 ? 드러내기와 감추기-시적 형상화의 과정 ? 뜻밖의 시어들-방언, 한자, 외국어
명동의 말, 육진의 말
명동, 낯선 땅의 모어 공동체 ? 육진 방언에 새겨진 월경과 이주의 역사 ? 부드럽고 은근하며 아름다운 명동의 말 ? 고향의 방언과 윤동주 시의 구어 감각
만주의 '작은 언어'
만주, 이동을 매개하는 경계지대 ?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 '틈새'의 언어 공간 ? 윤동주의 언어 환경 ? '작은 언어'의 가능성-소리 감각과 노래의 힘 ? 음악적 모어의 기억, '열린 모어'의 운동
3장 움직이는 시인, 움직이는 언어
신체의 이동, 다시 고국으로
'새로운 길' 위에서 ? 연희전문 시절과 기숙사 ? 기숙사에서 ? 아픈 세상-세속과 구원 사이에서 ? 기숙사 밖으로-세상을 향해
이동과 언어
일제 말기의 조선어 시험 ? 두 개의 언어-국어와 모어 ? 움직이는 모어 ? 어떤 조선어로 시를 쓸 것인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모어의 소리 공간
『문우』에 실린 윤동주 시 두 편 ? 활자의 이면, 우리말 소리를 새기다 ? 한자와 방언을 활용한 모어의 소리 공간 ? 연애 없는 연애 시와 '순이' ? '황혼'의 시간, 모어의 권리를 노래하다
4장 시인의 여정, 조응의 글쓰기
생명의 조응, 모어의 약동
한 장의 엽서 ?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사랑
출발과 도착 사이의 장소들-시인의 방, 거리, 정거장
백석의 집과 고향 ? 윤동주의 방-'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기차와 정거장-비장소에서 ?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향하여 ? '고향'이라는 질문
이동과 계절
사계절이 없는 나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 신체의 이동과 계절의 변화 ? 겨울을 살다 ? 봄이 되다
5장 오늘, 시인의 노트를 읽는 사람들
죽은 자와 산 자
감옥의 시간 ? 폭력의 체제, 죽음의 시간 ? 책의 생명, 이야기의 끈 ? 지금, 우리 곁의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원고 노트-재일코리안, 윤동주 시비를 세우다
일본에서 만난 '코리아의 시인' 윤동주 ? 동창회와 윤동주 시비 ? '귀향하지 못한' 조선 유학생과 '코리아'의 시인 ? 윤동주 추모 70주기, 노년의 동창생들
영화로 상상하는 윤동주의 교토 시절-손장희와 친구들,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담다
교토에서 찍은 영화 〈타카하라高原〉 ? 처음 만나는 윤동주, 새로 만나는 윤동주 ? '타카하라'라는 장소 ? 상상 속의 만남-윤동주와 교토의 조선인 ? 장소에 새겨진 시간의 지층
사진으로 읽는 간도의 시간-도다 이쿠코의 경계를 넘는 모험
도다 이쿠코와 윤동주 ? 당신은 일제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남조선' 아가씨, 중국에서 조선족을 만나다 ? 변경에서 본 개인과 역사 ? 첫 만남-윤동주의 고향에서 ? 마지막 정착지
연루된 삶, 사랑과 책임의 방법-윤동주 시를 번역하는 사제 이다 이즈미의 이야기
2019년 5월, 뜻밖의 만남 ? 이웃집 조선인 가족과 한국(어) 사랑 ? 사제의 길, 한국 기독교사 연구와 전쟁 책임 선언 ?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책임 ? 번역, 사랑의 방식 ? '연루'된 삶 ? 이어지는 이야기들
나오며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1장 중학 시절과 비밀 노트
첫 시집을 읽다
비밀 노트를 쓰는 사람들
비밀 노트를 쓰다 ? 글쓰기의 스승 ? 옮겨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기 ? 습작 노트-독자에게 가는 길목
날짜와 서명, 그리고 장소
시를 쓰는 '오늘'의 기록 ? 평양이라는 장소 ? 경계 너머의 그리움-평양에서 바라본 고국과 고향 ? 낯선 고향 ? 윤동주가 바라본 '고향' 만주
국경을 넘는 여행
윤동주의 연고를 찾아가는 여행 ? '시인윤동주지묘'의 발견 ? 다시, 묘비 앞에서 ? 간도를 떠난 간도 사람
2장 모어의 힘, '작은 언어'의 가능성
이방에서 만난 윤동주의 시
낯선 모어의 감각 ? 모어를 잃어버린 아이들 ? 윤동주의 모어
오래된 노트를 읽다
시인의 퇴고 과정을 따라 ? 드러내기와 감추기-시적 형상화의 과정 ? 뜻밖의 시어들-방언, 한자, 외국어
명동의 말, 육진의 말
명동, 낯선 땅의 모어 공동체 ? 육진 방언에 새겨진 월경과 이주의 역사 ? 부드럽고 은근하며 아름다운 명동의 말 ? 고향의 방언과 윤동주 시의 구어 감각
만주의 '작은 언어'
만주, 이동을 매개하는 경계지대 ?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 '틈새'의 언어 공간 ? 윤동주의 언어 환경 ? '작은 언어'의 가능성-소리 감각과 노래의 힘 ? 음악적 모어의 기억, '열린 모어'의 운동
3장 움직이는 시인, 움직이는 언어
신체의 이동, 다시 고국으로
'새로운 길' 위에서 ? 연희전문 시절과 기숙사 ? 기숙사에서 ? 아픈 세상-세속과 구원 사이에서 ? 기숙사 밖으로-세상을 향해
이동과 언어
일제 말기의 조선어 시험 ? 두 개의 언어-국어와 모어 ? 움직이는 모어 ? 어떤 조선어로 시를 쓸 것인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모어의 소리 공간
『문우』에 실린 윤동주 시 두 편 ? 활자의 이면, 우리말 소리를 새기다 ? 한자와 방언을 활용한 모어의 소리 공간 ? 연애 없는 연애 시와 '순이' ? '황혼'의 시간, 모어의 권리를 노래하다
4장 시인의 여정, 조응의 글쓰기
생명의 조응, 모어의 약동
한 장의 엽서 ?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사랑
출발과 도착 사이의 장소들-시인의 방, 거리, 정거장
백석의 집과 고향 ? 윤동주의 방-'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기차와 정거장-비장소에서 ?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향하여 ? '고향'이라는 질문
이동과 계절
사계절이 없는 나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 신체의 이동과 계절의 변화 ? 겨울을 살다 ? 봄이 되다
5장 오늘, 시인의 노트를 읽는 사람들
죽은 자와 산 자
감옥의 시간 ? 폭력의 체제, 죽음의 시간 ? 책의 생명, 이야기의 끈 ? 지금, 우리 곁의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원고 노트-재일코리안, 윤동주 시비를 세우다
일본에서 만난 '코리아의 시인' 윤동주 ? 동창회와 윤동주 시비 ? '귀향하지 못한' 조선 유학생과 '코리아'의 시인 ? 윤동주 추모 70주기, 노년의 동창생들
영화로 상상하는 윤동주의 교토 시절-손장희와 친구들, 시인의 마지막 장소를 담다
교토에서 찍은 영화 〈타카하라高原〉 ? 처음 만나는 윤동주, 새로 만나는 윤동주 ? '타카하라'라는 장소 ? 상상 속의 만남-윤동주와 교토의 조선인 ? 장소에 새겨진 시간의 지층
사진으로 읽는 간도의 시간-도다 이쿠코의 경계를 넘는 모험
도다 이쿠코와 윤동주 ? 당신은 일제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남조선' 아가씨, 중국에서 조선족을 만나다 ? 변경에서 본 개인과 역사 ? 첫 만남-윤동주의 고향에서 ? 마지막 정착지
연루된 삶, 사랑과 책임의 방법-윤동주 시를 번역하는 사제 이다 이즈미의 이야기
2019년 5월, 뜻밖의 만남 ? 이웃집 조선인 가족과 한국(어) 사랑 ? 사제의 길, 한국 기독교사 연구와 전쟁 책임 선언 ?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책임 ? 번역, 사랑의 방식 ? '연루'된 삶 ? 이어지는 이야기들
나오며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저자
저자
김신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윤동주의 오랜 독자이자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시를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쓰며 시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서울과 인천, 도쿄, 교토, 나라, 후쿠오카, 연길, 용정 등에서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왔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논문 「만주 이야기와 윤동주의 기억」, 「이중언어/다언어상황과 조선어 시쓰기의 문제: 윤동주 시를 중심으로」, 「윤동주 시의 장소 감각과 '비장소'의 의미」, 인터뷰 산문 「국경을 넘어 노사제와 나눈 윤동주 이야기」, 저서로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풍경과 시선』, 『동아시아 기억의 장』(공저), 『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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