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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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으면서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나아가는,
그리하여 굴레를 벗어나는 재일·이주·여성을 기록하다
조경희는 재일조선인 3세로, 2001년 12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암송해온 할아버지의 본적지,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 이조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경주역에 도착해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고 택시에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졌다. 그날 그는 평생 암송해온 '고향'을 눈앞에 두고 돌아섰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그리고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의 첫 번째 단독 저술인 『낯선 집』은 이 미완의 귀향에서 출발해, "주어진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라는 시각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에 접근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이 마주하는 시민권의 경계,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정상성'의 외피를 입고 있는 혐오의 정동, 그리고 날 선 경계 위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며 삶의 자리를 엮어온 재일여성들의 실천을 가로지른다. 외국인에게 어느 선까지 정치적 권리를 허용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여기에는 이른바 1세계 출신과 3세계 출신의 차이까지 작동한다)과 난민 혐오, 자국민 우선권 또는 독점권을 내건 배외주의의 생생한 현장들이 한일 양국의 오가며 펼쳐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느 쪽 주류담론에도 온전히 담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주목한다. 거기에서는 한일 양국의 경계가, 자국과 외국을 가르고 인종과 민족과 성별과 그 밖의 다양한 차이를 구별하던 차별이, 두 사회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이제 그 경계와 차별 위에서 삶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리하여 굴레를 벗어나는 재일·이주·여성을 기록하다
조경희는 재일조선인 3세로, 2001년 12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암송해온 할아버지의 본적지,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 이조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경주역에 도착해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고 택시에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졌다. 그날 그는 평생 암송해온 '고향'을 눈앞에 두고 돌아섰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그리고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의 첫 번째 단독 저술인 『낯선 집』은 이 미완의 귀향에서 출발해, "주어진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라는 시각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에 접근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이 마주하는 시민권의 경계,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정상성'의 외피를 입고 있는 혐오의 정동, 그리고 날 선 경계 위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며 삶의 자리를 엮어온 재일여성들의 실천을 가로지른다. 외국인에게 어느 선까지 정치적 권리를 허용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여기에는 이른바 1세계 출신과 3세계 출신의 차이까지 작동한다)과 난민 혐오, 자국민 우선권 또는 독점권을 내건 배외주의의 생생한 현장들이 한일 양국의 오가며 펼쳐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느 쪽 주류담론에도 온전히 담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주목한다. 거기에서는 한일 양국의 경계가, 자국과 외국을 가르고 인종과 민족과 성별과 그 밖의 다양한 차이를 구별하던 차별이, 두 사회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이제 그 경계와 차별 위에서 삶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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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귀환을 포기한 자리에서 다시 발견한 '집'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흔히 하나의 공식을 따른다. 고향에서의 이산, 타향에서의 수난,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질 귀환. 상실한 기원을 회복해야 이산의 삶이 끝난다는 이 회귀의 서사가 그동안 한국사회가 자이니치를 바라본 방식이다. 그러나 『낯선 집』은 정반대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살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암송해온 한국의 본적지를 눈앞에 두고 택시를 돌린 순간, 조경희는 귀환으로 이산을 끝내는 대신 '미완의 귀향'을 선택했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겨울 들판과 낮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고향'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있는 바로 이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고향은 돌아가야 할 저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장소 바로 여기로 바뀌었다.
역사는 하나의 기원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과거의 파편들이 불현듯 번쩍이는 순간들로 구성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 개념을 빌리자면, 내가 그날 택시에서 놓아버린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_「마치며」, 295쪽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는 재일·이주·여성의 삶을 좇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들이 환대받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지어온 과정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그가 제시하는 집 만들기homing는 원래의 둥지로 돌아가는 '귀소'가 아니다.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다.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며 낯선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가는 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실천이 철저히 젠더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는 일, 곧 집을 만드는 노동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돌봄노동과 분리될 수 없었다. 재일조선인 연구와 페미니즘, 정동 이론을 교차시키는 이 책의 시각은 여기서 나온다. 『낯선 집』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결핍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기어이 집을 엮어온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실천을 가리킨다.
한국은 '돌아온' 동포들의 집이 되었을까?
1부 「시민의 경계」는 한국 안을 바라본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수많은 '조선인'이 나라를 떠났다. 오늘날에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중국 간도 지역에 터전을 잡았던 조선족,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 등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환이주'가 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온 동포들에게 한국은 온전한 집이 되어주지 못했다. 지은이는 재한 자이니치들의 보육료 지원 헌법소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케이방역'의 성공에 가려진 재외동포와 이주민 배제 정책,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로 드러난 다문화주의의 폐쇄성을 차례로 짚는다. 그리고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상대국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참정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논리적 근거도 없고 실익도 없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짙은 기시감을 느낀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우파가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을 가로막으며 반복해온 논리가 한국에서 '상호주의'의 이름으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 포용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이동 속에서 집과 정체성은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제도와 인식을 극복하는 일이 배제의 경계를 허무는 첫 단계이다.
재한 자이니치들은 일본과 한반도 남북에 걸친 삶이 불가피했던 개인적 경험을 역사화하고, 나고 자란 일본과 조국 한반도에 대한 이중 혹은 삼중의 귀환권을 정당한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 … 재한 자이니치에게 일본은 '재일'로 살아온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며, 여전히 가족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권리와 사회적 승인은 '재한'으로서의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 그것은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상상하고 일상에서 그 경계를 허물어가는 과정이다. _「'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37쪽
이주노동이 없으면 공장이 멈추고, 식당이 문을 닫으며, 이삿짐조차 옮길 수 없는 오늘의 한국에서, '복수의 집을 가질 권리'는 더 이상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는 어떻게 정상이 되었나
2부 「혐오의 거울」은 일본사회가 지난 30년 동안 지나온 혐오의 궤적을 추적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전쟁, 재특회의 노골적이고 위협적인 헤이트스피치, 그리고 『반일 종족주의』가 보여준 '한국의 역사부정'까지 살피면서 지은이는 한일 양국에서 부정론이 동시대의 산물로 자라났다고 말한다. 그가 혐오를 분석하며 던지는 질문은 집요하다.
'이 두려움'과 '저 두려움' 사이에 있는 깊은 낙차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두려움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_「'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146쪽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배제의 언어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안전, 상식, 질서, 국민의 권리, 여성 보호 같은 '정상화된' 언어로 교체되었다. 평범한 말로 평범하지 않은 맥락을 뱉어내는 혐오발언은 일상을 더욱 심각한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2025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내건 참정당의 약진이 그 귀결이었다.
"돌아가라"거나 "쫓아내자"는 노골적인 표현은 자취를 감추었을지라도, "일본인 퍼스트"나 "이민 반대" 같은 구호가 동일한 배제의 효과를 보다 제도적이고 정당화된 언어로 수행하고 있다. _「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174쪽
2부에 '혐오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이 지나온 이 궤적이 고스란히 한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을 1부에서 본 한국의 장면들과 겹쳐 볼 때, 일본의 궤적은 마치 예고편처럼 읽힌다. 코로나 초기 '우한폐렴'이라는 호명과 함께 쏟아진 중국 포비아는 서울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조선족 동포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태원 클럽에서의 감염은 '게이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성소수자를 불안하고 위험한 존재로 오염시켰다.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앞에서는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내세우던 포용성이 파괴되었고, '여성의 안전'을 내세워 난민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 대목에서 조경희는 스마트폰을 소지한 난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감각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고 축소하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난민·이주민·특히 조선족 혐오, 일본의 역사부정과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렇게 서로를 비추며 몸집을 불렸다. 안전과 상식의 언어로 정상화되는 배제가 이제는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일본을 비판하는 일은, 우리 안의 혐오를 직시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돌봄과 회복의 '집 만들기'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에서 책은 다시 집 만들기의 장면들로 돌아온다. 이토 시오리로 상징되는 일본의 미투운동,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한국 여성문학의 재발견은 표준화된 여성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특히 '김지영'에게 공감이 집중되는 동안 가정노동과 돌봄으로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를 지탱해온 '엄마 오미숙'의 자리는 삭제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은 가부장제 극복과 성차별 철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혹시 나였을 수도 있다"는 신체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재일 2세 여성들이 진보적 재일남성들의 가부장적 논리와 일본인 페미니스트들의 비역사성을 동시에 비판하며 자신들의 교차적 위치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계보의 끝에서 지은이는 작가 이신혜의 싸움을 조명한다. 재특회의 혐오발언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이신혜는 2017년 최종 승소했고, 법원은 그를 향한 공격이 "원고가 여성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그 외모 등을 모욕하는 표현을 사용한 점에서 여성차별이 결합된 복합차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중첩된 복합차별을 일본 사법부가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신혜는 상처 입은 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싸움을 위해 법정에 갈 때마다 "50년 전 어미니가 입던 하늘색 한복"을 입고 갔다.
여성들이 민족의 경계를 재생산하는 '공동체의 전달자bearers of the collective'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몸을 활용한 저항은 여전히 그러한 지배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신혜에게 한복은 민족과 전통을 재현하거나 과시하는 표상이 아니라, 민족과 여성이라는 복합차별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아온 자신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취약성을 가시화하고 혐오의 폭력이 만들어낸 관계를 전복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한복을 입는 행위는 재일여성이라는 교차적 위치를 살아내며 관계를 엮고 삶의 기반을 회복하는 '집 만들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_「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288쪽
혐오에 맞서는 여성들의 돌봄과 관계 회복의 실천은, 상실과 결핍으로 각인된 디아스포라의 정동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관계와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집 만들기다. 『낯선 집』은 일상을 지탱해온 여성들의 실천에 이렇게 이름을 부여한다.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백래시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계 위에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흔히 하나의 공식을 따른다. 고향에서의 이산, 타향에서의 수난,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질 귀환. 상실한 기원을 회복해야 이산의 삶이 끝난다는 이 회귀의 서사가 그동안 한국사회가 자이니치를 바라본 방식이다. 그러나 『낯선 집』은 정반대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살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암송해온 한국의 본적지를 눈앞에 두고 택시를 돌린 순간, 조경희는 귀환으로 이산을 끝내는 대신 '미완의 귀향'을 선택했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겨울 들판과 낮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고향'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있는 바로 이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고향은 돌아가야 할 저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장소 바로 여기로 바뀌었다.
역사는 하나의 기원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과거의 파편들이 불현듯 번쩍이는 순간들로 구성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 개념을 빌리자면, 내가 그날 택시에서 놓아버린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_「마치며」, 295쪽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는 재일·이주·여성의 삶을 좇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들이 환대받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지어온 과정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그가 제시하는 집 만들기homing는 원래의 둥지로 돌아가는 '귀소'가 아니다.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다.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며 낯선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가는 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실천이 철저히 젠더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는 일, 곧 집을 만드는 노동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돌봄노동과 분리될 수 없었다. 재일조선인 연구와 페미니즘, 정동 이론을 교차시키는 이 책의 시각은 여기서 나온다. 『낯선 집』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결핍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기어이 집을 엮어온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실천을 가리킨다.
한국은 '돌아온' 동포들의 집이 되었을까?
1부 「시민의 경계」는 한국 안을 바라본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수많은 '조선인'이 나라를 떠났다. 오늘날에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중국 간도 지역에 터전을 잡았던 조선족,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 등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환이주'가 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온 동포들에게 한국은 온전한 집이 되어주지 못했다. 지은이는 재한 자이니치들의 보육료 지원 헌법소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케이방역'의 성공에 가려진 재외동포와 이주민 배제 정책,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로 드러난 다문화주의의 폐쇄성을 차례로 짚는다. 그리고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상대국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참정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논리적 근거도 없고 실익도 없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짙은 기시감을 느낀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우파가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을 가로막으며 반복해온 논리가 한국에서 '상호주의'의 이름으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 포용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이동 속에서 집과 정체성은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제도와 인식을 극복하는 일이 배제의 경계를 허무는 첫 단계이다.
재한 자이니치들은 일본과 한반도 남북에 걸친 삶이 불가피했던 개인적 경험을 역사화하고, 나고 자란 일본과 조국 한반도에 대한 이중 혹은 삼중의 귀환권을 정당한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 … 재한 자이니치에게 일본은 '재일'로 살아온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며, 여전히 가족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권리와 사회적 승인은 '재한'으로서의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 그것은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상상하고 일상에서 그 경계를 허물어가는 과정이다. _「'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37쪽
이주노동이 없으면 공장이 멈추고, 식당이 문을 닫으며, 이삿짐조차 옮길 수 없는 오늘의 한국에서, '복수의 집을 가질 권리'는 더 이상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는 어떻게 정상이 되었나
2부 「혐오의 거울」은 일본사회가 지난 30년 동안 지나온 혐오의 궤적을 추적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전쟁, 재특회의 노골적이고 위협적인 헤이트스피치, 그리고 『반일 종족주의』가 보여준 '한국의 역사부정'까지 살피면서 지은이는 한일 양국에서 부정론이 동시대의 산물로 자라났다고 말한다. 그가 혐오를 분석하며 던지는 질문은 집요하다.
'이 두려움'과 '저 두려움' 사이에 있는 깊은 낙차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두려움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_「'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146쪽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배제의 언어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안전, 상식, 질서, 국민의 권리, 여성 보호 같은 '정상화된' 언어로 교체되었다. 평범한 말로 평범하지 않은 맥락을 뱉어내는 혐오발언은 일상을 더욱 심각한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2025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내건 참정당의 약진이 그 귀결이었다.
"돌아가라"거나 "쫓아내자"는 노골적인 표현은 자취를 감추었을지라도, "일본인 퍼스트"나 "이민 반대" 같은 구호가 동일한 배제의 효과를 보다 제도적이고 정당화된 언어로 수행하고 있다. _「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174쪽
2부에 '혐오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이 지나온 이 궤적이 고스란히 한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을 1부에서 본 한국의 장면들과 겹쳐 볼 때, 일본의 궤적은 마치 예고편처럼 읽힌다. 코로나 초기 '우한폐렴'이라는 호명과 함께 쏟아진 중국 포비아는 서울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조선족 동포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태원 클럽에서의 감염은 '게이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성소수자를 불안하고 위험한 존재로 오염시켰다.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앞에서는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내세우던 포용성이 파괴되었고, '여성의 안전'을 내세워 난민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 대목에서 조경희는 스마트폰을 소지한 난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감각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고 축소하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난민·이주민·특히 조선족 혐오, 일본의 역사부정과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렇게 서로를 비추며 몸집을 불렸다. 안전과 상식의 언어로 정상화되는 배제가 이제는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일본을 비판하는 일은, 우리 안의 혐오를 직시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돌봄과 회복의 '집 만들기'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에서 책은 다시 집 만들기의 장면들로 돌아온다. 이토 시오리로 상징되는 일본의 미투운동,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한국 여성문학의 재발견은 표준화된 여성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특히 '김지영'에게 공감이 집중되는 동안 가정노동과 돌봄으로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를 지탱해온 '엄마 오미숙'의 자리는 삭제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은 가부장제 극복과 성차별 철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혹시 나였을 수도 있다"는 신체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재일 2세 여성들이 진보적 재일남성들의 가부장적 논리와 일본인 페미니스트들의 비역사성을 동시에 비판하며 자신들의 교차적 위치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계보의 끝에서 지은이는 작가 이신혜의 싸움을 조명한다. 재특회의 혐오발언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이신혜는 2017년 최종 승소했고, 법원은 그를 향한 공격이 "원고가 여성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그 외모 등을 모욕하는 표현을 사용한 점에서 여성차별이 결합된 복합차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중첩된 복합차별을 일본 사법부가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신혜는 상처 입은 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싸움을 위해 법정에 갈 때마다 "50년 전 어미니가 입던 하늘색 한복"을 입고 갔다.
여성들이 민족의 경계를 재생산하는 '공동체의 전달자bearers of the collective'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몸을 활용한 저항은 여전히 그러한 지배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신혜에게 한복은 민족과 전통을 재현하거나 과시하는 표상이 아니라, 민족과 여성이라는 복합차별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아온 자신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취약성을 가시화하고 혐오의 폭력이 만들어낸 관계를 전복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한복을 입는 행위는 재일여성이라는 교차적 위치를 살아내며 관계를 엮고 삶의 기반을 회복하는 '집 만들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_「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288쪽
혐오에 맞서는 여성들의 돌봄과 관계 회복의 실천은, 상실과 결핍으로 각인된 디아스포라의 정동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관계와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집 만들기다. 『낯선 집』은 일상을 지탱해온 여성들의 실천에 이렇게 이름을 부여한다.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백래시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계 위에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Home is some-where 5
1부 시민의 경계
'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디아스포라의 귀환이주 17
안전의 경계와 (비) 가시화되는 신체: 재난시대 주민의 권리 39
배반당한 다문화주의: 한국사회의 난민 혐오 57
'재일시민'이라는 미완의 기획: 일본 지방참정권 문제의 좌절 75
2부 혐오의 거울
역사수정주의와 백래시의 결합: 새역모와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99
'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123
'우리' 안의 역사부정: 자기부정으로서의 『반일종족주의』 147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네이티비즘과 반젠더의 정동 정치 167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
일본의 미투운동과 포스트페미니즘 199
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케이문학ㆍ페미니즘ㆍ문화번역 223
포스트식민페미니즘의 (재)소환: 1990년대 재일여성들의 위안부운동과 정체성 정치 241
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269
마치며: 집을 향한 길 위에서 291
주 297
1부 시민의 경계
'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디아스포라의 귀환이주 17
안전의 경계와 (비) 가시화되는 신체: 재난시대 주민의 권리 39
배반당한 다문화주의: 한국사회의 난민 혐오 57
'재일시민'이라는 미완의 기획: 일본 지방참정권 문제의 좌절 75
2부 혐오의 거울
역사수정주의와 백래시의 결합: 새역모와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99
'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123
'우리' 안의 역사부정: 자기부정으로서의 『반일종족주의』 147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네이티비즘과 반젠더의 정동 정치 167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
일본의 미투운동과 포스트페미니즘 199
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케이문학ㆍ페미니즘ㆍ문화번역 223
포스트식민페미니즘의 (재)소환: 1990년대 재일여성들의 위안부운동과 정체성 정치 241
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269
마치며: 집을 향한 길 위에서 291
주 297
저자
저자
조경희 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 및 평화월딩연구소 교수.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였고 「제국일본/식민지조선의 사회사업과 민중통치」 연구로 도쿄외국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식민주의와 젠더의 관점에서 일본사회·문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문제 등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질서를 이동과 경계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정동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한울, 2017), 『'나'를 증명하기: 동아시아에서 국적, 여권, 등록』(한울, 2017), 『포스트 냉전과 팬데믹: 오키나와의 코로나 경험과 정동』(소명출판, 2021), 『?余の?を?く: 沖?ㆍ韓國ㆍパレスチナ』(明石書店, 2021) 등을 동료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썼다. 또한 『동아시아의 역사부정과 혐오 정동』(소명출판, 2025)을 책임편집하고 『보통이 아닌 날들: 가족사진으로 보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의 삶』(사계절출판사, 2019)의 한국어판을 감수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질서를 이동과 경계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정동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한울, 2017), 『'나'를 증명하기: 동아시아에서 국적, 여권, 등록』(한울, 2017), 『포스트 냉전과 팬데믹: 오키나와의 코로나 경험과 정동』(소명출판, 2021), 『?余の?を?く: 沖?ㆍ韓國ㆍパレスチナ』(明石書店, 2021) 등을 동료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썼다. 또한 『동아시아의 역사부정과 혐오 정동』(소명출판, 2025)을 책임편집하고 『보통이 아닌 날들: 가족사진으로 보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의 삶』(사계절출판사, 2019)의 한국어판을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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