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위 멸망해도(사계절1318문고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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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일곱 조각의 사랑
장르를 넘나드는 사랑과 멸망, 구원의 작가 남유하 신작
사계절1318문고 155번째 책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푸른 머리카락」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가 처음 내놓는 청소년소설집이다. SF와 판타지, 호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곱 편의 단편에는 사랑과 죽음이 나란히 담겨 있다. 『나무가 된 아이』에서 어린이 마음속 그림자를 기묘한 환상동화로 빚어 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세계의 끝에 선 청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세상 사람들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더니 정말로 구남친과 단둘이 세상에 남은 아이,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키는 인공 자궁에서 '불량'으로 태어난 아이, 좋아하는 사람이 만지면 몸에서 빛이 나는 아이, 세상을 떠난 단짝이 '머리'를 잃은 채로 돌아오자 그를 되찾기 위해 밤새 마을을 헤매는 아이, 바이러스를 피해 거대한 무균실에서 살아가는 아이……. 남유하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 속 세계는 아주 아슬아슬하고 조금 일그러져 있다. 그 속에서 청소년 주인공들은 너무나 청소년답다. 이미 무너졌든 완벽하게 통제된 곳이든, 그 어디에서도 가만히 멈추어 있지 않는 것이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닫힌 문을 스스로 연다. 이 책은 그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세상은 그리 평화롭지도 안전하지도 않지만,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고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전한다.
화려한 포장지로 가혹한 현실을 가리기보다는 이 녹록지 않은 세상의 가혹한 민낯을 솔직히 비추면서도 그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반짝이는 진실을 어렵게 찾아 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남유하 작가다운 방식이며, 독자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다. 섬뜩하고 처절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이 책에서 멸망을 뛰어넘는 눈부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 내용]
눈을 뜨자 세상에 단 둘만 남은 옛 연인, 인공 자궁에서 '불량품'으로 태어난 아이, 좋아하는 사람이 만지면 빛이 나는 아이, 머리 없이 돌아온 단짝의 머리를 찾아 밤새 헤매는 아이, 학교 화단에 나타난 날개 달린 흙 인형을 홀로 지켜보는 아이, 거대한 무균실에서 바다를 꿈꾸는 아이, 비가 오는 날마다 이상해지는 엄마 곁을 지키는 아이……. 멸망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죽음보다 끈질기고 엉망으로 일그러진, 그럼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일곱 조각의 사랑.
장르를 넘나드는 사랑과 멸망, 구원의 작가 남유하 신작
사계절1318문고 155번째 책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푸른 머리카락」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가 처음 내놓는 청소년소설집이다. SF와 판타지, 호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곱 편의 단편에는 사랑과 죽음이 나란히 담겨 있다. 『나무가 된 아이』에서 어린이 마음속 그림자를 기묘한 환상동화로 빚어 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세계의 끝에 선 청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세상 사람들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더니 정말로 구남친과 단둘이 세상에 남은 아이,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키는 인공 자궁에서 '불량'으로 태어난 아이, 좋아하는 사람이 만지면 몸에서 빛이 나는 아이, 세상을 떠난 단짝이 '머리'를 잃은 채로 돌아오자 그를 되찾기 위해 밤새 마을을 헤매는 아이, 바이러스를 피해 거대한 무균실에서 살아가는 아이……. 남유하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 속 세계는 아주 아슬아슬하고 조금 일그러져 있다. 그 속에서 청소년 주인공들은 너무나 청소년답다. 이미 무너졌든 완벽하게 통제된 곳이든, 그 어디에서도 가만히 멈추어 있지 않는 것이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닫힌 문을 스스로 연다. 이 책은 그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세상은 그리 평화롭지도 안전하지도 않지만,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고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전한다.
화려한 포장지로 가혹한 현실을 가리기보다는 이 녹록지 않은 세상의 가혹한 민낯을 솔직히 비추면서도 그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반짝이는 진실을 어렵게 찾아 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남유하 작가다운 방식이며, 독자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다. 섬뜩하고 처절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이 책에서 멸망을 뛰어넘는 눈부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 내용]
눈을 뜨자 세상에 단 둘만 남은 옛 연인, 인공 자궁에서 '불량품'으로 태어난 아이, 좋아하는 사람이 만지면 빛이 나는 아이, 머리 없이 돌아온 단짝의 머리를 찾아 밤새 헤매는 아이, 학교 화단에 나타난 날개 달린 흙 인형을 홀로 지켜보는 아이, 거대한 무균실에서 바다를 꿈꾸는 아이, 비가 오는 날마다 이상해지는 엄마 곁을 지키는 아이……. 멸망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죽음보다 끈질기고 엉망으로 일그러진, 그럼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일곱 조각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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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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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너와 나, 단 둘만 남으면 좋겠다
표제작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멸망 직전의 세계라는 거대한 상상을, 편의점 탁자 위의 아주 작고 구체적인 장면들로 채운 사뭇 사랑스러운 단편이다.
12월 31일 토요일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위화감을 느낀다. 집 안에 언니가 없고, 옆집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어젯밤 잠들기 전, 세상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게 해 달라고 빌었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텅 빈 주차장에서 누군가 올려다보고 있다. 2년 반 전에 헤어진 구남친 '재이'다. 둘은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 나란히 앉아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사귀던 시절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컵라면 물이 불 때까지 3분 동안 추던 춤, 함께 듣던 노래, 엉뚱한 농담, 서로에게 주었던 위로를 상기한다.
그러다 재이가 함께 읽은 소설 속 '원숭이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고백한다. 실은 "너랑 둘만 있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소설에서 원숭이 손은 언제나 소원을 기묘한 방식으로 들어주어서, 결국 등장인물들이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제야 모든 것이 조금씩 비틀린 편의점 풍경, 편의점을 조금만 벗어나도 폐허뿐인 세상을 자각한다. 사뭇 달콤했던 분위기는 그를 기점으로 달라진다. 둘이 헤어진 것은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다.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는 나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재이가 불행을 공유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원숭이 손에게 빌 수 있는 소원은 이제 딱 하나.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이대로 여기 남을 것인가?
"소설처럼, 영화처럼, 사랑이 모든 걸 구원할까?"(57쪽)
결정에 앞서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지만 쉽게 답을 내지 못한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돌아갈 세계는 여전히 살기 힘든 곳일 테고 사랑은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 놓는 마법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련 따위 없는 줄 알았던 그 현실에 '세상에 너랑 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빌어 줄 사람이 있다면, 한번 돌아가 볼 만하지 않을까? 서로의 불행을 외면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 앉은 그 하루는, 어떤 세계에서든 살아남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세계라는 허상
요즘 한국의 기성세대는 청소년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데에 열을 올린다. 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기에 고심하면서, 그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에 대비해야 언젠가 나아갈 세상에서 덜 상처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른이 만든 울타리는 청소년에게 정말로 안전할까?
「에그」는 아이들의 97.5 퍼센트가 '에그'에서 태어나는 시대가 배경이다. 부모의 우수한 유전자만 골라 완전무결한 아이를 태어나도록 하는 인공 자궁 에그는 이미 국가 주도의 사업이다. 그런데 에그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좌우 비대칭인 얼굴과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친구와 부모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불량품'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어느 날, 십수 년 전 에그의 온도에 오류가 있었다는 뉴스가 발표되며 의혹은 기정 사실이 된다. 그러나 독자의 눈에는, 자식 앞에서 당당히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아버지보다 사회가 정한 '특별함'과 자신의 '다름'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청소년이 훨씬 상식적이고 완전한 인간으로 보인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주인공 청소년은 바이러스를 피해 돔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무균실, '학교'에서 산다. 어른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유행에서 죽지 않은, 일명 '살아남은 아이들'을 그곳에 모았다. 아이들은 화면 속 교사에게 배우고,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인공 바람에 의해 매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숲의 풍경을 본다. 무엇도 자신을 해칠 수 없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 룸메이트와 비밀을 주고받을 때나 바깥세상에서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릴 때만 생동감을 느낀다. 결국 주인공과 룸메이트는 탈출을 감행하고, 마지막 문 앞에서 맞닥뜨린 로봇은 의외로 아이들을 막지 않는다. 원한다면 나갈 수 있지만 학교는 퇴소를 권하지 않으며, 바깥은 위험하다고 알려 줄 뿐이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겠느냐는 질문에 두 청소년은 어떤 답을 할까? 살아남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서로 다른 의미라면, 독자인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빛나지 않아」는 그 질문을 사랑에 대입해 본다. 주인공 '연우'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접촉하면 몸에서 빛이 난다. '태오'의 손등이 스칠 때마다 오팔처럼 반짝이던 연우의 빛은, 사귄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흐려지기 시작한다. 태오는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연우는 그를 믿기 어렵다. 상대의 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사랑에 의한 '관계'는 더 안전해질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가 정교해져도 관계와 미래가 가진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감정과 불안, 상처와 모험을 모두 끌어안아야 비로소 삶이라는 것을, 남유하 작가는 장르 문학의 장치로 솜씨 있게 보여 준다.
죽음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
「숨은 머리 찾기」의 '엠마'가 사는 마을에는 죽은 지 39일째 되는 날 망자가 무덤에서 돌아오는 풍습이 있다. 망자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돌아오며, 머리 없이 돌아온 망자를 맞은 사람은 새벽이 오기 전에 그 머리를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밤 열 시, 엠마의 집 앞에 소꿉친구 바이올렛이 머리 없이 서 있다. 며칠 전, 엠마 때문에 연못에 뛰어들었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친구다. 마을을 헤매는 하룻밤 동안, 엠마는 오래 감춰 온 죄책감을 마주한다.
"어쩌면 죽은 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닐까?"(118쪽)
「우투리 토우」는 옛이야기 속 '아기 장수 우투리'를 오늘로 불러온다. 별안간 학교 화단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토우(흙 인형)가 나타나고, 주인공 '현오'는 아무도 없을 때 홀로 그것을 매일 찾아간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를 떠올리며, 현오는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우투리의 날개를 지켜본다. 우투리가 부모의 배신으로 희생당했다는 설화에 몰입한 현오의 곁에는, 같은 반 정민이 있다. 현오는 정민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민은 그런 현오를 알면서도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현오에게 우투리가 죽지 않고 땅속에서 다시 나타날 날을 기다렸다는 판본을 들려준다. 폭우를 뚫고 날아오르는 우투리를 향해 "잘 가!"라고 외치는 순간, 현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다.
「비 오는 날」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비춘다. 실직한 아빠의 폭력이 이어지는 집, 장마가 시작되면서 엄마마저 조금씩 이상해진다. 방문을 잠근 '나'는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올리지만 불행의 소리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남유하 특유의 서늘한 호러는 가난과 폭력이 점령한 집에 갇힌 청소년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도록 한다. 청소년 주인공은 그곳을 쉽게 벗어날 수 없지만, 결코 가난과 폭력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독백만큼은 명확하다.
사랑과 멸망, 잔혹과 판타지로 구원을 말하는 남유하 작가의 세계
이 작품집은 남유하 작가가 그간 앤솔러지를 통해 발표한 세 편의 단편을 새롭게 고치고, 네 편의 신작을 더한 책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 적은 대로, "이 책에는 사랑과 죽음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죽음은 무척 다채로운 형태이다. 누군가를 영원히 잃는 이별이거나 생을 다하는 물리적 죽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제의 나를, 나를 억압하던 관계를, 이미 끝난 사랑을 떠나보내는 죽음에 더 힘을 싣는다. 때로는 나를 옥죄는 것들을 끝장낼 결심, 그 관계의 죽음을 선언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때로 섬뜩하고 간절한 장면들 속에서 이 책의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 몸부림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할 이가 바로 '나'라는 중요한 사실이 작품집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독자에게 고통에서 스스로를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을 용기가 우리 안에 있음을 전한다. 그 간절한 메시지가 독자에게 닿는 순간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멸망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 관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표제작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멸망 직전의 세계라는 거대한 상상을, 편의점 탁자 위의 아주 작고 구체적인 장면들로 채운 사뭇 사랑스러운 단편이다.
12월 31일 토요일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위화감을 느낀다. 집 안에 언니가 없고, 옆집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어젯밤 잠들기 전, 세상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게 해 달라고 빌었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텅 빈 주차장에서 누군가 올려다보고 있다. 2년 반 전에 헤어진 구남친 '재이'다. 둘은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 나란히 앉아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사귀던 시절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컵라면 물이 불 때까지 3분 동안 추던 춤, 함께 듣던 노래, 엉뚱한 농담, 서로에게 주었던 위로를 상기한다.
그러다 재이가 함께 읽은 소설 속 '원숭이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고백한다. 실은 "너랑 둘만 있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소설에서 원숭이 손은 언제나 소원을 기묘한 방식으로 들어주어서, 결국 등장인물들이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제야 모든 것이 조금씩 비틀린 편의점 풍경, 편의점을 조금만 벗어나도 폐허뿐인 세상을 자각한다. 사뭇 달콤했던 분위기는 그를 기점으로 달라진다. 둘이 헤어진 것은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다.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는 나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재이가 불행을 공유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원숭이 손에게 빌 수 있는 소원은 이제 딱 하나.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이대로 여기 남을 것인가?
"소설처럼, 영화처럼, 사랑이 모든 걸 구원할까?"(57쪽)
결정에 앞서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지만 쉽게 답을 내지 못한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돌아갈 세계는 여전히 살기 힘든 곳일 테고 사랑은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 놓는 마법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련 따위 없는 줄 알았던 그 현실에 '세상에 너랑 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빌어 줄 사람이 있다면, 한번 돌아가 볼 만하지 않을까? 서로의 불행을 외면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 앉은 그 하루는, 어떤 세계에서든 살아남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세계라는 허상
요즘 한국의 기성세대는 청소년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데에 열을 올린다. 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기에 고심하면서, 그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에 대비해야 언젠가 나아갈 세상에서 덜 상처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른이 만든 울타리는 청소년에게 정말로 안전할까?
「에그」는 아이들의 97.5 퍼센트가 '에그'에서 태어나는 시대가 배경이다. 부모의 우수한 유전자만 골라 완전무결한 아이를 태어나도록 하는 인공 자궁 에그는 이미 국가 주도의 사업이다. 그런데 에그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좌우 비대칭인 얼굴과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친구와 부모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불량품'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어느 날, 십수 년 전 에그의 온도에 오류가 있었다는 뉴스가 발표되며 의혹은 기정 사실이 된다. 그러나 독자의 눈에는, 자식 앞에서 당당히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아버지보다 사회가 정한 '특별함'과 자신의 '다름'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청소년이 훨씬 상식적이고 완전한 인간으로 보인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주인공 청소년은 바이러스를 피해 돔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무균실, '학교'에서 산다. 어른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유행에서 죽지 않은, 일명 '살아남은 아이들'을 그곳에 모았다. 아이들은 화면 속 교사에게 배우고,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인공 바람에 의해 매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숲의 풍경을 본다. 무엇도 자신을 해칠 수 없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 룸메이트와 비밀을 주고받을 때나 바깥세상에서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릴 때만 생동감을 느낀다. 결국 주인공과 룸메이트는 탈출을 감행하고, 마지막 문 앞에서 맞닥뜨린 로봇은 의외로 아이들을 막지 않는다. 원한다면 나갈 수 있지만 학교는 퇴소를 권하지 않으며, 바깥은 위험하다고 알려 줄 뿐이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겠느냐는 질문에 두 청소년은 어떤 답을 할까? 살아남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서로 다른 의미라면, 독자인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빛나지 않아」는 그 질문을 사랑에 대입해 본다. 주인공 '연우'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접촉하면 몸에서 빛이 난다. '태오'의 손등이 스칠 때마다 오팔처럼 반짝이던 연우의 빛은, 사귄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흐려지기 시작한다. 태오는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연우는 그를 믿기 어렵다. 상대의 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사랑에 의한 '관계'는 더 안전해질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가 정교해져도 관계와 미래가 가진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감정과 불안, 상처와 모험을 모두 끌어안아야 비로소 삶이라는 것을, 남유하 작가는 장르 문학의 장치로 솜씨 있게 보여 준다.
죽음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
「숨은 머리 찾기」의 '엠마'가 사는 마을에는 죽은 지 39일째 되는 날 망자가 무덤에서 돌아오는 풍습이 있다. 망자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돌아오며, 머리 없이 돌아온 망자를 맞은 사람은 새벽이 오기 전에 그 머리를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밤 열 시, 엠마의 집 앞에 소꿉친구 바이올렛이 머리 없이 서 있다. 며칠 전, 엠마 때문에 연못에 뛰어들었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친구다. 마을을 헤매는 하룻밤 동안, 엠마는 오래 감춰 온 죄책감을 마주한다.
"어쩌면 죽은 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닐까?"(118쪽)
「우투리 토우」는 옛이야기 속 '아기 장수 우투리'를 오늘로 불러온다. 별안간 학교 화단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토우(흙 인형)가 나타나고, 주인공 '현오'는 아무도 없을 때 홀로 그것을 매일 찾아간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를 떠올리며, 현오는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우투리의 날개를 지켜본다. 우투리가 부모의 배신으로 희생당했다는 설화에 몰입한 현오의 곁에는, 같은 반 정민이 있다. 현오는 정민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민은 그런 현오를 알면서도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현오에게 우투리가 죽지 않고 땅속에서 다시 나타날 날을 기다렸다는 판본을 들려준다. 폭우를 뚫고 날아오르는 우투리를 향해 "잘 가!"라고 외치는 순간, 현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다.
「비 오는 날」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비춘다. 실직한 아빠의 폭력이 이어지는 집, 장마가 시작되면서 엄마마저 조금씩 이상해진다. 방문을 잠근 '나'는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올리지만 불행의 소리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남유하 특유의 서늘한 호러는 가난과 폭력이 점령한 집에 갇힌 청소년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도록 한다. 청소년 주인공은 그곳을 쉽게 벗어날 수 없지만, 결코 가난과 폭력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독백만큼은 명확하다.
사랑과 멸망, 잔혹과 판타지로 구원을 말하는 남유하 작가의 세계
이 작품집은 남유하 작가가 그간 앤솔러지를 통해 발표한 세 편의 단편을 새롭게 고치고, 네 편의 신작을 더한 책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 적은 대로, "이 책에는 사랑과 죽음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죽음은 무척 다채로운 형태이다. 누군가를 영원히 잃는 이별이거나 생을 다하는 물리적 죽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제의 나를, 나를 억압하던 관계를, 이미 끝난 사랑을 떠나보내는 죽음에 더 힘을 싣는다. 때로는 나를 옥죄는 것들을 끝장낼 결심, 그 관계의 죽음을 선언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때로 섬뜩하고 간절한 장면들 속에서 이 책의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 몸부림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할 이가 바로 '나'라는 중요한 사실이 작품집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독자에게 고통에서 스스로를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을 용기가 우리 안에 있음을 전한다. 그 간절한 메시지가 독자에게 닿는 순간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멸망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 관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목차
목차
에그|세상 따위 멸망해도|빛나지 않아|숨은 머리 찾기|우투리 토우|살아남은 아이들|비 오는 날|작가의 말
저자
저자
남유하 2018년 「푸른 머리카락」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 『다이웰 주식회사』 『봄의 목소리』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 『부디 안녕하기를』,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지구에서 고생이 많다』, 동화 『나무가 된 아이』 『우리 할머니는 사이보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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