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헤르만 헤세 컬렉션 3)
‘열림원 헤르만 헤세 컬렉션’ 세 번째 작품. 헤르만 헤세의 개인적 고백과 비판적 사유를 담은 장편소설로,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주인공 ‘하리 할러’를 다각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며 불완전한 인간상을 그려냈다. 1927년에 출판된 이후 헤세의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정체성 탐구와 기술문명에 대한 경계, 보수주의자와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등 사회체제를 향한 노골적인 비판과 저항으로 68세대와 히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1970년대 젊은 독자들에게 헤세 붐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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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모든 고백서 중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가슴 아픈 책이다." _쿠르트 핀투스
전 세계적으로 헤세 붐을 일으킨 헤세의 가장 파격적인 소설
1927년에 출판된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담하고, 가장 파격적인 소설이다. '개인의 정체성 탐구'를 다룬 헤세의 다른 소설들처럼 『황야의 이리』 또한 주인공의 분열된 자아를 드러내고 이를 철저히 분석한다. 집필 당시,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정신적 위기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했던 헤세는 주인공 '하리 할러'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불완전한 인간상을 그려냈다. 마약과 성매매, 동성애와 같이 파격적인 소재들로 인해 약물 남용, 성적 타락으로 기소되기까지 했던 『황야의 이리』는 기존의 사회질서에 저항하던 68세대와 히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1970년대 세계적인 헤세 붐을 불러일으켰다.
헤세의 페르소나인 하리 할러는 자신이 "반은 인간이고 반은 이리"라고 믿는 내적으로 분열된 남자다. 단정한 외관에 "엄격하고 매우 독실한" 교육을 받은 그는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이지만, 평범한 "시민사회를 경멸"하고 그곳에 적응하지 못한 채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아웃사이더"이다. "자신의 쉰 살 생일을 자신에게 자살을 허락하려는 날로 확정"한 그는 한 술집에서 '헤르미네'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그동안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괴롭히던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헤세는 『황야의 이리』를 「펴낸이의 머리말」「하리 할러의 수기들」, '황야의 이리 논고'로 나누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하리 할러의 삶과 그 내면을 다각적으로 묘사한다. 이 소설의 시작인 「펴낸이의 머리말」은 하리가 머무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조카가 쓴 것으로, 그는 하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신이 관찰한 하리 할러에 관해 설명한다. '황야의 이리 논고'는 본문 격인 「하리 할러의 수기들」에 포함된 글로, 미지의 전지적 화자를 등장시켜 하리의 내면에 대해 서술했으며, 「하리 할러의 수기들」에서는 하리가 직접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기술한다.
나는 나의 고백을 들려주거나 소설을 이야기해주거나 심리 분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목격자로서 이 황야의 이리 원고를 남긴 특이한 사내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고자 할 따름이다.
- 「펴낸이의 머리말」 중에서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서 황야의 이리이자
초라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세의 고백과 비판적 사유가 담긴 자전적 소설
『황야의 이리』는 헤세가 하리 할러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고백한 자전소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헤세의 정신적 고통이 할러에게 고스란히 녹아 있다. 헤세는 하리에게 자신과 같은 이니셜의 이름을 지어주고, 괴테와 모차르트, 시와 그림이라는 자신의 관심사 또한 공유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는 헤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혼, 하숙 생활, 통풍에 이르기까지 할러의 삶은 헤세의 삶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헤세는 이렇듯 또 다른 자아인 하리 할러를 내세워 자신의 분열된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소설 내내 이 고통을 끝내줄 자신의 "구원"을 찾아 방황한다.
이와 함께 헤세는 "하리 할러의 입을 빌려" 사회와 기술문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소설 속 하리는 "국수주의적인 선동에 저항"하는 정치평론가로서 부패한 보수주의자와 정치인들을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그들로 인해 다시 도래할지 모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이것은 아무 저항 없이 그들에게 놀아나는 시민사회를 향한 경멸로 이어지며, 하리 할러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된다.
『황야의 이리』에서 헤세는 자신의 가장 처절하고, 가장 어두운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우화와 미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병 자체를 묘사의 대상으로 삼"고 "혼돈에 대놓고 맞서"며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할러의 병증을 "한 개인의 기벽이 아니라 시대의 질병 그 자체"로 정의하며, "이 병에 걸린 것은 절대로 약하고 열등한 개인"이 아닌 "강하고 가장 지적이며 재능 있는 자"임을 분명히 한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헤세의 인식 의지는 어쩌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불온한 시기가 아직은 엄습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한참 그런 지옥을 통과해가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여전히 자기 안에 그날의 뜨거웠던 느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황야의 이리』는 훌륭한 위로가 되어주리라는 사실이다. (……)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다시 한번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왜 무의식과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졌던 거냐고. 개인적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이 다가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소설까지 썼던 걸 거다. 이 본능의 혼돈 또한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인식 의지가 있었던 걸 거다."
- 이준서, 「옮긴이의 말」 중에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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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할러의 수기들
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1904년에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고 연이어 대표작 『수레바퀴 아래서』(1906)를 발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듬해 『데미안』(1919)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고, 이후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유리알 유희』(1943)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들을 써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출판 금지되기도 했으나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에 재개되었고 그 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두 번의 전쟁, 세 번의 결혼을 경험하며 정원과 화폭을 벗 삼았던 헤세는 1962년 8월 9일, 스위스 루가노 주 몬타뇰라에서 8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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