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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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층 진일보한 여성주의 교과서의 등장" _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작가, 여성학 박사
"여성들이 잃어버린 양말과 더러운 접시 같은 일상의 걱정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 왜 모두의 문제인지 보여주는 책" _《사이언스》 서평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인 단서를 제시한다. 온 가족이 읽기에 완벽한 책" _《뉴 사이언티스트》
'평등한 우리 집'에서 왜 꼭 한 명은 '통제광'이 될까?
기억하기, 계획하기, 챙기기… 쉬는 중에도 다음 일을 계산하는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탐구한다!
1999년 한국에서 처음 생활시간조사가 실시되었을 당시, 기혼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약 7.5배에 달했다(270분 대 36분). 20년 뒤인 2019년에는 그 격차가 약 3.5배로 줄었다(225분 대 64분). 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으로 향하는 고무적인 흐름으로 보였다. 적어도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 있다고, 남성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가사노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노동의 기계화와 서비스화가 확산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의아하다. "집안일은 함께하는데, 왜 내 머릿속만 이렇게 바쁠까?" 함께 청소하고 설거지하며 아이를 돌보지만, 가족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억하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조율하는 일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치우쳐 있다. 그런 한편, 학교 알림장 앱과 학부모 단체 대화방, 병원 예약, 체험학습 신청, 각종 일정 관리 등 갈수록 늘어나는 조율과 관리의 요구, 그리고 크게 확대된 상품ㆍ서비스의 선택지는 현대의 가족생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릿속 노동'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육체적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동안 인지적 가사노동은 더 복잡해지고 늘어난 현실을 포착하며, 그동안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인지노동 불평등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성애ㆍ퀴어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각 가정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과 그들 각자가 이를 설명하는 방식을 조사한다. 그 결과 저자는 커플 대부분이 그들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육아ㆍ돌봄 관련 육체적 가사노동과 인지적 가사노동에 있어서 특히 뚜렷한 성별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 축으로는 '시간 사용'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노동 측정 방식에 인지노동이 포섭되지 않는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는 가사노동의 성별화를 은폐하는 뿌리 깊은 문화적 각본들을 짚으며 이 책은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시대"(추천의 말)에 사라지는 대신 가려지게 된 '인지노동의 성별화' 문제를 새롭게 대두한다.
"성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예요"
인지노동 불평등을 가리는 문화적 각본들
책에 등장하는 이성애 커플 중에는 여성이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계획과 체계 조직, 관리에 능한 '초인' 유형 여성과 계획과 조직화에 서툰 '허당' 유형 남성의 관계 역학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여성들은 자신의 인지노동 부담을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143쪽)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즉,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다수의 인지노동이 '여성의 일'이고 나머지가 '남성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내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 각자의 성향에 맞게 분담하기에 벌어지는 상황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적 설명은 언뜻 성차별과 무관한 설명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성별화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감추는 문화적 각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나다운'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성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30쪽). 다시 말해, 자아가 가정 내 관계 역학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내 관계 역학, 역할 수행 들이 축적되며 자아가 만들어지고 강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쉽게 바뀔 수 없다는 믿음은 이러한 불평등한 분담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며, 갈등을 봉합하는 동시에 변화를 가로막기도 한다는 점도 짚는다.
경제학은 이와는 또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소득이 적거나 유급노동시간이 짧은 사람이 가사와 돌봄을 더 많이 맡는 경향이 있고,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 역시 이러한 요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미처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여성의 소득이 더 많거나 노동시간이 더 긴 경우에도 인지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에서의 유능함이 가정에서도 '더 잘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낳아 인지노동을 더욱 떠맡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일부 남성은 직업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을수록 가정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더욱 고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은 성격도, 경제적 효율성도 인지노동의 성별화된 불평등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비춘다.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누가 가족의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길러지는가와 관련된 문제이며, 그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 사용 양상을 개인의 타고난 특성과 연결하면, 학습을 통해 익힌 기술과 갈고닦은 역량이 한 사람의 인지노동 능력을 길러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놓치게 된다. … 여성이 교사와 관계를 형성하거나 젖을 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책에서 찾아보는 일에 투자할 때, 그들은 이를 본능처럼 보이게 하는 역량을 연마하는 셈이다. 남성이 직장에서 문제 해결과 계획 작성들의 기술을 활용할 때, 그들은 똑같은 기술이 집에서도 유용하리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선택들'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개인적이다." _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중에서
"누가 '여자' 역할이야?"
퀴어 커플을 통해 바라보는 '성격'의 사회학
"'모두가 저희에게 결혼식 준비를 어떻게 분담할 거냐고 물었어요. 마치 둘 중 한 사람이 그 모든 일을 다 맡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요. '두 사람 다 여자라면서? 그럼 둘 중 누가 '여자 역할'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이 깔려 있는 거죠. 제 대답은 둘 다라는 거예요.'
올가는 이성 커플의 불평등한 관계 역학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집안의 인지노동 "대부분"을 자신이 담당한다고 말했을 때 다소 놀랐다. …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시점, 안드레아는 출산휴가가 끝나가고 있었고 업무에 얼른 복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탓에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은 뒤 이제 회복 중이었다. 올가는 안드레아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첫 3개월 동안 제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제가 했어요." 올가가 설명했다." _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중에서
흥미롭게도 퀴어 커플에서도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흔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불평등 양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성애 커플과는 달랐다. 이성애 커플은 대체로 '원래 내가 더 계획적인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라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설명했다면, 퀴어 커플 역시 각 파트너의 성향을 언급했지만 그것을 훨씬 유연하고 덜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계획과 관리를 한 사람이 더 잘하지만,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도 이를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들에게 성격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상황과 조건의 반영,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과 역량의 결과에 가까웠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저자는 이성애 커플에서 '성격'이라고 불리던 것의 실체를 더 선명하게 포착한다.
결국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인지노동을 더 많이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노동을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후자에 맞닿아 있는 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기술과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기술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기반은 사회ㆍ문화적으로 촘촘하게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가운데에서 이뤄지는 노력과 수행 들이 남성과 여성의 인지노동 역량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를테면 직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동네 부모들과 관계를 맺고 품앗이 돌봄을 조직하거나, 학교·병원·돌봄 기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한 경험은 인지노동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량과 기반이 된다. 이러한 관계와 경험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고 수월하게 축적되는 반면, 남성들은 직장에서 발휘하는 계획과 조율 능력을 가정에서 충분히 활용하거나 발전시킬 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갖는다.
물론 개인의 성향이 이러한 성별화된 기반들과 상호작용하며 역량의 범위를 넓히거나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회적 맥락이라고 말한다. 집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와 아빠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지, 학교와 병원은 누구를 주 양육자로 전제하는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 높은 돌봄 기준을 요구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기대가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쌓고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행동은 어느 순간 이들을 '원래부터 꼼꼼한 사람', '타고나길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가"
관계를 다시 쓰는 언어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성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무능력을 무기 삼는 악당으로 일축하거나 여성을 자신의 포부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치부"(200쪽)하는 책도 아니고,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기계적으로 반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미래는 성별이 인지노동 분담 양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 사회다. 각자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맞는 분담 양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책은 무엇보다 먼저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이야기할 언어를 제안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실용적이다.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터뷰는 독자로 하여금 이 문제를 곧바로 '우리 집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막연한 피로와 답답함으로만 남아 있던 경험은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고, 말하기 어려웠던 갈등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저자는 인지노동의 불평등을 개인의 성격이나 선의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기대 속에서 이해할 때에만 관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화는 커플 사이의 대화에서 시작되겠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에서 저자는 인지노동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두는 제도와 문화까지 시야를 넓힌다. 학교는 학부모가 수시로 공지와 알림장을 확인해야 하는 방식 대신 예측 가능한 일정과 명확한 소통 체계를 마련할 수 있고, 직장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줄이고 업무량을 미리 공유함으로써 가족이 돌봄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관리자들이 돌봄 친화적 제도를 사용하는 직원에게 낙인을 찍지 않도록 교육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공적 기관과 미디어는 돌봄과 인지노동을 특정 성별의 '천성'과 연결해온 오래된 고정관념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인지노동의 평등한 분배는 결국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가족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지원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시화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인 동시에, 그 노동을 둘러싸고 형성된 우리의 자아 감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평등한 인지노동은 단순히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지"(45쪽)에 대한 오래된 믿음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직장, 공공제도가 가족에게 떠넘겨온 인지 부담을 다시 설계하는 일 역시 그러한 변화의 일부다.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50 대 50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좋게 들리겠지만, 실제적으로는 개인과 커플을 특징짓는 믿을 수 없이 다양한 환경, 기호, 기술, 신념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각 커플이 그들의 이상과 실제 인지노동 분업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미래를 꿈꾼다. 다시 말하자면, 성별이 인지노동 양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꿈의 세계에는 여성 주도 커플만큼 남성 주도 커플도 많을 것이다. 또한 가정 내 인지노동 자체가 전반적으로 더 적은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그렇게 고되지 않을 것이다." _〈결론〉 중에서
"여성들이 잃어버린 양말과 더러운 접시 같은 일상의 걱정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 왜 모두의 문제인지 보여주는 책" _《사이언스》 서평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인 단서를 제시한다. 온 가족이 읽기에 완벽한 책" _《뉴 사이언티스트》
'평등한 우리 집'에서 왜 꼭 한 명은 '통제광'이 될까?
기억하기, 계획하기, 챙기기… 쉬는 중에도 다음 일을 계산하는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탐구한다!
1999년 한국에서 처음 생활시간조사가 실시되었을 당시, 기혼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약 7.5배에 달했다(270분 대 36분). 20년 뒤인 2019년에는 그 격차가 약 3.5배로 줄었다(225분 대 64분). 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으로 향하는 고무적인 흐름으로 보였다. 적어도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 있다고, 남성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가사노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노동의 기계화와 서비스화가 확산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의아하다. "집안일은 함께하는데, 왜 내 머릿속만 이렇게 바쁠까?" 함께 청소하고 설거지하며 아이를 돌보지만, 가족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억하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조율하는 일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치우쳐 있다. 그런 한편, 학교 알림장 앱과 학부모 단체 대화방, 병원 예약, 체험학습 신청, 각종 일정 관리 등 갈수록 늘어나는 조율과 관리의 요구, 그리고 크게 확대된 상품ㆍ서비스의 선택지는 현대의 가족생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릿속 노동'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육체적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동안 인지적 가사노동은 더 복잡해지고 늘어난 현실을 포착하며, 그동안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인지노동 불평등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성애ㆍ퀴어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각 가정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과 그들 각자가 이를 설명하는 방식을 조사한다. 그 결과 저자는 커플 대부분이 그들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육아ㆍ돌봄 관련 육체적 가사노동과 인지적 가사노동에 있어서 특히 뚜렷한 성별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 축으로는 '시간 사용'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노동 측정 방식에 인지노동이 포섭되지 않는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는 가사노동의 성별화를 은폐하는 뿌리 깊은 문화적 각본들을 짚으며 이 책은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시대"(추천의 말)에 사라지는 대신 가려지게 된 '인지노동의 성별화' 문제를 새롭게 대두한다.
"성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예요"
인지노동 불평등을 가리는 문화적 각본들
책에 등장하는 이성애 커플 중에는 여성이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계획과 체계 조직, 관리에 능한 '초인' 유형 여성과 계획과 조직화에 서툰 '허당' 유형 남성의 관계 역학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여성들은 자신의 인지노동 부담을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143쪽)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즉,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다수의 인지노동이 '여성의 일'이고 나머지가 '남성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내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 각자의 성향에 맞게 분담하기에 벌어지는 상황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적 설명은 언뜻 성차별과 무관한 설명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성별화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감추는 문화적 각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나다운'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성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30쪽). 다시 말해, 자아가 가정 내 관계 역학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내 관계 역학, 역할 수행 들이 축적되며 자아가 만들어지고 강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쉽게 바뀔 수 없다는 믿음은 이러한 불평등한 분담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며, 갈등을 봉합하는 동시에 변화를 가로막기도 한다는 점도 짚는다.
경제학은 이와는 또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소득이 적거나 유급노동시간이 짧은 사람이 가사와 돌봄을 더 많이 맡는 경향이 있고,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 역시 이러한 요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미처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여성의 소득이 더 많거나 노동시간이 더 긴 경우에도 인지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에서의 유능함이 가정에서도 '더 잘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낳아 인지노동을 더욱 떠맡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일부 남성은 직업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을수록 가정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더욱 고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은 성격도, 경제적 효율성도 인지노동의 성별화된 불평등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비춘다.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누가 가족의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길러지는가와 관련된 문제이며, 그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 사용 양상을 개인의 타고난 특성과 연결하면, 학습을 통해 익힌 기술과 갈고닦은 역량이 한 사람의 인지노동 능력을 길러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놓치게 된다. … 여성이 교사와 관계를 형성하거나 젖을 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책에서 찾아보는 일에 투자할 때, 그들은 이를 본능처럼 보이게 하는 역량을 연마하는 셈이다. 남성이 직장에서 문제 해결과 계획 작성들의 기술을 활용할 때, 그들은 똑같은 기술이 집에서도 유용하리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선택들'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개인적이다." _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중에서
"누가 '여자' 역할이야?"
퀴어 커플을 통해 바라보는 '성격'의 사회학
"'모두가 저희에게 결혼식 준비를 어떻게 분담할 거냐고 물었어요. 마치 둘 중 한 사람이 그 모든 일을 다 맡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요. '두 사람 다 여자라면서? 그럼 둘 중 누가 '여자 역할'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이 깔려 있는 거죠. 제 대답은 둘 다라는 거예요.'
올가는 이성 커플의 불평등한 관계 역학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집안의 인지노동 "대부분"을 자신이 담당한다고 말했을 때 다소 놀랐다. …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시점, 안드레아는 출산휴가가 끝나가고 있었고 업무에 얼른 복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탓에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은 뒤 이제 회복 중이었다. 올가는 안드레아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첫 3개월 동안 제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제가 했어요." 올가가 설명했다." _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중에서
흥미롭게도 퀴어 커플에서도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흔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불평등 양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성애 커플과는 달랐다. 이성애 커플은 대체로 '원래 내가 더 계획적인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라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설명했다면, 퀴어 커플 역시 각 파트너의 성향을 언급했지만 그것을 훨씬 유연하고 덜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계획과 관리를 한 사람이 더 잘하지만,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도 이를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들에게 성격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상황과 조건의 반영,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과 역량의 결과에 가까웠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저자는 이성애 커플에서 '성격'이라고 불리던 것의 실체를 더 선명하게 포착한다.
결국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인지노동을 더 많이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노동을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후자에 맞닿아 있는 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기술과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기술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기반은 사회ㆍ문화적으로 촘촘하게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가운데에서 이뤄지는 노력과 수행 들이 남성과 여성의 인지노동 역량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를테면 직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동네 부모들과 관계를 맺고 품앗이 돌봄을 조직하거나, 학교·병원·돌봄 기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한 경험은 인지노동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량과 기반이 된다. 이러한 관계와 경험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고 수월하게 축적되는 반면, 남성들은 직장에서 발휘하는 계획과 조율 능력을 가정에서 충분히 활용하거나 발전시킬 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갖는다.
물론 개인의 성향이 이러한 성별화된 기반들과 상호작용하며 역량의 범위를 넓히거나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회적 맥락이라고 말한다. 집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와 아빠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지, 학교와 병원은 누구를 주 양육자로 전제하는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 높은 돌봄 기준을 요구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기대가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쌓고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행동은 어느 순간 이들을 '원래부터 꼼꼼한 사람', '타고나길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가"
관계를 다시 쓰는 언어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성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무능력을 무기 삼는 악당으로 일축하거나 여성을 자신의 포부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치부"(200쪽)하는 책도 아니고,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기계적으로 반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미래는 성별이 인지노동 분담 양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 사회다. 각자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맞는 분담 양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책은 무엇보다 먼저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이야기할 언어를 제안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실용적이다.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터뷰는 독자로 하여금 이 문제를 곧바로 '우리 집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막연한 피로와 답답함으로만 남아 있던 경험은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고, 말하기 어려웠던 갈등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저자는 인지노동의 불평등을 개인의 성격이나 선의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기대 속에서 이해할 때에만 관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화는 커플 사이의 대화에서 시작되겠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에서 저자는 인지노동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두는 제도와 문화까지 시야를 넓힌다. 학교는 학부모가 수시로 공지와 알림장을 확인해야 하는 방식 대신 예측 가능한 일정과 명확한 소통 체계를 마련할 수 있고, 직장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줄이고 업무량을 미리 공유함으로써 가족이 돌봄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관리자들이 돌봄 친화적 제도를 사용하는 직원에게 낙인을 찍지 않도록 교육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공적 기관과 미디어는 돌봄과 인지노동을 특정 성별의 '천성'과 연결해온 오래된 고정관념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인지노동의 평등한 분배는 결국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가족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지원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시화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인 동시에, 그 노동을 둘러싸고 형성된 우리의 자아 감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평등한 인지노동은 단순히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지"(45쪽)에 대한 오래된 믿음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직장, 공공제도가 가족에게 떠넘겨온 인지 부담을 다시 설계하는 일 역시 그러한 변화의 일부다.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50 대 50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좋게 들리겠지만, 실제적으로는 개인과 커플을 특징짓는 믿을 수 없이 다양한 환경, 기호, 기술, 신념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각 커플이 그들의 이상과 실제 인지노동 분업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미래를 꿈꾼다. 다시 말하자면, 성별이 인지노동 양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꿈의 세계에는 여성 주도 커플만큼 남성 주도 커플도 많을 것이다. 또한 가정 내 인지노동 자체가 전반적으로 더 적은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그렇게 고되지 않을 것이다." _〈결론〉 중에서
목차
목차
추천의 말
서론
1 행하기, 느끼기 그리고 생각하기
2 인지노동의 성별 분업
3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인 것 같아요"
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5 비전통적인 경로들
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결론
감사의 글
방법론에 관한 부록
주
참고문헌
서론
1 행하기, 느끼기 그리고 생각하기
2 인지노동의 성별 분업
3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인 것 같아요"
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5 비전통적인 경로들
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결론
감사의 글
방법론에 관한 부록
주
참고문헌
저자
저자
앨리슨 데이밍거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 사회학과 교수.
가족생활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주로 연구하며, 특히 가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인 ' 인지노동' 연구로 주목받았다. 미국 사회학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그의 연구는 《뉴욕 타임스》,《디 애틀랜틱》, 《사이콜로지 투데이》 등 주요 매체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이성애·퀴어 커플 관계를 맺고 있는 172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다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배가 널리 공감받는 오늘날에도 왜 인지적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지, 그리고 그 불균형이 가족생활과 친밀한 관계,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가족생활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주로 연구하며, 특히 가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인 ' 인지노동' 연구로 주목받았다. 미국 사회학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그의 연구는 《뉴욕 타임스》,《디 애틀랜틱》, 《사이콜로지 투데이》 등 주요 매체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이성애·퀴어 커플 관계를 맺고 있는 172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다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배가 널리 공감받는 오늘날에도 왜 인지적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지, 그리고 그 불균형이 가족생활과 친밀한 관계,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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