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들판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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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오랜 시간 추적한 가족사이자 일제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관통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_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기억과 증거, 가족사를 능숙한 솜씨와 넘치는 애정으로 엮은 장대한 태피스트리" _한요셉, 《핵가족》 작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가는 여정에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_수잔 최, 《신뢰 연습》 작가
"가족사에 등장하는 영웅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_캐럴 스미스Carol Smith, 《강을 건너며Crossing the River》 작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2024년 올해의 책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비밀이 된 과거가 끝없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타인의 질문,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를 안고 살아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했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번번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침묵'이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족사의 공백이 자신이 겪어온 모호한 정체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예감하며 성장했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마거릿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병에 걸려 할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이 이어받으며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후 마거릿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는 데 몰두한다. 아버지와 저자의 노력으로 알아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909년생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 또 사상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던 그는 손녀의 추적 끝에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비밀만큼이나 저자와 '아버지'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소외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가, 남편의 삶을 숨기고 부정해온 할머니의 생애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한 가족의 기억에 무엇을 남고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보게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의 비밀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387쪽)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야겠다"(45쪽)고 결심한다. 개인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은 가족사와 공적 역사를 어떤 서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비추며, 나아가 사적인 '비밀'과 '애도되지 못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은 채 끝없이 현재를 점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특히 전쟁 중에는"
생존의 조건으로서의 할머니의 기억 삼키기
"우리 가족은 괴로운 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것을 통째로 삼켜 대를 넘어 곪아 터지게 내버려둔다. 두려움, 공포, 고통을 삼키고는 그대로 영영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꾹꾹 누른다. 그것이 할머니가, 또 아버지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311쪽)
할아버지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동시에 왜 할머니는 그 역사를 은폐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였고 아들인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를 강하게 요구했음에도 할머니는 왜 입을 열지 못했을까. 저자는 고통과 기억과 두려움을 삼키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곧 생존의 조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공산주의자 전과자의 아내라는 낙인은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재산을 모두 잃고 재봉사와 보육원 일을 전전하며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했다. 할머니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조국이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해한 적도 없다. 다만 먼저 떠난 남편의 행적을 다른 이들이, 가족이든 당시의 지배세력이든 누군가가 악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381쪽). 북한군이 공주에 도착하기 전날 밤, 할머니는 수감 관련 서류와 편지, 정치 이론에 관한 저술, 신문 기사, 남편의 책을 모두 불태운다.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남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북한군이 남하하면 남편의 흔적이 이들 가족에게 좋은 지위를 보장하리라 기대한 친척도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모든 기록을 불태우고 땅에 묻는다. 더는 불확실한 상황에 삶을 맡길 수 없었다. 할머니는 차라리 표백된 과거를 생존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고 셈하는 것마저 배제했다.
"두 차례에 걸쳐 봉기해서 동학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렴.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일어난 결과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줄은 몰랐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역사가 그 증거다."(269쪽)
과거를 지우기로 한 단호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묻자, 할머니는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의 집안과 같은 양반 지주층과 외세에 저항하며 시작된 이 토착 사회운동을 막기 위해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은 톈진 조약 위반이라며 자국군을 개입시켰고 이것이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비화하여 결국 조선은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의 집은 당시 동학 농민들이 점거해 사용하던 항쟁 본부였다. 할머니는 그들이 남기고 간 창 두 자루를 오래 바라보던 순간을 들려준다.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일제강점기로, 다시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할머니에게 인간의 의지나 신념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은 무엇이 밝혀지는가만큼 무엇이 사라졌는가를 보게 하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결정적 자료를 발견하는 국면에서도 되풀이된다. 자료 소장자에게 왜 이처럼 중요한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는지를 묻자,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292쪽)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엇이 기록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기록될 수 없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서 사적인 침묵과 공적인 망각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공적 역사의 공백은 가족 안의 비밀이 되었고, 가족이 삼킨 비밀은 공적 역사에서 다시 하나의 결락으로 남았다. 저자가 복원하는 것은 어느 독립운동가의 전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과정 자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더듬는 끝에서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오래도록 설명할 수 없었던 공허와 모호한 정체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진 역사적 침묵의 유산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집이란 장소가 아니다. 존재의 상태다"
내가 누구인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긴 추적 끝에 저자는 범죄자였던 할아버지가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아버지에게 상속된 줄조차 모르고 있던 토지를 정리해,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공주고등학교에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그리고 공주고등학교로부터 할아버지의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호인 '성야星野'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워졌던 이름이 다시 쓰이고, 가족은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한다.
나아가 이야기는 한 독립운동가의 명예뿐 아니라, 저자가 자신을 현재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든 시간을 되찾는 데로 뻗어간다. 저자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과거를 지우는 일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손녀에게는 그 과거를 되찾는 일이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잊힌 역사를 되찾고, 할머니의 오랜 침묵이 어떠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였는지를 이해하면서 저자는 비로소 "집에 온 기분"(389쪽)을 느낀다. 여기서 집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은 상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 존재의 상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되며 독립운동가 이철하와 그 가족의 역사가 그 역사가 시작된 이곳의 '집'으로 찾아온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말해지지 않은 것은 없거나 사라진 것이 아님을 상기하며 무엇을 응시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나는 할머니가 감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간의 일을 물었던 질문과, 내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에 비슷한 응답이 돌아왔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둔다."(314쪽)
"너희는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387쪽)
"기억과 증거, 가족사를 능숙한 솜씨와 넘치는 애정으로 엮은 장대한 태피스트리" _한요셉, 《핵가족》 작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가는 여정에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_수잔 최, 《신뢰 연습》 작가
"가족사에 등장하는 영웅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_캐럴 스미스Carol Smith, 《강을 건너며Crossing the River》 작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2024년 올해의 책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비밀이 된 과거가 끝없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타인의 질문,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를 안고 살아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했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번번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침묵'이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족사의 공백이 자신이 겪어온 모호한 정체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예감하며 성장했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마거릿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병에 걸려 할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이 이어받으며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후 마거릿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는 데 몰두한다. 아버지와 저자의 노력으로 알아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909년생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 또 사상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던 그는 손녀의 추적 끝에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비밀만큼이나 저자와 '아버지'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소외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가, 남편의 삶을 숨기고 부정해온 할머니의 생애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한 가족의 기억에 무엇을 남고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보게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의 비밀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387쪽)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야겠다"(45쪽)고 결심한다. 개인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은 가족사와 공적 역사를 어떤 서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비추며, 나아가 사적인 '비밀'과 '애도되지 못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은 채 끝없이 현재를 점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특히 전쟁 중에는"
생존의 조건으로서의 할머니의 기억 삼키기
"우리 가족은 괴로운 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것을 통째로 삼켜 대를 넘어 곪아 터지게 내버려둔다. 두려움, 공포, 고통을 삼키고는 그대로 영영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꾹꾹 누른다. 그것이 할머니가, 또 아버지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311쪽)
할아버지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동시에 왜 할머니는 그 역사를 은폐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였고 아들인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를 강하게 요구했음에도 할머니는 왜 입을 열지 못했을까. 저자는 고통과 기억과 두려움을 삼키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곧 생존의 조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공산주의자 전과자의 아내라는 낙인은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재산을 모두 잃고 재봉사와 보육원 일을 전전하며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했다. 할머니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조국이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해한 적도 없다. 다만 먼저 떠난 남편의 행적을 다른 이들이, 가족이든 당시의 지배세력이든 누군가가 악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381쪽). 북한군이 공주에 도착하기 전날 밤, 할머니는 수감 관련 서류와 편지, 정치 이론에 관한 저술, 신문 기사, 남편의 책을 모두 불태운다.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남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북한군이 남하하면 남편의 흔적이 이들 가족에게 좋은 지위를 보장하리라 기대한 친척도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모든 기록을 불태우고 땅에 묻는다. 더는 불확실한 상황에 삶을 맡길 수 없었다. 할머니는 차라리 표백된 과거를 생존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고 셈하는 것마저 배제했다.
"두 차례에 걸쳐 봉기해서 동학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렴.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일어난 결과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줄은 몰랐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역사가 그 증거다."(269쪽)
과거를 지우기로 한 단호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묻자, 할머니는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의 집안과 같은 양반 지주층과 외세에 저항하며 시작된 이 토착 사회운동을 막기 위해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은 톈진 조약 위반이라며 자국군을 개입시켰고 이것이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비화하여 결국 조선은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의 집은 당시 동학 농민들이 점거해 사용하던 항쟁 본부였다. 할머니는 그들이 남기고 간 창 두 자루를 오래 바라보던 순간을 들려준다.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일제강점기로, 다시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할머니에게 인간의 의지나 신념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은 무엇이 밝혀지는가만큼 무엇이 사라졌는가를 보게 하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결정적 자료를 발견하는 국면에서도 되풀이된다. 자료 소장자에게 왜 이처럼 중요한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는지를 묻자,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292쪽)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엇이 기록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기록될 수 없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서 사적인 침묵과 공적인 망각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공적 역사의 공백은 가족 안의 비밀이 되었고, 가족이 삼킨 비밀은 공적 역사에서 다시 하나의 결락으로 남았다. 저자가 복원하는 것은 어느 독립운동가의 전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과정 자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더듬는 끝에서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오래도록 설명할 수 없었던 공허와 모호한 정체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진 역사적 침묵의 유산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집이란 장소가 아니다. 존재의 상태다"
내가 누구인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긴 추적 끝에 저자는 범죄자였던 할아버지가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아버지에게 상속된 줄조차 모르고 있던 토지를 정리해,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공주고등학교에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그리고 공주고등학교로부터 할아버지의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호인 '성야星野'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워졌던 이름이 다시 쓰이고, 가족은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한다.
나아가 이야기는 한 독립운동가의 명예뿐 아니라, 저자가 자신을 현재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든 시간을 되찾는 데로 뻗어간다. 저자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과거를 지우는 일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손녀에게는 그 과거를 되찾는 일이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잊힌 역사를 되찾고, 할머니의 오랜 침묵이 어떠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였는지를 이해하면서 저자는 비로소 "집에 온 기분"(389쪽)을 느낀다. 여기서 집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은 상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 존재의 상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되며 독립운동가 이철하와 그 가족의 역사가 그 역사가 시작된 이곳의 '집'으로 찾아온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말해지지 않은 것은 없거나 사라진 것이 아님을 상기하며 무엇을 응시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나는 할머니가 감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간의 일을 물었던 질문과, 내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에 비슷한 응답이 돌아왔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둔다."(314쪽)
"너희는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387쪽)
목차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
유골
이장
유산
1. 할머니와의 첫 번째 인터뷰
얌전한 소녀
소녀 시절
사진
잃어버린 역사
탈출
새출발
상처 난 조직
저항
우화
치료
결핵
독재
반체제 인사
2. 할머니와의 두 번째 인터뷰
자유의 맛
이주
신 박사
잃어버린 아이러니
단서
밤
부역자
독방 감금
기록
항거
제물
3. 할머니와의 세 번째 인터뷰
부화장
화양연화
영웅
생존
빈소
내용
종손
에필로그: 천국의 정원
참고자료
감사의 말
추천의 말
프롤로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
유골
이장
유산
1. 할머니와의 첫 번째 인터뷰
얌전한 소녀
소녀 시절
사진
잃어버린 역사
탈출
새출발
상처 난 조직
저항
우화
치료
결핵
독재
반체제 인사
2. 할머니와의 두 번째 인터뷰
자유의 맛
이주
신 박사
잃어버린 아이러니
단서
밤
부역자
독방 감금
기록
항거
제물
3. 할머니와의 세 번째 인터뷰
부화장
화양연화
영웅
생존
빈소
내용
종손
에필로그: 천국의 정원
참고자료
감사의 말
추천의 말
저자
저자
마거릿 주혜 리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더 네이션》의 문학 편집자로 일했으며, 《더 네이션》, 《뉴스데이》, 《엘르》, 《더 럼퍼스》 등에 기사, 비평, 인터뷰를 기고했다.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연구소의 번팅 연구 펠로십과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 연구 펠로십에 선정되어 《비밀의 들판》을 집필했다. 2020년에는 할아버지인 애국지사 이철하의 명예 회복에 기여한 공로로, 충청남도 공주의 상철문화복지재단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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