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시의 형성과 그 벗바리(재만조선인 시 저작집 3)(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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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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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시에서 감지되는 저항적 정서, 이용악, 이찬의 작품을 벼리는 민족주의적 사유, 김남인 시의 외연과 내포가 다른 아세아주의?細?主義, 이런 작품의 성격은 1930년대 말 조선의 어느 지역, 어떤 시인의 작품에도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이다. 이서해는 북방이 고향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민족韓民族의 구허?墟인 가야하??河를 발밤발밤 밟으며 시를 썼고, 윤동주는 간도에서 태어나 일제의 천년 수도, 교토에서 문학 공부를 하면서 북간도 고향을 그리워했다. 심연수는 북만에서 윤동주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나 '소년아 봄은 오리니'라 민족의 내일을 예언하며 6개월을 더 살다가 일경의 총탄으로 생을 마감했다. 둘 다 스물일곱, 너무 젊고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다. 그러나 이 두 시인은 이제 북만의 별로 우리 시를 지킨다. 윤동주는 올해도 80주기를 맞아 '어둠 넘어 별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거듭나 사랑받고(『조선일보』.2025.4.24.), 심연수는 해마다 심연수기념사업회가 그의 시와 삶을 기리고 있다.
『문장』, 『인문평론』이 폐간되고 그 대신 『국민문학』, 『동양지광』 등의 친일본 잡지가 창간되는가 하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폐간됨으로써 그 두 일간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많은 시인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 일제의 패악질로 우리 말은 모국어의 지위 절반을 잃었다. 일상에서는 우리말을 썼으나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한글 잡지도 '황국신민의 서사'를 권두에 싣고 일제의 주요 문화정책을 따라야 했다. 이런 문학장에 문인들은 절망했으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당수 문인들이 이중어 글쓰기 등으로 시대에 순응했고, 더러는 침묵, 전원 귀의, 절필로 맞서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한 떼의 젊은 시인들이 국경 너머 북방으로 갔다. 거기 북방에는 새로운 나라 만주국이 나타났고, 그 일제의 꼭두각시 나라는 조선 말 일간지 ?만선일보?를 발행했으며 그 신문을 만주국을 세운 관동군이 관리했으나 희한하게도 5족의 하나인 조선인 몫의 언권言?을 허용했다. 검열이 있었으나 신문사 자체 검열이고, 일간지라 인력과 시간에 쫓겨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결과 작품 활동이 본의 아니게 자유로웠다. 그런 문화 상황은 숨통이 조인 본국과 달라 본국 문인까지 그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시현실? 동인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도문?們 일우에 아지트를 틀고 갈대처럼 모여 사는 동족을 뒷배로 시를 투쟁의 무기로 삼아 본국과는 크게 다른 초현실주의 기법의 시를 만주국 하늘에 쏘아 올렸다. 경성고보 김기림의 제자 이수형李琇馨, 신동철申東哲, 황민?民, 경성고보 시절 적색농민 운동을 한 함형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수형은 일제를 야유하는 ?백란의 수선화?,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 ?풍경수술?을, 신동철은 경성鏡城에서 수시로 도문을 드나들며 ?시현실? 동인의 리더 이수형과 합작으로 ?생활의 시가?를, 성진의 황민?民도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제 식민지 정책을 검증하는 장시 ?금역의 수첩?을, 함형수는 ?정오의 모랄?을 ?만선일보?에 발표했다.
김기림은 문학의 명문 일본대학 예술과, 동북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특이한 이력과 그 두 번의 유학 중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같은 심각한 역사적 사건을 일본에서 소문으로 체험했고, 재산가의 후예이며, 태평양전쟁 시기는 낙향하여 문단과는 거리를 두고 경성고보鏡城高普 교유로 살았기에 혹자는 그것을 일제에 대한 협력으로 평가한다. 다른 한 편 최재서와 우리 고유의 시문학의 유전인자를 탈아입구로 개종하려 한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이런 진단이 김기림의 초기 시가 돌올한 현실주의 시라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야기된 결과라는 사실을 그의 초기 시를 통해 논증했다.
이용악과 이찬은 함경도 변새의 풍물 속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래서 그들은 북방의 느꺼운 장소성을 처연한 시상으로 승화시킨다. 이용악의 ?북쪽?, ?제비 갓흔 소녀야?, ?낡은 집?, 이찬의 ?頌·아리나레?, ?후치령? 등이 북방 시를 대표하는 성취로 평가되는 것이 그렇다. 그러면서 이용악은 슬픔과 행복의 고착지를 고향의 장소감으로 형상화했다. ?풀버렛소리 가득차잇섯다?, ?아이야 돌다리 위로 가자?와 같은 작품이다. 이찬은 북국 민중의 간고한 삶을 현실주의 시로 서사화했다. ?소묘·북국어항?, ?북만주로 가는 월이?, ?너이들을 보내구?, ?가구야 말려느냐? 등이 그런 작품이다.
이용악, 이찬의 이런 작품들은 1940년대 전반기 재만 조선인 시단 형성의 벗바리 역할을 했다. 재만 조선인 시단의 주체 ?시현실? 동인의 근거지가 도문인 것이 크게 보면 공간적 배경, 시인의 성정, 현실주의 지향의 시품詩品 등이 관서, 관북 지역과 함께 묶이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이 만든 AI가 인간을 넘보는 자기모순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독창적인 예술을 창작할 수 있고, 그 앞자리에 시가 있다. 시는 인간이 창작하는 가장 높은 정신의 결정체이며 꽃이고, 철학이 수행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구현한다. 시인은 자신만의 사유를 통한 주관으로 세상을 보지만 그 주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나름의 진실을 구현한다. 이런 점에서 시는 설사, 재난의 인간세Human age가 현실로 닥치더라도 인간을 지킬 것이다.
『문장』, 『인문평론』이 폐간되고 그 대신 『국민문학』, 『동양지광』 등의 친일본 잡지가 창간되는가 하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폐간됨으로써 그 두 일간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많은 시인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 일제의 패악질로 우리 말은 모국어의 지위 절반을 잃었다. 일상에서는 우리말을 썼으나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한글 잡지도 '황국신민의 서사'를 권두에 싣고 일제의 주요 문화정책을 따라야 했다. 이런 문학장에 문인들은 절망했으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당수 문인들이 이중어 글쓰기 등으로 시대에 순응했고, 더러는 침묵, 전원 귀의, 절필로 맞서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한 떼의 젊은 시인들이 국경 너머 북방으로 갔다. 거기 북방에는 새로운 나라 만주국이 나타났고, 그 일제의 꼭두각시 나라는 조선 말 일간지 ?만선일보?를 발행했으며 그 신문을 만주국을 세운 관동군이 관리했으나 희한하게도 5족의 하나인 조선인 몫의 언권言?을 허용했다. 검열이 있었으나 신문사 자체 검열이고, 일간지라 인력과 시간에 쫓겨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결과 작품 활동이 본의 아니게 자유로웠다. 그런 문화 상황은 숨통이 조인 본국과 달라 본국 문인까지 그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시현실? 동인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도문?們 일우에 아지트를 틀고 갈대처럼 모여 사는 동족을 뒷배로 시를 투쟁의 무기로 삼아 본국과는 크게 다른 초현실주의 기법의 시를 만주국 하늘에 쏘아 올렸다. 경성고보 김기림의 제자 이수형李琇馨, 신동철申東哲, 황민?民, 경성고보 시절 적색농민 운동을 한 함형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수형은 일제를 야유하는 ?백란의 수선화?,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 ?풍경수술?을, 신동철은 경성鏡城에서 수시로 도문을 드나들며 ?시현실? 동인의 리더 이수형과 합작으로 ?생활의 시가?를, 성진의 황민?民도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제 식민지 정책을 검증하는 장시 ?금역의 수첩?을, 함형수는 ?정오의 모랄?을 ?만선일보?에 발표했다.
김기림은 문학의 명문 일본대학 예술과, 동북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특이한 이력과 그 두 번의 유학 중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같은 심각한 역사적 사건을 일본에서 소문으로 체험했고, 재산가의 후예이며, 태평양전쟁 시기는 낙향하여 문단과는 거리를 두고 경성고보鏡城高普 교유로 살았기에 혹자는 그것을 일제에 대한 협력으로 평가한다. 다른 한 편 최재서와 우리 고유의 시문학의 유전인자를 탈아입구로 개종하려 한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이런 진단이 김기림의 초기 시가 돌올한 현실주의 시라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야기된 결과라는 사실을 그의 초기 시를 통해 논증했다.
이용악과 이찬은 함경도 변새의 풍물 속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래서 그들은 북방의 느꺼운 장소성을 처연한 시상으로 승화시킨다. 이용악의 ?북쪽?, ?제비 갓흔 소녀야?, ?낡은 집?, 이찬의 ?頌·아리나레?, ?후치령? 등이 북방 시를 대표하는 성취로 평가되는 것이 그렇다. 그러면서 이용악은 슬픔과 행복의 고착지를 고향의 장소감으로 형상화했다. ?풀버렛소리 가득차잇섯다?, ?아이야 돌다리 위로 가자?와 같은 작품이다. 이찬은 북국 민중의 간고한 삶을 현실주의 시로 서사화했다. ?소묘·북국어항?, ?북만주로 가는 월이?, ?너이들을 보내구?, ?가구야 말려느냐? 등이 그런 작품이다.
이용악, 이찬의 이런 작품들은 1940년대 전반기 재만 조선인 시단 형성의 벗바리 역할을 했다. 재만 조선인 시단의 주체 ?시현실? 동인의 근거지가 도문인 것이 크게 보면 공간적 배경, 시인의 성정, 현실주의 지향의 시품詩品 등이 관서, 관북 지역과 함께 묶이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이 만든 AI가 인간을 넘보는 자기모순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독창적인 예술을 창작할 수 있고, 그 앞자리에 시가 있다. 시는 인간이 창작하는 가장 높은 정신의 결정체이며 꽃이고, 철학이 수행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구현한다. 시인은 자신만의 사유를 통한 주관으로 세상을 보지만 그 주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나름의 진실을 구현한다. 이런 점에서 시는 설사, 재난의 인간세Human age가 현실로 닥치더라도 인간을 지킬 것이다.
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국경을 넘는 시인들의 번민과 재만 조선인 시
1. 북방시의 원적과 형성 개관
2. 마침내 백석의 북방시
제2장 북방 시의 벗바리 함경도 세 시인
1. 김기림 론 / 재만 조선인 시단과 ?시현실? 동인의 벗바리
2. 이용악 론 / 변새의 정한 양면 조합, 그 식민지 문학의 반면교사
3. 이찬 론 / '북쪽 나라' 현실 조응과 식민에의 대항
제3장 북만으로 떠나는 시인들
1. 유치환과 『靑馬詩?』의 사상적 배경
2. 김남인과 『?色馬』
3. 이서해와 『異?女』
제4장 만주 이민 2세 두 젊은 시인의 북간도
1. 북간도의 별, 윤동주
2. 심연수와 '소년의 봄'
제5장 총괄논의
참고 문헌
인명 찾아보기
작품 및 내용 찾아보기
제1장 국경을 넘는 시인들의 번민과 재만 조선인 시
1. 북방시의 원적과 형성 개관
2. 마침내 백석의 북방시
제2장 북방 시의 벗바리 함경도 세 시인
1. 김기림 론 / 재만 조선인 시단과 ?시현실? 동인의 벗바리
2. 이용악 론 / 변새의 정한 양면 조합, 그 식민지 문학의 반면교사
3. 이찬 론 / '북쪽 나라' 현실 조응과 식민에의 대항
제3장 북만으로 떠나는 시인들
1. 유치환과 『靑馬詩?』의 사상적 배경
2. 김남인과 『?色馬』
3. 이서해와 『異?女』
제4장 만주 이민 2세 두 젊은 시인의 북간도
1. 북간도의 별, 윤동주
2. 심연수와 '소년의 봄'
제5장 총괄논의
참고 문헌
인명 찾아보기
작품 및 내용 찾아보기
저자
저자
오양호
경북 칠곡 출생.
경북고, 경북대, 영남대대학원 문학박사(1981).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천대학교 교수 역임.
日·韓交流基金을 받아 京都大에서 외국인학자 초빙교수로 연구하고 강의했다. 大山文化財團의 지원으로 ?鄭芝溶詩選?(花神社. 東京)을 공역하였고, 京都大 근무시절 정지용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沃川文化院의 지원을 받아 鄭芝溶詩碑를 同志社大에 건립했다. 정년 뒤에는 北京의 中央民族大學, 長春의 吉林大學에서 재만 조선인문학을 강의했다.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연구』, 『농민소설론』, 『한국문학과 간도』, 『일제강점기 만주조선인문학연구』, 『만주 이민문학연구』, 『북방시 형성과 그 벗바리』, 『한국근대수필의 행방』 등의 연구서가 있다.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하여 『문학의 논리와 전환사회』, 『신세대문학과 소설의 현장』, 『낭만적 영혼의 귀환』 등의 평론집과 『한국현대소설의 서사담론』, 『한국현대소설과 인물형상』 등 소설론을 출판했다.
제68회 대한민국 학술원상 인문학 부문 수상, 아르코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등을 받았다.
현재 인천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이다.
경북고, 경북대, 영남대대학원 문학박사(1981).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천대학교 교수 역임.
日·韓交流基金을 받아 京都大에서 외국인학자 초빙교수로 연구하고 강의했다. 大山文化財團의 지원으로 ?鄭芝溶詩選?(花神社. 東京)을 공역하였고, 京都大 근무시절 정지용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沃川文化院의 지원을 받아 鄭芝溶詩碑를 同志社大에 건립했다. 정년 뒤에는 北京의 中央民族大學, 長春의 吉林大學에서 재만 조선인문학을 강의했다.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연구』, 『농민소설론』, 『한국문학과 간도』, 『일제강점기 만주조선인문학연구』, 『만주 이민문학연구』, 『북방시 형성과 그 벗바리』, 『한국근대수필의 행방』 등의 연구서가 있다.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하여 『문학의 논리와 전환사회』, 『신세대문학과 소설의 현장』, 『낭만적 영혼의 귀환』 등의 평론집과 『한국현대소설의 서사담론』, 『한국현대소설과 인물형상』 등 소설론을 출판했다.
제68회 대한민국 학술원상 인문학 부문 수상, 아르코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등을 받았다.
현재 인천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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