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평선 3(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341)(양장본 Hardcover)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섭랑(葉朗) 교수는 중국 고전시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라면, 중국 미학사에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은 왕부지와 섭섭(葉燮)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부지는 학문을 닦고 공명을 구한 시기는 태어난 때인 1619년부터 청나라 군대가 북경에 입성한 1644년까지이다. 왕부지는 7세에 『십삼경』을 통독하였다. 14세에 수재가 되었으며, 16세에 시 쓰기를 배우고, 24세에 무창(武昌)에서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26세 때인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북경이 청나라에 함락되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함과 동시에 왕부지의 배움의 일은 급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 시기부터 왕부지는 1650년 32세의 무렵까지 청군이 호남까지 내려오는 상황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호남과 호북을 다니며 정부군의 전략에 참가하였다. 남명 정권 내부의 부패로 왕부지는 죽을 위기에 몰리면서 계림으로 피하여 들어갔고, 은거를 결심하기로 한다.
은거하며 저술에 몰두하기 시작한 왕부지는 1651년 33세부터 1692년 74세까지 약 40년간 『주역』과 『춘추』를 강론한 최초의 이론 저서인 『노자연(老子衍)』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멸망과 민족의 고난 앞에서 문명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문화의 성격을 숙고하였다. 사상과 문화의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저술은 경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 천문, 역법, 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까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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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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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부터 왕부지는 1650년 32세의 무렵까지 청군이 호남까지 내려오는 상황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호남과 호북을 다니며 정부군의 전략에 참가하였다. 남명 정권 내부의 부패로 왕부지는 죽을 위기에 몰리면서 계림으로 피하여 들어갔고, 은거를 결심하기로 한다.
은거하며 저술에 몰두하기 시작한 왕부지는 1651년 33세부터 1692년 74세까지 약 40년간 『주역』과 『춘추』를 강론한 최초의 이론 저서인 『노자연(老子衍)』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멸망과 민족의 고난 앞에서 문명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문화의 성격을 숙고하였다. 사상과 문화의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저술은 경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 천문, 역법, 수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까지 미쳤다.
중국 미학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왕부지
『당시평선』은 약 5만 수의 당시 가운데 558수를 골라[選] 평어[評]를 붙인 책이다. 총 4권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수록 시인은 147명이다. 권1은 악부가행(樂府歌行), 권2는 오언고시, 권3은 오언율시(오언배율 포함), 권4는 칠언율시로 되어있다.
책 전체를 합산하여 시가 가장 많이 실린 시인을 순서대로 보면 두보 91수, 이백 43수, 왕유 25수의 순이다. 왕부지가 가장 높이 평가하고 주목한 시인은 이백, 왕유, 두보였고, 이 가운데 두보에 대해서는 칭찬한 부분도 있지만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당시 평가와 비교했을 때 심전기, 송지문, 저광희, 위응물을 높이 평가하였고, 반대로 이기, 백거이, 원진, 한유, 맹교, 허혼, 교연 등은 혹평하였다.
왕부지 시평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경』부터 명대까지의 역대의 시를 하나의 시관(詩觀)으로 꿰뚫어 보면서 평했다는 점이다. 왕부지의 시평 방식은 틀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스럽다. 논의할 만한 점이 있으면 수시로 길게 썼으며, 논의할 만한 점이 적거나 없으면 간결하게 한두 글자로 평하기도 했다.
왕부지가 문명사의 시각에서 역대의 시를 바라보고 당대 이래의 시의 내용과 풍격을 비판한 것은 시를 통해 본 정감의 변천이 점점 하락하고 그 결과 명의 멸망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가 세 권의 평선(評選)을 편찬한 것도 공자의 산시(刪詩)를 본받아 정감을 바로 세우려는 뜻에서 나온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문명사의 시각에서 타락해가는 인간의 정감을 재구축하려는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태종황제(太宗皇帝) 4수
'부교'를 제목으로 하여(賦得浮橋)
회일(月晦)
비를 읊다(詠雨)
복사꽃을 읊다(詠桃)
왕적(王績) 1수
들을 조망하며(野望)
곽리정(郭利正) 1수
원석(元夕)
왕발(王勃) 6수
동작기(銅雀妓)
헤어지며(別薛華)
교외의 흥취(郊興)
봄날 교외에 돌아와(春日還郊)
술을 마주하고 봄날 정원에서 지음(對酒春園作)
성천의 연회(聖泉宴)
양형(楊炯) 1수
종군의 노래(從軍行)
낙빈왕(駱賓王) 3수
가을 반디(秋螢)
악 대부 만사 2수(樂大夫輓詞 二首)
제1수
제2수
마주(馬周) 1수
이른 아침 강 위에서의 나그네 생각(凌朝浮江旅思)
왕인(王?) 1수
제야(除夜)
진자앙(陳子昻) 2수
형문을 지나 초 땅을 바라보며(度荊門望楚)
봄밤에 친구와 헤어지며(春夜別友人)
두심언(杜審言) 7수
진릉 육승의 '이른 봄의 조망'에 화답하며(和晉陵陸丞早春遊望)
칠석(七夕)
양양성에 올라(登襄陽城)
여름날 정칠의 산중 거처에 들러(夏日過鄭七山齋)
가을밤 임진현 정 명부 집 연회에서(秋夜宴臨津鄭明府宅)
위승경이 지은 '의양공주 산지에 들러'에 화답하며-5수에서 2수 뽑음(和韋承慶過義陽公主山池 五首選二)
제1수
제2수
심전기(沈佺期) 3수
소림사에서 놀며(遊少林寺)
무산은 높아(巫山高)
잡시(雜詩)
송지문(宋之問) 4수
양왕의 '용담의 연회'에 삼가 화답하여 응교하며 미운(微韻)으로 쓰다(奉和梁王宴龍泓應敎得微字)
육혼 산장(陸渾山莊)
한강에서 전별하며(漢江宴別)
경호의 남계에서 배를 띄우고(泛鏡湖南溪)
종초객(宗楚客) 1수
'인일 청휘각 연회에서 군신들이 눈을 맞으며'에 삼가 화답하여 응제하다(奉和人日淸暉閣宴群臣遇雪應制)
곽진(郭震) 1수
새상곡(塞上)
장구령(張九齡) 1수
호수 어귀에서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湖口望廬山瀑布泉)
장열(張說) 3수
단주 역전에서 고전과 헤어진 곳에 돌아와(還至端州驛前與高六別處)
유주에서 밤에 술을 마시며(幽州夜飮)
윤무가 지은 '가을 밤 옹호에서 유람하며'에 화답하다(和尹懋秋夜遊?湖)
요숭(姚崇) 1수
가을밤에 달을 보며(秋夜望月)
손적(孫?) 2수
운문사 전각에서 묵으며(宿雲門寺閣)
사신으로 상경하는 월주 배 참군을 보내며(送越州裴參軍充使入京)
위제(韋濟) 1수
임금이 지으신 '경악궁에 머물며'를 삼가 화답하며 응제하다(奉和聖制次瓊嶽應制)
현종황제(玄宗皇帝) 2수
촉 땅에 행차할 때 검문에 이르러(幸蜀西至劍門)
유황이 지은 '비를 기뻐하다'에 화답하며(同劉晃喜雨)
왕만(王灣) 1수
강남의 정취(江南意)
장자용(張子容) 1수
영가강에서 저물녘 돌아가는 배를 띄우고(泛永嘉江日暮回舟)
저광희(儲光羲) 2수
한양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漢陽卽事)
추운 밤 강어귀에 배를 대며(寒夜江口泊舟)
왕유(王維) 12수
종남산(終南山)
사냥 구경(觀獵)
기왕을 따라 양씨 별장을 방문하여 응교하다(從岐王過楊氏別業應敎)
최 원외의 '가을밤에 당직을 서며'에 화답하며(同崔員外秋宵寓直)
향적사를 찾아 (過香積寺)
사신으로 변새에 가며(使至塞上)
평담연 판관을 보내며(送平淡然判官)
산속의 가을 저녁(山居秋暝)
망천에서 한가히 지내며 수재 배적에게(輞川閑居贈裴秀才迪)
재주로 가는 이 사군을 보내며(送梓州李使君)
수재 배적의 작은 누대에 올라(登裴秀才迪小臺)
산에서 살며 보이는 대로(山居卽事)
맹호연(孟浩然) 3수
동정호를 바라보며 장구령 승상께 드림(望洞庭湖贈張丞相)
대우사 의공 선방에 적다(題大禹寺義公禪房)
왕구의 방문을 기뻐하며(春中喜王九相尋)
고적(高適) 2수
민중으로 폄적가는 정 시어를 보내며(送鄭侍御謫?中)
계북에서 돌아와(自?北歸)
잠삼(岑參) 2수
정 소부를 보내며(送鄭少府赴?陽)
무위에서 늦봄에 우문 판관이 이미 서쪽 진창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武威暮春, 聞宇文判官西使還, 已到晉昌)
최호(崔顥) 1수
서하로 부임하는 선우도호부 배 도호를 보내며(送單于裴都護赴西河)
조영(祖詠) 1수
정곡을 지나며(過鄭曲)
최서(崔曙) 1수
길 가는 도중 새벽에 출발하며(塗中曉發)
기무잠(?毋潛) 2수
산꼭대기에 있는 영은사 선원의 벽에 적다(題靈隱寺山頂禪院)
용흥사에서 묵으며(宿龍興寺)
정선지(丁仙芝) 2수
양자강을 건너며(渡揚子江)
도성에서 세밑을 보내며(京中守歲)
이백(李白) 7수
가을의 그리움(秋思)
새하곡-6수에서 1수 뽑음(塞下曲 六首選一)
대천산 도사를 만나지 못하고(訪戴天山道士不遇)
옹 존사의 은거지를 찾아(尋雍尊師隱居)
태원의 이른 가을(太原早秋)
형문산을 지나 이별하며(渡荊門送別)
사공정(謝公亭)
두보(杜甫) 19수
봄에 문하성에서 숙직하며(春宿左省)
저녁에 문하성을 나오며(晩出左掖)
행재소에 이르러 기뻐하며(喜達行在所)
악양루에 올라(登岳陽樓)
진주 잡시 2수(秦州雜詩 二首)
제1수
제2수
들을 바라보며(野望)
우 임금 사당(禹廟)
배 타고 기주로 가려다가 성곽 밖에서 묵고, 비에 젖어 상륙하지 못한 채 왕십이 판관과 헤어지다(船下夔州郭宿, 雨濕不得上岸, 別王十二判官)
떠도는 밤에 감회를 쓰다(夜書懷旅)
고단한 밤(倦夜)
밤에 서각에서 묵으며, 새벽에 원조장에게 드림(夜宿西閣, 曉呈元二十一曹長)
내키는 대로 쓰다(漫成)
떨어지는 해(落日)
사남에서 저녁에 바라보며(祠南夕望)
버려진 밭(廢畦)
좌씨 저택의 밤잔치(夜宴左氏莊)
막 떠오른 달(初月)
금대(琴臺)
장균(張均) 1수
악양의 저녁 풍경(岳陽晩景)
장순(張巡) 1수
피리 소리를 들으며(聞笛)
한산자(寒山子) 1수
무제(無題)
유장경(劉長卿) 3수
여간 객사(餘干旅舍)
표모 무덤을 지나며(經漂母墓)
휴 선사의 쌍봉사에서 노닐며(遊休禪師雙峰寺)
전기(錢起) 2수
배적의 서재에서 달구경 하며(裴迪書齋玩月之作)
이른 아침 강녕으로 내려가며(早下江寧)
위응물(韋應物) 1수
진릉현 현령으로 부임하는 종형을 삼가 보내며(奉送從兄宰晉陵)
이가우(李嘉祐) 5수
조정에 들어가는 최 시어를 보내며(送崔侍御入朝)
겨울밤 요주자사 공관에서 흡주로 부임하는 상공 아재를 보 내며(冬夜饒州使堂餞相公五叔赴?州)
장산 개선사(蔣山開善寺)
도관원외랑 묘발의 '가을밤 당직하며 비를 마주하고'에 화답하며, 지기들에게 서간 삼아 보내다(和都官苗員外秋夜寓直對雨, 簡諸知己)
봄날 기수 강가에서 지음(春日淇上作)
두숙향(竇叔向) 1수
봄날의 아침 조회 응제시(春日早朝應制)
왕무경(王無競) 1수
무산(巫山)
왕건(王建) 1수
행인을 바라보며(望行人)
이단(李端) 1수
무산은 높아(巫山高)
융욱(戎昱) 1수
한수 강가의 위씨 저택에 적다(漢上題韋氏莊)
장적(張籍) 2수
강남의 옛 유람지를 생각하며(思江南舊遊)
물(水)
가도(賈島) 2수
박릉의 친구를 그리며(懷博陵故人)
변경으로 유람가는 친구를 보내며(送友人遊塞)
이약(李約) 1수
종군행(從軍行)
장호(張祜) 1수
선지사(禪智寺)
이선원(李宣遠) 1수
병주 가는 길(幷州路)
주하(周賀) 1수
가을 동정산에서 묵으며(秋宿洞庭)
승영철(僧靈徹) 1수
중양절에 우 사군의 '상경한 친구를 그리며'에 화답하다(九日和于使君思上京親故)
승영일(僧靈一) 1수
황보염의 '서릉'을 받고 답하다(酬皇甫?西陵見寄)
승처묵(僧處?) 1수
성과사(聖果寺)
이야(李冶) 1수
교서랑 일곱째 오빠에게 부침(寄校書七兄)
두목(杜牧) 1수
구계에서 여름날 왕옥산으로 돌아가는 수재 노패를 보내며, 장차 과거에 응시하러 감(句溪夏日送盧?秀才歸王屋山, 將欲赴擧)
이상은(李商隱) 2수
봄밤에 마음을 달래며(春宵自遣)
무제(無題)
설능(薛能) 2수
술잔을 띄운 연못(泛觴池)
공희 황태후 만가(恭禧皇太后挽歌詞)
마대(馬戴) 3수
초강 회고(楚江懷古)
금산사로 돌아가는 스님을 보내며(送僧歸金山寺)
촉 땅으로 유람가는 사람을 보내며(送人遊蜀)
이빈(李頻) 1수
월중의 노래(越中行)
사공도(司空圖) 1수
낮은 곳에 머물며(下方)
정오(鄭?) 3수
산에 살며 3수(山居 三首)
제1수
제2수
제3수
이동(李洞) 1수
남해로 유람가는 스님을 보내며(送僧遊南海)
승제기(僧齊己) 1수
축융봉에 올라(登祝融峰)
부록 오언배율
송지문(宋之問) 1수
영은사(靈隱寺)
양사도(楊師道) 1수
임금이 지으신 '여름날 저녁 풍경'에 화답하다(奉和夏日晩景應詔)
진자앙(陳子昻) 1수
만주에서 새벽에 출발할 때 물이 차 배를 띄우고, 촉중의 친구들에게 부치다(萬州曉發放舟乘漲, 還寄蜀中親朋)
두심언(杜審言) 2수
소미도에게 (贈蘇味道)
봄날 강진에서 둘러보며(春日江津遊望)
심전기(沈佺期) 5수
밤놀이(夜遊)
위 사인의 '아침 조회'에 화답하며(和韋舍人早朝)
선악지정에서 시연하며 응제하다(仙?池亭侍宴應制)
백련화정에서 시연하며 응제하다(白蓮花亭侍宴應制)
원만경 사인의 '연못가에서 달을 감상하며'에 화답하며 신체시로 장난삼아 짓다(和元舍人萬頃臨池玩月?爲新體)
송지문(宋之問) 3수
'장안고성 미앙궁 행차'에 삼가 화답하여 응제하다(奉和幸長安故城未央宮應制)
등주를 떠나며(發藤州)
단주를 떠나 서강에 막 들어서며(發端州初入西江)
송경(宋璟) 1수
임금이 지으신 '변방을 순찰하는 장열을 보내며'에 화답하며(奉和聖制送張說巡邊)
장구령(張九齡) 2수
허 급사중의 '밤에 당직을 서며 여러 공에게 부치다'에 화답하며(和許給事中直夜簡諸公)
임금이 지으신 '삭방군에 부임하는 상서 연국공 장열을 보내며'에 삼가 화답하며(奉和聖制送尙書燕國公赴朔方)
손적(孫?) 1수
강을 따라가며 감회가 있어(江行有懷)
3수
상락으로 부임하는 이 태수를 보내며(送李太守赴上洛)
임금이 지으신 '상사일 망춘정에서 불계를 관람하며 마심'에 삼가 화답하여 응제하다(奉和聖制上巳於望春亭觀?飮應制)
심 거사 산거에 들러 곡을 하며(過沈居士山居哭之)
구위(丘爲) 1수
월 땅으로 가는 염 교서를 보내며(送閻校書之越)
고적(高適) 1수
두 시어를 모시고 영운지에 배를 띄우고(陪竇侍御泛靈雲池)
잠삼(岑參) 2수
검남도를 지휘하러 가는 곽 복야를 보내며(送郭僕射節制劍南)
항주에 부임하러 가는 노 낭중을 보내며(送廬郎中除杭州赴任)
이백(李白) 1수
무창으로 가는 저옹을 보내며(送儲邕之武昌)
두보(杜甫) 4수
천추절에 감회가 있어(千秋節有感)
다시 소릉을 지나며(重經昭陵)
봄에 돌아와(春歸)
가다가 고성점에서 묵은 후 강에 배를 띄우고 짓다-자신의 졸렬함을 헤아리지 않고 강릉 막부의 여러 공에게 삼가 드림(行次古城店泛江作, 不揆鄙拙, 奉呈江陵幕府諸公)
유장경(劉長卿) 2수
도림사 서쪽에서 돌길로 녹산사에 이르고 법숭 선사의 고가에 들르다(自道林寺西入石路至麓山寺, 過法崇師故居)
초봄에 눈이 내린 후 상수 가에서-함께 유람한 여러 사람에게 드림(長沙早春雪後臨湘水, 呈同遊子)
전기(錢起) 1수
선성 장 태수의 '남정의 가을 저녁에 친구를 그리며'에 삼가 화답하며(奉和宣城張太守南亭秋夕懷友)
정심(鄭審) 1수
장안과 낙양의 길에 과수 심는 일을 순검하라는 사명을 마치고 장안에 들어섰기에 읊다(奉使巡檢兩京路種果樹事畢入秦因詠)
마대(馬戴) 1수
강서 종사로 가는 한 교서를 보내며(送韓校書江西從事)
장교(張喬) 1수
달 속의 계수나무(試月中桂)
승무가(僧無可) 1수
강서로 부임하는 한 교서를 보내며(送韓校書赴江西)
저자
저자
청대초기(1619~1692)에 활동한 뛰어난 사상가이자 역사학자, 시인, 평론가이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외전(周易外傳)』, 『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 『상서인의(尙書引義)』,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 『노자연(老子衍)』, 『장자통(莊子通)』 등이 있고, 문학과 관련된 저서로는 『당시평선(唐詩評選)』 이외에 『시광전(詩廣傳)』, 『초사통석(楚辭通釋)』, 『고시평선(古詩評選)』, 『명시평선(明詩評選)』, 『강재시화(薑齋詩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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