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과 그 후(반양장)(반양장)
일본의 정부책임과 민중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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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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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일본거주조선인 사회운동의 발전, 일본인 사회운동과
연대 지향에 대한 경시청의 탄압
머리말 - 난바 다이스케(難波大助)가 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직전의 토쿄(東京) 노동절
제1절 일본거주조선인 노동자계급의 형성
1. 한국병합조약 이전의 일본거주조선인 노동자
2.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거주조선인 인구 증가의 배경
3. 일본거주조선인노동자의 노동조건
4.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 불황과 일본인노동자의 조선인노동자에 대한 반감
제2절 일본거주조선인 사회운동의 발전과 일본인 사회운동과의 연대 시도
1. 3.1 독립운동 이후, 일본 내 조선인운동의 발전
2. 일본거주조선인의 사회운동 시작, 일본인 사회운동과 연대 지향
3. 1922년 9월 시나노(神農)강 조선인노동자 학살사건 조사보고회
4. 『아카하타(赤旗)』 1923년 4월호 앙케이트 「무산계급이 본 조선해방 문제」의 회신
제3절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전야 ? 1923년 토쿄 노동절에서
경시청이 조선인 및 일본인 사회운동가에 가한 격심한 탄압 -
1. 1923년 제4회 토쿄 노동절 준비위원회에 의한 '식민지 해방' 구호
2. 제4회 토쿄 노동절 행사에서 경시청이 가한 대탄압
제4절 친일파 조선인의 등장과 일본 관헌의 지원 -'내선융화' 운동의 탄생-
1. 조선인 동화론자 홍의표(洪矣杓)의 등장
2. 친일단체 상애회(相愛)의 설립
제2장 관동대지진 시의 조선인학살 사건과 일본 정부
제1절 일본 정부가 유포한 '조선인폭동' 유언비어와 조선인학살사건
1. 1923년 9월 1일 저녁부터 경찰관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증거
2. 1923년 9월 2일에 경찰관 또는 경찰서가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증거
3. 1923년 9월 2일내무성 경보국장이 '조선인폭동'이란 허위 전보 발신
4. 1923년 9월 3일 가나가와(神奈川)현 미우라(三浦)군 군수가 정촌(町村)장에게 보낸 '불온조선인(不逞鮮人)'관련 지령
5. 일본 관헌이 유포한 '조선인폭동'의 유언비어와 민중의 인식
6. "조선인은 죽여도 된다"는 경찰관 발언이 민중에 미친 영향
7. 민중의 조선인학살을 한층 조장한 계엄령 포고와 군대 출동
8. 조선인학살사건이 일어난 기간
제2절 '조선인 폭동'이라는 헛소문을 날조한 일본 관헌
1. '조선인폭동'의 소문에 대해 군대와 관헌에서 나온 의혹
2. 정책 전환을 모색한 일본정부
3. 일본정부 사법성이 날조한 '조선인폭동'
4. 사법성 발표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
제3절 형식적인 재판으로 조선인학살사건의 책임을 회피한 일본정부
1. 조선인을 학살한 자경단원 재판의 정치적 의미
2. 조선인을 학살한 자경단원 검거
3. 조선인학살사건 관련 재판의 문제점
제4절 피학살 조선인 시체를 숨긴 일본 경찰, 재일본 관동지방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고뇌
1. 피학살 조선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경찰의 방해
2. 경찰에 의한 조선인 유해 인도거부와 은폐
3. 재일본 관동지방이재동포위문반의 중간보고와 최종보고서
4. 쿠도 미요코(工藤美代子)저 『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에 대한 비판
제5절 일본 관헌에 의한 유언비어살포 책임 은폐와 역사서 편찬
1. '조선인폭동'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국가책임을 숨긴 관료
2. 일본정부의 책임을 숨긴 관헌 편찬의 역사서
제3장 일본 민중과 진보파의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태도
머리말 -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거나 보호했던 행동의 분기점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진보파의 사회적 위치
강덕상의 '3대 테러 사건'론에 대한 비판
제1절 자경단(自警)의 성립
1. 성립 과정에서 본 자경단의 4가지 유형
2. 자경단을 구성한 사람들
3. 자경단의 수
4. 자경단의 민족차별 인식과 '불온조선인'상
5. 자경단에 참가한 일본 민중의 내셔널리즘
6. 조선인학살사건과 마을공동체 의식
7. 조선인을 잔혹하게 학살한 자경단
8. 관동(關東)자경동맹의 등장과 그 운동
제2절 관동대지진 시에 일본 사회운동가가 강요당한 정치사회적 제약
1. 일본 관헌에 의한 사회주의자 탄압
2. 순(純)노동조합과 난카츠(南葛)노동회 구성원 간의 상이한 대응
제3절 일상에서 조선인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 민중의 행동
1. 조선인 2명을 구한 치바(千葉)현 히가시카츠시카(東葛飾)군 호텐무라(法典村)의 농민들
2. 조선인노동자를 지켜준 혼조(本庄)의 제사공장 사장
3. 조선인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인과 그렇지 않은 일본인의 차이 ?요리이(寄居)학살의 사례-
4. 맺으며
제4절 일본 민중에게 '국가주의'에서 해방되라고 호소한 지식인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를 중심으로-
1. 일본 민중이 가진 국가주의를 비판한 지식인
2. 조선인에 대한 억압자였다고 자신을 객관시한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
3. '국가주의'에서 해방됨을 제기한 아키타 우자쿠
4. 아키타 우자쿠의 대표적 명작 〈해골의 무도(舞蹈)〉
5. 일본거주조선인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공감한 아키타 우자쿠
6. 민족차별에 기인한 이판능 살상사건에 대한 아키타 우자쿠의 동찰
7. 관동대지진 시기에 아키타 우자쿠가 취한 행동
제5절 일본 민중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이 주는 역사적 의미
1. 1920년대에 싹튼 일본 민중의 국가주의 이탈
2. '정신작흥(情神作興)의 조칙(詔勅)'과 1924년 토쿄 노동절로 본 일본노동운동
제4장 1945년 이전, 일본거주조선인 및 일본인이 행한
조선인 학살희생자 추도 운동 그리고 일본 정부
들어가며
제1절 조선인학살사건 이후, 일본거주조선인 및 일본인에 의한 추도 및 항의 운동
1. 항의를 담은 일본거주조선인의 추도 집회
2. 항의집회 참가, 추도집회 개최를 금지당한 일본 사회운동가
3. 일본거주조선인과 연계한 일본 노동자의 항의추도 집회
4. 일본인 기독교 신자에 의한 조선인 및 중국인 희생자 추도회
5. 조선인학살사건에 관한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사상과 행동
6. 사이타마(埼玉)현의 추도회
7. 군마(群馬)현에서 일본인이 건립한 조선인학살사건피해자의 묘비 및 추도비
8. 치바(千葉)현에서 개최된 추도회와 건립된 추도비
9. 카나가와(神奈川)현에서 개최된 추도 행위
10. 1945년 이전에 건립된 피학살자 묘비와 추도비의 특징
제2절 '내선융화(內鮮融和)' 목적으로 개최된 추도회
1. '내선융화'와 조선인학살에 대한 항의가 충돌한 추도회
2. '내선융화' 노선이 관철된 추도회 개최
3. 지역거주조선인에 의한 학살희생자 추도를 '내선융화' 노선으로 포섭한 요코하마(浜)의 사례
제3절 해방전 일본거주조선인의 항의 차원 추도회와 일본 관헌의 탄압
1. 조선인학살사건 이후, 조선인에 의해 개최된 항의 및 추도 집회
2. 일본거주조선인의 진보계 사회운동단체 및 종교단체 등이 전개한 추도 및 항의 운동
3. 민족주의계 기독교 단체와 융화주의 단체가 개최한 추도회
제5장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오늘날 일본의 국가책임과 민중책임
제1절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1945년 이전의 일본정부책임 추궁
1. 1924년 8월 말, 『아사히(朝日)신문』과 『호치(報知)신문』의 일본정부 비판
2. 1923년 12월, 아마모토 콘노효에이(山本兵衛) 수상의 속임수 답변
제2절 1945년 이후 일본인이 추진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의 추도 및 조사
1. 1963년 '40주년'에 이루어진 추도와 조사
2. 1973년 '50주년'의 추도와 조사
3. 1983년 '60주년'의 추도와 조사
4. 1993년 '70주년'의 추도와 조사
제3절 1945년 8월 이후,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사건의 일본정부 책임을 추궁한 재일조선인
1. 재일본조선인연맹에 의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 추도회
2. 일본정부에게 관동대지진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사죄를 요구한 재일조선인의 운동
3.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일본 수상에게 제출한 사죄권고서와 그 파문
제4절 1945년 이후 건립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의 묘비, 추도비를 통해 본 일본인의 사상 상황
1. 패전 이후 일본인이 세운 조선인희생자 추도비와 일본인의 사상 상황
2. 패전 이후 일본인이 재일조선인과 함께 건립한 조선인희생자추도비
제5절 일본인에 의해 시작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 추궁
1. 일본인에 의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 국가책임 제기
2. 일본인, 재일조선인, 한국인에 의한 3자 제휴의 추도운동 전개
3.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창립
역자 후기
제1장 일본거주조선인 사회운동의 발전, 일본인 사회운동과
연대 지향에 대한 경시청의 탄압
머리말 - 난바 다이스케(難波大助)가 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직전의 토쿄(東京) 노동절
제1절 일본거주조선인 노동자계급의 형성
1. 한국병합조약 이전의 일본거주조선인 노동자
2.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거주조선인 인구 증가의 배경
3. 일본거주조선인노동자의 노동조건
4.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 불황과 일본인노동자의 조선인노동자에 대한 반감
제2절 일본거주조선인 사회운동의 발전과 일본인 사회운동과의 연대 시도
1. 3.1 독립운동 이후, 일본 내 조선인운동의 발전
2. 일본거주조선인의 사회운동 시작, 일본인 사회운동과 연대 지향
3. 1922년 9월 시나노(神農)강 조선인노동자 학살사건 조사보고회
4. 『아카하타(赤旗)』 1923년 4월호 앙케이트 「무산계급이 본 조선해방 문제」의 회신
제3절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전야 ? 1923년 토쿄 노동절에서
경시청이 조선인 및 일본인 사회운동가에 가한 격심한 탄압 -
1. 1923년 제4회 토쿄 노동절 준비위원회에 의한 '식민지 해방' 구호
2. 제4회 토쿄 노동절 행사에서 경시청이 가한 대탄압
제4절 친일파 조선인의 등장과 일본 관헌의 지원 -'내선융화' 운동의 탄생-
1. 조선인 동화론자 홍의표(洪矣杓)의 등장
2. 친일단체 상애회(相愛)의 설립
제2장 관동대지진 시의 조선인학살 사건과 일본 정부
제1절 일본 정부가 유포한 '조선인폭동' 유언비어와 조선인학살사건
1. 1923년 9월 1일 저녁부터 경찰관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증거
2. 1923년 9월 2일에 경찰관 또는 경찰서가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증거
3. 1923년 9월 2일내무성 경보국장이 '조선인폭동'이란 허위 전보 발신
4. 1923년 9월 3일 가나가와(神奈川)현 미우라(三浦)군 군수가 정촌(町村)장에게 보낸 '불온조선인(不逞鮮人)'관련 지령
5. 일본 관헌이 유포한 '조선인폭동'의 유언비어와 민중의 인식
6. "조선인은 죽여도 된다"는 경찰관 발언이 민중에 미친 영향
7. 민중의 조선인학살을 한층 조장한 계엄령 포고와 군대 출동
8. 조선인학살사건이 일어난 기간
제2절 '조선인 폭동'이라는 헛소문을 날조한 일본 관헌
1. '조선인폭동'의 소문에 대해 군대와 관헌에서 나온 의혹
2. 정책 전환을 모색한 일본정부
3. 일본정부 사법성이 날조한 '조선인폭동'
4. 사법성 발표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
제3절 형식적인 재판으로 조선인학살사건의 책임을 회피한 일본정부
1. 조선인을 학살한 자경단원 재판의 정치적 의미
2. 조선인을 학살한 자경단원 검거
3. 조선인학살사건 관련 재판의 문제점
제4절 피학살 조선인 시체를 숨긴 일본 경찰, 재일본 관동지방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고뇌
1. 피학살 조선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경찰의 방해
2. 경찰에 의한 조선인 유해 인도거부와 은폐
3. 재일본 관동지방이재동포위문반의 중간보고와 최종보고서
4. 쿠도 미요코(工藤美代子)저 『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에 대한 비판
제5절 일본 관헌에 의한 유언비어살포 책임 은폐와 역사서 편찬
1. '조선인폭동'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국가책임을 숨긴 관료
2. 일본정부의 책임을 숨긴 관헌 편찬의 역사서
제3장 일본 민중과 진보파의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태도
머리말 -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거나 보호했던 행동의 분기점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진보파의 사회적 위치
강덕상의 '3대 테러 사건'론에 대한 비판
제1절 자경단(自警)의 성립
1. 성립 과정에서 본 자경단의 4가지 유형
2. 자경단을 구성한 사람들
3. 자경단의 수
4. 자경단의 민족차별 인식과 '불온조선인'상
5. 자경단에 참가한 일본 민중의 내셔널리즘
6. 조선인학살사건과 마을공동체 의식
7. 조선인을 잔혹하게 학살한 자경단
8. 관동(關東)자경동맹의 등장과 그 운동
제2절 관동대지진 시에 일본 사회운동가가 강요당한 정치사회적 제약
1. 일본 관헌에 의한 사회주의자 탄압
2. 순(純)노동조합과 난카츠(南葛)노동회 구성원 간의 상이한 대응
제3절 일상에서 조선인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 민중의 행동
1. 조선인 2명을 구한 치바(千葉)현 히가시카츠시카(東葛飾)군 호텐무라(法典村)의 농민들
2. 조선인노동자를 지켜준 혼조(本庄)의 제사공장 사장
3. 조선인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인과 그렇지 않은 일본인의 차이 ?요리이(寄居)학살의 사례-
4. 맺으며
제4절 일본 민중에게 '국가주의'에서 해방되라고 호소한 지식인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를 중심으로-
1. 일본 민중이 가진 국가주의를 비판한 지식인
2. 조선인에 대한 억압자였다고 자신을 객관시한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
3. '국가주의'에서 해방됨을 제기한 아키타 우자쿠
4. 아키타 우자쿠의 대표적 명작 〈해골의 무도(舞蹈)〉
5. 일본거주조선인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공감한 아키타 우자쿠
6. 민족차별에 기인한 이판능 살상사건에 대한 아키타 우자쿠의 동찰
7. 관동대지진 시기에 아키타 우자쿠가 취한 행동
제5절 일본 민중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이 주는 역사적 의미
1. 1920년대에 싹튼 일본 민중의 국가주의 이탈
2. '정신작흥(情神作興)의 조칙(詔勅)'과 1924년 토쿄 노동절로 본 일본노동운동
제4장 1945년 이전, 일본거주조선인 및 일본인이 행한
조선인 학살희생자 추도 운동 그리고 일본 정부
들어가며
제1절 조선인학살사건 이후, 일본거주조선인 및 일본인에 의한 추도 및 항의 운동
1. 항의를 담은 일본거주조선인의 추도 집회
2. 항의집회 참가, 추도집회 개최를 금지당한 일본 사회운동가
3. 일본거주조선인과 연계한 일본 노동자의 항의추도 집회
4. 일본인 기독교 신자에 의한 조선인 및 중국인 희생자 추도회
5. 조선인학살사건에 관한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사상과 행동
6. 사이타마(埼玉)현의 추도회
7. 군마(群馬)현에서 일본인이 건립한 조선인학살사건피해자의 묘비 및 추도비
8. 치바(千葉)현에서 개최된 추도회와 건립된 추도비
9. 카나가와(神奈川)현에서 개최된 추도 행위
10. 1945년 이전에 건립된 피학살자 묘비와 추도비의 특징
제2절 '내선융화(內鮮融和)' 목적으로 개최된 추도회
1. '내선융화'와 조선인학살에 대한 항의가 충돌한 추도회
2. '내선융화' 노선이 관철된 추도회 개최
3. 지역거주조선인에 의한 학살희생자 추도를 '내선융화' 노선으로 포섭한 요코하마(浜)의 사례
제3절 해방전 일본거주조선인의 항의 차원 추도회와 일본 관헌의 탄압
1. 조선인학살사건 이후, 조선인에 의해 개최된 항의 및 추도 집회
2. 일본거주조선인의 진보계 사회운동단체 및 종교단체 등이 전개한 추도 및 항의 운동
3. 민족주의계 기독교 단체와 융화주의 단체가 개최한 추도회
제5장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오늘날 일본의 국가책임과 민중책임
제1절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1945년 이전의 일본정부책임 추궁
1. 1924년 8월 말, 『아사히(朝日)신문』과 『호치(報知)신문』의 일본정부 비판
2. 1923년 12월, 아마모토 콘노효에이(山本兵衛) 수상의 속임수 답변
제2절 1945년 이후 일본인이 추진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의 추도 및 조사
1. 1963년 '40주년'에 이루어진 추도와 조사
2. 1973년 '50주년'의 추도와 조사
3. 1983년 '60주년'의 추도와 조사
4. 1993년 '70주년'의 추도와 조사
제3절 1945년 8월 이후,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사건의 일본정부 책임을 추궁한 재일조선인
1. 재일본조선인연맹에 의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 추도회
2. 일본정부에게 관동대지진시 조선인학살에 대한 사죄를 요구한 재일조선인의 운동
3.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일본 수상에게 제출한 사죄권고서와 그 파문
제4절 1945년 이후 건립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희생자의 묘비, 추도비를 통해 본 일본인의 사상 상황
1. 패전 이후 일본인이 세운 조선인희생자 추도비와 일본인의 사상 상황
2. 패전 이후 일본인이 재일조선인과 함께 건립한 조선인희생자추도비
제5절 일본인에 의해 시작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 추궁
1. 일본인에 의한 관동대지진 시 조선인학살 국가책임 제기
2. 일본인, 재일조선인, 한국인에 의한 3자 제휴의 추도운동 전개
3.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창립
역자 후기
저자
저자
야마다 쇼지 (山田昭次)
1930年生. 근현대 일본민중사, 한일관계사 전공.
(일본) 立?大? 名??授. 「?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家責任を問う?」 공동대표.
〈단독저서〉
『金子文子?自己·天皇制?家·朝鮮人』(影書房, 1996);『植民地支配·??·?後の責任: 朝鮮·中?への視点の模索』(創史社, 2005); 『?東大震災時の朝鮮人虐殺とその後:虐殺の?家責任と民衆責任』(創史社, 2011); 『全???者追悼式批判―軍事大?化への布石と遺族の苦?』(影書房, 2014); 『?東大震災時の朝鮮人迫害: 全?各地での流言と朝鮮人虐待』(創史社, 2014).
〈공저〉
『近現代史のなかの日本と朝鮮』(東京書籍, 1991); 『朝鮮人?時??動員』(岩波書店, 2005); 『隣?からの告?:?制連行の企業責任 2』(創史社, 1996).
〈편저〉
『近代民衆の記? 6 ?州移民』(新人物往?社, 1978); 『朝鮮人虐殺?連新聞報道史料1~4(?東大震災朝鮮人虐殺問題?係史料5)』(?陰書房, 2004); 『?東大震災朝鮮人虐殺裁判資料(在日朝鮮人資料叢書10)』(?陰書房, 2014).
1930年生. 근현대 일본민중사, 한일관계사 전공.
(일본) 立?大? 名??授. 「?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家責任を問う?」 공동대표.
〈단독저서〉
『金子文子?自己·天皇制?家·朝鮮人』(影書房, 1996);『植民地支配·??·?後の責任: 朝鮮·中?への視点の模索』(創史社, 2005); 『?東大震災時の朝鮮人虐殺とその後:虐殺の?家責任と民衆責任』(創史社, 2011); 『全???者追悼式批判―軍事大?化への布石と遺族の苦?』(影書房, 2014); 『?東大震災時の朝鮮人迫害: 全?各地での流言と朝鮮人虐待』(創史社, 2014).
〈공저〉
『近現代史のなかの日本と朝鮮』(東京書籍, 1991); 『朝鮮人?時??動員』(岩波書店, 2005); 『隣?からの告?:?制連行の企業責任 2』(創史社, 1996).
〈편저〉
『近代民衆の記? 6 ?州移民』(新人物往?社, 1978); 『朝鮮人虐殺?連新聞報道史料1~4(?東大震災朝鮮人虐殺問題?係史料5)』(?陰書房, 2004); 『?東大震災朝鮮人虐殺裁判資料(在日朝鮮人資料叢書10)』(?陰書房,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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