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외재문집 1(양장본 Hardcover)
卷1~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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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 정태진 선생의 『외재문집』 국역본
영남 유림의 참된 학자, 외재 정태진 선생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9) 선생은 조선 후기 9대 옥당(홍문관)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으로, 다산 정약용 등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동정 이병호와 면우 곽종석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성리학과 경학을 깊이 다졌으며, 1919년 파리장서 사건에 서명하는 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요동으로 이동해 국외 망명을 도모했으나, 이후 귀국하여 선조의 검암정사(儉巖精舍)를 중건하고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연민 이가원 선생 역시 그의 대표적인 문생이다.
선생은 성리학과 예설(禮說)에 깊은 조예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다산의 경세치용 학풍을 이어받아 실질적인 사회 개혁론을 적극 펼쳤다. 학교(學校), 전제(田制), 용인(用人) 등에 관한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사회적 폐단을 직언한 여러 글을 남겼으며, 임하(林下)에 기거하며 독서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당시 영남 유림에서는 그를 일컬어 '참된 학자'라 칭송하였고, 84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영남의 선비들은 모두 "철인이 떠나셨다[?儒萎矣]"라고 하였다.
『외재문집』 구성과 학술적 의의
『외재문집』은 1959년 선생의 서거 후 제자 김승학과 후배 김용규의 유고 교정을 거쳐, 대표 제자인 연민 이가원 선생이 외재 선생의 글 가운데 10분의 8을 추려 문체별로 나누고 종류별로 계통을 잡아서 모두 14권 7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1961년 작성된 연민의 발문에서는 선생을 향한 깊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외재전서』로 명명되기도 했으나, 1967년 부록을 더해 석판본 『외재문집』으로 최종 간행되었다. 문집에는 시 273수를 비롯해 성리설, 예학, 경세치용을 논한 편지 172편과 다양한 서발(序跋)·잡저(雜著) 등 도합 350여 편의 글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의리(義理)의 실(實)을 중시하고 평이한 언어로 민생과 국정을 논한 글들은 일제강점기 영남 유학자들의 교유 관계와 유학사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전기적 사료라 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 『외재문집』은 이황에서 곽종석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잇는 동시에, 주자학·퇴계학의 전통과 현대를 매개하는 가교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외재 선생은 제자 이가원에게 "정덕(正德)이 본(本)이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은 말(末)"임을 강조하며 실심·실리·실행의 실학적 태도를 가르쳤고, 이는 향후 연민의 연암 박지원 연구 및 국문학 체계화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국역 외재문집』은 한문 원전의 한계로 접근이 쉽지 않았던 후손과 학계에 선생의 학문 체계를 폭넓게 제공함은 물론, 외재 선생을 비롯해 근대 전환기 영남 유학자들에 관한 후속 연구와 연민학(淵民學)의 지평을 한층 더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남 유림의 참된 학자, 외재 정태진 선생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9) 선생은 조선 후기 9대 옥당(홍문관)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으로, 다산 정약용 등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동정 이병호와 면우 곽종석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성리학과 경학을 깊이 다졌으며, 1919년 파리장서 사건에 서명하는 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요동으로 이동해 국외 망명을 도모했으나, 이후 귀국하여 선조의 검암정사(儉巖精舍)를 중건하고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연민 이가원 선생 역시 그의 대표적인 문생이다.
선생은 성리학과 예설(禮說)에 깊은 조예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다산의 경세치용 학풍을 이어받아 실질적인 사회 개혁론을 적극 펼쳤다. 학교(學校), 전제(田制), 용인(用人) 등에 관한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사회적 폐단을 직언한 여러 글을 남겼으며, 임하(林下)에 기거하며 독서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당시 영남 유림에서는 그를 일컬어 '참된 학자'라 칭송하였고, 84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영남의 선비들은 모두 "철인이 떠나셨다[?儒萎矣]"라고 하였다.
『외재문집』 구성과 학술적 의의
『외재문집』은 1959년 선생의 서거 후 제자 김승학과 후배 김용규의 유고 교정을 거쳐, 대표 제자인 연민 이가원 선생이 외재 선생의 글 가운데 10분의 8을 추려 문체별로 나누고 종류별로 계통을 잡아서 모두 14권 7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1961년 작성된 연민의 발문에서는 선생을 향한 깊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외재전서』로 명명되기도 했으나, 1967년 부록을 더해 석판본 『외재문집』으로 최종 간행되었다. 문집에는 시 273수를 비롯해 성리설, 예학, 경세치용을 논한 편지 172편과 다양한 서발(序跋)·잡저(雜著) 등 도합 350여 편의 글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의리(義理)의 실(實)을 중시하고 평이한 언어로 민생과 국정을 논한 글들은 일제강점기 영남 유학자들의 교유 관계와 유학사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전기적 사료라 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 『외재문집』은 이황에서 곽종석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잇는 동시에, 주자학·퇴계학의 전통과 현대를 매개하는 가교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외재 선생은 제자 이가원에게 "정덕(正德)이 본(本)이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은 말(末)"임을 강조하며 실심·실리·실행의 실학적 태도를 가르쳤고, 이는 향후 연민의 연암 박지원 연구 및 국문학 체계화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국역 외재문집』은 한문 원전의 한계로 접근이 쉽지 않았던 후손과 학계에 선생의 학문 체계를 폭넓게 제공함은 물론, 외재 선생을 비롯해 근대 전환기 영남 유학자들에 관한 후속 연구와 연민학(淵民學)의 지평을 한층 더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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