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
『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은 ‘신화’라는 약간 케케묵은 낭만적인 개념을 이용하면서도 ‘문화는 기호의 집적이며, 또한 기호 이상의 무엇이다’라는 모순된 사고방식을 양립시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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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해법은 있는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인 신화'를 넘어
사고하는 주체로서 신화,
그 작동원리로 네트워크 사회 문화구조를 살핀다!
사고하는 주체로서 신화,
우리 시대 정보처리 방정식으로서 신화를 말하다!
\
새로운 의미의 신화는, 정보네트워크의 복잡성을 '감축'시키며
때로는 네트워크 그 자체를 확장키기도 하는, 운동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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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성과 사상성, 유머와 지성의 공존!
축제적인 서브컬처와 내성적인 문학 사이,
새로운 정보화사회와 과거 인문지(人文知) 사이의 화해!
그 사이에서 신화의 사고가 작동한다!!
\
이 책『신화가 생각한다』는
'신화'라는 약간 케케묵은 낭만적인 개념을 이용하면서도
'문화는 기호의 집적이며, 또한 기호 이상의 무엇이다'라는 모순된 사고방식을
어떻게 해서든 양립시켜 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계산 가능한 것과 계산 불가능한 것,
패턴화된 기호 세계와 무질서한 우연성의 세계를 화해시키기 위해,
'신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
그러므로
'신화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가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의 '신화'는 일반적으로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 즉 사회를 근저에서부터 개혁하려는 운동과 결부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신화는 그러한 낡은 의미와는 관계없고, 오히려 좀 더 단순하게 정보처리 방정식(알고리즘)을 의미한다. 신화는 우리를 둘러싼 정보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때로는 감축(減縮)하고 때로는 네트워크 그 자체를 확장하기도 하는 운동성을 갖고 있다. 그 운동성을 분석할 때 서브컬처 작품이나 네트컬처 현상이 많이 다뤄지는 이유는 무수한 정보를 적절하게 처리, 즉 감축해야 한다는 요청이 역시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더욱 절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1장은 구체적인 작품론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날 신화의 기초로서의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또한 인터넷상의 서비스, 구체적으로는 니꼬니꼬 동영상을 예로 들어 소비의 새로운 양식(mode)으로서의 '리좀화한 데이터베이스'를 다룬다. 그리고 그 데이터베이스를 염두에 두면서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 분석철학자의 견해를 빌어서 신화와 '공(公)과 사(私)'의 구별 관계를 논한다.
제2장에서는 사회에 이미 널리 침투된 신화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재디자인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예전 서브컬처가 젊은이 문화(youth culture)이며 주로 젊은층의 표현매체였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만화든 애니메이션이든 게임이든 이미 적정 기간을 거쳐서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한 서브컬처,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신화가 어떻게 재생되는지를 '상상력'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제3장은 제2장을 보완하는 장으로, 여러 장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것'의 힘을 생각한다. 제3장의 후반에는 야나기타 구니오의 『도노 모노가타리(遠野物語)』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장은 작품론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여기서는 오히려 상징적인 것의 위상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위치지음으로써 신화론을 될 수 있으면 일반화하고자 한다.
제4장의 주제는 소설이다. 구체적으로는 휴대폰소설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새로운 종류의 펄프픽션의 등장을 다루며 그 선구자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화를 다룬다. 또한 소비사회의 주체성의 모델로서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1888~1959, 소설가)로 대표되는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을 참조한다.
제5장에서는 게임의 사례를 다룬다. 게임은 '내적인 정합성'을 갖춘 의사(擬似) 객관적 세계이며 그러기에 포스트모던의 신화로서 가장 귀중하다. 그렇긴 해도 이번 장에서는 게임의 정석 같은 작품보다도 게임의 시간성을 마치 아이러니컬하게 뒤집은 특이한, 그리고 미학적인 작품에 주목한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루이스 캐럴의 소설-아시다시피 캐럴은 게임 애호가였다-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신화적 사고의 여러 유형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제1장의 주제로 돌아가서 근대적(정치적) 공(公)과 사(私), 포스트모던적(신화적) 공과 사, 이렇게 총 네 영역의 특성을 대략적으로 다룬다. 즉 이 책의 전체 내용을 보다 상위의 시점에서 살펴보는 장이다.
전체적으로 작품론을 기본적인 주안점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추상적인 논의는 물론, 시점이 빈번하게 이동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부담스러운 독자를 위해 책 말미에 키워드 해설을 덧붙였다. 우선 그것을 슬쩍 훑어보고 그런 다음 본문을 읽기길 바란다.
[한국어판 저자 서문]
나의 『신화가 생각한다』 한국어판이 출판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인데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나의 데뷔작이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여러 가지 부족함과 미흡함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따라서 이 서문에서는 『신화가 생각한다』가 속한 일본의 문화적 맥락에 관해 몇 가지 보충 설명을 해두고자 한다.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이데올로기 시대가 끝나고 자유주의와 소비사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명백하게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과거의 인문적 가치관에서 보자면, 전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는 현상이 서서히 일본문화에 침투하고 있다. 가령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인터넷 서비스 사이트 니꼬니꼬 동영상에서는 '작가'라는 고유한 인격이 '익명'의 군중 속에 매몰되는 대신에 엄청난 기호나 아이콘이 매일매일 끊이지 않고 순환하며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작품들은 결코 뛰어난 것도 아니고 사상적으로 고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일본의 일부 젊은 문화비평가들은 이런 류의 집단적이고 상업적인 시스템이야말로 포스트모던한 창조성을 보여주는 최첨단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에 대해 다른 견해[異論]나 비판이 있다는 것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예를 들면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할복자살하기 직전 에 했던 연설문에서 "일본은 없어지고 그 대신에, 무기적(無機的)인, 텅 빈, 뉴트럴한(중립적인), 중간색의, 부유하는, 빈틈 없는, 어떤 경제 대국이 극동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예언은 그 뒤 일본의 앞날을 정확히 예견했다. 미시마 자신은 '문화개념으로서의 천황'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문화에서 민족의 의지와 초월성을 되찾으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시대착오적인 자살을 감행했지만 현대 일본인 대부분은 미시마의 행동에는 아무런 리얼리티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에 빠진 현대 일본인에게는 문화=기호가 자명한 풍경이며, 문화=의지였던 시대는 먼 과거의 한물간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문화는 바야흐로 기호 조작 게임이 된 셈이고, 민족의 역사에 잠든 의지를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미시마가 살아 있다면 지금의 일본은 이미 진정한 일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자신은 미시마의 사상에 양가적(ambivalent) 감정을 갖고 있다. 복고주의자도 아니고 러다이트(Luddite, 신기술 반대자)도 아닌 나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기본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문화가 단순한 기호 게임으로 환원돼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신화'라는 약간 케케묵은 낭만적인 개념을 이용하면서도 '문화는 (미시마의 생각과는 달리) 기호의 집적이며, 또한 (미시마가 생각한 것처럼) 기호 이상의 무엇이다'라는 모순된 사고방식을 어떻게 해서든 양립시켜 보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계산 가능한 것과 계산 불가능한 것, 패턴화된 기호 세계와 무질서한 우연성의 세계를 화해시키기 위해, '신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그것을 따라잡으려면 다소 벅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서술 방식을 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늘날 폭주하는 자본주의는 빈부의 차이를 확대하고 지금까지 문화예술을 지탱해온 중간층을 무너뜨렸다. 위기에 처한 중간층을 되살리려면 다소 억지스러운 방식일지라도 문화의 새로운 재결합 방식을 생각해야만 한다. 하이컬처(highculture)와 서브컬처(subculture)의 경계를 넘어선, 참된 의미에서의 '민중문학'의 가능성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서브컬처의 등장은 문학에 관한 이미지를 크게 바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20세기 초 무렵 메이지 시대 문학자들은 유럽 소설을 지식인층(intelligentsiya)의 고뇌를 투영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일본의 순문학은 매우 엄격하고 진지한 것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본래 유럽 소설의 뛰어난 장점은 통속성과 사상성, 유머와 지성이 공존하는 데 있다. 그러한 문학의 진정한 힘을 회복하는 데 축제적인 서브컬처와 내성적인 문학, 새로운 정보화사회와 과거의 인문지(人文知)를 화해시키는 것은 분명히 유익하다.
더구나 흥미롭게도 하이컬처와 서브컬처의 경계를 넘어선 '민중문학'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본래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오랫동안 중국 문명권에 속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아시아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오로지 서양화(아메리카화)를 지향했다. 그래서 아시아에 대한 전후 일본인의 상상력은 매우 빈곤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헐리웃 영화나 패션, 만화/애니메이션의 확산으로 인해 지금이야말로 동아시아 규모의 '상상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서브컬처의 '공동체'는 약간 유치한 수준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동아시아 전후사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동족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에서 정치적인 다툼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이러한 동족의식은 유례 없는 중요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중간층의 문화적 빈혈은 장르나 국경을 넘어선 다양한 작품끼리의 재결합에 의해 치유되어야만 한다. 그 재결합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오늘의 비평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만일 이 책이 한국 독자 여러분에게 어떠한 새로운 재결합의 방법을 상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출판사, 번역을 맡아주신 김정복 씨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의 출판이 실현된 것은 오로지 번역자의 열정의 산물이다.
2012년 8월 교토에서
후쿠시마 료타
[추천의 글]
레비스트로스는 죽었다. 그러나 신화는 살아 있다. 실제로 네트워크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 신화적인 세계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른바 미개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도 신화사회학적인 구조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도 좋다.
'신화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가 생각하는' 것이다.
- 아사다 아키라/비평가/『도주론』 저자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겉보기엔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역시 문예비평의 틀 안에 있다. <턴에이 건담>에서 야나기타 구니오, <동방 프로젝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나아가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르기까지 신들이 난립하는 낯선 풍경을 정보사회 속에서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신화가 말하는' 갖가지 양태로서 그려낸 저자의 솜씨는 칭찬할 만하다.
- 사와라기 노이/비평가/『일본ㆍ현대ㆍ미술』 저자
한국의 청년들이 '세대'를 고민할 때,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은 '세계'를 모색하고 있다. 후쿠시마 료타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부터 아즈마 히로키까지 다양한 이론을 종횡무진하며, 루이스 캐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는 문학 작품과, <턴에이 건담>부터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까지 다양한 대중문화를 두루 훑어낸다.
『신화가 생각한다』를 읽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동시대의 사유다.
- 노정태/비평가번역가/『논객시대』 저자
[저자 후기]
인터넷의 등장 이후, 아직도 문화이론의 갱신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방식이 될까-이 책의 주제는 그 물음에 줄곧 부응해왔다. 하지만 저자가 맨 처음 의도한 것은 '신화'라는 개념을 간편한 방식으로 설명한, 보다 형식적인 매뉴얼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저자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발판으로 삼는다면, 완전무결한 모델을 제출하는 것보다는 모든 일을 지속적으로 관측해가는 토대를 설정하는 쪽이 현대에는 보다 본질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후기도 종점의 선언인 동시에 출발점의 선언이어야 한다.
아무튼 현대가, 과거에는 거의 없었던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집필은 과거의 문화론에서 별로 친숙하지 않은 발상이나 어휘를, 문장으로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이 책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방식으로-약간 무작위로- 문헌이나 작품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에 읽고 당황하시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장르나 세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화라는 '콘셉트'를 중심에 둔 결과다. 그런 의도를 헤아려주신다면 다행이겠다.
제4장의 말미에서 오늘날은 문학을 하는 데 최악의 시기이며 또한 최고의 시기라는 생각을 밝혔는데 비평도 그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오늘날만큼, 비평이라는 장르의 비중이 높아지는 시대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사회나 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할 기회를 얻고 있다. 동시에 변화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고 낡은 언어로 타성에 얽매여버릴 위험성도 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비평은 전자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지향해야만 한다.
본문을 읽어주신 독자라면 알아차리셨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아즈마 히로키 씨의 비평에 정말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비평을 쓰게 된 계기는 2004년에 아즈마 씨가 주관하는 메일 매거진 《파상언론(波言論, hajougenron)》에 한 편의 문예평론을 투고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 정도가 지났지만 메일 매거진 《파상언론》이 지녔던 대담함과 자유로움은 여전히 내가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원점이다. 인터넷과 사회학과 서브컬처의 가교에 의한 비평의 재구축을 지향했던 《파상언론》의 정신이 이 책에도 직접 흘러들었음을 이 장을 빌어 새삼 밝혀두고 싶다.
또한 이 책의 모태가 된 것은 《유리이카》지에 '신화사회학'이라는 타이틀로 연재했던 글(2008년 8월호~2009년 8월호)인데, 단행본으로 작업하면서 전면적으로 수정했고 타이틀도 바꿨다. 이 책은 실질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쓴 글이다. 《유리이카》의 편집장 야마모토 미쓰루(山本充) 씨는 무명의 신인에게 일 년간 연재할 기회를 주고 끈기 있게 지켜봐주셨다. 또한 단행본 작업에는 세이도샤의 히시누마 다쓰야(菱沼達也) 씨에게 신세를 졌다. 이 점 감사드린다.
2010년 2월
후쿠시마 료타
[역자 후기]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후쿠시마 료타의 『신화가 생각한다-네트워크사회의 문화론』을 옮긴 것이다. 기존의 신화이론에 익숙한 독자라면, 주로 사고 대상의 자리에 놓이던 '신화'라는 단어가 '사고 주체의 자리'에서 사고 행위를 주관한다는 데 다소 혼란을 느낄 것이다. 머리말에 제시되어 있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신화는 문화적인 모든 활동을 정보처리 과정(알고리즘)으로 간주한 데서 출발한다. 과거의 신화가 문화 인류학적 맥락에서 공간을 주축으로 다뤄졌다면, 오늘의 신화는 정보 네트워크화 맥락에서 시간을 주축으로 재디자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저자의 문제설정에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화론과 정보 네트워크 이론을 접목시킨 후쿠시마 료타의 비평 의식은 그의 학문적 이력과 2000년대 이후 일본 현대 비평계의 맥락 안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1981년 교토시에서 출생한 후쿠시마 료타는 고교시절에 중문학자 나카노 미요코(中野美代子, 1933~)의 책을 읽고서 중국문학을 전공하기로 진로를 정한다. 교토대학교에서 중문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사상가 후스(胡適)의 관점에서 루쉰(魯迅), 저우쭤런(周作人)이 활동했던 1910~1930년대 중국을 고찰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존 듀이(John Dewey)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중국에 소개한 사상가 후스를 연구한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후쿠시마 료타는 중국 본토와 타이완의 문화적 동향에 정통하며, 영미권 이론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다. 이런 성향이 중문학에서 일본 현대 비평계로, 또 다시 동아시아 담론으로 횡단하는 지적 활동을 가능케 한 듯하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의 현대사상, 비평계에 아즈마 히로키의 영향 아래서 성장한 새로운 논자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후쿠시마 료타, 우노 쓰네히로(宇野常, 1978~), 하마노 사토시(濱野智史, 1980~) 등의 비평 활동은 아즈마 히로키 이후의 일본 서브컬처 비평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동되며 상호참조적 성격을 지닌다. 리쓰메이칸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우노 쓰네히로는 재학시절부터 활동하던 인터넷 동인서클 구성원과 함께 2005년 12월 대중문화 전반을 본격 비평하는 미니 비평지 《플래닛(PLANETS)》을 창간한다. 《플래닛》을 중심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현장비평에서 최전선을 지켜온 그는, 『제로년대의 상상력(ゼロ年代の想像力)』(하야카와쇼보, 2008), 『리틀피플의 시대リトルピプルの時代』(겐토샤, 2011), 『일본문화의 논점(日本文化の論点)』(지쿠마쇼보, 2013) 등을 잇달아 출간하며 2000년대 중후반 일본 서브컬처 비평계의 핵심적인 비평가로 자리잡았다. 출세작인 『제로년대의 상상력』을 통해, 아즈마 히로키의 서브컬처 비평의 한계점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의 서사 작품에 드러난 상상력의 변화를 '낡은 상상력'(1995~2001년)과 '현대적 상상력'(2001~2008년)으로 구분한 우노의 주장은 제로년대 서브컬처 비평에 새로운 기폭제가 될만큼 반향이 컸다.
그런가하면,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인터넷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웹서비스 시스템을 분석하는 정보환경 연구자들의 이론서나 비평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하마노 사토시의 첫 비평서 『아키텍처의 생태계(アキテクチャの生態系)』(NTT출판, 2008)는 일본 인터넷 문화 특유의 현상을 집중분석한 비평서로서 2012년에 11쇄를 발행했다. 인터넷 환경을 정보기술(IT)에 의해 설계/구축된,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아키텍처', 즉 환경관리 권력을 이용한 사회설계 진화 프로세스로 간주하는 개념은 원래 미국의 법학자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의 저서 『코드CODE』(1999/일본어판 2001년)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렌스 레식의 '아키텍처' 개념에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사상가들의 권력 이론을 결합시켜 '환경관리형 권력' 개념으로 전유한 이는 아즈마 히로키이지만, 이 개념을 비평적 방법론으로 적극 활용한 이는 하마노 사토시다. 게이쥬쿠대학과 대학원에서 정보환경이론과 미디어론을 전공한 하마노 사토시는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종류의 소셜 네트워크, 가령 구글 검색 엔진, 블로그, SNS, P2P, 니코니코 동영상 공유 서비스 등이 인터넷상에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작동되는 현상을 '아키텍처의 생태계'로 규정하였다. 후쿠시마 역시 인터넷 환경을 '미디어'가 아니라, 일종의 가상 사회구조체인 '장場' 개념으로 설정하는 환경관리형 권력 이론에 기대어 자신의 비평론을 구축하고 있다.
비평가로서 후쿠시마의 활동은 2004년 아즈마 히로키가 발행했던 메일 매거진 『파상언론波狀言論』에 마이조 오타로舞城王太의 작가론 「자연비평기도(기원)-마이조 오타로에 관해」(『波言論』1618호, 2004)를 투고한 것이 계기였다. 교토에서 비평과 강의를 하던 그는 2010년에 『신화가 생각한다』를 출간하며 아즈마 히로키가 발굴한 제로년대(2000년대) 마지막 대형 신인 비평가로서 인문 논단에 알려졌다. 오늘의 신화는 우리의 주관적 지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환경정보'에 입각해서 만들어진다는 후쿠시마의 주장은 아사다 아키라(田彰, 1957~), 사와라기 노이(木野衣, 1962~), 사이토 다마키(藤環, 1961~) 등 이전 세대 비평가와 같은 세대 인문 독자들로부터 동시대를 적확하게 독해하는 새로운 문화론으로 평가받았다. 2013년 10월에 두 번째 저서 『부흥문화론-일본적 창조의 계보(復興文化論-日本的創造の系譜)』를 출간한 데 이어, 현재 동아시아를 테마로 저술을 구상하고 있는 후쿠시마 료타의 지적 역량을 감안하면, 역사학자 요나하 준(與那覇潤, 1979~)과 더불어 동시대 일본의 사상을 동아시아 네트워크와 링크할 수 있는 연구자로서 주목할 만하다.
* * *
이 책은 이전의 번역서 『일본현대미술』 한국어판을 진행하던 중에 업무 동료였던 야노 유타카矢野優 씨가 쓴 짧은 문장을 읽고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실험적인 문화론을 제시한 1981년생 저자의 첫 비평서를 번역출판하는 일은 여러모로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결정하고 실무를 진행해주신 도서출판 기역의 모든 관계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오랫동안 한국어판 실현을 기다려준 저자님, 응원 글을 얹어주신 아사다 아키라, 사와라기 노이, 노정태 세 분 비평가님, 번역 과정에 도움을 주신 번역가 요네즈 도쿠야米津篤八님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남긴다.
번역하던 중 어느 날, 고대가요 <구지가龜旨歌>를 검색하다가 유튜브에 떠 있는 인디 뮤지션 회기동 단편선Hoegidong Danpyunsun의 <구지가Tortoise Ritual>를 시청한 적 있다. 현전 최고最古의 고대가요 <구지가>에서 현대가요 <구지가>에 이르는 유구한 데이터베이스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신화적 상상력이다. 천년의 서사가 살아 있는 교토에서 탄생한 이 책이, 독자들에게 '보다 많은 신화를!' 상상하고 사유하는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2013년 12월
김정복
목차
목차
머리말
정보처리 방정식/ 때마침 그 자리에 있는 것/ 왜 문화론인가?/
작품을 바꾸는 신화와 장場을 바꾸는 신화
제1장 포스트모던의 공公과 사私
1 오늘의 하이퍼리얼리티
2 리좀화하는 서브컬처
3 포스트모던의 공과 사
제2장 신화의 신화
1 링크와 상상력
2 애도작업
3 시간조작
4 리듬의 충돌
제3장 상징적인 것에 대해서
1 감정자본/ 자기조직화/ 구조주의
2 의사종교
제4장 네트워크 시대의 문학-무라카미 하루키 전후
1 커뮤니케이션의 지평
2 라이트노벨과 휴대폰소설
3 무라카미 하루키
4 하드보일드적 주체성
제5장 게임이 생각한다-미학적인 것
1 게임과 기지
2 루이스 캐럴의 문학
마무리
근대적 원리의 부흥/ 동물성에 기초한 사적 영역/
네 가지 상한象限/ 보다 많은 신화를!
키워드 해설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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