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시집(초판본)(양장본 HardCover)
193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의 『초판본 영랑시집』. 1935년 초판본의 내용과 표기는 물론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한 시집. 김영랑은 ‘북에 소월, 남에 영랑’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말을 다루는 언어 감각이 김소월 이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으로서,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시를 썼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처음 출간된 〈영랑시집〉은 ‘서정시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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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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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193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김영랑의 시집을 만나 보십시오
김영랑은 '북에 소월, 남에 영랑'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말을 다루는 언어 감각이 김소월 이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으로서,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시를 썼습니다. 한자어와 외래어 대신 고유한 우리말을 갈고닦아 써내려간 시어는 지금 읽어 보아도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처음 출간된 〈영랑시집〉은 '서정시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35년 초판본의 내용과 표기는 물론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한 이 책으로 김영랑의 아름답고도 순수한 시 세계에 빠져 보시길 바랍니다.
*본 도서는 세로쓰기 및 우측넘김으로 되어 있습니다.
목차
목차
저자
저자
휘문의숙 3학년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시작 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는 곧은 절개를 보여 주었다. 광복 후 은거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고향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해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다. 1948년에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다. 1949년 전남 강진에서 서울로 이사한 이듬해 한국전쟁을 맞았다. 1950년 9·28 당시 서울에서 유탄을 맞고 사망했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고, 광주광역시의 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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