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김증후군(시와세계 시인선 53)
김진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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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서평 ■■
존재를 횡단하는 언어들
김미정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김진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존재의 희미함을 이야기하며 거기에 조금씩 색을 입히기를 시도한다. 그 색들은 무채색이 되거나 때론 여러 색이 혼합되어 새로운 색으로 나타났다가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시는 언어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며 더 확장된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우리가 닿고 싶은 곳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이 고요히 숨 쉬며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새롭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다. 이런 점에서 김진희 시인은 작품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담는 독특한 발화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의 어법은 다정하게 다가와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시적 여정 속에 보여주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는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관조적 태도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상이라는 주어진 삶에 대한 응전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자아의 존재력을 증명하고 확인하려는 몸짓으로 읽을 수 있다. 나 자신 바깥으로부터 들어와 내 것이 되는 온도, 그 감각은 시와 독자의 동시적 작동을 의미한다. 그만큼 시인의 시는 조용하고 나직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게 하는 온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깊고 아득한 시세계로 들어가 본다.
2. 나를 버린 그림자
시인은 세상의 주파수에 집중한다. 일상의 순간들이 전하는 섬세한 파동을 감지하여 시에 안착시킨다. 잡히지 않는 존재의 실루엣을 만나기 위해 수없이 '나를 버린 그림자'를 따라 '멀어진 발자국들'을 뒤집어가며 걸어간다.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르지 않았어
팔을 휘저으면 다리를 오므리고
머리를 숙이면 허리를 비틀더군
어쩔 수 없어
내가 그걸 따라 움직여 보지만
이미 나를 떠났다
그가 하는 대로 풀쩍 뛰었는데
그만 목이 꺾이고 말았어
문득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던 발자국들도
저만치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어
갑자기 멀어진 발자국들
나를 버린 그림자
저들끼리 나를 보며 키들키들 웃고 있더군
밤 내 쪼그리고 앉아
그것들을 땅에다 그려볼 수밖에
아직은 내 것으로 남아있는 손톱으로
─ 「손톱으로 그리다」 전문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르지 않았어"라는 지점에서 시는 발생한다. 삶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화자는 '그림자'를 통해 자아를 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만치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세계에 나는 놓여 있다. 또한 "저들끼리 나를 보며 키들키들 웃"는다고 한다. 분리된 자아의 이중화 또는 분열된 자아와 만남은 그로 인한 불화를 낳는다. 나는 주체이며 타자가 된다. 그것은 곧 자의식의 깨우침이다. "그것들을 땅에다 그려볼 수밖에/ 아직은 내 것으로 남아있는 손톱으로"라는 부분에서는 자신을 찾기 위한 간절함과 분투가 엿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화자는 "밤 내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 「빨래」에서도 "산 채로 박제돼 가는/ 분신들"이라며 자아의 내면과 외연을 형상화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아프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곳곳에서 존재의 인식을 통해 자아를 탐구하는 시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다.
너는 누구냐
내 얼굴, 내 목소리
분명 나인데
언제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너, 도대체 누구냐
잠자는 동안에도 감시하며
무릎 아파 절름거리는 나를 비웃고 있구나
가까이 보면 너라는 인간 눈알이 빨갛고 눈 밑은 시커멓다 귓구멍은 귀털로 막혀있다 눈을 뜨고도 볼 것은 보지 못하고 썩은 냄새만 맡는다 아픈 것을 아프지 못하고 아프지 않은 것의 고통으로 신음한다 그래서 더욱 번질거리는 얼굴
임플란트 다섯 개 관상동맥 스탠트 세 개 모자로 민머리를 감추고 돼지 날 창자를 씹어 먹는다 끝없는 식욕 아가리만 커진 식충 거대한 뱃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들 여자는 엉덩이만 처다본다 혼자 먹고 마시고 혼자 수음하고 혼자 잠드는 혼족
그런 네놈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니
더럽고 가증스러워
디스토피아의 호모 데우스*
도저히 이 세상에 살려둘 수가 없어 너를 죽이기로 한다
무참히 나는 살해당한다
사랑하는 나에게
*Homo Deus, 신이 된 인간
─ 「도플갱어」 전문
화자는 자신의 모습 즉,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모든 요소가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자신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다른 이름으로, 얼굴로, 표정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혼돈의 시대, 자아의 인식은 세계의 인식에서 시작되며 사회는 개인에게 다양한 자아와 역할을 요구한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불온하거나 불안한 세계 속 자아는 파편화된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의 파편화는 내면 풍경 속 부식된 알몸의 자아를 바라보게 된다. 낯선 자신과의 조우다. 자신을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불완전한 체험일 것이다. 인간의 삶을 장악하는 허위와 가식은 자아의식을 표류하게 한다. 그리하여 "더럽고 가증스러워" "도저히 이 세상에 살려둘 수"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아를 만날 뿐이다.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속 스스로 자신을 '살해' 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인의 끝없는 자아의 성찰은 결국 자기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자아의 자각과 현존을 환기하는 반어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낯익은 공원인데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아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데
내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어
"달서구에서 실종된 00씨를 찾습니다"
"중구에서 배회 중인 00씨를 신고해 주세요"
휴대전화 안전 안내 문자마다
짙게 묻어나오는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어두움
나이, 키, 몸무게, 검은 모자
절룩거리는 걸음걸이까지
오늘 아침 세면대 거울에서 본 모습
햇빛이 눈 부신데
광장에는 길이 보이지 않고
벤치가 비어 있어도
앉을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
등불이 하나씩 꺼져가는 막막한 저택
텅 빈 방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나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 「실종」 전문
자아를 찾는 화자의 감각적 이미지들이 시의 행간을 건너며 증폭된다. '실종'은 존재의 부재를 말한다. 화자는 일상의 "낯익은 공원에서" 길을 잃는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삶의 실감 속에 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광장에는 길이 보이지 않고/ 벤치가 비어 있어도/ 앉을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라며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텅 빈 방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나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깊은 고독과 불안을 드러낸다. 화자는 얼마나 자주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신을 만났을까. 시에 나타난 현실감과 생활감은 일상을 다른 각도로 돌려세워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조명하여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김진희 시에 나타난 자아의 모습들은 현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아정체성의 위기에서 촉발된 내면의 치열한 의식을 심도 있게 표현한 시들이다. 자아의 부정과 긍정의 길항 속에 시는 탄생하며 시를 관통하는 현존에 대한 끝없는 자아의 성찰은 삶의 포용과 수용이며 긍정적 견자見者로서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3. 표백된 내가 날개도 없이
너의 이름을 불렀는데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았어
꼼짝도 할 수 없이 감옥에 갇혔어
온몸이 묶인 채
창살밖에는 새가 날고 있더군
흰 구름 속에서 표백된 내가
날개도 없이 퍼덕거리고 있었어
갑자기 해변이 흔들리더니
백상어 한 마리가 물 위로 뛰어올랐어
의사는 송곳으로 온몸을 꾹꾹 찔러보더니
'잠겼다'고 진단하더군
불치라나?
살아있지만 죽었기 때문이래
그러면서 졸피뎀을 삼키다가
청진기가 목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어
그런 그가 부럽더군
갑자기 사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울고 싶었지만
울 수가 없었어, 웃을 수도 없었지만
* Locked-in Syndrome, 환자가 의식은 있지만 눈동자 외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가사 상태
─ 「잠김증후군」 전문
표제 시로 '잠김증후군'이라는 의학적 증상을 외부 세계와 대비시켜 사회적 존재로서의 상실감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창살 안과 밖의 화자는 이중적 자아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고 "온몸이 묶인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화자는 의사를 표현하거나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다. 여기서 날고 있는 '새'를 본다. 이는 화자가 느끼는 고립감과 상반되는 자유를 상징한다. 또 다른 자아는 "날개도 없이 퍼덕거리고 있"다. 여기서 '표백된' 은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와 다름없음을 표현한다. 또한 '퍼덕거'림은 스스로 주체적 삶을 누리며 적극적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결의이며 태도이다. 그것은 견딤의 한 형식이며 생의 어두운 미궁을 향해 던지는 살아있는 징표이다. 여기서 '잠겼다'라는 의미에 주목해본다. '잠겼다'라는 것은 열리기를 전제로 하며 언젠가 열릴 것이라는 의미를 함의한다. 화자는 현재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를 염원하고 있다. 고통을 통과한 삶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터널을 막 빠져나올 때처럼 말이다.
시에서 '불치'라는 표현은 자신의 존재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있지만 죽었기 때문"이라는 부분과 맞물리며 절망과 소외감을 강조하고 있다. 선적 사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다. 결국, "갑자기 사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라며 화자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시적 화자가 꿈꾸는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울고 싶었지만/ 울 수가 없었어, 웃을 수도 없었지만"의 부분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갈구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정서적 '잠김증후군'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모래알 같으면
나도 모래알이 돼야 해
모래알이 토마토가 돼 굴러가면
나도 토마토로 굴러가고
돌을 말이라 하면 돌이 말이 되고
말을 돌이라 하면 말이
돌이 되는
북아프리카 어디에서는
비를 나나바라 부르는 곳이 있다는데
나나바라 부르면 정말 비가 온다는데
거기는 어휘가 많지 않아
모래, 토마토, 말, 나나바라만 있지
몸이 아파도 괜찮다면 괜찮아야 하고
모래를 씹으며
토마토 맛이라 해야 하는 곳
우리는 둘이고 셋이고 넷이지만
네가 혼자라 하면 혼자이고
너는 너지만
나는 언제나 나가 아닌
이 마을, 하나뿐인
─ 「그 마을에서는」 전문
~~(중략)
하늘에는 등진 두 사람의 모습
입과 귀가 없이 창백한
오늘 아침 거울에서 본 낯익은 얼굴들
왜 언제나 부재중일까, 이어야 할까
나도 너에게 없는 사람일까
네 목소리를 따라 해 보는데
더 길게 이어지는 이명
허공에 부딪혀 깨진 목소리가
읽히지 않은 유서처럼 찢어져 흩날리고
너와 나 빈손으로
그 창백한 조각들을 주워 모아
이명의 모래성을 쌓고
─ 「이명」 부분
"돌을 말이라 하면 돌이 말이 되고/ 말을 돌이라 하면 말이/ 돌이 되는" 세상에 나는 여기 없다. 다양한 기표로 호명되는 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뒤섞여 윙윙거리는 익명의 숲에서 화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지 오래다. 표류하는 일상의 나날들 속에 시적 화자는 "언제나 나가 아닌 곳"에 있으며 "네가 혼자라 하면 혼자"가 된다. 자아는 부정되고 세계의 요구로 나 아닌 내가 된다. '언제나 부재중'인 것이다. "나도 너에게 없는 사람일까/ 네 목소리를 따라 해 보는데// 더 길게 이어지는 이명"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사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날마다 관계는 빗나가고 틀어지는 현실이다. "몸이 아파도 괜찮다면 괜찮아야 하"는 곳은 외롭고 삭막하고 살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하나뿐인' 곳이라 다른 데로 이동할 수도 없는 무서운 곳이다. 그러한 세계의 모습이 시집 곳곳에 '이명'처럼 나타난다. 맞지 않는 '의자'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의자와 엉덩이」) 가 나오고 "초원에서 쫓겨난", "목이 조금씩 짧아"지는 '기린'(「기린과의 동거」)이 등장한다. 여기서 "올려다볼 하늘이 없"다는 것은 희망도 꿈꿀 수 없는 현실로 읽힌다.
기호와 이미지에 의하여 통제되고 조작되는 시대에 정신적 가치는 탈락하고 인간다움의 모습은 훼손되고 있음을 시인은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일상적 풍경을 주시하는 시선은 대상을 통해 작품 안에서 미학적 층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론적 질문을 주제적 층위로 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출근길에 손가락 하나를 길에 흘리고 간다. 다른 한 사람은 손가락을 도롱뇽 꼬리처럼 떼어내 몰래 인도에 버린다 나도 얼른 하나를 잘라 쓰레기통에 넣는다
첫 사람 손가락은 아스팔트가 뜨거워 폴짝폴짝 뛴다 둘째 손가락은 톡톡 피아노 건반 치듯 주인을 따라가다 지나가는 구둣발에 밟힌다 내 손가락은 쓰레기통에서 기어 나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깨금발을 뛰며 따라온다
~~ (중략)
밤이 되면 떼 낸 내 손가락이 죽은 얼굴로 나타나 내 목을 조른다 숨이 막혀 버둥거린다 밤 내 헉헉거리다가 마침내 새벽이 되면 손가락은 제자리로 돌아가 붙는다
그것으로 출근 준비가 돼 집을 나선다
또 어디서 떼 버려야 할 손가락들
─ 「손가락 떼 내기」 부분
시의 곳곳에 드러난 자아의 모습은 훼손되거나 분절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손가락 하나를 길에 흘리고", "손가락이 죽은 얼굴로 나타나 내 목을 조"르는 고단한 삶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다. 하지만 "새벽이 오면 손가락은 떨어진 자리로 돌아와 붙는다"라고 한다. 끝내 삶을 견딤 그 이상으로 이겨내려고 작동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준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야기되는 불화의 이미지는 일상의 순간순간 모든 부분과 맞물리며 삶을 응시하게 한다. 일상의 기표 속으로 미끄러지며 "또 어디서 떼 버려야 할 손가락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릴 것이다. 끝내 소진되고 상실될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4. 없어진 벤치
없어진 벤치를 기다리는 나 공전과 자전을 멈춰버린 지구 그 중력의 한쪽 끝에 거꾸로 매달려 벤치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 되면 벤치가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벤치가 없어졌고 나는 그 벤치를 기다리고 벤치는 말한다 그도 기다린다고 다시 벤치를 생각한다 분명 어제는 있었는데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갑자기 벤치가 사라진 공원 언제부터인가 경계가 허물어졌다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로 없어져 가는,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에서 없어진 벤치를 기다린다
─ 「벤치, 공원, 나」 전문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에서 없어진 벤치를 기다린다"라는 부분이 독자를 매혹시킨다. 여기서 '벤치'와 '나'는 현재의 삶을 구성하며 서로 상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벤치가 없어진 상황을 깨닫는다. 여기서 '공원'은 화자를 둘러싼 세계다. "분명 어제는 있었는데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갑자기 벤치가 사라진 공원"이라 한다. 하지만 분명 벤치도 공원도 있었던 걸까? 그것은 허상이 아니었을까?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로 없어져"라는 부분에서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들은 "언제부터인가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화자는 말한다. 공원과 벤치, 그리고 화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진실과 허구, 실재와 가상, 이런 딜레마 속에 시는 시작된다. 시적 화자의 삶은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불안하다. 시 안에 드리워진 허무와 고독의 냄새를 부정할 수 없다.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은 이러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강화하며 시공간을 동시에 무력화시킨다. 마치 환상이나 환각 속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날카로운 생과 사의 경계인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와 벤치와 공원이 모두 같은 존재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모든 만물은 하나로 이어지며 분별이 없고 다르지 않다는 선적 사유도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 찰나를 직시하게 되며 그 속에서 욕망이나 집착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숨을 몰아쉬겠지
너는 웅크려 햇볕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연두가 초록이 되고
바람에 쓸린 낙엽이 움푹한
웅덩이에 모여 떨고 있는 동안
~~(중략)
파도가 쓸어가는 자리에서 너는
한 50억년 동안 모래성을 쌓고 있겠지
모래알은 그때까지도 섞이지 못한
낱알이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예언을 계속 지껄이고 있고
오늘이 가도 오지 않는 내일
우리는 그 내일의
일기를 쓰고 있을 거야
누군가는 사막을
누군가는 낙원을
*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곳
'내부에 생성 중인 이질성의 장소' 《미셸 푸코》
─ 「헤테로토피아」 부분
"구름은 어째서 항상 구름일까"라는 질문은 어느 형태도 정해지지 않은 구름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 속 발견되는 삶의 모호함과 인생의 불가해함을 그린다. "파도가 쓸어가는 자리에서" "모래성을 쌓"는 행위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닿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덧없음과 허무함을 암시한다. 부조리한 일상은 믿었던 것들을 무너뜨리며 우리의 삶을 그에 따른 오류 속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생명과 죽음의 순환, 일상의 반복성,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상호 충돌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으로 유토피아적인 부분과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다른, 낯선, 혼종된'(heteros) 의미와 '장소'(topos)가 합쳐진 단어로, 다양한 시간과 공간,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 자신의 시선과 방식으로 현실에 구축한 유토피아라는 의미다. 즉 현실에 가능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으로 해석되며 저항과 동시에 긍정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이 가도 오지 않는 내일"의 위태로운 삶에서 자신만의 여백을 찾아 걸어가는 발걸음인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서 각자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움을 찾았으면 하는 시인의 의도가 따뜻하게 와닿는 시다.
생전 어느 때였던가
여기 누워있던 나를 보았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돼
다시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
끝없는 봉분들 사이로
둥치만 남은 고사목들이
눈동자 없는 눈망울을 늘어트리고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읽히지 않는 표정
백합들이 검은 얼굴을 수그리고 있다
강을 건너 도착한 사람들
여기서도 정처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누워있는 공원
갑자기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성
산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여러 번 죽어본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W. B. Yeats의 자작 묘비명. 그의 마지막 작품 Under Ben Bulben의 마지막 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반야심경에서
─ 「백합공원」 전문
죽음과 삶, 그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시다. "생전 어느 때였던가/ 여기 누워있던 나를 보았다"는 부분은 생전과 현전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이는 살아있을 때와 죽음 후의 자신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이다. 결국, 생과 사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돼/ 다시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는 부분은 불교의 윤회 사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한때 흰 백합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검은 얼굴"이 될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고사목'과 '백합'은 생명과 죽음의 알레고리로 시들어 버린 백합을 보며 인간의 죽음을 중첩시켜 생의 흔적과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실존은 생을 둘러싼 죽음들과 조우하고 작용하면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갑자기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성"은 "산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여러 번 죽어본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그 '괴성'의 내용은 Yeats의 묘비명과 반야심경의 구절로 모든 것은 순간으로 존재할 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읽히지 않는 표정" 가득한 날들이다.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 (중략)
지금이 밤인가, 낮인가 안개가 짙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거기가 뭐지
우리에게 예언은 허락돼 있지 않아
─ 「거기」 부분
'거기'는 우리가 닿고자 하는 곳, 어둠을 건너 발걸음들이 나아가는 곳. '나를 버린 그림자'와 '없어진 벤치'가 향하는 곳, 그곳이 '거기'다. 하지만 '거기'는 끝내 없는 것이며 무無이며 공空이라는 시인의 투명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기존 사유의 틀에 얽매인 사고를 흔들어 놓으며 '항상 거기 있는 것'이 '문득 거기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선적 사유가 가득한 시 한 편이 삶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화두처럼 와닿는다.
5. 나가며
김진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삶의 통점과 위기를 직시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그 안에서 자아의 분열과 부정, 상실, 소멸로 이어지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언어 너머 가려진 존재들을 귀환시키는 시인의 행보는 존재의 천착과 함께 행간마다 응고되어 뚜렷하게 다가온다. 이로 인해 독자는 불안의 징후로 야기되는 존재의 부정과 부재, 결핍과 절망이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며 전환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미적 체험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의 삶을 승화시켜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제시한다. 현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며 뭔가 모호하고 흐릿한 것들이 명징해지는 느낌이 든다. 삶을 잠식하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치유하고 위무하는 현시대에 필요한 문학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시간의 파편들 위를 떠가는 삶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 홀로 당당히 맞서며 나아가는 한 시인이 있다. 시인은 오늘도 삶에 숨겨진 희망의 기미를 찾아 시 안으로 들어간다. 긍정적 세계를 끌어안는 김진희 시인의 시선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시세계가 앞으로 더 확장되고 깊어질 것이다.
존재를 횡단하는 언어들
김미정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김진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존재의 희미함을 이야기하며 거기에 조금씩 색을 입히기를 시도한다. 그 색들은 무채색이 되거나 때론 여러 색이 혼합되어 새로운 색으로 나타났다가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시는 언어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며 더 확장된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우리가 닿고 싶은 곳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이 고요히 숨 쉬며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새롭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다. 이런 점에서 김진희 시인은 작품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담는 독특한 발화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의 어법은 다정하게 다가와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시적 여정 속에 보여주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는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관조적 태도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상이라는 주어진 삶에 대한 응전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자아의 존재력을 증명하고 확인하려는 몸짓으로 읽을 수 있다. 나 자신 바깥으로부터 들어와 내 것이 되는 온도, 그 감각은 시와 독자의 동시적 작동을 의미한다. 그만큼 시인의 시는 조용하고 나직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게 하는 온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깊고 아득한 시세계로 들어가 본다.
2. 나를 버린 그림자
시인은 세상의 주파수에 집중한다. 일상의 순간들이 전하는 섬세한 파동을 감지하여 시에 안착시킨다. 잡히지 않는 존재의 실루엣을 만나기 위해 수없이 '나를 버린 그림자'를 따라 '멀어진 발자국들'을 뒤집어가며 걸어간다.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르지 않았어
팔을 휘저으면 다리를 오므리고
머리를 숙이면 허리를 비틀더군
어쩔 수 없어
내가 그걸 따라 움직여 보지만
이미 나를 떠났다
그가 하는 대로 풀쩍 뛰었는데
그만 목이 꺾이고 말았어
문득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던 발자국들도
저만치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어
갑자기 멀어진 발자국들
나를 버린 그림자
저들끼리 나를 보며 키들키들 웃고 있더군
밤 내 쪼그리고 앉아
그것들을 땅에다 그려볼 수밖에
아직은 내 것으로 남아있는 손톱으로
─ 「손톱으로 그리다」 전문
"내 그림자가 나를 따르지 않았어"라는 지점에서 시는 발생한다. 삶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화자는 '그림자'를 통해 자아를 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만치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세계에 나는 놓여 있다. 또한 "저들끼리 나를 보며 키들키들 웃"는다고 한다. 분리된 자아의 이중화 또는 분열된 자아와 만남은 그로 인한 불화를 낳는다. 나는 주체이며 타자가 된다. 그것은 곧 자의식의 깨우침이다. "그것들을 땅에다 그려볼 수밖에/ 아직은 내 것으로 남아있는 손톱으로"라는 부분에서는 자신을 찾기 위한 간절함과 분투가 엿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화자는 "밤 내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 「빨래」에서도 "산 채로 박제돼 가는/ 분신들"이라며 자아의 내면과 외연을 형상화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아프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곳곳에서 존재의 인식을 통해 자아를 탐구하는 시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다.
너는 누구냐
내 얼굴, 내 목소리
분명 나인데
언제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너, 도대체 누구냐
잠자는 동안에도 감시하며
무릎 아파 절름거리는 나를 비웃고 있구나
가까이 보면 너라는 인간 눈알이 빨갛고 눈 밑은 시커멓다 귓구멍은 귀털로 막혀있다 눈을 뜨고도 볼 것은 보지 못하고 썩은 냄새만 맡는다 아픈 것을 아프지 못하고 아프지 않은 것의 고통으로 신음한다 그래서 더욱 번질거리는 얼굴
임플란트 다섯 개 관상동맥 스탠트 세 개 모자로 민머리를 감추고 돼지 날 창자를 씹어 먹는다 끝없는 식욕 아가리만 커진 식충 거대한 뱃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들 여자는 엉덩이만 처다본다 혼자 먹고 마시고 혼자 수음하고 혼자 잠드는 혼족
그런 네놈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니
더럽고 가증스러워
디스토피아의 호모 데우스*
도저히 이 세상에 살려둘 수가 없어 너를 죽이기로 한다
무참히 나는 살해당한다
사랑하는 나에게
*Homo Deus, 신이 된 인간
─ 「도플갱어」 전문
화자는 자신의 모습 즉,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모든 요소가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자신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다른 이름으로, 얼굴로, 표정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혼돈의 시대, 자아의 인식은 세계의 인식에서 시작되며 사회는 개인에게 다양한 자아와 역할을 요구한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불온하거나 불안한 세계 속 자아는 파편화된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의 파편화는 내면 풍경 속 부식된 알몸의 자아를 바라보게 된다. 낯선 자신과의 조우다. 자신을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불완전한 체험일 것이다. 인간의 삶을 장악하는 허위와 가식은 자아의식을 표류하게 한다. 그리하여 "더럽고 가증스러워" "도저히 이 세상에 살려둘 수"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아를 만날 뿐이다.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속 스스로 자신을 '살해' 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인의 끝없는 자아의 성찰은 결국 자기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자아의 자각과 현존을 환기하는 반어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낯익은 공원인데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아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데
내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어
"달서구에서 실종된 00씨를 찾습니다"
"중구에서 배회 중인 00씨를 신고해 주세요"
휴대전화 안전 안내 문자마다
짙게 묻어나오는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어두움
나이, 키, 몸무게, 검은 모자
절룩거리는 걸음걸이까지
오늘 아침 세면대 거울에서 본 모습
햇빛이 눈 부신데
광장에는 길이 보이지 않고
벤치가 비어 있어도
앉을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
등불이 하나씩 꺼져가는 막막한 저택
텅 빈 방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나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 「실종」 전문
자아를 찾는 화자의 감각적 이미지들이 시의 행간을 건너며 증폭된다. '실종'은 존재의 부재를 말한다. 화자는 일상의 "낯익은 공원에서" 길을 잃는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삶의 실감 속에 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광장에는 길이 보이지 않고/ 벤치가 비어 있어도/ 앉을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라며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텅 빈 방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나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깊은 고독과 불안을 드러낸다. 화자는 얼마나 자주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신을 만났을까. 시에 나타난 현실감과 생활감은 일상을 다른 각도로 돌려세워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조명하여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김진희 시에 나타난 자아의 모습들은 현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아정체성의 위기에서 촉발된 내면의 치열한 의식을 심도 있게 표현한 시들이다. 자아의 부정과 긍정의 길항 속에 시는 탄생하며 시를 관통하는 현존에 대한 끝없는 자아의 성찰은 삶의 포용과 수용이며 긍정적 견자見者로서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3. 표백된 내가 날개도 없이
너의 이름을 불렀는데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았어
꼼짝도 할 수 없이 감옥에 갇혔어
온몸이 묶인 채
창살밖에는 새가 날고 있더군
흰 구름 속에서 표백된 내가
날개도 없이 퍼덕거리고 있었어
갑자기 해변이 흔들리더니
백상어 한 마리가 물 위로 뛰어올랐어
의사는 송곳으로 온몸을 꾹꾹 찔러보더니
'잠겼다'고 진단하더군
불치라나?
살아있지만 죽었기 때문이래
그러면서 졸피뎀을 삼키다가
청진기가 목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어
그런 그가 부럽더군
갑자기 사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울고 싶었지만
울 수가 없었어, 웃을 수도 없었지만
* Locked-in Syndrome, 환자가 의식은 있지만 눈동자 외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가사 상태
─ 「잠김증후군」 전문
표제 시로 '잠김증후군'이라는 의학적 증상을 외부 세계와 대비시켜 사회적 존재로서의 상실감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창살 안과 밖의 화자는 이중적 자아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입과 혀가 움직이지 않"고 "온몸이 묶인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화자는 의사를 표현하거나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다. 여기서 날고 있는 '새'를 본다. 이는 화자가 느끼는 고립감과 상반되는 자유를 상징한다. 또 다른 자아는 "날개도 없이 퍼덕거리고 있"다. 여기서 '표백된' 은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와 다름없음을 표현한다. 또한 '퍼덕거'림은 스스로 주체적 삶을 누리며 적극적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결의이며 태도이다. 그것은 견딤의 한 형식이며 생의 어두운 미궁을 향해 던지는 살아있는 징표이다. 여기서 '잠겼다'라는 의미에 주목해본다. '잠겼다'라는 것은 열리기를 전제로 하며 언젠가 열릴 것이라는 의미를 함의한다. 화자는 현재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를 염원하고 있다. 고통을 통과한 삶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터널을 막 빠져나올 때처럼 말이다.
시에서 '불치'라는 표현은 자신의 존재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있지만 죽었기 때문"이라는 부분과 맞물리며 절망과 소외감을 강조하고 있다. 선적 사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다. 결국, "갑자기 사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라며 화자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시적 화자가 꿈꾸는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울고 싶었지만/ 울 수가 없었어, 웃을 수도 없었지만"의 부분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갈구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정서적 '잠김증후군'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모래알 같으면
나도 모래알이 돼야 해
모래알이 토마토가 돼 굴러가면
나도 토마토로 굴러가고
돌을 말이라 하면 돌이 말이 되고
말을 돌이라 하면 말이
돌이 되는
북아프리카 어디에서는
비를 나나바라 부르는 곳이 있다는데
나나바라 부르면 정말 비가 온다는데
거기는 어휘가 많지 않아
모래, 토마토, 말, 나나바라만 있지
몸이 아파도 괜찮다면 괜찮아야 하고
모래를 씹으며
토마토 맛이라 해야 하는 곳
우리는 둘이고 셋이고 넷이지만
네가 혼자라 하면 혼자이고
너는 너지만
나는 언제나 나가 아닌
이 마을, 하나뿐인
─ 「그 마을에서는」 전문
~~(중략)
하늘에는 등진 두 사람의 모습
입과 귀가 없이 창백한
오늘 아침 거울에서 본 낯익은 얼굴들
왜 언제나 부재중일까, 이어야 할까
나도 너에게 없는 사람일까
네 목소리를 따라 해 보는데
더 길게 이어지는 이명
허공에 부딪혀 깨진 목소리가
읽히지 않은 유서처럼 찢어져 흩날리고
너와 나 빈손으로
그 창백한 조각들을 주워 모아
이명의 모래성을 쌓고
─ 「이명」 부분
"돌을 말이라 하면 돌이 말이 되고/ 말을 돌이라 하면 말이/ 돌이 되는" 세상에 나는 여기 없다. 다양한 기표로 호명되는 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뒤섞여 윙윙거리는 익명의 숲에서 화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지 오래다. 표류하는 일상의 나날들 속에 시적 화자는 "언제나 나가 아닌 곳"에 있으며 "네가 혼자라 하면 혼자"가 된다. 자아는 부정되고 세계의 요구로 나 아닌 내가 된다. '언제나 부재중'인 것이다. "나도 너에게 없는 사람일까/ 네 목소리를 따라 해 보는데// 더 길게 이어지는 이명"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사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날마다 관계는 빗나가고 틀어지는 현실이다. "몸이 아파도 괜찮다면 괜찮아야 하"는 곳은 외롭고 삭막하고 살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하나뿐인' 곳이라 다른 데로 이동할 수도 없는 무서운 곳이다. 그러한 세계의 모습이 시집 곳곳에 '이명'처럼 나타난다. 맞지 않는 '의자'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의자와 엉덩이」) 가 나오고 "초원에서 쫓겨난", "목이 조금씩 짧아"지는 '기린'(「기린과의 동거」)이 등장한다. 여기서 "올려다볼 하늘이 없"다는 것은 희망도 꿈꿀 수 없는 현실로 읽힌다.
기호와 이미지에 의하여 통제되고 조작되는 시대에 정신적 가치는 탈락하고 인간다움의 모습은 훼손되고 있음을 시인은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일상적 풍경을 주시하는 시선은 대상을 통해 작품 안에서 미학적 층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론적 질문을 주제적 층위로 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출근길에 손가락 하나를 길에 흘리고 간다. 다른 한 사람은 손가락을 도롱뇽 꼬리처럼 떼어내 몰래 인도에 버린다 나도 얼른 하나를 잘라 쓰레기통에 넣는다
첫 사람 손가락은 아스팔트가 뜨거워 폴짝폴짝 뛴다 둘째 손가락은 톡톡 피아노 건반 치듯 주인을 따라가다 지나가는 구둣발에 밟힌다 내 손가락은 쓰레기통에서 기어 나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깨금발을 뛰며 따라온다
~~ (중략)
밤이 되면 떼 낸 내 손가락이 죽은 얼굴로 나타나 내 목을 조른다 숨이 막혀 버둥거린다 밤 내 헉헉거리다가 마침내 새벽이 되면 손가락은 제자리로 돌아가 붙는다
그것으로 출근 준비가 돼 집을 나선다
또 어디서 떼 버려야 할 손가락들
─ 「손가락 떼 내기」 부분
시의 곳곳에 드러난 자아의 모습은 훼손되거나 분절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손가락 하나를 길에 흘리고", "손가락이 죽은 얼굴로 나타나 내 목을 조"르는 고단한 삶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다. 하지만 "새벽이 오면 손가락은 떨어진 자리로 돌아와 붙는다"라고 한다. 끝내 삶을 견딤 그 이상으로 이겨내려고 작동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준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야기되는 불화의 이미지는 일상의 순간순간 모든 부분과 맞물리며 삶을 응시하게 한다. 일상의 기표 속으로 미끄러지며 "또 어디서 떼 버려야 할 손가락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릴 것이다. 끝내 소진되고 상실될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4. 없어진 벤치
없어진 벤치를 기다리는 나 공전과 자전을 멈춰버린 지구 그 중력의 한쪽 끝에 거꾸로 매달려 벤치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 되면 벤치가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벤치가 없어졌고 나는 그 벤치를 기다리고 벤치는 말한다 그도 기다린다고 다시 벤치를 생각한다 분명 어제는 있었는데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갑자기 벤치가 사라진 공원 언제부터인가 경계가 허물어졌다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로 없어져 가는,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에서 없어진 벤치를 기다린다
─ 「벤치, 공원, 나」 전문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에서 없어진 벤치를 기다린다"라는 부분이 독자를 매혹시킨다. 여기서 '벤치'와 '나'는 현재의 삶을 구성하며 서로 상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벤치가 없어진 상황을 깨닫는다. 여기서 '공원'은 화자를 둘러싼 세계다. "분명 어제는 있었는데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갑자기 벤치가 사라진 공원"이라 한다. 하지만 분명 벤치도 공원도 있었던 걸까? 그것은 허상이 아니었을까?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로 없어져"라는 부분에서 벤치도 나도 공원도 하나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들은 "언제부터인가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화자는 말한다. 공원과 벤치, 그리고 화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진실과 허구, 실재와 가상, 이런 딜레마 속에 시는 시작된다. 시적 화자의 삶은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불안하다. 시 안에 드리워진 허무와 고독의 냄새를 부정할 수 없다. "안개가 물컹물컹한 한여름 밤 공원"은 이러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강화하며 시공간을 동시에 무력화시킨다. 마치 환상이나 환각 속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날카로운 생과 사의 경계인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와 벤치와 공원이 모두 같은 존재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모든 만물은 하나로 이어지며 분별이 없고 다르지 않다는 선적 사유도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 찰나를 직시하게 되며 그 속에서 욕망이나 집착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숨을 몰아쉬겠지
너는 웅크려 햇볕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연두가 초록이 되고
바람에 쓸린 낙엽이 움푹한
웅덩이에 모여 떨고 있는 동안
~~(중략)
파도가 쓸어가는 자리에서 너는
한 50억년 동안 모래성을 쌓고 있겠지
모래알은 그때까지도 섞이지 못한
낱알이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예언을 계속 지껄이고 있고
오늘이 가도 오지 않는 내일
우리는 그 내일의
일기를 쓰고 있을 거야
누군가는 사막을
누군가는 낙원을
*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곳
'내부에 생성 중인 이질성의 장소' 《미셸 푸코》
─ 「헤테로토피아」 부분
"구름은 어째서 항상 구름일까"라는 질문은 어느 형태도 정해지지 않은 구름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 속 발견되는 삶의 모호함과 인생의 불가해함을 그린다. "파도가 쓸어가는 자리에서" "모래성을 쌓"는 행위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닿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덧없음과 허무함을 암시한다. 부조리한 일상은 믿었던 것들을 무너뜨리며 우리의 삶을 그에 따른 오류 속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생명과 죽음의 순환, 일상의 반복성,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상호 충돌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으로 유토피아적인 부분과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다른, 낯선, 혼종된'(heteros) 의미와 '장소'(topos)가 합쳐진 단어로, 다양한 시간과 공간,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 자신의 시선과 방식으로 현실에 구축한 유토피아라는 의미다. 즉 현실에 가능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으로 해석되며 저항과 동시에 긍정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이 가도 오지 않는 내일"의 위태로운 삶에서 자신만의 여백을 찾아 걸어가는 발걸음인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서 각자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움을 찾았으면 하는 시인의 의도가 따뜻하게 와닿는 시다.
생전 어느 때였던가
여기 누워있던 나를 보았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돼
다시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
끝없는 봉분들 사이로
둥치만 남은 고사목들이
눈동자 없는 눈망울을 늘어트리고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읽히지 않는 표정
백합들이 검은 얼굴을 수그리고 있다
강을 건너 도착한 사람들
여기서도 정처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누워있는 공원
갑자기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성
산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여러 번 죽어본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W. B. Yeats의 자작 묘비명. 그의 마지막 작품 Under Ben Bulben의 마지막 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반야심경에서
─ 「백합공원」 전문
죽음과 삶, 그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시다. "생전 어느 때였던가/ 여기 누워있던 나를 보았다"는 부분은 생전과 현전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이는 살아있을 때와 죽음 후의 자신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이다. 결국, 생과 사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돼/ 다시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는 부분은 불교의 윤회 사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한때 흰 백합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검은 얼굴"이 될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고사목'과 '백합'은 생명과 죽음의 알레고리로 시들어 버린 백합을 보며 인간의 죽음을 중첩시켜 생의 흔적과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실존은 생을 둘러싼 죽음들과 조우하고 작용하면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갑자기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성"은 "산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여러 번 죽어본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그 '괴성'의 내용은 Yeats의 묘비명과 반야심경의 구절로 모든 것은 순간으로 존재할 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읽히지 않는 표정" 가득한 날들이다.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 (중략)
지금이 밤인가, 낮인가 안개가 짙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거기가 뭐지
우리에게 예언은 허락돼 있지 않아
─ 「거기」 부분
'거기'는 우리가 닿고자 하는 곳, 어둠을 건너 발걸음들이 나아가는 곳. '나를 버린 그림자'와 '없어진 벤치'가 향하는 곳, 그곳이 '거기'다. 하지만 '거기'는 끝내 없는 것이며 무無이며 공空이라는 시인의 투명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기존 사유의 틀에 얽매인 사고를 흔들어 놓으며 '항상 거기 있는 것'이 '문득 거기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선적 사유가 가득한 시 한 편이 삶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화두처럼 와닿는다.
5. 나가며
김진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삶의 통점과 위기를 직시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그 안에서 자아의 분열과 부정, 상실, 소멸로 이어지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언어 너머 가려진 존재들을 귀환시키는 시인의 행보는 존재의 천착과 함께 행간마다 응고되어 뚜렷하게 다가온다. 이로 인해 독자는 불안의 징후로 야기되는 존재의 부정과 부재, 결핍과 절망이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며 전환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미적 체험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의 삶을 승화시켜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제시한다. 현재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며 뭔가 모호하고 흐릿한 것들이 명징해지는 느낌이 든다. 삶을 잠식하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치유하고 위무하는 현시대에 필요한 문학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시간의 파편들 위를 떠가는 삶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 홀로 당당히 맞서며 나아가는 한 시인이 있다. 시인은 오늘도 삶에 숨겨진 희망의 기미를 찾아 시 안으로 들어간다. 긍정적 세계를 끌어안는 김진희 시인의 시선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시세계가 앞으로 더 확장되고 깊어질 것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1부
손톱으로 그리다??13
빨래??14
게의 오후??16
신문 기사 쓰는 것처럼??18
무치??20
사랑??21
지우개밥??22
도플갱어??24
이판사판??26
그냥 그랬다??29
다를 것 같지 않아??30
사랑의 랩소디??32
봄 몸살??34
무릎 시린 것이??36
2부
의자와 엉덩이 ?41
에렌델 ?42
이명 ?44
잠김증후군 ?46
헤테로토피아 ?48
기린과의 동거 ?50
없는 너에게 ?52
서식지 ?54
디스토피아 ?56
사과, 바나나, 자몽 ?58
그 마을에서는 ?60
손가락 떼 내기 ?62
3부
벤치, 공원, 나??67
겨울산??68
재활용 폐품 수집장??70
착시??72
새들의 무덤??74
돌멩이가 떨어진다??76
가락국 농부??78
홍날개 사랑법??80
환幻??82
자리??84
거기??86
잔줄무늬細文의 저주??88
안개가 자욱한데 볼은 가렵고??89
4부
횡단보도 I??93
횡단보도 II??94
백합공원??96
Lily Burial Park??98
닭은 울거나 울지 않고?100
좀비 아포칼립스?102
정점 너머?104
강이 낯설어?106
미상?108
실종?110
유령공원?112
매장은 좋은 것?114
허허?116
해설 존재를 횡단하는 언어들|김미정?120
1부
손톱으로 그리다??13
빨래??14
게의 오후??16
신문 기사 쓰는 것처럼??18
무치??20
사랑??21
지우개밥??22
도플갱어??24
이판사판??26
그냥 그랬다??29
다를 것 같지 않아??30
사랑의 랩소디??32
봄 몸살??34
무릎 시린 것이??36
2부
의자와 엉덩이 ?41
에렌델 ?42
이명 ?44
잠김증후군 ?46
헤테로토피아 ?48
기린과의 동거 ?50
없는 너에게 ?52
서식지 ?54
디스토피아 ?56
사과, 바나나, 자몽 ?58
그 마을에서는 ?60
손가락 떼 내기 ?62
3부
벤치, 공원, 나??67
겨울산??68
재활용 폐품 수집장??70
착시??72
새들의 무덤??74
돌멩이가 떨어진다??76
가락국 농부??78
홍날개 사랑법??80
환幻??82
자리??84
거기??86
잔줄무늬細文의 저주??88
안개가 자욱한데 볼은 가렵고??89
4부
횡단보도 I??93
횡단보도 II??94
백합공원??96
Lily Burial Park??98
닭은 울거나 울지 않고?100
좀비 아포칼립스?102
정점 너머?104
강이 낯설어?106
미상?108
실종?110
유령공원?112
매장은 좋은 것?114
허허?116
해설 존재를 횡단하는 언어들|김미정?120
저자
저자
김진희
대구 출생
2022년 『시와세계』 등단
산문집 『등대』 외
2022년 『시와세계』 등단
산문집 『등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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