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독이 내리고(시와세계 시인선 54)(양장본 Hardcover)
차영미 시집
Regular price
$16.85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현실을 디디고 서 있는 상상력
- 차영미의 시세계
한명희(시인. 강원대 교수)
1. 물활론적 세계
차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여기, 오독이 내리고』는 물활론적 세계관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우리 인간이 포함되어 있는 이 자연계는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생물은 생장하고 생명 활동을 하며 번식한다. 무생물은 이와 반대다. 호흡할 수 없으며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당연히 생장과 번식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의 시에서는 수많은 무생물이 몸을 얻어 돌아다닌다. 때로는 그것이 사람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관념들에도 물성을 입혀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래서 그 관념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차영미 시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햇빛을 먹어야지,
바람이 구부러지는 아침
누군가에게는 피난이었고
누군가에게 광기였을지도 모를
나에게서 듣는 나의 냄새
구겨진 생각들이 달려가고
도로는 파편으로 가득하다
밀물과 썰물 속에서
어제는 붉은 구두를 건져내기도 하고
추적자처럼 찍어내는 녹슨 핏자국과
비린내로 번들거리는 멈춤 버튼 속에
고도를 따라가는 맨발에게
질문을 신겨주었고
소멸하던 태풍은 북쪽으로 이동 중이고
우리는 방에 앉아 쏟아지는 바다를
서로에게 던져주었다
- 「공의 바다」
차영미 시인이 내게 건넨 시집 원고의 제목은 원래 『공의 바다』였다. 이 시가 그에게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의 바다'의 '공'이 던지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둥근 공이기도 하고 텅 비어 있는 공空이기도 할 것인데, 후자의 공의 바다는 '고해의 바다'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앞 장의 결론으로 내가 차영미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둡고 공허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시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차영미 시인이 이 시에서 의도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시가 지니는 이러한 의미보다 물활론적 사고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구부러지는 아침'에 '햇빛을 먹어야'겠다는 참신할 발상은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바람과 햇빛을 형상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생겨난다. 그에게는 바람도 구부릴 수 있는 물질이며 햇빛도 입에 넣을 수 있는 물질이다. '생각'은 구겨져 있고 '질문'은 신을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형상화해버리는 것, 이것은 차영미 시인의 중요한 시창작법이다. 이러한 작법 속에서 '바다'를 서로 던져줄 수 있는 '공'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숙제 같은 낙서를 한다
낙서는 바람에 밀린다
밀려든 문장이 구겨지고 나는 감성을 베낀다
베껴 쓴 어제를 갈아 끼우고 뭉쳐 있는 말을 씻어낸다
더위는 변덕스러운 얼굴로 거품을 따라가고
약속이 길어지고 문자는 투명해지는 늦은 밤,
노이즈noise가 모퉁이를 뛰어다니고 느슨한 질문지가 도착하고
채우다 채운 만큼 비워야 한다는 걸 잠시 잊어버리고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가 감기처럼 떠다니는 사이,
늦은 원고가 지면으로 걸어갔다
겉면이 익어가는 밤,
밤을 헤집고 더께 같은 여름이
얄팍해진 문장 위에 걸터앉은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 「얄팍한 문장」
차영미 시인의 시에 드러나는 물활론적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일단 이 시의 표현에 집중해 보자. 그의 시에서 '문장'은 종이처럼 구겨지는 물체다. 물론 이것은 문장을 써놓은 종이를 구겨버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차영미 시인이 이것을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어제'는 '갈아 끼우'는 것이 가능한 물체이며 '말'도 '씻어내'는 것이 가능한 물체이다. '더위'는 얼굴을 지닌, 그것도 변덕스러운 얼굴을 지닌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의인화된 '더위'는 '거품'을 따라가기까지 한다. 「얄팍한 문장」은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물활론적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스마트폰마다 빗방울이 다녀갑니다 장마같은 비, 어디선가 취한 혼잣말이 굴러갑니다 그녀는 행성 사이를 돌고 있고 나는 사람들 사이 간격을 맴돌고 시집이 눅눅한 걸음을 걸어갑니다 그녀는 행성에 잘 도착했을까요?
술을 마시고 시를 펼칩니다 우산 떨구는 소리가 들리고 옆 사람이 마스크 안에서 웃습니다 시어들이 나를 쏘아보고 여기는 환승역, 술에 취한 동료가 선을 침범해도 토닥이기로 합니다 집은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또 무언가를 잃어버립니다 메모장을 열기도 전에 시어를 잃거나 우산을 잃거나 나이가 들면 두근거리지 않는 선의를 얻기도 합니다 쫑알거리고 지나는 아이를 웃으며 바라보는 그런 것, 어쩌면 버퍼링이 서성거리는 것, 보일까요?
- 「여기, 오독이 내리고」
시집 『여기, 오독이 내리고』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우리는 쉽게 차영미 시인이 만들어낸 물활론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인용한 위의 시에서 '빗방울'은 '다녀가'고 '취한 혼잣말'은 '굴러간다'. 빗방울은 다녀갈 수 있는 존재로 의인화되고 혼잣말은 '취한' 존재로 의인화된 되는 한편 '굴러가'는 물체로 이중으로 물성을 입는다. 이렇게 두 겹으로 물성화되는 것이 차영미 시인의 물활론적 표현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시집이 눅눅한 걸음을 걸어갑니다"의 경우 시집은 일단 '눅눅한' 사물로, 그 다음에 걸어다닐 수 있는 동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추상적인 개념도 사물화 되어 다른 사물들과 동등하게 취급된다. "시어를 잃거나 우산을 잃거나 나이가 들면 두근거리지 않는 선의를 얻기도 합니다"라고 구절에서는 '시어', '우산', '선의'가 동가의 사물처럼 표현되어 있다. '시어'는 물론 '선의까지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는 사물로 여겨지게 한다. 자신을 둘러싼 무생물들이 이렇게 물성을 입고 돌아다니는 세상을 차영미 시인은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세상이 무척이나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사물들이 의인화되고 관념들마저 사물처럼 형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다 보고 만질 수 있다면 삶이 잠시라도 평안할 수 있을까? 생각마저 다 형체가 있다면 그것은 착란의 세계가 아닌가. 그로테스크의 세계가 아닌가. 그러나 차영미 시인은 절대 몽상가도 아니고 착란에 빠져 있지도 않다. 4차원, 혹은 5차원의 세계를 보고 있지도 않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바로 현실, 이곳이다.
2. 상상력과 현실
상상력은 경험하지 않은 것, 현재에 없는 대상을 직관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마치 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상상력이다. 뇌과학자들은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뇌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면서 살아간다. 구분할 수 없다면 현실에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차영미 시인은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현실과 분리되어 공중에 부유하는 상상력이 아니다. 철저하게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상상력이다.
바닥이 뚫린 허공을 걸어가며
현무암과 눈을 맞춘다
앞선 발자국이 일순 멈추고
생각 없는 일상이 끊기다가 지탱하는 철근과 마주한다
작은 두려움이 한 발씩 걸어가고
이제 생각난 약속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흐르고
낙엽비는 금가루처럼 흩날린다
숨겨진 방에 밝은 옷을 걸어 두고
거스러미를 떨쳐 물비늘로 보낸다
하마를 닮은 바위, 위에서 마주치면 그저 너럭바위에서
거짓을 닮은 이모티콘을
한 켜씩 밀어두고 낙서처럼 전송한다
요양 병원에 앉아 탈출을 꿈꾸는 전화와 멀어지고
분리 불안을 달고 사는 눈동자를 벗어나면
직벽을 흐르는 물살 사이로 낡은 망루가 졸고 있다
바닥을 떠난 바닥 사이로 세로가 걸쳐있고
환승역이 없는, 두고 온 환상이 가을처럼 물드는
여기,
아무도 돌아서지 않는 바닥
- 「세로의 잔도」
'잔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 어느 지방에서였는데 나는 인간의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에 앞서 삶의 비의, 살아가는 것의 처참함 등을 느꼈다. 그것은 뭐랄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구나'하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었다. 요즘은 대한민국 곳곳의 산에 잔도가 놓여 있고 그것은 대부분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잔도의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잔도의 폭도 넓어도 한 사람은 너끈히 건너갈 수 있다. 그래도 잔도는 잔도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길이 절대 있을 수 없는 곳에 강제로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잔 도다. 폭이 좁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잔도는 낭떠러지와 낭떠러지를 잇기에 아차 하면 그 밖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 다. 떨어진 후에는?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이 서 있는 잔도는 '세로의 잔도'이다. '잔도'만으로도 처 참한데 그 잔도가 세로로 놓여 있다. 살아보겠다고 잔도를 낸 것인데 그것이 세로로 나 있다면 그래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차영미 시인이 '잔도 관광'에서 본 것은 '아무도 돌아서지 않는 바닥' 위에 서 있는 자신이다. 물활론적 비유가 가장 익숙한 사람은 유아동기의 아이들이다. 원시인들은 물활론적 믿음 때문에 동식물을 숭배했다. 차영미 시인의 시에 도 저하게 나타나는 물활론적 사유도 그 근원은 어리다 못해 유아적이기까지 한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것 은 그만큼 차영미 시인은 순수한 눈을 가졌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겠다. 이쯤에서 우리는 차영미 시인이 '세로의 잔도'에 서 있는 자신의 삶을 물활론적 상상력으로 이겨내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로의 잔도」에서처럼 다음에 인용할 시 「길티 플레저」에도 요양 병원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는 화자가 있다. 환승역이 없는 현실이 있다. 주문 내역 리스트 사이로 좋아요를 누르고 까르르 웃는 화면의 아이를 어루만진다 무한 재생 영상은 출구 없는 욕망을 닮아 어 디로 갈지 묻지 않는다 비밀을 일상처럼 펼쳐 놓고 돌아보면 오타, 다시 보면 탈자, 건너편에는 나를 닮은 원피스가 졸고 있다 클릭 을 기다리는 웹소설, 웹툰이 스마트폰 아래, 아이패드 안으로 숨어든다 어제 쓴 시어 몇 자도 잊어버리고 어머니는 자꾸만 기저귀를 숨겨둔다 나의 숨어버린 욕망은 보이지 않는 냄새를 찾아다닌다 이사에 적응 못한 반려견을 데리고 골목에서 오줌을 누이고 빈집 모퉁이를 들여다보는 반려견, 요양 병원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엉덩이로 방안을 돌고 방향제를 뿌리고 서로의 말을 삼키고 경관 식은 위루관을 자주 빠져나온다 슈퍼 블루문을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스마트폰으로 조준하고 달의 뒤편을 들여다보고 싶어 채우지 못한 곳을 날마다 욕망한다 비우는 법을 모르는 너는 고요의 바다를 들쑤시고, 배덕감은 한 켜씩 꼬리를 말아두고 -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을 의미한 다"고 한다. 이 시에는 오자와 탈자를 보아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화자와 이사한 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려견을 돌 봐야 하는 애견인으로서의 화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양 병원을 견디지 못하는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중년 여성으 로서의 화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이 길티 플레저인 것을 생각하면 시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욕망' 이 쉽게 이해된다. 꼼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욕망'만이 오롯이 이 시인의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은 결코 현실을 압도하지 않는다. 사실, 차영미 시인의 시는 물활론적 상상력을 빼고 보면 너무나 냉정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그가 향하는 눈길은 언제 나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직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들은 섬세하고 날카롭다. 많은 시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으면서 얻은 깨달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 다. 차영미 시인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낭만적 꿈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차영미 시인의 시는 믿 을 만하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에 가깝지만, 그는 결코 비극적 세계관에 침몰 되어 있지 않다. 그에게 비극은 그냥 현실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차영미 시인의 시에 대해 안심한다
3. 유연함
현실적이라는 말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쓰이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쓰인다. 차영미 시인에게 있어 '현실적'이라는 말 은 자신이 당면한 어떠한 것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부딪혀 수용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세로의 잔도」나 「길티 플레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 혹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에 관한 수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빠른 적응으로도 드러난다
로제 떡볶이를 주문한다 문장이 말이 없어서
낱말을 밀어넣고 크림소스와 고추장 조합에
핫한 시간이 대기 중이다
이 방에서 저 방까지 세 발자국, 길을 잃는다
증폭기는 새벽에 도달하고 와이파이는 수풀에 내리는
빗소리도 재생한다 로딩 놓친 사진이 서걱거린다
잔소리가 돌아다닌다 운동을 채우지 못했다고
스마트워치의 카톡 폭탄이 끼어들고 안부는
반품하기로 한다 그제야 삭제할 목록이 투덜거리고
몰입이 자라고 있었다 안전지대를 비집고 들어가는 거기,
당신의 빈말과 우리의 반목 사이에
하나쯤 닿지 않는 꿈을 꾼다 껍질만 남은
- 「막간이라는 자세」
전화가 아닌 핸드폰 어플로, 밀떡볶이나 쌀떡볶이가 아닌 로제 떡볶이를 주문한다. '핫'하다는 표현을 쓴다. 인터넷 으로 주문한 와이파이 증폭기가 새벽에 도착한다. 인터넷으로 전송되어 온 사진은 로딩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와이파이가 문제다. 오늘 해야 하는 운동량은 스마트워치에 기록되어 있다. 운동량에 미달하면 스마트워치가 알려준다. 몹시 편리한 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심각한 인간의 소외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은 물질문명과 문명의 이기에 대해 비판해 왔다. 시인이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시인 이 자연의 편에 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차영미 시인은 새로운 문물의 최전선에서 이것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활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 쓴다. 내지르는 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 가라앉았다 발을 내딛기 어려우면 주저앉히기도 하고 리트윗되지 않 는 아우성은 칠게들의 구멍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왜 징징거리는 걸까? 날마다 욕설이 난무하면 소리 없는 차단을 누르거나 신고를 클릭했다 물기 머금은 펄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틀어대다 구멍 사 이로 재빨리 숨어드는 관음이 얼굴을 드러냈다 어디로 떠다니고 있을까? 지문은 두려움이 개펄 위에서 살아났다 밀물은 멀리 있었고 갈매기들은 내려앉고 떠난 부지런을 관종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있는 몸을 자꾸만 끌어 당기고 자주 방향을 잃었다 개펄은 뛰어나가지 않았고 암호는 펄떡였다 어디로 고이는 걸까? 뒤집힌 말들은 - 「개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중에 "트위터"라는 것이 있고 트윗을 하고 리트윗을 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맨션과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도 있다. 팔로워를 모을 수도 있고, 친구찾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의 글이 마음에 들 지 않을 때는 친구를 차단할 수도 있고, 부적절한 글이 발견되었을 때는 신고를 할 수도 있다. 그것도 클릭 한 번으 로. 이 시는 트위터라는 SNS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개펄'로 비유하고 있는 시다. 문명과 자연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나 할까? 트위터를 하지 않는 사람도 '칠게들의 구멍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가만히 있는 몸을 자꾸만 끌어당기고 자 주 방향을 잃었다', '어디로 고이는 걸까? 뒤집힌 말들은' 등의 표현을 통해 트위터의 세계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 려운 개펄과 같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책"을 읽고 "미세먼지 어플"(「균열」)을 사용하는 차영미 시인은 20대가 아니고 30대도 아니며 40대도 아니다. 그의 이력을 모르고 이 시집을 읽었다면 2, 30대 시인의 시가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그의 시에는 낯선, 그러나 새롭게 유행하는 시어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간혹 '젊은 시인들이 많이 쓰는 시어'를 가져와 시에 사용하는 시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어 몇 개만으로 시가 젊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젊은 사람들의 문화까지 따라 해보며 그것을 시로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경우, 내가 이렇게 젊다는 것을 보여주고픈 의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의 이 '젊음'은 '노력'이 아니라 '체질'처럼 보인다. 그에게 그것은 그냥 생활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영미 시인이 새로운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가 '현실'을 바라보는 남다른 태도와도 연 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수용하겠다는 자세가 이렇게 새로운 문물에까지 이 어진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차영미 시인은 언제까지나 젊은 시를 쓸 것이고 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4. 섬 소식
이 시집은 차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2018년 첫시집 『괄호를 묻는 새벽』을 낸 후 6년 만이다. 요새는 2, 3 년이면 새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들이 하도 많아져서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6년이 걸렸다면 꽤 긴 시간이 흘 렀다고 볼 수 있다. 차영미 시인에게 6년은 다른 시인들의 6년과는 조금 다른 감이 있다. 그의 생활 반경은 다른 사람 의 시집을 만드는 일, 시 잡지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일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시집을 내 는 일에 이렇게 뜸을 들였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이번 시집에 정성을 기울였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차영미 시인은 결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시인이 아니므로 우리가 그의 시를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그가 6년간 그가 마주했던 현실, 6년간 그가 생각했던 것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그의 직업과 관련되는 시들도 있다. 불면에 대한 시나 인간관계 에서 오는 갈등을 다룬 시는 그의 내면을 더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들 시도 소재의 측면을 떠 나서 보자면 앞서 얘기한 차영미 시인의 시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들 중에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섬과 바다에 대한 시이다. 차영미 시인이 쓴 시에 대한 시, 혹은 출판에 대한 시와 섬에 대한 시를 나란히 소개해 보자
기다리는 척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심장 소리가 들리고
화면이 열리는 소리
낯선 명령어를 연습한다
성급함을 자르고 오타 속으로
가끔 그는 친절하고
나는 자주 길을 잃는 손가락
기억은 찾아오지 않지
불안은 나의 무기였으나
소리를 삭제하고 손톱을 자른다
싫어하는 너를 위해 비껴가는 소문으로
오래된 비문을 숨긴다
소음이 합쳐지는 사이 단어를 걸러내고
오류를 쏟아낸다 모니터는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
화해를 시도하고
삭제를 반복하고
어제의 심야에 도달한다
진동을 닫는다 몸속에 숨은
- 「미로와 미로 사이」
여름이면 몸이 맑아져서 파란 속내가 들여다 보였다 가끔은 성이 나서 방파제 위로 치솟아 오르곤 했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배를 만 안쪽으로 깊이 묶어두어야 했다 태풍 다음날이면 테트라포드tetrapod는 방파제로 올라와 있기도 하고 절벽을 온몸으로 안은 바깥쪽으로 겨울 내내 동백꽃이 피고 동박새들이 날아다녔다 바람이 맑은 날에는 구름 그림자가 방파제로 깊게 몸을 누이고 멀리 제주도가 보이고
수평선 너머 배 몇 척이 늘 서 있었다 밤에는 집어등이 수평선을 환하게 밝히고 바다 냄새가 하늘을 떠돌고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나를 부르는 노부부가 좁은 골목 안에 살았다 섬 뒤쪽 절벽 아래 오래된 약수로 알몸 목욕을 하고 여객선으로 들어오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2월이면 해풍 머금은 쑥을 보내고 한계치 맞춰 택배 보내던 어머니도 섬을 떠나고
어느 해 겨울 폭풍우로 보름을 섬에 갇혀 날마다 탈출을 꿈꾸었고 섬을 잊었고 가끔 꿈속에서 붙들었다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한 곳이 풍경처럼 스며들면 자주 섬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 「거문도」
차영미 시인의 시에는 그의 직업과 관련되는 시가 많다. 「미로와 미로 사이」가 바로 그러한 시다. 사실은 그가 편집 일을 한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가 하는 편집일 이 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래서 그의 삶은 여러모로 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어 있다. 「미로와 미 로 사이」는 문장도 시제가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반면 「거문도」는 철저하게 과거 시제다. 이 시말고도 「밀양호」, 「검은 모래 해변」, 「안개의 분절음」, 「빗면으로 스미다」 등 섬과 관련이 있는 시제는 과거 시제로 되어 있다.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섬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탈출을 꿈꾸었고, 섬을 잊었지만 때로는 꿈속에 서 그를 붙들기도 했던 섬. 다시 가고 싶지 않음과 소식의 궁금함의 양가감정이 드는 섬. 그 섬이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섬에 대한 기억이, 한편으로는 잊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운 그 섬에 대한 기억이 그를 시인으로 이끌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가 젊은 시를 쓰는 것도 섬에 머무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 섬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차영미 시인을 안 지가 얼마나 되었나 생각해 본다. 만난 지로는 꽤 여러 해가 된 듯하다.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고 한 번도 무언가 서로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막상 차영미 시인에 대해 잘 아냐고 물으 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시집의 원고를 받으면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시집이 나오면 언제 따뜻이 마주 앉아 섬 얘기를 묻고 싶다. 시에서 받은 느낌만으로는 너무 아프고 너무 슬퍼서 쉽게 다 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아는 차영미 시인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별일 아니 라는 듯, 툭툭 털어내듯. 빨리 그와 차를 마시고 싶다. 술이면 더욱 좋고.
- 차영미의 시세계
한명희(시인. 강원대 교수)
1. 물활론적 세계
차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여기, 오독이 내리고』는 물활론적 세계관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우리 인간이 포함되어 있는 이 자연계는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생물은 생장하고 생명 활동을 하며 번식한다. 무생물은 이와 반대다. 호흡할 수 없으며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당연히 생장과 번식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의 시에서는 수많은 무생물이 몸을 얻어 돌아다닌다. 때로는 그것이 사람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관념들에도 물성을 입혀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래서 그 관념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차영미 시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햇빛을 먹어야지,
바람이 구부러지는 아침
누군가에게는 피난이었고
누군가에게 광기였을지도 모를
나에게서 듣는 나의 냄새
구겨진 생각들이 달려가고
도로는 파편으로 가득하다
밀물과 썰물 속에서
어제는 붉은 구두를 건져내기도 하고
추적자처럼 찍어내는 녹슨 핏자국과
비린내로 번들거리는 멈춤 버튼 속에
고도를 따라가는 맨발에게
질문을 신겨주었고
소멸하던 태풍은 북쪽으로 이동 중이고
우리는 방에 앉아 쏟아지는 바다를
서로에게 던져주었다
- 「공의 바다」
차영미 시인이 내게 건넨 시집 원고의 제목은 원래 『공의 바다』였다. 이 시가 그에게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의 바다'의 '공'이 던지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둥근 공이기도 하고 텅 비어 있는 공空이기도 할 것인데, 후자의 공의 바다는 '고해의 바다'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앞 장의 결론으로 내가 차영미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둡고 공허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시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차영미 시인이 이 시에서 의도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시가 지니는 이러한 의미보다 물활론적 사고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구부러지는 아침'에 '햇빛을 먹어야'겠다는 참신할 발상은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바람과 햇빛을 형상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생겨난다. 그에게는 바람도 구부릴 수 있는 물질이며 햇빛도 입에 넣을 수 있는 물질이다. '생각'은 구겨져 있고 '질문'은 신을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형상화해버리는 것, 이것은 차영미 시인의 중요한 시창작법이다. 이러한 작법 속에서 '바다'를 서로 던져줄 수 있는 '공'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숙제 같은 낙서를 한다
낙서는 바람에 밀린다
밀려든 문장이 구겨지고 나는 감성을 베낀다
베껴 쓴 어제를 갈아 끼우고 뭉쳐 있는 말을 씻어낸다
더위는 변덕스러운 얼굴로 거품을 따라가고
약속이 길어지고 문자는 투명해지는 늦은 밤,
노이즈noise가 모퉁이를 뛰어다니고 느슨한 질문지가 도착하고
채우다 채운 만큼 비워야 한다는 걸 잠시 잊어버리고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가 감기처럼 떠다니는 사이,
늦은 원고가 지면으로 걸어갔다
겉면이 익어가는 밤,
밤을 헤집고 더께 같은 여름이
얄팍해진 문장 위에 걸터앉은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 「얄팍한 문장」
차영미 시인의 시에 드러나는 물활론적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일단 이 시의 표현에 집중해 보자. 그의 시에서 '문장'은 종이처럼 구겨지는 물체다. 물론 이것은 문장을 써놓은 종이를 구겨버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차영미 시인이 이것을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어제'는 '갈아 끼우'는 것이 가능한 물체이며 '말'도 '씻어내'는 것이 가능한 물체이다. '더위'는 얼굴을 지닌, 그것도 변덕스러운 얼굴을 지닌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의인화된 '더위'는 '거품'을 따라가기까지 한다. 「얄팍한 문장」은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물활론적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스마트폰마다 빗방울이 다녀갑니다 장마같은 비, 어디선가 취한 혼잣말이 굴러갑니다 그녀는 행성 사이를 돌고 있고 나는 사람들 사이 간격을 맴돌고 시집이 눅눅한 걸음을 걸어갑니다 그녀는 행성에 잘 도착했을까요?
술을 마시고 시를 펼칩니다 우산 떨구는 소리가 들리고 옆 사람이 마스크 안에서 웃습니다 시어들이 나를 쏘아보고 여기는 환승역, 술에 취한 동료가 선을 침범해도 토닥이기로 합니다 집은 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또 무언가를 잃어버립니다 메모장을 열기도 전에 시어를 잃거나 우산을 잃거나 나이가 들면 두근거리지 않는 선의를 얻기도 합니다 쫑알거리고 지나는 아이를 웃으며 바라보는 그런 것, 어쩌면 버퍼링이 서성거리는 것, 보일까요?
- 「여기, 오독이 내리고」
시집 『여기, 오독이 내리고』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우리는 쉽게 차영미 시인이 만들어낸 물활론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인용한 위의 시에서 '빗방울'은 '다녀가'고 '취한 혼잣말'은 '굴러간다'. 빗방울은 다녀갈 수 있는 존재로 의인화되고 혼잣말은 '취한' 존재로 의인화된 되는 한편 '굴러가'는 물체로 이중으로 물성을 입는다. 이렇게 두 겹으로 물성화되는 것이 차영미 시인의 물활론적 표현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시집이 눅눅한 걸음을 걸어갑니다"의 경우 시집은 일단 '눅눅한' 사물로, 그 다음에 걸어다닐 수 있는 동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추상적인 개념도 사물화 되어 다른 사물들과 동등하게 취급된다. "시어를 잃거나 우산을 잃거나 나이가 들면 두근거리지 않는 선의를 얻기도 합니다"라고 구절에서는 '시어', '우산', '선의'가 동가의 사물처럼 표현되어 있다. '시어'는 물론 '선의까지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는 사물로 여겨지게 한다. 자신을 둘러싼 무생물들이 이렇게 물성을 입고 돌아다니는 세상을 차영미 시인은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세상이 무척이나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사물들이 의인화되고 관념들마저 사물처럼 형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다 보고 만질 수 있다면 삶이 잠시라도 평안할 수 있을까? 생각마저 다 형체가 있다면 그것은 착란의 세계가 아닌가. 그로테스크의 세계가 아닌가. 그러나 차영미 시인은 절대 몽상가도 아니고 착란에 빠져 있지도 않다. 4차원, 혹은 5차원의 세계를 보고 있지도 않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바로 현실, 이곳이다.
2. 상상력과 현실
상상력은 경험하지 않은 것, 현재에 없는 대상을 직관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마치 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상상력이다. 뇌과학자들은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뇌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면서 살아간다. 구분할 수 없다면 현실에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차영미 시인은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현실과 분리되어 공중에 부유하는 상상력이 아니다. 철저하게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상상력이다.
바닥이 뚫린 허공을 걸어가며
현무암과 눈을 맞춘다
앞선 발자국이 일순 멈추고
생각 없는 일상이 끊기다가 지탱하는 철근과 마주한다
작은 두려움이 한 발씩 걸어가고
이제 생각난 약속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흐르고
낙엽비는 금가루처럼 흩날린다
숨겨진 방에 밝은 옷을 걸어 두고
거스러미를 떨쳐 물비늘로 보낸다
하마를 닮은 바위, 위에서 마주치면 그저 너럭바위에서
거짓을 닮은 이모티콘을
한 켜씩 밀어두고 낙서처럼 전송한다
요양 병원에 앉아 탈출을 꿈꾸는 전화와 멀어지고
분리 불안을 달고 사는 눈동자를 벗어나면
직벽을 흐르는 물살 사이로 낡은 망루가 졸고 있다
바닥을 떠난 바닥 사이로 세로가 걸쳐있고
환승역이 없는, 두고 온 환상이 가을처럼 물드는
여기,
아무도 돌아서지 않는 바닥
- 「세로의 잔도」
'잔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 어느 지방에서였는데 나는 인간의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에 앞서 삶의 비의, 살아가는 것의 처참함 등을 느꼈다. 그것은 뭐랄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구나'하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었다. 요즘은 대한민국 곳곳의 산에 잔도가 놓여 있고 그것은 대부분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잔도의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잔도의 폭도 넓어도 한 사람은 너끈히 건너갈 수 있다. 그래도 잔도는 잔도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길이 절대 있을 수 없는 곳에 강제로 길을 만들어 낸 것이 잔 도다. 폭이 좁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잔도는 낭떠러지와 낭떠러지를 잇기에 아차 하면 그 밖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 다. 떨어진 후에는?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이 서 있는 잔도는 '세로의 잔도'이다. '잔도'만으로도 처 참한데 그 잔도가 세로로 놓여 있다. 살아보겠다고 잔도를 낸 것인데 그것이 세로로 나 있다면 그래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차영미 시인이 '잔도 관광'에서 본 것은 '아무도 돌아서지 않는 바닥' 위에 서 있는 자신이다. 물활론적 비유가 가장 익숙한 사람은 유아동기의 아이들이다. 원시인들은 물활론적 믿음 때문에 동식물을 숭배했다. 차영미 시인의 시에 도 저하게 나타나는 물활론적 사유도 그 근원은 어리다 못해 유아적이기까지 한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것 은 그만큼 차영미 시인은 순수한 눈을 가졌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겠다. 이쯤에서 우리는 차영미 시인이 '세로의 잔도'에 서 있는 자신의 삶을 물활론적 상상력으로 이겨내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로의 잔도」에서처럼 다음에 인용할 시 「길티 플레저」에도 요양 병원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는 화자가 있다. 환승역이 없는 현실이 있다. 주문 내역 리스트 사이로 좋아요를 누르고 까르르 웃는 화면의 아이를 어루만진다 무한 재생 영상은 출구 없는 욕망을 닮아 어 디로 갈지 묻지 않는다 비밀을 일상처럼 펼쳐 놓고 돌아보면 오타, 다시 보면 탈자, 건너편에는 나를 닮은 원피스가 졸고 있다 클릭 을 기다리는 웹소설, 웹툰이 스마트폰 아래, 아이패드 안으로 숨어든다 어제 쓴 시어 몇 자도 잊어버리고 어머니는 자꾸만 기저귀를 숨겨둔다 나의 숨어버린 욕망은 보이지 않는 냄새를 찾아다닌다 이사에 적응 못한 반려견을 데리고 골목에서 오줌을 누이고 빈집 모퉁이를 들여다보는 반려견, 요양 병원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엉덩이로 방안을 돌고 방향제를 뿌리고 서로의 말을 삼키고 경관 식은 위루관을 자주 빠져나온다 슈퍼 블루문을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스마트폰으로 조준하고 달의 뒤편을 들여다보고 싶어 채우지 못한 곳을 날마다 욕망한다 비우는 법을 모르는 너는 고요의 바다를 들쑤시고, 배덕감은 한 켜씩 꼬리를 말아두고 -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을 의미한 다"고 한다. 이 시에는 오자와 탈자를 보아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화자와 이사한 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려견을 돌 봐야 하는 애견인으로서의 화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양 병원을 견디지 못하는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중년 여성으 로서의 화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이 길티 플레저인 것을 생각하면 시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욕망' 이 쉽게 이해된다. 꼼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욕망'만이 오롯이 이 시인의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은 결코 현실을 압도하지 않는다. 사실, 차영미 시인의 시는 물활론적 상상력을 빼고 보면 너무나 냉정하리만큼 현실적이다. 그가 향하는 눈길은 언제 나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직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들은 섬세하고 날카롭다. 많은 시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으면서 얻은 깨달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 다. 차영미 시인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낭만적 꿈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차영미 시인의 시는 믿 을 만하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에 가깝지만, 그는 결코 비극적 세계관에 침몰 되어 있지 않다. 그에게 비극은 그냥 현실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차영미 시인의 시에 대해 안심한다
3. 유연함
현실적이라는 말은 때로는 긍정적으로 쓰이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쓰인다. 차영미 시인에게 있어 '현실적'이라는 말 은 자신이 당면한 어떠한 것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부딪혀 수용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세로의 잔도」나 「길티 플레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 혹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에 관한 수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빠른 적응으로도 드러난다
로제 떡볶이를 주문한다 문장이 말이 없어서
낱말을 밀어넣고 크림소스와 고추장 조합에
핫한 시간이 대기 중이다
이 방에서 저 방까지 세 발자국, 길을 잃는다
증폭기는 새벽에 도달하고 와이파이는 수풀에 내리는
빗소리도 재생한다 로딩 놓친 사진이 서걱거린다
잔소리가 돌아다닌다 운동을 채우지 못했다고
스마트워치의 카톡 폭탄이 끼어들고 안부는
반품하기로 한다 그제야 삭제할 목록이 투덜거리고
몰입이 자라고 있었다 안전지대를 비집고 들어가는 거기,
당신의 빈말과 우리의 반목 사이에
하나쯤 닿지 않는 꿈을 꾼다 껍질만 남은
- 「막간이라는 자세」
전화가 아닌 핸드폰 어플로, 밀떡볶이나 쌀떡볶이가 아닌 로제 떡볶이를 주문한다. '핫'하다는 표현을 쓴다. 인터넷 으로 주문한 와이파이 증폭기가 새벽에 도착한다. 인터넷으로 전송되어 온 사진은 로딩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와이파이가 문제다. 오늘 해야 하는 운동량은 스마트워치에 기록되어 있다. 운동량에 미달하면 스마트워치가 알려준다. 몹시 편리한 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심각한 인간의 소외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은 물질문명과 문명의 이기에 대해 비판해 왔다. 시인이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시인 이 자연의 편에 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차영미 시인은 새로운 문물의 최전선에서 이것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활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 쓴다. 내지르는 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 가라앉았다 발을 내딛기 어려우면 주저앉히기도 하고 리트윗되지 않 는 아우성은 칠게들의 구멍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왜 징징거리는 걸까? 날마다 욕설이 난무하면 소리 없는 차단을 누르거나 신고를 클릭했다 물기 머금은 펄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틀어대다 구멍 사 이로 재빨리 숨어드는 관음이 얼굴을 드러냈다 어디로 떠다니고 있을까? 지문은 두려움이 개펄 위에서 살아났다 밀물은 멀리 있었고 갈매기들은 내려앉고 떠난 부지런을 관종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있는 몸을 자꾸만 끌어 당기고 자주 방향을 잃었다 개펄은 뛰어나가지 않았고 암호는 펄떡였다 어디로 고이는 걸까? 뒤집힌 말들은 - 「개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중에 "트위터"라는 것이 있고 트윗을 하고 리트윗을 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맨션과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도 있다. 팔로워를 모을 수도 있고, 친구찾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의 글이 마음에 들 지 않을 때는 친구를 차단할 수도 있고, 부적절한 글이 발견되었을 때는 신고를 할 수도 있다. 그것도 클릭 한 번으 로. 이 시는 트위터라는 SNS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개펄'로 비유하고 있는 시다. 문명과 자연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나 할까? 트위터를 하지 않는 사람도 '칠게들의 구멍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가만히 있는 몸을 자꾸만 끌어당기고 자 주 방향을 잃었다', '어디로 고이는 걸까? 뒤집힌 말들은' 등의 표현을 통해 트위터의 세계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 려운 개펄과 같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책"을 읽고 "미세먼지 어플"(「균열」)을 사용하는 차영미 시인은 20대가 아니고 30대도 아니며 40대도 아니다. 그의 이력을 모르고 이 시집을 읽었다면 2, 30대 시인의 시가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그의 시에는 낯선, 그러나 새롭게 유행하는 시어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간혹 '젊은 시인들이 많이 쓰는 시어'를 가져와 시에 사용하는 시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어 몇 개만으로 시가 젊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젊은 사람들의 문화까지 따라 해보며 그것을 시로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경우, 내가 이렇게 젊다는 것을 보여주고픈 의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데 차영미 시인의 이 '젊음'은 '노력'이 아니라 '체질'처럼 보인다. 그에게 그것은 그냥 생활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영미 시인이 새로운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가 '현실'을 바라보는 남다른 태도와도 연 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수용하겠다는 자세가 이렇게 새로운 문물에까지 이 어진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차영미 시인은 언제까지나 젊은 시를 쓸 것이고 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4. 섬 소식
이 시집은 차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2018년 첫시집 『괄호를 묻는 새벽』을 낸 후 6년 만이다. 요새는 2, 3 년이면 새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들이 하도 많아져서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6년이 걸렸다면 꽤 긴 시간이 흘 렀다고 볼 수 있다. 차영미 시인에게 6년은 다른 시인들의 6년과는 조금 다른 감이 있다. 그의 생활 반경은 다른 사람 의 시집을 만드는 일, 시 잡지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일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시집을 내 는 일에 이렇게 뜸을 들였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이번 시집에 정성을 기울였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차영미 시인은 결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시인이 아니므로 우리가 그의 시를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그가 6년간 그가 마주했던 현실, 6년간 그가 생각했던 것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그의 직업과 관련되는 시들도 있다. 불면에 대한 시나 인간관계 에서 오는 갈등을 다룬 시는 그의 내면을 더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들 시도 소재의 측면을 떠 나서 보자면 앞서 얘기한 차영미 시인의 시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들 중에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섬과 바다에 대한 시이다. 차영미 시인이 쓴 시에 대한 시, 혹은 출판에 대한 시와 섬에 대한 시를 나란히 소개해 보자
기다리는 척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심장 소리가 들리고
화면이 열리는 소리
낯선 명령어를 연습한다
성급함을 자르고 오타 속으로
가끔 그는 친절하고
나는 자주 길을 잃는 손가락
기억은 찾아오지 않지
불안은 나의 무기였으나
소리를 삭제하고 손톱을 자른다
싫어하는 너를 위해 비껴가는 소문으로
오래된 비문을 숨긴다
소음이 합쳐지는 사이 단어를 걸러내고
오류를 쏟아낸다 모니터는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
화해를 시도하고
삭제를 반복하고
어제의 심야에 도달한다
진동을 닫는다 몸속에 숨은
- 「미로와 미로 사이」
여름이면 몸이 맑아져서 파란 속내가 들여다 보였다 가끔은 성이 나서 방파제 위로 치솟아 오르곤 했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배를 만 안쪽으로 깊이 묶어두어야 했다 태풍 다음날이면 테트라포드tetrapod는 방파제로 올라와 있기도 하고 절벽을 온몸으로 안은 바깥쪽으로 겨울 내내 동백꽃이 피고 동박새들이 날아다녔다 바람이 맑은 날에는 구름 그림자가 방파제로 깊게 몸을 누이고 멀리 제주도가 보이고
수평선 너머 배 몇 척이 늘 서 있었다 밤에는 집어등이 수평선을 환하게 밝히고 바다 냄새가 하늘을 떠돌고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나를 부르는 노부부가 좁은 골목 안에 살았다 섬 뒤쪽 절벽 아래 오래된 약수로 알몸 목욕을 하고 여객선으로 들어오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2월이면 해풍 머금은 쑥을 보내고 한계치 맞춰 택배 보내던 어머니도 섬을 떠나고
어느 해 겨울 폭풍우로 보름을 섬에 갇혀 날마다 탈출을 꿈꾸었고 섬을 잊었고 가끔 꿈속에서 붙들었다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한 곳이 풍경처럼 스며들면 자주 섬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 「거문도」
차영미 시인의 시에는 그의 직업과 관련되는 시가 많다. 「미로와 미로 사이」가 바로 그러한 시다. 사실은 그가 편집 일을 한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가 하는 편집일 이 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래서 그의 삶은 여러모로 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어 있다. 「미로와 미 로 사이」는 문장도 시제가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반면 「거문도」는 철저하게 과거 시제다. 이 시말고도 「밀양호」, 「검은 모래 해변」, 「안개의 분절음」, 「빗면으로 스미다」 등 섬과 관련이 있는 시제는 과거 시제로 되어 있다.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섬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탈출을 꿈꾸었고, 섬을 잊었지만 때로는 꿈속에 서 그를 붙들기도 했던 섬. 다시 가고 싶지 않음과 소식의 궁금함의 양가감정이 드는 섬. 그 섬이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섬에 대한 기억이, 한편으로는 잊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운 그 섬에 대한 기억이 그를 시인으로 이끌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가 젊은 시를 쓰는 것도 섬에 머무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 섬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차영미 시인을 안 지가 얼마나 되었나 생각해 본다. 만난 지로는 꽤 여러 해가 된 듯하다.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고 한 번도 무언가 서로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막상 차영미 시인에 대해 잘 아냐고 물으 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시집의 원고를 받으면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시집이 나오면 언제 따뜻이 마주 앉아 섬 얘기를 묻고 싶다. 시에서 받은 느낌만으로는 너무 아프고 너무 슬퍼서 쉽게 다 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아는 차영미 시인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별일 아니 라는 듯, 툭툭 털어내듯. 빨리 그와 차를 마시고 싶다. 술이면 더욱 좋고.
목차
목차
시인의 말 5
제1부
공의 바다 12
여름이 돌아가는 내부 14
페스츄리pastry가 낙하하는 지점 16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18
안부에 대하여 20
색color, 그리고 섹sec 21
2시란 새벽 22
거기 24
분할의 온도 26
봄과 오늘 27
코드code 28
막간이라는 자세 30
미로와 미궁 사이 32
균열 34
이해 36
여기, 오독이 내리고 38
불면 39
태블릿을 유영하는 40
틈새 41
제2부
세로의 잔도 44
고요와 미로 사이 46
서석지瑞石池 48
개펄 50
거문도 52
밀양호 54
마루 56
검은 모래 해변 57
나로도 58
달의 건너편 59
골목을 그리다 60
숨 고르기 62
오늘은 비 64
경로 이탈 66
바람을 입다 68
짐짓 70
제3부
안녕, 어제 74
멈춤 76
비는 안부를 묻지 않는다 78
오늘 관심 80
다이어리 82
얄팍한 문장 83
거북목 84
빗면으로 스미다 86
해바라기 88
슬럼프 90
심야 91
뒤집힌 하루 92
길이 94
안경 96
여기저기 98
업데이트 99
제4부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102
페이지를 관람하는 사이 104
모서리 106
허공 4시 107
길쭉한 밤 108
헤어컷 110
비스듬한 하루 112
흔들리는 113
붉은 그녀 114
발자국 116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118
체하다 120
붉은 하루 122
무채색 124
투명한 발톱 125
조만간 126
해설 현실을 디디고 서 있는 상상력|한명희 130
제1부
공의 바다 12
여름이 돌아가는 내부 14
페스츄리pastry가 낙하하는 지점 16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18
안부에 대하여 20
색color, 그리고 섹sec 21
2시란 새벽 22
거기 24
분할의 온도 26
봄과 오늘 27
코드code 28
막간이라는 자세 30
미로와 미궁 사이 32
균열 34
이해 36
여기, 오독이 내리고 38
불면 39
태블릿을 유영하는 40
틈새 41
제2부
세로의 잔도 44
고요와 미로 사이 46
서석지瑞石池 48
개펄 50
거문도 52
밀양호 54
마루 56
검은 모래 해변 57
나로도 58
달의 건너편 59
골목을 그리다 60
숨 고르기 62
오늘은 비 64
경로 이탈 66
바람을 입다 68
짐짓 70
제3부
안녕, 어제 74
멈춤 76
비는 안부를 묻지 않는다 78
오늘 관심 80
다이어리 82
얄팍한 문장 83
거북목 84
빗면으로 스미다 86
해바라기 88
슬럼프 90
심야 91
뒤집힌 하루 92
길이 94
안경 96
여기저기 98
업데이트 99
제4부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102
페이지를 관람하는 사이 104
모서리 106
허공 4시 107
길쭉한 밤 108
헤어컷 110
비스듬한 하루 112
흔들리는 113
붉은 그녀 114
발자국 116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118
체하다 120
붉은 하루 122
무채색 124
투명한 발톱 125
조만간 126
해설 현실을 디디고 서 있는 상상력|한명희 130
저자
저자
차영미
차영미 시인은 1969년 경남 사천에서 출생했다.
2009년 『서정문학』시부문, 2015년 『시와세계』로 등단하였다.
현재 『서정문학』 편집장,『시와세계』 부주간, 도서출판 서정문학 대표를 맡고 있다.
시집으로 『괄호를 묻는 새벽』(2018년) 이 있다.
2009년 『서정문학』시부문, 2015년 『시와세계』로 등단하였다.
현재 『서정문학』 편집장,『시와세계』 부주간, 도서출판 서정문학 대표를 맡고 있다.
시집으로 『괄호를 묻는 새벽』(2018년) 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