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블루 버전)(개정판)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사랑과 관련한 한국어 어휘의 풍부함이다.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구문으로 어렴풋하게 떠돌던 개념들이 명쾌한 어휘로 제시된다. 76개의 표제어는 물론이고(매초롬하다, 살품, 함치르르…) 본문 상에서도 어휘들의 상찬이 펼쳐진다(한살되다, 시틋하다, 갑이별…). 일상 언어생활의 답답한 한계를 넘어서 생각과 감성의 확장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건들바람, 왜바람, 소소리바람, 황소바람, 고추바람 등 바람 관련 어휘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바람의 세밀한 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알던 표현을 다른 각도에서 재발견하거나(〈그리움〉 대상을 붓으로 그린다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의 의미 연관성… 우리는 임을 그리며 그 임을 그리는 것이다), 언어유희를 통해 그 의미를 한층 생생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또 어떤가(〈흐벅지다〉 탐스럽게 두툼하고 부드럽다. 그녀의 흐벅진 허벅지처럼). 고종석은 사랑의 말들을 통해 한국어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한껏 세련되게 예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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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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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풋사랑같이 싱그러운 문장들!
기획 의도
사랑, 그리고 말에 대한 빛나는 상념들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만년으로 갈수록 '단상Fragments' 형식의 글을 실험적으로 선보였다.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대표작 《사랑의 단상》도 그런 맥락에서 발표된 저서 중 하나다. 왜 그는 자신의 무르익은 사상을 담는 그릇으로 흔히 '쪽글' '잡글'로 폄하되곤 하는 짧은 에세이 형식을 취했던 것일까? 그것은 분량의 왜소함이 꼭 사상의 빈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오히려 단상 글은 그 특유의 형식으로 인해 모종의 '진리'를 생성해낸다. 즉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직관을 담아내기에 단상만큼 적절한 형식도 없다. 사유의 속도를 한참 앞질러 나가 주체의 왜곡을 애초에 차단하고, 빠른 속도로 통찰의 파편을 흩뿌리는 것이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이러한 단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최상의 한국어 텍스트다. 1996년 당시 서른여섯 살의 청년 고종석이 불과 여드레 만에 탈고한 이 텍스트에는 사랑,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직관적 통찰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사랑과 관련된 76가지 표제어 아래 사랑에 대한, 사랑의 말들에 대한 빛나는 상념들이 펼쳐진다. 때로는 단 한 문장으로 충분하고(〈몸〉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볼 수라도 있을까?), 때로는 여러 단상들이 브리콜라주되어 단편소설처럼 이어지기도 한다(〈아내〉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리던 날, 내 아내의 이종 한 사람은 그 건물 안에 있었다…). 어느 쪽이든 사랑의 환희와 절망과 조바심과 상처와 희망을 가로지르며 연애의 본질을 꿰뚫고, 또한 그 탐구의 도구가 되는 한국어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절실하게 부각시킨다. 이 책에는 "한국어에 대한 내 사랑이 끔찍이 도탑다"(초판 서문)는 젊은 사내의 풋사랑 같은 고백이 "사랑 없는 삶은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다"(개정판 서문)라는 통찰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한국어에 매혹된 정신
이 책은 고종석이 한국어에 대한 매혹을 드러낸 첫 번째 책이다. 물론 그의 데뷔작인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이보다 한 해 전인 1995년에 발간되었지만, 그 책은 일종의 사회비평서였다. 그의 저술 목록에서 하나의 계열을 이루는 한국어 크로키 《어루만지다》《언문세설》《국어의 풍경들》 등을 고려해볼 때,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향후 한국어 관련 저술의 틀을 결정짓는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종석은 이 책의 방식을 모태로 하여 이후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전개해나간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사랑과 관련한 한국어 어휘의 풍부함이다.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구문으로 어렴풋하게 떠돌던 개념들이 명쾌한 어휘로 제시된다. 76개의 표제어는 물론이고(매초롬하다, 살품, 함치르르…) 본문 상에서도 어휘들의 상찬이 펼쳐진다(한살되다, 시틋하다, 갑이별…). 일상 언어생활의 답답한 한계를 넘어서 생각과 감성의 확장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건들바람, 왜바람, 소소리바람, 황소바람, 고추바람 등 바람 관련 어휘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바람의 세밀한 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알던 표현을 다른 각도에서 재발견하거나(〈그리움〉 대상을 붓으로 그린다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의 의미 연관성… 우리는 임을 그리며 그 임을 그리는 것이다), 언어유희를 통해 그 의미를 한층 생생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또 어떤가(〈흐벅지다〉 탐스럽게 두툼하고 부드럽다. 그녀의 흐벅진 허벅지처럼). 고종석은 사랑의 말들을 통해 한국어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한껏 세련되게 예찬하는 듯하다.
사랑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
이 책에는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종류의 통찰이 함께 제시된다. 먼저 고종석이 생각하는 사랑은 '몸'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애性愛적이고 유물론적이다(〈살〉 사랑의 말들은 살의 말들이다; 〈붙어먹다〉 놀아나다라는 말과 함께 연애의 본질을 명쾌하게 꿰뚫고 있다. 연애는 유희이고 접촉이다). 그는 몸을 억압적으로 터부시하는 것에 분연히 반대하며(〈몸2〉 몸을 버리다, 몸을 더럽히다, 몸을 바치다… 이런 표현들의 봉건성에 구역질이 난다), 몸이 불러일으키는 매혹을 긍정한다(〈살품〉 옷과 가슴 사이에 난 틈. 텅 빔. 관능의 늪).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이 그저 진부한 성적 쾌락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사랑의 '정신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이는 '개혁적 외설성'을 표방하던 1990년대의 여타 저자들과 고종석이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유물론의 건조한 쾌락주의로부터 사랑의 낭만성을 구출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 책에서 사랑의 여러 의식 현상 역시 비중 있게 다룬다(〈애틋하다〉 모든 그리움의, 그러므로 모든 사랑의 밑감정; 〈허우룩하다〉 서운하고 허전하다. 그녀가 그를, 그가 그녀를, 그녀가 그녀를, 그가 그를 떠나야 했을 때처럼). 그가 보기에 사랑은 몸에 절대적으로 기대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사랑은 정념이다. 그것은 에너지고 기氣"인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약간의 보수성은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여전히 유효한 텍스트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 모든 환원주의는 광적이고, 광적인 것은 일시적이다("그때 내가 미쳤었나봐"). 고종석은 사랑을 곧 몸으로 환원시키는 것에서 비껴나 사랑의 여러 측면을 두루 투명하게 비춘다. 그의 시도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는 이유다.
특히 개정판에는 고종석이 쓴 새로운 서문이 추가되었다. 비록 대단한 분량은 아니지만, 그의 돌연한 절필 선언 앞에서 아쉬워하던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해갈이 되길 기대한다.
책속으로 추가
놀아나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처신하는 것을 놀아난다고 말한다. 연애는 유희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눈맞추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된다. 눈맞춤은 모든 사랑의 정지整地 작업이다. 눈맞춤이 있은 뒤에야 입맞춤이 있을 수 있다. 눈이 맞은 뒤에야 배도 맞는다.
달거리 나이가 들어 달거리가 멈추는 시기를 폐경기라고 말한다. 여자가 폐경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적으로 좀더 능동적일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뚜쟁이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자유혼이 일반적이었다. 당사자끼리 눈이 맞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말이다. 자유혼 즉 연애결혼이 일반화된 요즘도 중매혼은 특히 상류계급에 완강히 남아 있다. 마담 뚜를 매개로 한 중매혼은 대체로 계급혼의 성격을 띤다.
발가벗다 몸을 지닌 것들의 특권.
사랑 풋사랑이라는 말도 나를 들뜨게 한다. 풋나물이나 풋나무나 풋사과나 풋잠이나 풋술이나 풋담배나 풋가지나 풋감이나 풋게나 풋곡식이나 풋밤이나 풋배 같은 말이 그렇듯. 풋풋한 것은 늘상 좋은 것이다. 풋내기의 풋솜씨까지도. 내게는 풋볼이란 외래어까지도 풋풋하게 느껴진다. 짝사랑이라는 말은 내 누선淚腺을 건드린다. 그것은 제짝을 찾지 못한 사랑이다. 그것은 짝짝이의 사랑이다. 짝눈과 짝귀와 짝버선과 짝신이 그렇듯.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참사랑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이 그렇듯.
삼삼하다 잊혀지지 않아 눈에 어리다. 암암하다. 그녀의 살품처럼.
서리서리 서리서리라는 부사는 동사 서리다에서 나왔다(어쩌면 거꾸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서리서리는 서려 있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다. 동사 서리다는, 본디, 수증기가 찬기운을 받아 물방울이 돼 엉긴다는 뜻이다. 그것은 명사 서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겨울에 서리가 서리는 모양이 서리서리인 것이다. 서리다의 그 최초의 뜻은, 이내, 향기가 가득 풍기다, 거미줄이나 식물·철조망 따위가 한곳에 많이 얼크러지다,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다, 어떤 감정이 표정 따위에 어리어 나타나다 따위의 뜻으로 번져나갔다.
설레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을 주사했다는 뜻이다.
속삭임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정답게 하는 말. 사랑의 말은 대체로 속삭임이다. 속삭임은 동사 속삭이다에서 나왔다. 속닥이다, 속닥거리다, 속달거리다, 수군거리다, 수런거리다 같은 비슷한 계열의 다른 낱말들과는 달리 속삭이다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별로 없다.
씨받이 씨받이의 대응어는 씨내리다. 즉 씨내리는 이상이 있는 남편 대신에 아내와 합방하여 아이를 배게 하던 남자다. 씨받이 풍습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입양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전통적인 남아 선호와 결합된 탓이다.
아롬 흔히 아름이라는 이름이나 아람이라는 이름과 혼동되지만, 그 이름들 사이의 의미 관련은 형태적 유사성처럼 크지 않다, 라기보다는 전혀 없다. 우선 아름은 양팔을 펼쳐 껴안았을 때의 둘레의 길이를 말한다. … 그리고 아람은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나무에 달린 채 저절로 충분히 익은 상태, 또는 그 열매를 뜻한다. 이 말은 아마도 알밤이 변한 형태일 것이다. 이에 반해 아롬은 동사 알다의 명사꼴 앎의 중세적 형태다.
외로움 사랑은 외로움을 치료하는 행위이지만, 자주,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
입맞춤 맨 처음으로 해본 입맞춤이 생각난다. 그 입술의 소금기가. 그 아이도 그 입맞춤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 입술을 기억하고 있을까?
제미붙을 제 어미에 붙을. 동사 붙다는, 속어로, 여자와 남자가 성적 관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붙다를 붙어먹다라고도 한다. 유럽 언어들에도 제미붙을과 똑같은 의미를 지닌, 그러니까 어머니와 자식 간의 성적관계를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욕이 수두룩하게 있다. 근친상간 중의 근친상간이라 할 어미와 자식의 상간은 오래도록 신화와 문학의 한 소재가 돼왔다. 그것은 최고의 금기였고 상상력은 금기를 금기시하므로.
짜릿하다 순간적으로 몸이 옴츠러질 만큼 자리다. 감전된 것처럼.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랑은 짜릿하게 다가온다.
함치르르 고르게 윤이 있고 고운 모양. 함치르르한 검은 머리는 매초롬한 몸매와 함께 섹시함의 보수적 기준이다.
홀어미 홀아비 살림에 구더기가 끓고, 과부 생활에 꽃이 핀다는 일본 속담이 여자에게보다는 남자에게 홀앗이가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봉건시대의 여자에게 남편 섬기기란 여러모로 지금보다 훨씬 더 힘겨운 일이었을 터이므로, 남편의 죽음이 아내에게는 한편으로 해방을 뜻했을지도 모른다. 과부는 찬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속담은 그런 해방된 여자의 홀가분함을 지적한다.
흐느끼다 몹시 서러워 흑흑 느껴 울다. 왜 여자의 흐느낌은 남자에게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목차
목차
가시내|가시리|각성바지|각시|간살|강샘|건드리다|겹혼인|계명워리|그녀|그리움|길들이다|껴안다|꽃
남녀추니|넋|놀아나다|눈맞추다
달거리|달콤하다|덧정|돌계집|뚜쟁이
맞선|매초롬하다|몸 1|몸 2|무르녹다
바람|반하다|발가벗다|보쌈|봄빛|붙어먹다|비바리
사랑|살|살갑다|살친구|살품|삼삼하다|샛서방|서리서리|설레다|설움|소박데기|속삭임|숫보기|스스럽다|시앗|싱그럽다|씨받이
아내|아롬|아름답다|아침|애서다|애틋하다|얼다|외로움|은근짜|임|입맞춤
젖꽃판|제미붙을|즐김|짜릿하다
함치르르|허우룩하다|호년|홀어미|후끈 달다|후살이|흐느끼다|흐드러지다|흐벅지다
초판 서문 집과 소리와 사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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