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개정판)(알마 시그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왔던 한국의 법의학 드라마를 오늘날 다시금 살려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 책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은 20여 년 전 《새튼이》와 《지상아 1, 2》에 실린 이야기들 중 오늘날에도 의미 있을 법한 꼭지들을 세심하게 간추려 엮었다. 책은 법의학적인 시사점은 물론이고, 그 당시 한국 사회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글들을 두루 선정했으며, 현대적인 글맛을 살려 글을 리라이팅하는 한편,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가미해 오늘날의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01년은 국내의 미드(미국 드라마)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해일 것이다. 케이블 채널 OCN에서 [CSI] 시리즈가 첫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CSI]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미드를 일약 20~30대 문화의 주요 흐름으로 만들었다. 그 뜨거운 반응은 마니아층을 넘어 이후 한국 최초 법의학 드라마 [싸인]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이후 각종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물려 유전자 감식이나 곤충을 이용한 범인 색출 같은 각종 첨단 과학수사법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런데 '과학수사 드라마' 팬이라면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또 있다. 1978년 1월, 한국판 [CSI] 드라마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법의학의 태두인 문국진 박사가 드라마틱한 법의학 에세이를 한 회사의 사보에 연재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범죄 현장의 '실제' 이야기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진진했다. 단지 법의학적 분석만이 아니라 삶의 드라마까지 짚어주는 문국진 박사의 글은 일반인들을 매료시켰다. 이 글들은 단행본 《새튼이》(1985년)와 《지상아 1, 2》(1986년)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한국 사회에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은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왔던 한국의 법의학 드라마를 오늘날 다시금 살려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20여 년 전 《새튼이》와 《지상아 1, 2》에 실린 이야기들 중 오늘날에도 의미 있을 법한 꼭지들을 세심하게 간추려 한 권의 새로운 책으로 재탄생시켰다. 알마 편집부는 문국진 박사와 수차례의 논의를 하며 법의학적인 시사점은 물론이고, 그 당시 한국 사회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글들을 두루 선정했다. 또한 현대적인 글맛을 살려 글을 리라이팅하는 한편,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가미해 오늘날의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를 통해 한국 토양에서 자라난 법의학의 귀한 이야기들을 되살려보고자 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날카로운 법의학 지식
저자 문국진 박사는 법의학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국과수 최초의 법의관이자 국내 대학원 법의학교실의 창립자로서, 누구보다 오랜 세월 동안 사건 현장을 겪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아흔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 등 '법의학의 멘토'로서 든든하게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학술서와 대중서를 넘나들며 50여 권의 책을 펴낸 빼어난 저술 기량은 한국의 법의학 드라마를 생생하게 들려주기에 손색없다.
저자 문국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폭넓은지는 여러 꼭지에서 드러난다. 먼저 [지상아](209~213쪽)라는 꼭지를 보자.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분만을 시도했는데, 난데없이 태아의 머리가 툭 떨어져버리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 예진 단계에서는 정상이었던 태아여서 산모는 물론이고 30년 경력의 산부인과 의사마저도 놀란 전무후무한 사고였다. 감정을 의뢰 받은 문국진 박사는 자신의 장기인 '현대적' 법의학 지식을 동원해 복잡하게 꼬여 있던 사고의 원인과 경과를 정확하게 분석해낸다.
또 [새튼이](205~208쪽) 꼭지에서는 저자의 법의학 지식이 '먼 과거'로까지 뻗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튼이는 달리 '명도明圖 태자혼太子魂'이라고도 하는데, 어린아이의 미라를 가리키는 용어다. 문국진 박사는 새튼이가 빙의했다고 주장하는 한 사기꾼 무당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과거 한반도에서 어린아이의 미라가 생길 수 있었던 특수한 조건을 역사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일부종사'라는 관념과 중세의 양육 환경, 떠돌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직업 조건 등이 다각도로 고려되어 법의학적 분석과 맞물린다.
휴머니즘이 살아 숨 쉬는 풍부한 인간 드라마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문국진 박사의 법의학 지식은 단지 차가운 분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따뜻한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집안일](81~85쪽)이라는 꼭지를 보자.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삼형제가 있었다. 그중 첫째 형이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따로 분가하지 않고 둘째?셋째와 함께 살았다. 비극은 둘째가 욕정을 못 이겨 형수를 성적으로 범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셋째도 형수를 협박해 첫째 형 몰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수년이 지나 첫째는 이 끔찍한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이미 아들을 셋이나 본 상황이었다. 첫째는 이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집안일'을 문국진 박사에게 털어놓고 친생자 감별검사를 부탁한다. 결과는 절망스러웠다. 장남은 둘째의 자식, 차남은 셋째의 자식, 삼남만 첫째 자신의 자식이었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문국진 박사의 휴머니즘이 드러난다. 그는 단지 분석 결과를 통보한 것이 아니라, 첫째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설득한다.
"K씨! 당신네 삼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핏줄이오. 비록 태어난 자식 중 둘은 당신 자식이 아니지만, 당신과 같은 핏줄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핏줄을 모르거나 알고도 자식으로 거두는 사람들도 많고, 또 동생의 자식을 아들로 삼고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거요. 이 경우는 그래도 모두 당신과 같은 핏줄 아니오. 모두에게 좋은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물론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에 여러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냉정한 법의학자로만 남아 있지 않으려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오로지 '사건'만을 본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는 '인간'과 그 인간의 '드라마'를 묵묵히 응시한다.
이런 그를 법의학의 멘토라 불러야 할까, 삶의 멘토라 불러야 할까? 분명한 건 그가 현장에서 기록한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의 글들이 법의학 지식은 물론 인간의 드라마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판 [CSI]의 시작은 1978년 1월이 맞다.
책속으로 추가
하루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섹스하던 도중에 며느리에게 바기니스무스가 일어나 시아버지의 성기가 꼼짝 못하게 되었다. 창피스러운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욕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자기 스스로 빠져나가려고 무척 노력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며느리는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소리치며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비명 소리에 놀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이 장면을 보고는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리어카에 싣고는 담요를 덮어서 병원으로 옮겼다. 두 사람은 평생을 두고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창피스러운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_102쪽
3부 지능적인 사건의 전말
위 내용물의 소화는 섭취한 음식의 종류, 위장계 질병의 유무, 정신 상태, 활동 및 수면 상태 등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감정서에는 반유동성의 내용물이 위에 반 정도 있었으며, 채소류는 그대로였다는 점으로 봐서 식후 3~4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K씨의 진술에 따르면, 저녁 식사로 수제비를 먹었다. 밀가루 음식은 쌀밥보다 소화가 빠르다. B의사의 판단대로 반유동성일 정도로 음식물이 소화되려면 3~4시간 정도가 지나야 한다. 그러나 섭취한 음식물이 밀가루 음식이라는 점, 그리고 위의 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섭취한 음식물이 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3~4시간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식후 1~2시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면 직장 체온으로 추정한 사망 시간과 일치한다. 나는 이렇게 내린 결론을 수사관에게 통보했다._139?140쪽
그 남자의 지갑에는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손목에도 시계 자국만 남아 있을 뿐 어디에도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밤늦게 함께 여관에 왔던 여인이 청산을 먹이고 돈과 귀금속을 털어간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나는 자살일 거라고 생각했다. 청산염을 사용해서 타살하는 경우에는 대개 먹다 남은 커피나 주스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더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할 때는 이미 각오한 일이기 때문에 컵의 내용물을 거의 다 비운다. 남는다고 해도 밑바닥에 조금 남기는 정도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청산염 자살사건은 모두가 그랬다. 경찰은 방 안에 남아 있던 술집 성냥갑으로 전날 함께 지낸 그 여인을 찾아서 조사를 해보았다. 상황 설명을 다 들은 여인은 아주 태연자약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 선심을 쓴 것이군요.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지갑 안에 있던 돈을 모두 털어주고는 그것도 부족했는지 차고 있던 시계까지 가지라고 주더군요." 남자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심을 쓰고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었다._149?150쪽
4부 어처구니 없는 사건
이 이야기를 듣고 온 K의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흑인은 손톱이 자라지 않습니까? 그런 이유로 이번 사건에서 J병사가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흑인의 손톱이 자라는지, 자라지 않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해서 흑인 병사가 무죄 방면되었다고 하니, 나로서는 흑인의 손톱은 자라지 않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미국에서 흑인을 부검할 기회가 있었다. 부검을 마치고 동석했던 흑인 의사에게 물었다. "흑인은 손톱이 자라지 않는다면서요?" 그 흑인 의사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흑인도 사람인데 왜 손톱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나요?" 나는 혹시라도 그가 인종적인 편견으로 받아들일까봐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 흑인 의사는 다 듣고 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 변호사가 거짓말을 한 겁니다. 미국 변호사들이 모두 정직하게 변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외국인을 보기 어려웠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일어날 수 있었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_156쪽
혹시 수혈이 잘못되어 부인이 사망한 것일지도 몰라서 남편의 혈액형을 다시 검사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설명을 듣고 있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형님 대신 제 피를 뽑았는데…, 우리 형님이 저보다 몸이 약해서…." 이 말을 들은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 두 사람의 혈액형을 검사해본 결과, 형은 틀림없이 O형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B형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부인의 혈액형이 왜 AB형으로 나오는지, 왜 부인이 급사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검사를 끝낸 후 형제에게 부인이 사망하게 된 것은 형의 피 대신 동생의 피를 수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은 털썩 주저앉으면서 통곡을 했다._160쪽
5부 기이한 사건
마흔 살 된 중년 부인이 남편과 성행위를 하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남자는 복상사腹上死했다거나 여자는 복하사腹下死했다고 말한다. (중략) 부검을 해봤지만 사인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단지 급사한 경우의 일반적인 소견과 인두부의 수종과 울혈이 심하다는 정도였다. 페니실린 쇼크사일 때와 비슷한 소견이었다. (중략) 그제야 부인의 사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의 정액을 통해 페니실린이 부인에게 전해졌고, 정액에 들어 있던 페니실린 성분 때문에 부인이 쇼크사했던 것이다._190쪽
매독이라는 병은 모를 수도 있다. 상당히 오랫동안 통증 없이 진행되고, 저절로 낫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환자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매독은 병의 진행 상태에 따라 1기, 2기, 3기로 나눌 수 있다. 매독은 성행위를 통해서 감염되는데, 감염되고 나서 3~4주가 지나면 대개 성기에 구진丘疹이, 사타구니에는 림프샘염이 생기는데 통증은 없다. 게다가 치료를 하든, 하지 않든 한 달쯤 지나면 그런 증상은 자연히 없어져버린다. 이때가 1기 매독인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지 않으면 매독인지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석 달쯤 지나면 2기 매독이 시작된다. 이때 피부에 매독진疹이 생기는데 이것도 저절로 없어진다. 3기 매독은 다시 그로부터 수개월 내지 수년 뒤에 나타나는데 온몸의 장기에 매독균이 감염되어 통증도 심하고 제 기능도 못하게 된다. 눈이 멀거나 정신착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매독이라는 병이 이렇게 자각증상이 적고, 그 증상마저 내버려두면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적시에 진단을 받지 않으면 자기가 매독에 걸렸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_211?212쪽
목차
목차
저자
저자
회 명예회장, 일본 배상과학회 및 한국 배상의학회 고문, 한국의료법학회 고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고려대학교교수학술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법의학 전문서적으로 《최신 법의학》 《고금무원록》 등 23권, 법의학 교양서적으로 《새튼이》 《지상아》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공저)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등 9권, 예술과 의학의 만남을 다룬 서적으로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예술작품의 후각적 감상》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 등 13권, 일본어로 펴낸 《美しき死體のサラン》 《日本の死體, 韓國の屍體》(공저), 《賠償科學槪說》(공저) 들이 있다.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