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놀이(고종석 선집)(양장본 HardCover)
이 책은 고종석선집(총5권 기획: 소설, 언어학, 시사, 문학, 에세이)의 넷째 권으로서,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평론/에세이 44편을 가려 담았다. 1993~2007년에 발표한 글들이며, 〈한국일보〉를 위시해 《대산문화》《사회평론》《진리?자유》《동서문학》 등의 잡지, 그리고 더러는 시집이나 산문집에 실렸던 것들이다. 작품에 대한 솔직한 태도와 저널리스트다운 관찰, 그리고 미려한 언어감각 등이 어우러져 독보적인 비평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 수준을 한층 높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기되는 ‘비평의 위기, 한국문학의 위기’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러나 인간이 공작새나 벚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 장신구 덕분이다."
타락한 제도권 비평을 넘어서는 고혹적인 문장들
기획 의도
고종석의 독보적인 문학비평 에세이
한국 문단에 대한 오래된 비판 하나가 "비평은 없고 호평만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수작이고, 모두가 일독의 가치가 있다. 이는 작품에 대한 건전한 성찰을 방해하고,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쉽다. 비평이 작품보다 웃자랄 때, 그 격차만큼의 실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비평의 폐해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단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문예비평을 시도한 고종석에게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고종석선집(총5권 기획: 소설, 언어학, 시사, 문학, 에세이)의 넷째 권으로서,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평론/에세이 44편을 가려 담았다. 1993~2007년에 발표한 글들이며, 〈한국일보〉를 위시해 《대산문화》《사회평론》《진리?자유》《동서문학》 등의 잡지, 그리고 더러는 시집이나 산문집에 실렸던 것들이다. 작품에 대한 솔직한 태도와 저널리스트다운 관찰, 그리고 미려한 언어감각 등이 어우러져 독보적인 비평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 수준을 한층 높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기되는 '비평의 위기, 한국문학의 위기'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있는 그대로'의 비평을 위하여
이번 선집의 두 축은 시 비평과 산문 비평이다. 전체 목차 구성을 스케치해보면, 1부에서 시 일반에 관한 고종석의 견해를 드러내고 2부에 산문 비평, 3부에 시와 산문 비평을 실었다. 그리고 4부에서 시 비평을 집중적으로 수록하고 5부에서는 옛 시 비평을 시도했다. 6부는 한국문학에 대한 몇 가지 제언들이다.
1부 '시의 운명'에서는 시 일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유럽에서 시는 사멸했으며, 그 본연의 모습인 노래 가사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아직 시가 살아남아 있는 한국에도 곧 닥칠 미래일 것이다. '글쓰기의 대중화' 물결 속에서 아마도 시인의 아우라는 계속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 그는 전망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산업사회, 탈산업사회의 경우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시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왜 그런가? 다른 무엇보다도, 시의 위세, 시인의 위세가 새로운 세대에게 계속 전수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쓰기의 민주화?대중화라고 해도 좋다?와도 관련이 있다. 파리에서와 같은 지하철 시를 통해서든 통신망을 통해서든 시를 쓰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인들은 시 앞에서 경건한 예전의 시인들은 아닐 것이다._20쪽
이처럼 고종석은 1부에서 시에 관한 다소 비관적이고 음울한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3부 이후에 제시되는 시 평론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매력적인 시들을 고종석 특유의 미려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분석하고 예찬한다. 즉 1부는 시에 대한 고종석의 전망을 드러내는 것에 더해, 이후 펼쳐지는 시 평론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2부 '산문 산책'은 산문가들에 대한 고종석의 평이다. 다음과 같은 이들이 다루어진다; 김현, 전혜린, 정운영, 이재현, 서준식, 김윤식, 최일남.
이 부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해볼만 한다. 첫째, 솔직한 비평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흔히 '주례사 비평'이라 하여 칭찬 일색의 비평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종석은 이를 간접적으로 비판이라도 하듯 느낀바 그대로를 직접적으로 상술한다.
그(김윤식)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_78쪽
김현의 글은 어쩔 수 없이 낡아 보인다. 사실 이런 '낡음'은 이미 김현 생전에도 기미를 드러냈다.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_34쪽
둘째, '산문'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시'와 '소설'을 비평의 가치가 있다고 보고 두 장르를 위주로 담론이 유통된다. 고종석은 그가 가장 애호하는 '시' 비평을 다음 장으로 유보하면서까지 '산문' 비평을 부각시킨다. 이는 비평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텍스트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서가에서 오랜 잠을 자던 산문가들이 깨어난다. 예컨대 다음 대목을 읽고 정운영을 다시 들춰보지 않기란 힘들다.
정운영은 문학 텍스트에 맞먹는 미적 광채를 신문 칼럼에 부여한 드문 저널리스트다. 하긴 그의 문체적 사치는 신문 글만이 아니라 본격 논문에서도 절제를 몰랐다. 그 점에서 정운영은 연구자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이기 이전에, 문장가였다. 설령 그의 글의 메시지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흐릿하게 퇴색한다 할지라도, 그의 문장은 한국어가 살아 있는 한 또렷이 남을 것이다. 그의 소문난 퇴고벽, 교정벽이 사실이라면, 문장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정운영이 진정 바라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꿈을 이뤘다._49~50쪽
유려한 문장으로 시를 온전히 감당하다
3부 '친구의 초상'은 친분이 있는(또는 호감이 있는) 문인과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이다. 시와 산문의 비평이 혼재되어 있는데, 동료 문인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고종석의 비평작업이 변천해온 과정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초기에는 저널리즘의 틀로 문학에 접근했고(6~9챕터), 후기로 갈수록 정밀하고 분석적인 비평이 이루어진다(1~3챕터).
특히 시집 발문들인 1~3챕터는 분석의 밀도가 촘촘하고 비평서사의 전개력이 돋보인다. 고종석은 시인-화자가 누구인지 묻고, 그가 사는 세계가 어딘지 가늠한다. 그러고 시인-화자에게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세심히 관찰한다. 이를테면 이윤림이나 황인숙의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도, 고종석의 비평을 보고 나면 해당 시인에게 성큼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고종석의 생각들은 잠시 페이지를 멈추게 한다.
불확실한 삶, 아픈 삶은 인간의 삶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받은 것들의 운명일 것이다. 삶의 위태로움에는 성역이 없다. 그 삶 속에서는 연약함이 오히려 힘일 수도 있다_98쪽
나이 듦의 한 징표는 추억으로의 몰입이다. 되돌아보는 것은 나이 든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모든 추억은 미화의 유혹에 취약하게 마련이지만, 늙음이 바라보는 젊음의 추억은 특히 그렇다._120쪽
4부 '시집 산책'은 고종석이 편애하는 시집과 시인들의 목록이다; 김소월, 김정환, 서정주, 신경림, 이성부, 이용악, 황인숙, 김지하, 오규원, 강정, 김남주, 이순현, 최승자, 김종삼, 조윤희, 오장환, 조용미, 정은숙, 고은, 이연주.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이며,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목록인 듯하다. 그러나 그 편애의 온도는 하나같이 뜨겁다. 고종석은 유려한 문장으로 시집의 언어를 온전히 감당해낸다. 특히 그는 비교를 통해 시인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능하다.
당대 조선 상황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이 시(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를 읽노라면, 문학의 위의威儀니 하는 것에 냉소적인 나 같은 독자도 문득 자세를 바로잡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때, 비슷한 시기에 서정주가 현란하게 구가한 감각의 아스라함은 문득 비천하게까지 보인다. 감각의 깊이에서, 《오랑캐꽃》의 시들은 도저히 《화사집》의 시들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감각의 격조와 기품에서, 《화사집》은 도저히 《오랑캐꽃》을 따를 수 없다._276쪽
김종삼의 시가 박인환의 시에 견주어 덜 거북스럽게 읽히는 것은 그의 서양 취미가 박인환의 것보다 사뭇 익혀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호에 대한 퍼스의 분류를 훔쳐오자면, 박인환의 박래어들이 대체로 도상icon이나 지표index에 그친 데 비해, 김종삼의 박래어들은 드물지 않게 상징symbol에 이르렀다. 김종삼은 외국 이름이나 외래어들을 그려다 붙이며 제 교양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 의지해 정서적 확장과 공명을 이뤄내는 데 자주 성공했다. 말하자면 김종삼은 그 고유명사들을 장악하고 있었다._349쪽
5부 '옛 노래 세 수'는 〈누이제가〉〈서경별곡〉〈청산별곡〉에 대한 평론으로 고종석의 시야가 고대와 중세로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청산별곡〉에서는 그의 언어학적인 관심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는 언어학자로서의 고종석과 문학평론가로서의 고종석이 합류하는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후렴구의 경쾌함은 'ㄹ'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얄랑셩'의 'ㅇ' 받침소리에서도 온다. 'ㅇ'은 가벼움과 말랑말랑함의 소리, 탄력의 소리다. 'ㅇ'은 공〔球〕의 자음이고 동그라미의 자음이다. 'ㅇ' 소리는 또랑또랑하고 오동포동하고 낭창낭창하다. 그것은 음절의 끝머리에 대롱대롱, 주렁주렁, 송이송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아장아장 걷거나 붕붕거리거나 빙빙 돈다._436쪽
6부 '우수리'는 한국문학에 대한 사념들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2007년에 쓴 글 〈말의 타락〉에서는 마치 2015년을 예견이라도 한 듯, 비평언어의 과잉과 타락을 강하게 경계한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언어는 아름답지 않다.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다독거리는 언어도 좋지 않다. 그것은 타락한 언어다. 지금 예술비평은 그런 타락한 언어의 전시장이다._452쪽
또한 고종석은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문학 중심'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 하면, 문학상의 한 부문을 평론에서 논픽션문학 일반으로 넓힐 것을 제안한다. 이처럼 제도를, 문화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는 그의 정신은 그 자체로 '시적'이다.
[책속으로 추가]
최일남 문장은 경계의 문장이다. 그의 문장은 예스러움과 현대성의 경계에 있고, 토착성과 외래성의 경계에 있고, 전원풍과 도회풍의 경계에 있고, 귀족풍과 서민풍의 경계에 있고, 고전미와 유행감각의 경계에 있다. 최일남 문장에 점점이 박힌 외래어나 (젊은 세대의) 신어의 현대성은 글의 근간을 이루는 토박이말과 한자어의 예스러움과 길항하고, 토박이말의 토착성 전원풍 서민풍은 한자어의 외래성 도회풍 귀족풍과 길항한다. 그것은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의 길항이기도 하고, 조선어 단어와 (설핏 보이는) 일본어투 문체 사이의 길항이기도 하다. 아니 그것들은 길항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며 두터움을 얻는다. 그리하여 독특한 최일남 문체를 이룬다._83쪽
3부 친구의 초상
물론 시의 화자를 시인과 고스란히 포개는 것은 위태로운 읽기다. 그러나 특히 서정시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예사롭게 시인의 목소리와 겹친다. 화자와 시인의 격리가 또렷해 보이는 경우에도, 화자는 무심결에 시인을 대리하고 변호한다. 그래서 서정시는, 그 외양이야 어떻든, 서사시보다는 에세이와 더 핏줄이 가깝다._115쪽
실상 황인숙의 많은 시에서 탐미는 연민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시인의 윤리적 충동은 그의 노래가 탐미의 허공으로 휘발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 점에서 그는 되다 만 악마주의자이고, 보들레르의 부실한 제자다._130쪽
평자들이 별로 지적하지 않는 황인숙 시의 중요한 장점은 그 리듬감일 것이다. 시인이란 결국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그리고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하게 마련이라면, 황인숙이야말로 바로 그런 의미의 시인이고 예술가다. 실상 황인숙을 감각의 시인이라고 했을 때, 그 감각은 모국어 리듬에 대한 감각을 압도적으로 포함한다. 언뜻 너무 달라 보이는 백석과 황인숙의 시를 내재적으로 닮게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모국어의 리듬에 대한 두 시인의 활달하되 완강한 집착이다._138쪽
이문재의 얼굴은 늘 미래보다는 과거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소금창고〉)이다. 그는 과거를 되살려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인간이다._152쪽
육체성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시집 《제국호텔》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시인은 네트워크로서의 제국이라는 세균에 자연과 몸이라는 녹색 항생제로 대항한다. 《제국호텔》의 상당수 시편들은 근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상상되는 인간의 육체와 대지 사이의 삼투와 조화를 꿈꾼다. 시인-화자가 꿈꾸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는 근대과학이 가져온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앎의 관계가 아닌, 개인들이 주관적으로 세계와 유지할 수 있었던 느낌의 관계다. 빛, 냄새, 맛 같은 구체적 세계의 질에 대한 경험으로서의 느낌 말이다._154쪽
이인성이 그런 소설을?그것이 위대한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안 팔리는 소설이라는 의미로?쓸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 선생에게 한국 사회가 베푸는 특별한 안온함을 생각하면, 그가 자신의 한결 같은?그것을 '선비적 태도'라고 부르든 '식물성의 저항'이라고 부르든?문학적 정진을 마냥 뽐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그의 주위 사람들과 많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걸 마냥 뽐내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양식이 있는, 차라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 쓰기의 물질적 토대를 의식하고 있다._165쪽
'시 같은 산문'이라는 말은 어떤 산문에 대한 최상의 찬사가 되겠지만 그의 산문은 때때로 시를 넘어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로 독립적이고 무관한 듯이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공통점을 상상력의 빨판으로 끌어당겨 비유의 진열장을 만드는 것이 시쓰기의 중요한 측면이라면 그는 물론 탁월한 시인이겠지만, 그런 뜻에서 그의 시인됨은 오히려 산문의 형식으로 발표되는 글들 속에서 더 도드라진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그의 시는 그의 뛰어난 산문들의 우수리일 뿐이다._198~199쪽
4부 시집 산책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취향은 미끈한 문학비평가들과 날씬한 문학저널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빚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문학적 교양의 유행에서 벗어나 시를 제 몸으로 느껴보라고 주문한다면, 그리고 시인이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점을 피조사자들에게 환기시킨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리스트는 사뭇 다르게 작성될지도 모른다. 그때, 소월과 《진달래꽃》은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선호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_230쪽
시인 김정환(1954~)의 산문은 넌지시 시적이다. 이것이 그의 산문에 대한 찬사인지는 확실치 않다. 산문가 김정환의 시는 슬그머니 산문적이다. 이것 역시 그의 시에 대한 찬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김정환은 가장 반듯한 산문을 쓰는 시인이자, 가장 산뜻한 시를 쓰는 산문가다. 이것은 찬사다._237쪽
산문가는 훈련되는 것이지만,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다. 천재 음악가가 가능하듯 천재 시인은 가능하지만, 천재 산문가는 불가능하다. 시인이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는 것은 시가 귀족의 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산문가는 태어난다기보다 벼려진다. 벼림은 귀족의 일이 아니라 평민의 일이다. 그래서 산문은, 바로 그 이름이 가리키듯, 흩어진 글, 볼품없는 글이고 평민의 글이다._238쪽
감옥 속의 김지하는 70년대 한국문학의 치욕이자 축복이었다. 그것이 치욕이었던 것은 그를 감옥 안에 두고서도 70년대의 한국문학사가 별 탈 없이 하염없는 장광설로 쓰여지고 있었다는 점에서고, 그것이 축복이었던 것은 감옥 속의 시인 덕분에 한국문학의 당대가 순전한 미몽의 시기로 기록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다. 30대의 김지하는 감옥 속에서 70년대의 부하負荷를 제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며 개인사의 수난을 문학사적?사회사적 활력으로 전화시켰고, 그럼으로써 70년대가 박정희의 연대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연대로, 김지하의 연대로 기억되게 만들었다._295쪽
우리가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 우리에게 자유의 느낌이 충일할 때조차, 우리는 현실 속의 유일한 가능성에, 곧 필연에 얽매여 있을 뿐이다. 이 필연의 세계에, 자유의지가 박탈된 세계에, 책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비난할 수 없듯이, 우리의 적들을, 범죄자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_339쪽
아픈 사람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민감함은 주위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신경질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물과 사태의 기미幾微를 섬세하게 탐지하는 레이더 노릇을 할 수도 있다. 시인에 대한 그럴싸한 정의定義 하나가 보통 사람들이 무심코 흘리는 기미를 대뜸 알아채는 사람이라면, 시인은 누구나 조금씩은 아픈 사람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의 아픔은, 거기에 따르는 불안은, 그러니까 시인됨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다._375쪽
5부 옛 노래 세 수
현전하는 신라 향가 14편이 모두 다 예술적으로 빼어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단지 우리 고대어의 흔적을 흘끗 보여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 노래들도 있다. 그런 노래들에 견준다면 〈누이제가〉는 아름다움으로도 빼어난 작품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 노래가 죽음을 마주보고 있다는 데서도 오는 것이리라._410쪽
'그러면 너는 왜 사는가'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관성으로'라는 대답 이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것을 생명체에 내재해 있는 자기보존 본능,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라고 해도 좋다._413쪽
나는 평양이라는 이름보다는 서경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평양'이 '서경'보다 더 유래가 깊은 이름이라는 것, 역사 시기의 대부분 동안 그 도시가 '평양'이라는 이름을 지녀왔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실로 평양이라는 이름에는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평양이라는 이름을 달가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평양은 내게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다._421쪽
〈서경별곡〉의 화자에게 연애는 곧 삶 자체다. 게다가 그에게는 미래의 기약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랑이고, 그 현재의 사랑이 파탄하는 것은 그의 삶이 파탄하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_426쪽
〈청산별곡〉은 패배자의 노래다. 화자는 외롭고 시름겹다. 그는 이럭저럭 낮을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 지낼까 걱정하는 주변인이다. 그는 외로움과 시름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 눈물의 인간이다. 시름겨운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 그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우는 것뿐이다._435쪽
6부 우수리
'개인성'은 스타일리스트의 필요조건이지만, 작가의 운명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쉽다. 당대의 독자들도 완전히 동화하지 못하는 문장의 어떤 기미를 미래의 독자들이 남김없이 빨아들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 한 언어 안에서 어떤 낱말들의 뉘앙스를 바꾸고 특정한 통사구조의 세련미를 부식시키는 데는 한두 세대의 세월도 충분하다._445쪽
평론을 포함한 논픽션문학 일반을 문학상의 한 부문으로 정하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문학평론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는 논픽션문학의 한 갈래다.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고 있는 논픽션문학 작품들 가운데 오로지 평론에만 문학상을 주고, 그로써 이 장르의 위엄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기행문이나 일기나 자서전이나 편지글이나 평전이나 르포 같은 갈래가 문학평론보다 덜 문학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_448쪽
목차
목차
01 시의 운명
02 기다림 또는 그리움: 4 19의 언어
2부 산문 산책
0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02 먼 곳을 향한 그리움: 전혜린의 수필
03 화사한, 너무나 화사한: 정운영의 경제평론
04 언어의 부력浮力: 이재현의 가상인터뷰 〈대화〉
05 시대의 비천함, 인간의 고귀함: 서준식의 《옥중서한》
06 나는 '쓰다'의 주어다: 《김윤식 서문집》
07 최일남 산문집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 굽이쳐 흐르는 만경강
3부 친구의 초상
01 푸른 그늘의 풍경: 당나귀와 먼지 요정 사이
02 자명한 산책길에 놓인 일곱 개의 푯말: 시간 속에 흐드러지게 무르익은 감각
03 제국에서 달아나기, 제국에 맞서 싸우기: 자연과 몸이라는 녹색 항생제로 대항하기
04 이인성 생각: 정교한 운산 위에 구축된 예술
05 황인숙 생각: 기품의 거처
06 이방인으로 사는 법: 에밀 시오랑과의 가상 인터뷰
07 해방적 허무주의, 탐미적 신경질: 황지우
08 단심丹心에서 흘러나온 푸른 노래들: 김정환
4부 시집 산책
01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 김소월의 《진달래꽃》
02 희망의 원리로: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
03 감각의 향연: 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
04 산업화의 뒤꼍: 신경림의 《농무農舞》
05 전라도의 힘: 이성부의 《우리들의 양식糧食》
06 식민지 조선인의 기품: 이용악의 《오랑캐꽃》
07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황인숙의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08 이야기로서의 노래, 노래로서의 이야기: 김지하의 《오적》
09 허공의 시학: 오규원의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10 타락의 순결: 강정의 《처형극장》
11 직립인直立人의 존엄: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12 제 몸으로 돌아가는 말들: 이순현의 《내 몸이 유적이다》
13 시간의 압제 아래서: 최승자의 《내 무덤, 푸르고》
14 무적자無籍者의 댄디즘: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
15 불면의 크로노스: 조윤희의 《모서리의 사랑》
16 분단의 원原공간: 오장환의 《병든 서울》
17 불안이라는 이름의 레이더: 조용미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8 서울 엘레지: 정은숙의 《비밀을 사랑한 이유》
19 저묾의 미학: 고은의 《해변의 운문집韻文集》
20 푸줏간에 걸린 인육人肉: 이연주의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5부 옛 노래 세 수
01 〈누이제가〉에 대한 객담
02 〈서경별곡〉의 변죽
03 〈청산별곡靑山別曲〉: 흘러가며 튀어 오르기
6부 우수리
01 미래의 독자?
02 평론문학상을 넘어서
03 말의 타락
04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과 문학
저자
저자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