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묻는 말
류인혜의 나무이야기
류인혜의 나무이야기 [나무에게 묻는 말]. 류인혜는 이 책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겸허하고 진솔하되 묵묵히 베풀기만 하는 나무의 덕목을 상생적(相生的) 식물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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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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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상생의 시 미학, 류인혜 수필집 『나무 이야기』
이 명 재
중견 수필가 류인혜는 그동안 네 권의 수필집뿐 아니라 시집도 한 권 펴내면서 꾸준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평론을 주로 해 온 필자 역시 여러 작품을 통해서나 문단 모임 등에서 대상 문인과 낯설지 않게 알아진 편이다. 어쩌면 작품과 인품을 거의 동시에 이해하게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 수필가와 작품들을 논하려면 우선 글(문장)은 곧 개성적인 인품과 같다고 설파한 박물학자 뷰퐁의 말을 뇌이게 된다. 그녀의 글이나 인품은 본디의 '柳仁惠'라는 이름에 걸맞게 늘 겸손하며 따스한 미소가 떠오른다. 거기에다 남을 대할 때 기독교적으로 은혜를 베풀고 신실하게 행하는 그 매무새가 인상적이다.
결코 몸을 사리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되도록 세상을 밝게 보면서 소박하되 알뜰히 살아가려는 자세가 곧 그녀의 수필 세계와 함께함을 읽을 수 있다.
식물적 상상력과 인간의 성찰
류인혜는 이 책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겸허하고 진솔하되 묵묵히 베풀기만 하는 나무의 덕목을 상생적(相生的) 식물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수필 「꿈을 주는 나무들」에서는 일찍부터 고향의 가로수를 이룬 미루나무가 봄기운에 깨어나는 모습에 감동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스스로 시를 쓰고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과수원이 많은 지방에서 자라나며 사과나무의 꽃을 보는 감동으로 과수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남몰래 소설을 쓰며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미루나무(포플러나무)는 다름 아닌 버드나무요 류인혜 자신의 성씨라서 그렇지만은 않았으리라 싶다.
봄이 되어 가지에서 잎이 돋아날 때, 아련히 안개처럼 가지에 번지는 연둣빛이 좋았다. 미루나무가 길게 서 있는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시선을 멀리로 던져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잘 자라난 초록 잎사귀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광경도 가슴을 뛰게 했다. (중략)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늘을 상대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꿈을 심어 준다. 사람에게 지친 마음을 나무는 위로해 주고,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사람이 나무와 가까이 살면서 나무에게 얻는 것 중에서 가장 갚진 보답이다.
또한 곧잘 나무의 덕목을 기려 온 류인혜는 그 나무를 할아버지로 의인화해 보이기도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큰 나무로 사셨다. 동네 어귀에 심어져서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나무처럼 우리 집의 한중간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이셨다. 늘 그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무의 넓은 그늘 밑에서, 튼튼한 줄기 옆에서 편히 쉬고 싶은 간절함의 표시였다.
―「할아버지 나무」에서
여러 편의 나무 이야기 중에서 다음 같은 통찰은 깊은 감동을 준다. 똑같이 4백 년쯤 오래 산 나이인데도 나무는 심어진 자리나 가꾸는 사람들의 대접에 따라 차별 나게 보이는 대신에 사람은 저마다 다른 나잇값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심겨진 자리에 따라서 평생 동안 고단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삶에도 무엇인가 나이만큼의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길가의 느티나무가 아무리 볼품없는 모양새라도 여름이면 나름대로 시원한 그늘을 이룰 것이 아닌가, 기대해 본다.
그런데 사람은 저마다 나잇값이 다르다. 먹은 나이만큼 의젓하고 넉넉한 인품으로 노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는 벼슬이라 생각하여 나이 든 욕심이 권위를 만들어 (중략)
살아온 내력을 알아주도록 기대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경험을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년의 나무에 무수히 맺은 열매를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여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두 느티나무는 내 노년의 모습을 먼저 바라보는 거울이 된다.
―「느티나무와 느티나무」에서
소박, 풋풋하며 친근한 문체
문장 또한 소박하다. "고맙다, 나무야"라는 머리글부터 호흡에 걸맞고 친근하게 다가들어 잘 읽힌다. 평소 글 쓰는 자신의 진솔한 체험에다 아늑한 대화를 계속한다. 그녀는 결코 고담준론이나 현학적인 태도로 이웃 독자들을 설득하려 들지 않고 부담감 없는 동화 이야기라도 들려주듯 자신의 느낌만큼 진솔하게 말하는 게 좋다. 더구나 시조 시인인 그녀의 수필은 서정적인 정감도 실려 있는 시적 산문이라서 아리스토텔레스 본래의 시 미학적 요소를 함께한다.
바람이 따뜻해지자 겨우내 숨을 죽여 있던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잎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맺는다. (중략)
아이를 잉태한 젊은 여인이 불쑥 올라온 배를 자랑스럽게 내밀 듯이 새 움을 돋우기 위해 뿌리로부터 물을 올리는 나무의 줄기는 선명한 검정 색깔로 당당하다. 잔가지들에 아련한 녹색 안개가 서려 있다. 녹색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를 입은 나무들이 아름답다.
지금까지는 마른 가지들이 움을 돋아내는 그 가려움으로 비비적거린다고 느꼈는데 올봄에는 물기를 머금은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알맞은 때에 봄비를 내려 주셨다.
― 「봄 소식」에서
이처럼 그녀의 글에는 곧잘 풋풋하게 살아 있는 색채 이미지가 많이 쓰이고 있어서 신선한 맛이 넘친다. 때로는 조금씩 대자연의 정취들과 사랑스런 몸을 비벼 대는 촉각 이미지마저 나긋해 올 정도이다. 거기에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신앙심도 실어 넣고 있는 것이다.
또한 류인혜의 글에는 적잖게 싱그러운 후각 이미지도 활용되고 있어서 감미로움을 더한다. 이런 점은 여느 수필가들에게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요소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숲은 울창하게 서 있는 곳이 아니라 이름 모를 꽃도 피고 온갖 풀이 잡목과 어울려 있는 곳이다. …… 숲으로 가서 나무의 냄새를 맡고 나무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자신을 일깨우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숲으로 가자」에서
오동나무의 꽃잎은 약간 도톰하여 은은한 향기가 오래간다. 떨어진 꽃송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어 두면 옷을 다시 입을 때마다 흩날리는 향으로 즐거워진다. 계절이 깊어지면 그 꽃이 핀 자리마다 생긴, 조그마한 초록빛 열매가 누렇게 변해 가서 오동나무 가지마다 가을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느낌을 주었다. 그 후 생각날 때마다 오동나무를 보러 다녔다.
―「서 있는 나무」에서
나무와 인간의 연리지(連理枝)
새삼스럽지만 이 평설을 준비하느라고 모처럼 『나무 이야기』를 통독한 덕분에 필자는, 그동안 컴퓨터 자판에 시달려 온 시력이 밝아지고 도심에 찌든 신경세포들에도 활력이 솟아 문득 십 년쯤은 젊어졌다 싶은 느낌이다. 우선 그린 빛 책표지부터 나무라는 테마와 온통 생명감 샘솟는 초록빛 내용이나 산뜻한 식물 사진에 생기를 되찾은 영향이라고 여겨진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나 환경에 절실하고 유익한 신호들을 담고 있어 친하게 다가온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근래의 숱한 시집과 드라마 및 창작집들에서 다루어진 예의 사랑이나 고독 타령 아니면 사회 고발과는 유다르게 녹색 물씬한 식물들의 상생적인 덕목들을 만날 수 있다.
목차
목차
나무는 스스로 자란다 11
나무에게 묻는 말 17
나무를 알아가는 방법 27
나무를 연모하면 36
사람·나무·그리움 39
나무 밑에서 46
나무 꽃의 사계절 54
나무의 노래 62
나무는 나무에게 70
매화 향기를 찾아서 77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91
은빛 버들선생 99
구불구불 소나무 110
왕들의 정원 121
은행나무를 본다 132
기념식수 이야기 141
함양 상림에 가다 149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159
울릉도에서 만난 나무들 170
완도의 난대림 식물 180
나무들의 기도 190
겨울 나무의 편지 199
나무가 되어 나무로 만나자 207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 215
저자
저자
수필집 『풀처럼 이슬처럼』, 『움직이는 미술관』, 『순환』을 발간. 테마에세이 『나무이야기』로 제23회 펜문학상(수필부문) 수상. 시집 『은총』, 인문서 『아름다운 책』이 발간되었다. 2014년 수필선집 『마당을 기억하면서』 발간. 제11회 한국문협작가상을 수상했다.
월간 『문학저널』 2005년 4월호부터 2006년 10월호까지 〈맑은 영혼의 나라 호주여행기〉를 17회 연재했다. 2007년부터는 계간 『수필세계』에 〈나무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2018년 『문학시대』 신년호부터 〈류인혜의 책읽기〉를 연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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