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양장본 Hardcover)
처음부터 새로 읽는 한국고대사
2014년 북경교외 삼합장촌에서 발견된 1,500년 전 무덤에서 “낙랑군 조선현인(朝鮮縣人) 한현도(韓顯度)”라 쓰인 벽돌 명문이 출토되었다. 이 발견을 계기로 이제 고조선, 한사군 등 한국고대사의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기존의 주장에서 크나큰 인식의 전환이 불가피해졌으나, 중국과 국내 학계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 애써 침묵하면서 구태의연한 ‘고조선재한반도설’ 및 ‘낙랑군재평양설’만 고수하고 있다. 이 책은 이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며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음을 새롭게 입증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조선-한나라 전쟁, 만리장성, 낙랑군 등, 고대사 속의 주요한 키워드들을 몇 개의 장으로 구성하고 100년 가까이 논란이 되어 왔던 한국고대사 속 쟁점들을 차례로 복기하면서 기존의 정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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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고조선은 기자 이전에 중원의 동방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 지금의 평양은 위씨조선의 적극적인 한인 수용정책의 결과로 조성된 국제통상기지이거나 집단거주지역이었다!
- 한 무제의 정벌군은 연안항법으로 발해 인근의 조선에 도착하였다!
- 고대의 '요동'은 당시 북방민족의 본거지였던 지금의 요동반도가 아니었다!
- 만리장성의 '만리'는 직선(평지)거리가 아니라 우회(산지)거리이다!
- 진 시황의 만리장성을 요동까지 끌어낸 장본인은 만철 소속 일본 어용학자들이었다!
- 황해도 수안군은 문헌, 지리, 역사적으로 전혀 낙랑군과 무관한 곳이었다!
-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집단에 의해 여러 층위로 형성된 평양시내의 3,000기의 무덤을 낙랑과 결부시키는 것은 기시감에 의한 착시의 산물이다!
- 언어적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낙랑군 호구부는 위조일 가능성이 높다!
- 조선총독부의 한국고대사 왜곡을 도운 공범은 만철조사부의 어용 학자들이었다!
- 점제현 신사비는 제3의 장소에서 누군가에 의해 몰래 운반되어진 밀수품일 가능성이 높다!
- 문헌, 고고, 지리, 역사적으로 따져볼 때 현재 정설로 통하는 '낙랑재평양설'은 역사적 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 책속으로 추가 *
(174쪽) 국내외 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만리장성과 진-한 제국의 영토가 압록강너머 한반도 북부까지 점유하고 있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만일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면 진 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재위 21년 이후로 사구(沙丘) 평대(平臺)에서 병사하는 재위 37년까지 16년이라는 긴 기간 사이에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영토를 순행할 때 단 한 번이라도 동쪽 끝인 한반도 북부, 아니 최소한 요동반도까지는 다녀갔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그는 관동(關東), 즉 제국의 동쪽 영토만 해도 네 차례나 순행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쪽으로는 산동반도까지, 북쪽으로는 갈석산, 발해만까지 둘러본 것이 전부였다.
(212쪽) 만리장성의 동쪽 종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시작한 것은 《진서(晉書)》, 《통전》 등의 역사서가 간행된 8~9세기 당대부터였다. 즉, 사마천 당시로부터 1,000여 년 후인 이 무렵부터 중국의 역사가들이 장성의 동쪽 종점으로 낙랑군 수성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진서》의 편찬자나 두우 등, 이 시기의 그 누구도 이 낙랑군의 수성현이 '고구려 옛 땅'에 있다고 했을 뿐이지 '한반도'에 있다고 주장하거나, 또 그렇게 억지로 결부시키려고 애쓴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290쪽) 지금까지 발견된 평양지역의 고분들이 계통적으로 중국계인지 고조선계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으며, 중국계로 판정한 고분에서 고조선계 비파형 동검이 발굴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2,000년 전 주변 민족들에 대하여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가졌던 중국인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무덤에 피지배민족의 유물들을 부장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375~377쪽) 이 책의 결론:
① 위만이 동쪽으로 변방 요새와 패수를 차례로 통과한 후 그 동쪽 상하장에 머물다가 조선으로 진입하고 있어서 '지금의 평양'과는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 점
② 〈조선열전〉에 묘사된 왕험성은 남쪽으로는 물을 접하고 있는 반면, 그 북쪽에 험한 산지가 버티고 있는 등,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점
③ 비왕 장을 살해한 섭하가 패수를 건너 도주한 한나라 측의 요새가 대동강이나 압록강에서 수천 리나 떨어진 '평주'의 유림관이었다는 점
④ 순체가 동쪽으로 진격하여 패수의 조선 서부군을 격파한 후 계속 동진하여 포진한 곳이 왕험성의 '서북면'이었다는 점(양복은 왕험성 남부 포진)
⑤ 양복의 조선 출정과정을 소개한 "종제부발해"를 통하여 출발지와 목적지에 대한 대체적인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
⑥ 진 시황의 순행 노선 및 진나라 도로 인프라, 그리고 당시 중국인들의 영토에 대한 인식이 언제나 산해관 '이내'에서 멈추고 있고, 진-한 교체기 초나라와 한나라의 격돌, 진-한대의 각종 농민 봉기 및 민란들 역시 '예외 없이' 산해관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는 점
⑦ 《한서》 등 복수의 역사서에서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고 나야' 낙랑, 현토 두 군이 나온다고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
⑧ 황해도의 '수안'이라는 지명은 한대로부터 거의 1,000년이나 시차가 벌어진 고려시대 이후에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
⑨ '낙랑'이라는 이름표를 보란 듯이 달고 있는 일부 의심스러운 유물들을 제외하면, 평양의 고분들이 '낙랑'의 것임을 뒷받침해 줄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
⑩ 이른바 '점제현 신사비'는 산 암벽에 새겨진 석각이며, 처음부터 용강 들판에 세워져 있던 것이 아니라 '제3의 장소로부터' 누군가에 의하여 운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⑪ 이른바 '낙랑군 호구부'를 언어적, 문자적으로 따져 보면 '-호', '-별'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확인된다는 점
⑫ '임둔태수장' 봉니가 1997년 요동과 요서 사이의 호로도 태집둔 인근에서 발굴됨으로써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정밀한 재조사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점
⑬ '도하'라는 지명에 대한 중국 학계의 고증이 도하의 유래와는 무관할 뿐 아니라, '음차(音借)'라는 문자학적 용법의 가능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⑭ 기존의 위치 고증에서 직선(평지)거리와 우회(산지)거리 사이의 편차가 거의 2배 이상 벌어질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⑮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두우의 '우갈석' 또는 학자들의 '고구려의 옛 땅'은 모두 오독의 산물로, 이 중 어느 경우이든 간에 '한반도를'구체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었다는 점. 바꿔서 말하자면, 고조선의 왕험성,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 고구려의 평양을 지금의 한반도 평안도의 평양지역으로 비정한 것은 그 연대를 아무리 멀리 높게 잡더라도 400~50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
목차
목차
Ⅱ. 고조선의 연혁
1. 기자 이전에 이미 조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1) 《 상서대전(尙書大傳)》 속의 조선
2) 《한서》 〈지리지〉에 보이는 조선
3) 《 사기》 〈조선열전〉 속의 '조선'
2. 위만집단의 동래
1) 한나라 제후국 연국
2) 위만의 망명 - 만이복과 퇴결
3) 위만의 세력 확장
3. 위씨조선과 그 주변
1) 위만정권의 수립
2) 위씨조선의 발전
3) 위씨조선의 위치
4) 남려와 ' 창해군
5) 진번과 임둔
Ⅲ. 조한(朝漢) 전쟁 시말
1. 조한 전쟁의 발발
1) 섭하의 돌출행위
2) 양복과 순체의 출병
3) 한대의 전선과 수군의 편제
2. 지리멸렬하는 한나라 정벌군
1) 졸정 다(多)의 선제공격
2) 먼저 도착한 양복의 수군
3) 무제의 위산 파견
3. 전쟁의 재개
1) 한나라 군의 3차 공세
2) 대치 국면에 돌입한 전쟁
3) 양복과 순체의 알력
4) 제남태수의 월권
4. 한나라 수군의 항해 경로 복기하기
1) '종(從)'의 해석
2) 발해의 위치
3) '부(浮)'는 황해 횡단이 아니다
4) 중국 학자도 인정하는 한대의 연안 항해
5) 고염무가 고증한 누선군의 항로
5. 전쟁의 종료
1) 조선의 매국노들
2) 순체와 양복의 말로
3) 조선 내통자들에 대한 논공행상
4) 참의 영지 ' 니계의 문제
Ⅳ. 진 시황과 만리장성
1. 진-한대 중국인들의 영토 인식
1) 《 사기》〈 진시황본기>에 나타난 진나라의 영토관
2) 진나라 동쪽 끝은 발해와 그 인근
3) 제국의 도로망
4) '동방도'의 북쪽 종착점 산해관(山海關)
2. 진 시황의 동방 순행
1) 동방 순행의 경로
2) 1차 동방 순행
3) 2차 동방 순행
4) 3차 동방 순행
5) 4차 동방 순행
6) 동방 순행과 제국 강역의 함수관계
3. 진 시황의 만리장성
1) 장성의 출현
2) 진나라 장성
3) 만리장성의 서쪽 기점 '임조'
4) 만리장성의 동쪽 종점은 어디인가
4. 만리장성의 진실
1) '만리'에 관한 세 가지 가능성
2) '1만 리'는 우회거리
3) 20세기 고고학계에서의 만리장성 논의
4) 만리장성 동쪽 종점은 하북과 요령 경계지역
Ⅴ. 갈석산과 수성현
1. 문헌 속의 갈석산
1) 고대사의 랜드마크 - 갈석
2) 《 상서》 <우공〉을 통해 보는 갈석산
3) 《 산해경》과 《 회남자》의 갈석산
4) 보정시에는 갈석산이 없다
2. 역사적 진실과 허구의 혼재
1) 갈석궁과 강녀석의 수수께끼
2) 중국 지자체들의 '역사 지어 내기'
3) 진황도 지명의 두 가지 유래
3. 제왕들의 순행과 갈석산
1) 갈석산과 진 시황, 한 무제
2) 조조의 오환 정벌과 갈석산
3) 북위 황제 문성제의 갈석산 순행
4. 낙랑군 수성현의 문제
1) '만리장성의 기점' 수성현
2) '고구려 옛 땅'에 갈석산이 있다
3) 두우가 언급한 '고구려 옛 땅'의 의미
4) 도엽암길의 ' 만리장성재수안설'
5) 이병도의 ' 갈석산재수안설'
5. 수성현이 수안군일 수 없는 이유들
1) '수안'이라는 이름의 유래
2) 두우의 ' 우갈석' 오독
3) 순행 동선상의 모순
4) 갈석산과 조선, 낙랑
5) 조선, 낙랑과의 위치 문제
6) 갈석산이 순행 명소가 된 이유
7) 갈석산은 평주에 있었다
8) '게석산'은 갈석산이다
9) 갈석산의 입지조건들
Ⅵ. 한사군과 낙랑
1. 역사 문헌 속의 낙랑
1) 낙랑은 과연 한반도에 있었을까
2) 낙랑은 낙랑, 평양은 평양
3) 《한서》에 언급된 낙랑의 위치
2. 낙랑의 지리적 검증
1) '한사군'에 대한 학자들의 지리 고증
2) 《 후한서》의 리수 데이터
3) 거리 정보의 시대별 편차
4) 산지 - 위치 추정의 주요한 변수
5) 역대 도량형의 변천
6) 다시 '한사군'의 위치에 관하여
3. 한대 죽간 속의 낙랑
1) 제33.8번 죽간의 내용
2) 왕자금의 '낙랑' 해석
Ⅶ. 조작의 징후들
1. 이른바 '낙랑' 고분들의 문제
1) 중국계 고분으로 둔갑한 애 무덤들
2) 천차만별의 고분 양식
3) 부장품이 고분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가
4)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조작이 가능하다
5) 평양지역에서만 쏟아지는 '낙랑계' 유물들
2. 이른바 ' 점제현 신사비'의 수수께끼
1) 한대에는 비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2) ' 점제현 신사비'는 공간이동 된 것인가
3) 용강 인근에는 웅장한 산이 없다
4) 점제현은 서무산 근처에 있었다?
5) 북한 학계의 과학적 분석 소견
3. 낙랑 봉니의 수수께끼
1) '낙랑' 봉니는 위조된 것인가
2) '낙랑' 봉니 200점의 의문
4. 이른바 ' 낙랑군 호구부' 진위 문제
1) 정백동 고분의 발굴과 잡다한 유물들
2) ' 낙랑군 호구부'의 언어적 모순
3) 윤만 한(漢) 간독의 경우
4) 국내 역사서, 문헌들의 경우
5) ' 낙랑군 호구부'에 대한 문자학적 소견
5. 한국 고대사 조작의 주역들
1)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창도한 백조고길
2) 대동강변을 낙랑군 치소로 비정한 조거용장
3) '신의 손' 관야정
6. 태집둔 유적, 유물의 경우
1) 소황지촌에서 발굴된 유물들
2) 평가절하된 ' 임둔태수장'의 존재
3) ' 임둔태수장' 봉니와 임둔의 위치
4) ' 도하(徒河)'에 대한 중국 학계의 인식
5) 주학연이 제공한 '도하' 관련 단서들
6) ' 도하(屠何)'는 고대 북방민족의 이름
Ⅷ. 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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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그동안 옮기거나 지은 책으로는 《중국고전희곡 10선》, 《중국희곡선집》, 《도화선》(1~2), 《간전노》, 《회란기》,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조선사연구》, 《경본통속소설》, 《한국의 전통연희》(중역), 《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현대중국의 연극무대〉, 〈중국의 종교극 목련희〉, 〈명대 희곡의 출판과 유통〉, 〈안중근 열사를 제재로 한 '망국한 전기'〉, 〈원곡의 언어예술〉, 〈원대잡극 속의 몽골어〉, 〈집안 마선비의 건립 연대 및 비문 단구 문제〉 등이 있다.
케이블 T채널에서 제작한 5부작 중국고대사 다큐멘터리물 〈북방대기행〉에 학술자문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2012~2013년에 역주한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는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발표한 2014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2016년부터는 한국연구재단이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발주한 명청대 '의화본' 소설집 《초각 박안경기》의 역주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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