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
안중근 순국 110주년 기념 빌렘 신부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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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선교사의 눈으로 본 안중근, 한국 근대사 연구의 주요 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는 2020년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영적 아버지’ 빌렘 신부의 친필 사목 서한을 판독ㆍ번역한 『(안중근 순국 10주년 기념 빌렘 신부 서한 집)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를 발간하였다.
? 이 책은 빌렘 신부가 황해도 지역 사목을 담당한 1896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한 가운데, 안중근 과 그 가문에 관련된 26통의 편지를 발췌ㆍ판독하고 번역ㆍ주해하여, 사진 자료와 연보, 가계도 등 의 부록을 수록한 자료집이다.
?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뮈텔 문서」 가운데 ‘빌렘 신부 서한’으로 분류된 자료는 총 281건인데, 이 중에서 안중근 관계 자료를 선별한 뒤 「파리 외방전교회 문서」에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관련된 서한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포함시켜, 본 연구소 소식지 월간 『교회와 역 사』 2015년 3월호부터 2017년 4월호까지 연재하였다. 이 번역문을 보완하고 연재에 소개되지 않 았던 서한을 추가하여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ㆍ편집하였다.
? 조제프 빌렘 신부(J. Wilhelm, 요셉, 1860~1938)는 프랑스 로렌 지방 출신으로 1889년부터 1914 년까지 25년간 조선에서 활동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이다.
?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하고 뤼순 형무소에 투옥된 안중근(安重根, 토마스,
1879~1910),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하얼빈 의거 후 옥중에서 성사(聖事) 받기를 원하여 한국 천주교회에 사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장상(長上)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는 안 토마스의 성사를 허락하지 않 았다. 그러나 1897년부터 세례성사로 안중근 가문과 인연을 맺은 빌렘 신부는 뤼순으로 향하였고,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중근을 면회하였으며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미사)를 주었다.
? 이 일로 빌렘 신부는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그 후에도 안중근 면회 등의 문제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빌렘 신부는 임시 휴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동료 선교사 들은 그가 선교지를 떠날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1914년 4월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는 안중근과 그 가문의 신앙생활,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의거 후 안씨 가문의 행적, 황해도 지역의 갈등 등 역사적인 기록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은 지금 에 이르러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대한국인 안중근’의 열심한 신앙, 그리고 안 토마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갔던 프랑스인 선교사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는 2020년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영적 아버지’ 빌렘 신부의 친필 사목 서한을 판독ㆍ번역한 『(안중근 순국 10주년 기념 빌렘 신부 서한 집)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를 발간하였다.
? 이 책은 빌렘 신부가 황해도 지역 사목을 담당한 1896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한 가운데, 안중근 과 그 가문에 관련된 26통의 편지를 발췌ㆍ판독하고 번역ㆍ주해하여, 사진 자료와 연보, 가계도 등 의 부록을 수록한 자료집이다.
?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뮈텔 문서」 가운데 ‘빌렘 신부 서한’으로 분류된 자료는 총 281건인데, 이 중에서 안중근 관계 자료를 선별한 뒤 「파리 외방전교회 문서」에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관련된 서한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포함시켜, 본 연구소 소식지 월간 『교회와 역 사』 2015년 3월호부터 2017년 4월호까지 연재하였다. 이 번역문을 보완하고 연재에 소개되지 않 았던 서한을 추가하여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ㆍ편집하였다.
? 조제프 빌렘 신부(J. Wilhelm, 요셉, 1860~1938)는 프랑스 로렌 지방 출신으로 1889년부터 1914 년까지 25년간 조선에서 활동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이다.
?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하고 뤼순 형무소에 투옥된 안중근(安重根, 토마스,
1879~1910),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하얼빈 의거 후 옥중에서 성사(聖事) 받기를 원하여 한국 천주교회에 사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장상(長上)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는 안 토마스의 성사를 허락하지 않 았다. 그러나 1897년부터 세례성사로 안중근 가문과 인연을 맺은 빌렘 신부는 뤼순으로 향하였고,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중근을 면회하였으며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미사)를 주었다.
? 이 일로 빌렘 신부는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그 후에도 안중근 면회 등의 문제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빌렘 신부는 임시 휴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동료 선교사 들은 그가 선교지를 떠날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1914년 4월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는 안중근과 그 가문의 신앙생활,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의거 후 안씨 가문의 행적, 황해도 지역의 갈등 등 역사적인 기록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은 지금 에 이르러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대한국인 안중근’의 열심한 신앙, 그리고 안 토마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갔던 프랑스인 선교사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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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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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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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5 추천사 7 일러두기 11 해제 13 한글 번역문 27 프랑스어 판독문 261 부록 449
저자
저자
조제프 빌렘
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1938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한국 이름은 홍석구(洪錫九). 1860년
1월 24일 프랑스 로렌(Lorraine)주 모젤(Moselle) 지방의 스피슈렌 (Spicheren)에서 태어났다. 1883년 2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3월 28 일부터 말레이시아 페낭(Penang) 신학교에서 5년 동안 신학생을 양성한 뒤, 1888년 조선교구로 배속되어 이듬해 2월 17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와 제3대 교장을 역임했으며, 1896년 황해도 지역 전담 사제로 결정됨에 따라 매화동(?花洞) 본당과 청계동(淸溪洞)
본당 초대 주임을 차례로 맡아 성당을 건립하였고, 진남포(鎭南浦)에도 성당부지를 마련하는 등 교 세 확장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청계동에서 세례성사로 인연을 맺은 안중근 토마스가 이토 히로부 미(伊藤博文) 포살로 투옥되자, 뮈텔 주교의 불허에도 뤼순(旅順) 형무소를 찾아가 안중근에게 고 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주었다. 이 때문에 1910년 3월 15일부터 60일간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 았고, 뮈텔 주교와의 불화로 1914년 4월 22일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이후 고향 알자 스(Alsace)에서 사목하면서도 한국에 관한 관심과 애정만은 버리지 않았으며, 1919년 베르사유 조 약이 진행될 당시 파리를 방문한 한국 측 대표를 도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였 다. 1938년 5월 16일 모젤 지방의 사랄브(Sarralbe) 요양소에서 선종하였다.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한국 이름은 홍석구(洪錫九). 1860년
1월 24일 프랑스 로렌(Lorraine)주 모젤(Moselle) 지방의 스피슈렌 (Spicheren)에서 태어났다. 1883년 2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3월 28 일부터 말레이시아 페낭(Penang) 신학교에서 5년 동안 신학생을 양성한 뒤, 1888년 조선교구로 배속되어 이듬해 2월 17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와 제3대 교장을 역임했으며, 1896년 황해도 지역 전담 사제로 결정됨에 따라 매화동(?花洞) 본당과 청계동(淸溪洞)
본당 초대 주임을 차례로 맡아 성당을 건립하였고, 진남포(鎭南浦)에도 성당부지를 마련하는 등 교 세 확장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청계동에서 세례성사로 인연을 맺은 안중근 토마스가 이토 히로부 미(伊藤博文) 포살로 투옥되자, 뮈텔 주교의 불허에도 뤼순(旅順) 형무소를 찾아가 안중근에게 고 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주었다. 이 때문에 1910년 3월 15일부터 60일간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 았고, 뮈텔 주교와의 불화로 1914년 4월 22일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이후 고향 알자 스(Alsace)에서 사목하면서도 한국에 관한 관심과 애정만은 버리지 않았으며, 1919년 베르사유 조 약이 진행될 당시 파리를 방문한 한국 측 대표를 도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였 다. 1938년 5월 16일 모젤 지방의 사랄브(Sarralbe) 요양소에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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