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눈썹(시인동네 시인선 23)
김권태 시집
〈시인동네 시인선〉 023. 2003년 『시와반시』로 등단한 김권태 시인의 첫 시집. 김권태 시인에게 시는 언어라는 신비로 다시 삶이라는 신비를 열어젖히는 매개체이다. 시 쓰기는 삶의 과정을 비추고, 그것은 구도행이 되고, 이 구도행(求道行)은 다시 실천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시는 어떤 미학적인 힘을 품는 ‘인간의 거울’이다. 이때의 미학적인 힘, 미적 욕구란 나 아닌 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힘의 차원에 대한 작업이다. 결국 미학은 세계의 거울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부수어, 자신의 시선 안으로 전유(appropriation)하고, 시선 안에 가두어둔 존재의 역상(逆像)을 발견하는 힘이 된다. 김권태의 시에서는 그 역상이 일상적 자아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드러난다. 도구로서의 언어의 한계를 명민하게 자각하며, 그 역설적인 충만을 시로 쓰는 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간명하고도 결기에 찬 이 시집이 제목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서로의 눈부처가 되어 모호한 신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찰나의 ‘나 자신’, 이생의 처절한 소중함에 대한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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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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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신비라는 것은 찾을 수 없을 때만이 신비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자신이 신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빛의 속눈썹은 아무에게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찾는 사람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빛의 속눈썹을 달고,
아득한 신비의 내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비문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비문증(飛蚊症)이란 투명하게 반짝이는 모기들이 눈앞에 날아다니는 듯한 증상이다. 지금은 눈병이 나아 그 모기들이 사라졌지만, 실은 모기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없던 것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기는 분명히 존재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이란 것도, 또 생사와 선악, 희비라는 것도 모두 이 모기의 일과 다를 바 없다. 눈병에 걸린 우리들 눈에서만 본래 없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들이 한바탕 속절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상 어디에도 닿지 못한 눈송이처럼 여기 나의 노래들은 다만 환(幻)의 몸을 빌려 환(幻)이 돌아가는 자리를 아프게 바라볼 따름이다.
―「시인의 산문」
2003년 『시와반시』로 등단한 김권태 시인의 첫 시집. 형식과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날카롭게 벼려낸 시들을 3부의 구성 아래 배치했다.
김권태 시인에게 시는 언어라는 신비로 다시 삶이라는 신비를 열어젖히는 매개체이다. 시 쓰기는 삶의 과정을 비추고, 그것은 구도행이 되고, 이 구도행(求道行)은 다시 실천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시는 어떤 미학적인 힘을 품는 '인간의 거울'이다.
이때의 미학적인 힘, 미적 욕구란 나 아닌 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힘의 차원에 대한 작업이다. 혹자는 '미학적 힘' 또는 '미학적 이데올로기'의 탄생 지점이라고 말한 바로 그 지점이다. 결국 미학은 세계의 거울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부수어, 자신의 시선 안으로 전유(appropriation)하고, 시선 안에 가두어둔 존재의 역상(逆像)을 발견하는 힘이 된다. 김권태의 시에서는 그 역상이 일상적 자아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드러난다. 바로 도구로서의 언어의 한계를 명민하게 자각하며, 그 역설적인 충만을 시로 쓰는 법을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다.
그가 고양이 뼈로 만든 피리를 불 때마다 소녀는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여 다리를 벌려야 했다. 멀리서 연주를 들은 자는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창에 입김을 불어 쓴 문장처럼 불멸의 꿈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야기」 전문
『벽암록』에는 고양이를 두고 다투는 중들 앞에서 고양이를 단칼에 두 토막으로 베어버린 남전 화상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벽암록』에 이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가 있다면, 김권태의 시에는 '고양이 뼈로 만든 피리'가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여 다리를 벌리는 소녀'는 이번 시집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창녀'(「사과」 「인어」 「해탈여인숙」 「낙타」)일 테다. 시인의 말에 따르자면 지상에서 인간의 삶은 창녀의 존재조건과 다름이 없다. 욕망을 자본으로 바꾸어 희열의 '잉여'를 즐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 삶에 주어진 시공간적인 조건은 '화대'의 은유로 탈바꿈한다("이 고통은 화대를 치르는 탓 아닐까요? 창녀 같은 삶에게, 혹은 문장에게……", 「인어」). 화대로 주어지는 삶과 언어는 고통을 동반하는데, 이 고통의 끝이 알 수 없는 희열이다. 조금 더 폭력적인 비유를 동반하자면, 가상체험기를 먼저 쓰고 다른 이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폭행하는 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이중구속된 시선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중구속을 풀어 설명하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존재조건인 바 희열과 고통을 쌍생아처럼 손바닥의 앞뒤처럼 아우르고 있다. 언어와 삶의 신비는 여기에 있다. 언어는 삶이라는 불가해한 신비를 풀어 전하는 도구이자 불가능한 가능으로의 도약을 꿈꾸게 하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사다리는 오르고 나면 치워져야 마땅하지만, 이를 바 없는 지경에 처한 삶 가운데서는 도구가 곧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쯤이면 오르는 행위는 구도행의 다른 이름이 되고, 오르는 행위는 '목적'으로 바뀐 과정이 된다. 현실이 진흙탕이라면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사다리를 타고 현실의 경계 바깥을 보고 돌아오는 것, 돌아와 다시 진흙탕을 뒹구는 것, 이때 진흙탕은 성(聖)의 맞은편에 자리한 속(俗)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일상 그 자체가 된다. 어떠한 가치 판단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 주어진 현실이라는 조건이 바로 진흙탕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짓뭉개질 '진흙소를 타고'가는 행위 자체, 그리고 진흙소가 밟고 가는 진흙탕 그 자체에 시선을 돌리라는 전언이다. 무슨 해탈이니, 초월이니 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언어와 삶이 주어진 일상 그대로 신비라는 것이다. 이것이 김권태가 전하는 본칙(本則)이다.
긴 속눈썹의 겨울이 가만 눈을 감아 보여주는 차가운 내부./눈발처럼 날리는 달빛이 두 개의 현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음악의 나라./아무나 볼 수 없는,/그러나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고통의 푸른 다락방.//혀를 주고 돌아와 흐느끼는 이 마음의 벙어리들. ―「사이」 전문
인간이 정념을 품어 안으면서도 그 내부에서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역설은 바로 '사랑의 외로 된 사업'에서 가까스로 가능하다. 김권태에 의하면 그것은 '~만한 칠정(七情)'을 스스로 제어하는 안간힘에서 비롯된다. "견딜 만한 아픔, 견딜 만한 치욕 속에서/가시처럼 빛나는 내 모든 기억이/너를 응시하고 있다"(「엘리 엘리……」) 견딜 만한 아픔은 아픔이 아니고, 견딜 만한 치욕은 치욕이 아니다. '만하다'라는 형용사는 가능태의 범위를 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치욕이나 아픔은 '내면의 사업'이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은 원인과 결과 모두에서 '한정사'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제어가 가능한 정념 속에서 움직인다고 상상해보자. 제어가 가능하도록 자신을 '겨자씨처럼 작게' 만들었다고 쳐보자. 그럴 때 그이는 본질적으로, 필연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에 의해, 자신의 힘 안에서 현존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그이는 실체가 된다. 이 실체는 자신의 현존을 본질 안에 포함하는 동시에 본질을 현존 속에 용해시키고 있다.
사랑은 순식간의 일이고, 찰나의 일이며, 동시에 무시간의 일이다. 사랑을 통해 인간은 가까스로 무한히 많은 속성들로 자신을 규정하는 한 개의 실체가 되지만, 그때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는 자대로 사랑받는 자는 사랑받는 자대로 각각 영원하고 무한한 자신만의 '본질'을 표현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역시 우연적이고 비본질적인 사람살이의 일이며, 그러한 사람살이가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는 의존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불안"(김권태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것은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 정념의 차원에서 비롯된 불안이다)은 결국 다른 것 안에 있고 다른 것에 의해 사유될 수밖에 없는 사람살이의 밑바탕을 통찰하는 자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미래를 나누는 거잖아요//허공나무는 끝내 보이지않아요"(「시간이 흘렀어요」)와 같은 구절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무상함에로 이끌리는 이상한 매혹에 대한 욕구다. 사랑을 통해 인간은 나 아닌 자 앞에 서서 나 자신이 되는 외경을 느끼고, 외경 속에서 인간인 자신의 왜소함을 자의적이고 무조건적인 정념을 통해 돌아보는 겸허를 받아들인
다. 이러한 불가해한 이끌림을 일단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이것은 한편 질서 지으면서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구축의 욕구와도 맞닿아 있다. 이 지점이 바로 미적 욕구의 태생 지점이다.
모든 감각과 운명을 열어놓아도 '너'를 얻을 수는 없다. 너는 영원히 불가득(不可得), 다시 불가득(不可得), 또다시 불가득(不可得)이다. 김권태는 도구로서의 언어의 한계를 명민하게 자각하며, 그 역설적인 충만을 시로 쓰는 법을 고민하는 셈이다. 간명하고도 결기에 찬 이 시집이 제목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서로의 눈부처가 되어 모호한 신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찰나의 '나 자신', 이생의 처절한 소중함에 대한 일갈이 아닐까? 더럽고 서럽고 또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바로 그 소중함 말이다.
김권태의 구도행은 악무한의 구도행으로 언어라는 신비를 파헤치고 마침내 그것을 벗어던질 날을 꿈꾼다. 시인 김권태는 수도자가 아니지만 수도자에 가깝고, 시인이면서 스스로 시에 가깝고, 언어를 부리면서 한사코 언어의 질서를 닮아가려 한다. 웃음 이전에 표정이 있듯이, 바로 그 염화시중의 미소 속에 '빛의 속눈썹'이 웃는다.
―신동옥의 시집 해설 「법계(法界)의 구도행」 중에서
목차
목차
제1부
사과
마리아
클래식
백의관음(白衣觀音)
후회
이야기
탐미
실루엣
버스정류장
인도기행
인어
눈물
받아요
해탈여인숙
사이
뭐가 저리 아름다울까
제2부
잠시 드러난 황혼의 틈으로
소라
달
참 이상도 하지
나라는 말에는
오월
엘리 엘리……
옛사랑
네 얼굴을 만지면
시간이 흘렀어요
봄
매화나무
오동나무 꽃이 피기 시작할 때면
스무 살
어제
어머니
제3부
천국
mara
절망에게
귀신고래
그대가 가진 어둠의 뿌리만으로
달팽이
연금술사
나방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매미
무당벌레
낙타
성난 당신의 아버지가 바람으로 불고 있습니다
홍역
마차
어둠은 활처럼 시위를 당기고
부활
무지개 마을
대롱
해설 법계(法界)의 구도행 / 신동옥(시인)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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