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과 달팽이(문학의전당 시인선 214)
강현분 시집
『시인동네』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강현분의 시집 『시간 도둑과 달팽이』. 《책 읽는 남자》, 《버스 안 풍경》, 《신지끼 동상 사진을 보며》, 《기억에 대한 소묘》, 《엄마의 구두》 등 다양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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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학의전당 시인선〉 214. 『시간 도둑과 달팽이』에는 기억의 꽃밭으로 기어가는 달팽이들이 바글거린다. 평생 마련한 집 한 채가 결국 자기 몸이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그들은 그 꽃밭을 향해 기고 또 긴다. 이 달팽이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또한 이 지구 한 모서리를 기어 다니는 한 마리 달팽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인의 달팽이들은 기억의 장미넝쿨을 타고 오르다가 장미가 되기도 하고, 그리움이 밀려오면 어슴푸레한 등꽃 아래에 발을 댄다. 그러다가 지치면 해바라기 밭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꽃밭은 때로 비루한 동네 골목이기도 하고, 끝없는 수평선 그어진 바다이기도 하다. 느리디느린 그들의 걸음은 화염처럼 일렁이는 지금 이곳의 시간을 우회하기 위한 것인데, 거기에는 상처의 진물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그 진물이 개화시킨 어느 꽃밭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떠나야 하는.
[출판사 서평]
짐을 풀었다 쌌다 반복되는 주말부부에게/오후 1시는 가방을 챙겨야 할 시간/온몸이 등인 사내/오늘도 돌돌 말려 가방 속으로 들어간다/무릎 접고 허리를 구부려/달팽이가 된다, 촉을 세워/두 눈을 뻐금거리며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땀으로 범벅이 된, 물소리에 휩쓸려/보송보송하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아직은 도시의 소음을 먹고 살아야 한다/공감이 결여된, 냉정한/그러나 혼자만의 치유가 익숙한/익숙해서 고독한//철꺼덕 철꺼덕 철컥/레일 위에 바퀴살 깎이는 소리/소심함이 혈을 누르는 소리/선잠이 깊은 어둠과 밀착되는 소리/이틀간의 여정은 건조한 바람처럼 훌쩍 지나가 버리고/또다시 오른 시간 여행//광주, 광주역입니다. 내리실 분은……//사내는 선반에서 가방을 꺼내 든다/습관이 몸에 밴 일상,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살 부대끼며 살아온 날들보다/떨어져 살아갈 날들이/더 많을 시간들이 흐르는 종착역/잡초 무성한 레일 사이로 코스모스 하늘거리고/가방을 짊어진 달팽이/어둠을 끌며 스르르 개찰구로 빠져나간다
?「달팽이」 전문
이 시는 시간 여행을 하는 달팽이들의 이야기다. 느리기로 치면 달팽이만 한 존재가 있을까. '뛰는 자'가 '갑'인 한국 사회에서 달팽이 같은 인간은 치이는 데도 명수다. 속도에 광분하는 자들은 달리기 출발점을 앞당겨주는 부모들까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강현분의 달팽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재미있는 것은 '느린 자'도 열심히 달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조언이다. 이 조언은'순수한 당신들이야말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교훈을 생산한다. 이 교훈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기는 자'야말로 능력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없는 것'이라면 전부 가졌다. 완벽한 '공'(空)을 소유한 그들은 그러나 친구 하나는 있다. 그 친구란 게 등에 달린 구멍이다. "도시의 소음"이라도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기에 그들은 연일 그 구멍에 팔다리를 구겨넣는다. 그들의 일상이 서커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늘도 돌돌 말려 가방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은 그 등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보송보송하게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하면서. 블랙홀처럼 생긴 그 구멍은 그들을 기차가 달리는 "레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때 그들은 허공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달팽이들에게도 은하계가 있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신풍장 여관"골목길이다. 이곳에서 기어 다니는 자들의 삶은 캄캄하기도 하고 환하기도 하다. 방 한 칸에 모든 세간이 들어 있다. 아침이면 각 방에서 달팽이 같은 이들이 기어 나온다. 세수하고 옷 갈아입기 무섭게 외출 가방에 상반신을 구겨넣는다. 이 동네 골목엔 벽화도 있다. 정신없지만 화려한 색채다. 그들은 그 괴상한 벽화 위로 기어오른다. 그리움을 부르는 색깔 때문이다. 그들은 몸에서 뺀 진물을 벽에 붙이다가 그 벽에 갇히기도 한다. 방바닥에 달라붙은 어떤 달팽이는 여전히 시간 여행 중이다. 재봉틀에 점액을 바르면서.
시름시름 앓는 여자가 재봉틀을 돌린다/백짓장 같은 얼굴 위로 햇살 한 줄기 부서져 내리고/며칠째 비어 있는 물컵 하나 권태롭다//밑실을 감고 실을 꿸 때마다/그녀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드르륵드르록 실내를 깨뜨리는 재봉틀 소리/지루함을 못 견딘 고양이가 엇박자를 맞추며 울어대고//등 굽은 채 며칠째/집 나간 어린 동생의 옷을 만들고 있다/하늘하늘한 노란 원피스 입으며/고운 꿈 이룰 수 있을까/닫힌 마음 열릴 수 있을까//꾸벅꾸벅 졸던 고양이 암팡지게 울어대는 저녁 무렵
?「신풍장 여관 4?재봉틀 돌리는 여자」 전문
달팽이 여인의 면상이 누렇게 떴다. 실밥 붙은 얼굴이 아래로 떨어지다가 위로 다시 올라온다. 그녀는 백일몽을 꾸고 있다. 헤어진 어린 동생이 걸어오는 꿈이다. 동생에게 가긴 가야 하겠는데 거기로 기어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굼뜨다. 재봉틀을 돌리고 돌려도 돌아오는 건 주린 창자를 달래줄 나뭇잎 몇 장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생에게 가는 꿈이란 그저 "꿈"일 뿐이다. 동생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또 사라지면서 그녀의 백일몽은 도무지 엇박자다. 하여 그녀는 운다. "고양이가 엇박자를 맞추며 울어"대듯이. 강현분의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이 특이한 울음이다. 입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 울음, 그것은 "하늘하늘한 노란 원피스 입으며/고운 꿈 이룰 수 있을까"라는 독백이 들려주듯 꿈을 끝내 놓지 않은 자의 신음일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장미/달팽이/책 읽는 남자/소통/마네킹/신풍장 여관 1/신풍장 여관 2/신풍장 여관 3/신풍장 여관 4/등꽃/발바닥을 엿보다/떨이/유월의 장미
제2부
리모컨/시계/이삿짐/꿈꾸는 집/소망/버스 안 풍경/화상(火傷)을 입다/고맙습니다/잠 못 드는 밤/휴대폰/벽오동/먼 기억 저편/다림질
제3부
실업/벽화 마을/굴 까는 여인/송월동 동화 마을/한낮의 단상/선풍기/플러그 인/암 병동/신지끼 동상 사진을 보며/기억/섬진강 연가/해바라기 증후군/석양
제4부
삘기꽃/기억에 대한 소묘/아버지의 텃밭/신부님, 우리 신부님/혹/빨래/아버지와 소나무/어머니의 부엌/낙골연가(落骨戀歌)/갈치/엄마의 구두/해를 품은 전신주/밥솥
해설|기억의 종교 / 최종환(문학평론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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