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사제(시인동네 시인선 36)
박승출 시집
박승출 시집 『거짓사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승출 시인의 첫 시집. 박승출 시인의 시정신은 ‘전통과 합리’라는, 예술을 둘러싼 환영을 걷어냄으로써 예술의 정치화를 기도한다. 부르주아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둘러싼 일체의 상부구조들, 가령 교육·문화·예술 등에 내재한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끈질기도록 고집스럽다. 시인은 일상생활에서도 예의바르고, 풍요로운 예술 취향과 지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한 그들의 삶의 포즈가 하나의 지독한 위선이자 허식임을 분명하게 폭로한다. 크게 3부로 나뉜 이 시집은 '청춘', '마지막 청춘', '봄이 오면', '그해 겨울', '어둠 속의 둥지', '아버지의 말씀', '문상 가는 길', '붉은 물 지다', '사랑에 관하여1', '사랑에 관하여2', '사랑에 관하여3' 등 주옥같은 시편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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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인동네 시인선〉 036. 2010년 월간 『우리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승출 시인의 첫 시집. 박승출 시인의 시정신은 '전통과 합리'라는, 예술을 둘러싼 환영을 걷어냄으로써 예술의 정치화를 기도한다. 부르주아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둘러싼 일체의 상부구조들, 가령 교육·문화·예술 등에 내재한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끈질기도록 고집스럽다. 시인은 일상생활에서도 예의바르고, 풍요로운 예술 취향과 지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한 그들의 삶의 포즈가 하나의 지독한 위선이자 허식임을 분명하게 폭로한다. 그들이야말로, 윤리의, 지식의, 예술의, "가짜사제"라고. 그러한 의미에서 '거짓사제'라는 이 시집의 표제는 중세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예술적 아우라에 대한 부정을 내포한다. 시인은 이 숨 막힐 듯한 거대한 위선의 세계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견성(見性)의 묘를 터득하고, 희망의 이력(耳力)을 얻고자 한다. 고고한 유럽풍 저택에 갇혀 죽어가는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견인하려는 시인은, 감각의 층위와 미적 가치의 위계를 재분배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낮고 고요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우리 생의 진여를 캐낸다. 이것을 모든 존재들을 따뜻하게 응시하는, 거룩한 빈자(貧者)의 시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거짓사제』는 2010년 월간 『우리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승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강렬한 제목의 시집을 통해 시인은 '전통과 합리'라는 예술을 둘러싼 환영을 걷어냄으로써 예술의 정치화를 기도한다. 부르주아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둘러싼 일체의 상부구조들, 가령 교육·문화·예술 등에 내재한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끈질기도록 고집스럽다. 시인은 일상생활에서도 예의바르고, 풍요로운 예술 취향과 지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한 그들의 삶의 포즈가 하나의 지독한 위선이자 허식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들이야말로, 윤리의, 지식의, 예술의, "가짜사제"라고. 그러한 의미에서 '거짓사제'라는 이 시집의 표제는 중세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예술적 아우라에 대한 부정을 내포한다.
노인이 하루 동안 적어놓은 방문 목록에는 달빛도 있다. 노인이 책상 위에 앉아 끄덕끄덕 조는 동안 지붕 아래 유리창을 타고 슬며시 내려와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들 들락거렸을 빽빽한 공책 위에 달빛은 아무도 몰래 자신의 흔적 슬쩍 끼워 넣고 가는 것이다. 간혹 벽면을 빠르게 훑고 가는 자동차 불빛에 놀라 한순간 꼼짝 않고 있기도 하지만, 도둑처럼 어느새 창문 벌어진 틈새마다 재빠르게 팔을 디밀곤 하는 것이다. 1톤 짐칸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 틈새에, 급하게 달려온 소포나, 전해주지 못한 편지, 부음, 알뜰 시장과 방문판매 사이사이에…… 달빛은 자신의 이름 심어주고 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 은밀한 방문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행간과 행간 사이 그 작은 여백을 세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달빛이 꼭꼭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비실 노인이 쓰는 방문 목록에는 담벼락 위로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 위에서 울어대는 새들의 지저귐이나 맑은 바람소리, 선명한 새벽의 여명도 새겨져 있지만 공책 위에 그 빽빽한 희망의 울음소리 찾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비실 방문 목록에는」 전문
거대한 전통과 거룩한 권위를 거부하고 일상의 거리에 나앉은 화자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겠는가. 그의 눈에 발견되는 생의 세목들은, 낮고 고요하며 평화롭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들 들락거렸을 빽빽한" 경비실 방문 목록에 "아무도 몰래 자신의 흔적 슬쩍 끼워 넣고 가는" 이 누구인가. "급하게 달려온 소포나 전해주지 못한 편지, 부음, 알뜰시장과 방문판매 사이사이에" "자신의 이름 심어주고 가는" 이는 누구인가. 그 "은밀한 방문"의 주체는 바로 "달빛"이다. "슬픔과 기쁨의 행간과 행간 사이" 그 여백에 달빛이 숨어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새들의 지저귐", "맑은 바람소리", "선명한 새벽의 여명"도 새겨져 있지만, "그 빽빽한 희망의 울음소리"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시인은 숨 막힐 듯한 거대한 위선의 세계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견성(見性)의 묘를 터득하고, 희망의 이력(耳力)을 얻는다.
시인이 부르주아적 예술 관념을 거부함으로써 일상으로 내려왔다면, 그는 이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해체하려 한다. 백남준이 뉴욕의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끈에 묶어 개처럼 질질 끌고 간 퍼포먼스는, 바이올린이 상징하는 서구 클래식의 권위를 희화화시킨 하나의 사건이며 서구의 예술 전통에 가한 테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은 이러한 상징계의 공간 분할을 재분배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Jacques Ranciere, 『미학 안의 불편함』). 그러나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이 경계 해체와 일탈이라는 탈영토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이것이 단지 엘리트주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미적 '울혈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 난리법석은 찻잔 속의 태풍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삶-되기'와 '일상적 삶의 예술-되기'라는 경계의 지점으로 나아간다. 「퍼포먼스」의 화자는 찬바람 부는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초췌한 팔순의 할머니가 매일같이 박스에 끈을 달아 끌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할머니의 노동을 바이올린을 끈에 매달아 끌고 가는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맞세운다. 백남준이 세상을 뜨자 그의 일생이 연일 특집으로 방송되는 것과 달리, 할머니는 세상을 뜬 후 한 달 가까이 방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하나는 위대한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버려진 생 그 자체이다. 화자는 백남준이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거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생계를 목숨처럼 지고 갔던 할머니의 행위"와 구별 짓지 못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렇게 예술과 삶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동일한 행위를 비동일시하는 위계적 가치나 범주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미학의 권위를 거부하고 일상으로 내려와 예술과 삶의 경계까지 무너뜨린 시인은 이제 작고 미미한 세계 속에서 우주를 바라본다. 그가 발견한 미니멀한 신비의 세계는 떠도는 작디작은 먼지들 속에도 깃들어 있다. "옥상 좁은 창틈에 내려 싹을 틔운" 먼지는 "봄의 상징을 가질 수 있는 떨림"을 생각했지만, 갑자기 내린 폭우에 "젖은 몸으로 무겁게 쏟아져"내리고 만다. 그리하여 "바닥을 노숙자처럼" 떠돌아다녔고, "멀미의 날들을 허우적"거린다. "다시금 꿈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며" "젖은 몸"을 말리자,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모진 고문 같은/혹한의 눈발들이" 내려 그 희망은 좌절되고 만다. "삶은 시련으로 단단해질 수 있는 은유"라는 믿음은 이제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먼지의 일생은 젖고, 쓸려나가고, 굴러다니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린, "길고 긴 외면"(이상 「떠도는 먼지」)의 시간일 뿐이었다. 시인은 아마도 이처럼 떠돌 수밖에 없는 먼지의 숙명 속에서 비극적인 생의 본질을 건져 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진 고문"(「떠도는 먼지」) 같은 시간을 필사적으로 견딘 생의 시간은 어떻게 기록되는가. "가느다란 잎사귀"도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붉게 물들며 최후의 시간을 불태운다. 와병으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머니가 "별안간 간난아이처럼 벽을 짚고" 일어섰던 것처럼, 우리의 생은 "노을빛"과 같이 "기울수록 더 필사적으로 붉어"진다. 낙엽도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고 싶지 않아/춤추듯 내려"온다. 하루라는 삶의 형식이 붉은 노을로 장엄하게 끝나듯이,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최후의 시간을 버티듯이, 우리의 생도 깊어갈수록 붉게 타오르고, 다시 새봄이 오면 "순리처럼 몽우리가"(이상 「붉은 물 지다」) 맺힐 것이다.
고고한 유럽풍 저택에 갇혀 죽어가는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견인해온 시인은, 감각의 층위와 미적 가치의 위계를 재분배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낮고 고요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우리 생의 진여를 캐낸다. "빈 소주병"처럼 분노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생일지라도, "희망과 절망을 바꿔 불러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끝내 딱 한 소절의 희망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소주병」)은 시인의 열망이 『거짓사제』라는 이 시집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지붕을 이고"(「오늘의 생」) 살아간다. 박승출 시인이 "안간힘으로 견뎌서 무너지지 않는"(「아프리카 2」) 모든 존재들을 따뜻하게 응시하며 거룩한 빈자(貧者)의 시학을 일구어나갈 것을 믿는다.
[시인의 산문]
그해 겨울, 죽음이 거리에 흘러 넘쳤을 때 고양이는 탁자 밑에 게으르게 잠들어 있었다. 유리창엔 오후의 햇살들이 느릿느릿 흘러내렸고 나는 어지러운 사물들이 널린 책상에 앉아 마르크스를 읽었다. 친한 친구들은 뜬금없이 내게 은밀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출세를 권하곤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 쌓인 거리에는 죽은 사내들의 여자들이 입에서 하얀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입을 떠난 말들은 나오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렸고 어떤 한 여자는 추위 속에서 실신하기도 했다. 우는 아이의 곁을 지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속에서 더러운 말들을 꺼내 던졌고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가진 어떤 사내들은 야릇한 미소와 함께 한쪽 어깨를 치켜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늙고 초췌한 몇몇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동사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눈에 덮인 시신이 녹는 눈과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내가 읽는 마르크스의 문장들은 그러나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철철 흘러넘치던 그해의 죽음들은 읽지 않는 지난 신문처럼 빠르게 잊혀졌다. 그렇게 나는 맥없이 세월을 낭비하고 있었고, 부끄러웠고, 창밖 하늘에는 거대한 풍선이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여전히 부푼 구름 밑을 유유히 떠가고 있었다.
목차
목차
제1부
모자와 마스크
느낌
오늘의 생
산책
유럽풍 저택
더러운 개처럼
오래된 저택
하수인
거대한 벽
집행자들
그림자놀이
실시간
강화 가는 길
지금 이곳에선
벚꽃처럼 흩어지네
경비실 방문 목록에는
검은 창
의미 없는 호기심
검은 비
거짓사제
제2부
철야 하는 밤
아프리카 1
아프리카 2
아이의 잠 1
아이의 잠 2
옥상 위의 집
모년 모월의 겨울 일기 2
시베리아
퍼포먼스
밤의 회의
밤의 유리창
다시 실업
소주병
거리의 날들
떠도는 먼지
빈방
가로등 우울
장작을 패다
투명한 노동
먼지꽃
제3부
청춘
마지막 청춘
봄이 오면
그해 겨울
어둠 속의 둥지
아버지의 말씀
문상 가는 길
붉은 물 지다
사랑에 관하여 1
사랑에 관하여 2
사랑에 관하여 3
절망에 대하여
후회에 대하여
정류장에서 비를 맞다
잔혹한 일상
달빛 살인 1
달빛 살인 2
역 광장
공중전화
불맛
해설 유럽풍 샹들리에를 거부한 자의 빈 소주병 / 김정남(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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