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분지(문학의전당 시인선 208)
강미화 시집
강미화 시집 『내 안의 분지』. 크게 4부로 나뉜 이 시집은 오월, 사람의 능선, 종양, 정어리, 하현동1, 하현동 2, 망초콧, 바다의 능선 등 주옥같은 시편을 수록했다. 강미화 시인의 깊은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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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삶보다 아름다운 절망의 노래
〈문학의전당 시인선〉 208.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98년 『문학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강미화 시인의 첫 시집. 『내 안의 분지』는 절망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의 고백록이다. 그는 환희와 쾌락도, 종교와 신앙도, 시간과 기다림도, 지식과 사상과 정의도, 자신을 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 처절하고 절실한 절망의 배후에는 도저한 죽음에의 경도가 깔려 있다. 그 무엇도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의해 절망으로 물들어 있는 이 비극적인 시세계는 그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시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절망의 막장을 절망으로 돌파하려는 시인의 태도가 묘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내려간 이에게 남은 길이란 다시 돌아오는 것뿐이라는 걸까. 이 시집은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믿음직스럽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위안은 거기에 있다.
[출판사 서평]
허무의 거울에 비쳐본 죽음의 풍경들
〈문학의전당 시인선〉 208.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98년 『문학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강미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바람의 냄새가 가득하다. 시인이 말하는 '내 안의 분지'는 세상의 바람들을 받아 기르는 공간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라는 저 유명한 시구처럼 그 바람들은 시인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태풍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시인은 생성과 파괴를 한몸에 품고 있는 이 바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이 바람들이 찢어놓은 현실 이면의 비극적 참상을 목도한다.
내 몸은 사랑도 섹스도/허방으로 가득 차 있고/부처도 예수도 첫서리에 녹아내렸다/계절을 읽고 가는 사람들/나뭇가지에서 봄을 말하지만/기다림은 늘 반대쪽에서부터 오고/나도 한때 그 반대쪽에 있었다//내 기억을 품은 사람들아/더는 나를 노래하지 말고/네 눈에 나를 가두지 마라//나는/오장육부마저 다 내어준/사람이다 ―「눈사람」 부분
시인은 절망과 슬픔으로 미만한 비극적 세계를 삶의 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에는 환희와 쾌락도, 종교와 신앙도, 시간과 기다림도 삶을 지탱할 힘이 되지 못한다. 「먼지의 안쪽」에서는 지식도 사상도 정의도 더 이상 의미가 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내 안의 분지』의 처음에 놓인 시 「눈사람」과 「먼지의 안쪽」은 죽음에의 경도와 비극적 세계상이 골조를 이루고 고통과 우울의 정서가 주조를 이루는 강미화의 시세계를 잘 보여준다. 허무의 거울에 비쳐본 죽음의 풍경들이 날것 그대로 출렁이는 이 세계에는 처음부터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작은 희망이 있더라도 그것이 깃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째서 이토록 암담한 세계인식을 갖게 된 것일까.
'는개의 세계'에서
그는 오랫동안 몸에 맞지 않는 직장을 입고서 살았다/몸에 맞지 않는 약속에 헤매며/돌아오는 길의 피곤은 대부분 절망으로 바뀌곤 했다/마치 오지 않는 비에 젖고 있는 는개 속 날들처럼/그의 삶은 눅눅했다/(…중략…)/감지된 것들에 의해 끌려가거나/감지되지 않는 죽음에 의해 정중히 잊히는/그럴 때마다 는개는 내렸다/겨울의 찬 호흡은 그의 몸을 더욱 희미하게 채워줬다/오후가 되어도 오후가 되지 못하는 날들/바깥을 살피자 세상의 길은 골목을 잘못 들렀다 나온 듯/흠씬 땀을 흘리고 있다 ―「는개」 부분
"오랫동안 몸에 맞지 않는 직장을 입고서 살았다/몸에 맞지 않는 약속에 헤매며"라는 구절은 뒤이어 오는 "오후가 되어도 오후가 되지 못하는 날들"에 대응한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걸치고 사는 일'은 곧 '오후가 되어도 오후가 되지 못하는 오후'처럼, 나를 내가 되지 못하게 하고 나를 나로부터 떼어내 서로 어긋나게 한다. "세상의 길은 골목을 잘못 들렀다 나온 듯" 내가 나를 비켜가는 기묘한 상황 속에서 내가 나를 영위하지 못하고 타인을 연기해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대부분 절망으로 바뀌곤" 한다. 시적 주체는 이러한 사태를 인지하고 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여력은 진즉 소진된 듯, "감지된 것들에 의해 끌려가거나/감지되지 않는 죽음에 의해 정중히 잊"힐 뿐이다.
시의 배경이 는개가 내리는 거리이고, 시의 제목이 또한 는개인 것은 시적 주체가 처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는개는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 는개와 시적 주체의 모호한 정체성은 서로 닮았다. 늘 는개가 내려 축축한 세계를 방황하는 시적 주체는 는개의 입자에 다름 아니다. 이런 는개의 입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는개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은/새우깡에 잘 길들여지는 것"(「새우깡 속에서 사람의 향기가 난다」, 이하 인용은 같은 시)이다. 사냥을 잊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며 사는 갈매기의 모습에서 시인은 자신을 본다. 내가 나일 수 있었던 시절은 "소문"처럼 잡을 수 없고, 본래면목을 찾으려고 "물껍질을 쪼아보지만 물거품뿐"이다. 속절없이 감내해야 하는 이 비참한 처지가 우리가 맞닥뜨리는 인생의 실상이다. 시인의 절망은 여기서 온다.
죽은 지렁이 한 마리를 만났다/한 뼘쯤 남은 햇빛도 이곳으로 내려와 마지막 땀을 낸다/시멘트 길 여기가 그의 무덤인가/나는 잠시 조문을 한다/죽어서 먹혔을까/먹혀서 죽었을까/어디서 부음을 들었는지 개미들이 먼저 와 있다/늙은 지렁이 그만큼 살았으면/제 몸 하나 적실 곳이 어딘지 알 만도 하건만/하필 개미들 밥상인가/아니 이승에서의 마지막 보시일지도 몰라/발걸음마다 의문의 부호들이 찍힌다/언제 따라왔는지 개미 한 마리 발등을 문다/나뭇잎들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는 시간/나는 물린 발등에 침을 발랐다/씻기지 않는 가려움/더위를 피해 온 이곳/집에서 너무 멀리 와 있다/개미들의 잔치도 끝이 나고/지렁이가 있던 집으로 가는 외길/검버섯 피어 있다
―「죽은 지렁이를 위하여」 부분
시멘트 길 위에서 말라 죽은 지렁이를 개미들이 뜯어 먹고 있다. 마땅히 흙에 살아야 할 지렁이가 길을 잃고 시멘트 바닥에서 죽어가는 광경은 '는개의 세계'의 일면이다. 삶의 연륜("늙은 지렁이 그만큼 살았으면")도 는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지혜가 되지 못하고, 우리는 "제 몸 하나 적실 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한 채 매 순간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죽어서 먹혔을까/먹혀서 죽었을까", 왜 "하필 개미들 밥상인가", 죽음은 혹 "이승에서의 마지막 보시일지도" 모른다는 의문, 즉 '발걸음마다 찍히는 의문의 부호들'은 허무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처절한 탐색의 결과다.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개미들이 지렁이의 주검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모습은 우리의 삶이 죽음을 딛고 서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죽음이 이 세계의 본질임을 깨닫는 순간 '나뭇잎들은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고, 세계의 외피에는 "검버섯"이 가득 피어난다. 개미에게 물린 뒤 생긴 "씻기지 않는 가려움"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배태하고 있는, 끊임없이 상기되는 죽음의 그림자다.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바람이 죽음충동을 거느린 것처럼,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같이 공존하고 있다. 생(生) 다음에 사(死)가 오는 게 아니라 암수한몸인 지렁이처럼 생사가 하나다.
얼 수도 녹을 수도 없어/아버지도 아들의 아들도/엮이어 살아온 덕장//바람 속을 몇천 번 들렀다 나와야/변변한 이름 하나 얻을는지/파도의 꿈도/뱃고동 소리도/바다에 묻어두고/알몸으로 돌아온 순례자//몸속 물기가 마르고 나면/사람의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알몸으로 서 있는 물고기/몸 안에 가시를 뚝뚝 떼어내고/나도 한 축이 될까 ―「황태」 부분
"얼 수도 녹을 수도 없"는 것이 는개의 세계다. "아버지도 아들의 아들도" 황태처럼 엮여 칼바람 같은 시간을 견디는 이곳에서 나를 나로서 존재토록 하는 것, 즉 나를 다른 것과 구별하는 '변변한 이름'은 "바람 속을 몇천 번 들렀다 나와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바다에 닿"아 사람답게 사는 일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곳에 닿기 위해서는 황태처럼 죽음을 통과해 "몸속 물기"를 바싹 말리고, "몸 안의 가시를 뚝뚝 떼어내"야만 한다. 다음으로 살펴볼 두 편의 시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거미는 이 과정을 처절하고 또 아름답게 보여준다. '알몸의 순례자'인 거미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거미줄 위에서 생사의 곡예를 선보이며, 절망과 우울 속에서 삶의 질서를 길어올리는 카오스모스를 그려 보인다.
내 몸에 거미 한 마리 산다//촉촉하고 푸른 몸/혈관을 타고 앉아 몸을 조인다/발버둥 치면 칠수록 공중으로 올려지는/가슴을 파먹고 욕정을 파먹으며/언제부턴가 주인이 되어버린 곡예사/절망이란 얼마나 불필요한 치장인가/산다는 것이 허공에 나를 매다는 것임을/목숨 끝에서도 놓을 수 없는/절벽, 절벽//내 안에 거미 한 마리 산다/공중의 모퉁이 완전한 높이에서/힘센 허공을 긁어대는/거미는 내가 집이다 ―「거미」 전문
'내 몸 안에 사는 거미'가 "언제부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는 시적 상상력과 거기서 비롯한 사유가 압권이다. 나와 거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정황은 삶과 죽음이 뒤섞인 어떤 지점을 지향(指向)하며, "산다는 것이 허공에 나를 매다는 것"이라는 전언은 는개의 세계 너머를 가리킨다. 목숨이 "목숨 끝에서도 놓을 수 없는/절벽,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아이러니는 절망의 막장까지 가본 사람이 아니면 감히 뱉을 수 없는 말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이나 의미 따위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그 사실 자체라는 것, 극과 극이 통하듯이 격렬한 생의 부정이 역으로 사는 길을 터준다는 진실이다. 생에 대한 부정과 죽음의 천착도 살아 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다. 삶은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살려고 애쓴다. 이 살아 있음의 처절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도리어 사는 길이 열린다. 허공은 "힘센 허공"이 되고, '절망이란 불필요한 치장'이 된다. "고소공포증"을 "잠"이며 "들꽃 같은 안락이며/저습한 날들의 굶주림을 모면해주는 힘"(이하 「부드러운 직선」)으로 삼는 이 거미의 자세에서 시인은 살아갈 이유를 배운다. '삶의 고통을 통과한 거미만이 더 자유로운 방황, 더 향기로운 굶주림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을 말이다.
목차
목차
제1부
눈사람/죽은 지렁이를 위하여/흔적/거미/파꽃/먼지의 안쪽/부드러운 직선/숲속 냉장고/매너티/저수지/잠복소/는개/파리 1/파리 2/붉은 그늘
제2부
먼지의 춤/겨울 배추밭 1/겨울 배추밭 2/샐비어/무꽃/사랑니/황태/본적/가시오이/나무가 되었다는 그 여자/광수 오빠/가래질/냉이꽃/엄마의 밭/장미가 피는 계절
제3부
/담쟁이/동지/눈에도 사연은 있다/씨앗/비봉산/바람의 등/수상한 장례/오래된 미래 1/오래된 미래 2/오래된 미래 3/오래된 미래 4/오래된 미래 5/오래된 미래 6/오래된 미래 7
제4부
겨울 도마/대장장이/군불/오월/사람의 능선/종양/정어리/하현동 1/하현동 2/망초꽃/바다의 능선/초상화/새우깡 속에서 사람의 향기가 난다/환절기/소금꽃
해설|삶보다 아름다운 절망의 노래 / 이현호(시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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